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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5[중신통왕중양편] - 6편 (6/60)

2026-09-30 18:59:59 조회 15
제갈정이 전혀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임 공자, 무림에는 그대와 같은 미남자는 드물지. 그대가 날 따라 유운장에 가는 게 어떤가? 내가 사부님께 말씀드리면 그대를 측근으로 기꺼이 삼으실 걸세." 그 말을 들은 임조영이 눈을 치켜 뜨며 검으로 제갈정을 찌르려고 했다. 속문성이 껄껄 웃으며 제지했다. "과연 훌륭하군. 성미도 패나 호걸답네그려. 정말 우리를 따라 유운장으로 가는 게 좋겠어. 임 공자만 우리 편이 돼 준다면 강호 사람들이 엉뚱한 마음을 품을 수 없을 테니." 석초수도 한마디하며 나섰다. "그대가 우리를 따르겠다면 내가 아주 즐겁게 노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그 방면에서는 내가 제일이거든. 어때?" 임조영이 다시 검을 높이 쳐들자 이들도 더 이상의 입씨름은 통하지 않을 거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곧 네 사람은 한데 엉켜 싸움을 시작했다. 그런데 불쑥 사자우가 제동을 걸었다. "모두 손을 멈춰라!" 사자우는 임조영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은 독가시가 들어 있는 듯 날카롭고 매서웠다. 사자우는 부릅뜬 눈을 약간 누그러뜨리며 이죽거렸다. "과연 좋은 몸매야. 사부님한테 데려간다면 난 어쩌지?" 그가 다시 요상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에헤헤, 유감스럽게도 난 여인이 아니거든. 사형께서는 미남자를 좋아하지만 난 역시 여인이 최고야." 임조영은 솟구치는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며 사자우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사자우가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입을 놀렸다. "그렇다면 어서 말해 봐. 자넨 무엇으로 자지 처녀를 사려나? 자네에게 오늘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은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면 모르지만……." "없소!" 너무도 쉽게 대답하는 임조영의 태도에 모두들 놀랐다. 사자우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안 되겠구먼. 그만한 은자가 없다면야 이 옥 같은 계집의 손목조차 만질 수가 없지." 임조영이 손에 들린 검을 사자우 얼굴 가까이 불쑥 내밀었다. "난 이 검으로 저 처녀를 얻겠소이다." 코웃음을 치던 사자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동안 하늘을 무심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팔짱을 끼며 입을 메었다. "좋아, 나와 싸워 보겠단 말이지? 어디 한번 두고 볼까!" 사자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러는 앞으로 몇 걸음 다가와 좀더 자세히 보려는 동작을 취하기도 하고 더러는 겁먹은 기색으로 뒤로 물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들 또다시 벌어지게 될 싸움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해불개와 모용준, 왕중양과 유운장 사람들의 싸움이 있었고, 지금은 임조영이 감히 유운장 사람들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무림의 사람들은 이처럼 흥분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임조영이 검을 단단히 쥐고는 사자우를 겨누었다. 사자우가 기를 온몸에 모으려고 할 때 제갈정이 나섰다. "사숙님, 제가 대신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수다!" 그러더니 그가 가볍게 몸을 날려 임조영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는 곧 주먹을 휘두르며 임조영의 안면을 공격했다. "각오해라!" 임조영이 주먹을 피하며 검으로 허공을 그었다. 달빛 아래라 이 들의 동작은 그다지 선명하게 드러나지를 않았다. 다만 임조영이 휘두르는 검날이 허공을 긋는 소리나 제갈정이 주먹을 날리며 이리 저리 옮겨 다니는 모습만 어렴풋이 확인될 뿐이었다. 옆에 있던 속문성이 마치 제갈정의 싸움을 방해라도 하듯 엉뚱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잘하는구먼. 큰 사형, 힘을 내시오. 형님이 죽으면 결국 내가 형님의 집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큰일이지요. 형님의 딸년을 내가 기꺼이 거두어야 하는데 그럼 형님의 사위가 되는 꼴 이 아니겠소?" 제갈정이 그 소리를 못 들을 리 없었다. 임조영과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하면서 얼른 고개를 돌려 꾸짖었다. "개만도 못한 놈이로구나! 