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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5[중신통왕중양편] - 10편 (10/60)

2026-09-30 18:59:59 조회 15
호수는 마치 거센 폭풍 전야의 조짐을 예고하듯 크고 작은 물결들이 서로 어깨를 견주고 있는 듯했다. 그 호수 위로는 커다란 배 한 척이 떠 작게 흔들거렸다. 배 위에서는 젊은 남녀가 알몸인 채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절정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던 여인이 고개를 꺾으며 신음을 물었다. 잠시 후 사내가 여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고 두 사람은 격정의 파도를 가라앉히 듯 미풍에 몸을 말리는 자세를 취했다. 여인이 사내를 바라보다가 그 뒤로 언뜻 눈에 들어오는 물체에 눈길을 빼앗겼다. "어머, 저것 좀 봐요. 무슨 고기가 저렇게 크죠?" 그러나 사내는 여인의 말에 귀기울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방금 전 온몸을 떨게 하던 여인과의 정사에 마음이 가 있었고 다시금 뒷덜미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욕정을 새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가 언제 이처럼 마음놓고 또 근사한 곳에서 재미를 본 적이 있었나? 그런데 그대는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군. 아직 그럴 만한 힘이 남아 있는 건가?" 사내가 투덜대자 여인이 키드득 웃었다. "그건 당신의 재간이 형편없기 때문이라구요. 당신이 좀더 강했더라면 난 벌써 녹초가 되어 손끝조차 움직이지 못했을 거라구요." 사내가 주눅이 든 얼굴로 빈 눈길만 허공으로 던졌다. 여인이 이윽고 몸을 일으키며 명령조로 말했다. "가서 저걸 건져 와요. 내가 상을 후하게 줄테니." 사내는 그 말에 귀가 솔깃해서 물었다. "무슨 상을 주시겠수?" 그러자 느닷없이 여인이 사내의 뺨을 후려쳤다. "잔말 말고 어서 건져 오기나 해요!" 사내는 투덜대며 곧 물 속으로 텀벙 하고 뛰어들었다. 사내가 천천히 헤엄을 쳐 여인이 가리킨 물체가 떠있는 옷까지 다가갔다. "익!" 사내의 두 눈이 개구리처럼 튀어나온 것은 바로 그가 손을 뻗어 그것을 만져 보려 할 때였다. 그곳엔 죽은 시체로 보이는 시커먼 물체가 나무토막에 얹힌 채로 떠있었다. "죽은 사람이구먼!" 사내가 배 위에서 알몸을 드러내고 서 있는 여인에게 알렸다. 여인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에그 불쌍도 하지. 어쨌든 건져 오세요. 뭐 값나갈 물건이라도 있나 보게." 사내가 호숫물이 입 안으로 들어갔는지 퇘 하고 침을 내뱉으며 투덜댔다. "죽은 사람인데 뭐가 나올라고?" 여인이 버럭 소리치며 사내를 윽박질렀다. "건져 오지 않으려거든 거기서 살어!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알았어. 혹시 이게 당신의 죽은 영감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사내가 시체를 배 위로 올려 놓았다. 온통 시커먼 형상을 한 시체는 축 늘어진 상태였다. 특히 가슴 부분에 커다란 상처가 나 있어 여인은 죽었을 거라 생각했다. 여인이 혀를 심하게 찼다. "잘생긴 미남자구먼. 귀공자가 아깝게 변을 당한 모양이야." 사내가 묘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 사내가 부잣집 귀공자라는 걸 어떻게 아우?" "당신이야 사람 볼 줄 모르지만 난 다 알지. 당신은 그저 살코기밖에는 모르는 위인이니까." "그래, 여인이란 바로 한 덩어리의 살코기지 뭐." 여인이 사내의 빈정거림에 대꾸를 하려는데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려 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놀란 얼굴을 했다. "맙소사! 살아있어!" 여인이 자세히 누워 있는 사내를 살폈다. 그러자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경련을 일으키며 입술을 움직였다. "이, 이곳이 어디요?" 