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5년동안 사랑 - 4편 (4/10)
"미안해...........아빠가 ㅤㄷㅚㅆ는데 축하해주지 못해서........." 내 뺨 위로 무언가 흘러 내렸다. 눈물이었다. 두 눈을 크게 뜬 체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런데 울음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가슴은 터질 듯 답답한데 입에 선 아무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슬펐다. 누나가 가여워서 슬프고 누나 뱃 속에 있는 내 아이의 운명이 슬펐다. 입에서 컥컥 거리면서 소리가 났다. 그 때서야 울음소리가 터졌다. 나는 목 놓아 울었다. 어찌할지 몰라서 그냥 목 놓아 울었다. 바닥을 뒹굴면서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 누나도 나를 잡고 울었다. 우린 서로를 잡고 울고 또 울었다. 어떻게 진정이 ㅤㄷㅚㅆ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몰랐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냥 거실 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누나를 바라 봤다. 누나도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 모습에 다시 눈물이 나오려 했다. 하지만 나는 참았다. 더 이상 내가 울면 안 된다. 맹세하지 않았던가 무슨일이 있더라도 누나를 지켜주기로............ 누나를 보듬어 안았다. 누나도 나를 마주 안았다. 방안엔 적막 만이 흘렀다. 누나와 나는 서로 말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알기에 굳이 말이 필요 없었다. 그냥 서로를 부둥 켜 안은 체 누워만 있었다. 누나의 손이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미안해.........내가 못 나서..........니가 마음 고생하게 해서..........." "그런 소리 하지마..........누나 잘못이 아니야............." 누나가 슬픈 얼굴로 한 숨을 쉬면서 나에게 등을 보이면서 돌아 누웠다. "아니야.........다 내 잘못이야..........애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 "............................." "다 내 잘못이야........불쌍하게 엄마 잘못 만나서............." 누나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자신을 탓 했다. "이제 겨우 5주라는데............" 5주......우리의 첫날밤에 생긴 아이였다. 그 날 얼마나 행복했던가......... 신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주면서 또 한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같이 주셨다. 내가 등 뒤에서 누나를 안았다. "병원에서 그 사실을 알고 나도 모르게 이리로 왔어.... 너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라......." 그럴 것이다. 어찌 쉬울수 있겠는가? 동생의 아이를 가진 자신을 어떻게 쉽게 얘기하겠는가?............ "광태야.........부탁 하나만 들어 줄래?" "그래........말해..........뭐든지 들어 줄께." 누나가 나를 향해 돌아 누웠다.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한 참을 바라봤다. "우리 아기 보낼때까지............아빠가 되줄래?" 내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그럴께........그래야지.........당연히 그래야지............." 누나가 내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니 사랑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서 보내고 싶어..........." "알았어...........내가 어떻게 하면 되?" 나에게 한 달의 시간이 주어졌다. 아버지로 살 수 있는 한 달의 시간.............. 우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주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 슬픔은 가슴 한 구석에 묻어 두고 뱃 속의 아이도 느낄수 있게 행복하기로 약속했다. 그것이 우리가 아이에게 해 줄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에......... 정말 바쁜 하루 하루였다. 누나가 일주일에 두 세번 나에게 와서 자고 갔다. 조카들을 재우고 나오면 내가 태우고 와서 자고 또 새벽에 데려다 주고 못 오는 날은 누나 집 앞에서 단 한 시간이라도 만나고 돌아왔다. 