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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4[남제단지홍편] - 19편 (19/70)

2026-09-30 18:32:08 조회 13
"충피, 한데 우리 사람은 왜 잡아 왔나?" 여인의 목소린 매섭기 그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누굴 잡아 오다니…… 내가 감히 어찌 그런 일을 하겠소?" 충피는 깜짝 놀라는 척했다. 비둔한 여인은 곁에 있는 다른 한뚱보 여인에게 소리쳤다. "그럼 네가 거짓말을 했더냐, 충피가 우리 사람을 잡아왔다고?" 그 여인도 비대하기는 매일반이었으나 침대에 앉아 있는 여인에 비하면 곰 앞에 다람쥐 격으로 보잘것이 없었다. "거짓말을 하다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보살님, 저기 저쪽에 묶여 있는 아이가 바로 우리 애입니다." 침대 위에 앉은 여인은 뚱보 여인이 가리키는 대로 저쪽을 건너다 보고는 다시 충피를 돌아보았다. "내가 자네의 이 큰 침대를 빌려 앉아 있는 것에 대한 답례로 혼내지는 않겠지만 어서 내 계집애를 놓아주게." 여인은 적이 부드럽게 말했다. 충피는 사방을 휘둘러보았으나 자기 쪽 사람들 힘만으로는 이 뚱뚱보 여인, 대환희 보살 측 사람들에겐 실로 중과부적이었다. "헤헤헤, 보살핌네 사람인 줄 몰라서 그랬지, 알고서야 어찌 잡아 왔겠어요. 난 저 계집애가 하도 예쁘게 생겼기에 재미나 좀 보자고…… 진심이오, 다른 뜻은 없었소." "그렇다고 해 두지. 자, 가서 그 애를 풀어 주거라." 뚱뚱보 여인은 빙긋빙긋 웃음을 흘리며 제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뚱뚱한 여인 하나가 오라를 풀어 주자 치주는 대환희 보살한테 다가와 무릎을 꿇고 고두사배를 했다. "됐다, 이젠 그만 하거라. 그런데 황제가 널 좋아하긴 좋아하더냐?" 치주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들릴락말락 낮은 소리로 말했다. "황제께서…… 좋아하긴 좋아합니다만……." "그럼 됐다. 황제가 널 좋아하기만 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손쓸회가 있다." 대환희 보살은 연신 흐흐흐 웃어댔다. 웃을 때마다 축 늘어진 군살이 욱실거렸다. 그러더니 일순, 보살은 갑자기 몸을 솟구쳐 허공을 한 바퀴 빙 돌았다. 그러자 목을 쑤욱 늘여 빼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충피네 사내들 머리 몇 개가 후두두 땅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아니, 왜 갑자기 사람은 죽여?" 충피는 노기가 솟구쳐 대갈일성을 내지르며 대번에 날아올라 대환희 보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세 번을 겨루어도 대환희 보살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나를 다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소! 이게 무슨 짓이오? 왜우리 사람들을 죽이는 거요?" 충피는 악다구니를 썼다. 그러자 대환희 보살은 수림이 떠나갈듯 요란하게 웃어젖혔다. "이와, 충피. 내가 그만 깜빡 생각을 못했더랬지. 그래, 내 비밀을 아는 녀석들을 가만 놔둘 수 있겠나? 너도 내 비밀을 알았으니 죽어야 해!" 대환희 보살은 또 훌훌 날아다니며 다시금 몇 사람을 죽였다. 대환희 보살네 패거리들은 하나같이 몸을 흔들어 가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당장 손을 멈춰라! 멈추지 않으면 내 더는 가만있지 않으리라!" 충피는 분기탱천하여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내쏘았다. 대환희 보살은 정하니 충피 앞으로 날아와 뚝 떨어져 내리더니 눈을 부라렸다. "내가 너희 모두를 몰살시킨다 한들 네 놈이 감히 어쩌겠느냐?" 그러자 충피는 더럭 겁을 집어먹고 히쭉 웃었다. "어쩌긴 어째, 내가 이다음에 화산에를 안 가면 되지. 