날 언제까지 놀릴 셈이냐?" 그리곤 다시 주먹을 내뻗으며 임조영에게로 달려갔다. 휘릭! 임조영의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제갈정의 머리 위를 훌쩍 뛰어넘은 임조영이 재빠른 동작으로 검을 내리쳤다. 겨우 검을 피한 제갈정이 숨을 몰아쉬며 자세를 수습하기에 바빴다. 사람들은 임조영의 검술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유운장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잡아먹을 듯 헐뜯는 꼴에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천하의 악인이라고는 하지만 해도 너무 한다 싶었다. 사형이 싸움을 하고 있는데 그가 죽기를 바라는 행동은 도저히 이해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제갈정은 속문성이 마음에 걸리는지 분통을 터뜨렸다. "이 개만도 못한 놈아, 일전에도 넌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내 여편네에게 독약을 써 죽이지를 않았느냐? 내 여편네가 무슨 원수진 일을 했다고 죽였느냐?" 그러자 속문성이 빈정거리며 대꾸했다. "히히, 형님은 벌써 잊었소이까? 형님은 평소 쭈글쭈글 칠면조 같은 마누라의 낯짝이 보기 싫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내가 그것을 없애 버린 것인데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이오. 만약 형님이 죽였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원망을 했겠소? 난 형님의 마누라를 죽인 대가로 악인의 자리를 굳히는 것이고, 형님은 다시 꽃 같은 여인을 맞이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 아니겠소?" 제갈정이 이를 갈며 속문성에게 뭐라고 소리치려다가 그만두었다. 갑자기 눈앞으로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어느새 달려온 임조영 의 검이 그의 팔에 꽂혔다. 임조영은 처음부터 자신이 유리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치명타를 입히지 않고 팔을 찌르는 것으로 끝내고 싶었다. 제갈정은 맨손이라 남이 보기에도 불공평한 싸움이 아닐 수 없었다. 상처를 입은 제갈정이 속으로 뇌까렸다. '처음부터 둘째 놈은 내가 지기를 바라고 있었구나. 내게 말을 걸어 온 것도 결국 정신 집중을 못하게 하려는 수작이었음을 내 어찌 간파해 내지 못했던가!' 제갈정이 속으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해 심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 바람에 봉두난발이 마구 흘날렸다. "임 공자, 네 놈이 날 봐주는 것 같은데 어서 덤비거라! 이번엔 제대로 검을 쓰게 만들어 주마!" 제갈정이 품속에서 부채를 꺼내더니 쫙 펼쳐 들었다. 그가 임조영을 향해 부채를 내갈겼다. 임조영이 옆으로 비껴서며 다시 검을 높이 쳐들었다. 임조영은 곧 '숙녀개장(淑女개壯)' 초수를 썼다. 이 초수 앞에서는 제갈정의 부채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곧 오른손을 찔리고 말았다. 찔린 곳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이를 악문 제갈정의 눈에서는 불길이 이글거렸다. "죽여 버릴 테다!" 그러자 속문성과 석초수가 손뼉을 치며 웃어댔다. "하하하! 큰형님, 형님은 학식이 있는 사람인데, 어째서 임 공자와 문재(文才)를 겨뤄 보지 않소?" 이들은 제갈정이 어서 죽어 넘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히히덕 거리며 화를 돋우었다. 제갈정과 임조영의 싸움을 지켜 보던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임조영의 검술이 매우 다양하며 신기에 가깝다는 사실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드디어 제갈정이 싸움을 포기하고 물러서자 사람들은 더는 숨기지 않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 주었다. 유운장의 위신이 바닥에 떨어진 꼴이 되고 말자 사자우가 크게 분노하며 제갈정을 꾸짖었다. "제갈정! 역시 속문성에게 네 놈을 죽이고 네 딸년을 가지라고 해야겠다!" 속문성은 사자우가 정말 그러라는 줄 알고 양손을 황급히 휘저으며 질겁을 했다. "이그 싫소. 그 딸년은 워낙 추물이라 내 거두기를 사양하겠소." 사람들이 그 말에 박장대소를 하며 허리를 꺾었다. 사자우가 짐짓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임 공자, 할 수 없으니 내가 상대를 해야겠다. 네가 날 이긴다면 자지 처녀를 데려가도 좋다." 임조영이 검을 다시 빼들고는 사람들이 빙 둘러싼 한가운데로 나와 섰다. 사자우도 그 앞에 말없이 버티고 섰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어느 쪽에서든지 긴장을 늦추기라도 하면 엄청난 혈투가 벌어질 것만 같았다. 사람들 모두 숨죽이면 다음을 기다렸다. "야앗!" 임조영이 먼저 검을 휘둘러 공격을 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눈길을 빼앗겼다. 