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논검3[북개홍칠공편] - 17편 (17/66)
"무섭지 않습니다. 무서울 게 없지요. 폐하께서 신첩을 강호에 내보낼 제 신첩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사옵니다. 그러한 몸이 더 무엇을 두려워 하겠나이까?" 여인은 차분히 대답했다. 황제는 고개를 젖히며 허허 웃고는 태감에게 명했다. "어서 잠자리 시중이나 들도록 해라." 태감은 서둘러 원앙휘장을 드리우고 쌍베개를 놓고 비단 이불을 펴는 등 한동안 부산을 떨더니 황제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 다 되었나이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문을 조심스레 여닫으며 밖으로 나갔다. 황제는 여인의 옷을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다. 눈처럼 희고 부드러운 여인의 미끈한 몸매가 드러나자 황제는 완전히 넋을 잃은 얼굴이 되었다. 그는 여인의 풍만한 젖가슴을 미친 듯이 주물러 대며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강호에 가서 야성을 좀 배웠겠는데 왜 짐한테 그 야성을 좀 부려 보지 못하는고?" 그러자 여인이 와락 몸을 일으켜 황제를 깔고 앉으며 소곤거렸다.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그 맛을 보여 드리지요." 여인은 정말 발정한 암코양이처럼 용상 위에 누운 황제를 떡 주무르듯하며 온갖 음탕한 짓을 다하였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가자 황제는 지칠대로 지쳐 나른한 시선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이 배 위에 앉아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황제를 내려다보았다. 황제는 다시금 기운을 내어 여인의 목을 와락 당겨 안았다. "이 세상에 폐하를 따를 사내는 없을 것이옵니다. 폐하가 최고이옵니다." 여인은 간드러진 목소리로 황제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여인의 말에 황제는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그럼, 내가 누구냐? 내가 이 나라 황제가 아니더냐……?" 여아는 한 자그마한 집 안에 앉아 있었다. 소미타와 사개에 의해 죽은 거나 다름없던 그녀는 한 괴인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것이다. 그녀는 빠개지는 듯 아픈 머리를 싸쥐고 집 안을 둘러보았다. 너무도 끔찍한 정경에 여아는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모두 내 탓이야. 내가 그 마차를 타지 않았으면 마부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고 내가 이 집에 들지 않았으면 이 집의 노파와 아들이 이렇게 참혹하게 죽지 않았을 거야. 모두 내 잘못이야. 당신들의 원혼이 있다면 나를 용서해 주세요…….' 그녀가 한동안 넋을 놓고 앉아 있는데 문득 밖에서 인기척 소리가 났다. "집 안에 누구 계십니까?" 노인의 음성이었다. 여아는 일어나려고 하였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누구신지 들어오세요." 여아는 다 죽어 가는 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너무도 작아서 혼자말로 웅얼거리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잠자코 사람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이상하구만. 집 안이 왜 이렇게 캄캄하고 어둡지?" 그는 무어라고 중얼거리면서 더듬더듬 사람을 찾는 것 같더니 땅에 쓰러져 있는 노파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일어나요, 일어나. 객이 왔는데도 잠만 잘 거요?" 노파가 움직이질 않자 그가 혀를 찼다. "허 참, 단단히 곯아떨어진 모양이구만. 이런 한심한 일이 다 있나?" 그는 투덜대며 이번에는 마부와 노파의 아들을 흔들어 댔다. 