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논검5[중신통왕중양편] - 1편 (1/60)
[화산논검5] - 김용 중신통 왕중양편 제1장 나체 미인들의 시장 대송(大宋)은 점점 몰락해 이제 강산의 절반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임금은 부화타락한 생활에 빠진 채 백성들만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적들을 몰아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강대한 나라에 맞서 싸우기에 역부족인지라 사람들은 그저 침통한 심정을 술로 달랠 수밖에 없었다. 이날도 여전히 임안성은 많은 인파로 북적댔다. 사람들은 마치 세상의 종말을 앞둔 것처럼 행동했다. 환락을 찾아 호주머니 속에 있는 몇 푼 안 남은 은자들을 사루(四樓)에 던지기에 바빴다. 이 사루란 어떤 곳인가? 바로 술집을 말하는 것이다. 술집에는 천 잔 을 마시지 않고는 세상사를 묻지 말라는 말이 풍미하고 있었고, 찻집에서는 고금의 눈물겨운 이야기로 서로 손목을 쥐고 장탄식을 하였다. 또한 청루(靑樓)에서는 품속을 파고드는 미녀들의 교태 어린 웃음에 천금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던져 주곤 했다. 서루(書樓 ; 서가)에서는 이야기꾼들이 침을 튀겨 가며 고금의 영웅들을 들먹이거나 지난날의 득실(得失)들을 짚어 가면서 깨어진 영웅꿈과 이에 휩쓸린 세기의 여인들께 대해 한바탕 떠벌려 댔다. 임안에는 사절(四絶)이라고 불리는 아주 유명한 것이 있었다. 제일절(第一絶)은 청루인데 '회모루(回眸樓)'라고 불린다. 이 청루에는 조대 당명황(唐明皇)의 귀비인 양태진(楊太眞 ; 양귀비)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데 그녀가 눈동자를 굴리며 한번 웃음지으면 삽시간에 임금의 혼백이 달아났다고 한다. 그렇듯 회모루는 미녀들이 득실거리는 매우 풍류스러운 곳이다. 제이전(第二絶)은 '태백루(太白樓)'라고 불리는 술집이다. 이태백(李太白)이 서경(西京)으로 갈 때 이 술집에 묵은 적이 있는데 술이 독하고 혀끝을 살살 녹이는 술맛에 감탄했다 한다. 그는 취흥이 달아오르자 곧 지필묵을 가져오라고 하여 글을 남겼다. 이태백이 '술이 너무 맑아 밑바닥까지 보이는데(酒太白淸別見底)'라고 쓰자 술이 좋지 않다고 쓴 것으로 이해를 한 주인이 화가 나서 그를 나무랐다. 그런데 이태백이 '취흥이 도도하여 등등 뜬 기분이로다(人大樂 浮 一大白)'라는 구절을 잇자 주인의 태도가 금방 달라졌다. 이때부터 태백루는 다른 술집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태백루(太白樓)'라고 부르면서도 쓰기는 '대백루(大白樓)'라고 썼던 것이다. 그리하여 간판을 보고 '대백루'라고 부르면 전고(典故)를 모른다고 해서 무식하다는 조롱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어떤 문인들은 도리어 그것을 비웃듯 끝까지 '대백루'라고 불렀다. 제삼절(第三絶)은 임안의 '작향루(疇香樓)'라는 찻집인데, 어떤 손님이 오차물을 마시다가 찻잎을 씹고 그 향기에 취해 쓰러진 뒤로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작향루라는 이름은 이 일화로 얻어진 것이다. 제사절(第四絶)은 사패방(圖牌埼)의 '설서루(說書樓)'이다. 이 설서루를 '청고루(聽古樓)'라고도 하는데 언제나 구경꾼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이야기를 듣는 청중이 대단히 많은 이 설서루를 임안의 경성이라 불렀다. 어느 날 작향루에 한 손님이 왔다. 이 사람은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아주 영준하게 생겼는데 자리에 앉아서 음미하듯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점심 때가 가까워지자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났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점심밥은 청하지 않고 찻잔 앞에 장시간 앉아 있었다. 이 사람은 차 마시는 데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다만 주위 사람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는 눈치였다. 임안은 큰 고장으로 송조 때는 가장 번창한 곳이었다. 난세에는 괴이한 사건이 수없이 일어나는 탓에 이 임안은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깃거리가 유독 많은 고장이기도 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글쎄, 이 얼마나 괴이한 일인가? 그 회모루에 어제 십여 명이나 되는 미녀들이 한꺼번에 들어왔다고 하더군. 기생어미는 횡재를 하게 되었다며 입이 귀밑까지 쩌억 찢어졌다는군. 그 기생어미는 미녀들에게 위층으로 올라가 몸단장을 하라며 채근했지. 그런데 한 시진(時辰)이 지났는데도 층계가 울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어. 그래 또 한참을 기다렸으나 사람이 내려오는 그림자를 볼 수 없었대나. 그래서 기생어미가 위로 올라가 보니 글쎄, 무슨 판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짐작이나 가나?" 