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논검5[중신통왕중양편] - 2편 (2/60)
곧 이들의 왁자지껄한 술판이 벌어졌다. 그들은 술잔을 높이 치켜 들고 요란하게 서로 권하기도 하고 잔을 부딪치며 마시기도 했다. 한창 술판이 무르익어 갔다. 얼마 후 왕 공자는 그들이 술에 어지간히 취하여 비틀거리며 술집을 빠져 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연히 그는 무리 중 한 사람이 대상 없이 혼자 흘리는 말을 엿들었다. "주홍이 도도할 때 꽃구경을 하게 되었군 그래." 왕 공자는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꽃구경을 하려는가 궁금했다. 또한 주홍이 날 때 꽃구경을 한다는 말에 더욱 호기심이 동했고 의심마저 들었다. 왕 공자는 이들을 뒤쫓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무리들은 밖으로 나가자 곧 한 사람씩 잰 동작으로 말에 올라탔다. 말들도 주인을 닮아 어디선가 술이라도 퍼마셨는지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왕 공자도 말을 타고 천천히 이들을 따라 임안성 밖으로 나왔다. 날은 벌써 어두워 오고 있었다. 이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들은 말에 채찍질을 가하며 달리기 시작했는데 술이 다 깼는지 그 속돈가 차츰 빨라졌다. 이윽고 산모퉁이를 따라 돌아서니 커다란 산장이 나타났다. 멀리서 바라보니 산장은 아주 야릇했다. 등불들이 환하게 켜져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수림 속으로 웬 사람들이 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가 여인들이었다. 여인들은 마치 활짝 펼쳐진 꽃나무를 연상케 하는 야릇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왕 공자는 숨을 죽인 채 뒤에서 동정을 살폈다. 무리들이 수림 안으로 들어서자 누군가 다가와 팔을 끼고 따라 걷는 게 보였다. 그들 역시 모두 여인들이었다. 그것도 꽃처럼 아름답고 애교가 철철 흘러넘칠 것 같은 여인들이었다. 왕 공자는 더욱 발소리를 죽이고 그 뒤를 쫓았다. 그들이 수림 한복판에 이르자 집은 보이지 않고 나뭇가지들마다에는 초롱불이 매달려 있었다. 또한 모인 사람들을 살펴보니 온통 강호객들이었다. 주위를 넋을 잃고 둘러보는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양쪽 팔을 잡는 것을 느꼈다. 여인들이었다. 앞의 무리들처럼 왕 공자도 여인들에 이끌려 더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한결같이 미색을 겸 비한 백옥 같은 살결을 지닌 미인들이었다. 그녀들은 왕 공자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매우 정답게 굴었다. 왕 공자는 자리를 잡고 앉아 꽃구경이 시작되기만을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뭇처녀들이 수림 속에서 하나 둘씩 걸어 나왔다. 하나같이 눈이 부실 정도로 기막힌 미인이었다. 더군다나 등불 밑에 드러난 여인들의 자태는 감히 선녀와 비하고도 남았다. 그 여인들은 조용히 사람들 앞으로 다가섰다. 강호객들이 앞다투어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그중 어느 한 사람이 약간 목청을 높였다. "모두들 조용히 해 주시오. 내가 할말이 있수다!" 모두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귀를 기울였다. 말을 꺼낸 사람은 키가 매우 작은 난쟁이였으나 얼굴을 보니 서른 살은 족히 돼 보였다. 그는 뭇사람들을 향해 웃음을 띄웠다. 그러나 그 모습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음탕하고 음험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무림의 인물들이 아니었다면 그 웃음에 벌써 몇몇은 자리를 피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시 그 사람이 예의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우린 북방 유운장(留雲莊) 사람들이오. 우리가 이곳에 머물면서 임안 지방을 살펴보니 실로 좋은 곳이란 것을 깨달았소. 그래서 우린 이곳에서 한바탕 놀아 보기로 했소. 여러분들도 함께 놀아 보는 것이 어떻겠소? 유운장이 나의 사형인 신독행(愼獨行)의 손에 넘어갔다는 걸 아는 사람도 있을 거요. 그분은 적지 않은 강호의 큰 사건들을 일으킨 사람이오. 그래서 난 오늘 이 임안에서 큰 사건 하나를 일으키려고 하오. 이 사건은 지난날에도 없었거니와 앞으로 도 찾아보기 힘든 아주 큰일이 될 거요." 그러자 주위가 웅성웅성 슬렁이기 시작했다. 그 난쟁이가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이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리 천하에서 이름난 화초라 하더라도 모두 한철이 전부인 거요. 모두 세 계절의 고비를 넘기기가 어렵거든. 