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논검4[남제단지홍편] - 22편 (22/70)
난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소." 라마 중의 말에 사람들은 발끈해서 벌떡 일어섰다. 한둘이 아니 었다. 그중 제일 격분하는 사람이 바로 청수 검객이었다. "이 놈이 지금 어디 와서 허튼소리야! 중양 진인이 어떤 분이라고 감히 그따위로 입을 놀려!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라마 중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 역시 맞받아 벌떡 일어서며 소리 쳤다. "말 같지 않은 소리! 중원에 그런 왕중양이 있는데 왜 당신들은 금나라 사람들에게 꼼짝도 못하오. 중원엔 사람이 없소? 금나라 사람 몇 배, 몇 십 배가 되는데 왜 그러고 있냐 말이오! 열이 달 려들어 하나만 죽여도 금나라 사람은 씨도 남겨 놓지 않고 꺼꾸러뜨릴 수 있을 거요. 그런데도 중원 사람들은 금나라 사람 그림자만봐도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달아나니, 정말 우습지 않소?"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었다. 주루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중원 사람들인지라 모두들 노기가 충천하여 당장이라도 덤벼들 기세였다. "이 중 놈아! 미친 소리 그만 하고 중원 사람이 어떤가를 알려면 나하고 직접 겨루어 보자!" 그러나 라마 중은 태연히 코웃음만 쳤다. "이거 왜들 이러시오? 당신들이 금나라 사람한테 꼼짝을 못한다고 했지 어디 나한테 꼼짝못한다고 했소? 당신들이 날 이기면 어쩔 거요? 나 같은 걸 이기는 게 뭐 그리 대단하오?" 딴은 그렇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말에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러나 성미가 거친 구레나룻 장한은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었다. "너 따위가 우리 중원 사람들을 업신여기다니! 내 네 놈을 가만 놔둘 수 없다. 네 놈이 나를 이기면 그때 가서 네 놈 마음대로 비웃어라." 장한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악 소리를 지르면서 다짜고짜 몽둥이를 높이 쳐들었다. "후회 마라, 이 놈! 한 번만 더 중양 진인을 욕했다가는 박살이 날 줄 알아라." 그러나 라마 중은 몽둥이가 치켜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도 피하지도 막지도 않았다. 그러든 말든 구레나룻 장한은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 모아 있는 힘껏 라마 중을 내리쳤다. 딱 하는 소리가 무섭게 났다. 사람들은 라마 중이 입질 한 번 잘못한 대가로 황천객이 되었다고 혀를 찼다. 그러게 하필이면 왕중양의 위망이 중천에 뜬 햇발같은 이 마당에 중원에 와서 왕중양을 비난할 게 뭐란 말인가. 왕중양이 중원의 무림을 거느리고 금군(金軍)에 저항할 땐 금군도 왕중양의 이름 석 자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해졌다고 하지 않는가. 중원을 위해 왕중양이 한 일을 모르고 함부로 비웃다가 저 봉변을 당했으니 자업자득이요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사람들은 저마다 눈이 휘둥그래진 채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분명 머리뼈가 빠개지는 소리가 났는데도 라마 중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히 서 있었다. 뿐더러 몽둥이는 그새 용수철에 퉁겨 나가듯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아니, 사람이 아니고 귀신인가?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라마 중을 바라보았다. "중원 사람들은 이치고 뭐고 없이 몽둥이가 먼저구먼. 