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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5[중신통왕중양편] - 51편 (51/60)

2026-09-30 18:52:09 조회 20
얼른 뒤로 물러선 사자우는 병장기를 쥔 손에 더욱 기를 모았다. 얼떨결에 물러선 자리가 바로 왕중양과 가까운 곳이었다. 사자우가 왕중양을 향해 다시 병장기를 휘둘렀다. 왕중양의 등짝에 병장기가 날아와 박혔다. "욱!" 왕중양은 피를 왈칵 토하고 말았다. 삽시간에 그의 목과 앞가슴은 피로 얼룩졌다. "으하하하하! 왕중양, 내일부터 강호에서 너의 이름은 사라질 것이다!" 단지흥을 살리기 위해 기를 모으고 있던 터라 미처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왕중양의 두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는 자신이 손을 거둔다면 곧 단지흥의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아픔을 참아 가며 계속 단지흥의 등에 손을 얹고는 기를 불어넣었다. 선비의 부채가 허공에서 바람을 갈랐다. 사자우가 힐끔 그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네 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사자우가 갈고리를 선비의 다리 쪽으로 휘어쳤다. 정강이를 얻어맞은 선비가 공중으로 치솟듯 오르더니 곧 나가떨어졌다. 이 사대시위 중에서 벌써 셋이나 사자우의 기묘하게 생긴 병장기에 무너지고 말았다. 남은 사람은 오직 나무꾼뿐이었다. "그 놈을 물고 늘어져라!" 선비가 쓰러진 채 소리치자 나무꾼이 눈에 불을 켜며 사자우를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그러나 역시 사자우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를 못했다. 사자우가 병장기 끝을 나무꾼에게 내밀자 그는 가슴을 얻어맞고는 떨어졌다. 이제는 왕중양만 해치우면 그만이었다. 그가 왕중양에게로 접근해 오며 잘근잘근 이빨로 냉소를 씹었다. "이제 너는 무림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거다!" 사자우가 주먹을 모아 쥐며 왕중양을 노려보았다. 잠깐 잠이 든 모양이었다. 잠결에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 눈을 뜬 임조영은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혹시 왕중양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아니면 단지흥에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임조영은 지체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 중 누구라도 일단 화가 미쳤다면 얼른 손을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 걸음에 달려온 임조영의 얼굴은 그만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사자우가 왕중양과 단지흥을 향해 일격을 날리려고 하고 있었다. "멈추어라!" 소리를 내지른 그녀가 이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녀보다 한 발 앞서 모습을 나타낸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모용준이었다. 모두들 모용준의 출현에 넋을 놓고 말았다. 왕중양은 당장에 달려가 그의 목을 베어 버리고 싶었다. 순간 모용준과 사자우 사이에 묘한 눈빛이 오고 갔다. 모용준이 임조영을 향해 이죽거렸다. "오랜만이군. 그래 아직도 나의 황비 노릇을 할 마음이 없는 건가?" 임조영은 이를 갈았다. 모든 화근은 바로 이 모용준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보기만 해도 치가 떨렸다. 임조영이 검을 뽑아들고 모용준의 숨통을 찔렀다. 재주넘기를 하며 그녀의 검을 피한 모용준이 웃어댔다. "지아비를 죽이고 황위를 빼앗으려는 속셈이냐? 하하하, 넌 내게 아들 하나를 낳아 주어야 할 몸이야." 