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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4[남제단지홍편] - 21편 (21/70)

2026-09-30 18:32:08 조회 15
"도대체 어떤 놈이냐?" 대환희 보살은 머리를 가로 저으며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네 년은 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함부로 놈자를 붙여? 괘씸한 년 같으니!" 상대방은 가소로운 듯 받아 쳤다. "대관절 누구관대 함부로 나를 얕잡아보고 찧고 까부는 게냐?" 대환희 보살은 한껏 주눅이 들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되레 가일층 쌀쌀맞게 되쏘았다. 상대방은 대답은 않고 느닷없이 기괴한 웃음 소리를 토해냈다. 웃음 소리는 동서남북 온 수립을 빙 둘러 가며 울리는 것 같았다. 분명 그 순간 수림 주변을 한바퀴 빙 날아 돈 것임에 틀림없었다. 대환희 보살은 대번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남들은 채 한걸음도 못 내디딜 순간에 벌써 수림 주변을 한바퀴나 빙 돌다니……. 그 경공만으로도 무예가 얼마나 고강한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나는 운남의 대환희 보살이오. 거기는 누구요?" 보살은 잔뜩 수그러져 존대를 했다. "대환희 보살? 아니, 운남의 대환희 보살이란 말인가? 운남에서 이 중원 땅까지 어이 왔나?" 아마도 상대방은 이곳 중원에서 대환희 보살과 마주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대환희 보살은 상대방이 자기 명성을 알고 있음직하자 어깨가 으쓱해지고 담이 커졌다. '흥, 네 놈도 이 대환희 보살의 명성을 들은 게로군. 그렇담 결코 나를 만만하게 보지는 못하겠지.' "그런 쓸데없는 건 묻지 말고 어서 신분이나 밝혀." 그러자 기고만장한 호통 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쨍 귀청을 때렸다. "고얀 년! 난 몸뚱이가 불어 터진 계집과는 단 한마디도 말 품을 팔기 싫으니 숨통 끊어 놓기 전에 냉큼 꺼져!" 남하고 싸우는 일이라면 쌍수를 들고 나서는 대환희 보살은 걷잡을 수 없이 부아가 치밀었다. '아니, 얼마나 잘난 놈이기에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땅땅 호령이야! 나 대환희 보살도 운남에선 위세가 뜨르르한 사람이다. 네 놈이 염라대왕이라도 무섭지 않다, 쾌씸한 놈!' 대환희 보살은 온몸의 군살이 팽팽히 당기도록 열을 올렸다. "숨통을 끊어 놔? 오냐, 어디 어떻게 숨통을 끊어 놓을지 어디 두고 보자! 네 녀석이 감히 무슨 재간……." 보살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별안간 쌩하니 바람소리가 일며 돌멩이 하나가 번개같이 날아왔다. 대환희 보살은 급급히 손을 들어 돌멩이를 받아 쥐었다. 대환희 보살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는 손바닥이 짜개지는 듯하며 참을 수 없는 통증이 확 퍼져 팔까지 찌릿찌릿했다. 그 작은 돌멩이에는 굉장한 역도가 실려 있었던 것이다. "내 네 년 수하 사내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단번에 몰살시켜주랴!" 상대방은 엄하게 소리쳤다. 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노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대환희 보살은 속이 뜨끔하면서도 코웃음을 쳤다. 자기가 잡아다 부리고 있는 이 사내들은 그래도 전에는 모두 한다 하는 고수들 이었다. 자기가 하나를 죽이려 해도 한 식경은 땀을 빼야 하는 터, 무슨 재간으로 이 모두를 단번에 몰살시킨다는 겐가. 보살은 연신 코방귀만 뀌었다. 그때였다. 다시금 바람소리가 일더니 돌멩이가 쌩 날아왔다. 돌연 보살의 사내 하나가 째지듯 비명을 내지르며 허공으로 획 퉁겨 올랐다가 내리꽃히듯 떨어져 내리며 그대로 뻗어 버렸다. 보살이 가장 총애하는 벽남이었다. "아이고 이 귀염둥이야, 내 사랑 보배야, 이게 웬일이냐? 어디 보자. 어디를 다쳤느냐. 내 원수를 갚아 주마……." 