여러분은 모두 강호객들이니만큼 무릇 미녀들이라고 하더라도 다 이러저러한 흠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거요. 말하자면 거리에서 만난 여인 앞에선 가슴이 요동을 치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게 아닌데 하고 고개를 내저었던 기억을 누구나 갖고 있다는 말이오. 그러니 천하엔 흠잡을 데가 없는 여인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오." 모두들 난쟁이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난쟁이의 말이 계속되었다. "밤에 미인들을 보게 되면 때로는 동시(東施)를 왕장(王薔)으로 보게 되고 무염(無墮)을 포사(褻 )로 착각하는 수가 있지요. 이유는 밤에는 흔히 사람을 잘못 알아보기 때문인 거요. 하지만 삼경(三境)하에 사람을 보게 된다면 결코 어긋나는 법이 없지요." 그 말에 모두들 영문을 몰라 고개를 길게 뽑거나 옆사람과 수군거렸다. 그들을 바라보던 난쟁이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곧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오." 곧이어 손을 대면 그대로 가슴을 타고 허리 밑까지 스르르 흘러 내릴 듯 몸매가 잘 빠진 여인들 몇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무 그림자 사이를 걸어오는 그녀들은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나무의 그림자가 그녀들의 온몸에 묘한 무늬를 남기고 있어 보는 이들을 더욱 황홀경 속에 몰아넣었다. 어두워 얼굴을 똑똑히 분간할 수는 없었으나 그 몸매만큼은 절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들은 강호객들 사이로 걸어와서는 천천히 몸에 걸치고 있던 얇은 천을 아래로 내려뜨렸다. 여인들은 곧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돼 버렸다. 그녀들 중 하나가 알몸인 채로 원을 그리듯 빙 둘러앉은 강호객들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여인의 알몸을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을 가까이서 바라본 강호객들의 혼백은 이미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여인들은 모두 일곱이었다. 그녀들의 길게 풀어헤친 머리칼은 불빛을 받아 윤기를 머금은 듯했다. 또한 날씬한 다리며 매끄럽게 엉덩이로 흘러내린 허리선과 아랫배는 뭇사내들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난쟁이가 바로 유운장의 사숙(師叔) 사자우(査自雨)였다. 그가 한참 만에 다시 입을 때었다. "이게 바로 미인인 거야. 미인이 한번 시선을 주면 마음이 설레고 미인이 한번 교태를 부리면 목숨이 심연 속에 빠져들어 가는 법이라구. 이 미인들이 어떤가?" 왕 공자의 가슴도 후득후득 우박을 맞은 듯 심하게 떨렸다. 바로 한가운데 나와 섰던 미녀가 곧장 자기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이리 와!" 그 미녀는 별반응 없이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미녀를 부른 사람은 아주 장대한 체구를 가진 인물이었는데 시커먼 큰 손으로 미녀의 젖가슴을 덥석 움켜잡았다. 그녀의 젖가슴을 떡주무르듯이 하며 그가 감탄을 했다. "훌륭하군, 훌륭해! 살결이 정말 부드러워!" 그러자 누군가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제노삼(齋老三)은 이전에는 여색을 가까이 하지도 않더니 오늘 밤엔 어찌 되어 살결이 부드럽다는 말까지 다 하는가?" 그 말에 모두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왕 공자가 보기에 미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어 있고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보아하니 이자들은 늘 이따위 짓을 즐기는 모양이군. 그런데 이 여인들이 회모루에 있던 그 십여 명의 기생들인지 아닌지 알아낼 방법이 없구나. 그녀들이 분명하다면 어딘가에 자지라는 여인이 끼여 있을텐데…….' 그때 사자우의 목소리가 깔깔대는 웃음에 실려 들려 왔다. "부드러우니 안 부드러우니 말들은 해도 정말로 알자면 손안에 넣어 봐야 하지." 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웃음이 사그라들 무렵 누군가 이렇게 외쳤다. "칠백 냥!" 돌아보니 왕 공자 옆에 있던 처음 보는 낯선 사내였다. 그는 지금 그 여인의 몸값을 흥정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때를 같이하여 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허튼소리 말어! 이 좋은 밤에 모두들 기분도 즐거운데 그대가 처음부터 칠백 냥을 부르다니?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려는 수작이야?" 불만의 소리가 터지자 처음 칠백 냥을 외쳤던 사내가 받아쳤다. "제 형은 큰 인물이니까 값을 더 높이 부를 것 같은데, 그래 얼마를 생각하고 계시우?" 