임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더욱 큰 살의의 바람이 불었다. 왕중양과 단지흥의 목숨은 풍전등화였다. 사자우의 병장기가 다시금 육중한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내리꽂혔다. 사자우는 일단 겁을 주어 두 사람이 떠는 광경을 즐기고 싶어했다. 전의를 잃고 물러서 있던 사대시위들이 일제히 달려 들었다. 사자우가 먹이를 발견한 독사처럼 병장기를 곧추세워 들고는 이들을 맞이할 태세를 갖추었다. 이때 그의 앞으로 시커먼 물체가 날아들었다. 이 사내는 손과 팔뚝에 맨살이라고는 보이지가 않을 정도로 넝마들을 잔뜩 감고 있었다. 넝마를 두른 이 사내가 사자우를 향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제31장 종남산의 혈투 사자우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껄끄러운 존재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이 거렁뱅이 놈아, 내 일을 방해하지 마라!" 사자우가 욕설을 퍼붓자 홍칠은 여전히 헤죽거리며 맞받아쳤다. "이 천하의 몹쓸 난쟁이 놈아, 네 농은 여기 오면 무슨 좋을 일이라도 있을 거라 믿었더냐? 오늘 이 홍칠에게 혼 좀 나 봐라!" 홍칠이 온 젓을 안 임조영은 속으로 안심을 했다. 모용준을 향해 분노의 검을 힘껏 휘두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모용준은 검을 피하느라 허둥댔다. 임조영이 바싹 접근하며 검끝에 힘을 주어 내리쳤다. 그러자 모용준의 소맷자락이 부욱 찢어지면서 너덜거렸다. "난 네 지아비인데 이럴 수가 있느냐?" 모용준은 끝까지 임조영의 심기를 어지럽힐 속셈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서 모용준의 숨통을 끊어 놓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홍칠과 사자우는 오랫동안 서로를 향해 살기 띤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나 사자우는 지금 자신이 불리한 위치해 처해 있음을 깨달았다. 단지흥이 데리고 온 사대시위들 역시 자신을 향해 접근해 오고 있는 게 아닌가. 단지흥은커녕 왕중양도 죽일 수 없게 되자 사자우는 바짝 애가 탔다. 슬쩍 모용준을 돌아보며 그가 말했다. "이봐, 왜 아직도 자리를 피하지 않고 있나?" 그가 모용준에게로 뛰어갔다. 모용준은 자기를 도우러 온 줄 알고 내심 안심을 했다. "나를 따라가지 않겠나? 동궁이 비어 있다구." 조금 여유로워진 모용준이 임조영에게 다시 수작을 부렸다. "모용준 이 놈, 당장 죽을 놈이 무슨 말이 그리도 많더냐?" 임조영의 입에서도 욕설이 터졌다. "재수가 없을라니 계집까지 나서 귀찮게 구는구나!" 사자우가 병장기를 거칠게 내둘렀다. 병장기가 그녀의 몸 가까이서 윙윙거리자 왕중양의 다급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때렸다. "조심하시오!" 왕중양의 목소리를 들은 임조영은 내심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을 여전히 살갑게 대해 주고 있는 그에게서 깊은 정을 느꼈다. 그러나 위기는 더욱 심각하게 임조영을 조여 왔다. 사자우가 필사의 방법으로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술수를 부렸던 것이다. 그가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에서 독사 두 마리를 꺼내는 게 아닌가? 독사들은 지체할 것도 없이 곧장 임조영의 머리와 어깨로 건너왔다. 질겁을 한 임조영이 뱀을 검으로 내리쳤다. 그중 한 마리가 검에 맞아 멀리 날 아갔다. 그러나 뱀은 상처 하나 입지를 않았다. "아니!" 이를 본 임조영은 더욱 놀라고 말았다. 그런데 다른 독사 한 마리가 자신의 어깨 위에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사이 독사가 그녀의 어깻죽지를 물어 버렸다. "네 년은 지금 독사에게 물렸다.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면 될 것이다." 사자우가 비웃음을 남기고는 모용준과 함께 서둘러 자리를 떴다. 