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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5[중신통왕중양편] - 40편 (40/60)

2026-09-30 18:52:09 조회 15
"괴보법! 낙영검법(落英劍法)이라는 괴보법?" 임조영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그가 흡 하고 약간 놀라는 동작을 보였다. "이건 도화도의 절기인데 그대가 어찌 알고 있지?" "그럼…… 당신은 황약사……!" 임조영은 말을 다 잊지 못했다. 그가 가면을 벗었다. 임조영의 말대로 그는 도화도에서 온 황약사가 틀림없었다. 임조영의 안색이 밝아졌다. 동사 황약사를 만났다는 사실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 더한 일이었다. 그러나 과연 황약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그녀는 다시 먹구름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그가 무슨 이유로 왕중양을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녀가 반가움과 걱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에 황약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디로 갔을까? 행여나 하는 생각에 임조영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웬 사람 하나가 바위처럼 앉아 낚시질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절벽에 튀어나와 있는 바위들을 다리삼아 아래로 내려간 임조영은 그에게 조용히 접근했다. 임조영의 발걸음에 자갈이 딱딱 하고 소리를 내자 그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중얼거렸다. "허허, 낭자가 오는 바람에 음수어(陰水魚)는 다 잡았군……." 음수어라니? 정강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살고는 있다지만 음수어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던 것이다. 사내의 낯이 매우 익어 임조영이 눈망울을 굴렸다. 다름아닌 개방의 방주 홍칠이었다. '왜 홍칠이 여기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까 황약사가 이 절벽 아래로 떨어졌을 때 잠시 내려다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언제……?' 홍칠이 낚시대 끝에 둔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다시 종남산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이오. 가서 자신의 무예나 더 연마하고 있으시오. 내가 보건데 왕중양의 지혜와 재간으로 그 난쟁이에게 크게 해를 입지는 않을 것 같소." "아니예요. 모용준은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예요. 더군다나 그 사람은……." 임조영은 차마 다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일이 더 확대되기 전에 막아야 했다. 왕중양의 생사가 달린 문제이기도 했다. "그 사람은 지금 황제가 될 꿈에 젖어 있어요." "하하하! 황제는 나 또한 되고 싶소. 난 황궁의 대내(大內) 어선방(御膳房)에 들어가 원앙오진회(鴛鴦五珍膾)를 몰래 먹어본 적이 있거든. 참, 황궁의 다섯 요리사를 들어보셨소? 그들도 이름깨나 있는 명인들인데 요리 솜씨가 일품이죠. 난 그들의 요리를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때가 내게는 가장 좋은 시절이었지." 홍칠은 갑자기 얼빠진 사람처럼 넋을 놓았다. 온통 먹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 아무래도 모자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게 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천하 제일 개방에서 다음 방주감이라 말하는가. 