제노삼이 뒤질세라 맞섰다. "천 냥!" 그러나 이들이 흥정하고자 하는 여인은 그다지 경국지색은 아니었다. 그러니 천 냥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은자 삼천 냥이오!" 불쑥 날아든 또 다른 소리에 모두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에 는 작은 수레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그 수레는 얼마나 작은지 사람이 겨우 앉을까말까 할 정도였다. 그런데 수레 위에는 바로 그 목소리의 임자가 앉은 채로 세 손가락을 곧추 펴들고 있지 않은가. 모두들 그자의 몰골과 여인을 사겠다고 그 많은 돈을 내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지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자를 쳐다보았다. 삼천 냥과 대적할 액수가 나오지 않자 곧 그자는 여인을 불렀다. "이리로 와. 어디 자세히 봐야겠다." 여인은 별수없이 그에게로 갈 수밖에 없었다. 여인은 가급적이면 사뿐사뿐 걸으려고 했으나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감추질 못했다. 수레 위에 있는 사람이 책망하는 낯빛을 지었다. "미인이란 걸음걸이가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걸 너는 모르나?" 그러자 여인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이 어렸다. 그러나 억지로 자신의 심정을 숨긴 채 그에게로 가까이 가서는 허리를 굽혔다. "공자님, 무슨 분부가 계신지요? 전 공자님의 분부대로 따르겠나이다." '그는 매우 가늘고 약해 보이는 다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내 이 두 다리가 보기 좋은가 그렇지 않은가를 말해 보거라?" 수레 밑으로 축 드리워져 있는 그의 두 다리는 전혀 움직일 것 같지가 않았다. 여인은 매우 난처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공자님의 두 다리는…… 두 다리는 보기가 좋아요." 그가 고개를 서너 번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보기 좋다고 하면서 왜 시선을 피하는 게지?" 여인이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길은 매의 눈빛처럼 사납고 날카로운 빛을 뿜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여인은 그의 두 다리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때 그가 느닷없이 여인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아악!" 버둥대는 여인의 머리채를 한 손으로 틀어쥔 그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봐! 보란 말이다!" 다리는 보잘것없었지만 반대로 손힘은 대단했다. 여인은 머리채를 빼앗긴 채 곧 허공으로 들어올려졌다. 그가 손에 힘을 주어 여인의 머리채를 홱 비틀었다. "헉!" 여인은 곧바로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 정말 대단한 힘이었다. 왕 공자가 그녀를 구해 주려고 막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듣거라!" 사자우가 주위를 일깨울 듯 목청을 높였다. "천하에 아무리 사악한 자도 유운장에 대면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아 두어라! 너희들이 감히 함부로 손발을 놀렸다가는 우리 유운장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뭇사람들은 사자우의 뒤에 산맥처럼 버티고 있는 자들이 유운장의 호수(好手)들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처지였다. 그러나 모두들 그다지 그들을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는 눈치였다. 한 사람이 개탄을 하며 나섰다. "유운장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 우리도 건드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제형께서 꽃을 짓밟는 건 결코 환영할 만한 일이 못 된다구." 그러자 수레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 냉소를 머금었다. 그 대신 대답한 것은 사자우였다. "그 계집애를 산 이상 죽이고 살리는 것 역시 이분의 손에 달린거야. 누구도 관여할 수 없지." 모두들 무언가에 눌리듯 침묵하고 있는데 다시 사자우가 입을 놀렸다. "보란 말이야. 또 오네, 또 와!" 또 한 여인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수심에 가득 찬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걸음은 매우 특이해서 마치 스르르 땅 위를 미끄러지는 듯했다. 여인 역시 한가운데로 와 섰다. 누군가 그녀의 걸음걸이를 보고는 최고라고 소리쳤다. 