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쾌도강산 제1권. - 1편 (1/43)

2026-10-08 18:52:44 조회 14
지은이: 운중행. - 차 례 - '용대운(龍大雲)프로'를 출범하며... 서 장 1 폭발. 서 장 2 육 개월 후 제 1 장 세 개의 칼을 가진 사나이. 제 2 장 남만(南蠻)으로. 제 3 장 최초(最初)의 격돌(激突). 제 4 장 점창산(點蒼山). 제 5 장 추적대! 제 6 장 사사족(使蛇族). 제 7 장 옥룡대산(玉龍大山). '용대운(龍大雲)프로'를 출범하며... 오년 만에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나왔다.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뿐이었다. - 아무 걱정없이 '무협(武俠)'을 쓸 수 있는 사무실을 갖고 싶다. 라는 오랜동안의 작은 소망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동안 나의 모든 방황과 노력은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삼 년 넘게 몸담았고 젊은 날의 땀과 눈물, 정열을 바쳤던 <뫼출판사>를 나와 이년전 처음으로 용인에 왔을 때 가슴속에 품었던 작은 소망이 이제 아주 조금이나마 이루어져 제법 사무실 다운 사무실에 여러 명의 뜻이 맞는 작가들과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오랜동안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작은 벽돌 하나를 쌓았다는데 그 의의를 두고 싶다. 십 년 넘게 오직 무협만을 써오면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겪어 왔지만, 작가(作家)라는 이유 하나로 독자와 출판사 모두에게서 경원되고 괴리되는 현실이 조금은 암담하게 생각되었다. '용대운프로'라는 이름으로 용인사무실의 작품들을 선보이게 된 이면에는 작품의 질(質)로 평가받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과 함께, 능력있고 참신한 후배들이 경제 적, 제도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음껏 작업에 몰두하기를 바라는 작은 염원이 함께 담겨져 있는 것이다. <도서출판 씨알>과의 만남은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지금의 심정은 참으로 복잡하다. 조금은 설레고, 얼마쯤 유쾌하며, 상당히 긴장되고, 굉장히 두렵다. 무엇보다도 간신히 잡은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이 든다. '용대운' 이라는 나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믿고 따르는 여러 동료작가들의 사활이 함께 걸린 것이기 때문이다. 질좋은 작품만을 선보이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낯간지러운 말은 하지 않겠다. 다만 글을 쓰고 싶고 무협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도록 하겠다는 약속만은 드릴 수 있겠다. 독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몇 가지 없다. 무관심보다는 차라리 질책을, 찬사보다는 오히려 비판을, 그리고 경멸보다는 잔잔한 애정을 원한다. 그 대가로 우리들이 줄 수 있는 것은 뜨거운 땀과 눈물, 그리고 정열 뿐이다. 기미년 아침 용화소축(龍華小築)에서 용대운(龍大雲) 배상(拜上). 서 장 1 폭발. 번쩍! 우르르릉...! 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땅이 흔들렸다. 빛의 장함은 태양에 비견될 정도였고, 땅의 흔들림은 지신(地神)의 노여움과도 같았다. 어떤 이는 화산(火山)의 폭발이라 했고, 또 다른 이는 세상의 종말(終末)이라고도 했다. 빛은 이내 사라졌지만, 흔들림은 오래도록 그치지 않았다. 서 장 2 육 개월 후 "일은 어찌 되었느냐?" "모두 해치웠습니다." "한 군데, 급히 가야할 곳이 있다." "어디 입니까?"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로 가보거라. 청죽장(靑竹莊)이란 곳이 있을 것이다." "........" "그곳에서 은밀히 사람을 구한다고 한다. 모종의 시험이 있을 것인데, 그 시험에 통과하면 한 사람이 접근해 올 것이다. 그의 지시를 따르도록 하여라." "어느 정도까지 따라야 합니까?" "네가 죽지 않을 정도까지." "그렇다면...." "그렇다. 필요에 따라서는 제삼(第三)의 칼[刀]을 써도 된다는 말이지." "알겠습니다." 제 1 장 세 개의 칼을 가진 사나이. 1 강산(江山)은 자신의 앞에 놓인 세 개의 칼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세 개의 칼. 칼 하나 하나에는 저마다의 이름이 있었다. 첫 번째 칼은 '금강(金剛)'이라 했다. 금강도(金剛刀)는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칼 중의 하나였다. 금석(金石)이라도 두부처럼 잘라버리며, 제 아무리 막강한 호신강기(護身 氣)도 종잇장처럼 꿰뚫어 버리는 무서운 칼이었다. 강산은 금강을 허리에 찼다. 두 번째 칼이름은 '용수(龍鬚)'였다. '용의 수염'. 그 이름처럼 용수도(龍鬚刀)는 천하에서 가장 부드럽고 얇은 칼이었다. 