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논검5[중신통왕중양편] - 36편 (36/60)
"그렇습니다. 또한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여소화가 혼례를 치를 때 몸소 술을 스무 단지나 빚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요." 지청이 자신 있게 다시 술병을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이사람아, 스무 단지나 빚었다면서 뭐가 그리 값지단 말인가?" 왕중양도 모용준이 즐거워하자 한마디 던지며 기쁨을 함께하고자 했다. "아닙니다. 열아홉 단지는 이미 남들이 다 마셔 버린 뒤고 유독 이 단지만 남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정말 귀한 술이겠네요?" 임조영이 짝 박수를 쳤다. 곧 지청이 옥으로 만든 술잔도 가져왔다. "꼭 옥배로 써야 하나?" 왕중양의 물음에 지청이 또 씨익 이빨을 내보이며 웃었다. "자, 술을 부을 테니 한 번 그 색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청이 네 개의 술잔에 찰랑찰랑 넘치도록 술을 따랐다. "어때요? 이 술이 다른 술과 다르지 않습니까? 무엇이 다른지 한 번 자세히 살펴보세요." 지청이 너스레를 떠어대며 세 사람을 술잔 속으로 끌어들였다. 제21장 드러난 모용준의 야심 그 술은 정말 귀하고 값진 술이었다. 지청이 옥으로 만든 잔에 부은 술은 곧 호박(琥珀)이나 마노(瑪瑙)같은 신기한 색으로 변했다. "공자님들, 이 색을 보세요. 천하의 다른 술은 안 마셔도 이 소하네 술은 꼭 마신다는 말이 사실이죠?" 지청이 열심히 침을 튀기자 모두들 수긍이 갔다. 이들은 곧 술잔을 들어 그맛을 음미해 보기로 했다. "이젠 우리 삼형제가 헤어지지 말고 함께 지내도록 합시다!" 모용준의 말이었다. 왕중양과 임조영은 그말에 가슴이 복받치는 감동을 받았다. 임조영은 모용준의 우애에 새롭게 탄복했다. 왕중양도 속으로 모용준과 만난 기쁨을 깊이 다졌다. '내가 이렇게 이들과 의형제를 맺은 게 천만다행이다. 이 동생들이 없었더라면 나 강호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임조영 그녀 역시도 왕중양과 뜻을 같이했다. 이들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건배를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모용준과 지청은 술잔을 들고만 있을 뿐 입에 데지 않았다. 아까 처음 건배를 했을 때부터 술이 줄지 않은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섣불리 입 밖에 내어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왕중양과 임조영의 가슴에 차가운 바람이 일었다. 이들은 오랜 무인의 생활습관으로 얼른 정상적이지 못한 기운을 감지해 냈다. "동생은 왜 술을 마시지 않는가?" 왕중양이 망설인 끝에 모용준을 쳐다보며 물었다. "봐요, 저것들이 또 오는데 내가 어떻게 술을 마시겠어요?" 모용준의 낯빛이 달라지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돌아보니 어느샌가 주정과 목우가 다시 돌아와 있는 게 아니던가. 또한 이들은 왕중양과 임조영의 뒤에 서서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왕중양의 예감은 적중했다. 이들은 구태어 물어보지 않아도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임조영에게 짧게 눈짓을 보낸 왕중양이 몸을 솟구쳐 모용준을 덮쳤다. 그러나 이미 몸에 독기운이 퍼진 상태라 제대로 무공을 쓸 수가 없었다. 워낙 작은 체구의 모용준이 한 발짝만 움직였는데도 왕중양의 손길은 빗나가고 말았다. 바닥에 이마를 찧고 만 왕중양에게로 주정이 다가왔다. "큰공자님, 여인이 그립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바닥에 입을 맞추려고 그러우?" 그가 왕중양의 목덜미를 잡더니 힘을 주어 일으켜 세웠다. "태호에서 죽지 않았으면 큰 은혜를 입은 줄 알아야지 또 찾아와서 우리 공자님과 어쩌겠다는 거야? 죽지 못해 야단인가?" "이 비열한 사람!" 