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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4[남제단지홍편] - 28편 (28/70)

2026-09-30 18:32:08 조회 16
세 번째 여인도 그간 보고 들은 일을 아뢰기 시작했다. "그 여인이 흥취를 느끼는지 안 느끼는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석굴 안의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이고 조금도 변화가 없었사옵니다. 다만 매일 한 가지 일에서만 변화가 생기곤 했는데……. 그 여인의 비녀(婢女)가 더는 날마다 생화를 꺾어 가지 않더이다." 여인은 한심하다는 듯 그 처녀를 쳐다보았다. "어리석구나, 어리석기 짝이 없어! 그 비녀가 매일 생화를 꺾으러 나오지 않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니!" 그러자 처녀는 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 소리쳤다. "이제야 알겠사옵니다. 제가 너무 미련했나이다. 향녀님께서 깨우쳐 주셔서 감사하옵니다." 여인은 조금도 으쓱거리는 기색을 비치지 않고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가 보아라. 가서 활사인묘(活死人墓)를 다시 잘 살펴보거라." 선비는 여인이 말하는 활사인묘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언뜻 들어서는 어떤 석굴에 거처하는 여인을 저 여인이 욕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만일 선비가 중원 사람이었더라면 그것이 대협 왕중양과 그 활사인묘에 거처하는 여인, 즉 천하에서 으뜸가는 기녀(奇女) 임조영 (林朝英)의 일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으리라. 중원 무림에서는 이 두 남녀의 일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었다. 여인은 다시 다른 한 처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하는 일은 어떻게 되었느냐?" 그 처녀는 키가 아주 컸지만 얼굴은 영락없이 어린애였다. "향녀님, 벌써 화산에 당도해 있다고 소문은 무성하지만 제 보기엔 그 동사 황약사가 꼭 이곳에 온다고 할 수는 없을 듯하옵니다. 그 사람은 아내까지 얻었는데 그들 두 사람은 매우 금실이 좋다는군요. 더욱이 도화도에서는 오랫동안 사람들이 뭍으로 나오지 않았고 섬에 있던 큰 배도 없어졌다 하옵니다. 저는 그 도화도에 들어가 황약사의 제자를 보았는데 그 사람은 아주 흉맹스러웠사옵니다. 난 그자와 겨뤄 보았는데 몇 합 겨루고는 도저히 당해 낼 수 없어 바다로 해서 도망을 쳤사옵니다." "황약사가 오가고 출몰하는 건 아주 궤계가 많고 신비롭단 말야. 내 보기엔 이잔 기필코 화산에 왔을 것이다. 아직 종적을 못 찾았다뿐이지 화산 주위 어느 객점에 묵고 있을 게야." 다른 한 처녀가 나서서 도리질을 했다. "아니옵니다. 아무데도 없사옵니다. 《구음진경》을 손에 넣을 욕심만 부리며 덤비는 무림 사람들밖에 보지 못했나이다. 그자들은 그 경서를 손쉽게 손에 넣을 줄 알고 있더이다. 그래서 대낮에도 객점에서 언쟁을 하다가는 맞붙어 싸우기까지 해요. 이런 사람들 사이에 고수란 한 사람도 없더이다." "황약사는 그리 쉽게 사람들 앞에 나설 위인이 아니다. 절대 경거망동을 할 사람이 아니야! 너희들이 잘못 봤다. 한데 고수가 한 사람도 없다니, 하면 각 문파의 사람들이 다 오지 않았단 말이냐?" 여인이 소리치자 또 한 처녀가 대답했다. "거의 다 왔는데 다만 항산파(恒山派)의 사람들만 객점에 보이지 않더이다. 더러는 화산 산곡간 시냇가에 풍막을 쳐 놓고 거처하기도 하지만 각 명문대파(明門大派)의 사람들은 화산 아래 거리에 있는 객점들에 묵고 있지요. 보름달만 떴다 하면 화산으로 올라가려고 잔뜩 벼르고 있더이다." "각 문파도 허투루 봐서는 안 되지……. 왕중양은, 그는 몸을 움직일 뜻이 있더냐?" "아직도 기다리고만 있더이다." 조금 전의 그 처녀가 다시 대답했다. '그가 종남산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여인이 도대체 누구인지 모르겠구나.' 