얼마나 부드럽고 얇은지 허리춤에 차고 있으면 누구나가 허리띠로 착각을 했고, 손에 들고 있으면 유리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나 용수도의 예리함은 금강도를 몇 배나 능가하는 것이었다. 강산은 용수도를 허리에 매었다. 마지막 칼은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무명(無名)'이었다. 무명도(無名刀)의 효능이 어떤지, 어떻게 생겼는지, 또한 무명이 강산의 몸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천하에 오직 두 사람 뿐이다. 그중 한 사람이 강산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의 사부인 육만월(陸滿月)이었다. 세 개의 칼을 모두 차고 나자 강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키는 남들과 비슷한 정도였으나, 두 팔은 유난히 길어서 가만히 팔을 늘어뜨리고 있으면 손등이 거의 무릎에 닿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는 것은 그의 몸이 곧곧하고 어깨가 벌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방문을 열고 나서자 유난히 눈부신 아침 햇살이 눈앞에 가득 들어왔다. "좋은 날이군." 강산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며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아침 햇살을 온 몸에 받았다. 그러다가 다시 느릿느릿 걸음을 옮겨 밖으로 걸어나갔다. * * * 붉은 노을이 주위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신시(申時) 경. 호남성의 성도인 장사(長沙)에서 오십 여리 떨어진 청죽장(靑竹莊)의 정문에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는 유난히 긴 팔에 짙은 회의를 입고 있는 청년이었다. 청년은 칼집도 없는 거무틱틱한 칼 한 자루를 달랑 허리에 차고 있었는데, 딱 벌어진 어깨와 잘룩한 허리에 아주 잘 어울려 보였다. 청년은 한 차례 청죽장의 현판을 올려다 보고 있다가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쿵! 쿵! 곧 이어 문이 열리며 두 명의 장한이 나타났다. 험악한 인상하며 떡 벌어진 어깨가 여느 집 하인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겨내는 자들이었다. 장한들은 청년의 위아래를 쓸어보다가 물었다. "무슨 일로 왔소?" "사람을 구한다고 들었소." 청년의 답변에 장한들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조금은 꺼려하는 표정이었다. "흠, 이름이 어찌 되시오?" "강산(江山)." "별호는 어떻게 되시오?" "없소." "없다고?" 청년의 대답에 장한들은 눈살이 찌푸렸다. 그들의 눈가에는 경멸의 빛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다. 아직 별호도 없다면 강호초출(江湖初出)이거나 시시껄렁한 삼류무사임이 분명했다. 왼편의 장한이 힐끗 강산의 허리께를 응시하며 물었다. "특기는?" 강산은 잠자코 질문을 던진 장한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섬뜩한 무심함이 배어있었다. 결코 모욕을 참아 넘길만한 눈이 아니었다. 흠칫! 자신도 몰래 어깨를 떨던 장한은 어색함을 털어버리려는 듯 좀더 큰소리로 말했다. "특기는?" 청년의 입술이 느릿하게 열렸다. "시험이 있다고 들었는데 자격이 필요한가?" 장한은 꿀꺽! 침을 삼키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것을 베면 통과시켜 주겠소." 강산의 시선이 사내의 손을 쫒았다. 거기에는 한 마리 사자(獅子)가 용맹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물론 사자는 살아있는 사자가 아닌 돌사자로, 세도깨나 부리는 집의 대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돌사자라면 오랫동안 칼을 닦아온 일류무사라면 베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단지 문제는 이 장원앞에 있는 돌사자의 크기가 무려 이 장이 넘는 어마어마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 장이 넘는 돌사자를 벨 수 있는 사람은 드넓은 천하를 찾아보아도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을 것이다. 돌사자를 가리키는 장한의 눈에는 '네깟 놈이 어떻게 저걸 베겠느냐'하는 비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돌사자를 보고 기가 질려 돌아간 수많은 무사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강산은 성큼성큼 돌사자로 다가갔다. * * * "깨끗하군." 중년인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어른의 몸통만한 크기의 거대한 바위였다. 아니, 자세히 보면 그것은 단순한 바위가 아니었다. 갈기가 휘날리고 부릅뜬 눈이 생생하게 새겨진 석상(石像)이었다. 하나 그 크기가 너무도 거대해서 도저히 조각상 같지 않았다. 