무공만 뛰어나다고 방주 노릇을 할 수는 없을 텐데. 이런 사람은 자기 목에 칼이 들어와도 요리 생각만 할 것이고, 잘려진 머리에는 온통 먹는 일로만 가득할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했다. 임조영이 막 돌아서 가려는데 홍칠이 불렀다. "내 말을 마저 들어 보시오. 거 원앙오진회는 말이지……." 하며 홍칠이 그녀를 뒤따라왔다. 귀찮고 실망이 큰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치달았다. 임조영이 멀리 사라지자 홍칠이 혼잣말을 즐겼다. "여인들이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그리고는 하던 낚시질이나 계속 할 요량으로 자리에 앉는데 누군가 급히 뛰어왔다. "방주님, 방주님!" "내가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는가? 이거 음수어가 또 놀라서 도망을 쳤잖아!" 홍칠이 펄쩍 뛰며 언성을 높였다. "방주님, 저 모용세가에 괴상한……." "범 장로, 그래서 내가 말하지 않았소. 모용준의 집에는 오묘한 데가 많으니 제자들 몇을 더 데리고 가 잘 살피라고. 그곳 어딘가를 찾아보면 음수어 몇 마리쯤은 구할 수가 있을 테니." 범 장로가 어리둥절해 물었다. "음수어라니요?" "어서 가기나 해요. 음수어를 찾지 못하면 돌아올 생각일랑 말고!" 범 장로가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며 돌아가자 홍칠이 다시 낚시대를 잡았다. 잠시 후 낚시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수면 위로 무언가가 치솟으려고 했다. "오냐, 이놈의 음수어가 이제야 잡힐 모양이로구나. 열흘이 넘도록 기다린 보람이 있어!" 홍칠이 곧 낚시대를 잡아당겼다. 얼마나 큰놈이 걸렸는지 좀체 달려 나오지를 않았다. 힘껏 잡아당기자 정말 팔뚝만한 음수어가 걸려 나왔다. 신이 난 홍칠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음수러을 옆에다 놓았다. 운이 좋은 날인 모양이었다. 또 낚시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런데 이번엔 좀 이상했다. "이상한데! 음수어가 이렇게 무거울 리는 없는데……." 더욱 힘을 주어 낚시대를 채던 홍칠의 눈이 왕망울 만해졌다. "이크!" 음수어 대신 물 속에서 온몸이 흠뻑 젖은 웬 사내가 불쑥 솟구치는 게 아닌가. 황약사였다. "난 재수가 없는 놈이군. 꼭 맛있는 음식만 생기면 곁다리 붙는 사람이 생기거든. 우리 이렇게 하지. 내가 이 물고기를 다 먹을 때까지 그쪽에 가만히 있으리구." "허허,. 이 거렁뱅이야! 강호를 돌보느라 또 먹을 것을 챙기느라 바빠서 언제 잠을 자지?" "자네 말대로 난 바쁘니 대신 강호의 일 좀 봐 주겠나?" "이 거렁뱅이야, 먹는 일이라면 몰라도 강호의 일은 나도 간섭하기 싫다네." "그런 사람이 왕중양을 생각하고 또 그 여인까기 구해 주었나?" 홍칠 앞으로 나온 황약사가 씨익 웃었다. "지하궁전에서 내 눈앞을 어지럽히며 어른대던 그림자가 바로 너 거렁뱅이였구만!" "벌거벗은 여인들에게 한눈을 파는 줄로만 알았는데 용케도 나를 보았군?" "하하, 내 마누라가 들었더라면 눈이 뒤집혀졌을 텐데." "입담 한번 걸쭉하군." 홍칠이 누가 빼앗을까 봐 물고리를 날것으로 와작와작 씹어먹기 시작했다. 그런 홍칠을 바라보는 황약사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져 갔다. 제24장 손잡은 두 난쟁이 금나라에 항거하기 시작한 지 몇 달이 되지 않아 왕중양은 군사 몇만을 모았다. 그는 모용준과 더불어 파죽지세를 몰아 북상할 것을 의논하기에 이르렀다. "난 악비의 그 만강홍(滿江紅) 이란 가사가 떠오르네. 정말 피눈물로 찍어 쓴 글이지. 우리가 악비의 그 염원을 따른다면 중원 사람들의 기개를 널리 떨치게 되는 셈이기도 하지 않나?" 왕중양의 말에 모용준이 적극적으로 찬동했다. 두 사람은 이어 성을 빼앗고 잃은 영토를 수복하려면 먼저 개방을 시켜 더 많은 호걸들이 동참하도록 알리게 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되면 성 몇 개를 쉬지 않고 공격할 수 있어 기대보다 큰 성과를 올릴 수도 있을 거라 믿었다. 