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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5[중신통왕중양편] - 21편 (21/60)

2026-09-30 18:55:31 조회 14
그중 한사람이 칼을 뽑아 하늘로 치켜 올렸다. "불개 형, 걱정 마시오. 반벽산장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우리 강남 흑도와는 적수가 못 될 것이오." 다시 함성을 지른 이들은 나머지 배에도 불을 지르고는 산장을 향해 물밀듯이 밀려 올라갔다. 산장 앞에 이르자 한 사내가 안에 대고 으름장을 놓았다. "반벽산장 놈들은 듣거라! 네 놈들이 감히 우리 강남의 무림 호걸들에게 청첩을 돌리다니 담도 크구나. 지금 강남 무림의 맹주 해불개 형님께서 너희들을 다스리려 오셨으니 각오하거라!" 기다렸다는 듯이 산장으로부터 사람들이 떼로 몰려나왔다. 그 숫자 역시 만만하지가 않았다. 이들 중에는 강남 백도(百道)의 영웅호걸이 끼여 있는가 하면 외다리 도적과 왕중양의 일행까지 뒤섞 여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장주인 유기 뒤에 떠억 버티고 섰다. 유기가 해불개를 노려보았다. "해불개, 전번에 임안의 반화대회에서 난 네 놈에게 모욕을 받았다. 오늘 이렇게 몇몇 형제들을 청해 왔는데 그때 진 빛을 갚아야겠다!" 해불개는 아예 유기를 향해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이죽거렸다. "유기, 네 놈이 죽을 때가 가까워 오니까 발악을 하는구나. 오늘은 끝장을 내주마!" "해불개, 강남의 형제들이 네 놈을 큰형님이라 부르니까 넌 스스로가 대단한 놈으로 아는 모양이로구나?" "언제 내가 큰형님이라 불러 달라고 했더냐? 흐흐, 네 놈은 나 보다 나이가 많으면서도 왜 형님이라 불렀더냐? 나이를 먹었어도 용기가 없으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뭐냐?" 유기와 해불개 사이에 잠시 살기 어린 눈빛들이 교차했다. 그러더니 유기가 뒤로 한걸음씩 물러섰다. 대신 앞으로 나선 것은 반벽산장 싸움꾼 외다리 도적 제일사였다. 그가 해불개를 씹어먹을 듯 사납게 노려보며 이를 부득 갈았다. "해불개, 내 보기엔 나한테도 적수가 되지 못할 것 같구나." 해불개가 입꼬리로 비웃음을 툭 던지며 받아쳤다. "흥, 일사 형은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 어쩌자고 반벽산장 쪽에 빌붙어서는 추태를 부리는 거요?" 제일사는 전에 유기에게 큰 은혜를 입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해불개의 말대로 유기를 도와 혹도와 맞설 이유는 없었다. 제일사가 눈가로 짙은 그림자를 만들며 해불개를 바라보았다. "난 원래 남의 일에 이러쿵저러쿵 하며 나서는 성미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만은 꼭 나서야 할 것 같으니 알아서 해라." 해불개가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젖혔다. "우하하하! 어느 형제가 제일사와 겨루어 보겠는가? 하지만 저 사람한테 돈주머니를 도적맞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네." 해불개가 주위에 대고 소리치자 곧 한 사내가 성큼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의 손에는 녹이 잔뜩 슨 검이 들려 있었는데 동작이 굼뜨고 매우 느려 터진 자였다. 제일사가 그 사내를 알아보고는 읍하며 인사를 던졌다. "향벽(向璧) 형, 오랜만이구려?" 향벽이 느린 동작과는 달리 제법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제일사, 토끼도 제 굴 앞의 풀은 다치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대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그댄 강남 영웅호걸들의 맹주도 아니지 않나?" 다분히 비꼬는 투였다. 제일사도 만만하게 물러설 수는 없다는 기세로 향벽에게 여유로운 표정을 내보였다. "향벽 형, 난 형님과 싸우고 싶지 않은데 하필이면 형님이 나설건 뭡니까? 하지만 상황이 그렇다면 하는 수 없겠지만……." 그러자 향벽의 입꼬리가 귀까지 찢어지며 벽력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야앗!" 