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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4[남제단지홍편] - 18편 (18/70)

2026-09-30 18:32:08 조회 15
치주 일만 아니라면 단지흥도 영고가 불쌍하여 온순하게 타이르기도 하고 달콤하게 한마디 농도 건네련만 지금은 그런 심기가 아니었다. 단지흥은 위로 한마디 없이 냉랭하게 내뱉었다. "내 한 가지 물을 일이 있어 왔소." "무슨 일인데요? 무슨 답답한 일이 있기에 여기까지 절 찾아온 거예요?" 영고는 황제가 무슨 큰일이 생겼는데 혼자서 해결 못해 자기를 찾아왔다고 넘겨짚었다. 치주가 제 아무리 날고 기는 계집이라도 황제는 중대사에 관한 한 여전히 자기만 믿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녀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러나 황제는 전혀 뜻밖의 일을 물어 왔다. "치주를 못 봤소? 치주가 없어졌단 말이오." 그 소리에 영고는 낯색이 확 달라졌다. '흥, 그 잘난 계집애 일을 왜 예 와서 물어? 예가 어딘데. 치주가 없어져서 속이 탄다 그거지? 황제가 그 치주 년을 제일 총애한다더니 그 말이 한치도 틀리지 않는군. 뭐? 치주 그 년이 황제를 제일 끔찍이 위하기 때문이라고? 아니, 그럼 그 년만 그렇다는 거야? 나 영고도 둘째가라면 서러운데. 숙녀 동에서 내가 그렇게 했기에 우리 둘이 인연이 맺어진 게 아니만 말이야. 그런 것도 모르고 그저 그 속보이는 년에게 홀려서…….' 영고는 심술이 나서 내쏘았다. "그 년 일, 난 몰라요. 못 봤어요." 단지흥은 치주 얘기가 나오자 영고의 낯색이 금세 변하는 것을 보고 더욱 의심이 들었다. '기색을 보니 영고가 한 짓임에 틀림없어. 궁성의 예의 범절도 모르지, 게다가 누구보다도 나서서 치주를 질투하고 시새워했거든. 그래서 어디다 치주를 감추어 놓고 분풀이를 하는 게야.' "이보오, 그대가 치주를 숨겼다면 어서 내놓아요. 황비가 없어졌다고 온 궁 안이 다 술렁거리는 판이니 이게 큰일이 아니고 뭐란 말이오?" 단지흥은 영고의 짓이라고 단정하고는 어르듯 말했다. 그러나 영고는 도리어 코웃음을 쳤다. "아니, 이 큰 황궁에 계집애 하나 없어진 걸 가지고 뭘 그리 야단이에요? 그 작은 숙녀 동에서도 사람이 늘 없어지곤 했지만 난 하나도 대수롭지 않데요. 가다 가다 산자락이나 산골짜기에서 더 러 시체를 찾아내기도 하는데, 구역질 나는 사내들에게 겁탈당해 죽었거나 독수리, 코끼리한테 죽은 것 천지던데 일일이 그런 걸 다 문제삼자면 큰일도 참 많겠소!" 단지흥은 영고가 얼토당토않은 소리만 지껄여대자 기가 딱 질려버렸다. 이런 한심한 여인을 상대로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단지흥은 화가 나서 횡하니 나와 버렸다. 마음은 더욱 무겁기만 했다. 치주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충피는 치주를 데리고 중원으로 향했다. "너는 이때껏 뚱뚱보 보살네에서 살아서 중원엔 한 번도 못 가봤을 테지? 중원에서 무림 호걸들의 집회가 열리는데 오늘 날 따라 거기나 가자. 가면 눈이 좀 뜨일 게다." 황궁을 떠나온 지 벌써 여러 날째였다. 치주는 이제나저제나 틈을 보아 도망가려고 기회를 노렸지만 충피의 손아귀를 벗어나기란 하세월이었다. 그녀는 이제 완전히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충피가 뭐라든 대꾸하는 법이 없었다. 이번에도 대답이 없자 충피는 막무 가내로 치주를 교자에 태웠다. 충피가 한마디 호령을 내지르자 교자는 흔들흔들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자꾼은 전변의 장한들이었다. 그들은 걸음이 빨라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10여 리를 나아갔다. 교자 뒤에는 운남 기충 충피의 시청들이 따르고 있었다. 