임조영이 모용준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려고 했다. 모용준이 탁자 위에 올라섰다. 그러자 왕중양이나 임조영과 키가 비슷해졌다. "그래, 난 비열한 인간일지도 모르지. 그리고 영락없는 난쟁이고." 모용준이 싸늘하게 말을 뱉으며 임조영의 얼굴로 손을 내뱉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모용준에게 철썩철썩 두어 차례나 뺨을 얻어맞았다. 그가 이처럼 변해 버릴 줄 몰랐던 두 사람은 이 상황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뺨을 얻어맞은 임조영도 할말을 잃은 채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모용준이 왕중양에게로 몸을 돌렸다. "왜 내가 그대와 의형제를 맺었는 줄 아나? 난 너를 내 휘하에 두고 이용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헌데 '사별삼일(士別三日)이면 괄목상대(刮目相待)'라더니 그 주제에 천하 무림의 맹주가 되었지. 맹주? 좋은 말이지. 맹주면 무공이 대단할 텐데 어디 얼마나 뛰어나나 볼까?" 모용준의 손이 왕중양의 뺨을 향해 빠르게 들이쳤다. 왕중양의 머리가 심하게 돌아갔다. 그는 너무 어이가 없어 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셋째, 우리가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보군." 왕중양이 임조영에게 이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짓자 그녀는 치욕에 몸을 떨었다. "네 이놈! 도대체 우릴 어쩔 셈이더냐?" 더 이상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왕중양의 목줄기가 붉게 변했다. 그러나 모용준은 가소롭다는 듯 입을 삐죽거렸다. "그럼 내가 말해주지. 난 우선 너를 폐인으로 만들 생각이다. 무공을 전폐시키고 내 말만을 듣는 꼭두각시로 만들 셈이다. 그렇게 되면 무림의 맹주는 사람이 바뀌겠지. 또한 난 언제부터인가 임조영이 사내가 아닌 것을 알았다. 비록 그녀가 자신을 내보여 그 의문을 확실하게 털어버릴 수는 있었지만 난 그전에 눈치채고 있었어. 덧붙여 말한다면 난 임조영의 미색에 마음을 두고 있는 지 이미 오래다. 하하하!" 모용준의 뒤에 장벽처럼 버티고 있는 네 사람도 냉소를 씹어댔다. 지청과 허불잉 그리고 다시 나타난 주정과 목우까지. 모용준이 허리를 굽혀 탁자 위에 있던 술잔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 술은 진짜 여소화네 술이지. 허나 좀 다르다면 내가 이 술에 약간의 약을 넣었다는 것. 그러니 너는 곧 몸에 지니고 있던 무공을 잃게 될 것이다. 고수라는 소리도 이것으로 영원히 끝이지. 하하하, 넌 범부속인(凡夫俗人)에 지나지 않게 될 텐데 심정이 어떠한가? 그 대신 맹주 자리는 그대로 갖고 있어도 좋아. 왜냐하면 그 자리에 앉아 내가 시키는 대로 일처리를 해야할 테니까." 다시 모용준이 썩 유쾌한 듯 허리를 펴고는 웃어댔다. "대연의 복구가 비록 어렵다 할지라도 이 모용준이 무림 천하만 손아귀에 넣게 되면 어려울 것도 없으리라!" 모용준이 웃음을 거두고는 상기된 낯색을 보이자 네 사람이 무릎을 꿇고는 입을 모았다. "폐하의 말씀 참으로 영명하나이다!"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두 눈을 조용히 감은 채 왕중양은 자신 앞에 닥친 난국에 대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는 먼저 배신감에 씁쓸하기만 했다. 어떻게 얻은 선천신공인데 제대로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믿었던 사람에 의해 폐해진단 말인가. 왕중양은 슬픈 어조로 중얼거렸다. "셋째, 입맛이 쓴 것이 달콤한 꿀이라도 마시고 싶군." 임조영은 애써 평정을 되찾으려는 왕중양의 심기를 읽어내고는 더욱 암담해졌다. "모용준, 너 같은 소인배가 천하를 차지하겠다고?" 매서운 눈초리로 임조영이 쏘아보자 모용준이 허옇게 이빨을 드러내며 비웃었다. "임조영, 그대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네 술에 탄 것은 또 다른 약이지. 