선비는 자못 의아했다. 바로 그때 여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왕중양의 거처는 주시할 필요가 없다. 천하의 검객이 다 오게 되면 왕중양도 오지 않을 수 없게 돼 있다. 넌 다만 화산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돼. 그때 가서 그 사람의 행적을 주시하거라." 그 처녀는 정중히 읍을 했다. 여인은 잠시 사색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한동안 정적만이 고요했다. 일순 여인이 손짓을 하자 명령을 받은 처녀들은 모두 읍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처녀들이 다 나가자 그녀는 혼자 남아 깊은 생각에 잠겨 들었다. 선비는 이제나저제나 단지흥 얘기가 나올까 학수고대하며 귀를 기울였으나 끝내 그 여인이 그 얘기를 꺼내지 않자 못내 서운해하며 급히 자리를 뜨려고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가긴 어디로 간단 말이냐?" 여인의 대갈일성이 등짝을 때리는 듯싶더니 순식간에 사람 그림자가 눈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선비는 급급히 뒤로 물러서며 붓으로 여인을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괴이한 일이었다. 여인은 조금도 피할 생각을 않고 오히려 자신의 몸을 대담하게 내맡기며 선비의 머리 위로 두건을 휘둘렀다. 그 두건은 길기도 하거니와 공중에서 윙윙 소리를 내는 것이 아주 무시무시했다. 선비는 다시 그녀의 가슴을 겨냥해 붓을 내뻗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여인이 피할 생각을 않고 똑같 이 죽을 기세로 덤벼들자 일순 당황해 감히 찌르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여인은 여전히 두건을 휘둘러대면서 한마디했다. "선비께서 오셨군요. 말을 타면 군사를 거느릴 수 있고 말에서 내리면 풍월을 읊조릴 수 있는 시위가 대리에 있다더니 바로 선비님이셨군요. 이런 자리에서 만나 뵙는 게 아닌데요." "과찬이시군 폐하께서 어디 계시는가만 빨리 말하시오!" 선비는 급히 물러서며 소리쳤다. "당신은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하세요? 내가 누군지 안다면 묻지도 않겠지요?" "그대가 누구든 난 관계치 않소. 그대는 화산에 모여든 무림의 호걸들에게 몹시 신경을 쓰고 있더군. 당연히 황제 폐하의 행방도 알고 있을 것인즉, 어서 말하시오!" 선비는 여인의 코앞에 붓 끝을 바짝 들이댔다. 여인은 몹시 불쾌한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천하의 사내들이란 모두 이렇게 무뢰한들이거든. 여인들한테 늘 호통이나 치고.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 네 놈이 내 남편이라도 된다더냐? 무슨 권리로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냐?" '폐하께서 어디 계시는지 이 여인은 틀림없이 알고 있다. 하나 이 여인에게서 그걸 알아내기란 그리 수월치 않을 것 같구나.' 그는 이렇게 강세로 나갔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짐짓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천하의 사내들이 다 나쁜 건 아니오. 이를테면 우리 폐하 같은 분 말이오. 당신이 만일 그분을 만나 보게 된다면 사내들을 더는 미워하지 않게 될 겁니다." "당신의 그 단황을 저도 이미 만나 보았어요. 하나 그 사람도 별 다를 게 없었어요. 천하의 영웅호걸들을 전 대부분 만나 보았어요. 왕중양은 아주 미련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한 여인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날마다 그 무슨 천하 대사만 운운하고 있지요. 사랑도 모르는 이가 어찌 천하 대사를 알 수 있겠나요? 구양봉이 그래도 여인에게는 이 사람보다 낫다 할 수 있으나 그 역시 때로는 이상 야릇한 짓을 해서 골치 덩어리고. 홍칠이란 사람도 그래요. 