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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5[중신통왕중양편] - 29편 (29/60)

2026-09-30 18:55:31 조회 12
궁녀가 그에게 다시 지시했다. "영운은 듣거라. 오늘은 폐하의 대혼(大婚)날이기에 너를 특별히 용서할 것이다. 만약 또 방종을 떨며 황제를 노여움을 샀다가는 목숨이 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영운은 고개를 곧추세운 채 모용준을 노려보았다. "난쟁이 같은놈! 미꾸라지국 먹고 용트름한다더니 네 놈이 용의에 다 앉아 있느냐? 황제가 되겠다는 게 네 팔자에 있더란 말이냐?" 그런데 그는 이미 온몸에 있는 혈도들을 모두 빼앗겨 버렸는지 말만 험상궂게 할 뿐 손가락 하나 제대로 쓰지 못했다. 무례함을 보다못한 궁녀가 다시 영운에게 손을 쓰려고 하자 모용준이 말렸다. "죽이지는 말게. 오늘은 내 혼삿날이니 피를 보고 싶지가 않다." 궁녀가 모용준의 뜻을 헤아리고는 영운의 등뒤에 있는 혈도를 탁 찔렀다. 그러자 영운의 혓바닥이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궁녀가 품속에서 단검을 뽑아 들더니 가차없이 그의 혀를 싹뚝 잘랐다. "폐하, 이젠 헛소리를 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좋다. 다른 놈들도 허튼수작을 하거든 모두 혀를 잘라 버려라!" 모용준이 매우 흡족하게 웃어젖혔다. 자지는 큰 충격에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그러나 혼례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 증혼을 선다, 주혼을 선다, 활성을 올린다, 기악을 울린다 등등 궁녀들이 한동안 야단법석을 떨어댔다. 그리고 나서 주혼인이 높이 목청을 뽑았다. "신부를 동방에 모시어라!" 그러자 황제의 용포(龍袍)를 뒤집어쓴 모용준이 자기보다 큰 자지를 겨우 안고는 신방으로 들어갔다.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자지의 동방화촉의 밤이 되려는 순간이었다. 자지는 모용준을 보며 왠지 우울함에 잠겼다. 오늘이 첫날밤은 아니지만 이전까지 그를 좋아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비록 난쟁이였지만 착하고 인품이 좋아 자지는 그를 존경하기에 이르렀었다. 그런데 지금은……. 차라리 모용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지 않았던들 이처럼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을 것 이다. '강남 모용세가의 공자님과 마주한 자리라면 이렇게 슬프지는 않았을 텐데…….' 자지는 이런저런 생각에 눈물만 흘렸다. 자지를 침대에 눕힌 모용준이 궁녀들에게 그만 물러가라고 지시했다. "저희들은 끝가지 폐하의 시중을 들어야 합니다." 한 궁녀가 당돌하게 입을 놀리자 모용준이 귀찮다는 시늉을 했다.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그만 가렷다!" 궁녀들이 모두 물러가자 모용준이 자지를 향해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사실 나도 이런 혼례는 처음이요." 그러면서 그는 자지의 몸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는 지금 몹시 떨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행여나 자지가 자신에게 몸을 허락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기색도 역력했다. "공자님, 왜 당신은 황제 자리를 원하시나요?" 자지가 입을 열어 작은 소리로 물었다. "황제가 되는 것은 우리 모용세가가 시켜서 하는 것이오. 난 사실 모용세가를 저버릴 수가 없소." 자지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하는데 그가 입을 막으며 속삭였다. "난 그 반화대회에서 그대에게 반해 버렸지. 그대는 나와 신방을 차린 것을 후회하는가?" "난 당신에게 제 일생을 바치는 것을 원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연나라 황제와 혼례를 올릴 마음은 추호도 없답니다." "그럼 모용 공자와 혼례를 치른 것으로 여기면 되지 않나?" 