먼저 정강, 영주, 침주 등이 연합하여 금나라 오랑캐들을 공격하기로 작전을 폈다. 개방의 사람들도 대부분 강남에 와서 정강 부근에서 활동을 개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또한 무림의 각 큰 문파에서도 사람들을 파견하여 왕중양이 벌이는 대사에 일조를 했다. "아야 강릉(江陵)까지 밀어부치고 건강(建康)과 임안(임安)을 위협하여 대송 황제도 혼이 좀 나게 했으면 더욱 좋겠는데……." 모용준의 말이었다. 그러자 왕중양이 반대의사를 보였다. "대송 황제까지 훈계할 겨를이 없네. 쉬지 말고 균주(均州)와 양양(襄陽)을 치고 또 변경(邊境)까지 올라가 대명(大名)과 진정(眞定)마저 내쳐야 하네. 대정(大定)만 정복하면 금나라는 끝장이지." 다시 두 사람은 뜻을 모아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정강은 이즈음 의군의 근거지가 되었다. 각지에서 온 의군들은 정강에 모여 있다가 진군의 나팔소리에 맞춰 적을 물리쳤다. 왕중양은 의군의 영기(令旗)를 들고 진군의 명을 내렸다. 그리고 모용준은 분주히 뛰어다니며 구체적인 전술과 그밖의 일들에 전력을 다했다. 싸움을 마치고 자기 처소로 돌아온 모용준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피로가 겹쳐 나른한 몸이었지만 마음 편히 누울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곧 진군을 위해 몸을 움직여야 했다. 모용준이 있는 처소로 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모두 강호의 정의지사(正義之士)들이었다. "공자님, 이걸 좀 보시오." 이들은 제각기 들고온 비단조각 하나씩을 꺼내 모용준에게 보였다. 모용준 네 놈은 천하 보기 드문 악인이다. 그러나 나보다는 결코 못하다! 거기에는 이런 웃지 못할 글귀가 적혀있었는데 열 개나 되는 것이 한결같았다. 그러나 필체는 모두 같아 한 사람이 쓴 것으로 추측되었다. "어느 놈이 또 나를 모함하려고 드는 것이지!" 모용준은 적이 놀라워하며 한마디 툭 내뱉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곧 담담하게 말했다. "허허,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나? 나를 악인이라고 욕하면서 또 자기는 더 악랄한 악인이라니? 필시 미친놈의 짓이 분명하리라." 소림사에서 온 지비 대사가 예를 올리며 한마디 거들었다. "소승이 보건데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닌 듯싶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사자우란 사람이 강호를 떠돌며 그같은 말을 남긴다고 합니다. 혹시 그 자의 소행이 아닐까 합니다만……." "그럴 리가 없소. 그 사람과 나는 원한을 품을 만한 사이도 아닌데 무슨 이유로 나를 모함하겠소?" 모용준이 발끈 달아올라 성을 내자 이번에는 운심도장이 나섰다. "행여 그자의 소행이라면 각별히 경계를 해야 합니다." "경계할 것도 없소. 우리 모용세가가 그 사람에게 원한을 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적대시한다는 말이요? 이같은 일은 우리의 대사와는 상관없으니 잊어 버립시다. 더군다나 그 사람은 나와 같은 난쟁이인데……." 그렇지만 그밖의 사람들까지 입을 모아 조심하라고 권했다. 모용준이 쓸데없는 말 듣기 싫다며 당장 물러가라 했다. 지비 대사와 운심도장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이들은 모용준이 조심하지 않으면 큰 일을 당하게 될 거라 믿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혼자 남겨진 모용준은 침대 위에 앉아 고심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사자우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은 없었다. 모용준 네 놈은 천하 보기 드문 악인이다. 그러나 나보다는 결코 못하다! 그는 사자우가 전해온 그 글을 되씹어 보았다. 모용준은 사자우의 도전에 대해 회의를 품었다. 