피곤했다. 하지만 한달이다. 고작 한달............ 우리 아이가 이 세상에서 엄마 아빠를 느낄수 있는 시간이 고작 한 달 뿐이었다. 누나가 집에서 자고 갈 때 우리는 꼭 사랑을 했다. 사랑이 넘치는 섹스를 했다. 누나가 더 적극적으로 원하고 움직였다. 아마 누나는 그런것이 아기에게 나를 느끼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ㅤㅁㅕㅈ 일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우린 더 불타 올랐다. 누나와 나에겐 정말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지만 그럼으로 인해 우리의 사랑은 더욱 더 견고해졌다. 그렇게 한달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우린 둘 다 아이를 보내지 못했다. 약속한 한 달이 지나고 다시 이십여일이 지날때까지도......... 누나의 가슴은 더욱 커지고 단단해졌다. 배도 불러오는게 표가 났다. 난 매일 그 배를 쓰다듬으며 잠이 들었다. 그 날은 누나가 일찍 왔다. 내가 퇴근했을 땐 식탁위에 음식이 가득했다. 화장을 예쁘게 하고 옷도 예쁘게 입고 있었다. 무릅 아래까지 내려오는 하늘 하늘한 치마가 정말 잘 어울렸다. 누나와 나는 촛불을 켜고 둘만의 만찬을 즐겼다. 아니 우리들의 아기까지 셋이였다. 식사가 거의 끝날때 쯤 누나가 힘겹게 본론을 꺼냈다. "광태야..........." "응........" "내일..........시간 좀 낼수 있니?..........." 드디어 때가 된 것이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눈 앞에 닥치자 두려움이 밀려 왔다. "그럴께........회사엔 얘기하면 되.........." 누나가 상을 치우는 사이 난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불쌍한 아기.............. 이제는 보낼 시간이 온 것이다. 세상의 빛 한번 보지 못하고 보낼수 밖에 없는 내 맘이 갈기 갈기 찢겼다. 내가 이런데 세 달 가까이 뱃속에 품고 있던 누나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플까?.......... 내가 슬퍼할 때가 아니다. 내가 누나를 위로해야 했다. 내가 옆에서 든든한 벗팀목이 되 주어야 했다. 9 집으로 들어왔을 땐 주방을 다 치운 누나가 손을 닦고 있었다. 누나가 날 보고 웃었다. 자신의 마음은 찢어질듯 아플텐데도 날 보면 언제나 웃는다. "어서 씻어" "응......." "깨끗이 씻어 !!!" 왠지 여운이 남는 말이었다. "예......예......알겠습니다........송 여사님.........." 청아한 누나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다. 내가 씻고 나오자 누나가 바로 씻으러 들어 갔다. 난 침대에 누워서 누나를 기다렸다. 오늘은 우리의 아기와 보내는 마지막 밤이다. 아이가 생긴 날처럼 오늘도 잠을 못 잘 것 같았다. 한 참이 지나서야 누나가 나왔다. 팬티와 브라만 입은 모습이다. 누나의 배가 제법 불러 있었다. 누나가 침대가로 오더니 나를 내려다 보면서 브라를 벗었다. 누나의 그 큰 가슴이 출렁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날 바라보는 누나의 눈빛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누나가 이불을 들추며 나에게 안겨 왔다. 금방 씻고 나온 피부가 너무 부드럽고 촉촉했다. 누나의 몸을 부드럽게 안았다. 내 입술이 이마에서 눈으로 다시 볼을 타고 누나의 입술과 만났다. 서로의 혀가 섞이고 침이 섞였다. 우린 이미 부부처럼 한 몸이었다. 하지만 내일이면 그 몸의 일부분을 아니 가장 소중한 부분을 도려내야 했다. 누나의 몸짓이 그 어느날보다 뜨거웠다. 누나가 느끼면 아기도 느낄 것이다. 임신을 하고 누나의 몸은 더 풍만해졌다. 탱탱하고 큰 가슴을 가득 물었다. 커진 유두가 내 입에 가득 찼다. 양쪽을 오가며 배고픈 아이처럼 빨고 또 빨았다. 누나의 두 손이 내 머리와 등을 오가며 쓰다듬었다. 가슴 사이의 계곡을 타고 내려와 배꼽에 멈췄다. 그 곳에 내 입을 맞췄다. 탯줄을 통해 아빠의 입김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누나의 아랫배에 귀를 대었다. 마치 아기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내 아이를 느낄수 있었다. 누나의 손이 내 머리를 꼭 안았다. "미안해........아가 정말 미안해.......... 엄마 아빠를 용서해.........."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누나의 배 위로 흘러 내렸다. 아기의 몸 위로 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누나도 울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엎드려 한참을 울었다. 눈물을 그치고 상체를 세웠다. 다리를 살짝 벌린 체 누워 있는 누나의 배가 제법 불러 있었다. 