바위를 박차고 뛰어오른 사자우가 고함을 질렀다. "거렁뱅이 놈아, 조만간에 다시 네 놈을 찾아올 것이다. 어디 두고 보자!" 임조영은 서서히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이마에는 검은 줄이 한 가닥 새겨졌다. 그 줄은 차츰 수를 더해 가며 눈썹 바로 근처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독이 많이 번졌어!" 단지흥이 놀라 소리치자 홍칠이 사람들에게 일렀다.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하오!" 왕중양의 눈빛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일그러졌다. 임조영이 비로소 고개를 들고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가슴이 무거워졌다. 그녀가 부리는 사화를 계집이 쪼르르 달려오더니 역시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임조영이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사내놈이 풀어놓은 독사에 물렸다. 이제 곧 죽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나를 업어 집까지 옮겨 줄 수 있겠느냐?" 계집은 몸피도 작고 몹시 여위었지만 임조영의 명을 거역하려 들지는 않았다. "사부님의 말씀 잘 알아들었어요. 사부님께서는 이 더러운 사내놈들이 지켜 보는 데서 고통을 당하고 싶지 않으시다는 말씀이지요?" 계집의 말이 당돌하기는 했으나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임조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이마에는 검은 빛을 띤 땀방울들이 송글송글 맺혔다. 모두들 그녀의 땀방울이 검은 색인 것으로 보아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걸 알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계집이 임조영을 업자 단지흥이 왕중양을 향해 입을 열었다. "빨리 구하면 목숨을 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는 사대시위에게 그녀를 옮기지 못하게 명령했다. 계집의 등에 업힌 임조영이 뇌까렸다. "사내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야. 넌 이것을 잘 알아야 해." 계집이 눈물을 흘리며 임조영의 말에 순종했다. 계집은 임조영이 시킨 대로 그 말을 중얼거리며 계속 걸음을 때었다. "사내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야!" 왕중양이 앞을 가로막았다. "고집을 피우지 말고 어서 치료를 받게나." 그러나 임조영은 왕중양을 거들떠보지 않고 계집에게 명했다. "내 검을 집어라!" 계집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집어 들었다. "그럼 그 검으로 내 가슴을 겨누어라. 만일 저자들이 물러서지 않으면 넌 나를 찔러야 한다! 그 다음엔 너도 찌르고……" 임조영이 단호한 기색을 나타냈다. 계집과 임조영 사이에 오고 가는 말을 듣고 있는 왕중양은 가슴이 쓰렸다. 그는 표독스럽게 변해 가는 그녀의 눈길에서 증오를 읽었다. 그것은 사내에 대한 깊은 저주의 기운이었다. 계집은 임조영을 추스려 업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왕중양이 잠시 고개를 숙였다 들며 홍칠에게 조용히 부탁을 했다. "길을 비켜 줍시다." 계집의 걸음이 비칠대는 것이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계집은 힘겹게 몸을 움직여 초막으로 들어갔다. 왕중양은 달려가서 임조영을 부축하고 싶었으나 한 걸음도 뗄 수가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변해 버린 그녀의 태도 때문에 선뜻 용기를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홍칠이 왕중양에게 말을 건넸다. "지난번엔 꽤 고생을 했었겠군요? 그 사자우란 놈이 갑자기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아다녔지요. 