대환희 보살은 사내에게 덮쳐 들어 사내를 마구 뒤흔들며 눈물을 쏟아 냈다. 사내는 인후에 구멍이 뺑 뚫린 채 뻔히 눈을 뜨고 진작에 숨이 넘어가 있었다. "아이고 내 사랑 보배를 죽이다니……. 내 네 놈을 기어이 죽이고야 말리라. 매 밥을 만들어 놓을 테다! 아이고, 이 아까운 것! 아이고 어쩌나." 대환희 보살은 땅을 치며 통곡을 하다가 불현듯 벌떡 일어났다. 군살이 푸들푸들 떨리는 것이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했다. "이 놈아, 어서 나오너라, 비겁하게 숨어서 손을 쓰지 말고 어서 모습을 나타내라!" 대환희 보살은 눈물을 펑펑 쏟아 내면서 육중한 몸으로 팔딱팔딱 뛰어오르며 발광을 했다. "네 이 놈! 어서 썩 기어 나오지 못하느냐?" 그러자 수림 저쪽에서 사뭇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려 왔다. "그런다고 내가 두려워할 줄 아느냐? 내가 일단 나가기만 하면 너희 년놈들은 하나도 살아 남지 못햇! 빈말이면 내 황약사란 이름을 갈겠다!" 그 말에 누군가 악 하고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모두들 동해 도화도주 황약사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었다. 황약사한테 잡혀 비명 횡사를 할까 봐 바다를 오가는 배들이 도화도 어름을 지날 적엔 숨도 크게 못 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황약사는 오가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혀를 베어 벙어리를 만들어서는 부려먹는다고도 했다. 수림 속에 숨어 있는 저 사내가 바로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떤다던 그 황약사라니……. 사람들은 모두들 얼이 빠져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황황히 숨을 곳을 찾았다. 바로 그때, 그때껏 빠져 나갈 틈을 노리고 있던 일속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다가 수림 속으로 몸을 숨기고는 그대로 정신없이 내달아 갔다. 그즈음, 수림 저쪽에서 여인의 부드러운 말소리가 들려 왔다. "또 성이 나셨군요. 저와 언약했잖아요, 다시는 성을 내지 않고 사람도 함부로 죽이지 않겠다고. 그런데 왜 또 식언(食言)이세요?" 그러자 좀전까지의 그 쩌렁쩌렁한 기세는 산그라지고 적이 누그러진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래, 그래, 내 아형 말대로 함세. 하긴 저런 것들은 성을 낼 상대도 못 되는데……." "그래요. 부끄럼도 모르는 저런 여인들하고 시비를 하는 것부터가 잘못이에요. 우린 우리 갈 길이나 가요." "그래, 가자구. 그대 말마따나 우리도 똑같이 손가락질을 받을라. 어서 이 너저분한 데를 빠져 나가세." 그러더니 일시에 수림 저쪽은 잠잠해지고 바람에 나뭇잎 살랑거리는 소리만이 조용히 건너왔다. 대환희 보살은 분기탱천하여 발뒤축을 구르면서도 정작 한마디도 꺼내 놓지 못하고 있었다. 한마디라도 입 밖에 냈다가는 황약사가 듣고 되돌아올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랬다간 그 한마디에 송장을 몇이나 더 내놓아야 할 판이었다. 대환희 보살은 한동안 두꺼비처럼 눈만 슴벅거리며 서 있었다. 대환희 보살은 수림 저쪽에서 황약사와 한 여인의 인기척이 끊기고 난 뒤에도 한동안이나 그렇게 서 있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그녀는 문득 정신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제 쥐새끼같이 빠져 나갔는지 일속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분해서 가슴을 펑펑 쳐댔다. 여직껏 이번 행로만큼 재미난 적은 없었는데 그 악독한 황약사 때문에 흥이 깨지고 일속까지 놓쳤으니 그녀는 입 안이 몹시도 깔깔했다.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사내들에게 큰 침대를 메게 하고 서둘러 그곳을 떴다. 충피도 제 시첩들을 거느리고 뒤를 따랐다. 그는 대환희 보살의 재간이 여간 아니고, 자기와는 배가 잘 맞는지라 그의 수하가 되기로 진작에 작심했었다. 