더 쉽게 말해 그의 도전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좀도적은 남의 집 물건을 훔치지만 큰 도적은 나라를 훔친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것에 비추어본다면 사자우는 좀도적에 불과하다는 게 모용준의 생각이었다. 자신처럼 나라를 훔치려는 게 아니라 시시하게 비단조각이나 내던지는 그가 불현 우습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정말 가소롭군. 나는 대송의 천하뿐만 아니라 금나라와 대리(大理) 그리고 토번(吐番 ; 지금의 티베트)마저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는데…….' 하지만 몽골은 흩어진 모래알 같아서 한데 모으기가 어렵고, 토번은 황량하여 쓸모가 없었다. 문제는 금(金)나라였다. 지금 금나라가 차지하고 있는 땅은 원래 송나라의 금수강산이었다. 그러므로 이것부터 소유해야 했다. 그래야만 새롭게 태어난 연(燕)나라의 황제가 되는 것이다. 모용준이 지청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모용준 앞으로 걸어온 지청이 읍을 했다. "중요한 일 한 가지를 그대와 의논하고자 불렀네. 이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모용준의 설명을 잠자코 듣고 난 지청이 열쩍은 태도를 보였다. "글쎄, 상서롭지 못한 일인 것 같습니다만. 사자우란 사람은 아주 고약한 인간이라서 한 번 원수를 지면 상대를 죽이기 전까지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답니다. 그러니 부디 그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게……." "그놈이 나를 먼저 해치려 들고 있으니 더 큰 문제가 아닌가?" 모용준은 골머리가 아파 왔다.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의논하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인기척이 났다. "모용준, 거 말소리 좀 높이게.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올려다보니 대들보 위에 한 사람이 걸터앉아 두 다리를 건들거리고 있었다. "네가 얼마나 현명하기에 그 거렁뱅이가 그렇듯 칭찬을 하는지 모르겠군. 내가 보건데 넌 대장부도 못 되지. 무슨 일을 하려거든 내놓고 할 것이지 그게 뭔가? 나를 좀 본받으라고!" 지청의 머리칼이 쭈삣 곧두섰다. 대들보 위에까지 올라와 있는 걸 보면 이미 모용준과 나눈 말도 알고 있으리라. 아니 그 전부터 저러고 있었다면 이곳의 비밀까지……. 모용준의 침대에 있는 비밀까지 훤히 알고 있는 뒤라면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지청은 무겁게 내리누르는 근심과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모용준, 자네도 저 지청처럼 우거지상을 해야 정상이 아닌가?" 이젠 다른 도리가 없었다. 사자우와 맞닥뜨린 이상 슬기롭게 대처해야겠다는 게 모용준의 판단이었다. "이게 누구요! 사자우님이 아니신가요? 미처 인사를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모용준이 예상 밖으로 공손하게 나오자 사자우는 잠시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얼른 본래 자신을 되찾으며 손가락으로 모용준을 가리켰다. "네 이놈! 그 알량한 수작을 그만두지 못할까? 내가 네 놈의 꾀에 넘어갈 그런 바보로 보이느냐?" "사자우님, 저와 벗을 할 의양은 없으신지요?" 모용준은 계속 아첨하는 투로 말하자 사자우는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놈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걸까?' 사자우가 얼른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자 다시 모용준이 회유하기 시작했다. "전 사자우님의 일거일동이 모두 깊은 뜻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자우님도 남의 밑에서 일하기는 싫어한다는 것도 전 잘 알고 있지요. 