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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5[중신통왕중양편] - 14편 (14/60)

2026-09-30 18:59:59 조회 17
그 사내는 말이 끝나자마자 음노삼과 함께 모용준을 끌어다가 자지 옆에 앉혀 놓았다. 모용준은 묶인 상태라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두 사내가 모용준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는 약물을 들이부었다. 모용준이 발버둥을 쳤으나 어쩔 수 없이 그 약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마셔 버리고 말았다. 곧 모용준이 바닥에 쓰러졌다. 모용준이 쓰러지자 이젠 필요가 없게 되었는지 그의 몸을 싸고 있던 포승줄을 잘라 주었다. 두 사내가 이번엔 자지를 향해 씨익 웃으며 다가왔다. 자지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한 손을 들더니 쏘아붙였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내가 직접 마시겠어요!" 두 사내가 의외라는 듯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목정을 자지에 게 내밀었다. 노인의 벽력같은 외침이 뒤를 따랐다. "음노삼! 정신이 나갔더냐?" 음노삼이라 불린 사내가 그때서야 사태를 파악했는지 황급히 목정을 거두었다. 그리곤 자지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모용준과 자지에게 약을 먹인 이들은 히죽히죽 웃으며 옆사람을 쿡쿡 찌르기도 하며 좋아들 했다. 한쪽에서 역시 묶인 채로 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허불잉이 탄식을 했다. "너희 약왕문 놈들은 하나같이 더럽고 치사한 무리들이로구나! 너희들은 이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저 놈이 나불거리지 못하도록 끌어내 가라!" 노인의 명령에 따라 두 사내가 달려들어 허불잉을 끌고 나갔다. 모용준이 깨어난 것은 한 개의 향이 타버릴 만큼의 시간이 지나 서였다. 신음 소리를 내며 깨어난 모용준의 눈은 벌겋게 충혈이 된 듯했다. 그는 주위에 사내들이 빙 둘러앉아 자기를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더니 황급히 고개를 돌려 자지를 찾았다. 그녀 역시 옆에 쓰러진 채로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노인이 십여 명의 무리들에게 일단 물러가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들이 자리를 떠나자 자지도 정신을 차렸다. 모용준이 반색을 하며 그녀를 불렀다. "오호, 정신이 드는군. 그래 괜찮아?" 그런데 자지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모용준을 멀뚱히 쳐다보다 고개를 흔들었다. "몰라요. 나에게는 당신 같은 사내가 없어요." 모용준이 놀라며 그녀에게 얼굴을 길게 들이밀었다. "난 모용준이야! 반화대회를 기억해 보라구?" 그러나 자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중얼 흘리기만 했다. 그러더니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표정을 지으며 모용준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지금 그녀의 눈에는 모용준이 여러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 중이었다. 모용준이 때와 먼지를 뒤집어쓴 거지로 보였다가 풍류재자(風流才子)로도 보였다. 또한 남루한 누더기를 걸친 가난뱅이가 눈앞에 있는 듯하다가도 어느새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부자로 그 모습이 바뀌기도 했다. 자지가 경험하고 있는 이같은 기이한 현상은 모용준에게도 곧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용준의 눈이 벌겋게 충혈돼 있는 것은 바로 올빼미의 눈알을 닮아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츰 자지 처녀를 바라보고 있는 모용준의 눈은 피를 즐기는 올빼미의 그것처럼 변해 갔다. 더 이상 그의 눈엔 자지에 대한 예전의 형상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눈앞에 놓인 여인은 오로지 음욕에 젖어 있는 한 마리의 암고양이로만 비칠 뿐이었다. 노인의 명령 때문에 아쉽게 물러나야 했던 무리들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의 눈은 어느 때보다 호기심으로 번들거렸고 헤벌어진 입가로 연신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용준이 자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자지, 그대는 날 좋아하지?" "전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 "자지, 그대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난 대연을 일으켜 세울 수도 없고 또 모용세가를 흥성시킬 수도 없는 놈이라구. 