매일 누더기만 걸치고 다니니 영웅은 무슨 영웅이란 말인가요? 미립이란 여인이 그 사람 때문에 속을 앓다가 스스로 자결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 동사란 사람이 묘한 인간이기는 했는데 이젠 미인을 얻어 날마다 그 여인하고만 아기자기하게 보낸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천하 미인들의 재미는 모른다구요. 당신의 그 황제요? 내가 보기에 그는 대리에 있을 때 그다지 여인들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 사람의 후궁에 사는 여인들은 날마다 독수공방 울적한 나날을 보냈을 거 예요. 천하의 사내들이란 모두 연약한 여인의 심리를 모르는 자들뿐이니 모두 죽여 버려야 해요!" 선비는 이 여인의 말을 듣고 혼자 생각했다. '인정에 눈이 어두우면 고집스럽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남이 호의로 권하는 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제 고집만 부리게 된다더니, 이 향녀가 하는 말에도 일리가 있지 않은가.' "그대의 말을 들어 보니 우리 황제 폐하는 당신한테 있는 것 같소이다." "그래요. 하나 당신이 뭐라든 난 당신의 황제를 절대 내보내지 않겠어요. 그의 목숨은 이미 내 손안에 있어요. 그분은 지금 여색에 빠져 있는데 당신은 그걸 짐작조차 할 수 있나요? 그분은 화산의 무예 시합엔 가지 못할 거예요." 선비에겐 단지흥이 화산의 무예 시합에 가고 안 가고는 하나도 대단치 않은 일이었다. 그는 다만 그의 안위만이 걱정될 뿐이었다. "당신이 우리 황제 폐하를 화산에 보내지 않는다면 대리국의 만 백성들은 당신의 공덕에 감개 무량해할 겁니다." "아니, 왜요? 왜 그렇다는 거죠?" "황제 폐하는 고수라서 화산에서 무예 시합을 한다니 아주 기뻐하셨소. 우린 폐하의 신하들이라 그분의 뜻을 좇지 않을 수 없었소. 하지만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지 않고 강호의 으뜸가는 고수가 되려 해서야 나라일이 어떻게 되겠소?" 그녀는 그 말에 일순 어리벙벙해졌다. 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없더니 이윽고 선비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쳤다. "대리의 승상이 말재간이 있어 혀끝으로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더니만 그 말이 참말이었군요." 그러자 선비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나라일에 대해서 당신은 잘 모르시는 모양이로군. 임금 노릇을 하려면 행실을 제멋대로 해서는 안 되오. 그분은 임금이요, 자기 멋대로 사는 분은 못 되오." 그녀는 선비의 말에 적이 감동되어 혼자 말하듯 읊조렸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어요. 참말로 임금 노릇을 하려면 오로지 그 노릇에만 충실해야지 여색에 빠져서는 안 되겠지요." 그녀는 막 깊은 사념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싶었다. 제15장 석굴 앞에서 기다리는 마음 '이 여인에게 괜스레 이 말 저 말 길게 하다가는 폐하의 행방을 말해 주지 않으려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어서 매듭을 짓자.' "아까 듣자니 당신은 그 《구음진경》에 아주 흥미가 있는 모양이더군요. 기실 황제께서 이번에 중원으로 오신 건 결코 그 경서 때문이 아니오. 그분은 그저 중원 무림의 면모를 눈여겨보려던 것뿐이었소. 만일 당신이 폐하를 놓아준다면 이번 싸움에 끼여들지 마시라고 내 성심성의로 설복하겠소. 우린 다만 화산의 무예 시합이나 구경하고 떠나가겠소." 여인은 그 말을 듣자 참말로 구미가 동했다. 그녀는 한참이나 선비를 지켜 보다가 슬쩍 딴 곳을 보며 물었다. "당신의 말은 듣기는 좋으나 내 무엇으로 그 말을 믿지요?" "나는 대리국의 승상이오. 승상이란 자리는 종래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자리라는 걸 당신도 알 겁니다. 거짓말을 하고서야 어찌 승상 자리에 있을 수 있겠소? 