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화산논검3[북개홍칠공편] - 15편 (15/66)

2026-09-29 08:03:11 조회 25
순간 홍칠과 단지흥은 동시에 놀란 표정이 되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정말 구천인이라면 대리 사걸의 힘으로는 막아내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존함은 오래 전부터 들어 왔으나 오늘에야 비로소 만나 뵙게 되는군요." 빈정대는 듯한 선비의 음성이 들렸다. "그래? 나에 대해 무슨 말을 들었다는 건가? 내가 사람 죽이기로 유명한데, 그 소문을 듣고 중원에 와 나를 죽여 큰 명성을 떨쳐 보겠다 이건가?" 구천인이 계속해서 지껄였다. "너희들 대리 사걸은 언제나 단황 나으리를 꼬리처럼 따라다니며 한시도 떨어지지 않더니만 웬일로 오늘은 너희들끼리만 있는 거냐? 단황 나으리는 어디 있지?" 선비가 대꾸했다. "우리 단황 나으리는 왜 찾지? 그 정도 재주로 단황 나으리와 겨뤄 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주제 넘는 소리 그만하고 재주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먼저 우리 사형제와 자웅을 겨뤄 보자구." "단지흥! 안에 있으면 어서 나오시오! 당신의 일양지가 더 센지 내 철장공이 더 센지 어디 겨루어 봅시다!" 구천인은 사걸을 무시하고 집 안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안에서는 묵묵부답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구천인은 네 사람을 노려보며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서 이 놈들부터 요절을 내거라!" 이때였다. 철장방 무리들의 눈에 시체 세 구가 발견되었다. 그것이 거수네 패거리의 시체임을 확인한 철장방 무리들은 일제히 격노하여 서로의 눈길을 주고받았다. 놈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우르르 달려들어 대리 사걸을 철장으로 후려쳤다. 그러나 대리 사걸도 만만치가 않았다. 단지흥과 대리 사걸은 비록 주복(主僕)의 관계이지만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이로 단지흥이 자기가 갖고 있는 무예를 거의 다 그들에게 전수해 주었던 것이다. 선비 차림의 사내가 긴 피리를 휘둘러 대고 나무꾼이 도끼로 정신없이 후려갈기자 철장방 무리들은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며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런가 하면 어부는 낚싯대를 휘둘러 낚싯바늘로 철장방 무리들의 머리채를 낚아채거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곤 하였는데 멀리서도 백발백중 빗나가는 일이 없었다. 한편 농부 차림의 사나이는 엄청나게 큰 호미를 쓰고 있었는데 내밀면 창이 되고 당기면 갈고리처럼 쓰이고 옆으로 후려치면 철퇴와도 같아서 병장기치고는 참으로 특이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구천인은 스무 명이 넘는 부하들이 대리 사걸과 싸우는 모양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대리 사걸이 여기 있으니 단지흥도 분명 집 안에 있을 것이다. 나는 들어가 단지흥을 만나 보아야겠다.' 그는 더는 지체하지 않고 냉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때였다. 문어귀를 지켜 섰던 두 사람이 그를 막아 섰다. 구천인은 그들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다름아닌 처녀와 어린 사내애였던 것이다. "집 안엔 아무도 없어요." 사내애가 팔을 벌리며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막아 설 이유가 없지 않을까?" 구천인이 웃으며 응수했다. "내 허락 없이는 못 들어가는 줄 아세요." 이번엔 처녀가 막아 섰다. "이것들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모르는군." 