그 배에 입을 맞췄다. 내 아이와 마지막 입맞춤이었다. 팬티를 잡고 내리자 누나가 엉덩이를 들어 주었다. 누나의 보지에 입을 맞췄다. 동물적인 키스가 아닌 경건한 입맞춤이었다. 저 자궁속 깊고 따뜻한 곳에 내 아이가 살고 있었다. 마치 아이에게 입을 맞추 듯 그렇게 계속 누나의 보지속에 내 입을 맞추고 있었다. 누나는 입술을 악 물고 있었다. 누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고 있었다. 내 혀가 누나의 예민한 부분을 감았다. 누나의 허리가 흠칫 떨었다. 난 울면서 누나의 보지을 빨고 누나는 울면서 허리를 튕겼다. 정성을 다해서 내 혀를 돌리면서 보지을 애무했다. 그렇게 우리들은 슬픈 몸부림을 쳤다. 내 기둥을 잡고 누나의 보지 입구에 맞췄다. 누나가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 보았다. 누나의 눈엔 눈물이 가득했다. 내 기둥이 동굴의 살들을 밀어내면서 서서히 밀려 들어갔다. 누나의 눈이 감기고 입이 벌어졌다. 감긴 눈 사이로 눈물이 흘러 내렸다. 혀로 그 눈물을 ㅤㅎㅏㅀ아 주었다. 내 허리가 서서히 일렁이기 시작했다. 누나의 두 팔과 두 다리가 내 몸을 힘있게 감았다. 그렇게 우리 셋은 한 몸이 되었다. 뜨겁게 뜨겁게 한 몸이 되었다. 비록 마지막이지만 오늘밤이 누나와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누나의 보지가 꿈틀대면서 요동쳤다. 누나의 입에 선 울음소리와 신음소리가 섞여서 울려 나왔다. 누나가 몸부림을 쳤다. 너무나 슬픈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누나의 임신과 어쩔수 없는 중절수술로 인해 우리 사이는 많이 어려워 졌다. 아무래도 그 일로 인해 누나의 심적 부담과 죄책감이 극에 달했던 것 같았다. 많이 우울해 했고 만나도 예전같이 웃지 않았다. 그런 날이 지날수록 나 역시 부담이 늘었다. 우리 둘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난 많은 노력을 했다. 그 노력이 통했는지 한달이 지날 즈음 누나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누나도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다. 임신중에 자주 만나던 버릇 때문인지 우리는 일주일에 두 세번씩 꼭 만났다. 대신 주말시간은 조카들에게 양보했다. 극장도 가고 술도 한잔하고 노래방도 가고 비디오방도 그때 누나랑 처음 가 보았다. 우린 다시 연인이 되었다. 누가봐도 우리는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그 때 자주 가던 단골 술집 사장님은 우리 부부가 잘 어울린다고 또 행복해 보인다고 아부까지 했다. 물론 우리 둘의 마음을 알겠느냐만은 그 순간은 행복했다. 누나와 난 그 집에서 만은 아이가 둘인 부부가 ㅤㄷㅚㅆ다. 그래서 그 집을 더 자주 갔는지도 모르겠다. 두달 가까이 흘러서 그 날도 누나와 저녁을 먹고 나서 누나가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젠 예전의 환한 모습으로 돌아온 누나였지만 나의 행동만은 그러지 못했다. 장난스러운 얼굴로 날 보면서 웃는 그 얼굴........... "언제까지 손만 잡고 잘껀데?........." 그 순간........ 심장이 터져 버리는 줄 알았다. 약간은 교태스러우면서도 장난스러운 그말........... 사랑하는 여인의 그런 말이 이렇게 자극적일 준 그때까지는 몰랐다. 가슴이 벅차 오르고 기대감으로 온 몸이 저려 왔었다. 하지만 또 임신이 걱정이었다. 콘돔을 끼고 ㅤㅁㅕㅈ번했지만 나도 누나도 불만족이었다. 우린 서로의 감촉을 느끼면서 하는 섹스를 좋아했다. 서로의 속살을 느끼지 않는 섹스는 사랑하는게 아니라고 서로 생각했다. 또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할때마다 콘돔끼면 도대체 얼마나 돈이 많이 들겠냐?..... 한 두번 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해서 또................" "에구~~~~~ 그래서 이 누님이 준비했다." 누나는 루프를 시술했다고 했다. "장가도 못간 동생 거세는 못시키겠고........... 어쩌겠니........이 누나가 조금 희생해야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하는 누나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누나도 우리 미래를 생각했을 것이다. 앞으로의 관계를 위해 그렇게 한 누나의 마음씀씀이가 나를 감동시켰다. 하지만 그로 인해 누나의 몸은 고생을 많이 했다. 생리주기도 아닌데 가끔 복통에 시달리고 머리도 가끔 아프다고 했다. 그럴때면 내가 정관수술을 받고 싶다고 했지만 누나는 펄쩍 뛰면서 씨도 없는 남자는 만나지도 않겠다고 엄포를 놓곤 했다. 말은 그리했지만 내 미래를 위해서 절대로 그렇게 할 누나가 아니란 건 내가 더 잘안다. 누나는 내 정액을 자궁속에 오래 품고 있는 걸 유난히 좋아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은 없었다. 