여인이 대답했다. "동정호(洞庭湖)예요." "동정호……?" "생각이 나질 않나요? 그래 아내가 죽었나요. 아니면 노잣돈이 떨어졌던가요?" 사내가 이윽고 정신을 수습하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슴의 통증 때문에 그는 다시 눕고만 싶어졌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을 가만히 보니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문짝처럼 어설프게만 보였다. 사내는 추물에 다 늙었는데 여인은 백옥 같은 살결에 제법 미모를 겸비한 젊은 여인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여인과 사내는 그제야 시체가 아닌 산 사람이 자기들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옷을 주워 입었다. 여인이 요염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당신은 성씨를 어떻게 쓰시나요?" 사내가 기꺼이 대답해 주었다. "왕씨지요. 왕중양이라고 합니다. 당신들이 절 구해 주셨군요. 늦었지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왕중양은 깊은 상처를 입은 채로 호수 위를 떠돌았다. 원래 흐르지 않는 것이 호수였지만 날이 밝아 오면서 갑자기 세어진 바람에 그는 나뭇잎처럼 힘없이 이 배가 있는 곳까지 밀려왔던 것이다. 왕중양은 용케도 나무토막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는데 죽기 직전에 이들에게 발견되어 기적적으로 목숨을 연명하게 되었다. "왕씨!" 여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호들갑을 떨어댔다. "어쩜, 저도 왕씨인데 그럼 나이는……." 왕중양이 나이마저 말해 주자 그녀는 다시 손뼉을 쳐가며 기뻐했다. "그럼 당신은 저에게 오라버니뻘이 되시는군요." 여인이 옆에 있던 추물인 사내에게 일렀다. "어서 노를 저어 집으로 가자구." 그녀가 말한 집이란 바로 배 위에 있는 선창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왕중양은 그저 여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아픈 몸을 의지했다. 여인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물에 빠지게 되었나요?" 왕중양이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소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자 여인은 크게 화를 내며 이까지 부드득 갈았다. "그럼 그 두 놈이 바로 오라버니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이군요? 그 모용준이란 작자는 더욱 나빠요." 그러나 왕중양이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는 나와 의형제의 피를 나눈 사람이오. 다만 모용준이 붙여 준 그 두 놈들이 미울 따름이오." 여인이 왕중양을 자기 가슴에 안으며 속삭였다. "난 왕정아(王亭兒)라고 불러요. 오라버니는 마음 편히 이곳에서 휴식을 갖도록 하세요. 이곳에서 나는 물고기를 많이 드시면 몸이 훨씬 좋아지고 회복도 빠를 거예요." 그녀의 말대로 왕중양의 상처와 건강은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왕정아는 그런 왕중양을 보면서 매우 흐뭇해 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왕중양 곁에 머물면서 온갖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줄곧 왕중양 곁에서 시중을 들다가 그가 깊이 잠든 한밤중이 되어서야 잠깐 눈을 붙일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왕정아의 이런 행동에 쌍심지를 눈에 달고 나선 것은 바로 그 추물인 사내였다. "물고기를 건지려다 결국은 애비를 얻은 셈이로군." 그는 툭하면 이렇게 비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왕정아는 사내의 질투를 따끔한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아니 바로 당신의 애비인지도 모르지요." 