구천인은 코웃음을 치고는 처녀를 향해 두어 장 날렸다. 처녀는 날렵하게 검은색 철봉 하나를 휘두르며 구천인의 장을 막아냈다. 구천인은 처녀가 철봉을 휘둘러 대는 솜씨를 보고는 속으로 감탄했다. 처녀는 구천인 앞가슴의 중요한 혈도를 겨냥하여 철봉을 내지르곤 했는데 그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구천인은 미처 피할 겨를이 없어 얼결에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구천인이 뒤로 물러서자 처녀는 더욱 기세가 사나워져서 더욱 매섭게 덤벼들었다. 구천인은 잽싸게 철장을 써서 처녀의 철봉을 막아냈으나 미처 제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내 이 철장이 저 계집의 철봉 중간을 쳐 갈기기만 하면 저 계집이 어쩌지를 못하겠지만 철봉의 변화를 가늠할 수가 없으니 잘못하다가는 헛물을 켤 수가 있다. 그러면 도리어 내가 난처해지기 쉬우니 그런 모험은 될수록 피하는 게 좋겠다.' 이렇게 생각한 구천인은 몸을 한바퀴 뒤로 돌리면서 슬쩍 일장을 내갈겼다. 이때였다. 사내애가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누나! 봉도쌍견(棒桃雙犬)을 쓰면 안 된다니깐. 그렇게 가까이서 봉도쌍견을 쓰다니?" 그러자 처녀가 방긋 웃었다. 웃는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정말 미인인데? 그런데 저 타구봉법은 누구에게서 전수받은 거지? 개방 방주 미운산한테서 전수받은 것이라면 이 계집과 개방과는 보통 관계가 아니겠군.' 구천인은 이런 생각으로 손을 약간 늦추었다. 비록 자신이 호시탐탐 개방을 삼키기 위해 노리고는 있으나 이 처녀와 개방 방주 사이가 보통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이 처녀를 죽여야 할지 말지 망설여졌던 것이다. 이때였다. 노기충천한 대리 사걸이 일제히 구천인에게로 덤벼들었다. 구천인이 집 안에 뛰어들 경우 홍칠과 단지흥의 생명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었다. 어부가 먼저 고함을 지르며 구천인에게로 몸을 날리자 철장방 무리 대여섯도 따라 쫓아왔다. 이를 본 농부와 나무꾼이 뒤에서 뛰어오며 놈들을 덮쳤다. 대리 사걸은 다시금 철장방 무리들에 에워싸여 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한동안 싸우다가 농부가 다리에 철장을 맞아 다리를 절게 되자 나무꾼과 선비가 잽싸게 농부에게로 달려가 셋이 한 덩어리가 되어 철장방을 막았다. 처녀는 여전히 혼신의 힘으로 철봉을 휘두르며 구천인을 막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처녀와 철봉을 요리조리 피하며 유심히 살피던 구천인은 처녀의 타구봉법이 비록 정묘하기는 하지만 내력이 아직 평범하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아무래도 집 안에서 뭔가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어. 어서 속히 들어가 보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거야.' 이런 생각이 들자 구천인은 고함을 세게 지르며 손을 쭉 뻗쳐 처녀의 철봉을 잡아 콱 비틀었다. 그 힘이 어찌나 완강한지 처녀는 결국 당해 내지 못하고 철봉을 놓치고 말았다. 구천인은 빼앗은 철봉을 땅바닥에 냅다 내리꽂았다. 처녀는 흠칫 놀랐으나 이랜 정신을 가다듬어 몸을 솟구쳐서 구천인의 머리를 겨냥하여 장을 갈겼다. 개방 방주의 전가지보인 강룡십팔장이었다. "미운산은 너와 어떤 관계냐?" 구천인이 소리쳐 물었다. 처녀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연거푸 장만 휘둘렀다. 구천인이 격분하여 소리쳤다. "네가 나를 막는다고 순순히 물러날 것 같으냐? 내 기어코 집 안 구경을 해봐야 하겠다!" 구천인은 철장을 앞으로 쑥 내밀며 처녀의 앞가슴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 "앗!" 처녀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려가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를 본 사내애가 급히 달려가 처녀의 머리를 부둥켜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누나!" 