문득 그는 뭔가를 깨달은 듯 소스라쳐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아이구, 몽땅 죽은 사람들 아냐? 세상에……." 그는 두리번거리다가 이번엔 벽에 기대 앉아 있는 여아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여아를 가만 들여다보더니 킥 웃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죽은 사람의 눈이 이처럼 큰 건 처음 보는군 그래." 그는 손바닥을 펼쳐 여아의 눈앞에 대고 오락가락 흔들어 보고는 여아가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자 말을 이었다. "그래, 옛말이 하나 틀린 거 없다니깐? 한이 많은 사람은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더니만 꼭 그 짝이야. 그러면 이 여자는 무슨 한을 그렇게 품고 죽었을까?" 그는 여아의 맞은편에 풀썩 주저앉았다. 여아는 여아대로 이 사람을 수상쩍게 바라보았다. 그는 옷차림부터가 희한했다. 위에 공자삼(公子衫)이라는 저고리를 입었는데 앞가슴엔 새 몇 마리가 수놓아져 있었고 머리에는 공자건(公自巾)이라는 두건을 썼는데 그 두건에는 저잣거리에서 파는 아이들 노리갯감 따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황아장수들이 쓰는 딸랑이북에다 다는 딸랑이, 엿장수들이 쓰는 방울, 귀염둥이 아이들 옷에 달아 주는 백보대(百寶袋) 따위로, 아무리 적게 봐도 3, 40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나이가 이런 것을 달고 다니니 실로 가관이었다 그가 여아의 코에 손을 대보더니 중얼거렸다. "아니, 숨결이 느껴지는 걸 보니 아직 죽지 않은 모양인데? 아이고, 안 되겠다. 이러다가 아예 마저 죽어 버리면 내가 큰 변을 당하지. 죽은 원귀가 나를 끌고 가면 나까지 죽는 거다. 아이고, 어서 내빼자. 이럴 땐 내빼는 게 상수야." 그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여아의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차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애걸하는 듯한 여아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측은한 듯 말했다. "내 묻는 말에 대답해 봐요. 말을 못하겠으면 눈이라도 꿈쩍거려 봐요. 그대는 여자임에 틀림없지?" 여아는 그 물음에 눈을 꿈쩍했다. "죽지 않은 건 틀림없군." 여아는 눈물이 가득 담긴 눈으로 서글프게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한테 이런 해코지를 당한 거요?" 그 말에 여아는 또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녀가 미운산의 여인이 된 지는 오랜 옛날 일로 운낭과 더불어 총애를 한 몸에 받아 왔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미운산의 정이 점차 식어 가기 시작했는데 그 까닭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급기야 오늘은 미운산이 사람을 시켜 자기를 죽이게까지 하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 역시 미운산에 대한 정이 완전히 식어 버렸다. 그녀는 미운산을 위해 아낌없이 청춘을 바쳐 온 지난날이 한없이 서글프게만 느껴졌다. 여아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바라보던 사나이가 측은하다는 듯 혀를 차며 가까이 다가왔다. "이런 걸 보고 그냥 갈 수는 없고, 어디 봅시다." 그는 여아의 팔목을 쥐고 맥을 짚어 보았다. "남한테 목을 조여 혼절했다가 겨우 깨어났구만. 말도 못하겠고 몸도 안 움직여진다 이거지?" 여아가 그렇다는 듯 눈을 한 번 꿈쩍했다. "어쨌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마음 푹 놓게나. 내 무슨 수를 써서든 그댈 치료해 줄 테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양팔로 그녀를 가볍게 안아 들고는 집 밖으로 나갔다. 여러 날 병구완을 하여서야 여아는 몸이 차차 회복되어 갔다. 