그의 검술은 마치 미풍에 간들거리는 버들가지처럼 날렵하고도 유연한 자태를 자아냈다. 또한 검법 역시 처음 보는 기이한 것이라 사람들의 휘둥그래진 눈은 좀체 원래의 상태를 찾지 못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훌륭한 검객들도 적지 않았지만 임조영의 초식을 알아낼 만한 인물은 없었다. 그렇다면 임조영이 부리는 초식은 허식(虛式)이란 말인가? 사자우도 처음 보는 검법에 매우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임조영의 검을 피하기만 하고 선뜻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 검을 받아랏!" 다시 임조영이 소리치며 검법을 밤하늘에 뿌렸다. 이때 사자우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언뜻 보기에 흔한 병장기 같지는 않았다. 그 물건은 희한하게 생겼는데 국자가 달려 있는가 하면 등을두드리고 긁는 데 쓰는 작은 방망이와 갈고리 등등 매우 요상한 물건들이 달려 있었다. 병장기라 함은 대개 창이나 검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의 것은 장난감처럼 보이는 매우 신기한 물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틈을 이용해 공격하려는 듯 싶었다. 아 니나다를까 사자우가 작은 국자를 들고는 임조영의 가슴을 할퀴듯 공격을 해왔다. "에잇!" 임조영이 검으로 그의 공격을 물리치며 그를 쏘아보았다. "네 놈을 죽이고야 말겠다!" 사자우도 뒤질세라 국자를 자기 어깨 위로 거두며 받아쳤다. "나의 사형이 왜 여색을 즐기지 않고 남색을 좇는지 오늘 밤 네놈을 보고서야 알겠다. 지금이라도 나를 따라가는 게 어떠냐?" 임조영을 흥분시켜 빈틈을 엿보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다시 임조명의 검날이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쨍!" 국자와 맞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두 사람간에 엄청난 내력과 기공이 교차했다. 사람들의 입에선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사자우의 손에 들려 있던 작은 국자가 사라지고 없었다. 다른 손에 있던 갈고리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임조영의 검에 멀리 날아간 것이라 사람들은 생각했다. 사자우가 넋 나간 얼굴로 임조영을 주시하더니 힘없이 내뱉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나의 사형도 마찬가지야. 우리 유운장 사람들을 당해 낼 자가 중원엔 없다고 했는데……." 위기감에 봉착한 사자우가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곤 유운장 무리들에게 급히 소리쳤다. "어서 여기를 떠나자!" 사자우의 명령이 떨어지자 몇몇이 토끼 걸음으로 통통 튀듯 사라 졌다. 제갈정과 속문성 그리고 석초수 역시도 사태를 깨닫고는 얼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이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임조영이 막아 섰다. "도망가는 놈부터 차례대로 목을 날릴 것이다!" 그러자 세 사람은 발이 묶인 듯 제자리에 멈춰 서 버렸다. 제갈정이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를 겨우 흘렸다. "난 지금 막 생각을 고쳐 먹었소이다. 내가 왜 도망을 친단 말이오. 당신은 천하에서 가장 신의를 지킬 줄 아는 대협사(大俠士)이시오. 난 당신에게 패하여 죽더라도 영광으로 삼겠소." 속문성이 제갈정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나섰다. "맞소. 저 사람은 천하에서 제일가는 대협이라 불러도 마땅하오. 우리 유운장을 이겼으니 달리 할말이 없소." 석초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옳소, 그렇지만 당신은 천하에서 제일가는 대협이기에 우리 같은 무리들은 죽이지 않을 거라 믿소. 당신이 만약 유운장을 패하고자 한다면 사숙님부터 없애는 게 순서요. 악한으로 말하자면 사숙 님을 따라갈 이는 없으니까. 그 다음이 바로 큰형 님이오. 그리고 한 가지 말해 둘 것은 당신은 결코 큰형님이 외는 지호자야(之乎者也)에 마음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큰형님이야말로 악인이오. 또한 그 다음이 둘째 형님이오. 저 사람은 한 가문의 사람들만을 해치기 좋아 하는 자란 말이오. 늘 큰형님을 내치고 그 딸자식을 빼앗을 궁리만을 일삼고 있소." 임조영이 조소를 보냈다. 이들은 곧 죽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더군다나 사형으로 모시던 사람들을 헐뜯는 사내의 비굴함을 보자 임조영은 더욱 가증스러웠다. 임조영이 눈길 조차 주지 않은 채 말을 씹듯 내뱉었다. "제갈정, 네 놈의 그 은자들을 어서 내놓아라!" 그러자 제갈정이 난처한 낯빛으로 사정했다. "곤란하오. 군자인 내가 어찌 재물을 탐하겠소만 만약 사숙이 날 불러 은자를 내놓으라고 한다면 난 끝장이오. 그러니 제발 은자만은……." 