그럼 거기한테도 불리할걸?" 그 말에 대환희 보살은 같잖다는 듯 빈정거렸다. "천하 이름 높은 고수들만 모인다는 화산에 너 같은 건 가서 뭘하려구?" "쳇, 그 고순가 뭔가에 대리 황제 단지흥도 들어 있겠지요?" "그야 물론이지. 충피 네 놈은 그것도 모르냐? 화산에 모일 고수 중에 단지흥도 있으니 내가 네 놈들을 죽여 버리는 거 아니냐. 내가 민인계로 단지흥을 홀려 일양지공을 알아내려 했다는 비밀이 누설되면 내 꼴이 말이 아니거든. 듣자니 일양지공을 장악하면 산사람은 죽지 않고 죽은 사람은 살리기도 한다는데 이 얼마나 귀신 같이 신비로운 무공이냐? 그런데 미인계를 써도 아직 못 알아냈을 뿐더러 네 놈이 중간에 끼여들어 훼방을 놓지 않았느냐!" 충피는 깔깔 웃어댔다. "아니, 웃기는 왜 웃는 게야?" 대환희 보살은 벌컥 화를 냈다. "뭘 그렇게 일양지공을 무서워하오? 난 대리에서 천룡사 중들과는 물론 단지흥과도 한 번 겨뤄 봤는데 그 일 양지공이 아무리 어쩌니어쩌니 해도 내 좀 독한테는 별수없더라고. 천룽사 중들이 다 중독되자 그 황제란 작자, 살려 달라고 구구십팔동까지 날 찾아왔습디다. 뒤에 해독은 됐지만 그것도 남이 해 준 거지 일양지공으로 한건 아니 란 말이오." 충피는 제법 우쭐해서 콧대를 잔뜩 치켜 세웠다. 그러자 대환희 보살은 갑자기 흐흐흐 웃어댔다. "그래, 그래.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넌 가서 단지흥을 이기고 난 가서 왕중양을 이기고……. 그래 그때가 되면 나하고 같이 화산엘 가겠느냐?" "우리 사람을 더 죽이지 않겠다고 해야 같이 가겠소. 그렇지 않으면 난 못 가." "좋다, 안 죽이지. 하긴 나도 너무 포식을 해서 숨쉬기조차 힘들 지경이야. 아이고, 숨차라." 그녀는 묘령의 처녀처럼 까르르 웃어댔다. 그 소리에 뒤미처 돌연 수림 쪽에서 독경 소리가 울려 왔다. 자세히 들어 보니 금강경을 외우는 소리였다.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고 독경 소리만 갈수록 낭랑해졌다. "누구ㄴ? 어서 못 나왓?" 충피가 빽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수림 속에서 언뜻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중 하나가 쓱 나타났다.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계속 염불을 외우면서 똑바로 걸어왔다. 오로지 불도를 깨달아 정과(正果)를 이룩하는 데만 전념하는 듯 단아한 자태였다. 그는 옆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큰 침대 쪽으로 곧장 다가가 다소곳이 합장을 했다 "나무아미타불. 소승은 일속이오." 대환희 보살은 이 중년의 중을 보자 대번에 희색이 만면해졌다. '내 수하 사내들도 뭐 빠지지야 않지만 이 화상은 정말 미끈하군. 단단하고. 이런 사내야말로 진짜 사내지. 아무래도 내 손아귀에 넣고 써 먹어야겠다.' 대환희 보살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적이 간사하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 겐가?" "일속일념(一俗一念), 일속일지(一俗一地)일 뿐입니다." 일속은 정중히 대답하며 다시 합장을 했다. 대환희 보살은 깔깔거리며 고개를 건들거렸다. "아이고, 나한테 그런 도깨비 같은 소린 집어치워. 아무리 말해봤자 난 도통 못 알아들으니. 네 속념이 뭔지 맞혀 보라면 또 모를까……." "나무아미타불, 보살님께서 저를 깨우쳐 그 속념을 점화(點化)해 주십시오!" 일속은 다시 합장을 했다. 대환희 보살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유심히 중을 훑어보았다. 하얀 살갗에 눈이 크고 선해 보이는 얼굴, 후리후리한 키…… 말 그대로 옥골선풍의 미남이었다. "좋아, 좋아. 그럼 내 가르쳐 주지. 그야 어려울 게 있나." 대환희 보살은 형편없이 큰 엉덩이를 내두르며 일속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기실 부처님이 남녀간의 그 일을 가르쳐 줬단 말야. 