처음 느리게 보였던 것과는 달랐다. 그는 빠른 동작으로 제일사의 앞뒤로 위치를 옮겨 가며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가 쓰는 권법은 소림파의 나한신권(羅漢神拳)이었다. 왼쪽 주먹은 나한배 불(羅漢拜佛)이라 부르며 오른쪽 주먹은 나한관세 (羅漢觀世)라 불렀다. 향벽의 갑작스런 공격에 몸을 피하던 제일사가 움찔했다. 다시 그의 주먹이 날아들었는데 예불나한(禮佛羅漢)이라 부르는 권법이었다. 향벽의 권법에는 빈틈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묵직한 무게가 실려 날라 오는 그의 주먹에 제일사는 긴장하며 자신의 초수를 쓰기 시작했다. 향벽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제일사가 외다리 도적의 전설에서 말하는 상사색(相思索)처럼 아주 매서운 초수를 쓰고 있음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제일사에게 한번 붙잡히면 죽기 전에는 풀려 날 수 없으리라. 향벽은 더욱 제일사의 동작을 주시하며 민첩하게 몸을 놀렸다. 제일사의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 간 향벽이 기회를 노려 주먹을 끌어쥐었다. 곧 그의 가슴팍에 일격이 꽂힐 찰나였다. "얏!" 그런데 제일사가 어느새 눈치를 채고는 몸을 돌리는 바람에 빗나가고 말았다. 제일사가 훌쩍 몸을 뒤로 날리며 의외의 말을 흘렸다. "향벽 형, 우리 싸우지 맙시다!" 향벽의 표정이 굳어졌다. 제일사의 의도를 알지 못한 그는 잠시 주춤하며 느리게 걸음을 메어놓았다. 그런데 제일사의 의도는 곧 드러나고 말았다. 그의 손엔 어느새 아패(牙牌)가 들려져 있었는데 그것은 향벽의 신물이었다. 언제 그 신물을 훔쳐갔는지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향벽의 인상은 험악하게 변해 갔다. 그러면서 속으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어 혼자 중얼거렸다. '오호, 어쩌면 저자가 나를 봐준 것인지도 모른다. 아패를 훔쳐 갈 정도라면 벌써 나의 급소는 저자에게 노출되었을 텐데…….' 향벽의 심사는 뒤죽박죽 뒤틀리기 시작했다. "좋아, 싸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 상황을 지켜 보던 해불개의 수하 중 한 사람인 중이 앞으로 나와 제일사를 향해 가슴을 폈다. "그런 재간이 있다면 나와 한번 붙어 봅시다. 치사하게 남의 물건을 훔치다니!" 제일사가 히히덕거렸다. "내 보기엔 당신은 숭산파(崇山派)인 모양인데 숭산파의 검술은 오악(五岳)의 여러 파 가운데 가장 훌륭하지. 하지만……."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내젓자 중이 달려들었다. "그럼 이 중의 실력을 보여 주마!" 중이 넓은 팔소매를 휘두르자 요란한 바람소리가 나며 강한 기류가 뿜어졌다. 중의 실력을 감상하던 제일사가 놀라며 주춤 상체를 젖혔다. "좋다. 돌려주마!" 제일사가 아패를 던졌다. 그 아패는 처음에는 천천히 날아가는 듯싶더니 도중에 갑자기 욍윙 소리를 지르며 번개같이 중을 향해 돌진해 갔다. 그런데 중은 끽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정중하게 읍하는 자세를 취했다. "제 시주님의 마음을 이 소승은 고맙게 받겠소이다." 그러더니 다시 팔소매를 펼쳐 그 아패를 공중으로 튕겨 올렸다. 공중으로 튕겨진 아패가 제자리에서 회전을 하더니 곧 아래로 힘없이 떨어졌다. 바로 중의 소매 속으로 들어갔는지 깜쪽같이 사라졌다. "대사, 내 보기엔 당신은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게 좋겠소이다. '아침 종을 저녁에 듣게 된다면 춘하추동을 알 수 있으리오'라는 주련도 있지 않소? 당신은 출가한 몸이라 남의 일에 간섭할 필요가 없소!" 중이 제일사의 말을 뿌리치는 의도로 소맷자락을 엇갈려 휘날렸다. "자, 잔말 말고 나와 겨루어 보자!" 중은 팔소매를 다시 휘둘러 제일사의 공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시험해 보려고 했다. 