난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게 백번 나은 추물일 뿐이야! 추물에다 난쟁이……." 모용준은 차마 꺼내 놓기 싫었던 말까지 내뱉었다. 그는 죽더라도 이 말만은 하고 싶지가 않았었다. 자지 처녀가 심한 갈증을 느끼며 자기 목을 움켜쥐었다. "물……물!" 누군가 물을 가져와 그녀에게 내밀었다. 자지는 한 대접의 물을 순식간에 마셔 버리고는 모용준을 바라보았다. "사실 임 공자님은……." 그러자 모용준이 슬쩍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에 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아. 셋째 동생은 큰형님을 더 좋아하고 있지.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야." 그러자 자지가 세게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임 공자님은……." 다시 모용준의 손길이 그녀의 입술 위로 옮겨 왔다. "난 다 알고 있어. 그대는 셋째에게 어울리는 여인이지." 자지가 더는 말을 꺼내지 못한 채 모용준에게 기댔다. 자지의 눈빛이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무리들이 강제로 먹인 약기운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분탕질을 해대는 모양이었다. 그윽하게 멀리 날아 가는 기러기를 바라보듯 아니면 비가 내린 뒤의 무지개를 보듯 그녀의 눈빛이 가물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강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녀는 모용준을 응시했다. "당신은 자꾸만 그를 두고 셋째 동생이라고 하는군요.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당신과 의형제를 맺을 수 없는 처지였다고요!" 앙칼지게 소리를 친 자지 처녀가 계속 초점을 잃어 가는 눈빛으로 모용준을 바라보았다. 제8장 지하궁전의 열기 약물에 취한 두 사람은 차츰 서로를 탐닉하는 짐승으로 변해 갔다. 자지와 모용준은 서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들의 눈에는 뜨거운 불길이 이글거렸다. 이들은 금방이라도 몸을 공중에 띄울 듯한 화기를 억누르며 한동안 서로를 뜨겁게 응시했다. 그러나 끝내 화기를 누르지 못한 이들은 서로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자지가 먼저 입술을 벌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님, 당신은 좋은 분이에요." 사실이었다. 지금 자지의 눈에는 모용준이 대단한 사내로 비치고 있었다. 처음 모용준을 만났을 땐 전혀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녀는 오로지 임조영만을 가슴에 품었다가 임조영이 사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하며 왕중양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모용준의 눈길 속으로 하염없이 빨려들어갔다. 그는 이미 추물도 아니고 자신이 말한 것처럼 난쟁이도 아닌 영준한 사내였다. 모용준의 눈에서도 거대한 불길이 타올랐다. 육욕으로 얼룩져 충혈된 그의 눈은 곧 엄청난 양기를 뿜어댈 것만 같았다. 자지를 탐욕스럽게 바라보던 그가 나지막히 속삭였다. "내게 그대만 있어 준다면 난 만족해." 모용준이 갑자기 몸에 불이라도 옮겨 붙은 사람처럼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는 옷을 벗으려고 했는데 마음이 앞서 얼른 매듭과 고리 들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옷을 북북 찢어발겼다. 곧 모용준이 알몸이 되어 자지의 손을 잡았다. 자지 역시 가슴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의 숨통을 열어 주듯 입술을 동그랗게 벌리며 입김을 토했다. "아!" 숨어서 이들의 광경을 지켜 보고 있던 무리들이 숨을 꼴깍꼴깍 삼키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용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슴 가득 꾹꾹 재어 넣고 있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모용준이 향로가 놓여진 탁자 위로 자지를 안아 올렸다. 그의 눈에는 향로를 받치고 있는 탁자로 보이지가 않았다. 첫날밤의 황홀한 교접을 위해 마련된 훌륭한 침대로만 여겨졌다. 탁자 위에 눕혀진 자지는 가쁜 숨을 몰아쉬듯 가슴을 간헐적으로 꿈틀대며 모용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 어서……." 그녀의 가슴은 이미 재가 되려고 하는지 모용준을 재촉했다. 모용준이 훌쩍 작은 몸을 날려 탁자 위로 올라섰다. 그리곤 무릎을 꿇은 자세로 그녀의 옷을 찢어 벗겼다. 자지의 탐스럽고도 봉긋한 젖가슴이 드러났다. "으음……." 자지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소리에 모용준은 아찔해졌다.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모용준이 허겁지겁 자지에게로 몸을 밀착시켰다. 이들은 한 몸이 되어 끝없는 무아의 골짜기를 향해 서서히 들어갔다. 