그 놈이 벼랑에서 그 짓을 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날 그는 얼른 왕중양에게로 되돌아오려고 했었다. 그런데 없어진 모용준을 찾아 헤매다 의군들이 오합지졸로 흩어져 금나라에 당하게 되자 그걸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사자우가 왕중양을 싸들고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왕중양은 그저 넉넉한 미소로 홍칠의 말을 받아 주었다. 그는 자신을 벼랑 아래로 떨어뜨린 자의 정체를 알아낸 것으로 만족한다는 태도였다. "과연 무림의 맹주답군요." 홍칠의 칭송에 왕중양이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제부터는 무림의 맹주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소. 제 한 몸만 살면 되는 거지 날마다 바쁘게 뛰어다녀서 뭘 하겠소?" 홍칠과 단지흥은 얼빠진 모습으로 왕중양을 주시했다. "의군이 패하기는 했어도 의군이 사라진 것은 아니오. 우리들이 형제들을 다시 모아 일어서면 될 것이오." 홍칠이 의연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왕 대협이 맹주 자리에 있었기에 기세가 그만했던 것이오. 이번에도 대협이 나서시오. 그러면 우리 개방의 형제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대협을 받들테니." "그건 안 되오. 이번엔 개방에서 하는 게 옳소. 개방은 천하에서 세력이 가장 크니 그대나 아니면 개방의 방주가 하는 것이 적당하오." 왕중양이 단호하게 거절을 하자 홍칠이 언성을 높였다. "그렇게 되면 대협께서 나를 해치는 것이오. 나란 놈이 얼마나 어리석다는 걸 모르오? 또한 개방에는 강호객 전체를 이끌 만한 인물이 없소. 더욱이 방주인 소씨 거렁뱅이는 아다시피 성격이나 성품으로 보아 적당하지 않소." 그러나 왕중양은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다. "자기가 못하는 일을 왜 남에게 떠맡기려 하는 것이오? 벼랑에서 떨어진 후로 난 이미 두 세상을 살아 본 사람이 되었소. 허나 다시는 무림의 맹주 노릇은 하지 않겠소!" 홍칠이 다시 왕중양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단지흥이 눈빛으로 그만두라는 뜻을 보내 왔다. 한 해가 지나고 여름이 들어설 무렵에 사람들은 왕중양이 종남산에 전진교라는 새로운 교파를 세웠다는 말을 종종 입에 올렸다. 이는 떠도는 풍문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전진교에서는 6월 초여샛날 종남산에서 전진교 창립대회를 가지기로 했다. 이 대회 기간에 강호의 영웅호걸들이 다 모일 거라는 말이 나돌자 종남산으로 통하는 길목마다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한편 그 길목마다에 서 밤낮으로 출몰하던 녹림의 화적떼들도 얌전해졌다.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으나 왕중양이 벌이는 일이라니 화적떼들마저 숨죽인 모양이었다. 호걸들뿐만 아니라 화적떼들도 왕중양의 인품을 높이 받들고 있는 터였다. 유월 초여샛날이 훤히 밝았다. 사람들은 이른 새벽부터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종남산으로 몰려들었다. 산속에는 중양궁(重陽富)이라는 새 궁궐을 지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전부터 있었던 낡은 절을 단장한 것에 불과했다. 그래도 사람의 손이 많이 가고 보니 새롭게 지은 궁궐 못지 않은 기품과 웅장함이 엿보였다. 궁 앞에는 구리로 만든 거대한 종이 걸려 있기도 했는데 도사들의 아침공부를 알릴 때 주로 썼다. 또한 구리종 옆에는 역시 큰 북이 있어 종과 쌍을 이루었 다. 종소리가 크게 세 번 울리자 중양궁에서 사람들의 행렬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모두 도복(道服)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중 붉은 도포를 입고 있는 사람이 왕중양이었다. 그는 오직 땅만 내려다보며 걸었다. 