치주도 마치 앞날을 포기한 사람마냥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뚱뚱보 여인들 틈에 끼여 힘없이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대환희 보살은 중원으로 한번 나가 보려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운남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제11장 주 영웅의 일전 세월은 무심히 흘러갔다. 어느덧 세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던 화산논검도 두어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무예 높은 중원 고수 몇이 벌써 화산 아래에 당도해 거처를 정하고 눈이 빠지게 당일의 일전을 고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 소식을 접하자 대환희 보살은 다시금 온몸이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도 애초에는 화산 무예 시합에 참여해 천하 제일의 영예도 따내고 《구음진경(九陰眞經)》도 차지하겠다고 벼르고 있었으나 언젠가 천만 뜻밖으로 황약사를 만나 그의 무예에 겁을 집어먹고는 사기가 한풀 꺾여 중원 나들이를 포기했었다. 그녀는 황약사를 대하고 나서야 자기보다 무공이 월등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서 화산에 가서 무턱대고 무예를 겨루다가는 남의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 동안 나름대로 무예를 연마해 왔다. 아무래도 그렇게 쉽사리 《구음진경》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하여 화산에 고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보살은 일단 화산 아래 가서 기회나 엿보자고 내처 화산으로 달려갔다. 아직 무예가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우연히 운이 닿으면 《구음진경》을 손에 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는 한 가닥 요행수도 버리지 않고 있었다. 화산 아래 한길에는 병장기를 지닌 검객들과 준마를 탄 호객(豪客)들이 분주히 오갔으며 주루와 객점에는 먹고 마시는 사람들로 온통 왁자거렸다. 사람마다 한결같이 화산의 무예 시합을 입에 올리며 침을 튀기고 있었다. 20여 년 전 강호를 쥐고 흔들던 북방 대도(大盜) 제일사(齋-思)가 죽은 이후로 이렇듯 흥성거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히 20년 만에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화산 아래에 있는 제법 큰 취선루(聚仙樓)에도 사람들이 왁자하니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강호의 적지 않은 명인 중 화산의 무예 겨룸에서 우승을 따낼 수 있는 사람은 실제로 몇 안 된다 고들 입을 모았다. 그중에서도 첫째를 꼽는다면 당연 도화도 도주 황약사라고도 했다. 황약사의 무공은 세상에 없는 독특한 무예라는 것이다. 바다를 건너왔다는 검객 하나는, 자기가 우연히도 도화도에 올랐다가 황약사를 보았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그 말을 할 때까지도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그때의 그 공포가 서려 있었다. 곁에 있던 한 사람이 그 말을 듣고는 냉소를 쳤다. "쳇, 듣자니 무릇 바다에서 황약사를 만난 사람치고 살아 돌아온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하던데 선배님께서 이렇듯 무사히 돌아오신 걸 보면 그 무예가 대단하겠구려." 그 말엔 다분히 야유가 섞여 있었다. 그러자 말을 꺼낸 그 검객은 발끈하더니 전후 사정을 상세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 솔직히 무슨 일이 있어 일부러 도화도에 간 건 아닙니다. 배가 풍랑을 만나 떠내려가다 천만 다행으로 한 섬에 다다랐는데 거기가 바로 도화도였지요. 섬엔 온통 도화가 만발해서 경치가 세상 없이 좋습디다. 