이렇게 말을 마친 모용준이 자지를 덮쳤다. 자지를 끌어안고 모용준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난 그대를 여인으로 만들어 주겠어. 몸이 불덩이 같은 나의 여인으로……." 모용준이 정신없이 자지의 몸을 어루만지며 헉헉 댔다. 자지는 눈을 감은 채로 전혀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모용준이 자지를 반듯이 눕히며 뜨겁게 숨을 토했다. "그때의 일은 잊어버려." 낡은 절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저도 그 일은 생각하지 않아요." 모용준이 자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열여섯 가지의 의복을 모두 벗긴 모용준은 더욱 급히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옷도 벗었다. "공자님, 그저 공자님이라 생각하게 해 주세요." 자지가 촉촉히 젖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그래, 그대의 말을 따르겠어." 모용준은 지금 다른 생각은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손끝은 얼음물에 담갔다 꺼낸 사람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눈에서도 전혀 다른 광채가 쏟아졌다. 겨우 속옷 하나만을 걸친 자지가 알몸이 된 모용준을 향해 다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이것도 공자님이 직접 벗겨주세요." 모용준이 허리를 굽혀 자지의 속옷을 벗기며 떨리는 음성으로 다짐했다. "난 그대와 평생을 같이 하겠어. 공자라는 자리도 모두 벗어 던지고 평민으로 살겠어. 밭 갈고 나무를 하며 그렇게 그대와 행복하게 살테야." 그의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자지는 흐뭇했다. "그래요." 비로소 격정을 이기지 못한 자지가 그의 목덜미를 세게 끌어안았다. 모용준이 한 손으로 그녀의 허벅지와 가슴 등을 쓰다듬었다. 차츰 그의 몸이 자지를 향해 깊은 골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지가 한차례 꿈틀댔다. "모용 공자님, 공자님, 당신은 공자님이죠? 당신은 공자님이예요……." 자지는 모용준을 더욱 세게 안으며 신음 소리를 냈다. 모용준은 거대한 과육 덩어리 위에 얹어진 것처럼 달콤한 향기와 부드러운 감촉에 온몸을 비틀어 댔다. 제17장 무림대회 수많은 풍문을 뿌리던 무림대회가 드디어 영주에서 그 막을 올렸다. 천하에서 이름이 난 영웅호걸들을 무림대회라른 명목으로 영주로 모이게 한 것은 금나라 군대를 물리칠 방책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금에게 반벽강산을 빼앗긴 지금 강남의 나머지 땅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판국이었다. 이런 위기감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기에 천하 호걸들을 불러 대책을 강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영주는 뱀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다. 유종원(柳宗元)이 그의 유명한 글에서 밝혔다시피 영주 땅에는 속살이 검고 겉이 흰 특이한 뱀이 많이 났다. 그 뱀은 사람이 한번 물리면 즉사할 정도로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다. 무림대회를 영주에 정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임안과 멀리 떨어진 입지적인 조건으로 남의 이목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가 그것이다. 또한 뱀이 많은 곳이기에 뱀을 잡아 죽이지 못하면 곧 물려 죽고 만다는 이치를 은연중 깨닫게 해주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껏 한적했던 영주는 며칠째 분주한 나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때를 같이하여 천하의 창기(娼妓)들도 이 영주에 구름떼로 몰려들었다. 