그제야 여아는 자기를 돌봐 주는 사나이의 이름은 주백통이고 별명은 노완동임을 알게 되었다. 여아가 그를 오라버님이라고 부르자 노완동은 대단히 기뻐했다. 그는 여아를 완전히 회복시키기 위해 작은 마을의 집 한 채를 얻어 10여 일 가량을 병을 치료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여아는 이제 일어나서 밥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둘은 농담도 하며 아주 가깝게 지냈다. 여아는 이 노완동이 아주 솔직하고 너그러우며 꾀를 부릴 줄 모르는 순수한 사람임을 알고 속으로 아주 존경하였다. 어느 날 밤이었다. 여아는 바깥 방에 있고 노완동은 안방에서 홀로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여아는 오늘따라 가슴이 뛰었다. 여아는 노완동이 곁으로 와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곁에 와서 종남산 전진교의 일들이며, 그의 사형인 왕중양의 이야기며 그가 어떻게 왕중양의 사제가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노완동 자신도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매우 즐거운 눈치였다. 여아는 지금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해 주는 남자를 갈망했다. 노완동은 비록 말이나 행동이 실없고 의젓하지 못한 것 같기는 하나 마음씨 하나만은 무던하고 너그러웠다. 남을 해치려는 마음 따위는 근본적으로 없는 사람이었다. 여아는 이런 남자와 같이 살게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아는 노완동이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아직 분명히 알 수 없었다. 한편 노완동은 혼자서 술을 마시며 여아와는 아주 동떨어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생각에 잠겨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형님, 형님은 지금 어디 계시우? 미인이 화근이란 말도 모르우? 그깐 임조영과 밤낮 코를 맞대고 있다간 좋지 않은 일을 당할게 분명해요. 제발 그 여자한테서 벗어나 무예나 수련하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텐데……." 여아는 점점 몸이 달아오르고 답답한 심정이 되었다. '우리 둘은 오다가다 이렇게 만난 사이로 내 속마음을 이 기회에 터놓지 않으면 결국 후회하게 될 거야. 시일이 더 지나 내가 완쾌되면 저분은 훌쩍 어디론가 떠나가 버릴 텐데 그때 가서 후회하느니 당장 고백해야지." 여아는 조급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오라버님, 이리 좀 와 보세요. 이리루 와 보시래두요?" 여아의 부름에 노완동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여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가 싶어 급히 건너가며 물었다. "여아, 무슨 일인가?" "오라버님도, 내 곁으로 가까이 오시면 큰일이라도 나나요? 이리 가까이 오세요." 여아가 부드럽게 말했다. "무슨 일인데……?" 주백통이 어정쩡하게 물었다. "무서워서 그래요. 곁에 앉아 말벗이나 좀 해 줘요." 남녀간의 일에 대해서는 둔감하기 짝이 없는 노완동은 여아가 정말 혼자 있기 무서워서 그러는 줄 알고 어린애 달래듯 말했다. "참, 무섭긴? 여아는 여기 있고 나는 저기 있지만 한 집 안에 있는데 무섭긴 뭐가 무섭다는 겐가?" "그래도 난 무섭단 말예요. 무서워서 말벗이나 해 달라는데 싫단 말이에요?" 여아가 뾰로통한 기색으로 투정하듯 말했다. "그래 그래, 그렇게 하지. 여아가 원하는 일인데 마다할 수야 있나." 주백통은 여아의 곁에 주저앉았다. 여아의 얼굴이 봄날 피어나는 해당화처럼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노완동은 여아의 심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벽창호 같은 소리만 해댔다. "여아, 정말 그렇게 무서우면, 자, 내 손을 잡지." 