처녀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 나왔다. 사실 구천인이 자기 손바닥에 모든 힘을 다 넣었더라면 처녀는 그대로 즉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구천인이 처녀의 앞가슴을 겨냥하여 손바닥을 내미는 순간, 낚싯바늘 하나가 느닷없이 그의 두 눈을 향해 날아와서 그것을 피하느라고 제대로 손바닥에 힘을 넣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부 차림의 사나이가 위기일발의 순간에 처녀의 목숨을 구해 낸 셈이었다. 구천인은 어부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그대로 집 안으로 뛰어 들려 했다. 그러나 어부가 그를 그냥 들여보낼 턱이 없었다. 낚싯줄이 구천인의 머리 위에서 윙윙 날며 몸에 있는 대혈을 꿸 듯 기승을 부렸다. 화가 난 구천인은 몸을 돌려 장풍을 날리며 어부에게로 달려들었다. 어부는 구천인의 철장이 듣던 대로 만만치 않음을 깨닫고 적이 겁을 집어 먹었다. 어부의 낚싯줄은 천하의 어떤 날카로운 병장기로도 베어 끊을 수 없을 정도로 질겼다. 어부의 낚싯줄은 구천인의 머리 위에서 윙윙 소리를 내며 호시탐탐 구천인을 낚아채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구천인은 피한다고 피했으나 간간이 낚싯줄에 긁혀 옷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이 놈들아, 내가 네 놈들 따위한테 당할 성싶으냐? 구천인이 그 정도 위인밖에 안 된다면 이 중원 무림에서 벌써 송장이 됐을거다!" 구천인은 대노하여 고함을 지르며 몸을 솟구쳤다. 그는 머리 위를 후려치는 낚싯줄을 덥석 손에 감아 쥐었다. 어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의 낚싯줄은 보통 낚싯줄과는 달라서 그가 힘껏 한번만 잡아채면 손바닥이 결딴날 판이었다. 어부는 힘을 다해 낚싯줄을 잡아채었다. 엄청난 힘이었다. 그러나 구천인 역시 만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건방진 놈! 네 놈이 감히 나를 해 보겠다는 거냐?" 구천인이 두 눈을 부릅뜨며 고함을 치더니 있는 힘을 다해 낚싯줄을 홱 잡아당겼다. 순간 어부의 몸이 맥을 못추고 구천인에게로 주루륵 딸려 갔다. 구천인은 또 한 번 낚싯줄을 홱 잡아챘다. 보통사람 같으면 손에 낚싯줄이 감긴 이상 피투성이가 되거나 동강이 났을 텐데 구천인의 손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서 낚싯대를 놓고 물러서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구천인이 소리쳤다. 그러나 어부는 냉소를 하더니 여전히 낚싯대를 움켜쥔 채 뒤로 당기며 버텼다. 구천인은 냉큼 손을 뻗쳐 낚싯대 끌을 잡았다. 낚싯대는 금강쇠로 만든 것인데, 구천인은 일장에 낚싯대를 뚝 꺾어버렸다. 대노한 어부는 동강난 낚싯대를 장검삼아 구천인을 찔러 댔다. "네 이 놈! 정말 끝까지 발악할 테냐?" 구천인이 격분하여 낚싯대 끝을 홱 잡아챘다. "어서 손을 못 놓겠느냐?" 어부는 한사코 낚싯대를 틀어쥐고 놓지 않았다. 급기야 아주 큰 힘이 낚싯대를 통해 어부의 온몸으로 전해졌다. 전류가 흐르는 듯한 소름 끼치는 느낌에 놀란 어부는 자기도 모르게 낚싯대를 놓아 버렸다. 구천인은 낚싯대로 어부의 왼쪽 팔을 냅다 후려쳤다. 어부의 왼팔이 나뭇가지 잘리듯 맥없이 부러져 나갔다. "너희들 대리 사걸이 지키고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어디 좀 보자. 이 초가집을 대리의 황금으로 알고 지키고 있지는 않겠지." 구천인은 이 말을 남기고 성큼성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 들어온 구천인은 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앞뒤로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여간 기쁘지가 않았다. 앞에는 홍칠이 웃통을 벗고 앉아 있었고 뒤에는 단지흥이 앉아 홍칠의 등허리를 한 손가락으로 짚고 있었다. 