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논검4[남제단지홍편] - 47편 (47/70)
남제란 녀석만 봐도 그렇지, 그 놈에게 무슨 재능이 있다고 일국의 황제입네 하고 거들먹거린단 말이야! 실로 기도 안 찰 노릇이군!" 대환희 보살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똑바로 사막 옥수를 쏘아보았다. '쳇, 별게 다 와서 난리를 부리는군. 이 쭈그렁 바가지야, 네 년의 그 말라 죽을 사막에나 가서 큰소리를 칠 것이지 우리 운남 땅에 와서 무슨 수작이냐? 그렇게 안하무인 격으로 설쳐 대다가는 큰 코다친다, 큰코다쳐! 내 필히 저 늙어빠진 독종에게 단단히 버릇을 가르쳐 주어야 할까 보다.' 하지만 대환희 보살은 눈웃음을 살살 치며 물었다. "듣자니 어르신의 제자들이 천룡사에서 크게 당했다던데요, 그게 정말인가요?" 기실 막북삼괴가 죽은 건 충피의 소행이었지만 충피가 잔꾀를 부려 사막 옥수에게 천룡사 소행이라고 믿게 해 둔 터였다. 대환희 보살은 이 참에 일부러 그 말을 끄집어낸 것이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사막 옥수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었다. 사막 옥수는 금세 노기충천하여 버럭 성을 냈다. "천룡사 까까머리 중 놈들, 안 그래도 내 이를 갈고 있었다. 이 곳에서 일만 마치면 내 친히 놈들을 찾아가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잡아죽일 테다. 흥, 천룡사가 제아무리 대리의 국사라 해도 내 결코 사정을 두지 않으리라!" 그 말에 모두들 천룡사에 큰 화액이 닥치리라 하며 속으로 혀를 차면서 얼빠진 표정으로 사막 옥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나 대환희 보살만은 반색을 하며 쌍수를 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사막 옥수님, 천룡사 중 놈들에게 복수를 해야 하고 말고요. 한번 톡톡히 본때를 보여 주세요!" 그러자 사람들은 덩달아 식탁을 쾅 내리치면서 천룡사 놈들에게 버릇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쯤 되자 대환희 보살은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이젠 계속 요리나 맛보십시다. 이번에는 아마 여러분께서 한 번도 맛본 척이 없는 천하 일품이 상에 오를 거예요." 그라자 좌중은 이내 입들을 다물고 군침을 삼키며 두 손을 맞비비면서 싱글거렸다. 그러는데 누군가 한마디 던졌다. "보살님, 말씀을 좀 삼가시죠. 우리들이 비록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평생 세상을 주름잡으며 다닌 호걸 남아들인데 무엇인들 보지 못했고 무엇인들 먹어 보지 못했겠소? 우리들이 먹어 보지 못한 음식이 있다니 어디 빨리 내놓아 보시오!" "이제 곧 헛소리가 아님을 알게 될 거예요. 천하 일품 명요리가 없고서야 어찌 외람되게 귀하신 여러분을 모실 수 있겠어요." 그러면서 대환희 보살은 밖에 대고 큰소리를 쳤다. "자, 요리를 올리거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뚱뚱보 여인들이 소반을 들고 낑낑거리며 들어왔다. 소반 위에는 무엇인가가 봉곳하니 얹혀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단 보자기를 씌워 놓아 무엇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뚱뚱보 여인들은 사람들 안에 소반을 차례차례 내려 놓았다. 사람들은 적이 군침을 흘려댔다. 대환희 보살은 한참 동안이나 말을 늦잡더니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이 보자기 안에 뭐가 있을지 한번 알아맞혀 보세요. 천하에 드문 이 요리가 무엇인가 말예요." 좌중은 한동안 중구난방으로 갑론을박 떠들어댔다. 대환희 보살은 의미심장하게 웃음을 흘리며 입도 벙긋 않고 사람들을 쭉 휘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이윽고 손뼉을 치며 히죽거렸다. "틀렸어요, 다 틀렸어요. 아마도 여러분께 직접 보여야 하겠군요. 자, 보시지요!" 그녀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식탁 옆에 지켜 섰던 뚱뚱보 여인들이 일제히 비단 보자기를 확 벗겨 냈다. 그 순간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래져서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소반 위에 알몸뚱이 사내애들이 곱상스럽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자그마치 서른다섯 명이나 되었다. 이 애들은 저마다 가부좌를 틀고는 눈을 내리감고 앉아 있었다. 