그저 달려 들기만 하면 장땡이야." 라마 중은 눈썹 하나 까딱 않고 태연히 말했다. 구레나룻 장한은 혼이 절반이나 나가 대답도 못하고 얼뜨기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어야지요. 중원 무림의 인시에 나도 답례를 해야겠소. 이젠 내 차례요. 자, 한번 막아 보시오." 라마 중의 한마디에 구레나룻 장한은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도 이제 자기가 라마 중의 적수가 못 됨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굴복을 하자니 앞으로 강호에 나설 면목이 서겠는가. 구레나룻은 내심으로는 겁이 덜컥 나면서도 호기롭게 허풍을 떨어댔다. "그럼 어디 손을 써 봐. 나라고 못 막을 줄 알아?" 그러자 라마 중은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손을 쳐들었다. 그 순간 손에서 기이한 향기가 풍겨 왔다. 사람들은 기이하게 여기면서도 그것이 무슨 초수인지 도시 알 수가 없었다. 이제껏 그런 초 수는 본 적이 없었다. 단지 청수 검객만이 낯색이 확 변하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앗, 저것은……." 그러나 얼이 빠져서 진땀을 빠작빠작 흘리고 있는 구레나룻에게 그 소리가 들릴 리 만무였다. 그는 그저 라마 중이 장풍을 내치려고 그러는가 보다 하고 가만히 서서 라마 중의 장풍을 막을 태세를 취했다. 그러나 라마 중은 허공에서 손을 딱 멈추더니 퍼뜩 모로 세웠다. 그러자 그의 손은 마치 칼날처럼 날이 서고, 벌겋게 달아 오르는 것이었다. 이어 그는 두 눈에서 살기를 내뿜으며 구레나룻을 향해 번개같이 손을 내리쳤다. "조심햇!" 청수 검객은 라마가 손을 내치는 찰나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속에서 번개같이 몸을 솟구쳐 내리치는 라마 중의 손바닥을 자기 손으로 턱 막았다! 중년 사나이는 라마 중이 손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그것이 바로 티베트의 화염도장식(火焰刀掌式)인 줄을 금세 알아보았다. 화염도는 원래 장승 구마습(塢摩什)의 독점 무공이었는데 일찍이 대리 천룡사 일양지공을 이긴 적도 있었다. 후에 구마습은 무공을 폐하고 티베트의 이름 높은 고승이 되어 허다한 불경 역서(譯書)를 썼다. 구마습의 화염도장 무공은 실전되어 없어졌다고 회자되었는데 어떻게 이 라마 중이 이 초수를 펼쳐 내는 것인지 청수 검객은 기이하기만 했다 청수 검객은 일단 화염도장을 맞받아 내치기는 했지만 그 기세에 밀려 서너 장이나 비틀비틀 뒷걸음질을 쳤다. "대단해, 대단한 무공이야……." 청수 검객은 낯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 간신히 한마디 토해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적이 긴장하여 찍소리도 못하고 숨을 죽였다. 그 소리로 보아하니 청수 검객은 내상을 입었음에 틀림없었다. 다만 한 사람만이 냉큼 내달아 청수 검객을 끌어안으며 부르 짖었다. "이 봐, 곽 대협, 괜찮으신가?" 사람들 중엔 이 화산파의 수제자 곽명송(雲明松)과 교분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중에는 곽명송의 무공을 따를 자가 없는데, 그마저 이렇게 단번에 여지없이 당하고 말자 사람들은 모두 겁먹은 눈길로 라마 중과 곽명송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라마 중은 한껏 기가 올라 거만하게 소리쳤다. "당신들 중원엔 여태껏 세상에 내놓을 만한 무림대가가 어디 있기나 있었소? 그러고도 뭐 천하 무림의 수령이 되겠다고? 그래도 왕중양은 스스로 《구음진경》을 내놓겠다고 하는 걸 보면 자기 주제를 알고 있거든. 그만하면 총명하다고 할 수 있지." 사람들은 라마 중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거들먹거리자 속으로는 불끈불끈하면서도 그 위력에 눌려 누구도 말을 못했다. 이윽고 곽 대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장(西藏)의 라마가 감히 대협 중양 진인을 능멸하다니. 