임조영이 말없이 검을 높이 쳐들면서 그를 노려보았다. "아니지. 사숙은 벌써 멀리 도망을 쳤지!" 제갈정이 얼른 태도를 바꾸더니 임조영에게 살갑게 굴었다. "이 은자야 이젠 임 공자의 것이지. 암, 임 공자가 쓰고 싶은 대로 써야 한다니까. 내가 은자를 내놓겠소." 제갈정이 얼른 은자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제갈정은 사숙의 교활함에 치를 떨어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은자는 사숙이 지녔었다. 그런데 사태가 불리하게 되자 얼른 자리를 피하면서 제갈 정에서 떠넘겼던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제갈정은 속으로 잔뜩 몰려드는 먹구름에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만일 은표를 빼앗겼다고 하면 사숙이 가만있지 않을 게 불 보듯 했기 때문이었다. 은표까지 빼앗기기 전에 도망갈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 제갈정이 눈을 돌려 두 사제를 응시했다. 이들 세 사람은 도망칠 기회를 엿보기 위해 서로 눈짓을 맞추는 중이었다. "너희 세 놈은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그런데 임조영이 뜻밖의 말을 던지자 이들은 될 듯이 기뻐했다. 이들은 임조영에게 연신 허리를 굽히고는 줄행랑을 쳤다. 그런데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싶었는지 그중 하나가 뒤를 돌아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임 공자, 후에 다시 만나기만 하면 네 놈의 오장육부를 꺼내 소금에 절여 주겠다!" 임조영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여인들에게 일렀다. "날이 찬데 어서 옷들을 입거라!" 그러자 여인들이 떨리는 몸으로 옷을 찾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옷을 모두 차려 입은 여인들이 곧 임조영 앞으로 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임 공자께서 저희를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평생 저희는 임 공자만을 따르렵니다!" 그러나 임조영은 매우 곤혹스런 얼굴로 도리질을 했다. "아니다. 너희들이 나를 따라 무슨 행복이 있겠느냐? 그리고 난 원래 여러 사람을 이끌고 강호를 다니지 않는 성미이다. 또 가난하여 너희들을 먹여 살리지도 못해." 임조영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은자들을 가리켰다. "저기에 은자들이 있으니 한 장씩 나눠 가지거라. 그리고 바라건대 좋은 사람의 집을 찾아가서 이제부터 양민으로 평범하게 살았으면 한다." 여인들은 다시 임조영에게 허리를 숙이더니 각자 은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서로 짝을 지어, 혹은 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여인들이 모두 떠나자 임조영은 강호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번 반화 모임은 결국 여러분들에게 실망만 안겨 주게 되었군요. 제가 대신 사죄를 드립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겸손하고 예의 바른 임조영에게 다시 한 번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더군다나 무공마저 뛰어난 임조영과 기꺼이 사귀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리하여 임조영과 다시 인사를 나눈 이들은 정담을 주고받았다. 모용준이 안면 가득 웃음을 띄우며 임조영에게로 다가왔다. "임 형을 보니 용봉의 자태요 정말 늠름한 인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세인들 앞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임조영이 그의 인사를 공손히 받아 주고는 두리번거리자 누군가 물었다. "임 공자님, 누굴 찾으십니까?" "그게 아니고……, 아까 그 왕 공자라는 분은 어디 계시지요?" 임조영의 말에 모두들 의롭고 용감한 행동을 보이던 왕중양을 떠 올렸다. 그때서야 왕중양을 찾으려고 했으나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가 없었다. 임조영이 아직 가지 않고 서 있는 자지 처녀를 주시했다. 다른 여인들은 모두 제 갈길로 떠나간 상태였다. 자지 처녀는 말없이 임 조영에게로 눈길을 주었다. "그대도 은자를 갖고 어서 갈길로 가야지. 부디 좋은 사람 만나 훌륭한 가문을 잇게." 그러자 갑자기 자지 처녀가 눈물을 터뜨렸다. "임 공자님, 전…… 전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요?" 임조영은 난감해졌다. 사실 처녀의 미모가 뛰어나 함부로 길을 떠났다가는 사내들의 집요한 손길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잘못하다가 방탕한 색마라도 만나게 된다면 결국 방금 전에 벌어졌던 곤혹스러움과 별반 다를 게 없을 듯했다. 임조영이 한동안 자지 처녀를 두고 고심하고 있는데 모용준이 물었다. "임 공자는 혹시 이 처녀가 마음에 들지 않소?" 