이렇게 저희 모용세가에 오신 것도 그 뜻이 깊을 줄 압니다만 너무 거리가 멀군요. 어서 내려오셔서 저에게도 그 깊은 뜻을 전해 주시는 게……." "난 이런 곳에서 너와 나를 말은 없다. 지하에 화려한 궁전이 있다는데 왜 날 이런 너절한 곳에서 대접하려 드느냐?" 사자우가 입을 실룩거리며 불만을 표시했다. 모용준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럼 가시지요, 사자우님." 사자우가 신이 나서 얼른 대들보에서 내려왔다. "좋다. 가서 너의 악행을 한 번 보겠다. 과연 나보다 더 한지 내 꼭 확인을 해야겠다." 모용준이 사자우에게 손짓을 했다. 자기가 있는 침대 위로 올라오라는 뜻이었는데 사자우는 모슨 뜻인지 몰라 멀뚱한 눈으로 되물었다. "뭔가?" "자, 이리로 올라오시지요." 사자우가 침대 위로 오르자 곧 스르르 아래로 내려갔다. 바닥에 도착하자 모용준이 능청을 부렸다. "사자우님, 이 지하통로에는 아흔아홉 개의 비밀장치가 있는데 무사히 통과하느냐 못하느냐는 사자우님 재수에 달렸습니다." "비밀장치? 비밀장치를 논하자면 넌 내 손자뻘도 되지 못해." 모용준이 껄껄 웃으며 앞장을 서고 사자우가 그의 뒤를 따랐다. "어디 어디에 비밀장치가 있는지 가르쳐 드릴까요?" 모용준이 다시 능청스런 웃음을 사자우에게 던졌다. "이놈아, 내 걱정말고 너나 조심해라!" 사자우가 슬슬 약이 오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자우님께서 비밀장치에 걸려 해를 입으시기라도 하면 어쩌죠? 공연히 나만 못된 놈이라 욕하실 게 뻔하지 않습니까요?" "걱정 말아라. 내가 죽으면 너 역시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없을 테니." "사자우님께서 잘못 되면 제 처지가 매우……." 모용준이 빙긋빙긋 웃어가며 사자우를 더 안쪽으로 이끌었다. 모용준이 발로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갑자기 한쪽 벽이 흔들리면서 쿠릉 하는 소리를 냈다. 모용준이 급히 몸을 돌리며 사자우를 얼싸안았다. 그 벽을 보니 독이 묻은 화살 수십 개가 사자우를 겨눈 채 바르르 촉을 떨었다. "조심하세요. 제가 먼저 지나갈 테니 조심해서 따라오십시오." 모용준이 허리를 숙이고는 한 걸음 앞으로 옮기려 할 때였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화살 몇 개가 모용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모용준은 이 화살들의 방향을 이미 꿰뚫어보고 있는 터라 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사자우였다. 두 사람 간격은 어느새 네댓 걸름이나 차이가 생겨 사자우 혼자 많은 화살을 감당해야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죽음을 기다릴 사자우가 아니었다. 그는 바닥을 강하게 박차고는 뛰어올라 모용준의 한쪽 어깨를 잡았다. 어깨가 아스라지는 것 같아 모용준이 비명을 질렀다. "아악!" "이놈, 나를 두고 혼자만 살 작정이냐?" 순간 화살이 날아들었다. 사자우가 얼른 모용준의 뒤로 몸을 숨기며 화살을 피했다. 말하자면 모용준이 방패가 돼 버린 꼴이었다. 탁 탁 탁……. 여러 개의 화살이 정확히 모용준의 가슴에 와 박혔다. 그러나 모용준은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피 한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그는 모용세가 전가지보(傳家之寶)인 얇은 갑옷 연갑(軟甲)을 속에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살이 모용준의 가슴에 맞고 아래로 힘없이 떨어지자 사자우가 혀를 찼다. "어허, 빈틈이 없는 놈이군. 하나 그런 것을 입고 지하궁전에서 어떻게 견디겠느냐? 더운 건 둘째치고 여인을 안을 때마다 거추장스러울텐데. 하하핫!" 그러면서 사자우는 모용준의 갑옷을 뜯어 팽개쳤다. 모용준이 목청을 길게 뽑았다. "행삼퇴이! 행삼퇴이!" 이것이 지하통로를 통과할 수 있는 암호였다. 이 암호를 모르면 곧장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망할 놈, 그 소리만을 내면 될 것을 이 야단을 떨었어? 이젠 나도 알았으니 어서 가자." 