그러자 청중들은 잔뜩 흥미를 가지고는 입을 헤벌렸다.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어서 다음 말을 이어 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표정들이었다. 그 사람이 킥킥 웃더니 상 위에 있던 차를 단숨에 삼켜 리고 나서 빈잔을 내보이며 말했다. "바로 이렇게 깜쪽같이 그 십여 명이나 되는 미녀들이 사라져 버렸단 말일세." 곧 귀기울이던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녀들이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 이유에 대해 저마다 추리해 보는 눈치였다. "기생들이 사라진 것을 알고는 기생어미는 마치 제 부모가 죽은 듯 대성통곡을 하더라구. 아무리 봐도 기생어미가 누군가와 짜고 그녀들을 빼돌린 것 같지는 않았어. 임안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미녀들을 찾지 못했거든. 그중에서도 인물이 아주 뛰어난 자지라는 계집을 유돌 아까워한다는 말도 있다네." 청중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한 사내의 거동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주인을 불러 찻값을 치르고는 천천히 층계를 내려가는데도 눈길을 던지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거리로 나선 그는 자기 쪽으로 톡톡 튀듯 가벼운 걸음걸이로 걸어오는 한 유랑아를 붙잡고 물었다. "이봐, 회모루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지?" 유랑아는 회모루라는 말에 씨익 웃으며 두 눈을 연신 깜박였다. "손님이 회모루로 가신다면 제가 안내해 드리지요. 그런데 푼돈 좀 주셔야겠어요." 유랑아는 계속 웃는 낯짝으로 사내의 얼굴을 말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사내가 웃으면서 동전 몇 닢을 쥐여 주었다. 그러자 유랑아가 갑자기 입을 삐죽 내밀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겨우 요것뿐인가요? 미녀들 앞에서는 은자를 한줌씩 꺼내 주며 허세를 부리면서 나한테는 겨우 요거뿐이에요?" 유랑아는 머리에 묻은 비듬을 털어내듯 연신 툴툴거리며 앞서 걸어갔다. 사내는 유랑아가 가는 대로 쫓아갔다. 여러 거리를 지나 어느 집 앞에 이르렀다. 집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규모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사내는 속으로 그런 일을 하는데 넓고 큰 집은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웃음을 베어 물었다. 힘만 좋으면 되는 일이니까. 사내가 안으로 들어서니 한 여인이 쪼르르 달려 나왔다. 이 여인은 기실 나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화류계의 세월에 찌들어 지레 늙어 버린 것 같았다. 그녀가 웃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오늘은 누구의 운수가 펴려나? 여기 공자님 한 분이 오셨다. 아주 미남자서!" 사내가 약간 당황해 하자 그녀가 갑자기 그의 손을 잡았다. 사내가 흠칫 놀라 손을 뿌리쳤다. 깔깔 웃어대는 그녀의 태도를 보니 사내를 얕잡아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사내를 주물러 은자를 후려내려는 속셈이 역력했다. 기생어미가 더욱 요상한 웃음을 흘리며 사내를 주시했다. 사내가 정색하고 말했다. "난 놀러 온 게 아니오. 어제 이 집에서 미녀 십여 명이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오? 난 그걸 알고 싶어서 온 거요. 사실을 듣고 싶소이다." 불쑥 내뱉은 사내의 말에 열쩍은 낯빛을 보이던 기생어미가 얼굴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누가 알겠수? 이층에 있는 줄 알고만 있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이것들이 온데간데 말도 없이 몽땅 사라지고 말았다우." "내가 한번 올라가 살펴봐도 괜찮겠소?" 사내의 말에 기생어미가 화들짝 놀라며 가로막아 섰다. "공자님, 그럴 수는 없어요." "왜 올라갈 수가 없다는 말이오?" 사내가 단호하게 나오자 기생어미는 다시 교태스런 눈을 꿈벅이며 대꾸했다. "남이 재미있게 노는 판에 방안을 들여다본다면 공자님은 흥이 나겠나요?" "걱정 말게. 내가 그 미녀들을 찾아 줄 테니 나를 믿으라고." 기생어미의 깔깔대는 웃음 소리가 뒤를 이었다. "에구, 공자님이 참말로 그 애들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이우? 그럼 공자님은 천하에 드문 대협일텐데……. 그렇다면 도대체 공자님은 성씨를 어떻게 쓰시우?" 기생어미의 눈초리가 매우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그녀는 사내의 행색이며 얼굴 생김새를 찬찬히 훑어보다가 예사롭지 않은 기운에 놀라는 눈치였다. "내 성은 왕가요." 사내가 대답하자 기생어미가 손을 까닥거렸다. "왕 공자, 그렇다면 얼른 내 뒤를 따라와요." 