그러자 자지 처녀가 자신의 심중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얼른 고개를 숙였다. "임 공자, 당신은 용맹스럽고 출충한 용모를 갖고 있어 아마도 자지 처녀는 당신을 마음에 두고 있는 듯하오, 이젠 별수없소. 당신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저 처녀를 데리고 갈 수밖에." 임조영이 눈을 지그시 감고는 생각했다. 잠시 후 자지를 향해 미소를 보냈다. "좋다. 너의 소원이 정 그렇다면 날 따르도록 해라." 그가 그렇게 결정을 내리자 사람들은 못내 아쉽다는 듯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들은 자지 처녀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을 아직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설레는 가슴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자자 처녀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또한 임조영이 자지 처녀의 손목을 잡자 이들은 더욱 마음을 다 치고 말았다. 임조영도 여인을 가까이 하는 뭇사내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들이 씁쓰레한 얼굴을 보이자 임조영이 손을 들어 작별인사를 했다. "다시 만납시다!" 임조영이 곧 자지 처녀를 데리고 떠나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임조영은 자지 처녀가 가늘게 몸을 떨고 있음 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랫동안 알몸인 채로 시달렸으니 지쳐 몹시 한기를 느끼리라 여겨졌다. 걷는 도중에 날이 밝아 왔다. 두 사람의 걸음은 차츰 느려졌다. 한바탕 신경전을 벌이고 싸움까지 한 끝이라 둘 다 지쳐 있었다. 자지는 문득 낯설게 전해지는 느낌에 당황했다.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임조영의 손길이 아주 보드랍다는 것에 놀란 것이다. 그러나 그 손은 사내들처럼 힘이 모아져 있었고 불같이 뜨겁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속으로 다짐했다. '임 공자와 같은 분을 만나게 되어 다행이야. 난 다시는 악한들에게 시달림을 받지 않아도 돼. 어머니는 날 절로 보냈었지만 그만 향을 태우는 사이 남에게 잡혀가서는 지금까지 수십 일 동안 시달림을 받아야만 했지. 하지만 이젠 임 공자 덕분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난 이 임 공자를 위해 한평생을 바치리라. 훗날 이분이 아름다운 아내를 맞는다 해도 난 상관하지 않겠어. 설혹 첩으로 들어가는 일이 있어도 난 만족하리라. 그런데 나 같은 여인을 과연 거두어 주 실까? 세상의 여인이란 딱딱한 조개를 지붕삼는 진주처럼 잘 숨겨져 있어야 하는 법이거늘, 난…… 뭇사내들 앞에서 옷까지 벗었으니 이미 끝장이 난 거나 다름이 없구나!' 임조영의 눈길이 그녀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자지, 피곤하지 않나? 그만 쉬어 가도록 하지. 자지 처녀가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지치지 않았어요. 전 지치지 않았어요." 순간 임조영은 뒤쪽에서 수상한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 지치지 않았다구? 이봐, 그대는 지치지 않았어도 지쳤다고 말해야 한다구. 그래야 임 공자가 그대를 더욱 아껴 줄 테니까."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곳엔 모용준이 떠억 버티고 서 있는 게 아닌가. 모용준이 임조영에게 읍했다. "임 형과는 이미 작별인사를 나누었지만 한 가지 말하지 못한 게 있어 이렇게 뒤 쫓아왔으니 부디 용서하시오." 임조영이 모용준을 바라보며 눈짓으로 알겠다는 뜻을 비쳤다. "내게 물어 볼 말이라도 있는 거요?" 임조영이 여유스런 표정을 지으며 모용준의 대답을 기다렸다. 제4장 의형제를 맺은 세 사람 정작 임조영을 불러 세워 놓고는 모용준은 망설였다. 할말이 남아 뒤를 따라온 그는 생각과는 달리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는 속으로 자신을 다그쳤다. '어떻게 말을 해야 내가 진심으로 이 사람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전할 수 있을까? 좋다, 어쨌든 사내답게 당당하게 말을 해보는 거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다짐을 마친 모용준이 비로소 입을 떼었다. "임 형, 난 재능이 없는 사람이지만 임 형을 존경하고 있소. 임 형과 사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소." 모용준의 말에 임조영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남 모용세가의 사람들은 도도하며 강호 사람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모용준의 태도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