사내가 발끈해서 받아쳤다. "내 아버진 너무 일찍 세상을 떠서 자식의 효성이 무언지도 잘 모르는 양반이라구." 하지만 이같은 싸움은 언제나 여인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래, 내가 당신의 목을 졸라 죽여 버려야 정신을 차리겠어요? 아니면 호수에 처박을까요?" 여인의 따금한 일침에 사내는 입을 다물고는 슬슬 눈치 살피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틈만 나면 왕정아의 심기를 살살 긁어 놓곤 했다. "임잔 매일 저자의 얼굴을 발에 채이는 돌멩이만큼이나 실컷 감상할테지. 어떤가? 내 얼굴을 보는 것보다야 백번 낫겠지?" "이 도깨비 같은 것아. 입 좀 다물 수 없어?" 그러자 사내가 침을 질질 흘리며 가까이 다가오려 했다. 그는 여인이 날마다 왕중양 곁에서 시중을 드느라 자기 욕심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게 불만이었다. "저리 비켜요. 난 생각이 없으니 다른 데 가서 알아보든지……." 사내가 버럭 화를 냈다. "뭐, 생각이 없다고? 그게 뭐 끼니 때마다 챙겨 먹는 쌀이야 나물이야? 생각이 없다고 해결되는 문제인 줄 알아? 정 그렇다면 그 녀석을 다시 물 속에 처넣고야 말겠어! 그럼 임자도 그땐 쌀이 없어도 또 나물이 없어도 게걸스럽게 밥을 찾는 지경이 될 테니 까!" 사내가 몸을 일으키며 단호하게 말하자 여인이 지지 않고 맞섰다. "함부로 그분에게 손을 댔다가는 각오하라구요. 당신도 꽁꽁 묶어 살점을 모조리 뜯어낸 다음 고깃밥으로 던져 줄 테니까!" 사내가 갑자기 입을 벌리더니 할말을 잃은 듯 조용해졌다. 여인이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어깨를 계속 들먹이자 그가 여인의 팔을 잡으며 눙치듯 말했다. "아니 정말로 화를 내는 거야?" 여인이 갑자기 비수를 꺼내 들더니 사내에게 겨누었다. "날 건드리지 말아! 난 지금부터 잠을 자야겠으니." 사내는 별도리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왕중양을 물에서 건진 것을 크게 후회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왕중양은 선창 속에서 두 남녀가 다투는 소리를 모두 들었다. 그는 이제 몸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기에 그만 떠나려던 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가슴에 치명타를 입고도 살아난 것이 기적과도 같았다. 아직 완전히 건강을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내일 두 사람이 배를 뭍에 대면 떠나리라 다짐했다. 이튿날 배가 나루에 이르자 여인이 사내에게 일렀다. "당신이 가서 먹을 걸 좀 사 오세요. 오라버니를 대접해야죠. 그동안 배 위에 있은 탓에 육고기는 구경도 못했잖아요. 아니면 다른 좋은 걸 좀 사 오던가." 그러자 사내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좋은 거라니? 그게 도대체 뭔데? 정 그렇다면 임자가 가서 사오시지?" "얼른 갔다오지 못하겠어요?" "알았어. 알았다구!" 사내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발에 채이는 돌멩이를 멀리 날려 보냈다. 여인은 뱃머리에 기대어 앉아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호수에서 물을 떠올려 감는 머리는 언제나 상쾌했다. 그녀는 물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서 둘러 머리를 말리고는 급히 선창으로 가 왕중양을 찾았다. 왕중양은 선창 안에서 한가롭게 앉아 있다가 여인이 허리를 숙이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왕중양 앞으로 오더니 다감하게 말을 건넸다. "오라버니, 속이 갑갑하지 않으세요?" "아니 괜찮소." "아이, 동생에게 존대를 하는 오라버니도 있나요. 호호호!" 왕중양도 멋쩍은 듯 웃음을 띄웠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웃는 게 보기 싫지는 않지요? 