주백통의 말에 여아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오라버님은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 말인가? 난……." 주백통은 갑자기 어색해서 말끝을 흐렸다. 무예를 닦는 데만 일심정력을 기울여 온 탓으로 그는 여태까지 여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여아로부터 이런 질문을 듣고 보니 그는 그만 주눅이 들어 더듬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녀가 함께 있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아세요? 오라버님은 그 재미를 모르세요?" "그래 봐야 아이나 낳고 살림이나 하며 둘이 함께 다니는 것뿐인데 거기에 재미가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여아는 주백통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날 보세요. 우리 둘이 이렇게 같이 지내는 건 어떨 것 같애요? 싫으세요?" 주백통은 눈을 크게 뜨고 여아를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게 무슨 말인가? 여아는 개방 방주 미운산과 부처간이 아닌가? 미운산이 여아를 버렸다고 해도 나하고는 부처가 될 수 없어. 난 여인과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사형인 왕중양 형님께서도 말했듯이 난 천상 무예나 닦을 사람으로 태어났으니깐. 나는 일심정력 무예나 닦아 장차 좀 큰일을 해 볼 생각이야. 여하튼 난 여자와 같이 살 사람은 아니라구." 그의 말에 여아는 눈물이 글썽하여 중얼거렸다. "알았어요. 나 같은 건 싫단 말이군요. 나 같은 건 싫다 이거예요." 주백통은 여아에게 어떻게 제 속을 내보여야 할지 답답해졌다. 여아는 주백통의 손을 잡아 쥔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뭣 땜에 날 살려 주었어요. 차라리 죽게 내버려두지. 난 오라버니를 사랑해요. 정말 진심으로 사랑해요……." 주백통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는 여아가 자기 손을 붙들고 흐느껴 우는 것을 당장 한 이불 안에 들자는 뜻으로 알고 황급히 머리를 내저었다. "안 돼, 이러면 안 돼. 우리 둘은 자리를 같이할 수 없어." 여아는 그만 수치를 느꼈다. 주백통이 자기를 경시하고 있으니 자기가 아무리 사랑을 고백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더더욱 서글퍼졌다. 이때였다. 두 사나이의 말소리가 불쑥 끼여들었다. "저런 음탕한 년 같으니. 그래 도저히 못 참겠다 이거지? 사내라면 한바탕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건가?" 다른 한 녀석이 핫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보다 저런 바보 같은 사내 놈도 다 있군. 자네 같으면 저 녀석처럼 가만있겠어? 계집이 몸뚱이를 던지며 눈물을 흘리는데 바보처럼 멍청히 보고만 있겠나? 나 같으면 그냥……." 그들은 듣기 거북할 정도로 음란한 말들을 몇 마디 더 주고받더니 재밌다고 웃어젖혔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여아와 주백통 앞에 나타났다. 여아는 한눈에 두 사람을 알아보았다. 하나는 개방의 금의파 장로인 운중연 서불성이고 다른 하나는 오의파 장로인 과청천 제갈옥생이었다. 그들은 한심하다는 듯 주백통을 바라보았다. "뭣하는 사람들이오? 여긴 왜 왔소?" 주백통이 물었다. "넌 도대체 누구냐? 저 여자가 누군지나 알고 그러고 있느냐?" 과천청 제갈옥생이 빈정대듯 웃었다. "누구긴 누구겠소? 여아지." 주백통은 좀 얼떨떨해서 대답했다. "물론 여아지. 내 말은 저 여자가 누구의 여자인지 아느냐 그 말이야." 과천청이 또 비양거리며 물었다. 주백통이 다시 대꾸했다. "저 여자가 과거에 개방 방주 미운산한테 있었다는 말은 들었소만." "그쯤 알고 있으면 됐다! 저 여자는 말이야, 개방 방주의 여자란 말이다. 너 같은 놈이 건드릴 수 있는 여자가 아니야." 주백통이 도무지 못 알아듣겠다는 듯 대꾸했다. "여아가 미운산의 여자이기에 다른 사람은 건드리지 못한다 이말이오? 그럼 어쩐다지? 