녹림호걸들이란 일이 없어 한가해지면 술독에 빠지거나 여색을 즐기는 게 보통이었다. 녹림호걸들 뒤에는 영락없이 여인들이 따라다니는 법이요 여인이 없으면 녹림호걸들도 없다는 식이었다. 경성 회모루의 명기들을 미롯해 소흥(紹興)이나 평강(平江)의 명기들까지 제 몸뚱이 하나로 돈을 벌기 위해 꾸역꾸역 몰려온 것이다. 영주는 며칠 사이에 모인 기녀들로 꽃밭을 이룬 듯 현란했다. 무림대회는 아직 사흘이 남아 있었지만 벌써부터 술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아 규모 있는 대회가 될 듯싶었다. 또한 이번 대회는 개방에서 소집을 하였기에 영주에는 난데없는 거지들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이곳 영주의 중심가인 사가(蛇街) 곁에 판자로 지어진 집들이 새로 늘어서서 또 하나의 거리를 만들었는데 바로 이번 무림대회의 영향으로 생겨난 화가(花街)였다. 오후로 접어들자 화가는 더욱 분주해졌다. 화장을 마친 기녀들이 거리로 나와 손님을 부르는 소리, 간장을 녹일 듯한 웃음 소리, 노랫소리와 술 취한 사내들이 지껄이는 온갖 욕설……, 칼끝에 피를 묻히지 않으면 온몸이 쑤셔 한시라도 견디지 못하는 호걸들이 모였기에 더욱 여인들의 웃음 소리가 커졌다. 이들은 여인에게 사랑이니 순정이니 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 사내들이기도 했다. 화가 저쪽 끝에서 공자차림의 사내가 걸오고 있었다. 다름아닌 왕중양이었다. 그가 검을 등에 지고 이 기녀 골목으로 들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몰렸다. 먼 여행길 뒤라 의복은 지저분하고 지쳐 보였지만 키도 훤칠하고 준수한 외모라 기녀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분을 진하게 처바른 몇몇 기녀들이 그의 앞으로 뛰어나가 애교를 떨기 시작했다. "나으리, 저와 함께 살방아를 찧어 가며 술을 마셔 보시지 않으시겠어요?" 기녀가 노골적으로 왕중양을 유혹하자 다른 한 기녀가 잘록한 허리를 흔들며 콧소리를 냈다. "난 첫눈에 벌써 나으리가 견식이 넓고 즐거움을 아는 풍류남아라는 것을 알아보았답니다. 나으리, 그리고 회모루에 있는 어여쁜 소녀아이들이 이곳에 와 있는데 같이 가지 않으시겠어요?" 회모루라는 말에 왕중양의 귀가 번쩍 뜨였다. 경성의 회모루라면 임조영을 만났던 장소가 아니던가? 왕중양은 기녀가 일깨워 준 기억으로 새삼 그와 둘째 모용준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그들로 무림대회가 이곳에서 열리는 것을 안다면 분명 올 것이라 생각되었다. 기녀들은 잠시 머뭇대며 서 있는 왕중양은 기녀들은 마음이 있어 그러는 줄 알고 한 판자로 된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겉보기와 달리 안은 제법 꾸며 놓은 흔적이 엿보였다. 침대 주위는 다양한 꽃들로 장식해 놓고 탁자 위에도 향기로운 곡주가 놓여져 있어 보기만 해도 흥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얘들아, 귀빈이 찾아오셨다!" 왕중양을 팔을 잡아끈 그 기녀의 소리에 향내가 물씬 풍기는 기녀 몇이 몰려나왔다. 그중에서도 애띠고 정말 막 피어난 꽃과 같은 기녀 하나가 애교스럽게 왕중양을 향해 물었다. "공자님께서는 누가 마음에 드시나요? 어서 골라 보세요." 왕중양은 약간 야릇한 생각이 들어 이들을 둘러보았다. 기녀들이라면 먼저 재물에 대한 눈치가 빨라야 하는데 왕중양이 보기에는 전혀 그런 것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왕중양 앞에서 진정한 여인으로 뽑히기를 바라는 것처럼 갖은 교태를 마다하지 않았다. "회모루에서 잃어버렸다던 그 여인들은 모두 찾았소?" 이처럼 엉뚱한 왕중양의 물음에 기녀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곧 왕중양에게 질문을 던졌던 그 기녀가 살짝 보조개를 피우며 입을 열었다. "찾기는요? 듣자하니 강호에서도 악명이 높은 유운장에서 모두 데려갔다고 하던데 어떻게 찾아요? 다시 와서 해꼬지를 하지 않는 게 다행인데." 