눈이 예리한 사람이라면 그 조각상이 목이 반듯하게 잘려진 돌사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절단면만 본다면 동경(銅鏡)이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만큼 잘려진 사자머리의 단면은 너무도 매끄럽고 반듯한 것이었다. 중년인은 사자 머리의 잘려진 부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강산이라 했느냐?" 어디선가 대답이 나왔다. "그렇습니다. 현재 별채에 있습니다." * * * 청죽장은 그 이름에 걸맞게 대나무가 많았다. 푸른 대나무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강산은 창가에 서서 느긋한 마음으로 경치를 구경했다. 그렇게 일다경(一茶頃)이나 흘렀을까?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는 서글서글한 눈매가 인상적인 왜소한 체격의 사십대 중년인이었다. 사람을 부리고 무언가 억센 일을 하기보다는 사무에 어울리는 인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풍광(風光)이 좋아 시간 가는 줄 몰랐소." "강대협이라 하셨지요? 저는 구청연(苟請聯)이라고 합니다." 구청연은 의자를 권하고 강산이 앉기를 기다려 그 앞에 마주앉았다. "죄송하지만 저는 아직 강대협의 함자를 익히 듣지는 못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문(師門)을 알 수 있겠습니까?" 강산은 무뚝뚝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꼭 말해야 하는거요?" 구청연은 나직하게 웃었다. "허헛.... 불편하시다면 말씀하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런데 강대협께서 폐 장까지 오신 데는 달리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구청연의 눈빛은 매우 맑고 부드러웠다. 보다 넓은 세상을 살아본 사람의 눈빛이었다. 강산은 짧게 답했다. "한 가지 필요한게 있어서." "그게 무엇입니까?" "돈." 잠시 강산을 바라보던 구청연이 빙긋 웃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필요로 하지요. 강대협께서 그렇듯 시원스럽게 말씀해주시니 저도 바로 용건으로 들어가지요. 보수는 황금 이백 냥, 기간은 육개월. 일을 무사히 마치면 다시 그만큼의 액수가 보장됩니다. 어떻습니까?" "좋소." 여전히 간단한 강산의 대답에 구청연은 의외인 듯 물었다. "무슨 일인지 묻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강산이 빤히 응시하며 되묻는다. "물으면 답해 주겠소?" 되묻는 강산을 보며 구청연은 허허! 기분좋은 웃음을 토해냈다. "정말 시원시원한 성품이십니다. 강대협과 일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렇게 흥정은 짧고 명쾌하게 끝을 맺었다. 사람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었소? 또한 돈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 구체적인 용도는? 등등의 상식적인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서로 간에 마음속에 담긴 말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세한 내막이야 어떻든 이번 일이 일인당 황금 사백 냥을 쏟아부을 정도로 큰 일이라는 것이다. 잠시 후, 강산은 시비의 안내를 받아 한 채의 전각으로 향했다. 전각은 손님 접대를 주로 하는 듯 십여 개의 방이 좌우로 늘어서 있었다. 낭하를 걷던 강산은 그중 서너 곳에서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시비는 강산을 왼쪽의 맨 끝방으로 안내했다. "잠깐!" 강산은 이것저것 안내를 마치고 돌아서는 시비를 불러세웠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있는 듯한데 그들의 이름을 아는가?" "모두 세 분이 계시는데, 곽가량(郭枷量)이라는 분과 서문상(西門上)이라는 분... 그리고 한 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금방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강산은 손을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네." "예, 그럼 소비는 이만." 시비가 나가자 홀로 남은 강산은 침상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곽가량과 서문상이라... 반선불(半善佛) 곽가량과 염객(殮客) 서문상을 일컫는 것인가...!' 강산은 강호경험이 아주 풍부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강호의 대소사(大小事)는 대부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그이니 만큼 그 두 사람의 이름을 모르지 않았다. 아니, 강산이 아니라 강호에 몸을 담고 있는 무림인이라면 누구나가 그 두 사람의 이름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보았을 것이다. 