살결이 보송보송하고 눈이며 코며 입이며 심지어 눈썹까지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좌중은 넋 나간 사람들마냥 입을 헤 벌린 채 멍청히 보고만 있을 뿐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이나 침묵이 흘렀다. 대환희 보살도 입을 꾹 다문 채 회심의 미소를 띠고 사람들을 둘러보기만 했다. 드디어 헛기침 소리가 침묵을 깨더니 누군가 입을 열었다. "보살님, 옛적에 도를 깨친 신선이 한번은 막역한 친구에게 이렇게 어린애 모양을 한 음식을 대접했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소이다. 한데 그 친구는 진짜 애들의 살점을 대접하는가 해서 사시나무 떨 듯했다는구먼. 결국 그 친구는 그 어린애 모양의 음식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신선이 되지 못했다고 하더이다. 아마도 보살님이 내놓은 이 요린 바로 그 옛날 신선이 먹던 음식인지?……." 그러자 대환희 보살은 느물거리며 입을 뗐다. "참, 귓구멍이 나팔똥 같은 양반이구먼요. 어쩌면 그따위 전설을 곧이듣는단 말씀이에요. 그거야 옛사람들이 인육을 먹고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꾸며 낸 거짓말 아니던가요?" 그러자 떨리는 목소리가 대뜸 뒤를 이었다. "아니, 그, 그렇다면…… 보살님은 진짜 사, 사람 아이로 음식을 만들었단 말이시오?" "그렇소만, 뭐 잘못됐소?" 보살은 스스럼없이 넙죽 대꾸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머리를 처박고 꺽꺽 토하기 시작했다. 방금 먹은 음식은 물론이요, 급기야는 제일 처음에 먹었던 시퍼런 물까지 몽땅 다 바닥에 쏟아 놓았다. 이내 시큼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는 그러고도 머리를 처박은 채 감히 소반 위에 앉아 있는 사내애를 쳐다볼 엄두조차 못 내고 벌벌 떨기만 했다. 마치 소반에 앉아 있는 사내애가 오히려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다음 순간 또 한 사람이 머리를 처박았고, 이내 전염병 돌 듯 너나없이 고개를 처박고 울컥울컥 검푸른 위액을 토해놓았다. 굴 안엔 역겨운 냄새가 진동을 했다. 맨 먼저 구역질을 한 손님이 정신없이 딸꾹질을 하면서도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입을 뗐다. "이제 보니 대리에서 사내 애들을 납치해 간 건 죄다 보살이 한 짓이었군……." "암, 암, 그렇구말구요! 이 애들을 잡아 오지 않았던들 여러분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언감생심 먹어 볼 수나 있겠소? 어림도 없지요." 그러자 그는 배를 그러안은 채 보살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대환희 보살, 강호에서는 누구든 악한 짓을 해도 제 맘이고 인명을 해쳐도 원수지간이 되면 그뿐이지만 이따위로 철모르는 애들까지 희생시켜서는 결코 안 된다. 남의 귀여운 자식들을 훔쳐다가 고아 먹다니 천벌을 받고야 말 거다!" 그러나 대환희 보살은 눈 한 번 깜짝 않고 덥석 젓가락을 집어들더니 사내애의 눈동자를 파내 쑥 입 안에 처넣고는 보란 듯이 오물오물 씹기 시작했다. "천하에 제일 향기로운 고기가 뭔지 알아요? 말할 것도 없이 사람 고기지요. 하지만 직접 먹어 보지 않고서는 그 맛을 영영 모를 거예요. 자, 어서들 식기 전에 맛보라구요." 대환희 보살은 요망스럽게 깔깔 웃음을 날리고 나서 다시 좌중을 둘러보며 재촉했다. "자, 어서들 드시라니까요. 이 애들은 결코 강바닥에서 돌멩이 줍듯 닥치는 대로 잡아 온 애들이 아니란 말씀이에요. 마빡을 톡톡 퉁겨 가며 곱고 야들야들하게 생긴 복동이들만 골라 왔다구요. 얼마나 품을 들이고 공을 들였는지 몰라요. 그런데 이렇게 성의를 무시하시다니……. 어서 맛을 보란 말예요!" 그 말에 사람들은 간신히 몸을 추스르며 흘끔흘끔 소반 위의 사내애를 거들떠보았다. 보면 볼수록 살아 숨실고 있는 것마냥 생생했다. 그러자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며 다시금 발작을 하며 허리를 꺾고 구역질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다시는 소반 위의 사내애들을 볼 염을 못 내고 외면한 채 속으로 대환희 보살을 꾸짖어댔다. '아, 얼마나 지독한 년인가? 철없는 남의 집 옥동자들을 잡아다가 생으로 삶고 고아서 처먹을 생각을 하다니.' 정말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칠 노릇이었다. 손님들은 감히 맛을 보기는 고사하고 바늘 방석에 앉은 사람들마냥 몸둘 바를 몰라 이리저리 뒤척여 댔다. 그때 누군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귀청이 터지게 웃어젖혔다.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다름 아닌 사막 옥수였다. "내 진작 들은 바가 있었지. 