두 사람의 머리에선 김이 무럭무럭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는 홍칠이 철장방으로부터 입은 독을 지금 단지흥이 뽑아 주고 있음을 단번에 알았다. '잘됐다. 화산 시합에나 가야 단지흥이니 황약사니, 그리고 왕중양이니 하는 자들을 만날 줄 알았더니 뜻밖에 여기서 그중 한 놈을 만나게 되었구나. 여기서 아예 이 단지흥인지 단황 나으린지 하는 놈을 죽여 버리면 적수 하나가 줄어드는 셈 아닌가? 그리고 이 흥칠인 또 부상을 입은 상태니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이 둘을 한꺼번에 죽여 버려 후환거리를 없애 버려야지. 홍칠이 성한 몸으로 나와 맞붙으면 자칫 내가 패하기 십상인데, 오늘 재수 좋게 병신이 된 홍칠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런 행운이 어디 있겠는가?' 구천인은 신이 나서 두 사람에게로 바짝 다가섰다. "홍칠이, 잘 만났다. 아주 볼 만하구나. 살아 보려고 무던히 애를 쓴 모양인데 나를 다시 만난 이상 너는 끝장이다. 인간의 생사와 부귀란 인간에게 달린 게 아니야. 다 하늘의 뜻이지." 그는 한바탕 소리내어 웃고는 또 득의양양 단지흥을 향해 지껄였다. "거기는 단황 나으리가 분명하겠지?" "그렇소만, 그대는 여기에 어인 일이오?" 단지흥이 여유 있게 웃으며 대꾸했다. "구천인, 해 볼 테면 나하고 해 봅시다. 홍칠공은 부상을 당했으니 이런 몸에 손을 댄다는 것은 강호 사람으로서 떳떳한 행동이 아닐 것이오." 단지흥이 엄숙하게 말했다. 구천인은 속이 꿈틀했다. '확실이 대리 단씨 가문의 일양지공은 정말 신기한 무공이구나. 단지흥이 저렇듯 내력으로 홍칠을 치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별 어려움 없이 말을 할 수 있다는 점만 봐도 그래. 이렇게 분심(分心)하여 동시에 두 가지를 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듣건대 대리 단씨의 일양지공은 천룡사(天龍寺)에서 온 것이요, 그가 배운 것은 불가 정통의 선공(禪功)이라고 하거늘, 아무리 봐도 이 단지흥의 무공은 절대 얕잡아 볼 게 아니야. 아무튼 섣부르게 행동하진 말아야 겠다.' 그러나 구천인은 생각을 숨기며 비아냥거렸다. "단황 나으리, 당신도 여기서 죽게 된 판에 지금 남 걱정하게 되었소?" 단지흥은 고개를 들어 매서운 눈길로 구천인을 쏘아보았다. 잠시 후 그는 기색을 누그러뜨리며 탄식조로 말했다. "부처님이 가르치시길, 욕심이 많지 않으면 마음이 가볍고 부처님을 속에 간직하면 한도 없고 원도 없어 마음에 평온이 깃들고 육근(六根)이 깨끗해지고 조용해져 남에게는 은혜를 베풀고 자기에겐 복이 차례진다고 하였소. 구 방주, 그대는 사람을 많이 죽여 얼굴에 살기가 잔뜩 끼었으니 부처님의 꾸지람을 들을 거요." 구천인은 단지흥의 말에 내심 뜨끔했다. 그러나 그는 곧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거칠게 말했다. "단황, 그 따위 부처님 얘기는 나한테 할 필요 없이 속에 담아 두었다가 지옥에 가서 원귀들에게나 들려주라구. 알아듣겠나?" 그리고는 철장에 힘을 잔뜩 넣어 단지흥을 향해 장풍을 날렸다. 한편 철장방 무리들에 에워싸여 혈전을 벌이던 대리 사걸은 구천인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들이 포위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철장방 무리들은 틈을 주지 않고 더욱 겹겹이 에워싸며 공격을 가해 왔다.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대리 사걸은 점점 더 열세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였다. 갑자기 중천을 날아오르는 학의 울음 소리 같기도 하고 구름 속을 누비며 나는 수리개의 울부짖음 소리 같기도 한 세찬 휘파람 소리가 들려 왔다. 뒤이어, 마치 이 수리개의 뒤를 따라 구름 위로 날아오는 작은 멧새의 울음 소리같이 청아한 휘파람 소리도 들렸다. 이 휘파람 소리는 앞의 휘파람 소리와 가락을 맞춰 조화를 이루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내기 어려운 이 소리에 대리 사걸과 철장방 무리들은 하나같이 놀랐다. 