중원에 가면 볼 만한 구경거리가 많으리 라고 한껏 기대에 부풀어서 모두들 신명이 나서는 연신 웃고 떠들며 재잘거렸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충피는 수림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자, 오늘은 저기서 밤을 보내자." 교자는 건들건들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일단 행장을 풀고 한숨 돌리자 교자꾼들은 오목조목 예쁜 충피의 시침들을 흘깃흘깃 건너다보며 군침들을 흘렸다. 하지만 어느 한 놈 감히 그녀들을 다치지는 못했다. 어쨌든 너나없이 노독에 지쳐 있었다. 나무 아래 꼬꾸라져 벌써부터 코를 골아대는 자들도 더러 있고 대개는 화톳불 곁에 모여 앉아 애꿎은 술만 퍼마셔댔다. 충피의 시첩들은 때가 되었다고 모두들 머리를 빗는다, 세수를 한다, 화장을 한다 야단을 떨었고 충피의 하인들은 굉장히 큰 침대를 펼쳐 놓고 사방에 휘장을 치고는 향불을 피웠다. 그리고 나자 충피의 시청들은 모두들 침대 앞으로 다가가 충피 앞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었다. "그래 오늘 밤은 기분이 어떠냐? 즐거우냐?" 충피는 첫머리에 꿇어앉은 시첩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 말에 그녀는 흠칫했으나 자세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동주께서 오늘 밤 제 시중을 받으신다면 시첩 어찌 즐겁지 않으리이까?" "우리는 그래 몇 번이나 했던가?" "소첩은 행복하게도 열 번을 겪었습니다." 시첩의 목소리는 적이 떨리고 있었다. "열 번이나? 그래, 열 번이나 했는데도 싫지 않다? 그러나 난 아냐, 싫증이 났어! 넌 물러서 있거라!" 그녀는 충피의 이 명이 화가 될지 복이 될지 알 수가 없어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안은 채 찍소리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또 한 시첩이 발뒤꿈치를 들고 사뿐사뿐 다가갔다. 열 몇 살 어린 나이에 그림같이 예쁜 소녀였다. 그녀는 충피 앞에 무릎을 꿇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동주께서 이 시청의 시중을 윤허하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충피는 별안간 징그럽게 웃음을 날렸다. "넌 언젠가는 나를 깨물었고 또 한번은 대성통곡을 하지 않았느냐? 내가 그렇게도 밉더냐?"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나요……. 동주님께 정성을 다 바치겠어요." 그녀는 머리를 조아렸다. "그래 우린 몇 번이나 했던가?" "세 번…… 세 번밖에 못했습니다." 시첩은 시종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충피는 한숨을 지었다. "할 수 없다. 갈 길이 총급하니 더 노닥거릴 시간도 없고 너라도 데리고 자야겠다. 자, 올라오너라." 그러자 다른 시첩들은 모두 마치 무거운 짐이나 벗어 놓은 듯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일어나 절을 하고는 물러 나왔다. 그녀들은 나무아래로 몰려가 옹기종기 붙어 누웠다. 한동안 주위는 쥐죽은듯 정적에 잠겨 들었다. 하지만 시간은 쉬임 없이 흘러갔다. 일순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정적을 깨우더니 점차 커져 가고 그 소리에 섞여 충피에게 깔린 그 애어린 시침의 교태로운 비명 소리도 간간이 들리기 시작했다. 시각을 더할수록 어린 소녀의 아우성치듯 한 비명 소리는 점점 더 높아만 갔다. 그러자 술 마시던 장한들도 귀가 쭈뼛해지고 누웠던 시첩들도 하나 둘씩 일어나 앉았다. 조용한 야밤, 그것도 수림 속이라 여인의 낭자한 비명 소리는 지독히도 짜릿하고 열광적으로 들렸다. 남자들은 그 소리에 몽롱해져서 피가 뛰고 사타구니 사이가 불끈불끈해졌으며, 시침들도 가슴이 설레어 귀를 솔깃 세우며 자기도 모르게 손을 샅으로 가져갔다. 한 순간, 갑자기 교자꾼 하나가 벌떡 일어나 마치 발정한 황소처럼 충피의 시첩 하나에게 덮쳐 들었다. 