바닥에 자신이 풀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이라도 널려 있는지 그는 줄곧 숙인 머리를 들지 않았다. 그의 뒤로 전진교의 일곱 제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 일곱 제자들이 바로 후에 강호에서 이름을 크게 떨친 전진칠자였다.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자면, 으뜸으로 치는 제자 단양자(丹陽子) 마옥, 둘째인 장진자(長眞子) ,담처단(譚處端), 그리고 셋째인 장생자(長垈子) 유처현(劉處玄)과 넷째인 장춘자(長春子) 구처기(丘處機)였다. 또한 키가 작고 뚱뚱한 옥양자(玉賂子) 왕처일(王處-)과 광녕자(廣寧子) 학대통(諦大通) 그리고 마옥의 아내인 청정산인(淸淨散人) 손불이였다. 이들의 기풍을 본 사람들은 모두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한 사내가 불만스러운지 다분히 얕잡아 보는 투로 투덜댔다. "마옥, 자넨 원래 직검 마옥이 아니던가? 또 저 뒤꽁무니에 졸졸 따라오는 건 자네 마누라 손불이가 맞지? 자네 부부가 한 교파에 들었으니 전진교라기보다는 부부처처교(夫夫妻妻敎)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나? 그래 가지고도 도사요 도고(道姑)라 할 수 있는가?" 이 말이 끝나자 또 다른 사내가 비아냥댔다. "여보게 마옥, 자네는 전진교에 들어갔으니 다음부터는 뭐라고 불러야 하지? 그리고 자네 마누라는 여전히 마누라가 맞는가?" 그러나 마옥은 좀체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정중히 읍을 했다. "나는 원래의 직검 마옥이 아니라네. 지금 나는 전진교파의 첫째 제자인 단양자 마옥일 뿐이지. 손볼이도 오늘은 나의 마누라이기 전에 우리 사부님의 문하에 함께 있는 제자라네." 말에 강한 힘을 주어 대답을 하는 마옥의 태도에 사내들이 물먹은 벙어리가 돼 버렸다. 그런데 이번엔 사내 중 하나가 난데없이 왕중양을 불렀다. "왕중양, 듣자하니 그대는 금나라 놈들을 반대하는 의기를 들고 용감히 싸우던 호걸이라고 하더군. 그러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전진교 교주가 돼 버린 연유가 무엇이오?" 마옥이 왕중양 대신 읍을 하며 설명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무림을 빛내기 위해 더는 대사에 참견하지 않을 것이네. 오로지 이 산중에서 무공을 연마하며 도가의 도를 연구하는 것으로 낙을 삼으실 걸세." 곳곳에서 사람들의 코웃음이 픽픽 터져 나왔다. 이들은 왕중양을 비롯한 이들이 무슨 해괴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말이 청산유수로 술술 쏟아지자 더욱 사기성이 농후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품었다. 무림에 숱한 괴변이 일어났고 금이 송의 강산을 반을 넘게 갉아먹고 있는 때라 사람들의 이 같은 추측도 무리는 아니었다. 단순히 교를 연구하고 무공을 익히는 것만은 아닐 거라며 서로 수군거렸다. 괴상한 웃음소리가 사람들 속에서 들려 온 것은 이때였다. 누군가에게 숨통을 잡힌 것처럼 그 웃음 소리는 컥컥대다가는 다시 한 줄기로 길게 뽑아졌다. 왕중양의 인상이 험악하게 돌변했다. "또 여기서 만나게 되는군요!" 그는 자신에게 눈길을 돌린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몸을 빙그르 돌리며 예를 올렸다. 사람들도 적이 놀라는 눈치였다. 죽었다고 믿은 왕중양이 살아서 전진교의 교주가 되었다는 사실만큼이나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이 사내는 왕중양처럼 죽었든지 아니면 종적을 감춘 것이라 알려졌던 모용준이었다. 살아 있는 왕중양에게서 한 번 놀란 사람들은 지금 다시 똑같은 놀라움에 중심을 잃을 지경이었다. "모용준이 놈! 무슨 낯짝으로 여기까지 기어들어왔느냐?" 왕중양이 거침없이 꾸짖자 모용준이 조막손을 휙 내저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무턱대고 성질을 부리면 곤란하오. 내가 뭘 하러 왔느냐고? 여기 올 때 난 거듭 생각을 했었소. 과연 가야 하는가 아닌가를……. 