곧이어 뿌연 연무 같은 것이 날아오는 것 같더니 사람 하나가 눈깜짝할 사이에 눈앞에 나타났다. 3, 40세 가량 되어 보이는 수염이 긴 도사였다. 도사가 진불(塵拂)을 든 손으로 읍을 하며 말했다. "빈도(貧道)가 인사 올립니다. 여러분께서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도 모르고 갑자기 이렇게 뛰어들었음을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철장방 무리들은 이 도사의 공손한 태도에 마음이 놓였다. 도사가 이렇듯 굽신거리는 것으로 보아 별로 큰 무공은 없는 것이 분명하고 방금의 휘파람 소리도 이 도사가 낸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철장방 무리 중 한 놈이 앞으로 나서며 돼먹지 않게 소리쳤다. "피를 보고 싶지 않거든 어르신들 일에 간참 말고 어서 갈 길이나 가거라!" 도인은 그 말엔 대꾸도 없이 대리 사걸을 보며 물었다. "네 분은 중원의 분들이 아니신지요?" "그렇소이다. 우리 넷은 대리 사람들입니다." 도사의 행동거지에 호감을 느낀 선비 차림의 사내가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대꾸했다. "그러면 단황 나으리도 오셨겠군요?" 도사가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물었다. 대리 사걸은 그의 친근한 태도에 문득 짚이는 바가 있었다. 그는 바로 그 유명한 전진교 교주 왕중양이었던 것이다. 이때였다. 문득 또 한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왕 교주님의 경공도 그저 그렇군요." 사람들은 고개를 들리다가 하나같이 놀란 표정이 되었다.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횐 소복 차림의 여인이었는데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고운 눈매에 날카로운 빛을 번뜩이며 왕중양을 쳐다볼 뿐 철장방 무리들과 대리 사걸은 안중에도 없는 듯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마치 그녀의 눈앞에는 왕중양 혼자만이 서 있는 것 같았다. "임 시주님의 경공을 내가 어찌 따라잡겠습니까? 내가 졌습니다." 왕중양이 여인에게 겸손하게 말하자 여인은 눈을 곱게 흘기며 쏘아붙였다. "그런 소리 집어치워요. 교주님의 경공이 나만 못하다는 건가요? 내 말은 교주님의 경공이 아무리 세다 해도 나를 떼버리지는 못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따지고 보면 우리 둘이 비긴 셈이지요. 아무튼 마음에도 없는 말씀은 왜 하세요?" 왕중양은 도량 있게 웃어 보이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임 시주님, 아무래도 이 집 안이 수상쩍습니다. 내 추측이 맞다면, 안에서 누군가 지금 해를 입고 있습니다. 대리 사걸들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철장방 사람들이 한사코 막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여인은 바로 임조영(林朝英)이었다. 왕중양의 말에 임조영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호기심이 동했다. "집 안에 철장방 방주 구천인이 있기 쉽소. 그 사람은 강호에서 악한 짓을 수없이 한 사람인데, 임 시주님이 들어가 그 사람을 잡아내 온다면 임 시주님이 나를 이긴 것으로 칩시다. 그렇지 못하겠다면 임 시주님이 밖에서 이 철장방 무리들을 해치우시오. 구천인은 내가 들어가 상대할 테니깐. 어떻소?" "구천인이라면 철장방 방주 말씀입니까? 내가 들어가 보지요." 임조영이 큰소리를 치고 곧장 안으로 향했다. 맑은 물에 떠있는 부용과도 같이 깨끗한 모습으로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는 임조영을 넋 나간 듯 바라보던 철장방 무리들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들은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임조영을 막아 서려 했다. 