우리 모용세가에서 전해져오는 구신산(九呻散)이라는 독약이야. 내 말을 따르면 너를 황후로 봉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 말에 추호의 거역을 보인다면 너 역시 왕중양과 마찬가지로 무공을 뽑아내 한낱 나약한 여인으로 만들 것이다." "흥, 네가 나를 차지하겠다고?" 임조영의 반응에 모용준은 몹시 흥분되었다. 자신의 말을 거역하려는 사람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닥치거라!" "너 같은 추악한 속물이 나를 얻을 수 있을까?" "천하에서 내가 길들이지 못하는 계집은 없다. 그렇다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거라. 저게 누구인지를!" 모용준이 막사 밖에다 대고 소리치자 곧 누군가 들어왔다. 왕중양과 임조영의 눈동자가 심하게 동요했다. 그녀는 바로 자지였던 것이다. 그녀는 왕중양과 임조영이 처한 입장을 단번에 헤아리고는 모용준에게 따져 물었다. "너무 하는군요. 제게 약속했잖아요. 이 두 분은 해치지 않겠다고." 모용준이 시선을 피한 채 내뱉었다. "난 이들을 해치지 않았어. 난 오직 임조영에게 황후가 되라고 하였고 또 왕중양에게는 내 말을 듣겠냐고 했을 뿐이지. 아니 왕중양에게는 무림의 맹주가 꼭 되라고 했지." 자지는 피를 토하듯 울컥 치밀어오르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소리내어 울었다. "내가 잘못이야. 내가 먼저 알려 주었다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흑!" 임조영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모용준이 다가와 자지의 턱을 들어올렸다. "자지, 그대는 나의 낭랑이 아니던가? 나와는 이미 일심동체의 관계인데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내 말만을 들어야 해. 알겠지?" "아니야. 당신은 날 속였어요. 지금도 날 속이려 하고 있다구요!" 그녀가 더 서럽게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모용준이 지청에게 일러 뒤를 따라가 보라고 일렀다. "형님, 죄송합니다요. 그동안 제가 자지를 너무 버릇없게 만들어놨군요. 용서하시지요." 넉살좋게도 모용준은 이렇게 지껄이며 왕중양의 눈치를 엿보았다. "점점 악인의 모습을 닮아 가고 있구나!" 왕중양이 다시 눈을 감으며 탄식했다.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거요? 무림의 맹주가 해야할 일을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 잔말 말고 내 말대로 하시오!" 그리고는 얼른 왕중양의 품 안에 있던 죽편(竹片)을 꺼냈다. 이것은 홍칠이 왕중양에게 준 무림 맹주의 신표였다. 이것을 지닌 채 무림의 사람들을 부르면 장강 남북의 호걸들은 모두 불러모을 수가 있기도 했다. "임조영, 그대는 아직도 황후가 될 생각이 없는 건가?" 모용준이 임조영을 향해 음흉스런 눈빛을 뿌렸다. "더러운 놈, 내 평생 사내를 만나지 못하는 일이 생겨도 너 같은 추물에게는 시선조차 줄 수 없다!" "사내를 만나지 않겠다는 건 참 좋은 일이지. 하지만 나는 상대해야 될 것이다." 그는 왕중양과 임조영을 번갈아 가며 괴롭혔다. 이번에는 또 왕중양에게로 몸을 돌리며 씨부렁거렸다. "형님, 내 말을 잘 들어 보우. 눈앞의 천하가 크게 어지럽고 무림의 인사들도 모래알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현실이오. 무림의 인사들이란 원래 모두 자기의 문파와 처세를 위해서만 목청을 뽑는 그런 인간들입니다. 형님이 비록 무림 맹주가 되었을지라도 기실 형식에 불과한 일이오. 형님이 호령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따를 것 같소? 어떻게 금나라 오랑캐를 내몰 수가 있겠소?" 왕중양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모용준의 짓은 쳐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지만 지금 하고 있는 말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묻어있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강남 일대에 있는 금군은 몇십만을 헤아리는데 그들 대부분은 중심부에 몰려 있고 나머지는 분산되어 있는 형편이오. 