여인의 몸매는 방금 전 죽은 그녀보다 훨씬 우아하고 매력적이었다. "삼천 냥이오!" 다시 여인의 값이 매겨지기 시작했다. 삼천 장이란 소리를 비웃기라고 하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돈을 아끼시는구려. 당신은 오천 냥이라도 내놓을 수 있잖소?" 다른 또 한 사람이 웃으며 그 말을 비꼬았다. "오천 냥을 내놓고 싶으면 그렇게 하시구려. 그렇지만 쌀독에 거미줄 치지 않도록 살펴보는 게 좋을 거요." 처음 삼천 냥을 부른 사람은 마화산장(魔花山莊)의 장주 마성(魔晟)이었다. 마성의 부인은 무서운 여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마성이 색을 즐기기는 했지만 일단 여인을 데려가면 부인에게 먼저 빼앗겨 자기가 품에 안을 수가 없었다. 이런 마성의 형편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한바탕 웃어댔다. 한사람이 그를 돌아보며 충고했다. "마 형, 당신이 여인을 얻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오? 필시 당신의 그 잘난 여편네가 여전에서 생선 훔치는 고양이처럼 잽싸게 가로챌 게 분명한데. 당신이 미인을 수십 명을 사들인다면 종국엔 부인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 아니겠소?" 그 말에 다시 한 번 폭소가 이어졌다. 마성이 뜨뜻미지근한 어조로 답했다. "꼭 그렇지는 않아. 여편네가 가로챌 때마다 하나 더 사면 되지 뭐. 여편네도 끝에 가서는 지쳐 포기할지 모르거든." 마성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 미녀를 한 번 더 훑어보았다. 그리곤 한쪽 손을 활짝 펼쳤다. "좋아, 내가 오천 냥을 내지!" 여인의 운명이 결정되려는 찰나였다. 어쩌면 마성의 부인 손에 넘어가는 게 이곳에 있는 악한들에게 시달림을 받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성이 여인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며 손짓을 했다. "이리 오너라, 어서 이리 오라구." 여인이 천천히 마성 앞으로 걸어갔다. 마성이 여인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손이 곱구나. 너에 비하면 우리 여편네의 손은 진흙뭉치를 짓밟아 놓은 것 같다구. 넌 얼굴도 고우니 아마 얻어맞지는 않을 것이다. 그 년은 사람을 때려도 꼭 뺨만 골라 후려치거든. 그럴 때면 옆에 있는 내게 몇 번이나 후려치는가 세라고 시키지. 하지만 넌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거야. 내가 어찌 너처럼 고운 계집이 얻어맞는 것을 바라볼 수 있으며 또 몇 대나 맞는지 옆에서 셈을 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러나 그 원녀(怨女)는 마치 무슨 괴물을 대하듯 눈을 치켜 뜨고는 마성을 노려보았다. 마성이 히히덕거렸다. "일전에도 내가 한 계집을 사 갔는데 어느 날 그 여편네가 버릇이 도졌던 거야. 내게 몇 대를 치는지 옆에서 세라고 하더군. 여편네는 정확히 열한 대를 후려쳤는데 내가 일곱 대를 때렸을 때 열한 대라고 했지. 그런데 그냥 넘어갈 여자가 아니었어. 급기야 그 계집은 나머지 네 대를 더 맞고는 죽어 버렸지." "마 형, 사정이 그러한데 어째서 여인을 산다고 하는 거요? 괜한 고생 시키지 말고 어서 물러요!" 한 사람이 꾸짖듯 일침을 놓자 마성이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마음 같아서야 그러고 싶지만 여인이 알몸으로 눈앞을 어지럽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있어야지." 원녀는 결국 마성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그 여인의 운명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눈치였다. 한쪽에서 팔짱를 낀 채 잠시 이들이 노닥거리는 것을 구경하고 있던 사자우가 말했다. "쇠뿔도 각각이요 염불도 몫몫이라 했소. 그러니 미녀의 용모 역시 원래 각기 다른 법, 당신들이 또 다른 미녀를 보게 되면 아마도 더욱 마음에 들 것이오." 이번에는 미녀들이 줄을 지어 한꺼번에 사람들 앞으로 나왔다. 여인들은 제각기 개성이 달랐고 그 자태 역시 각양각색을 이루었다. 왕 공자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미녀들 중에 아마도 회모루 사람이 있을 거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찾아내지? 직접 한번 물어 보는 수밖에 없겠군.' 왕 공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섰다. "내가 듣기에는 강호 사람들이 회모루에서 새로 십여 명의 미녀들을 데리고 왔다는데 어떤 여인들이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득달같이 날아와 꽂혔다. 그중 사자우가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왕 공자를 노려보았다. "그댄 누구냐? 누군데 감히 회모루의 처녀들을 찾지?" 왕 공자가 가슴을 펴고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난 종남산(終南山) 사람인데 왕중양(王重陽)이라 하오. 