난 이미 여아를 구하기 위해 팔에 안아도 봤고 무서워서 못 견디겠다고 하여 손도 잡아 주었는데, 그래 이걸 어쩐단 말이오?" 노완동은 난처하게 되었다는 듯 머리 아픈 시늉을 했다. 개방의 두 장로는 한심해 죽겠다는 듯 큰소리로 웃어댔다. 한바탕 웃고 난 서불성이 빈정대며 말했다. "뭐 어쩌겠나? 자결을 하는 수밖에." "자살? 내가 왜 자살을 한단 말이오?" 노완동은 눈을 부릅떴다. "자살하기가 무서우면 우리가 도와주지. 우리 형제들이 먼저 너를 죽이고 나서 저 여인을 마저 요절내겠다!" "당신들 둘이 날 죽일 수 있다고?" 노완동이 히히 웃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저 여자는 뭣 땜에 죽이겠다는 거요?" "말해 준들 네깐 놈이 알아듣기나 하겠느냐? 서로 명복이나 빌어 주는 게 좋을 거다." 과천청이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 그들은 노완동의 겉모양만 보고 여지없이 깔보고 있었다. "자, 우리 둘이 합세하여 먼저 저 놈부터 저승으로 보내고 저 년을 처치하자구." 과천청의 말이 떨어지자 둘은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과천청은 노완동의 눈, 인후, 심장을 겨냥하여 암기 열 개를 내던졌고 운중연 서불성은 노완동의 몸을 겨냥하여 두 손으로 장풍을 날렸다. 제10장 가짜 미립 과천청이 던진 암기 열 개와 서불성이 날린 장풍이 일시에 노완동에게로 날아왔다. 거기에 맞기만 하면 노완동은 꼼짝없이 죽게 될 판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노완동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몸을 쑥 움츠러뜨리며 허리를 구부렸다. 그러자 암기 열 개는 노완동의 머리 위로 흘러가 버리고 서불성의 장풍도 빗나갔다. 노완동은 어느새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뭣 때문에 건드리지?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나?" 노완동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서불성을 향해 장풍을 날렸다. 미처 피하지 못한 서불성은 그만 저만치 뒤로 날려가 떨어지고 말았다. 노완동은 이제 과천청 제갈옥생에게로 걸어가며 말했다. "나를 죽이겠다구? 어디 죽여 봐. 그 따위 재간으로는 좀 어려울걸?" 노완동은 이렇게 말하며 번개같이 과천청의 수양명대장경맥(手陽明大腸徑脈) 위의 오리(五里), 곡지(曲池) 이 두 개 대혈을 찔러버렸다. 과천청은 찍소리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졌다. 노완동은 과천청의 자루에서 암기들을 꺼내 보았다. 모두 새파란 빛이 번뜩거리는 게 독이 묻은 암기들이었다. "이렇게 독을 묻힌 암기로 사람을 죽이다니, 너희 개방이 이처럼 악독한 줄은 정말 몰랐다." 노완동은 과천청을 꾸짖었다. "네 이 놈, 이 암기로 남을 죽이면서도 너는 이 암기 맛을 모르고 있을 테지? 내 오늘 네 놈에게 이 암기 맛을 보여 주마." 노완동은 당장 암기 하나를 과천청의 몸에 송곳처럼 박아 넣었다. "악―!" 과천청이 아픔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노완동은 재미있다는 듯 낄낄대며 물었다. "그래, 너의 이 암기는 얼마 있으면 독이 발작하지?" "반시간쯤 지나서." 과천청이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 "그래? 그럼 이 암기 열 개를 모두 박아 넣어야겠다. 반시간이나 끌 필요 없지. 안 그런가?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는데." 노완동은 마치 아이들이 장난질하듯 실실 웃으며 나머지 암기들을 하나하나 제갈옥생의 몸에 박아 넣었다. 제갈옥생은 아픔을 참지 못해 미친 듯이 악을 썼다. 노완동은 암기 열 개를 모두 박아 넣고 나서 고개를 돌려 여아를 불렀다. "여아, 이것 좀 보라구. 볼 만하지?" 뒤를 돌아보던 노완동의 얼굴색이 갑자기 확 변했다. 여아가 입귀에 피를 흘리며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노완동은 달려가 여아를 마구 흔들어 댔다. "여아, 여아!" 그러나 여아는 아무 대꾸도 없었다. 여아는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다. 