바로 조금 전 충피에게 퇴짜를 맞은 그 시첩이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더럭 겁이 나서 장한을 밀어내며 다리를 동당거렸다. 그러나 장한이 어찌나 우악스럽게 구는지 그 힘에 밀려 포르르 떨더니 맥이 빠진 듯 두 팔을 축 늘어 뜨렸다. 교자꾼들과 시첩들은 어안이 벙벙해 그들 남녀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불현듯 휘장 안에서 자지러지던 비명 소리가 뚝 멎더니 잔뜩 위엄이 서린 충피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너희 둘은 게서 뭣 하는 게냐?" 그러나 그 장한은 여인을 끌어안고 그녀를 애무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지라 그 소리가 귀에 들어갈 리 없었다. "힘 빼지 말고 오늘 밤은 참아! 그래야 내일 또 기운 내서 교자를 메지……." 충피는 단호하게 내뱉었다. 그러나 끓어오르는 욕정을 주체할 수 없어 그 사내는 씩씩거리며 여자의 옷을 벗겨 내리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한 순간, 쌩 바람소리가 일며 휘장 안으로부터 화탄 (火彈) 하나가 퉁겨 나왔다. 그러자 장한은 단박에 악 비명을 내지르며 코를 땅에 박고 그대로 꼬꾸라져 버렸다. "다들 듣거라. 내 색시는 어디까지나 내 색시야. 내가 아무리 싫증난 여자라도 너희 같은 놈들은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없어, 알아?" 충피는 거만하게 내뱉더니 징그러운 웃음을 흩뿌렸다. 교자꾼들의 그 끓어오르던 욕정도 찬물을 끼얹은 듯 사그라들고 불끈불끈하던 것도 대번에 파김치가 되었다. 피를 물고 꼬꾸라진 송장을 보니 그저 간담이 서늘해져 딴생각은 싹 가시는 것이었다. "내가 밀쳐 둔 여자라고 해서 마음대로 갖고 놀아서는 안 된다. 내가 너희들에게 상으로 내줄 때까진 손대면 안 돼. 이 계집은 내가 너희들에게 상으로 주는 계집이다. 자, 너희들끼리 마음껏 갖 고 놀아라." 충피는 방금 그 장한에게 붙들렸던 여자를 가리켰다. 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여인은 혼비백산하여 머리를 조아렸다. "동주님, 아이고 동주님, 비나이다. 제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발 저를……. 저는 그만 그 사내에게 덜미가 잡혀서……. 저 사내들한테 가면 저는, 저는……." "듣기 싫다. 저 사람들은 내 교자를 메는 심복들이야. 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줘야 내일 또 힘을 내 교자를 메지 않겠느냐! 계속 앙탈을 부리면 당장 죽여 버리는 수가 있어!" 충피는 신경질적으로 버럭 외쳤다. 그녀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짐승 같은 사내들이 미친 듯이 번갈아 달려들면 숨이 막혀서라도 죽을 것이었다. 장한들이 손가락을 톡톡 꺾어가며 그녀에게 다가들 즈음, 난데없이 수림 속으로 기괴한 웃음 소리가 흐흐흐 울려 퍼졌다. "어느 놈이냐?" 교자꾼들이 대번에 등을 돌리며 소리쳤다. 충피도 휘장을 젖히고 펄쩍 뛰쳐나왔다. 웃음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한두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더욱이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도란거리는 말소리, 풀밭을 스치는 소리도 연이어 계속 들려 왔다. 소리로 보아하니 여인들 같았다. 필시 한 무리는 되는 듯싶었다. 그러더니 이윽고 수림 속으로 숱한 연화등(蓮花燈) 불빛이 꿈결처럼 예서 제서 반짝거렸다. 이제 은방울 굴리는 듯 맑고 달콤한 웃음 소리가 수림을 가득 메웠다. "어디서 오는 미인들이시오? 나 같은 악인도 미인들의 웃음 소리는 싫다 하지 않으니, 그것 참 잘됐구려. 어서들 오시오, 그 예쁜 얼굴들 좀 봅시다." 