제일사는 이런 싸움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계속 중의 공격을 피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제일사가 이를 악물고는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중의 공력에 밀려 몇 걸음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중도 마찬가지여서 제일사의 공력에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한편에서 이를 지켜 보던 왕중양은 중의 공력이 월등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중이 제일사를 쉽게 죽일 수 있는 실력은 못 되었지만 어쨌든 제일사가 밀리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야아―." 중이 계속 달려들며 팔소매를 휘둘러댔다. 확확 하는 섬뜩한 소리가 제일사의 눈앞을 스쳤다. 제일사는 그것을 피하느라 여간 애를 먹고 있는 게 아니었다. 곧 승부는 판가름이 날 것 같았다. 이때 쫘악 하는 소리가 나더니 중의 한쪽 소매가 찢어지고 말았다. 중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찢겨져 나간 소맷자락을 살펴보았다. 어떻게 당한 것인지 그는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어 두리번거 릴 뿐이었다. 철수청풍(鐵手淸風)의 절기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게 깨져 버린 순간이었다. 누가 중의 옷소매를 찢었는지는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알지 못했다. 중이 화를 버럭 내며 양팔을 사방으로 내저었다. "누가 한 짓이냐 ? 어서 그 모습을 보이거라!" 이미 그는 중이 아닌 강호객의 모습으로 앞뒤 가릴 것 없이 고함을 질러대고 욕설까지 퍼부으며 보이지 않는 호수를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네 따위가 감히 나를 찾겠단 말이냐!" 모두들 그 목소리에 허둥대기 시작했다. 분명 말소리는 들려 오고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가 않았다. 귀신이라도 출몰했다는 말인가. 중은 목소리의 임자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연을 올렸다. 그러나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를 한번 찾아보거라, 이 얼빠진 사내 놈아!" 그 말에 중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굳어 있다가 곧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있는 여인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 가운데에는 반벽산장의 장주 유기의 딸인 유일민(劉一珉)과 귀낭자(鬼娘子)도 끼여 있었다. 또 검을 등에 차고 있는 여협(女俠)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 여협은 면사포로 얼굴을 감추고 있어 누구인지 감을 잡을 순가 없었다. 중이 이 여인들을 주시하며 가느다랗게 눈을 떴다. "사내 놈이라 부른 것을 보면 필시 여인일 것이다!" 그가 여인들을 한 사람씩 손가락으로 짚었다. 유일민이 손가락 끝이 자기를 향하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중이 그녀를 유심히 살피더니 곧 여협에게로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걸음을 쉽게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여협으로부터 검기(劍氣)를 심하게 느껴 그가 주춤 했다. 검기는 숨통을 조일 듯 가슴팍을 강타했다. 그러면서 그는 속으로 이 여협은 아닐 거라 믿었다. 이토록 정기를 가진 여협이 무엇 때문에 숨어서 목소리만을 내지른단 말인가. 이윽고 귀낭자 앞에 선 중이 허연 이빨을 내보였다. "바로 네 년이렷다!" 귀낭자가 눈셉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는 중의 물음에 답했다. "그렇다!" 중이 손을 뻗어 귀낭자를 덮치려 했다. 소금나법(小檎拿法)이란 초수였다. 팍팍팍! 세 번이나 중의 손이 바람을 갈랐지만 그때마다 귀낭자가 막아냈다. 귀낭자의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 "그까짓 재간으로 이곳에 와 이름을 밝힐 수 있느냐?" 귀낭자가 중의 비위를 슬슬 건드렸다. 