제가 보기엔 오라버니는 아주 패기 있는 사내 같아요. 하지만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전 오라버니 앞에서 수선을 떨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전 어렸을 적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새겨 들었는데 사내가 여인과 즐기지 못하면 마음이 굶주린 거래요. 혹시 오라버니는 마음이 굶주려 있는 건 아닌지요?" 왕중양이 시선을 돌리며 정색을 했다. "아니오!" 그러나 왕정아는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걱정 마세요. 오라버니는 곧 훌륭한 여인을 얻게 될 것이고 그러면 정말 건강한 마음과 몸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녀가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벗는다는 것보다는 한 마리의 물고기가 거센 물결에 찢기고 상처입은 비늘을 털어내고 있다는 편이 더 어울렸다. 남루한 옷을 벗어 버리자 그녀는 정말 한 마리의 물고기로 다시 태어난 듯했다. 왕중양은 말없이 그녀의 행동을 지켜 보기만 했다. 미끈하고 윤기가 흘러 금방이라도 퍼득일 것만 같은 그녀의 몸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서요!" 그녀가 살짝 미소 지으며 왕중양에게 재촉했다. "이봐 동생, 그대에게는 이미 사내가 있지 않나?" "그는 사내가 아니에요. 그 사람은 제가 주워 온 사람인데 언제든지 물 속에 처박을 수도 있어요." "아, 안 돼!" "난 오라버니를 구해 드렸고 또 지금도 구원을 드리려고 하는 거랍니다. 오라버니는 마음을 굶주리고 있는데 제가 채워 드리겠어요." 왕중양은 끝까지 그녀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급기야 그녀가 왕중양의 몸을 덮치며 속삭였다. "사내란 여인의 손길을 알아야지 힘도 생겨나는 법이에요." 그녀가 손을 왕중양의 다리 사이로 불쑥 집어 넣었다. 왕중양이 그녀를 뿌리치며 일어섰다. 그러자 그녀가 왕중양을 다시 쓰러뜨리고는 선창 밖으로 끌고 나갔다. 왕중양은 아직 기력을 완전하게 회복시킨 뒤가 아니라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그녀가 왕중양의 다리를 자기 어깨 위로 들어올리더니 협박을 했다.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할 수 없어요. 다시 물 속으로 던져 버리는 수밖에!" 정말 그녀는 왕중양을 던져 버렸다. 다시 차가운 물 속으로 내던져진 왕중양은 이제 죽음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기력이 이미 쇠잔해져 소리조차 지를 힘도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가라앉는 육신을 물에 맡겼다. 그런데 한 마리의 물고기마냥 뒤따라 물 속으로 들어온 그녀가 왕중양을 잡아채더니 다시 배 위로 기어올랐다. "다시 한 번 전 오라버니를 구해 드렸네요." "이미 말했잖는가. 난 진심으로 그대에게 감사하고 있어." 두 사람은 모두 숨이 차 가쁘게 가슴을 부풀렸다. "하지만 전 아직 식지 않은 가슴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아요. 저 차가운 물조차도 저를 달랠 수가 없어요." 그녀의 눈에서는 또 다른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왕중양은 달리 그녀를 달래 줄 방법을 찾지 못했다. "제가 그토록 뒤떨어지는 계집인가요?" 그녀는 어느 누구와도 견줄 만한 미모를 갖춘 여인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의 그녀는 촉촉하게 온몸에 매끄러운 물기를 머금고 있어 그 자태는 더욱 황홀했다. 왕중양은 저도 모르게 뛰는 가슴을 달래 고자 눈을 감았다. "눈은 왜 감는 거죠? 차라리 보지 않겠다는 말씀인가요?" 그녀의 손이 다시 불쑥 왕중양의 아랫도리로 파고들었다. 흡 하고 놀란 왕중양이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호호호! 벌써 내게 들켜 버린 걸요. 오라버니의 마음도 이미 움직이고 있어요." 그녀는 다시금 격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들이밀 태세였다. 