그러나 임조영은 철장방 무리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바로 안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철장방 무리들이 임조영에게 손을 대려는 찰나였다. 왕중양이 매서운 바람을 일으키며 진불을 후려쳤다. 달려들던 철장방 무리들의 머리칼이 진불에 쓸려 몽땅 날아가 버리고 이마에선 피가 흘러내렸다. 철장방 무리들은 혼비백산하여 임조영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멍청히 바라보았다. 제9장 여인들 "야앗!" 구천인은 있는 한껏 내력을 모아 단지흥을 향해 장력을 발산했다. 10년 넘게 수련하여 기른 힘을 모두 이 한 번에 응집시켜 단지흥을 일거에 꺼꾸러뜨릴 작정이었다. 단지흥이 이 장풍에 격중되면 설사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중상은 면치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단지흥은 미리 방비를 하고 있었던 듯 오른손은 여전히 홍칠의 등에 댄 채로 왼손을 들어 구천인의 손바닥에 있는 노궁혈(勞宮穴)을 가리켰다. "이크!" 구천인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 깜짝 놀라며 단지흥에게 혈도가 눌릴까 봐 잽싸게 한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그가 발산한 장풍은 엉뚱하게 방안의 나무걸상을 박살내는 데 그치고 말았다. 구천인은 역시 단지흥의 무공이 만만치 않음에 내심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지흥은 구천인은 보지 않고 여전히 눈을 내리뜬 채로 말했다. "악이 마음에서 생기면 마음은 악의 늪이 되고 그 늪이 깊어지면 다시 고치기 어렵거늘 내가 보기엔 방주께서 손을 떼야 할 땐 손을 떼고 용서해 줄 사람은 용서해 줌이 옳을 줄로 아오." '뭐? 손을 떼야 할 땐 손을 떼고 용서해 줄 사람은 용서해 줘야 한다고?' 구천인의 눈에 핏발이 벌겋게 섰다. '내가 이제 중도에서 그만두면 네가 화산 무예시합에서 주인이 될 게 아니냐? 그런데 나더러 이 절호의 기회에 너를 그냥 놓아주는 바보 짓을 하란 말이냐?' 이렇게 생각한 구천인은 전술을 바꾸어 이번에는 홍칠에게 공격을 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은 극히 교활한 생각이었다. 만약 재차 단지흥을 공격한다면 단지흥은 구천인의 공격을 몇 번이고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홍칠을 공격한다면 단지흥은 자리를 뜰 수가 없는 입장이라 그 공격을 막아 주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구천인은 더는 지체하지 않고 곧장 홍칠의 앞가슴을 향해 장풍을 날렸다. 구천인이 홍칠을 공격하자 단지흥은 역시 짐작대로 몹시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는 황급히 구천인을 향해 손가락을 뻗쳤다. 그러나 그의 일양지공은 구천인에게 채 미치지 못한 채 그대로 빗나가 버리고 말았다. 구천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홍칠을 향해 장풍을 날리려 했다. 구천인의 독한 심보를 꿰뚫어 본 단지흥은 부지중 탄식을 하며 말했다. "악한 마음이 생기면 마음이 더러워지고 더러워진 마음을 악이라고 하오. 구 방주 마음이 더러워지면 아무리 훌륭한 의사일지라도 고치기가 어려운 법이니 아무쪼록 회심하여 선한 마음을 기르는 것이 어떻소?" 그러나 구천인의 귀에 그런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구천인은 계속해서 홍칠을 향해 장풍을 날렸다. 단지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마음만 조급해졌다. 홍칠에게서 손을 떼고 전력으로 구천인과 싸우면 이길 수가 있겠지만 그럴 경우 홍칠의 생명을 보존키가 어려웠다. 현재 단지흥은 일양지진력(一陽指眞力)으로 홍칠이 전신의 혈도를 통하게 하고 그 심맥을 당겨 심실과 이어 놓으며 심맥에 입은 극히 위험한 상처를 치료하는 중이었다. 이것은 말로는 쉬우나 실제로는 아주 복잡한 일이었다. 최악의 경우가 아니면 홍칠의 몸에서 손을 떼서는 안 되는데, 손을 떼는 순간 홍칠은 그대로 죽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