충피는 눈이 희번득해져서 한껏 점잔을 빼며 외쳤다. "아마 내 얼굴을 보면 모르긴 해도 놀라 뒤로 훌렁 나자빠질 텐데……." 저켠에서 어느 미인인지 들입다 깔깔 웃으며 소리쳤다. '어떤 계집이야? 대리 황제 단지흥도 내 앞에서는 꼼짝못하는데 하물며 일개 계집이 내 앞에서 호기를 부려?' "난 운남 기충 충피요. 중원 무림의 고수가 오셨다면 어서 모습을 나타내시오." 충피가 소리쳤다. 그러자 그 많던 등불이 단번에 꺼지고 웃음 소리도 사르르 그쳤다. 깜깜한 야음 저쪽에서 어느 여인이 말했다. "내 그대의 침대를 좀 빌려 쓸까 하는데 빌려 주시겠소?" "내 침대를 빌리자고? 이거 살맛나는 소린데. 오늘 밤 한 침대에서 살을 섞어 보자?" 충피는 반색을 했다. 여인은 여전히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충피 그대는 그따위 짓을 그리도 좋아하지만 난 그보다 다른 걸 더 좋아하지!" "그게 뭐요?" "그래 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오?" 충피는 퍼뜩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건 난 모르겠소. 여하튼 나오기나 하시오. 나오기만 하면 침대야 거저 빌려 준다니까." 수림 저쪽은 잠시 조용해졌다. 저쪽에선 대답이 없고 바람 부는 소리만 살랑거렸다. 그러다 얼마 안 가서, 등불이 다시 켜지고 여자들이 수림 사이를 누비며 충피를 향해 행군하듯 다가왔다. 그런데 아뿔싸, 그 모습은 실로 가관이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여인들이 떼거리로 몰려온 것인지 알 수도 없거니와 더욱이 생김새는 하나같이 괴상망측하여 꿈에 볼까 걱정되리만큼 꼴불견이 었다. 키들은 너나없이 짜리몽땅한데 그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비대해서 마치 커다란 항아리들이 한데 어울려 따닥따닥 붙어 있는 듯한 형상이었다. 가로 넓이가 세로 길이보다 한 자도 더 될 듯싶은 그녀들은 모두 배가 만삭치 여인들만큼 솟아나와 허리도 굽히지 못했고 배에 가려 발끝을 내려다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뚱뚱하다 뚱뚱하다 이처럼 무지막지한 뚱보들은 난생 처음이었다. 뚱뚱보여인들은 등불을 들고 충피의 침대 앞으로 어기적어기적 다가섰다. 그 한가운데로 장한 열둘이 큰 의자를 어깨에 메고 걸어오고 있었다. 의자 위에는 개중에서 제일 비대한 여인이 떡 버티고 앉아 있었다. 이 의자는 앉는 자리가 일반 태사의(太師椅) 서너 배만큼이나 넓었는데 여인은 그 안이 비좁은 듯 이맛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그 침대를 왜 빌리려 하는가 하면 이 의자가 너무 비좁아 앉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편히 앉아 보자고 그러는 거야." 그 의자에 앉은 여인의 몸이 얼마나 육중한지 허우대가 멀쩡한 장한들인데도 모두 힘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 이 하인들이 너무 지쳐서 숨을 좀 돌리게 해야겠네, 이 사람들은 좋은 일꾼들일 뿐만 아니라 사내 구실도 제법 잘하지. 일 잘하는 일꾼은 얻기 쉽지만 사내 구실 제대로 하는 남자들은 얻기 어려운데, 내 이 하인들은 일도 잘하고 사내 구실도 잘하니 여간 귀엽지 않아." 여인은 충피를 보자마자 대뜸 반말투로 나가더니 하인들에게 분부를 내렸다. "이제는 여기 내려놓아라." 하인들은 간신히 의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어깨를 짓누르던 태산이라도 내려놓은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몸을 확 펴더니 조심스레 한켠으로 비켜섰다. "당신 침대에 올라가도 괜찮겠지?" 여인은 충피를 쏘아보며 거들먹거렸다. 충피는 이 육실하게 비대한 여인 체구에 주눅이 들어서인지 여인한테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멋쩍게 헤헤 웃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홱 돌려 교자꾼들에게 자못 거들먹거리며 외쳤다. "얘들아, 어서 휘장을 거둬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교자꾼들이 득달같이 달려가 휘장을 홱 걷어 올렸다. 