당신이 지금은 그따위로 주둥아리를 놀리고 있지만, 감히 화산 봉우리에 올라 우리 중양 진인과 자웅을 겨루어 볼 음기는 있는가?" 라마 중은 가스롭다는 듯 깔깔 웃었다. "내가 중원 고수들을 이길 자신이 없다면, 당신들의 그 왕중양과 겨뤄 승산이 없다면, 밥 먹고 할 일이 없어서 예까지 찾아왔겠소? 난 결코 중원 땅에 유람 온 것이 아니오!" 그 말에 사람들은 다시금 두 눈이 휘둥그래지며 이젠 누구도 범접할 생각을 못했다. 감히 중양 진인과 직접 맞서려고 온 사람을 자기들이 당해 낼 재간이 있겠는가. 곽명송도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게 누구 없느냐?" 주루 안이 대번에 숙연해지자 라마 중은 득의양양하여 잔뜩 위엄을 부리며 사환을 불렀다. 주루의 사환들은 무서워서 여차직하면 달아나려고 저마다 문고리를 붙잡고 서 있다가 낯색이 새하얗게 질려서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힌 채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들은 그 앞에 가까이 다가서자 당장이라도 라마 중의 그 칼 같은 손바닥이 정수리를 내리칠까 봐 더욱 몸을 움츠렸다. "어서 술과 안주를 가져 와!" 라마 중은 눈을 부라렸다. 사환들은 즉시 읍을 하고는 그대로 허리를 굽힌 채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더니 이내 술과 안주를 한 상 그득 차려 왔다. 라마 중은 한껏 흥이 올라 술을 꿀꺽꿀꺽 마시고는 껄쩔 웃었다. "서장에서 듣기로는 중원 무림에 인물이 아주 많다더니 모두 헛소문이었군, 헛소문! 중원에 와 만나는 족족 모두 무용지물들뿐이니, 이거야 원 재미가 없어서……." 라마 중은 콧대를 건뜻 들고 방약무인하게 떠들어댔다. 곽 대협은 사람들을 보고 소리를 죽여 말했다. "글쎄 우리로선 저자를 어쩔 수가 없구먼. 저 사람 말대로 우리 중원에 고수들이 없는 건 아니지 않은가. 대리 황제 단지흥이나 전진교 교주 왕중양, 동해 도화도 도주 황약사, 그리고 백타산군 구양봉, 이 네 사람의 무공은 가히 경지에 올랐다 할 수 있지 않은가……. 이외에도 고수들이 허다하나 이 자리에 없는 게 한이로구먼." 사람들은 곽 대협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모두들 자기 고장에서는 제법 주름을 잡으며 우쭐거렸지만 우물 안 개구리 격으로 천하에 그 많은 고수들이 있는 줄은 미처 모르고들 있었다. 오늘 곽 대협의 말을 듣고서야 그 네 사람의 이름을 비로소 알게 된 사람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중원엔 그 몇 명만 고수고 다른 사람은 모두 등신이다. 이 말이구먼. 쳇, 그런 걸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으니……." 속삭이듯 작게 말했는데도 라마 중은 금세 알아듣고 그 말을 맞받아 쳤다. 그때였다. 주루 안으로 한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살이 퉁퉁하게 오르고 크지 않은 키에 도포를 입었는데 생김새가 사뭇 무던해 보였다. 그는 방금 들어오면서 라마 중의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맞소. 당신 말마따나 우리 중원엔 고수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정말 몇 안 되오. 그런데 당신은 그 사정을 어떻게 그리 잘 아시오? 복색을 보아하니 서장 끝에서 온 라마 중이신데?" 라마 중은 자기와 수작할 사람이 없어 무료하던 차라 반가운 기색으로 되물었다. "무엇 하는 분이온데 내 말에 동감을 하시오?" "맞으니 동감이지요. 당신 하는 말이 딱 맞단 말이외다. 우리 사형께서도 천하에 고수가 몇 없다고 늘 한탄을 하셨지요. 당신도 내 보기엔 고수는 아니고 겨우 명수(名手)에나 들는지 모르겠소만." 농담인지, 조롱인지 알 수가 없었다. 기색으로 봐선 무던한 게 농이나 조롱은 모를 사람 같았다. 라마 중운 다소 기분이 상해 내뱉듯 또 되물었다. "글쎄, 무엇 하는 사람이냐니까? 말을 들으면 사형이 분명 대단한 무림 고수 같은데 그래, 사형이 대관절 뉘시오?" 