왕 공자는 기생어미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어느 방문 앞에선 그녀가 안에 대고 소리쳤다. "가릴 건 가리되 휘장은 젖혀 놓아라!" 기생어미가 안으로 먼저 들어섰다. 방안에는 예상대로 두 여인이 한창 땀을 흘리며 기기묘묘한 자태로 서로를 탐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난데없는 불청객의 방문에 허겁지겁 이불을 끌어 당겨 얼굴을 감추느라 바빴다. 기생어미가 그들에게 눈살을 찌푸렸다. "거서 밖으로 나가라. 어서!" 그러자 두 사람은 의복을 대충 걸치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왕 공자는 입을 꽉 다물고 방안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한참이나 방안을 둘러보던 그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기생어미가 웃으며 그를 잡았다. "왕 공자, 내 보기엔 공자님은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공자님이 정말로 저를 도와 아이들만 찾아 준다면 내 약속하리다. 공자님이 매일 이곳에 들러 얼마든지 즐길 수 있도록 하겠어요." 그녀는 자신의 말이 너무 지나쳤다고 여겼는지 얼른 얼굴색을 고치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 대신 바쁘지 않을 때 오셔야 해요." 왕 공자가 잠시 미소를 짓다가 몸을 돌렸다. "난 이만 가야겠소." 기생어미의 속내는 여러 상념으로 분탕질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평범한 인물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왕 공자를 잘 이용만 한다면 자기에게 더없는 이득이 돌아올 게 분명하다고 그녀는 속으로 계산했다. 지금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가 몇 있으니 그녀들을 시켜 왕 공자의 마음을 완전히 녹여 버릴 심사였다. "왕 공자님, 보아하니 공자께선 참말 영웅다운 데가 있수. 우선 공자께선 이곳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시는 게 좋을 것 같으니 그리 하시우. 만약 그 아이들을 모두 찾게만 해 준다면 공자님의 요구는 무엇이든지 들어드리리다. 그리고 정 모두를 데려올 수 없다면 꼭 한 아이만이라도 내게 넘겨줘야 해요. 자지라는 이름을 쓰는 아인데 얼굴이 백옥처럼 희고 그중 미색이 뛰어나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을 게요. 부탁해요." 그리곤 왕 공자가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기생어미가 안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뭣들 하리 빨리 나오너라! 아주 귀한 손님이 오셨다!" 기생어미의 호들갑에 여기저기서 불만스런 목소리가 들려 왔다. 사실 이 기생어미는 손님이 올 때마다 이렇게 장신구를 달듯 말을 꾸민 탓에 모두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다. 이윽고 코를 찌를 듯 진한 향수내를 풍기는 기생 세 명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녀들은 곧 왕 공자에게로 다가가 뱀이라도 되는 양 몸으로 친친 그를 감기 시작했다. 왕 공자는 미간을 잔뜩 오므리면서도 애써 뿌리치지는 않았다. 기생들은 왕 공자를 보자 한눈에 반해 버린 눈치들이었다. 기생들은 왕 공자의 몸을 살짝살짝 스치며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그중 한 기생이 왕 공자에게 음탕스런 눈빛을 흘리며 교태를 부렸다. "왕 공자께선 우리들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즐겁게 해 주셔야 해요." 옆에서 그녀들의 짓거리를 말없이 지켜 보고 있는 기생어미는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은 이런 여인들을 만나고 싶어도 어려울 것이오. 이 아이들이 한번 몸을 꿈틀거리면 그댄 아마 몇 날 며칠 동안 오금조차 제대로 펼 수가 없을 거요.' 아닌게아니라 왕 공자는 지금껏 기생집의 참맛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기생들의 진한 농지거리와 자태에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바로 이 방인가? 그렇다면 또 어느 방에 처녀들이 들어 있는가?" 갑자기 밖에서 들려 온 말소리에 모두들 시선을 집중했다. 그 목소리는 꽤나 청아했다.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서자 왕 공자가 살며시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그 공자는 미남자였는데 흰 피부에 늘씬한 몸매를 지닌 사내였다. 방안에 들어선 그 공자는 왕 공자를 발견하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더니 곧 웃음을 띄우며 시선을 돌렸다. 그는 대차호(大茶壺)를 보고는 물었다. "이 방이 처녀애들이 실종되었다던 곳인가?" 대차호는 그 공자의 기색이 썩 좋지 않음을 간파하고는 공손히 허리 숙여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요. 