그렇지 않고야 이 세상 남자 여자가 어떻게 생겨날 수 있겠나. 진작에 알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부처님이 계시기에 남자는 그걸로 여자를 진저리나게 하는 것이고 여자는 일심으로 남자를 기다리게 된 거라구. 일속은 한 가지 속념을 이름인데, 너의 속념은 바로 그것이로다." 그러자 일속은 질겁을 하며 고개를 반짝 쳐들고 대환희 보살을 바라보았다. "나무아미타불. 보살님은 어찌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씀을 하십니까. 소승은 그런 게 아닙니다. 절대 그건 아닙니다." 대환희 보살은 일속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맡으며 코를 벌름거렸다. 단향목 같은 내음이 콧구멍으로 흘러 들자 대환희 보살은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설렌다. "좋아, 좋아. 내가 틀렸다고 하지. 그러면 일속 화상의 그 일속은 대체 무엇인고?" 일속은 선뜻 대답을 못했다. 그러는 양을 지켜 보면서 충피는 내심 코웃음을 쳤다. 그는 일속이 매우 덕망이 높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일속이 아무려면 코끼리 같은 대환희 보살에게 홀리겠는가? 대환희 보살이 어떻게 나올지 자못 흥미진진했다. 그는 일속을 알아봤을 때부터 벌써 침대 뒤에 몸을 숨기고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대환희 보살은 한껏 음심이 동해 요염하게 눈을 빛내며 일속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일속의 의젓한 의표와 준수한 용모에 홀딱 반해 한시 바삐 이 화상을 품에 끌어안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녀는 그때껏 일속이 천룡사 주지이며 그 무공과 수련이 어느 정도인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럼 자낸 여기 왜 왔나? 숨어서 우리 하는 짓을 봤으니 무슨 꿍꿍이가 있겠지? 그래 자낸 뭐가 제일 재미있지?" 일속은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대환희 보살은 짓궂게 물었다. "그럼 왜 여기 왔지? 저 애들 좀 봐라. 저 애들 중에 탐나는 애가 있으면 서슴없이 말하라고. 내 모든 일이 뜻대로 되게 해 줄 테니. 저 애들은 모두 내 제자들인데……." 그러자 천만 뜻밖으로 일속은 문득 머리를 들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보살님께서 이렇듯 누누이 점화하시는데야 보살님 말씀을 들어야지요. 저도 한번 인간 속세의 욕해(欲海)를 건너 볼까요?" 그리고는 그는 대뜸 뚱뚱보 여인들 앞으로 걸어갔다. 뚱뚱보 여인들은 이미 보살이 이 미남 화상에게 반해 그를 붙잡아 두려고 저러는 것임을 눈치채고는 저마다 좋아서 입들이 헤벌어졌다. 그녀들은 앞을 다투어 일속 화상에게 잘 보이려고 항아리 같은 허리를 비비꼬면서 교태를 부렸다. 그 모습은 실로 가관이었다. 일속은 한참 동안이나 그녀들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며 그 사이를 비집고 다니다가 마침내 치주를 발견했다. '아, 가히 절색이다!' 일속은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그 순간 웬일인지 그 여인, 백면라살이 뇌리를 스치는 것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속으로 도리질을 치며 이를 사리물었 다. 치주는 심히 불안한 심정으로 일속을 퍼뜩 쳐다보았다. '큰일났다! 내가 싫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대환희 보살한테 죽음을 당할 것이요, 가만있으면 이 중한테 당하고 말 것인즉, 그러면 장차 어떻게 얼굴을 들고 황제를 만나겠는가?' 치주는 너무나 난감했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붙안고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다. "그럼 좋다. 