기녀가 조금 침통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려고 하는데 웬 사내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 왔다. "해꼬지를 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구? 그건 내가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하하하!" 이윽고 한 사내가 문발을 사납게 들치고는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첫눈에 그가 난쟁이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모용준은 아니었다. "이제 보니 반화대회 때 만난 공자시구먼. 그런데 여긴 또 무엇을 하러 왔지?" 이 난쟁이는 왕중양에게 처음부터 무례하게 굴려고 작정한 모양이었다. "난 친구를 찾으러 왔소이다. 그러는 당신은 이곳엔 웬일이오?" 무뚝뚝한 왕중양의 대꾸에 사내가 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자기 콧등을 가리키며 으름장을 놓았다. "나 이 사자우를 보고도 큰소린가!" 왕중양은 씁쓰름한 표정을 내보였다. "알겠소. 그러고보니 악명 높으신 분을 만난 것 같은데 반갑소. 모두들 당신 같은 악한을 없애지 않으면 천하에는 사람이 살 길조차 없을 거라 말하던데 그런 소문은 들어 보았소?" 사자우가 자기 가슴을 툭툭 치며 당당하게 받아쳤다. "물론이지. 그럼 넓은 곳으로 가 그동안 그대의 재간이 얼마나 늘었나 한번 볼까?" 이들이 밖으로 나오자 구경꾼들이 어디서 알고 몰려들었는지 거리를 온통 메우다시피 했다. 무림대회에 참가하러 온 고수들 중 누군가가 싸움을 벌인다는 소식은 거리를 또 다른 열기로 들뜨게 했다. "왕중양, 그래, 네 놈이 나와 겨뤄 보겠다는 거냐?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꼬리를 감추고 사라지지 그러나?" 구양봉이 사람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떠벌렸다. 일단 왕중양의 심기를 건드려볼 요량이었다. "사자우! 네 이놈, 네 죄가 하늘에 닿았는데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단 말이오?" 왕중양도 만만하지가 않았다. "좋다. 네 놈이 나를 천하의 제일 가는 악인으로 대접해 주겠다는데 고맙구나!" 구경을 하러 모인 사람들 중에는 사자우를 알아보고는 벌써부터 피냄새를 맡은 듯이 치를 떠는 이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사자우의 무예가 대단하다는 것은 이미 강호에 널리 퍼져 있는 사실이었다. 또한 이들의 눈에 긴장감이 더해지고 있는 이유는 왕중양 때문이기도 했다. 이들은 왕중양에 대해 조금도 알지를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곧 벌어질 혈전을 앞두고 가슴을 조이었다. 필시 대단한 고수일 게 분명하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사자우와 맞서겠다고 나섰 겠는가, 하는 게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먼저 검을 뽑아든 것은 왕중양이었다. "자, 간다!" 왕중양이 검을 모아 쥐고는 사자우를 향해 타타타탁 하는 발소리를 내며 달려갔다. '반출룡사(盤出龍蛇)' 초수였다. 사람들은 왕중양의 보법에 혀를 내두르며 잔뜩 긴장을 했다. 왕중양의 검이 사자우를 향해 약간 사선으로 그어졌다. "쨍!" 그러나 사자우가 급히 검을 내뻗어 왕중양의 검을 맞추었다. 왕중양은 검을 잡고 있는 손으로 엄청난 울림이 전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내심 놀랬다.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왕중양이 옆걸음질 치며 사자우의 빈틈을 노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러다가 왕중양이 타타타탁 하는 소리를 내며 덮쳐 들었다. 이번에도 사자우가 검으로 막아냈다. 두 사람이 맞붙었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질 때는 강풍이 휘몰아치듯 거리에 흙먼지를 일으켰다. 사람들은 간혹 흙먼지 가 눈에 들어갔는지 손으로 비벼대면서도 연신 두 사람의 신기한 동작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동안 강호를 돌아다니면서 왕중양은 자신의 무공을 더욱 더 견고하게 다졌었다. 