그러니 각개격파를 한다면 그들을 치는 것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거라 보오. 물론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는 뒷짐을 진 채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네 사람의 사내들이 그를 탄복과 경의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비록 난쟁이였지만 그의 통솔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떤 방법을 썼던지 간에 네 사람의 건장한 사내를 이토록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형님, 그러나 형님이 염려할 일은 아닙니다. 나에게 다 방법이 있으니까요. 강남에 있는 금군을 모두 소멸해버릴 방책이 있다고요." 한동안 입을 다물고 그의 말만 듣고 있던 왕중양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네가 금나라 오랑캐를 물리칠 수만 있다면 내가 맹주 자리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네가 만약 진심으로 그런 일을 한다면 난 기꺼이 너에게 자리를 양보하겠다." 그러나 임조영이 막아섰다. "안돼요. 저 사람의 말을 믿지 마세요. 저 모용세가 사람들은 대대로 오직 황제가 되어보겠다는 야심으로 눈이 먼 사람들이예요!" "정말 바보같은 소리를 하고 있군!" 모용준이 임조영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나 모용준은 어떤 선조들보다 총명하다는 걸 알아야지. 난 황제가 되기 전에 먼저 만백성을 위하여 좋은 일부터 많이 해놓으려는 사람이야. 내가 좋은 업적을 쌓아 두면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황제로 모실 게 아닌가." 모용준의 자신에 찬 웃음 소리가 다시 막사를 뒤흔들었다. 강남 강북의 모든 무림호걸들은 무림의 청첩을 한 장씩 받게 되었다. 각 무림의 제일인자들은 다음달 보름날밤에 정강(靜江)의 모용산장에 모여 좋은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어 보자는 내용이었다. 신임 맹주인 왕중양이 돌린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은 왜 하필이면 모용씨네 산장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강호의 많은 사람들은 모용세가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모용세가는 대대로 무림을 제 손아귀에 넣을 것만 염두에 두었기에 이들은 경계를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신임 맹주 왕중양이 모용준과 의형제를 맺었으니 모용세가로 모이라고 한 것이 그리 무리는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사람들은 배를 타고 또 걸어서 9월 15일 전에 모두 정강에 도착하였다. 모용산장으로 이들이 들어서자 가신들이 달려 나와 허리를 굽혔다. 지청과 허불잉 그리고 주정과 목우였다. 이 때문인지 모용세가에 대한 좋지 못한 평판을 말끔이 씻어 버리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은 비로소 마음을 놓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차츰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데 왕중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신들과 이들을 부리는 모용준만이 보일 뿐이었다. "모용 공자님, 왕중양 맹주님은 어디에 계시나요?" 한 사람이 어렵게 입을 떼었다. "큰형님은 요 며칠 동안 새로운 무공 한 가지를 연마하느라 피곤한 탓인지 쉬고 계시지요. 대신 저희가 정성을 다해 모시겠으니 안심하시지요." 