공자님께서 처녀들을 찾아 주시면 그 은혜는 꼭 보답하겠습니다." 그 공자가 다시 왕 공자에게로 알 수 없는 쓴웃음을 보내 왔다. 그 사람은 곧 방안을 낱낱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는 하찮은 것까지도 깊은 눈길을 주며 살폈다. 기생들이 바닥에 흘린 것으로 보이는 난잡한 쓰레기까지 일일이 손으로 만져 보고 눈으로 오래 확인 해 보기도 했다. 그러더니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는 왕 공자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자리를 좀 비켜 줄 수 있겠소?" 왕 공자의 기분도 유쾌하지는 못했다. 그는 속으로 뇌까렸다. '보아하니 이 사람도 약자를 동정하는 사람으로 보이는군. 이 사람도 필시 실종되었다는 그 미녀들을 찾고자 온 게 분명해.' 천천히 자리를 비켜 주는 왕 공자는 유심히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살폈다. 그 공자가 혼자말을 하듯 매우 날카로운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처녀의 침대와 아편쟁이의 방은 꼭 뒤져 봐야 해. 그리고 소문이 날까 봐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그러면서 그는 이불을 들치고는 그 속에 무슨 물건이라도 숨겨져 있나 살폈다. 이불 속을 이리저리 들춰보던 공자의 표정이 갑자기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 속에는 기생들이 매음을 할 때 쓰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공자는 그것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를 모르는 기색으로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후 그가 기생어미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물건이지?" 기생어미가 돼지 오줌보에 서 바람 새듯 피식 웃었다. 이곳에 있는 두 사내 모두가 전혀 여체를 가까이 해보지 못한 숙맥들이란 생각에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남의 일을 해결해 주겠다니, 기생어미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사라진 기생들을 찾아 주겠다는 이들의 말에 더욱 앞뒤가 맞지 않아 웃음이 자꾸만 터져 나왔다. 어찌 고기맛을 알지 못하는 사냥개가 사냥길을 앞장서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생어미가 꾹꾹 터지려는 웃음을 안으로 재어 넣으며 말했다. "후후, 이건 기생들이 쓰는 도구랍니다. 기생들은 이런 물건을 가지고 기쁨을 얻는다구요. 호호호!" 기생어미는 두 풋내기들을 바라보며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오호호호!" 때를 기다려 옆에 있던 기생들도 배꼽을 움켜쥐고는 박장대소를 했다. 그 음탕스런 웃음은 좀처럼 그치지를 않았다. 하지만 기생어미는 그 와중에서도 사태를 파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만약에 이들 두 공자에게 계속 비웃음을 내보이다가는 자신들이 불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생어미가 웃음을 말끔히 거두며 두 공자에게 공손하게 대했다. "두 분이 원하신다면 이곳에서 마음껏 즐기시지요." 말을 마친 기생어미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기생들이 새로 온 공자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처음 왕 공자에게 수작을 부리려고 했으나 새로 온 공자가 더욱 미남이란 사실에 마음을 바꾼 것이다. 기생들은 그 공자에게 바싹 몸을 붙이며 아양을 떨어댔다. "공자님은 성씨를 어떻게 쓰시나요?" 그러자 왕 공자를 슬쩍 곁눈질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난 성이 임(林)가지." 기다렸다는 듯이 한 기생이 그의 성을 부르며 나섰다. "임 공자님, 당신의 성씨는 참 멋져요. 두 나무가 가지런히 자라는 게 바로 임(林)이 아닌가요?" 그 기생은 이렇게 읊조리더니 곧 임 공자에게 접근해 입을 맞추려고 했다. 그러면서 기생은 속으로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되짚어 보았다. '난 지금껏 이처럼 잘난 젊은이를 보지 못했어. 이런 사내와 정을 맺고 함께 도망가서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그 기생은 입술을 임 공자의 입술 위에 포개었다. 임 공자는 부끄러운지 얼굴빛이 갑자기 빨개지면서 머리를 뒤로 젖혔다. "자꾸 이러면 가만 놔두지 않겠어!" 그러나 기생은 웃는 얼굴로 더욱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나의 침대를 어느 귀신에게 내주는지 아시나요? 옛사람도 아니고 지금 사람도 아니지요. 멀리로는 편지에다 애끓는 사연을 써넣을 줄 아는 설도(薛濤) 같은 사람과, 가까이로는 몸 바쳐 한공자 (韓公子)를 따른 양홍옥(梁紅玉) 같은 사람한테 내주는 거예요. 당신은 저의 이런 심정을 이해하시겠어요?" 