우리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방법은 그게 유일했다. 두 달만의 섹스.......... 우리 둘의 첫날밤처럼 엄청난 흥분을 느꼈던 것 같다. 우린 단 한번의 섹스를 해도 진이 다 빠지곤 했다. 내가 생각해도 우리 둘의 속궁합은 기가 막혔다. 어쩌면 여태껏 우리 관계가 유지된데는 육정 또한 많은 이유를 차지 했을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조금 지나 다른 연인들처럼 다투기도 많이 했지만 잠자리에서 거의 다 풀곤 했다. 누나와의 섹스는 처음 해보는 것도 많았다. 물론 누나는 거의 모든게 처음이었지만 나도 카섹스는 누나가 처음이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가끔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신경쓰면서 하는 카섹스가 정말 짜릿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누나는 다시는 안한다고 했지만 가끔 기회가 오면 못 이기는 척 같이 즐겼다. 한번은 외식을 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식탁에서 옷도 벗지 않은 체 누나의 치마를 위로 걷고 팬티를 옆으로 밀고 바로 삽입을 했을때 누나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냥 폭팔 한 적도 있었다. 누나는 한번 오르가즘에 오르면 조금만 움직여도 연속해서 ㅤㅁㅕㅈ번이고 다시 폭팔을 하는데 그 날은 거의 식탁이 무너질 정도였다. 그리고 생리중에 했던 것도 누나가 처음이었다. 다음날 침대포 빠느냐고 너무 고생해서 다음부턴 거의 하지 않았지만 생리 시작이나 끝날때쯤 유난히 성욕이 땡기는지 몇번 아슬 아슬한 적은 많았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이 깊어 갈수록 조카들의 대한 미안함은 커져 갔다. 남의 자식도 아니고 내 조카이며 누나의 아이들인데 나로 인해 엄마와의 시간이 줄 수 밖에 없으니 편하지가 않았다. 물론 누나가 예전보다 더 신경쓰고 나도 시간을 내서 놀아주곤 했지만 완전히 죄책감을 벗어나진 못했다. 내 맘 속에선 조카가 아니라 친 자식과 같았다. 아이들 문제라면 난 누나와의 일도 미뤘다. 누나는 그 점을 항상 고맙게 생각했고 그 고마움은 나에 대한 사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누나는 말도 조심하는 편이었고 공손해졌다. 존칭을 쓴다거나 무조건 복종을 하는건 아니었지만 누나에게서 남자로써 대우를 받을 땐 그 우월감에 어찌나 우쭐하던지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누나가 인정하는 남자로써 누나옆에 당당히 서 있게 된 것이다. 10 누나와의 사랑으로 내 생활은 윤택해졌다. 냉장고엔 항상 먹을게 채워져 있었고 집은 언제나 깨끗했다. 그 무엇보다 난 매사에 의욕적으로 변했다. 그 모든것이 누나와의 사랑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누나의 생활은 최악으로 흘러 갔다. 몇달이 흐르고 매형이 빚에 허덕이다 살던 집을 팔고 월세로 이사를 했는데 내가 봐도 아이 둘을 키울만한 여건이 아니었다. 정말 최악이었다. 거실 조차도 없는 딸랑 방 한칸짜리 월세집 그 지경까지 갔는데도 남편이란 작자는 관심도 없고 시댁도 나 몰라라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자식이 미워도 손자들과 며느리를 그런식으로 박대 할 순 없는 것인데 참 모질고 생각없는 집안이었다. 난 이혼을 얘기했지만 누나는 무슨 미련 때문인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마 아이들과 시골에 계신 부모님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활비도 제대로 없어 누나는 짬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내가 많은 부분을 도와야 했다. 그때쯤 누나에게 나는 모든걸 맞기고 상의할 유일한 남자였다. 동생이면서 사랑하는 남자.......... 누나는 많이 힘들어 했지만 꿋꿋이 버텨내면서 부지런히 살았다. 내가 아는 예전의 누나 모습이었다. 안 좋은 일은 갑자기 몰려오는 것인지 고향에선 아버지가 암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정말 하늘이 무너졌다. 의사의 말대로 정말 3개월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삼오제가 끝날때까지 매형도 누나의 시댁식구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누나는 정말 화가 났고 그 일로 이혼을 결심했다. 나머지 가족들도 이번일로 모든걸 알게 된 것이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 시점에 난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삼오제가 끝나고 난 혼자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 앞에 엎드려 누나와의 일을 고백했다. 