모용준의 태연스런 말에 사람들은 더 이상 묻지를 않았다. 강남에서 가장 성미가 불같아서 한곳에 오래 있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름아닌 흑도(黑道) 출신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이곳 모용세가에 와서 술이나 마시며 종일 앉아 있으려니 갑갑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중 조평(祖平)이란 자가 참다못해 지청에게 청을 했다. "형님, 우리 답답해서 죽을 것 같소. 어디 좀 나가 놀 데가 없소?" 지청이 곧 이들의 뜻을 헤아리고는 반색했다. "왜 없겠소. 저기 뒷산에 가보면 꽤나 흥미로운 곳이 있소." 조평이 이 말에 늑장을 피울 수가 없었다. 구미가 당겨 한 걸음에 지청이 일러준 뒷산으로 향했다. 대나무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몇 굽이를 돌려는데 웬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안 돼! 그러면 안 되지. 다시 해요." 이어서 깨르르 하고 웃는 여인들의 소리도 들려와 조평의 귀가 번쩍 뜨였다. 그는 삽시간에 가빠진 숨을 고르며 좀더 가까이 다가갔다. 대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그쪽을 살피던 조평의 입이 벌어졌다. 그곳에는 녹림 호걸 몇몇이서 역시 어여쁘게 생긴 여인들을 양쪽에 끼고 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닌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여인들은 알몸이나 다름없는 얇디얇은 천조각만 걸치고 있는 상태였다. 조평은 헉 하고 차오르는 숨을 애써 누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바람에 여인들이 두르고 있는 천이 하늘거렸다. 그럴 때마다 여인들의 은밀한 부분이 보일락말락 해서 더욱 애간장을 녹였다. '오, 이렇게 신나는 곳이 있어서 지청이 이곳으로 나를 보냈구나!' 조평이 옷미무새를 매만지며 헛헛 헛기침으로 자신을 알렸다. 그리곤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이 조평만 적적하게 떨구어 놓고 모두 이곳에서 재미를 보고 계셨군요? 나도 좀 끼여 주시구려." 그러자 퍼질러 앉아 여인들에게 지분거리고 있던 사내들이 환영을 했다. "조평이로구만. 어서 오게나. 자네 몫으로 한 게집을 덜어 주면 되니까 어서 객고나 풀라구." 조평이 조목조목 아까이서 여인들을 감상했다. 모두가 천하일품의 미색을 갖춘 여인들이었다. 경성 회모루의 기생보다 더 요염하고 나긋나긋한 것이 사내들 애간장을 수없이 녹였을 그런 여인들이었다. 알몸으로 앉아 있는 것에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는 여자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조평은 그저 넋을 놓을 따름이었다. 그중 얼굴이 동글납작하게 생긴 한 여인이 다가와 양팔로 조평의 목을 끌어안았다. "나으리, 반갑네요." 그러면서 그녀는 풍만한 젖가슴을 조평의 가슴에 바싹 들이밀었다. 뭉클한 것이 전해지자 조평이 꼭 소변을 보고난 사람처럼 후득 어깨를 한차례 떨었다. "나으리, 가죽잔으로 술을 자셔보시지 않겠어요?" 여인이 애교를 떨어가며 조평에게 술을 권하려 했다. "있는 재간을 어디 한 번 부려봐라." "호호호, 나으린 시원시원하셔서 마음에 들어요." 여인이 호들갑을 떨며 잔에 가득 술을 부었다. "나느리, 이 술을 어서 드셔보세요." "물론 마시고 말고." 여인이 술을 한 모금 입에 물었다. 그리곤 입술을 오무려 내밀더니 조평의 입 속으로 뿜어 주었다. 술을 맏아 마신 조평이 감탄을 했다. "허, 그 술맛 참으로 별미네!" "근데 아직 가죽잔 맛은 못봤을 테지? 잘못하면 껌벅 취해 쓰러지는 수가 있다구." 강호객들이 이렇게 떠벌이며 웃어댔다. "취하면 좋지요. 취한 상태로 여인을 안아야 제 맛이지." 조평이 히죽거리자 얼른 여인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여인의 거동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조평의 눈이 찢어질듯 점점 커졌다. 