노완동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건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운중연 서불성과 과천청 제갈옥생이 여아를 죽였을 리는 없고 도대체 누가 그녀를 죽였단 말인가. 운중연 서불성은 노완동의 장풍 한 번에 날려가 쓰러져 혼절하였고 과천청 제갈옥생은 혈도를 눌리고 암기에 찔려 죽어 가는 판인데 여아에게 손을 뻗칠 사이가 어디 있었겠는가. 이건 필시 이곳에 다른 누군가가 숨어 있음을 말해 주는 게 분명했다. "누구냐? 누가 여아를 죽였느냐? 당장 나오너라!" 노완동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때 운중연 서불성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노완동은 달려가 캐어 물었다. "도대체 누가 여아를 죽였느냐? 여아를 해친 놈이 누구냐? 말을 해라. 그렇지 않으면 아예 죽여 버리겠다." 운중연 서불성은 노완동을 쏘아볼 뿐 말을 하지 않았다. "죽이려면 어서 죽여라. 우리 입에서 무슨 말을 들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라." 과천청이 대신 내뱉었다. "거 참, 재미나는 놈들이군. 그래 너희 둘은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냐?" 노완동이 물었다. "우리 둘은 모두 개방 10대 장로들이다." 과천청이 오만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렇겠지,.너희들이 10대 장로에 속한다면 장로에게 명령할 수 있는 놈은 개방 방주밖에 없겠지. 개방 방주의 명이라면 네 놈들은 하기 싫어도 시행하기 마련, 네 놈들이 여길 온 것도 방주가 시켜서렷다? 망할 놈의 개방 방주, 내 그 놈을 찾아가 요절을 내리라." 이어 주백통은 여아의 시체를 돌아보며 결연히 말했다. "여아, 내 당장 개방 방주를 찾아가서 원수를 갚고 오겠으니 여기서 기다려." 그는 이 말을 남기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뛰쳐나갔다. 소씨 거렁뱅이는 개방의 방주가 되기는 하였으나 홍안루에서 주방장으로 있던 나날들이 잊혀지질 않았다. '개방 방주가 다 뭐야? 온종일 집 안에 앉아 꼼짝도 못하니 답답해서 살 수가 없군. 홍안루 주인을 찾아가서 요리사 일을 다시 해 보겠다고 말해 볼까? 나한테는 그 일이 제격인데.' 소씨 거렁뱅이는 이런 생각을 하며 흔들흔들 홍안루로 향했다. 이날 아침, 여느 때처럼 문을 열기 위해 밖으로 나온 홍안루의 심부름꾼은 저만치서 어정어정 걸어오는 소씨 거렁뱅이를 첫눈에 알아보았다. '이거 오늘 또 재수 사납겠는데? 접때는 문을 열기가 무섭게 비단옷을 입은 영감들과 거러지 열몇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홍안루가 온통 쑥밭이 되었는데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으려고 저 영감이 이른 아침부터 들이닥치는 거야?' 심부름꾼은 생각은 이렇게 하면서도 겉으로는 웃음을 흘리며 소씨 거렁뱅이에게 허리를 굽신거렸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오래간만입니다. 허허, 무엇을 잡수시러 예까지 오십니까요?" 그러나 소씨 거렁뱅이는 심부름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개방 방주의 증빙(證憑)인 녹옥죽봉을 흔들며 텅텅 누각 위로 올라갔다. 그는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아 녹옥죽봉으로 탁자를 탕탕 두드렸다. "게 누구 없느냐!" 심부름꾼이 헐레벌떡 뛰어와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아이고 요리사 어른, 헤헤, 무엇을 잡수시겠습니까요? 분부만 하옵시면 제가 주방에 가 시키겠습니다. 요리사 어른이 오셨다면 모두들 정성껏 대접해 드릴 겁니다." "그건 나중 문제고, 먼저 홍안루 주인부터 불러와." 소씨 거렁뱅이가 소리쳤다. 아직도 마누라를 껴안고 코를 골던 주인은 주루 안에 무슨 큰일이 났나 해서 나는 듯이 달려왔다. 먼발치에서 소씨 거렁뱅이를 발견한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