그래 갖고서야 사람 구실도 제대로 못할 텐데!" 선비는 사뭇 단호히 말했다. "좋아요. 일단 당신의 말을 믿지요. 만일 당신이 말한 대로 하지 않으면 나대로 방법이 있으니까!" 여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은 지옥에 대해 들은 적이 있나요? 당신의 황제는 지금 지옥에서 유람을 하고 있답니다, 아리따운 여인들과." 여인의 말에 선비는 마치도 혼백이 다 달아나는 것만 같았다. "뭐라구요? 지옥이오?" "뭐 그리 놀랄 것도 없어요. 우린 향녀예요, 사내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려고 원한을 불태우는 향녀! 사내가 그런 향녀 무리에 걸려들었으니 지옥에 있는 것이나 진배없지 않겠어요?" 그제야 선비는 무릎을 탁 쳤다. '그랬구나, 그랬어! 우린 그때 다 미향에 중독된 것이로구나.' 선비는 조급히 서두르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렇다면 날 어서 지옥으로 데리고 가 주시오. 가서 폐하를 만나게 해 주시오!" 농부는 한나절이나 헤맸지만 그 어떤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는 몹시 지쳐 있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대로 화산 아래 한 자그마한 객점으로 들어갔다. 그는 창문 곁에 앉아 술 한 주전자를 청해 놓고 시름에 겨워 홀짝홀짝 술잔을 기울였다. 오만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잠시나마 시름을 털어 내려고 그저 창 밖에 눈길을 주고 있는데 언뜻 오솔길로 말 세 필이 달려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말에는 세 여인이 타고 있었다. '저 세 여인은 지독히도 뚱뚱하군. 마치 말 위에 자그마한 산더미가 올라앉아 있는 것 같다.' 농부는 적이 호기심이 일었다. 세 여인은 눈 깜짝할 사이에 객점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리더니 순식간에 안으로 들어왔다. 몸집이 엄청나게 비대한 데 비해 동작은 날쌔기 그지없었다. 우두머리인 듯한 여인이 두 여인에게 소리쳤다. "빨리 오란 말이야. 배고파 죽겠어. 배고파 죽겠다구!" 저를 부르는 소리가 아닌데도 주인은 기겁을 하고 달려왔다. 지금 화산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보통 사람들이 아님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세 여인이 지독히도 못생긴데다 그 기상이 사뭇 흉맹스러워 한눈에도 성미를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자네가 주인인가? 어서 요리를 내왓!" 여인은 주인 사내를 힐끔 거들떠보더니 단박에 외쳤다. 그러자 주인은 여인이 소리치기가 무섭게 굽실 허리를 꺾고는 주방에다 대고 요리 몇 접시를 볶으라고 분부했다. 삽시간에 요리 몇 접시가 여인들 상에 차려졌다. 우두머리인 듯 한 여인은 요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식탁을 탕 하고 내리쳤다. "좋은 술과 요리가 있으면 다 가져 오란 말이야. 우릴 이따위로 대접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그래, 우리한테 은자가 없을까 봐 걱정이냐?" "처녀들……술 몇 근에 요리 얼마를 가져 오렵니까?" 주인은 두 다리를 와들와들 떨어댔다. "무슨 잔소리가 이렇게도 많아? 술은 단지째로 날라 들이면 되는 거고, 요리는 아예 큰 쟁반에다 담아 날라 들이란 말이야. 이 집에 있는 좋은 술과 요리는 몽땅 다 내와!" 주인은 찍소리도 못하고 부리나케 주방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엄청난 술과 요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 여인은 그제야 군소리 없이 큰소리로 강호 무림의 이야기를 떠들어대며 술과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먹는 품새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웬만한 장정들도 저리 가라였다. "보아하니 그 물건짝은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아. 