그러자뚱뚱보 여인은 냉큼 뛰어 침대 위에 사뿐 올라앉았다. 몸은 엄청나게 비대하지만 동작은 어찌나 날렵하고 가벼운지 그 육중한 몸이 침대에 내려앉는데도 삐그덕 소리 한 번 없었다. 충피는 놀라 혀를 찼다. 여인은 자리를 잡자 똑바로 충피를 노려보았다. 여인 앞에 서자 충피는 그 여인에 비해 딱정벌레처럼 작아 보였다. "난 몸이 너무 육중해 야단이다. 낭중(郎中, 의사)의 말은 내가 땀을 너무 많이 흘리면 죽는대. 그런데 난 사내들과 그 짓을 하면 땀이 비 오듯 하거든. 난 그게 겁이 나서 당신처럼 재미를 자주 못 봐." "그럼 그 좋아한다는 건 대체 뭐요?" 충피의 말에 여인은 낄낄거렸다. "사실 이 일도 그 짓 못지않게 아주 재미있지. 한번 해 보지 않겠나? 싫지 않다면 내 오늘 밤 당신과 어울려 신나게 즐겨 봄세. 어찌 보면 이 일은 살을 섞는 것보다 몇 갑절이나 재미 있다니까. 어때? 한번 해 볼 테야?" 태산처럼 비대한 여인의 목소리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만큼 그녀의 입에선 부드럽고 달콤한 소리가 흘러 나왔다. "해 보지요, 뭐. 그렇게 재미난다는데 못해 볼 게 뭐요?" "그러면 어서 올라와야지, 이 침대 위로 어서 올라오라니까." 충피는 냉큼 침대로 뛰어올랐다. 충피도 재간을 보인답시고 가볍게 살짝 내려 앉았지만 그 육중한 여인의 날렵한 재간에 비하면 무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래 여인과 살을 섞는 것보다 더 재미난다는 일이 도대체 뭐요? 어디 한번 봅시다." 충피는 여인과 마주 앉으며 다그쳤다. "중원 가장 큰 성인의 말씀도 못 들었나. 일생 너나 할것없이 매일 하는 일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계집 사내가 어우러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먹는 것이로다. 알아?" 뭐 대단한 것을 기대하고 있던 충피는 빈둔한 여인의 말에 시시하다는 듯 깔깔거렸다. "난 또 뭐라구……. 먹는 거야 매일 하는 짓인데 그게 뭐 그리 재미나오? 하여튼 난 먹기도 잘하오. 식성 하난 끝내 주지." 그러자 여인은 한심하다는 듯 웃었다. "싱거운 소리를 잘도 하는군. 먼저 나 먹는 걸 따라 한번 먹어 보고 그런 소리를 해. 얘들아, 어서 상을 차려라!" 여인의 대갈일성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교자를 메고 온 사내들은 땅에다 부뚜막을 열 몇 개나 만들어 놓더니 삽시간에 불을 때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채 일각도 지나지 않아 가마에서는 벌써 구수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드디어 엄청나게 큰 쟁반에 무엇인지 시꺼먼 것이 한 쟁반 그득 담겨 침대 위에 올려졌다. 그리고 이어 힘줄 같은 것이 큰 쟁반으로 한 쟁반 올라왔다. 충피는 뒤에 날라온 것은 동산(嶠山)에서 늘 즐겨 먹던 사슴 힘줄이 라는 것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지만 앞서 들어온 것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뒤로도 여러 가지 음식들이 계속 날라져 왔다. 충피는 듣도 보도 못한 것이 수두룩했다. 어찌나 많이 올라왔는지 그 큰 침대가 넘쳐 날 지경이었다. "자 그럼 먹자구." 비둔한 여인의 말이 떨어지자, 침대 주변에 앉아 있던 뚱뚱보 여인들이 일제히 손을 쭉 뻗쳐 닥치는 대로 한 주먹 쥐어다가 굶주린 승냥이마냥 아귀아귀 먹어대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 큰 침대에 그득했던 음식은 절반이나 없어져 버렸다. 왜소하기 그지없는 충피는 몇 입 못 먹어 벌써 배가 똥똥하게 튀어나와 더 먹으려야 도저히 더 먹을 수가 없었다. 