비록 살아 계실 땐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떳떳하게 고백해야 내맘이 편할 것 같아서 였다. 그리고 앞으로 할 일도 다 말했다. 둘 다 아버지 자식이니 보살펴 달라고 엎드려 빌었다. 누나에게 조카들 핑계를 대고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시켰다. 그리고 누나는 이혼을 했다. 물론 쉽게 한건 아니지만 매형이란 사람도 아이들 때문이라는걸 알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 누나와의 처음 그 일이 있고 2년쯤 지났을 때 우린 남매가 아닌 완전한 연인이 돼 있었다. 정확한 기억은 언제인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누나는 나에 대한 호칭을 완전히 "자기야"로 바꿔 불렀다. 요즘은 부부끼리 쓰는 "당신"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사랑의 징표로 맞춘 반지를 끼운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지금은 누나집과 내 집을 오가면서 반 동거 상태다. 내가 사는 곳 주위에 사람들은 우리 둘이 당연히 연인인줄 안다. 그 사람들이 우리 관계를 안다고 해도 이젠 두렵지 않다. 우리 관계가 6년째로 접어 들었지만 서로를 보면 아직도 가슴이 뛰고 그 어떤 연인보다 금슬이 좋았다. 이젠 끝내는 게 더 힘들것이다. 아니 불가능하다. 조카들도 이젠 많이 커서 고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2학년이 ㅤㄷㅚㅆ다. 누나와 난 2,3년안에 아이를 하나 낳기로 했다. 누나가 더 나이 들기전에 해야 하기에 조금 서두르고 있는 중이다. 그 일에 따른 모든 문제는 이미 상의가 끝났다. 조카들도 엄마가 애인이 있는 줄 알고 (물론 나인줄은 모른다.) 동생이 생기는데 모두 찬성했다. 난 지금의 내가 가진 것을 언제까지나 지킬것이다. 그러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 놓았다. 누나를 위해서는 모든걸 버릴 준비까지도............... 외전 1 누나를 만나면서 병이 생겼습니다. 누나를 비롯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병.............. 어느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고 이유를 알수 없는 불안함이 온 몸을 휘감고 누군가에게 쫏기는 듯한 느낌............... 누나를 사랑하면서 생긴 이런 병들은 아마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내가 지은 죄의 무게라 생각합니다. 이 곳에서 이렇게라도 풀어버리면 나을까 하지만 이것도 내 맘을 온전히 편안하게 해주지는 못하는군요. 어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도 움츠러 들고 마음도 답답하고 우울했습니다. 가끔 이런 날은 누나가 더 그리워 집니다. 이젠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기에 만남에 대한 부담도 없고 그저 내 얼굴만 보고 내 품에서 잠자는 걸 제일 좋아하는 누나이기에 전화해서 바로 만나기로 했죠. 어제 그제도 자고 갔지만 내 목소리를 들은 누나는 이유도 묻지 않고 바로 달려 오더군요. "그 새를 못참고 내가 또 그렇게 보고 싶었어?" 만나자 마자 날보고 웃으면서 말하는 누나때문에 우울했던 내 기분도 좋아지더군요. "응......보고 싶었어......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 "에구~~~~병이다 병......." 맞습니다. 전 병에 결렸습니다. 단 이틀을 보지 못하면 죽을것 같은 불치병........... 아무 스스럼없이 내 팔짱을 끼면서 날 이끕니다. 옆에서 풍기는 샴푸향기와 화장품과 섞여 내 코를 자극하는 누나의 육향이 어떤 기대감으로 내 가슴을 채우더군요. "자기야......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할까?......... 생리할때가 되서 고기가 땡긴다." 사랑하는 여자가 먹고 싶다는데 뭔들 못 먹겠습니까. 배 두드리면서 먹고 나왔는데도 왠지 아쉬움에 한 잔 더 하자 했더니 걱정스럽게 절 바라보더군요. "자기.......무슨 일 있어?........." "아냐......그냥 맥주 한 잔 더 먹고 싶어서.........." 누나는 내가 하라면 불 구덩이도 뛰어들 여자죠. 맥주 한 잔 더 먹는 건 일도 아니지만 평상시에 안 하던 짓이라 누나가 뭔 일인가 싶었을 겁니다. 골뱅이 안주에 오백 한 잔 먹으면서 오랜만에 정말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예전에 첫날밤 얘기부터 무슨 이유로 싸웠는지 기억조차 없는 얘기 그리고 올 여름 휴가 계획도 대충 세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