나는 그만 경치에 홀려 배를 기슭에 대고 섬에 올랐지요. 그런데……." 검객은 예까지 말하다가는 더는 말을 못 이었다. 도화도에서 목격한 그 무시무시한 일을 말하려니 벌써부터 그때의 그 공포감이 덮쳐 와 사정없이 온몸이 떨리고 혀가 굳어지는 것이었다. 부쩍 호기심이 동해 귀를 모으고 듣던 사람들은 안달이 났다. 개중에서 구레나룻이 시꺼먼 장한 하나가 볼멘소리를 했다. "뭘 사내대장부가 얘기를 꺼내다 마나. 세상 말을 들으면 도화도가 아주 무시무시한 곳이라고들 하지만 난 어쩐지 믿기지가 않소. 황약사란 사람이 아무려나 무턱대고 사람을 잡아먹기라도 하겠 소?" 그러나 도화도에 가 보았다는 그 검객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주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이중에 혹 도화도 사람이 끼여 있지 않을까 경계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 사람, 도화도 도주가 여기 있을까 봐 그러나? 그것 참, 꽤나 겁 많은 사람이군! 도화도 사람은 여기 씨도 없으니 염려 비끄러매고 어서 하던 얘기나 계속하라구, 젠장." 곁에서 누군가 타박을 놓았다. 그래도 도화도에 가 보았다는 그 사람은 아무 대꾸도 않고 일어나 서성이며 엉뚱한 말을 했다. "그렇게도 도화도 얘기를 듣겠다면 내 먼저 요구가 하나 있소. 여기 있는 사람은 하나도 빼놓지 말고 어디 한마디씩 들 해 보시오." 사람들은 도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 한마디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말을 옮기지 않는다는 다짐을 하라는 건가, 아니면 누가 물어도 결코 자기가 발설했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언약을 하라는 건가? 사람들은 중구난방으로 말들이 많았다. 그러자 수염이 청수한 중년 사내 하나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 그 사람 참! 염려 마시고 어서 하던 얘기나 마저 하시오. 우리도 풍문으로는 대충 다 들은 터이니. 도화도란 곳은 도시 불측지연(不測之淵) 같은 곳이고, 그 도주는 사람을 죽이고도 눈 깜짝하지 않는 살인마왕이라고들 하지만 도무지 액면 그대로 믿을 수가 있어야지 말이오. 그러니 거기가 정말 도화도엘 갔다 왔다면 속시원히 한번 얘기 좀 해 보시란 말이오, 진짠지 거짓인지……. 우리도 견식 좀 넓혀 보게, 엉?" 그러자 뒤쪽에 있던 사내가 사람들을 헤집고 나서며 비아냥거렸다. "어이, 이 사람, 아무래도 도화도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하고 흰소리를 치는 거 아냐?" 그러자 도화도에 가 봤다는 그 검객은 얼굴이 벌게져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더니 끝내는 결심을 내린 듯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 다 관두고 한마디씩 해 보란 말이오. 난 여기에 도화도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 분명히 확인해야겠으니!" 검객의 기세가 사뭇 강고한지라 그제야 사람들은 이 검객이 확실히 도화도에 다녀왔다고 믿게 되었다. 하나 말만 들어 보고야 그 사람이 도화도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별해 낸단 말인가? 그래도 어찌 됐든 말이라도 들어 봐야 마음을 놓겠다는 투였다. 만의 하나라도 여기에 도화도 사람이 끼여 있다면 이 검객 아니라 누구라도 그 일을 토설하지 못할 것이다. 수염이 청수한 청수 검객이 선코를 떼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한마디하지요. 난 화산에 무예를 겨루러 온 것이 아니라 그저 무예 시합을 구경하러 왔소이다." 그러자 그 오른쪽에 앉아 있던 대봉(大棒)을 손에 쥔 구레나룻 장한이 웅근 목소리로 뒤를 이었다. "그럼 나도 한마디하겠소. 난 화산에 검술을 비기러 온 것이 아니라 내 이 봉술(棒術)을 비기러 왔소이다." 화산논검이면 검술을 비기는 자린데 엉뚱하게 몽등이 내두르는 초수를 비기러 오다니…… 사람들은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중에서도 중년의 청수 검객 왼쪽에 앉아 있던 처녀의 웃음 소리가 제일 높았다. 