반선불 곽가량과 염객 서문상! 서문상은 염객이라는 별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손속이 지극히 독랄한 자이다. 무위(武威)는 이미 일류의 범위를 벗어난 자로서 직업은 현상금 사냥꾼, 병기는 두 자루 옥구(玉勾)를 사용한다. 곽가량은 한때 소림(少林) 제일의 기재(奇才)라며 그 영명(英名)이 떠오르는 태양에 비견되었던 인물이다. 한데 육 년 전, 그의 명성에 치명적인 누(累)가 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하북팽가(河北彭家)의 제자 십여 명과 시비가 붙어 그들을 모조리 때려 죽여버렸던 것이다. 소림이 정파(正派)의 태두(泰斗)라면 하북팽가 역시 사대가문(四大家門)의 하나, 소림은 어쩔 수 없이 곽가량의 파문(破門)을 결정하고 말았다. 그후 소림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난 곽가량은 곧잘 강호의 시비에 관여하였다. 그는 소림출신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많은 살업(殺業)을 쌓았고, 그런 그에게 무림인들은 반만 선하다 하여 반선불이란 별호를 붙여주었다. 2 그날 저녁, 강산은 바람을 쏘이기 위해 방을 빠져나갔다. 밤바람은 시원했고, 바람에 실려오는 은은한 죽향(竹香)은 더없이 향기로웠다. 정처없이 발길을 옮기던 강산이 어느 전각 모퉁이를 돌자 얕으막한 언덕이 나타났다. 언덕에 오른 강산은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짧은 탄성을 터뜨렸다. "대단하군!" 언덕 너머는 넓은 구릉지대여서 고만고만한 언덕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었고, 다시 언덕 사이사이엔 십여 채의 전각군(殿閣群)이 형성되어 있었다. 장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성(城)을 방불케하는 규모였다. '일개 장원이 아무런 배경도 없이 이런 위세를 보여줄 수는 없지. 그렇다면 이들의 배후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 그다지 어려운 의문은 아니었다. 중원이 넓다고는 하지만 본파(本派)가 아닌 일개지파(一個支派)의 규모로 이 정도의 위세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인 것이다. '구파일방을 제외한다면... 삼절방(三絶幇), 무천궁(武天宮), 구마림(九魔林), 조화곡(造化谷)!' 넷 뿐, 더 이상은 생각나지 않았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능성이 있는 곳은 두 곳, 당금 무림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삼절방과 무천궁이다. 순간 강산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침음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 사이로 끼여든 것인가?' 강산이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을 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비켜. 못 비켜?" 젊은 여인의 음성이었다. 그 음성에 이어 곧바로 애써 감정을 억제하는 듯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정말 왜 이러십니까?" 멀지 않은 곳, 바로 좌측에 연한 언덕 너머에서 들려오는 음성이었다. 강산은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와중에도 그들의 음성은 계속되었다. "어쭈, 정말 못 비키겠단 말이지?" "괜한 소동 일으키지 마시고 조용히 숙소로 돌아가십시오." 이윽고 언덕을 오른 강산은 한 여인과 세 명의 장한을 볼 수 있었다. 여인은 이십 초반이나 되었을까, 몸에 꽉 끼는 경장(輕裝)차림이었다. 등을 돌리고 있어서 자세한 용모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의 뒷모습만은 매우 아름다운 것이었다. 세 명의 장한은 대나무 숲을 뒤에 두고 여인을 가로막은 형태로 서 있었다. '비켜'를 연발하는 여인의 말로 짐작컨데 시비의 근원은 그 대나무 숲 인 듯 싶었다. 여인이 척 허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경고하겠어. 비켜!" 세 명의 장한의 눈살이 더욱 찌푸려졌다. "송소저(宋少姐), 이곳은 금지구역입니다." "송소저...? 허-, 나를 알고도 막는단 말이지?" 여인이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날리자 장한중 한 명이 일보를 내딛으며 말했다. "비록 손님이라 할지라도 지나친 간섭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여차하면 무력(武力)이라도 불사하겠다는 듯 단호한 태도였다. "간섭, 용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조용히 돌아가... ." 장한의 이야기가 미처 끝나기 전, "흥!" 차가운 코웃음 소리와 함께 여인의 손끝에서 작은 움직임이 일었다. 그리고 소매춤에서 번쩍하는 빛이 번뜩였다. 찰나 장한의 신형이 좌측으로 미끄러졌다. 그의 행동은 매우 신속한 것이었다. 