그러자 그 사람은 갑자기 이맛살을 찌푸리며 바로 대답을 못하고 꺽꺽거렸다. "우리 사형 말이오? 우리 사형이 누군가 이 말이오?" 어쩐 영문인지 그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는 듯싶었다. 라마 중은 괴이한 생각이 들었다. 강호 사람들은 만나면 제일 먼저 자기 문파(門派)부터 통성명하는 것이 상례였다. 자기가 소속된 문파가 아무리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문파도 없는 떠돌이보다는 백 번 낫기에 누구나 문파부터 들이대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이러는 것일까? "칼을 차고 있는 걸 보면 무림 사람이 분명한데 왜 자기 문파를 못 대는 거요?" 라마 중은 성마르게 다그쳤다. "못 대긴 누가 못 대? 우리 사형은…… 에잇, 나, 원!" 그 사람은 아예 화까지 내며 발뒤축을 구르더니 끝끝내 제 사형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욱 수상쩍었다. '이건 어디서 문파도 모르는 떠돌이 같은 게 굴러 온 거 아냐? 남들이 알면 주루에 올라올 자격도 없다고 내쫓을까 봐 차마 말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잖아! 사형이 있다면서 왜 이름을 못 대냔 말이야!' 사람들은 한결같이 내심 이런 생각을 하면서 눈꼬리를 치켜 올리고 이 사내를 노려보았다. "이봐, 무슨 문파인들 꺼릴 게 뭔가? 아무리 작은 문파라도 우린 모두 한식구, 한형제가 아닌가. 뭘 그렇게 우물주물하나?" 곽 대협이 사뭇 온순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 퉁퉁한 사람은 털어놓고 말은 못하면서도 도리어 펄쩍 뛰며 언성을 높였다. "우리가 왜 작은 문파란 말인오? 우리 문파처럼 큰 문파가 있으면 한번 나와 보라 그래요! 우리 사형은 천하에서도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영웅이오, 영웅! 우리 사형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솟구쳤는지 급히 입을 다물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만 하자, 그만 해. 아무리 말해 봤자 내막 모르는 사람은 말귀도 알아듣지 못할 테니. 사형님 말씀도 있잖아…… 그러니까, 음…… 에라, 또 잊었군. 에잇 이 정신머리 좀 봐라……." 서장 사람까지 끼여들어 중원 무림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판에 이제는 어디서 저런 얼뜨기마저 굴러 와 연신 헛나발만 불어대자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 이 등신 같은 사내를 더욱 떨떠름하게 쏘아보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라마 중만은 돌아가는 형세를 보면서 내심 주도면밀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보아하니 중원 무림엔 문파간의 쟁투가 심한 모양이다. 그러니 이자가 선뜻 문파를 못 밝히고 있지. 어쨌든 이자도 한번 혼찌검을 내줘야겠다. 그래야 중원 무림의 예기를 완전히 꺾어 놓고 서장 밀종(密宗)의 위풍도 과시하지.' 라마 중은 생각을 굳히자 자못 정중하게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중원 무림의 진짜 영웅이 오신 걸 몰라뵈었습니다. 이거 참으로 죄송합니다." 라마 중이 이처럼 깍듯이 예를 갖추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그 사내는 시답잖게 라마 중을 건너다보며 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의 사형께서 나더러 남과 싸우지 말라고 했은즉, 난 그대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소." 라마 중은 이 사람이 비록 말은 바보같이 하고 있어도 속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진작에 눈치채고 있는 터였다. 