그는 화가 치밀어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래도 계율 때문에 귀낭자를 죽일 마음은 애써 다스리고 있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귀낭자의 숨통을 끊어 놓기 위해 금강지(金剛指)라는 초수를 쓰기 시작했다. "좋다. 얍!" 그가 손을 뻗자 팍 하는 소리와 함께 귀낭자의 옷자락에 휑하니 구멍이 나 버렸다. 귀낭자가 놀라며 몸을 사렸다. "이 중농아, 네 놈이 옷을 못쓰게 만들었으니 용서할 수 없다!" 귀낭자가 품속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자 중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귀신물건!" 원래 이 귀낭자는 오귀서생(五鬼書生)의 아내로 오귀서생에게 몇 가지 귀문(鬼門)의 재간을 전수받았던 터였다. 그 후 오귀선생이 죽자 귀낭자가 귀역(鬼域)의 유일한 전인(傳人)이 되었던 것이 다. 그때부터 그녀가 지니고 다니는 물건들을 강호 사람은 귀신물건이라 불렀다. 얼핏 볼 때에는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물건들은 그다지 위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새카만 나무토막과 참대로 만든 작은 경쇠 그리고 우산이 전부였다. 중이 속으로 비웃었다. 그까짓 물건들 때문에 강호 사람들이 벌벌 떨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중 우산은 매우 기묘하게 생겼다. 실로 우산 자루를 친친 감아 놓았는데 무엇으로 된 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또한 우산천은 방수로 된 것인지 운지(雲紙)인지는 모르지만 번들거리며 두껍게 보였다. "귀신 우산이 하늘을 버틴다!" 귀낭자가 이렇게 소리지르며 우산을 높이 쳐들었다. 강호에서 소문이 난 귀낭자의 우산이므로 중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이 몸을 날려 중궁(中宮)을 밟고는 손위(巽位)로 나가면서 반약장 (般若掌)이란 초수를 썼다. 순식간에 장이 귀 낭자에게로 뻗었다. 이 장법은 겉으로 보기에는 가벼웠지만 무한한 내력을 지닌 것이기도 했다. 귀낭자가 우산을 활짝 펼쳤다. 중은 번쩍 하는 금빛을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펼쳐진 우산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미처 확인할 수 없었지만 분명히 찬란한 금빛이 눈부시게 번뜩였다. "음……." 그가 가슴팍에 통증을 느끼며 몸을 구부렸다. 어느새 가슴에서 피가 철철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그는 서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귀낭자, 나와 반벽산장 사이의 일에 네가 나서 간섭할 건 워냐?" 해불개가 끼여들자 귀낭자는 여유작작한 태도로 그를 주시했다. "난 구경을 온 사람이지 간섭을 하러 온 사람은 아니야." 울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해불개가 세게 코바람을 불었다. 섣불리 건드릴 수도 없어 그는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기를 누르느라 애가 탔다. '형님, 내가 겨루어 보겠소이다!" 이때 해불개의 신변에 버티고 서 있던 사내 하나가 나섰다. 그는 남루한 옷을 걸쳤는데 몰골을 보니 한 사나흘은 족히 굶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앞으로 나오자 옥총의 안색이 변했다. 바로 이자가 강남 흑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하는 경천필 연뇌(連雷)였다. 강호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경천필 연뇌는 생소했다. 그러나 그는 일찍이 강남 소주(蘇州) 입뢰(立 )에서 호한 스물셋을 때려눕혔고 또 강음로(江陰路)에서는 재물을 털었는데 강남의 사대 표국(漂局)의 화물을 모두 강탈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한 쌍의 붓을 무기로 쓰 는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었다. 경천필이 귀낭자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내가 네 년의 귀신물건과 맞서 보련다!" 그러더니 그가 품속에서 붓 한 쌍을 꺼냈다. 