왕중양을 강제로 눕혀 놓고는 위로 올라가 애무를 하기 시작했다. 왕중양으로서는 난생 처음 당해 보는 괴이한 일이었다. 그녀는 배를 부리는 여인답게 힘이 강했다. 왕중양이 몸을 뒤척이려 하자 두 다리로 그의 허벅지를 내리누른 채 옷을 벗겨 냈다. 그녀는 남성을 드러낸 왕중양을 자신에게로 들이밀려고 더욱 집요하게 몸을 움직였다. 또한 손길도 그의 몸 구석구석을 바쁘게 더듬어 갔다. 마치 여인과 사내가 뒤바뀐 꼴이라 왕중양은 그 와중에서도 누가 볼까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정말 누군가 주위에 있었던 것이다. "정아, 내가 돌아왔다!" 사내가 소리치며 배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가 신경질을 부렸다. "벌써 오면 어떡해! 한창 재미를 보려던 참인데." 아직 그녀와 왕중양이 벌이고 있는 광경을 보지 못한 그는 농담으로 그러는 줄 알고 히히 웃기까지 했다. 사실 걸음을 돌려 다시 온 것도 그같은 의심이 생겨서였다. 그러나 훤한 대낮에 엄연히 사내가 있는 여인이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사내가 배 위로 오르자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오고야 말았다. 그는 한동안 쫓던 토끼 대신 나타난 호랑이 앞에 선 사냥꾼처럼 굳어진 얼굴로 그 자리에 붙박혀 버렸다. "하필이면 꼭 결정적인 때 나타날 게 뭐람!" 그녀의 말에 정신이 들었는지 사내가 고함을 꽥 하고 질렀다. "이게 뭐야! 둘이 붙었다 이거지?" 그녀는 아직 왕중양의 몸 위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로 그를 오히려 꾸짖었다. "썩 물러가지 못해!" 웬일인지 사내가 선창 귀퉁이로 몸을 감추며 숨을 죽였다. 그것을 확인한 그녀가 다시 왕중양의 사그라든 몸을 세우려고 애무를 했다. 그러나 왕중양은 스스로 자신을 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워낙 기력을 잃어버린데다 다시 물 속에 처박혔다 나온 탓에 그녀의 손길이 집요했지만 완벽한 남성을 만들 수가 없었다. 곧 그녀의 짧고도 깊은 신음 소리가 얼굴 전체로 훅 전해졌다. "으음……." 왕중양은 자신의 얼굴로 짙게 전해지는 그녀의 입김을 맡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저 혼자 욕심을 채우고 말았다. 왕중양은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그녀를 요절내고 싶었다. 그녀가 왕중양에 게서 몸을 떼며 옷을 주워 입었다. 그리곤 그때까지 숨어 있던 사내에게 명령하듯 다그쳤다. "어서 배를 몰지 않고 뭘 해요!" "알았어. 몰면 될 거 아냐, 그래, 재미는 실컷 보았냐?" "저분이 마음의 양식을 채우셨으니 이젠 만족하실 거예요. 그런데 당신이 뭘 안다고 나서요?" "하지만 저 사람은 배를 불렸겠지만 난 벌써 며칠째 굶었는걸!" 왕중양은 눈을 감은 채 기이하기만 한 이들의 대화를 들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이들이 나누는 대화가 바람결에 묻어 오듯 아련하게 전해졌다. "천천히 몰아요. 호수 귀퉁이에 이르면 고기 두 마리를 잡아 오라버니께 드려야겠어요." "영양보충을 시켜 놓고 또 굶주린 마음의 배도 채워 주시겠다고?" 이상했다. 그 사내는 여인을 미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또한 다른 사내와 몸을 섞고 있는데도 노여워하지 않았으며 아니 노여워했으며 또 아무렇지도 않게 굴기도 했다. 왕중양은 과연 이들은 어떤 사이인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그러는 가운데 배는 어느덧 호만(湖灣)에 이르렀다. 제6장 함정에 빠진 임조영 임조영과 모용준의 일행은 정강(靜江) 쪽으로 향했다. 모두들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지만 걸음을 늦추지는 않았다. 이윽고 이들은 정강에 이르러 눈앞에 모용세가를 두게 되었다. 모용준은 오는 동안 임조영과 자지에게 각별하게 대했다. "동생들, 나의 모용세가에 곧 당도하네. 자네들은 이제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될 테니 조금만 참게. 