그는 자못 점잖게 물었다. "당신의 사형께선 훌릉한 무공을 보기만 하면 배우라는 말씀은 하지 않던가요?" 그 사내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투로 무표정하니 듣고 있더니 잠시 생각을 굴리고 나서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그래 맞아. 천하의 문파들이 바다처럼 많고 그 문파마다 뛰어난 초수들이 있다고 사형께서는 늘 말씀하셨어. 만일 천하에 있는 여러 문파들의 무공을 다 배우기만 한다면 기필코 무학귀재가 될 수 있을 텐데. 사형께선 나를 무예를 익히는 데 있어서 만큼은 천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지. 천하에 드물게 보는 천재라고 말이야." 마치 혼자 말하듯 반말투였다. 그러자 라마 중이 대뜸 물었다. "호오, 그러시오? 한데, 당신은 사형이 누군지는 밝히길 꺼리고, 그렇다면 당신이 누군지는 말해 줄 수 있소?" "나? 난 주백통이오. 사람들은 그저 나를 완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오! 그래 완동이 무슨 뜻인지 알겠소? 놀기 좋아한다는 말이라오, 히히히……." 그는 큰소리로 외치듯이 말했다. 한옆에 있던 곽명송은 그 이름 석 자를 듣고는 자기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저 퉁퉁한 사내가 바로 그 전진파의 주백통 이란 말인가……. 라마 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빈정거리듯 대꾸했다. "알아 모시겠습니다, 워낙 주 영웅이셨구먼요." 주백통은 자기를 영웅이라고 추켜 올리자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영웅이라구? 허, 참! 허, 참! 똑똑히 들어 두시오. 이건 내 입으로 떠든 게 아니라 당신이 한 말이오. 당신이 내켜서 한 말이란 말이오. 나를 영웅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더라고 사형께 말씀 드려야지." 주백통은 라마 중이 진심으로 자기를 영웅이라고 하는 줄로만 여기고 연신 입을 벙싯거렸다. "그래, 난 영웅이지! 암, 영웅이고말고. 참말 영웅이란 말이야. 글쎄, 영웅인데 그 솜씨를 안 보여 줄 수 있나! 이보시오, 나 와 한번 겨뤄 봅시다! 저 사람들한테 구경 좀 시켜 주잔 말이오." 사람들은 처음부터 주백통을 시답지 않게 보야 오던 차에 그가 주제넘게 라마 중과 무예까지 겨루어 보겠다고 나서자 코방귀를 뀌면서도 모두 낯색이 질려 버렸다. 그러나 라마 중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당신과 겨뤄요? 내가 왜 당신과 겨룬단 말이오? 난 서둘러 화산에 가야 하오. 쓸데없이 당신 같은 사람과 겨를 게 아니라 가서 당신들 중원의 고수들과 겨루어 볼 테요." 주백통은 그가 화산으로 가겠다고 하자 키드득 웃음이 나왔다. "이보시오, 내 보기엔 그대는 화산에 안 가는 게 좋아. 화산에 가도 시합엔 낄 수 없단 말이오. 그저 남 하는 걸 구경이나 한다면 몰라도. 옆에서 보기란 해도 대번에 시합에 나갈 생각이 없어질걸요? 그럴 걸 화산엔 뭣 하러 가오?" 라마 중은 주백통이 자신을 여지없이 깔아뭉개 자 대로하여 고함을 내질렀다. "네 놈이 뭘 안다고 함부로 주둥일 놀려!" 주백통은 주춤하더니 기가 조금 죽은 듯 중얼거렸다. "난 다른 건 모르지만 그대가 화염도를 다루는 재간이 있다는 것만은 알고 있소. 그건 워낙 서역의 번승 구마습의 문예잖소? 구마습이 일찍이 대리로 들어왔다가 대리의 보정제(保定帝)와 맞붙었었지. 그때 구마습은 그대보다 훨씬 고수였소. 그 사람이 화염도를 쓰는 재간이 구 할쯤 된다면 거기는 기껏해야 오 할쯤밖에 안 된단 말이오! 그러니 그렇게 큰소리 마시오." 라마 중은 내심 흠칫 놀라 주백통을 빤히 쏘아보았다. '놀랍군. 저자가 내가 화염도를 쓰는 재간이 사오 할밖에 안 된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라마 중은 눈길 한 번 떼지 않고 주백통의 기색을 유심히 살폈다. 주백통은 연신 눈자위를 희번덕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고수 같지는 않아. 뛰어난 고수라면 야 눈길이 저처럼 희번덕거릴 수 있는가. 