그 애를 내주지. 하나 그 애를 가진 다음에는 내 욕망도 채워 줘야 하네, 알겠지?" 대환희 보살이 소리쳤다. 일속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10장 색계를 파한 일속 대사 "소승은 그저 시주님과 고해일도(苦海一渡)를 한번 해 보자는 것입니다." 일속은 잔뜩 겁에 질린 치주의 눈망울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치주는 입술을 꼭 깨문 채 말이 없었다. 세상 천지에 이처럼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여자가 또 있을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단지흥을 유혹하긴 했지만 그후로는 그저 황제의 총애나 받으며 즐겁게 살게 되기를 그녀는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그런데 난데없이 충피가 나타나 일이 모두 꼬여 버렸다. 충피에게 납치당해 예까지 끌려 와 앞날을 예측할 길 없는 가운데 그저 운명에 몸을 내맡기고 있는 형편인데 불행 중 다행으로 대환희 보살 손에 구원을 받아 무사히 대리 로 가는가 했더니 이번엔 어디서 이름자도 모르는 중과 몸을 섞어야 할 처지가 되었으니……. 그녀는 자기의 신세가 한탄스럽기만 했다. "시주님, 소승이 혹 색계(色戒)를 파할까 봐 그러십니까?" 일속의 목소리는 온화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치주는 그가 원망스러을 따름이었다. 그녀는 두 눈에 눈물이 가랑가랑한 채 간신히 입을 열었다. "스님은 일가(一家)를 이를 수 없는 출가인(出家人)이옵니다. 저는 가정을 꾸려 오순도순 살고 싶은 속인에 불과하구요.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그런 일을 한다면 천벌을 받을 거예요." 일속은 그녀의 말재간이 썩 야무지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심 그녀를 다시 보면서도 적이 야멸차게 말을 받았다. "시주님은 미모가 빼어나니 보살님 명이라면 소승 아니라도 누구에게든 몸을 바쳐야 할 형편이 아닙니까?" 치주는 선뜻 대답을 않고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하긴 그래. 보살이 개하고라도 살라면 사는 수밖에. 타고난 팔잔데 누구를 탓하겠어. 하지만 황제께선 내 이 답답한 마음을 알아 주실지……. 난 오직 그것만이……. 아니야, 이젠 잊어버리자. 황제께서도 나 같은 건 싹 잊어 주시기를…….' 치주는 자포자기하여 고개를 푹 숙인 채 천천히 일속에 게로 다가섰다. 일속은 낚아채듯 그녀의 손을 잡고 얼른 수림 저쪽을 살폈다. 적당한 퇴로를 미리 보아 두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소름 끼치는 웃음 소리가 등짝을 때렸다. "일속, 천하를 다 속여도 이 충피는 못 속인다! 네가 대리 천룡사 주지라는 걸 내 익히 알고 있거늘, 그래 천룡사 주지가 계집을 탐해? 너는 그럴 위인이 못 된다. 단지흥에게 도로 가져다 바치려 고 그런 수작을 부리는 게지?" 일속은 날카롭게 눈빛을 번득이며 소리난 쪽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과연 충피가 징그러운 웃음을 흘리며 서 있었다. 대환희 보살은 여유작작하니 돼가는 형세를 지켜 보고 있다가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 대뜸 소리쳤다. "뭐? 단지흥에게 갖다 바쳐? 그따위 얕은 꾀로 날 속이려 들다니, 어디 어떻게 갖다 바치는지 내 한번 보리라." 그러더니 그녀는 순식간에 몸을 솟구쳐 허공으로 날아올라 똑바로 일속을 덮쳐 왔다. 일속은 급히 몸을 피하며 일지소총검법(-指少沖劍法)을 써서 번개같이 손가락을 뻗었다. 세찬 강풍이 마치 채찍질하듯 보살의 따귀를 때렸다. 보살은 숨이 턱턱 막혔다. 결코 가벼이 여길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일속이 무예가 이렇듯 고강하니 대환희 보살은 오히려 마음이 흡족했다. "요 기특한 것, 재간이 이만저만이 아니구나. 