그 년은 자기가 잘 먹지 않아 비실비실 마른 줄 아는 모양이더군. 그 년의 꼬락서니를 보니 구역질이 나더란 말야." 한 여인이 말하자 다른 한 여인도 신이 나서 손바닥을 쳤다. "그 년이 아무리 살찌는 걸 싫어해도 제깟 년이 별 수 있어? 내가 그 년이 먹는 음식에 미독(迷毒)을 넣었거든. 이제 그 년도 우리같이 뚱뚱보가 될 테니까 두고 봐." 세 여인은 탁자를 쳐 가면서 죽어라고 깔깔 웃어댔다. '보아하니 이 여인들은 운남의 대환희 보살 수하들이 분명하구나. 이 여인들은 뚱뚱한 걸 아주 자랑으로 아는 모양이군. 대환희 보살은 심보가 고약해서 강호를 돌아다니다가 예쁜 여인만 보면 죽이거나 억지로 약을 먹여서는 무리에 끌어넣는다지. 또 무예를 아는 사내를 붙잡아서는 소굴로 끌고 가 노리개로 만든다고도 했어. 이 여인들이 너무나도 음탕하다고 폐하는 늘 이 패거리를 큰 우환거리로 여기시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여인들이 뭣 땜에 이 화산 기슭에까지 기어 들었을까? 필시 그 《구음진경》을 노리고 있는 게로군.' 농부는 여인들을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 한 여인이 또 목청을 높였다. "보살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번 일을 해내려면 건장한 사내 하나를 물색해야 한다는 거야. 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보살님께 큰 벌을 받을걸?" 그러자 다른 여인도 거들었다. "보살님께서 어떤 사내를 즐기시는지 모두 잘 알지 않아?" 그 여인은 다른 두 여인에게 눈을 꿈적여 보였다. 그러자 세 여인은 또다시 징그럽게 웃어댔다. 이 객점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진작부터 강호 사람 여럿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켠에 있는 탁자에 세 사람이 마주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헌 천으로 동동 싸맨 검 한 자루를 차고 있었고 곁에 앉은 사람은 갈고리 한 쌍을 갖고 있었다. 그 갈고리는 도금을 했는지 눈부시게 번쩍거렸다. 또 다른 한 사람은 한 자하고도 세 치는 족히 됨직한 잣대를 갖고 있었는데 굵기도 유난히 굵고 기관(機關) 같은 장치가 붙어 있었다. 이 세 사나이는 뚱뚱보 여인들이 들어올 때 부터 줄곧 그녀들을 사납게 보고 있었다. 여인들이 마구 떠들고 웃어대자 그들은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인지 쌍갈고리를 쓰는 사내가 탁자를 탕 치면서 일어나 욕설을 퍼부었다. "화산 기슭에 별 더러운 물건들이 다 기어드는군." 그러자 세 여인은 뚝 웃음을 그치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저게 지금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 한 여인이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내뱉자 또 한 여인이 장단을 맞춰 대답했다. "너보고 하는 소리지." 그러자 다른 한 여인도 거들었다. "맞아, 널 욕하고 있는걸. 저 놈은 우리가 누구라는 걸 모르고 있나 봐. 그러니 저렇게 함부로 굴지. 얘, 우리가 누구라는 걸 네가 알려 줘라." 그러자 제일 먼저 말을 꺼낸 여인이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일어섰다. 그 여인은 배불뚝이처럼 솟아오른 배를 팡팡 두들겨 가며 세 사내 쪽으로 돌아섰다. "우리가 어디서 온 물건이냐 하면 말이다, 운남 땅에서 흘러 온 물건들이다. 그래, 운남 대환희 보살님 수하들이지. 알겠느냐? 알았으면 일찌감치 물러들 가라구. 괜히 후회하지 말고!" 그러자 세 사나이는 단박에 노발대발하며 의자를 뒤로 홱 걷어 차고는 벌떡 일어섰다. 그들은 운남의 그 무슨 대환희 보살이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이 갈고리로 약간만 긁어도 기름이 한 자루는 쏟아지겠군.' 쌍갈고리 사내는 코웃음을 치며 대뜸 뚱뚱보 여인의 솟아오른 배를 겨눴다. 