자네들은 모용세가의 경치를 본적이 없을 거야. 굉장하다네, 자네들이 그걸 보게 돼서 난 무척 기쁘다네. 그대들을 보면 우리 가문 사람들도 몹시 기뻐할 걸세. 이처럼 훌륭한 의형제를 얻었다는 것은 모르고 있을 테니까." 임조영은 대답 대신 미소를 보냈다. 모용준은 임조영의 미소를 보며 속으로 흐뭇해 했다. 임조영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미소와 분위기는 자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윽고 큰 호수 앞에 이르렀다. 호수에는 연(蓮)이 가득 있었는데 늦가을이라 잎이 시든 상태였다. 모용준이 웃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것도 신나는 일이지." 그러나 배가 좀체 눈에 띄지를 않았다. 그런데 자지가 한쪽을 바라보다 급히 소리쳤다. "오라버니들, 저길 좀 보세요!" 자지가 가리킨 쪽은 마을이었는데 짙은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큰불이 일어난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것을 보던 모용준의 낯빛이 금세 굳어졌다. "저……저건 모용세가가 틀림없는데!" 그는 곧 배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다행히 갈대숲으로부터 배 한 척이 빠져 나오는 것을 발견한 그가 손을 흔들었다. "이보시오! 우리를 좀 태워 주시겠소?" 배 위에 있던 사람이 되물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처음부터 반말을 하는 그 사내에게서 모용준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우린 모용세가로 가는 길이오!" 배 위에 있던 사내가 소름이 돋을 정도의 징그러운 웃음을 흘렸다. "우후후훗, 모용세가로 간다고? 하지만 오늘부터는 다신 모용세가를 찾을 수 없을걸. 우하하하핫!" 사내가 또다시 요란스럽게 웃어댔다. 모용준이 당황하며 그에게 황급히 물었다. "넌 도대체 누구냐?" 사내가 한 자 한 자 힘을 주며 소리 높이 외쳤다. "동정팔교(洞庭八較)!" "동정팔교가 우리 모용세가와는 무슨 원한이 있단 말이냐?" 대답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모용준은 훌쩍 몸을 날려 배위로 올라갔다. 곧 두 사람은 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사내가 칼을 휘둘렀는데 모용준이 날렵하게 몸을 놀려 매번 빗나가고 말았다. 모용준도 검을 뽑아 들고는 사내의 가슴을 향해 공격했다. 사내는 그때마다 덫에 걸린 쥐마냥 섬칫 놀라곤 했다. 마치 십여 개의 검날이 동시에 날아드는 듯한 신기한 검법이었다. 사내가 칼로 공격해 오자 모용준은 얼른 검법을 바꾸어 그자의 아랫도리를 찔렀다. 사내가 몸 을 움츠리며 뒤쪽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곧 싸움은 결판이 나고 말았다. "풍덩!" 위기를 느낀 사내가 그만 물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세 사람은 무사히 배를 타고 대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고 불을 지르며 약탈을 일삼고 있었다. 모용준이 소리쳤다. "나 모용준이 왔다!"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세 명의 사내가 막 비녀(婢女)들을 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모용준이 장검을 뽑아 들고는 그쪽으로 날아갔다. 사내들은 바로 강남 흑도의 사람들이었다. 이를 확인한 임 조영도 검을 들고는 자지를 이끌고 뒤를 따랐다. "그들을 놓아주면 용서를 하겠다!" 그러나 임조영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는 자들이었다. "공자, 그대가 지금 잡고 있는 여인이 이 비녀들보다 나은데 그래. 어서 이리 오라구." 그러자 몇몇 사내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모용준이 그 사이로 나서며 주먹을 내보였다. "동정팔교가 뭐가 그리 대단하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