그 나이에 그만하면 됐으니 이젠 손을 거두고 나하고 아기자기하게 재미나 보자." 보살은 한마디 외치고는 몸을 훌쩍 솟구쳐 일속 앞에 떨어져 내렸다. 퇴로를 막는 것이었다. 다른 여인들도 일제히 몰려들어 길을 막았다. 그러나 일속은 아랑곳하지 않고 치주의 손을 꼭 부여잡은 채 여인들 사이를 뚫고 나아갔다. 살찐 사람일수록 무공은 신통찮은 법이다. 하나 어찌 된 일인지 아무리 여인들을 밀치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기실 이 여인들은 무공도 뒤지지 않을 뿐더러 산자락같이 비대해서 제아무리 일속이라도 도시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일순 일속의 얼굴엔 당황스런 기색이 어른거렸다. 그러자 대환희 보살은 군살을 요란스레 흔들어대며 미친 듯이 웃어제쳤다. "요 귀염둥이 화상아, 나 대환희 보살만 따르면 무엇을 하든 매일매일 즐겁게 살 수 있다는데 왜 그리도 용을 쓰는 게냐! 쓸쓸한 절간에서 청등고불(淸燈古拂)을 지키느라 고생할 필요가 무에야? 야심한 삼경이면 속은 타지, 일어나 봤자 맨 남정네들뿐이지……. 그러니 더 처량할밖에. 겨울엔 추워 걱정, 여름엔 더워 걱정, 안 그러냐? 그러나 내 곁에만 있어 봐라! 추우면 내 따뜻하게 덮어 주고 더우면 미녀들을 시켜 부채질을 해 줄 테니 이것이 무룽도원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일속은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는 세차게 머리를 가로 저었다. "요 귀염둥이, 이래봬도 난 웬만한 사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아. 하나 그렇게 준수하니 내 꼭 너를 붙들어 둬야겠다. 저 놈들을 좀 봐라. 그래도 고른다고 고른 것들인데 하나도 쓸 만한 게 없으 니. 자 보라구……." 그녀는 일속에게 눈을 찔끔 감아 보이고는 획 손짓을 했다. 그러자 지금껏 개처럼 엎드려 있던 사내들이 느직느직 허리를 펴며 일어났다. 일속이 보니 분 바르고 연지 찍은 꼴이 남자도 아니고 계집도 아니었다. 대환희 보살은 마치 독수리가 병아리 낚아채듯 그 중 한 사내의 뒷덜미를 낚아채 자기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사내의 어깨를 꾹꾹 눌러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 꼴 좀 봐, 이 꼴…… 요렇게 뼈만 남아서야." 그러더니 불현듯 사내를 허공에다 획 집어 던졌다. 사내는 다 썩어빠진 장작개비같이 가벼이 서너 장이나 하늘로 치솟았다. 그리고는 허공에서 서너 번이나 빙글빙글 공중제비를 돌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뿐 땅에 내려섰다. 보통 재간이 아니었다. 일속은 사내가 영락없이 죽겠거니 했는데 저렇듯 멀정하자 속으로 혀를 내 둘렀다. 하지만 대환희 보살은 사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냥 일속만을 바라보며 깔깔거렸다. "저 놈은 꼭 잔나비 같지? 안 그래?" 그러더니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모름지기 사내란 말이야, 계집이 좋아할 때는 성난 맹수같이 달려들고 싫어할 때는 고양이같이 얌전하게 굴어야 하는 게야, 알겠어? 한데 어떤 걸 보고 고양이 같다고 하는지 아느냐?" 물론 일속은 몰랐지만 알아도 대꾸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저 치주의 손을 꼭 잡은 채 일심으로 빠져 나갈 기회만 살폈다. 대환희 보살은 일속을 힐끔거리며 또 한 사내를 움켜쥐었다. 덩치가 꽤 큰 사내였다. 그러나 줄곧 여인의 손에서 놀아난 때문인지 기백은 없어 보였다. 대환희 보살은 사내를 우악스레 끌어안고 온몸을 마구 주물러댔다. 그러자 사내는 비위를 맞추느라고 두 눈을 게슴츠레 뜨고 마지못해 몸을 비비꼬며 헤헤거렸다. "응, 괜찮아. 여기도 쓸 만하구, 여기도 제법 단단해. 사내는 그래도 살이 적은 축이 좋지, 너무 찌면 둔해 못써. 