여인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양쪽 젖가슴 밑을 모아 쥐었다.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하고 조평은 더욱 호기심이 동해 침을 소리나게 삼켰다. 여인이 다른 손으로 술주전자를 들더니 젖가슴 사이로 술을 부었다. 곧 그 계곡에는 큰잔 정도의 술이 고였다. 강호객들이 손뼉을 치며 흥을 돋구었다. "허, 그 술잔 한 번 크네!" 한 강호객이 이렇게 말하자 여인이 가볍게 눈을 흘겼다. "그럼 마실 땐 몰랐단 말이예요?" 곧 조평이 상체를 굽혀 여인의 젖가슴 사이에 부어놓은 술을 혀로 핥고 들이마시며 열을 올렸다. 그럴 때마다 여인이 간지럽다며 몸을 비비 꼬았다. 조평은 정신없이 여인의 젖가슴 사이에 코를 박고는 감빨아댔다. 여인의 체취와 어우러진 술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그래, 또 무슨 재간이 있더냐?" 입가에 술범벅을 한 조평이 신이 나서 여인에게 재촉했다. 여인이 생글 웃었다. "나으리께서 좋다시면 제가 광기를 부리고 싶은데 역정내시지 않겠지요?" "암, 어떤 재간이든 마음놓고 부려 보거라!" 여인이 곧 심부름하는 계집에게 물 한 대야를 떠 오게 했다. 조평이 다시 입맛을 다시며 여인의 행동거지에 눈길을 빼앗겼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여인은 민망하게도 여러 사람들이 빤히 보고 있는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밑을 씻는 게 아니던가. 그것도 뽀득뽀득 하는 소리를 내가며 정성스레 다리 사이를 물로 씻었다. 그러더니 여인이 훌쩍 물구나무를 섰다. 그런 다음 다리를 쫙 벌리고는 조평을 거꾸로 바라보았다. 조평의 눈을 커질 대로 커져서는 움직이질 않았다. "나으리, 여기에 입을 맞춰 주시겠어요." 곧 계집이 술주전자를 들고 쪼르르 달려와 그녀의 은밀한 곳에 술을 따랐다. 조평은 처음 당하는 일이고 너무 황당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봐, 산전수전 다 겪어본 사내 대장부가 떨고 있는 건 아니겠지?" 강호객들이 부추기자 조평은 할 수 없는지 쭈뼛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여인에게로 다가간 조평이 다시 주춤했다. 여인의 그곳에 엉키듯 피어난 거웃을 보자 왠지 역겨운 기분이 들어서였다. "저 힘들어요. 어서요?" 여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조평에게 안달을 했다. "에라, 나도 광기 한 번 부려보자꾸나. 마시라면 마시는 게지." 하며 조평이 눈을 질끈 감고는 여인의 다리 사이에 코를 박았다. 그리곤 찍찍 주꺽주꺽 하는 요상한 소리를 내며 술을 빨아 마시기 시작했다. 한참 정신없이 술을 빨고 있는데 궤변이 일어났다. 갑자기 여인이 두 다리를 집게처럼 조평의 머리를 꽉 조였다. 조평이 허둥대며 외쳤다. "어, 이거 왜 이래? 어서 놓지 못해!" 강호객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허리를 꺾었다. "이봐, 그렇게 오래 있다가는 숨막혀 죽겠네. 자네의 그 재간은 놔두었다가 어디에 쓰려나? 계집의 다리 사이에서 죽었다는 말 듣기 전에 어서 손을 쓰라구." 한 사내가 이렇게 빈정거리자 다시 박장대소가 터졌다. 조평은 여인이 자기에게 묘한 장난을 걸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는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다. 한편 모용세가에 이처럼 기막힌 재미거리가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미인과 함께 달을 보려고 하였더니 별 하나 없는 칠칠야밤이고, 미인과 함께 글을 쓰려고 했지만 등불이 꺼져 앞이 보이지 않아. 에라, 모르겠수다. 기왕 어두운 밤 남녀간에 할 짓이라고는 이짓밖에 없구나!" 신명이 나서 한차례 입을 놀려댄 조평이 여인의 그곳을 간지럽혔다. 손톱 끝으로 살살 긁어대고 또 꼬집어대자 여인이 두 다리를 풀고는 황급히 달아났다. "어, 계집이 도망치네! 어서 붙잡지 않고 뭐해?" 한 사내가 깔깔대며 달아나는 여인을 가리키자 조평이 씩씩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