이미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신속함과 여인의 신속함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악!" 장한은 채 반보도 이동하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그의 어깨에는 어느 새 한 자루 비수가 거의 자루까지 박혀있었다. 일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동료의 횡액을 바라보던 장한들이 이내 칼을 빼들고 여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감히 어디서 살수(殺手)를." "차앗!" 하나 그들 역시 횡액을 면키는 어려웠다. 여인의 손이 작은 움직임을 보인 순간, 그들 역시 동료의 곁에 나란히 누워버린 것이다. "크윽!" "큭!"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산은 내심 여인의 무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일류급이로군. 저만한 실력에 이십 대 초반이라,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은데... . 송가라 했지.' 강산이 그렇게 곰곰 여인의 내력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 송씨 성의 여인은 바닥을 뒹굴고 있는 한 장한에게로 다가갔다. 여인의 시선을 받은 장한의 얼굴은 노랗게 변했다. 그는 곧 바닥을 기어 달아나려 하였다. 순간 여인의 발이 사정없이 장한의 아랫배를 밟았다. "캑!" 개구리 배터지는 소리가 터져 나오며 장한의 눈동자가 한자나 튀어나왔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지? 막지 말라고." 여인이 얼굴을 바짝 당겨 속삭이자 장한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제, 제발... ." 장한의 애원에 여인은 픽 웃음지었다. "제발? 야, 내가 뭐 강간이라도 할 것 같으냐?" "제발... ." "참, 나는 너같이 구린내 나는 물건에는 흥미 없대두." 여인은 뇌까리며 사내의 어깨로 손을 가져갔다. 그곳에는 삐죽 나온 비수 자루가 있었다. 자루를 잡은 여인은 끙차! 힘을 주었다. 하지만 '끙차'는 말 뿐, 정말 힘을 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당연히 비수는 뽑히지 않았다. "야, 이거 잘 안 뽑히네. 뼈에라도 박힌 모양인데?" 그녀는 비수를 잡은 채로 비수의 손잡이를 이리저리 돌렸다. 장한의 눈동자가 하얗게 돌아가고, 장내에 때아닌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 여인은 인정사정없이 장한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조용히 못해?" 고통을 참지 못한 장한이 기절해 버렸는지 비명소리가 잦아들었고, 여인은 두 번째 먹이를 향해 다가갔다. "흐아악!" 두 번째 장한은 그녀가 채 다가오기도 전에 비명부터 질러댔다. "콱, 조용히 하지 않으면 멱을 따버리겠어." 여인은 한 차례 눈을 부라리고는 두 번째 장한의 옆구리에 박힌 비수를 여러차례 비틀었다. 그렇게 차례차례 세 장한의 눈동자를 돌려버린 여인은 툭툭 손을 털고 일어섰다. "참, 사내라는 자식들이... ." 그를 지켜보던 강산은 쓴웃음을 지었다. 여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쓰러진 장한들을 상대로 벌이는 그 행태는 그야말로 좀처럼 보기 힘든 잔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인기척을 느꼈을까, 여인이 빙글 돌아 강산을 향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중앙에서 마주쳤다. 탐색의 눈길도 잠시, 여인의 아미가 상큼 치켜 올라가며 다짜고짜 반말이 튀어나왔다. "넌 뭐야?" 강산은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어라, 웃어? 너 이리와." 강산은 한편 어이없기도 했고 한편 재미있기도 했다. '안하무인에 비수를 쓰는 송씨 여인이라... 분명 어디선가 들어보았는데.'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에 잠겨 있자니 여인의 얼굴이 붉그락푸르락 변해간다. "이리 오지 못해? 오지 않으면 내가 간다. 나 가면 너 죽어." 손가락을 까딱이며 악을 쓰던 여인이 끝내 일보를 내디뎠다. 사람을 셋 씩이나 쓰러뜨리면서 그렇게도 들어가고 싶어 했던 대나무 숲은 이제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오냐, 넌 이제 죽은 목숨이다." 바로 그때, 강산은 깨달았다. 씨근벌떡 온인상을 구기며 달려오는 여인을 보는 순간, 그녀의 내력이 생각난 것이다. '그렇군. 화왕비(花王匕) 송자영(宋紫英)이로군!' 화왕비 송자영은 칠팔 년 전 불쑥 무림에 나타난 여인으로, 모든 것이 신비에 쌓인 정체불명의 인물이었다. 그 무공의 고강함으로 인해 아미파(峨嵋派) 전대고인(前代高人)의 속가제자란 소문도 있었고, 남해(南海) 보타산(普陀山)의 청조각(靑潮閣) 출신이란 말도 있었지만, 본래 무림의 대소사가 그렇듯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은 없었다. 바람처럼 달려와 강산의 면전에 이른 송자영은 번쩍 손을 들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