모두들 그 붓에 눈길을 던졌다. 붓에서 카카카 하는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 자루로 변해 버렸다. 한 자루로 변해 버린 붓은 다시 다섯 자가 넘게 길이가 커졌다. "귀낭자, 어서 덤비거라!" "내가 왜 네 놈과 힘을 낭비하겠느냐?" 귀낭자도 만만하지가 않았다. 경천필이 눈썹을 하늘로 치켜 뜨며 다그쳤다. "네 년이 사람을 해쳐 놓고도 발뺌을 할 셈이더냐?" 경천필이 괴성을 지르며 귀낭자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해불개가 그를 잡았다. "연뇌 형, 저 여인을 조심하시오. 일단 내력이나 알아본 다음 대적해도 늦지 않을 것 같소." "내력을 알아보다니?" 경천필이 의아하게 여기자 귀낭자가 코방귀를 뀌었다. "그건 알아서 뭘해? 난 단지 이곳에 구경을 왔을 따름이라구." 이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은 유기였다. 경계를 하고 있던 그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귀낭자에게 읍을 하며 말했다. "귀낭자께서 우리 반벽산장과는 원한을 산 일은 없지요. 제가 해불개와 이치를 따진 다음 다시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소이다." 일순 귀낭자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그대들끼리 싸우고 싶으면 싸우라구. 난 여기서 구경이나 할 생각이니까." 유기가 몸을 돌리더니 무심과 챵바에게 눈길을 던졌다. 그의 생각으로는 챵바의 무공이 뛰어나 보였다. 유기가 이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데 직검 마옥과 그의 아내인 손불이가 해불개에게로 다가갔다. "해불개, 당신과 유 장주 사이에 있었던 일을 우린 다 알고 있어요. 남이 당신에게 은자를 꿔주었으면 그 인정을 잊어서는 안 되지요. 그러니 당신이 반벽산장을 원수로 여기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요." 해불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댄 누군가?" "손불이요." 해불개는 손불이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처지였다. 뛰어난 검술을 지니고 있다는 말을 강호의 풍문을 통해 전해 들었었다. "난 강남 호걸들의 우두머리야. 그대가 내게 이래라저래라 훈시를 놓을 셈인가?" 그러자 손불이가 정색을 하며 대꾸했다. "당신이 나의 말을 듣지 않는 건 상관없지만 처신은 곧아야 하지 않겠소?" "네 년이 그토록 똑똑하면 네 서방이나 가르칠 것이지 어디서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려 드느냐?" 해불개가 화를 내며 몸을 돌리려 하자 순식간에 십여 자루의 검이 번쩍 빛을 발하며 마옥의 복부를 겨누었다. 강남에 열 명의 도객(刀客)이 있다는 사실을 무림 사람들은 너무도 잘 알았다. 이 열 사람의 도객들은 원래 강호에서는 무명 소졸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데 모여 고인(古人)들이 남긴 도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들은 종남산의 한 구역에다 초막을 지어 놓고 칼쓰는 법을 연마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 때문에 모두가 머리칼이 귀신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길게 자랐다. 이들은 끝없는 수련 끝에 절세의 도법을 익힐 수가 있었고 모두들 이름있는 도객으로 탈바꿈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산에서 내려온 뒤 창량검(蒼凉劍) 주무진(朱無塵)을 죽 이고 감섬로(甘陝路)의 큰 도적 회하하(回賀賀) 역시 물리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한편 이들이 쓰는 열한 가지 초수 중 마지막을 천수지참(天愁地慘)이라 불렀다. 이들은 아직 자기들의 초수를 제대로 써보지를 못했기에 좋은 기회로 여기고는 칼을 뽑아 들었던 것이다. 번뜩이는 칼날 속에도 태양이 들어 있는 듯했다. 