청수 검객이 처녀를 바라보며 핀잔을 주었다. "경망스럽다!" 그러자 처녀는 숨을 들이켜며 입을 싸쥐었다. 주루 안의 분위기는 다시금 숙연해졌다. 바다에서 온 검객은 내내 표정을 굳힌 채 사람들의 말을 일일이 다 들어 보고 나서야 큰 숨을 내쉬며 말을 치어 가기 시작했다. "여러분, 말을 들어서 알겠지만 그 도화도 도주의 무공은 세상에 둘도 없이 출중하다오. 나도 명색이 몇 십 년 강호를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이 쌍칼로 이름깨나 얻은 사람이오. 그런데 그날 도화도에서 식은땀을 한 번 빼고 난 다음부터는 아예 사람들과 맞서기가 싫어집디다." 뭇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섬에 올라간 나는 오솔길을 따라 걸어 갔지요. 길 옆은 온통 복숭아꽃 천지니 얼마나 아름답겠소. 복숭아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거닐다 나는 마침내 그곳 사람들과 마주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힘이 하나도 없이 축 늘어져서는 나뭇가지를 치기도 하고 흙을 북돋아 주기도 하면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내가 '여보시오'하고 손을 저어 부르니 그제야 고개들을 돌려 바라봅디다. 그래 내가 '당신들은 도화도 사람들이오?' 하고 물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대답을 않고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묵묵히 일만 하더란 말이오. 마치 내 말을 못 들은 것처럼 말이오. 그래 내 여러 번 다그쳐 물었지요. 그랬더니 그제야 그중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눈을 뚝 부릅뜨고 쳐다봅디다. 난 냅다 그 놈의 멱살을 거머쥐고 '이 놈 아, 왜 대답이 없어? 내 말이 말 같지 않다 이거냐?' 하고 윽박 질렀지요. 그랬더니 글쎄 그 사람은 말 대신 입을 벌려 보이지 않겠소. 그 입 안을 보고 난 그만……." 검객은 몸서리를 치며 더 말을 못 이었다. "그래, 어떻다는 거요? 말을 해야지!" 성미 급한 장한이 또 다그쳤다. "말도 마시오. 글쎄 그 입 안엔 혀가 없더란 말이외다. 그저 몽톡하니 혀 뿌리만 남았으니 말을 해도 맹꽁이처럼 옹알옹알 할밖에요. 그런데 더 놀란 건 하나만이 아니라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다 혀가 없더란 말이외다. 저마다 입을 벌려 보이는데, 아유 나는 너무 끔찍해서 다리가 다 후들후들 떨리더라니까요." 사람들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도화도 도주가 왜 섬사람들의 혀를 모두 그 모양으로 만들어 버렸을까? 도화도에 어떤 대단한 비밀이 있어 누설될까 봐 그랬을까? 어쩌면 무림을 진동시키고도 남을 큰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들 중 몇은 공연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 검객은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들이 나를 보는 기색이 영 이상해요. 아예 나를 무슨 송장 대하듯 하더란 말이오. 나는 섬을 더 올라가도 되느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상대방은 도리질을 치면서 입을 벌려 잘 린 혀를 다시 내보입디다. 뻔하지요. 올라가지 마라, 올라갔다간 영락없이 우리 꼴이 된다, 이런 뜻 아니겠소. 그래도 난 올라갔소. 기왕 온 바에야 끝을 봐야겠다 하고 말이오. 한참을 올라가니 조그마한 정자가 하나 나옵디다. 가까이 가 보니 정자에는 주련이 한 쌍 있었는 데 정자 기둥을 깊숙하게 파서 새긴 게 퍽이나 힘이 있습디다. 만약 저것을 누군가가 무공으로 새겼다면 실력이 대단 하겠구나,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소. 여기저기 살펴보고 있는데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남자가 하나 나타났습니다. 자색 두루마기를 걸쳤는데 한눈에도 무예가 대단하다는 걸 알겠더군요. 나는 얼른 큰 나무 뒤로 몸을 숨겼지요. 