회모루의 처녀들이 천하의 절색이라고는 하지만 난 그저 그녀들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오." "좋아. 그렇다면 알려 주지." 사자우가 손을 내젓자 뒤로부터 한 여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강호객들은 더는 앉아 있지 못하겠다는 듯 모두 일어섰다. 이윽고 여인이 모두가 한눈에 볼 수 있는 옷까지 이르렀다.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알몸인 그녀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자리에 붙박인 듯 서 있었다. 왕중양까지도 그 여인의 미모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이는 스무 살 미만인 듯싶었으나 여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 상태였다. 혹시 기생어미가 입이 마르도록 떠벌리던 그 여인이 아닌가 싶었다. 사자우가 그 여인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이 다인 오늘 밤의 황후야. 하지만 아랑(阿郎)이 누가 되겠는지는 알 수 없지. 원래 내가 유운장에 남겨 두어 사형 신독행에게 드리려고 했었지.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형에게는 미녀들 이 이미 지나칠 정도로 많단 말이야. 그래서 이 처녀를 팔려고 하는 것이지. 뜻이 있는 사람은 값을 부르라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사람이 큰소리로 외쳐 댔다. "칠천 냥이오!" 이번엔 다른 사람이 만 냥을 불렀다. 그러자 모두들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정도는 치러야 할 거라는 생각들이었다. 그런데 다시 뒤쪽에서 목소리가 날아왔다. "저 옥 같은 살결을 보면 만 냥도 아깝지가 않지. 난 일만 오천 냥을 내겠어!" 사람들은 서로 간을 올리고 상대방을 헐뜯고 하면서 일대의 혼잡 을 이루었다. 왕중양은 이 사람들이 모두 강호에서 이름난 색마들 인 것은 알지 못했다. 한데 그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사태가 심각하지 않으면 결코 좌우나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쉽게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로지 나쁜 짓만을 일삼는 흑도(黑道)의 인물들만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큰소리로 떠들거나 상대를 향해 으르렁대는 꼴이었다. 그들은 마치 행여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처럼 비쳤다. 그 여인이 머리를 들어 달을 유심히 올려다보았다. 등불빛과 달 그림자 그리고 사람들의 그림자가 한데 어울려 기이한 풍경을 자아냈다. 그녀의 표정은 아주 우울해 보였다. "내가 삼만 냥을 내겠소!" 다시 누군가 찬물을 쫘악 끼얹은 듯한 말을 했다. 역시 나서기 좋아하는 강남(江南)의 흑도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흑도의 총두 목인 해불개(奚不改)라는 인물이었다. 주위는 삽시간에 조용해졌 다. 해불개는 자신이 내뱉은 말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꼭 행동에 옮기는 인물이었다. 언젠가 그에게 누군가 이렇게 물어 온 적이 있었는데 결과는 참변을 부르는 꼴이 되고 말았다. "당신네 부(府)엔 도대체 사람이 얼마나 있소?" 그는 별생각 없이 내키는 대로 대답을 해 버렸다. "서른아홉이오." 그런데 그의 친구가 실제로 수를 세어 보니 마흔한 명이었다. 해불개가 탄식을 섞어 가며 말했다. "해불개라 해불개, 내 이름이 해불개인데 왜 불개라 하였겠느냐!" 그는 곧바로 검을 들어 자기 주변에 있던 두 사람의 목을 잘라 버렸다. 그 이후로 그의 부에는 오로지 서른아홉 사람만이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인물이고 보니 그가 이미 입으로 말을 내뱉은 이상 누가 사족을 달 수가 있단 말인가, 만약 누군가 그의 말을 걸고 넘어진 다면 또다시 해불개의 진면목을 보여 준답시고 검을 들 게 분명했다. 모두들 입을 다문 채 그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는데 누군가 불 쑥 말을 던졌다. "내가 삼만 일천 냥을 내겠소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날아갔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그 돈을 내고 저 계집을 사다가 어머니 몸종으로 삼게 하리다." 모두들 놀란 것은 둘째치고 앞으로 일어날 사태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을 사리기에 바빴다. 일대의 혼란을 예고하며 나선 자는 바로 강남 모용씨 가문의 방탕한 귀공자로 알려진 모용준이었다. 이 모용 공자의 방탕함을 말하자면 사흘 밤낮도 모자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