임 공자는 묘한 말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는 기생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얼른 물러앉았다. "재가 이곳에 온 것은 여인들이 사라진 일을 알아보기 위해서이지 그대와 정담을 나누기 위해서는 아니오." 그러나 기생이 다시 공자를 껴안으며 꿈을 꾸듯 입을 놀렸다. "공자님들은 다 아리따운 여인들을 사랑한다던데 당신은 왜 나의 심정을 이토록 몰라주시나요?" 정색을 한 임 공자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왜 유독 나에게만 지나친 관심을 두려는가? 이곳엔 나 말고도 또 사내가 있지 않은가?" 잠시 기생이 불만스러운 눈길로 주위를 살폈다. 임 공자가 화제를 얼른 다른 곳으로 돌리듯 기생들을 향해 물었다. "그 몇몇 여인들이 실종되었을 때 이상한 점을 본 사람은 없는가?" 그러자 서로 다투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말하려고 나섰다. 한 기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난 두 사람이 사랑하는 소리를 듣기까지 했어요." 임 공자의 눈이 커졌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을 꿈벅이며 물었다. "여인들끼리 어떻게 사랑을 한단 말이냐?" 그 기생이 다른 두 기생에게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너희들 둘이 임 공자님에게 여인들끼리 노는 걸 보여 드려라. 임 공자님의 견식을 넓혀 드려야겠다." 그녀들은 그런 일에 이골이 났는지 자연스럽게 천천히 한쪽으로 걸어가더니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요상한 자태를 취했다. 임 공자는 그녀들의 음탕하고도 괴이한 동작을 슬쩍 피하며 왕 공자를 살폈다. 그가 눈길을 빼앗기고 있는 것을 발견한 입 공자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임 공자가 손을 내저으며 제지했다. "됐어. 그래 또 다른 소리는 들은 것이 없는가?" 그 기생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애들은 한식경이나 그 장난을 하더니만 곧 잠잠해졌어요." "됐어. 그렇다면 난 이쯤에서 돌아가겠어." 그러나 기생들이 임 공자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임 공자를 강제로 잡아당기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했다. 임 공자가 끝내 그녀들을 뿌리치고는 나가 버렸다. 그러자 이번엔 아쉬운 김에 모두들 왕 공자에게로 몰려들었다. 왕 공자는 돌아서 가는 임 공자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상념에 빠졌다. '보아하니 저 공자도 강호 사람이 분명한데 공정치 못한 일에 정의를 앞세우는 것은 역시 같구나. 그런데 저 공자가 없어진 기생들을 무슨 수로 찾아낸다는 말인가? 이 사건은 보아하니 실마리를 쉽게 잡아낼 수가 없는 듯한데. 여염집 규수가 아닌 사라진 기생들을 찾아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기생들을 어렵게 물리친 왕 공자는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는 무작정 다시 그 '대백루'술집으로 가 술을 마시기로 했다. 갑자기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 온 것은 그가 몇 잔의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기분을 돋우고 있을 무렵이었다.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한 무리의 강호 사람들이 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구 척이나 될 성싶은 큰 키에 흥하게 생겨 먹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큰 탁자 주위에 둘러 앉더니 주인을 소리쳐 불렀다. 주인이 허리를 숙이며 달려왔다. 그들은 다시 벽력같은 큰소리로 술과 안주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중 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오늘 꽃구경 하는데 그대들은 찍소리도 내지 말라구. 큰형님의 분부를 들어야 해." 다른 이들이 그대로 따르겠노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데 한 사람이 킬킬 웃으며 반기를 들고 나섰다. "아마 큰형님도 정작 그런 일에 봉착하기만 하면 꽃에 반해서 찍소리도 못하게 될걸. 그땐 우린 또 뭘 기다려야 하나?" 큰형님이라 불리는 자가 일침을 놓듯 인상을 쓰며 받아쳤다. "허튼소리! 내가 언제 꽃에 반한 적이 있었냐?" 모두들 큰형님이란 자가 화를 내는 것을 보고는 좋은 말로 눙치기에 바빴다. 그런데 반기를 들었던 자가 다시 덧붙였다. "큰형님, 이번엔 정말로 무시해 버릴 게 아닙니다요. 형님께선 그때 가서 잘 보십시오. 형님의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우린 그 명화(名花)를 얻어 마음껏 즐기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