무리들은 누가 나타나 코를 싹둑 잘라가도 모를 정도로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두 남녀가 벌이는 음탕질에 어떤 사내는 자기의 아랫도리를 움켜쥐고는 안절부절못하기도 했다. "저건 또 뭐지?" 그런데 그중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길게 뽑았다. 모두의 시선이 자지를 향해 달려갔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자신을 덮치고 있는 모용준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중이었다. 그것은 환희의 눈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아지경에서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눈물도 아니었다. 그녀는 비로소 자기를 감싸고 있는 사내의 몸이 보잘것없다는 사실에 실망을 한 것이다. 자기의 몸길이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난쟁이를 비로소 확인한 그녀는 차츰 식어 가는 가슴에 안 타까워 했다. 이를 눈치챈 모용준도 얼굴을 돌리며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의 얼굴엔 아직 정욕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자지는 비로소 모용준을 원하고 있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비록 겉으로 드러나기는 색정이었지만 속은 이미 변색된 다른 형태의 것을 지니고 있었다. 만일 무리들의 장난이 없었다면 차마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지는 잠시 침울한 얼굴을 하더니 눈을 감았다. 자지가 모용준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약왕문 무리들이 우르르 달려온 것은 바로 이때였다. 모용준이 벌겋게 아직 불길이 살아 있는 눈을 부라리며 이들에게 으르렁거렸다. "어느 놈이든 가까이 왔다가는 씹어 먹고 말겠다!" 여지껏 한켠에 물러난 채로 구경을 하고 있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하! 모용준, 네 놈의 행실이나 똑바로 챙겨라. 넌 제수를 간음한 놈이 아니더냐?" 모용준이 황급히 자지에게서 몸을 떼며 두리번거렸다. "내가 제수를 간음했다고? 그럼 이 여인이 나의 제수란 말인가? 아니다……, 아니야. 그댄 분명 자지 처녀가 맞지? 그렇다면 셋째 동생의 여인인 자지……? 그런데 내가 왜 그대와……!" 횡설수설하며 밑에 누워 있는 자지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앉은 채로 서로를 바라보다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제정신이 돌아온 것이었다. 아들은 몸을 가리고자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누군가 사납게 찢어 발긴 옷조각들만 바닥에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모용준이 하늘을 우러르며 울부짖었다. "너흰 나와 아무런 원한도 없지 않느냐!" 그러자 한 사내가 툭 튀어나오더니 떠벌렸다. "네 놈은 스스로가 공자라고 여기지만 내 보기엔 무능하고도 볼품없는 난쟁이에 불과하다." 이번엔 비쩍 마른 사내가 휘청휘청 몸을 흐느적대며 웃어댔다. "헤헤헤, 네 놈이 재미를 보느라 양기를 모조리 써버렸을 텐데 우리와 싸움이 되겠느냐? 차라리 멀찍이 물러나 우리 형제들이 저 계집과 어울리는 걸 감상이나 하는 게 어때?" 몇몇 사내들이 어느새 자지를 끌어안으며 입을 헤 하고 벌렸다. 자지가 소스라치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사내들의 수가 많아 자지는 번쩍 들어올려지고 말았다. "아악!" 자지를 끌고 가는 것을 그대로 바라보기만 하는 모용준의 가슴은 찢어졌다. 무리들은 곧 자지를 차례대로 덮쳐 강제로 욕심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지에게 자기들과 한패가 되어 기상천외 한 약을 만들며 지내자고 회유하기까지 했다. "네 놈들이 당장 그 짓거리를 멈추지 않으면 담판을 짓겠다!" 그러나 이들의 귀에는 모용준의 말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모용준이 다시 울부짖듯 소리쳤다. "차라리 난 자결을 하겠다!" 노인이 모용준의 말을 받았다. "난쟁이 주제에 단단히 미쳐 버려군. 여인의 사랑이 그토록 절실하단 말이냐? 그럼 어디 마음대로 하거라!" 노인이 모용준의 앞으로 약을 쪘을 때 쓰는 절굿공이를 던졌다. "네 놈은 모용세가에서 신선놀음으로 지내 왔는데 어찌 그것을 버리고 죽겠느냐?" 모용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난 이미 저 여인과 살을 섞은 몸, 여인을 선택할 수 없다면 죽음뿐이다!" 모용준이 절굿공이를 집어 들었다. "내가 죽고 나면 무림의 벗들이 나를 도와 너희들을 꼭 응징할 것이다!" 노인이 잠시 생각에 잠기려 하자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호법님, 두려워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모용세가를 업신여길 수는 없지. 저 놈은 무림의 큰 문파들과 내왕이 밀접하지 않는가?" 노인이 미온적인 태도로 돌변하려고 하자 사내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저 놈이 죽어 버리면 그만이지 다른 문파가 무슨 소용입니까?" 