필시 속에 무슨 꿍꿍이가 있다. 저 사람은 맘속에…….' 라마 중은 짐짓 웃으면서 응수했다. "안목이 높으십니다. 소승은 탄복했습니다그려! 영웅께서는 소승과 한번 겨루어 볼 생각이 없으시오?" "아까는 싫다더니 이젠 또 왜 그러시오? 난 안 하겠소. 마음이 변했어!" 라마 중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게 어디 네 맘대로 된다더냐. 한바탕 장광설을 늘어놓고 나서 발뺌을 하려구? 그렇게는 안 되지.' "안 하겠다구? 어디 그게 맘대로 될까?" 라마 중은 한마디 내지르고는 즉시 달려들었다. 그는 손바닥을 칼같이 세워 주백통에게 똑바로 들이댔다. 그러자 주백통은 아주 겁이 난 사람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야단났네. 아까는 그만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식언을 한 것인데…… 저렇게 달려드니 이 일을 어찌하나! 사형님, 난 저 놈과 싸우지 않으려는데 기어이 달려드니 어떡합니까?" 주백통은 소리를 지르면서도 라마 중의 화염도를 교묘히 피해 내며 연거푸 물러났다. 한켠에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손에 땀을 쥐고 두 사람이 돌아치는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라마 중이 내리치는 장도가 머리에 떨어지자 주백통은 몸을 외로 틀었다. 그의 장도가 또다시 가슴으로 날아들자 주백통은 얼른 머리를 돌리며 소리쳤다. "사형은 나더러 남과 싸우지 말라고 했어. 난 싸우려 하지 않는데 저 놈이 기어이 날 때리려 드니 이런 변이 어디 있나. 기막혀 죽겠네, 기막혀 죽겠어." 라마 중은 처음에는 주백통이 무서워 피하는 줄 알았지만 십여 합을 공격해도 모조리 피해 내자 결코 허투루 여길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겉보기엔 그렇지 않더니 내가 속았구나. 이제 이 놈이 나를 죽이려 들겠군.' 라마 중은 초식을 더할수록 점점 더 당황하여 장을 날리는 초수와 초식도 점점 못해졌다. 주백통은 한 번도 공격을 들이대지 않고 계속 피하기만 하면서 입만은 쉬지 않고 놀려댔다. "난 그래도 오 할쯤은 되는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까 그것도 못 되는군! 에 참, 기막힌 일이야!" 그제야 사람들은 비로소 주백통이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고수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며 주백통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주백통은 계속 피하기만 했는데 언뜻 보기엔 보법도 갈핑질팡 헤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그가 라마 중을 당해 내지 못해 저러는 것이 아님을 알고 소리를 질러 응원했다. 라마 중은 싸울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당신 사형은 누구시오? 말을 하시오!" "말하지 않겠다는데도 왜 자꾸 말하라면서 못살게 구는 거요? 내가 그쪽을 이기면 말해 줄 필요가 뭐요? 진다고 해도 내 말 안 할 테요!" 구경하던 사람들도 그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 네 놈은 티베트 사람인데 우리 중원 무림 일을 왜 네 놈 한테 말해 주겠느냐?" 주백통은 구경꾼들이 모두 자기편을 들어 주는 것을 보고서 한껏 기가 살았다. "좀 보시오, 모두 내 말이 옳다고 하지 않소?" "주백통, 당신이 만일 날 이기게 되면 난 두말없이 티베트로 돌아가겠소. 화산 무예 시합에는 가지 않겠단 말이오. 난 말하면 말 한 대로 하는 사람이오." 라마 중이 한마디하자 주백통은 우뚝 멈추어 섰다. "됐다, 됐어. 어디 그 말, 다시 한 번 해 보시오!" 라마 중은 주백통이 왜 갑자기 이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으나 이미 꺼낸 말을 다시 거두어들일 수도 없는지라 다시 한 번 곱씹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