많은 고심 끝에 결국 이렇게 온 것이오!" "네 놈이 어떤 결정을 내렸든 난 상관하지 않는다!" 생각 같아서는 단숨에 모용준의 목을 두 동강 내고 싶을 따름이었다. "왕중양, 온 천하가 다 알고 있소. 나와 그대가 손을 잡고 오랑캐들과 싸운 일을 말이오. 후에 우리가 패한 건 하늘의 뜻이었소. 사람의 힘으로는 어려웠다고 보면 될 것이오. 그런데 당신은 왜 의군이 패한 책임을 남에게 씌우려고 하시오?" "모용준이 놈! 그 주둥이를 다물지 못할까? 네 놈은 무림의 수많은 형제들을 팔아먹고 우리 의군 수만 명의 목숨도 내버리지를 않았느냐?" 모용준이 깔깔대며 소인 특유의 가냘프고 여린 웃음을 토했다. "그대는 아직도 자신이 대단한 인물로 알고 있는가 보군. 그대가 무슨 권리와 자격으로 나를 질책한다는 말이오? 그대가 의군의 두령이었다는 것은 사실이 오만 금나라 놈들을 벌벌 떨게 한 것은 누구였소? 바로 나 모용준이란 말이외다." 모용준이 이처럼 기고만장했지만 한때 술렁이던 강호객들은 입을 굳게 다물 뿐이었다. 사실 수많은 강호객들 중에서 왕중양과 모용준처럼 의군에 참여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모용준이 떠벌리는 말에 어떠한 사족도 달 수 없는 입장이었다. "모용준, 어서 물러가지 못할까! 네 놈과 나는 이미 남남이 된 지 오래이다!" 왕중양의 호령에도 모용준은 외눈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그대는 내 형님이었지 않소? 난 크대와 함께 죽으려고 하오. 함께 태어나지는 못했어도 한날 한시에 죽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기쁜 일이겠소?" "가증스러운 놈! 귀찮게 굴지 말고 네 갈 길이나 찾아가거라!" "왕중양, 그대는 교주가 되시오. 난 강호의 악인이 될테니. 난 그대의 전진교를 두려워하지 않소!" 모용준이 낮고 짧게 휘파람을 불자 그의 뒤로 사내들이 모여들었다. 일기충천 지청의 부하 홍분전두(紅粉纏頭)와 날마다 발이 차다고 입버릇처럼 떠드는 계수수(計水水), 그리고 모용준처럼 키가 매우 작은 사내, 사자우였다. 홍칠과 단지흥이 격분한 눈길로 그를 지켜 보았다. 모용준이 왕중양에게 다시 입을 놀려댔다. "그대와 난 형제 간이오. 그대가 나를 모른다고 해도 셋째야 알겠지?" '또 네 놈이 임조영에게 무슨 마수를 뻗으려고 하는 것이냐?' 왕중양은 속으로 울부짖었다. "또다시 임조영에게 입방아를 찧었다가는 용서하지 않겠다!" 먹혀들지 않을 거라 여기 면서도 왕중양은 속에서 치받치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내뱉었다. 모용준은 그런 왕중양을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 이죽거렸다. "난 임조영을 내 황궁의 동궁마마로 맞이할 생각이오. 동궁이 비어 있는 탓에 늘 유감스러웠는데 잘된 일 아니오?" 왕중양은 모용준 같은 철면피의 악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암담하기만 했다. 왕중양과 모용준이 주고받는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듣고 있던 홍칠이 끼여들며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사자우, 내가 알기로는 너에게 뱀 두 마리가 있더구나. 내가 왕지네 두 마리를 줄 테니 그 뱀과 바꾸지 않겠는가?" 홍칠이 왕지네 두 마리를 들어 보였다. 이를 본 사자우는 은근히 구미가 당겼다. '저 왕지네는 예사로운 지네는 아닌 것 같군. 허나 이 사자우는 남과 물건을 갖고 흥정하지는 않는다!' "그럼 그 지네를 여기로 던져라!" 사자우가 쉽게 넘어오지 않자 홍칠이 선선히 지네를 그의 앞으로 던졌다. 사자우는 나름대로 독물을 다루는 데 있어 자신만만한 인물이라 곧 지네의 진가를 알아보았다. "참 훌륭한 지네로군! 소금에 절여진 육포냄새 같기도 하고 오줌냄새 같기도 하고……. 적어도 일곱 가지의 냄새가 한데 얽혀 있는 것 같구나." 그는 지네를 집어 자기 봇짐 속에 넣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자우가 갑자기 몸을 비틀며 비명을 내질렀다. "사자우, 이 거렁뱅이의 꼬임에 결국 넘어갔구나! 네 놈만이 독물을 길들이는 것은 아니다!" 홍칠이 그의 찌그러진 면상을 들여다보며 놀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