노인이 뒷짐을 진 채 몇 걸음 서성이더니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모용준을 향해 말했다. "네 놈의 명은 오늘이 끝인 것 같다." 모용준이 곧 절굿공이로 자신의 머리를 쳤다. 자지가 그 광경을 보고는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 사내들에 가려 더는 이쪽을 보지 못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모용준은 피를 철철 흘리며 꿈틀꿈틀 사지를 뒤틀어댔다. 이때 웅얼웅얼하는 말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소리는 차츰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네댓 사람은 되는 듯싶었다. 그중 하나가 이윽고 모습을 드러내며 안에 대고 누군가를 불렀다. "공자님, 아직도 이곳에 계십니까요?" 흐려지는 정신 사이로 파고드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모용준은 설 핏 웃음을 지었다. 그는 바로 모용세가의 사람이었다. 더욱이 방금 소리를 친 사람이 가신인 일기충천 지청임에 반가웠다. 이번엔 다른 사내의 목소리가 절 밖에서 들려 왔다. "공자님, 살아 계십니까요?" 바로 밖으로 끌려 나갔던 절금수 허불잉이었다. 그가 용케도 빠져 나가 사람들을 불러온 모양이었다. 이윽고 목우와 주정의 목소리도 뒤를 이었다. 모용준은 생각보다 머리에 입은 상처가 크지 않았고 또 이들의 목소리를 듣자 힘이 솟아오르는 듯했다. 네 사람은 안으로 들어서더니 크게 놀라고 말았다. 일기충천 지청이 으르렁댔다. "어떤 놈들이냐?" 모용준이 겨우 고개를 들어 노인을 가리켰다. "저기……." 일기충천 지청이 달려와 모용준을 부축했다. 다른 사내들도 모용준 곁으로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지청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눈에 살기를 담았다. "분부만 내리십시오!" "그래, 고맙네. 저 자지 처녀를 꼭 구해 주게." 지청이 노인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때를 맞춰 호법 노인이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두 명의 사내가 뒤에서 나타나 잽싸게 모용준을 빼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여서 모용세가의 가신들이 손쓸 수가 없었다. 그들은 옆으로 흘렸던 절굿공이도 걷어들인 후 멀찌감치 물러났다. 지청이 일침을 가하였다. "막왕문은 종날산(終南山)에 소굴을 두고 있으며 너희들 장문인(掌門入)은 처녀가 분명하리라. 그리고 네 놈을 그 4대 호법 중 하나인 양 호법이렷다!" 노인이 놀라 허둥댔다. "무슨 허튼소리! 우리 약왕문의 내막을 아는 자는 없다. 어찌 처녀를 약왕문의 장문으로 삼을 수 있단 말이냐?" "나에겐 비둘기 한 마리가 있다. 만약 공자님과 자지를 놓아주면 비둘기를 날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비둘기를 잡고 있는 손을 놓게 되면 장문인은 죽게 된다!" 그러나 양 호법은 천천히 세 가닥의 수염을 어루만지며 태연한 척했다. "어디 마음대로 해 보게나." "정 원한다면 하는 수 없지." 옆에 있던 사내가 양 호법에게 급히 속삭였다. "양 호법님, 난쟁이 모용준을 방패삼아 일단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들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던 허불잉이 눈치를 채고는 핏발을 세웠다. "만일 저 놈들이 공자님을 끌고 움직이기만 하면 모조리 없애 버립시다!" 그러자 일기충천 지청과 두 사람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양 호법이 순식간에 몸을 놀려 자지가 있는 쪽으로 옮겨갔다. 그가 사내들 틈에 엎어져 있던 자지를 낚아채었다. 막 자지를 넘보려 던 사내는 방금 건져 올린 살찐 잉어를 빼앗긴 사람처럼 못내 아쉬워했다. 양 호법이 자지의 팔을 뒤에서 꺾더니 사납게 주위를 살폈다. 그리곤 자지를 내동이치듯 앞으로 확 밀어 버렸다. 때를 같이하여 모용준도 이들에게서 풀려났다. 양 호법이 약간 수그러든 태도를 보이며 지청에게로 얼굴을 던졌다. "지 대협, 우리가 물러나겠소. 다시는 모용세가와 맞서지 않을 것을 약속하오. 우리를 무사히 보내 주겠다고 당신들도 약속을 하시오. 그런 의미에서 공자와 처녀를 풀어 준 것이오." 절금수 허불잉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턱턱 치며 대답했다. "좋아, 내가 약속하지!" "아니오. 난 지 대협에게 물었소이다." 허불잉이 인상을 쓰며 달려들려고 하자 일기충천 지청이 나섰다. "알겠소. 내가 다시 약속하리다." 양 호법이 무리들을 이끌고는 곧 사라졌다. 모용준과 자지는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일순 두 사람은 몸둘 바를 몰라 했다. 그들은 아직 알몸인 상태였던 것이다. 지청이 어느 틈에 구해 왔는 지 두 사람에게 맞을 만한 옷을 내밀었다. 옷을 입은 모용준이 예를 갖추며 지청에게 말했다. "지청 동생, 고맙네." 곧 절간을 빠져 나온 모용준과 자지는 교자(較子)에 올랐다. 일행은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서 북적대는 거리로 들어섰다. 