그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놀란 눈길로 여인들이 게걸스레 먹어대는 것을 그저 구경하기만 할 뿐이었다. 먹을 것이 산더미 같았는데 눈 갈짝할 사이에 들개바람에 쉽쓸려 가듯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부지런한 남자 노복들이 또 설레발을 치며 한 상 챙겨 오고 여자들은 또 게걸스럽게 먹어 없앴다. 이렇게 서너 시간을 먹어대니 급기야 침대 위엔 국물과 뼈다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침내 여인들은 배가 북상투같이 밀려나와 허리띠를 풀고 땅바닥에 나자빠져서는 손 하나 꿈쩍 못하고 살이 다 드러난 배를 미친 듯이 헐떡거렸다. 눈도 바로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충피는 잘 먹었나?" 뚱뚱보 여인이 물었다. "잘 먹었소만……." 충피는 여인들의 기세에 눌려 목소리가 다 기어들고 있었다. "미식(美食)은 불여미기(不如美器)라는 말도 있거늘, 맛있는 음식도 멋있는 그릇에 담아야 제 맛이 나는 법! 다행히 자네가 이 큰 침상을 빌려 준 덕으로 우린 땅바닥에서 먹지 않고 편안히 맛 좋게 먹게 되었네. 고맙네. 그런데……." 충피는 여인이 무슨 소리를 하려고 말꼬리를 길게 늘여 빼는 것인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부지중 몸을 흠칠했다. 아니나다를까, 여인은 매섭게 쏘아붙였다. "그만하면 자낸 오늘 운수가 좋은 셈이네. 우리가 오늘 뜻대로 배불리 먹었으니 그렇지, 만의 하나 내 비위가 조금만 상했어도 자넨 이렇게 앉아 있질 못해. 당장 숨통이 끊어졌을 거요?" "아니, 내가 죄 지은 일이 무엇이관대 숨통이 끊어진다는 거요?" 충피는 부아가 났다. "이봐, 충피! 자낸 여자들을 부려먹는 재간이 있지만 내겐 사내들을 개처럼 부려먹는 재간이 있거든. 어디 한번 보겠나?" 육실하게 비둔한 여인은 난데없이 한 소리 내뱉더니 휘파람을 획 불었다. 그러자 나무 곁에서 이쪽 눈치만 살피고 있던 사내들이 우르르 침대 앞으로 몰려왔다. 충피는 그 남정네들을 보고 그만 질겁을 하고 말았다. 좀전까지만 해도 멀정하던 이 사내들이 언제 그랬는지 얼굴에 연지 곤지를 찍고 지분들을 발라 여자도 남자도 아닌 몰골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충피는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사내들은 귀찮다는 듯 충피의 어깨를 툭툭 쳐서 한켠으로 밀쳐 내고 모두 제 주인 섬기는 강아지마냥 여인 발부리로가 번듯이 드러누웠다. 그 지독하게 몸이 우람한 여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한 놈 한 놈 머리를 쓸어 주고 어깨를 어루만지며 왜 이렇게 여위었냐고 한숨을 짓기도 했다. 그리고는 먹다 남은 뼈다귀를 던져 주는데 사내들은 정말 개같이 그것을 받아 입에 물고 뿌드득뿌드득 깨무는 것이었다. "자넨 여자들을 잡아다가 시첩을 삼아 몇 번 해 보곤 내버리지만 나는 이 남자들을 노복으로 만들어 개같이 부리고 있지. 부리고 싶으면 부려먹고 부리기 싫으면 이렇게 한 발로 차 내버리면 그만인게야." 그러더니 그녀는 바로 자기 발부리 앞에서 열심히 고기 뼈다귀를 핥고 있는 사내 하나를 툭 걷어찼다. 그러자 그 사나이는 찢어지듯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굴러 떨어지더니 삽시에 사지가 뻣뻣해져 버렸다. 그것을 보고 나머지 사내들은 모두 사색이 되어 땅에 엎어져 벌벌 떨었다. 여인은 그 퉁퉁한 손바닥을 툭 마주치며 흐들거렸다. "이봐, 그래 우리 둘 중에 누가 더 위풍이 센 것 같은가?" 충피는 입술만 달싹일 뿐 대답을 못했다. 계집들을 학대할 때는 못 느꼈으나 뚱보 여인이 사내들을 개처럼 학대하는 걸 보니 사뭇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이었다. 여인은 가소롭다는 듯 조롱 섞인 미소를 띠며 똑바로 충피를 쏘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