또한 선천신공을 검술에까지 도입시켜 그의 검끝에서는 무서운 기가 뻗어 나왔다. 사자우는 왕중양의 이같은 검술에 적이 당황하고 있었다. 반화대회 때의 왕중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지니고 있지 못한 기이한 초수와 보법에 속으로 감탄할 지경이었다. "역시 한판 붙어 볼 만한 실력이군! 자, 이번엔 내 차례다!" 사자우도 자신의 기이한 병장기를 꺼내 들었다. 국자와 방망이 그리고 갈고리가 달려 있는 요상한 것이었다. 그것을 휘둘러대는 사자우의 양쪽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는 그것을 어깨와 가슴 그리고 팔을 이용해 아주 가볍게 돌리는 듯한 동작을 펼쳤다. "이야아앗!" 왕중양이 사자우의 병장기를 머리 위로 스쳐 보내며 무서운 고함을 토했다. 사자우의 공격이 머리를 비껴 가는 것과 동시에 그는 검으로 그의 옆구리를 겨냥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자우는 쉽사리 헛점을 보이지 않았다. 빙빙 돌던 국자에 검이 부딪치면서 튕겨 나왔다. 두 사람은 벌써 백여 합이 넘게 사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어느 쪽도 기울어지지 않는 대단한 무공의 소유자였다. "너만 소리를 낼 줄 아느냐?" 사자우가 돌리던 독사장을 우뚝 멈추며 웅 웅 하는 저음의 소리를 땅을 향해 내뱉었다. 그 소리는 무수한 원귀들이 지옥의 문을 열고 나오며 울부짖는 소리 같아서 사람들의 머리칼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성력(聲力) 또한 대단하여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력(內力)을 한 번 겨루어 볼까?" 사자우가 제의하자 왕중양이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손에 들고 있던 무기들을 거두었다. 왕중양이 가슴 위로 올린 양손을 교차하며 묘한 동작을 취하다가 곧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터억! 하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사람들은 또 한 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단한 힘이었다. 겨우 몸을 피한 사자우가 자기만의 동작을 취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하는 말소리가 들려 왔다. 사람들의 눈에 그의 동작이 괴사하게 비친 모양이었다. 사자우의 손에서 내력이 휘몰아치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그의 내력 역시 그 동작처럼 비웃을 게 아니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얍!" 왕중양이 손을 내밀 때마다 사자우는 아래서 위로 뛰어오르면서 방어를 하고 또 공격을 이어 나갔다. 왕중양은 사자우의 실력을 얕잡아본 탓에 약간 밀리는 추세였다. 그러나 일단 선천신공만 쓰려 했다. 극렇게 되면 그 역도(力道)가 증가되어 엄청난 힘을 내뿜을 것이다. "야아앗!" 왕중양이 힘을 써 머리로 온몸의 피를 다 끌어 모았다. "어이쿠!" 그러자 사자우가 뒤로 나자빠지더니 데굴데굴 나뒹굴었다. 그런데 정도 이상으로 몸을 굴리던 사자우는 벌떡 일어나더니 쏜살같이 어디론가 달아났다. 일단 왕중양의 승리로 일단락된 셈이었다. 새로운 고수를 칭송하듯 구경꾼들이 왕중양에게로 몰려들어 허리를 숙이는가 하면 슬쩍 그의 손을 만져보는 이도 있었다. 왕중양은 계속 따라붙는 그들을 억지로 떼어놓고는 몸을 돌렸다. 왕중양이 거리를 벗어나 꽤 멀리 걸어왔을 때였다. 한 무리의 그림자가 길을 막고 선 채 비켜주지를 않았다. 왕중양은 이들이 누구인지 몰라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귀에 익은 웃음 소리가 들려 왔다. "헤헤헤,. 무공이 정말 대단하시던데?" 무심의 목소리였다. 그의 옆에는 챵바의 모습도 보였다. 이들이 왕중양에게로 가까이 접근해오며 징그렇게 낄낄거렸다. 왕중양은 말없이 이들의 하는 양을 지켜 보았다. 