이 곳에는 장원(庄院)이 하나 있었는데 제법 규모가 있어 보였다. 교자가 장원의 뜨락 안에까지 들어가 멈춰 섰다. 두 사람이 교자에서 내리자 곧 집 안에서 비녀들이 뛰어나왔다. 그녀들은 모용준이 눈짓을 하자 얼른 자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자지는 비녀들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한뒤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데 한 비녀가 들어와 아뢰었다. "공자님께서 대청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자고 청하셨습니다." 자지는 비녀를 따라 길고도 구불구불한 계단을 지나 한 대청에 이르렀다. 대청은 매우 호화스러웠고 장식된 물건들 역시 처음 대하는 것이라 자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곧 모용준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새옷으로 갈아입었는데 멋진 품이 매우 돋보였다. 그가 자리에 앉더니 자지에게도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공자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나요?" 자지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모용준이 긴 한숨을 쉬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실 그대에게 알려 주고 싶은 말이 있어. 내 생각엔……." 모용준이 말을 꺼내다 말고 주춤하자 자지는 긴장을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자지가 눈동자를 굴리며 모용준을 바라보았다.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난 처음부터 그대를 좋아했었지. 하지만……. 지금에 와서 말해 무엇하겠나. 모두 집어치우고 내가 서신을 한 통 써 놓았는데 그대가 셋째에게 전해 주기 바라오. 또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전 하고." 모용준의 표정은 매우 우울했다. 자지가 걱정스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두 사람의 알 수 없는 시선이 엇갈렸다. 모용준은 그 슬픈 시선에서 영원히 벗어나려고 했는지, 갑자기 검을 뽑더 니 자기 목에 갖다 대었다. 자지가 놀라 벌떡 일어서며 한 손으로 자기의 입을 가렸다. "안 됩니다!" 갑자기 누군가 소리치며 안으로 뛰어들었다. 바로 지청이었는데 그는 몸을 날려 모용준의 검을 빼앗았다. 모용준이 고개를 떨구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지청 동생, 내가 그대들에게 말하지 않았나? 나와 자지 처녀만 있게 해달라고. 그런데 왜 엿듣고 있었지?" 지청이 대답 없이 입을 다물자 다시 저쪽으로부터 한 사람이 더 걸어 나왔다. 절금수 허불잉이었다. 그가 다가오더니 모용준 앞에 무릎을 꿇고는 읍을 했다. "공자님, 이제 모용세가엔 공자님 한 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앞날을 먼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모용준이 한탄했다. "난 큰 잘못을 저질렀네.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공자님께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후에 조상님들을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또한 자지 처녀가 잉태라도 하는 날엔 모용 가문에도 광명이 비칠 것입니다. 그때까지 만이라도 기다려 주십시오." 지청이 곧바로 자지에게 예를 올렸다. "공자님께서 낭자에게 깊은 정을 갖고 있는 줄 압니다. 강호는 물론이고 관환세가(官宦世家)에서도 청혼이 많이 들어왔지만 공자님께서는 모두 물리치셨답니다. 모두 누구 때문인지 잘 헤아리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자지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투로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제……제가 어찌 그럴 수 있겠나요?" 허불잉이 심각한 얼굴을 했다. "그 반화대회에서 공자님은 낭자에게 반했던 것입니다. 부디 큰 일을 앞둔 공자님을 위해 마음을 굳히시길 바랍니다." 자지가 검을 빼앗긴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용준을 바라보았다. 그가 가엾게 여겨졌다. 또한 임조영의 여인이 될 줄 알고 저토록 괴로워한다는 사실에 자지는 사실 속으로 감동을 받았다. 자지 는 그러나 임조영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이젠 그와도 전혀 상관이 없는 처지나 마찬가지인데 굳이 자신이 알릴 필요는 없다는 게 그녀의 판단이었다. "자지, 날 이해해 주게." 모용준이 목이 메인 목소리를 내자 그녀는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허불잉이 비녀들을 불러 일렀다. "너희들은 어서 이 낭자를 모시고 가 보살펴 드려라." 대청에는 모용준과 두 가신만이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