그러자 잣대를 든 사내가 가볍게 웃으며 말렸다. "사마(司馬) 형, 동생이 본때를 보여야지요. 형님이 나서서야 쓰겠어요?" 사나이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잣대를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잣대는 기이하게도 그대로 쭉 뻗어 나가 여인의 배도 아니요 머리도 아닌 젖가슴을 쳐들었다. "이크, 그 젖통 크기도 하구나. 항아리만한 걸 무겁게 달고 다니느니 성가시지 않게 떼어 버려. 그럼 얼마나 가볍고 간편하겠나!" 사내는 잣대로 여인의 젖가슴을 쿡쿡 찔렀다. 그러자 그 여인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대갈일성을 내질렀다. "이 죽일 놈아, 감히 에미 같은 사람에게 버릇없이 굴어?" 여인은 순식간에 몸을 홱 돌리더니 커다란 칼을 들고 사내를 향해 똑바로 찔러 왔다. 그 칼은 여느 칼과는 달리 농부의 호미처럼 투박했다. "어쭈, 이것이 감히 칼을 들어?" 잣대를 쓰는 사내는 있는 힘껏 잣대로 여인을 내리쳤다. 다음 순간, 잣대와 칼이 맞부딪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의외로 잣대가 밑으로 쓱 처졌다. 사내는 잣대로 여인을 단번에 쳐 눕히려던 것이었는데 천만 뜻밖으로 자기가 밀리자 내심 덜컥 놀랐다. 그러나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여전히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이거 힘깨나 쓰는군! 조심해야겠는데!" 뚱뚱보 여인은 그 말엔 코대답도 않고 갑자기 손을 거두고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세 사나이를 싸늘히 쏘아보았다. 그러자 갈고리를 든 사내가 이죽거렸다. "좀 똑똑히 굴란 말이야! 그 꼴에도 계집은 계집이니 얌전히 사내를 떠받들라구!" 그 말에 세 여인은 죽겠다고 히히덕거렸다. "그래 대환희 보살님 수하들이 겨우 네 놈들한테 질 것 같으냐?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릴 하고 있네……." "너희 세 녀석이 모두 내 손에 꺼꾸러지고 말 테니, 두고 봐라!" 이번엔 다른 여인이 나서며 호기를 부렸다. 농부는 그 여인이 그저 거드름을 피워 보는 것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천만 뜻밖으로 여인의 말이 떨어지고 채 일각도 지나지 않아 세 사나이의 낯색이 점점 흙빛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눈마저 휘둥그래져서는 멀거니 세 여인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 필시 부지불식중에 세 여인의 법술에 걸려든 게 분명했다. 이윽고 잣대를 가진 자가 제일 먼저 풀썩 꼬꾸라지고 뒤미처 두 사람도 연이어 꼬꾸라졌다. 한 여인이 천천히 갈고리를 쓰는 사내에게 다가가 거칠게 사내를 잡아 일으켰다. "난 이 세상에서 갈고리를 쓰는 놈을 제일 미워한다. 한데 네 놈은 하필 재수 없게시리 쌍갈고릴 쓴단 말이야!" 그러자 사내는 낯색이 창백하게 질려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가 왜 이처럼 몸이 났는지 알려 줄까? 그건 내가 늘 사내들의 뇌를 꺼내 먹기 때문이다. 내가 네 놈의 뇌를 먹으려 하는데, 어떠냐?" 종래로 사람의 뇌를 꺼내 먹는 사람이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사내는 혼비백산하여 숨넘어가듯 한 소리로 통사정을 했다. "제……발…… 제발 내 뇌를…… 먹지 말아 주……." 여인은 팽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검을 쓰는 사내가 눈을 치뜨며 대들었다. "지독한 년, 지독한 년! 내 지옥에 가서도 네 년에게 복수를 하고야 말리라!" "좋아, 네 놈은 지옥에 가서 날 기다리거라. 망향대에서 하루도 떠나지 말고 내가 가는 걸 기다려! 이봐, 너! 어서 가서 도끼를 가져 와!" 여인은 주인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고 소리를 빽 내질렀다. 주인은 오금도 못 펴고 덜덜 떨면서 애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