그는 돌덩이를 들고 정자에 앉더니 손에 슬쩍 힘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랬더니 단박에 돌덩이가 팍 하고 으스러져 가루가 되더란 말입니다. 대단한 힘이지요. 그런데 얼핏 보니 돌알 하나가 꼭 나한테로 날아오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 어이쿠, 들킨 모양이다 하고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놓으려고 몸을 돌리는데 그 사내가 외치더군요. '그래 내 솜씨가 어떠냐?' 나는 꼭 나에게 묻는 줄 알고 막 입을 떼려는데 너무나 기겁을 하여 아무 소리도 안 나오더군요. 그랬는데 글쎄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지요. '사부님의 탄지신공(彈指神功)은 세상에 둘도 없는 줄 압니다. 이 탄지신공을 대적할 사람은 세상에 아직 없는 줄 압니다.' 미처 못 보았으나 그 여잔 아마 그 남자 뒤를 따라온 모양입디다. 자세히 보니 여자는 열 몇 살밖에 안 되는 어린 계집이더군요. 이쁘고 총명하게 생겼습디다. 나는 그 둘이 정자를 떠나 돌아갈 때까지 거기에 숨어 숨을 죽였지요. 이윽고 두 사람이 돌아가자 나는 그 돌 조각으로 도대체 뭘 했는지 궁금해서 살금살금 다가가 봤지요. 그런데 이 보시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오? 돌조각이 모두 열 장이나 떨어진 큰 바위에 날아가 박혀 있더란 말이오. 그것도 아무렇게나 박힌 것이 아니라 '진경득주, 비아이수(眞經得主, 非我而誰)' 이 여덟 글자를 새겨 놓았더란 말입니다. 나는 그만 기겁을 하여 발에 땀이 나도록 내뺐지요!" 사람들은 눈이 휘등그래졌다. 열 장이나 떨어진 바위에다 돌 조각을 퉁겨 박는다는 것도 기상천외한 일이지만, 거기다 글자까지 새겨 넣는다는 것은 상상 못할 일이었다. '진경득주, 비아이수', 즉 내가 진경을 못 가지면 누가 가질 것인가, 이 뜻 아닌가! 물론 말하지 않아도 그가 바로 도화도주 황약사라는 걸 능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경악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황약사의 무공이 부러워 속으로 꿀꺽 침을 삼켰다. 자신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생각뿐이니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자고 내심 모두들 자탄을 했다. 개중에는 이제 《구음진경》에 대한 흥이 식어 시들해지기도 하고, 또 개중에는 《구음진경》을 탐내는 것조차 두려워하기도 했다. 공연히 《구음진경》을 탐내다가 황약사한테 뼈도 못 추릴 판이었다. 《구음진경》이고 《십음진경》이고 목숨이 최고지……. "듣고 보니 중양 진인의 적수는 이 황약사밖에 없을 것 같군. 황약사가 결단코 《구음진경》을 손에 넣으려고 한다면 중양 진인도 버터 내기 어려울 것 같아, 암, 어렵고말고!" 누군가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러자 청수 검객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적이 시뜻한 기색으로 말했다. "글쎄 도화도주의 무공은 듣기만 하고 보지는 못했지만 중양 진인의 무공은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소. 내 보건대는 오늘날 천하 무림에는 중양 진인의 무공을 당해 낼 사람은 없을 것이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장승(藏僧)이 냉소를 했다.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보니 티베트 승복을 입고 있는 라마 중이었다. "듣건대는 중원 무림들이 왕중양의 무공에 모두 탄복을 한다고 합디다만 내 보기엔 별로 그래 보이지 않소. 천하 기물(奇物)은 오로지 덕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다는 말이 있지 않소? 달리 말 하면 천하 기물은 오로지 강한 자만이 가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왕중양이 진정 천하 없는 무공을 지녔다면 왜 그 무학기서(武學奇書)를 남에게 내놓는단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