하지만 가슴팍은 좀 달라. 가슴팍은 좀 불룩해야 끌어 안아도 맛이 나거든. 안 그러냐?" 비계 덩어리를 뭉쳐 놓은 것 같은데도 그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손놀림이 빨라서 떡 주무르듯 사내를 주무르며 연신 중얼거렸다. 사내는 보살의 손을 피하느라 몸을 옹송그리면서도 억지웃음 을 띄웠다.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일속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대환희 보살은 똑바로 일속을 건너다보다가 한 순간 두 팔에 힘을 주며 사내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러자 사내는 숨이 턱 막히며 낯빛이 새까매지더니 그러고도 한참 만에야 간신히 신음을 토해내 는 것이었다. 대환희 보살은 기분이 매우 좋은 듯 앙천대소를 했다. 그리고는 이번엔 사내의 아랫배 살을 한 손으로 꾹 움켜쥐었다. 견딜 수 없이 지독한 통증이 밀려왔다. 사내는 이마에 식은땀 이 송송 맺혀서는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애걸했다. "보살님, 자…… 자비를 베푸소서. 보살님, 자비를……." "뭐? 자비를 베풀라고? 넌 왜 나한테 자비를 안 베푸니? 왜 열심으로 무예를 연마하지 않느냔 말이야. 넌 공동파(皓嵋派) 칠성자(七星子), 이전엔 무공깨나 날렸는데 어찌하다가 이렇게 배에 군살만 잔뜩 붙어서 굼벵이 같냔 말이다! 배가 이렇게 나와서야 칠성나열(七星羅列) 초수를 어떻게 쓰려고?" 대환희 보살은 사내의 아랫배 살을 연신 잡아뜯으며 비아냥거렸다. 마침내 사내의 뱃가죽에선 군데군데 벌경게 피가 낭자하고 아예 살집이 뜯겨 나가기도 했다. 저대로 조금만 지나면 죽고 말 터였다. 일순 사내는 에잇 소리를 지르며 대환희 보살을 확 밀치고 그녀의 품에서 퉁겨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허, 이 놈 봐라! 그 주제에 재간을 부려?" 대환희 보살은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고 껄껄 웃음을 흘리며 양팔을 짝 벌렸다. 그러자 다음 순간, 저 만치까지 달려갔던 사내는 큰 나무에 퍽 하고 이마를 부딪히더니 순식간에 퉁겨지며 다시 보살 앞으로 날아와 납작 엎어지고 말았다. "이 놈, 칠성자야! 나를 버리고는 어디도 갈 수 없다고 내가 일렀을 텐데?" 대환희 보살은 이빨을 바드득 갈더니 칠성자의 멱살을 움켜쥐고 코앞으로 바싹 잡아당겼다. 칠성자는 머리가 어질어질하면서도 노기가 치받쳐 벌겋게 눈을 까뒤집고 악다구니를 썼다. "암돼지 같은 년! 이 년아, 전생에 무슨 원수가 졌다고 이리도 날 못살게 구는 게냐?" 그리고는 칠성자는 온몸의 힘을 두 손에 모아 보살의 배를 힘껏 내지르고 이어 혼신을 다해 장풍을 내쳤다. 그러나 뱃가죽이 얼마나 두꺼운지 보살은 꿈쩍도 안 했다. 마치 북을 두드리는 것마냥 둥둥둥 소리만 요란할 뿐이었다. "얘 칠성자야, 네가 평소에 이렇게 어리광을 부렸으면 내가 얼마나 너를 귀여워했겠니. 하지만 이젠 늦었다." 그녀는 칠성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싱긋싱긋 웃었다. 하나 얼핏 보기엔 머리를 쓰다듬는 것 같았지만 실은 그녀는 슬그머니 내력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칠성자는 이제 입도 벙긋 못하고 내력을 막는 데만 온 힘을 쏟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칠성자의 눈에선 검은 피가 배어 나오고, 배는 점점 더 부풀어올랐다. 그는 보살의 머리를 쥐어뜯을 것처럼 손을 허우적거렸지만 헛손질만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 태산처럼 부풀어오르더니 한 순간 수림을 뒤흔들 듯 뺑소리가 나며 눈 깜짝할 새에 칠성자의 배는 툭 터져 버렸다. 사내는 창자며 내장이며 다 비어져 나와 비참한 몰골로 그 자리에 쓰러졌다. 대환희 보살은 침을 퉤 뱉으며 사내를 한옆으로 홱 걷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