왜 이들이 무림대회까지 그 모습을 나타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대회를 훼방이라도 놓으려고 온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무심이 헤헤 하는 기분 나쁜 웃음을 앞에 달며 입을 벌렸다. "왕 공자, 여기선 함부로 날뛰지 말고 조용히 있는 게 좋을 거요. 당신의 실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무림대회가 무엇을 하는 대회인지 알고나 날뛰는 거요?" "그래, 이번 무림대회는 무엇을 하려는 대회요?" 왕중양이 굳굳한 자세로 받아치자 무심이 또 낄낄거렸다. "이번 대회는 개방놈들이 소집을 한 건데 뭐 금나라를 치겠다는 논의를 벌인다나. 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울 줄 모른다더니. 금나라는 우리에겐 어버이나 다름없는데 왜 우리가 금나라를 친단 말인가? 금나라가 없으면 우린 죽사발도 못 얻어먹는데……." 왕중양의 입꼬리가 매섭게 찢어졌다. "이 무식하고도 비열한 놈아! 닥치지 못하겠느냐?" "왕 공자, 웃기는 소리 말라구. 너 역시 금나라 덕분으로 밥술을 뜨는 주제에 그따위 소리야. 네가 사는 곳과 밥 처먹는 곳은 누구 관할이더냐? 금나라가 아니더냐? 그런데도 헛소리를 늘어놓을 셈이냐?" "정말 개만도 못한 놈이로군! 중원 사람들은 지금껏 자신들이 다스리며 살아왔어. 그래도 잘 살아왔다. 그런데 금나라 오랑캐들이 침범을 한 다음부터 강산이 두 쪽으로 양분되고 백성은 도탄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넌 그같은 도적 놈들에 불과한 무리의 앞잡이 노릇이 좋단 말이더냐?" 쿵! 하며 왕중양이 발을 구르자 무심이 깜짝 놀랬다. 그 여파가 자기의 두 다리로 전해져 후들후들 떨리는 게 아닌가. "잔소리 말아랏!" 이렇게 지껄인 무심이 황금부채를 휘릭 앞으로 내젓자 누군가 수레 한 대를 밀고 나왔다. 풍막으로 가려진 수레 안은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왕중양은 무심이 잔꾀를 쓰려는 것으로 여기고는 선수를 쳤다. "허튼수작 그만하고 어서 목이나 내놓거라!" "헤헤, 나는 무심한 사람이지만 왕 공자께서는 정이 넘쳐나는 사람이 아니오. 자, 한 번 보시오, 이 안에 누가 있는지를." 풍막이 젖혀지자 곧 한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왕중양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아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수레 위에는 유일민이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왕중양을 본 유일민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분명 임조영과 함께 그곳을 피한 것으로 알고 있는 유일민이 이곳에 나타나다니? 그것도 무심의 손아귀에 들어간 채로. 왕중양은 울고 있는 유일민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소리를 내지 못했는데 모르긴 해도 무심이 손을 썼을 거라 왕중양은 추측했다. 그러니 더욱 치가 떨렸다. "왕 공자, 듣자하니 그대가 이 아이를 구해줬다고 하던데 한 번으로 끝나면 재미가 없지 않소? 흐흐흐, 이 아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마음에 난 질투가 다 날 지경이요." 무심이 유일민에게로 다가가 부채 끝으로 그녀의 턱을 올렸다. "무심, 그 아이에게 손을 댔다가는 요절을 내고 말 것이다!" 왕중양이 덤벼들 자세를 취하자 무심이 비웃었다. "헤헤, 난 이 아이에게 손만 대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갖다 댈 생각이다." 유일민의 턱을 어루만지던 무심이 슬쩍 그녀의 아혈을 열어놓았다. "왕 공자님!" 겨우 말문이 트인 유일민이 살려 달라고 울부짖었다. 왕중양이 무심에게로 달려들어 목을 조를 순간이었다. "잠깐! 무심의 말로는 내가 당신보다 못하다고 하던데 어디 한 번 확인시켜 주겠는가?" 챵바였다. 그가 씩씩대더니 얼른 기를 모아 왕중양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한 손으로 챵바의 주먹을 쳐 옆으로 빗나게 만든 왕중양이 훌쩍 몸을 날려 공중으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