사자우가 모용준의 뒷덜미를 움켜쥐더니 앞세우고 계속 걸어 들어갔다. "방금전에 사자우님이 어찌 될까 봐 조마조마했었는데 다행입니다." 모용준이 눙치는 어조로 말하자 사자우가 버럭 고함을 쳤다. "이 놈! 내가 네 놈같은 난쟁이에게 당할 사람으로 보이더냐?" 사자우는 거드름을 피우며 계속 모용준을 다그쳐 안으로 걸어갔다. 곧 눈앞으로 또 다른 통로가 나타나자 모용준이 걸음을 멈췄다. "더 갔다가는 위험합니다요. 그러니 이쯤해서 돌아가시지요?" 사자우는 모용준의 말에 발끈해서 주먹으로 내리치려고 했다. "이놈, 너나 조심해라. 네 놈이 먼저 죽어 자빠질까 걱정이다!" "저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사자우님의 손에 죽는다면 영광으로 삼겠습니다." 점점 가관이었다. 모용준은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이런 소리들을 줄줄 외어 댔다. 사자우는 왜 모용준이 멍청하게 구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저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주시할 뿐이었다. 모용준은 조금도 주눅이 든 것 같지 않았다. '이놈도 악인은 악인이야.' 이들은 어느새 지하통로 중앙까지 이르렀다. 모용준이 다시 넉살좋게 입을 놀려 댔다. "만일 제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왔다면 일일이 설명을 했을 겁니다. 어디에 함정이 있고 또 어느 곳을 밟으면 독사굴로 떨어진다는 것들을 말입니다. 허나 사자우님께 이런 귀뜸을 해 드렸다면 웃음이나 살 것같아 그만두겠습니다." 모용준이 떠벌이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사자우는 그의 뒤로 바싹 붙으며 주위를 살폈다. "이러지 말고 좀 물러서세요. 한 발짝만 떨어져 오시라니까요!" 사자우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정말 한 걸음만 뒤로 쳐져 그를 따르면 아무 일도 없을 줄로만 알았다. 사자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막 뒤로 물러서자 그만 발밑이 풀썩 꺼지고 말았다. "악!" 어떻게 손을 써볼 겨를도 없이 사자우는 함정 속으로 떨어졌다. 독사가 득실대는 뱀굴이었다. "저런, 내가 잘못 알려줬네!" 모용준이 떨어진 사자우를 내려다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굶주렸던 독사들은 사자우를 향해 쉭쉭 기어들었다. 사자우가 손사레를 치며 뒤로 물러섰다. 모용준은 몸을 굽혀 함정 안에다 대고 제법 애처로운 소리를 했다. "이 일을 어쩌죠? 그 독사들은 내가 먹이를 통 주지 않아 잔뜩 독이 올라있을 텐데. 사자우님,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요?" 모용준은 울먹이기까지 하며 계속 사자우에게 공포감을 불어넣었다. 함정 안은 온통 독사들의 배설물로 역한 냄새를 풍겼다. 이때 벽으로 기어오르고 있던 독사 두 마리가 사자우의 머리 위로 툭 떨어졌다. 사자우가 "앗!" 하는 소리를 질렀다. 사자우가 국자와 갈고리 등이 달린 병장기를 꺼내 뱀을 향해 휘둘러 댔다. 가히 대단한 무기였다. 어느 샌가 바닥에 깔려 있던 독사의 절반이나 해치운 것이다. 나머지 뱀들은 슬금슬금 꼬리를 흔들기만 할 뿐 선뜻 대들지를 못 했다. 방금 전까지 징징 우는 소리로 너스레를 떨던 모용준의 눈빛이 돌변했다. 사자우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그가 얼른 다른 묘책을 생각해 냈다. "참, 이제서야 생각이 났어요. 내 올라오는 장치를 가동시킬 테니 걱정 마십시오!" 하며 모용준이 뜨르륵 뜨르륵 장치를 열심히 돌려 사자우를 위로 올렸다. "이 고약한 놈! 네가 감히 나를 놀리다니!" 올라오자마자 사자우가 모용준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높이 치켜들었다. 사자우는 모용준을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듯한 기세였다. 모용준이 황급히 양손을 허우적거리며 버둥댔다. "아이고, 억울합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