마옥과 손불이 두 사람 역시 검술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열 명이나 되는 이들을 당해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름을 더럽힐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손불이가 검을 뽑아 들고는 앞으로 나섰다. "검이 나간다!" 손불이는 자신의 검으로 열 명이 내민 칼을 후려쳤다. 열 명의 도객들이 호기를 만난 듯 날뛰기 시작했다. 마옥과 손불이는 서로 등을 댄 채 이들과 열전을 벌였다. 두 사람의 도객이 손불이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려 했다. 피냄새를 부르는 칼날이 손불이의 코끝을 스치며 지나갔다. 손불이가 반사적으로 얼굴을 감추며 상대의 칼끝 움직임에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여인이란 사내와 달리 자신의 얼굴을 목숨만큼이나 아끼는 법이었다. 그녀는 검으로 눈앞의 칼날을 헤치며 자리를 옮겼다. 뒤에 있던 마옥도 그녀와 동작을 같이 하며 재빠르게 발을 굴렸다. "조심하오!" 마옥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 왔다. 마옥을 등에 지고는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허점이 되었던 결과였다. 마옥의 왼쪽 얼굴을 스치며 날아든 칼끝이 손불이에게로 들어왔다. 겨우 칼을 피하긴 했는데 그만 손불이는 머리를 묶어 두었던 끈이 풀리면서 산발한 모양이 돼 버렸다. "얏!" 때를 놓치지 않고 다른 도적이 손불이의 머리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그런데 칼이 손불이의 등뒤에서 멈칫 서 버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작은 돌멩이 하나가 막 칼에 맞아 멀리 튕겨 나갔다. 작은 돌멩이 하나로 칼을 막아낼 수 있다면 대단한 내력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천 근의 무게를 얻은 듯 돌멩이는 강하게 날아갔다. 칼을 쥐고 있던 그 도객의 손아귀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그러나 싸움은 처음부터 공정하지가 못했다. 우선 숫자로 열세 에 놓였던 마옥과 손불이는 차츰 이들에게 몰리기 시작했다. 손불이가 기진하여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악!" 어디선가 날아든 칼이 그녀를 맞추었다. 그녀는 갑자기 자심추골(刺心椎骨)에서 심한 동통을 느끼며 몸을 꺾었다. 그러면서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앞으로 접근해 온 세 자루의 칼을 물리쳤다. 그러나 이들의 공격은 더욱 집요해졌다. 사방에서 칼울음 소리가 우웅우웅 하고 손불이의 신경을 흐트러 놓았다. '이렇게 죽고 마는구나!' 손불이는 속으로 자신이 처한 위기를 새겼다. 다시 칼이 날아들었는데 이번에도 아까처럼 도중에 돌멩이에 막혀 멈칫하듯 공중에서 힘없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계속 도객들의 공격을 막아 주고 있는 듯했다. 다시 등뒤에 있던 마옥을 겨누던 한 사내가 또 힘없이 칼을 내던지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누구냐? 어서 정체를 밝혀라!" 이렇게 버럭 소리친 것은 도객 중 하나인 귀도(鬼刀) 허재(虛才)였다. 강호객들도 허재의 고함에 모두 당황했다. 허재가 다시 목청을 돋우었다.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치사하게 굴지 말고 어서 나와라!" 누가 마옥과 손불이를 도와주고 있는지 찾아내려고 했지만 어려웠다. 허재의 외침에 누구 하나 대답하며 나서는 자가 없었다. 지금껏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던 무심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열 사람의 도객은 강호에서도 명성이 적지 않은데 실력은 어린아이 장난 같군!" 도객들이 곧 무심을 에워쌌다. 그러나 이들은 쉽게 무심에게로 접근하지 못했다. 앞에 동장철벽(銅墻鐵擘)이 가로막고 선 듯 더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무심의 얼굴빛이 변해 갔다. "네 놈들의 재간으로는 어림도 없다. 목숨이 아깝거든 어서 물러 서거라!" 허재가 손을 쓰지 않고 한쪽에서 구경만 하고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