운남에 대환희 보살이라고 하는 여인이 하나 있는데 여중호걸이라고 말이야. 하지만 난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어. 한데 오늘 직접 만나 본즉 과연 호걸은 호걸이로구나." 사막 옥수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더니 무섭게 두 눈을 부릅뜨면서 고함을 쳤다. "멍청이들 같으니라구, 어미 뱃속의 아이만 먹는 줄 알았는가? 어린애들이란 뱃속에 든 것이든 세상 빛을 본 것이든 마찬가지로 보약이 되는 법이여! 여태껏 사내애들은 먹어 보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저 보살 덕분에 입맛을 다시게 됐군그래! 아무튼 감사하이, 대환희 보살……." 사막 옥수는 자못 호기롭게 내뱉더니 술 한 모금을 쭉 들이켜고나서 젓가락을 덥석 집어 사내애의 가슴팍에다 쿡 박았다가 살점을 뜯어냈다. "가슴팍의 고기가 제일 맛있다고들 호들갑을 떨던데 내 직접 먹어 봐야겠다!" 사막 옥수논 살점을 홀짝 입 안에 넣고 두어 번 씹더니 꿀꺽 삼켜 버렸다. 대환희 보살은 득의양양하니 미소를 지으며 지켜 보다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 "과연 막북삼괴의 사부님답군요. 삼괴는 어르신 같은 사부님을 모신 것만으로도 크게 자랑스러웠을 텐데 그만 애석하게도……. 실로 어르신이야말로 여중호걸이세요." 그러나 사람들은 멍청히 구경만 하고 있을 뿐 누구도 젓가락에 손도 못 대고 있었다. 대환희 보살과 사막 옥수는 이제 권커니자커니하면서 연신 술잔을 기울이며 악귀같이 아이의 살점을 뜯어 아귀아귀 씹어댔다. 살점이 뜯기면 들길수록 아이의 형체는 엉성한 뼈다귀만 남아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형상이 되어갔다. 사람들은 걷잡을 수 없이 가슴이 뛰어 저마다 가슴을 움켜잡았다. 불현듯 누군가가 의자를 벌떡 박차고 일어나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운풍 노인이었다. "대환희 보살, 악에도 정도가 있고 끝이 있는 법이네. 자네는 어쩌면 이다지도 지독할 수가 있단 말인가?" 대환희 보살은 표독스럽게 냉소를 쳤다. "제가 악덕을 입든지 말든지 나으리와 무슨 상관이에요?" 운풍 노인은 무섭게 눈을 치뜨며 순식간에 휘익 검을 뽑아 들고 고함을 쳤다. "방자한 계집년, 내 네 년의 모가지를 베어 버리고 말리라!" 운풍 노인은 서슬 푸른 검을 비껴 들고 대환희 보살을 향해 똑바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태연히 앉아 그저 노인을 쏘아볼 뿐이었다. 좌중은 두 손에 땀을 쥐고 그 두 사람을 예의주시했다. 운풍 노인은 마침내 대환희 보살 앞으로 바짝 다가들어 검을 번쩍 치켜 들었다. 그가 있는 힘껏 검을 내리치려 할 찰나, 웬일인지 그는 그 자세로 바위처럼 굳어져 버렸다. 그리고는 일순 흠칫 떨더니 대번에 눈, 코, 입에서 시뻘건 피를 뿜어내는 것이었다. 대환희 보살은 그제야 깔깔 웃어젖히며 번뜩이는 눈길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호호호호…… 이제야 알려 줘서 미안하군요. 난 이미 당신들이 먹은 음식에 독약을 넣었어요. 그 독약은 아주 영험이 있으나 색깔도, 냄새도 없답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이제 곧 독이 퍼지게 되어 있어요. 저 영감태기는 괜히 성깔을 부린 탓에 당신들보다 빨리 발작했을 뿐이지요. 그런즉 당신들도 괜히 화를 내지 말고 점잖게 앉아 독을 제거하는 편이 좋을 거예요." 사막 옥수는 눈알을 부라리며 대갈일성을 내질렀다. "대환희 보살, 그럼 내 음식에도 독약을 넣었단 말인가?" "어르신께야 독약을 쓸 리 있겠어요? 전 앞으로 어르신의 신세를 톡톡히 질 참인데!" "으하하하, 잘했다! 잘했어! 어린애 고기도 한 점 먹지 못하고 벌벌 떠는 샌님들은 몽땅 죽어도 아깝지 않다. 이 놈들을 다 죽여버리고 우리 둘이 천룡사에 가사 단지흥 놈을 혼내 주자!" "좋아요. 그러나 그전에 그 놈에게도 이 애들 고기를 한 접시 먹여야 하잖겠어요? 호호호호……." 두 여인은 배꼽을 잡고 허리를 꺾어 가며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흡사 악귀 같았다. 단지흥은 어부, 나무꾼과 함께 길을 나섰다. 그들은 숙의를 거듭해 대환희 보살 짓이라고 단정을 내리고는 그녀의 석굴이 있다는 대양산 쪽으로 발길을 다그쳤다. 길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천만 뜻밖으로 선비, 농부와 마주쳤다. 세 사람은 너무나 반가워서 일제히 와락 소리를 내질렀다. 선비와 농부는 충피와 뚱뚱보 여인들에게 잡혀 가다가 그들이 잠든 틈을 타서 기적같이 도망쳐 나와 단지흥에게 일의 전말을 알리고자 급히 황궁으로 가던 길이었다. 선비와 농부는 단지흥과 두 시위를 보자 기뻐 탄성을 지르면서도 적이 비장한 기색으로 충피에게 들은 대로 대환희 보살이 젖먹이 사내 애들을 훔쳐다가 요리를 만들어 놓고 연회를 벌이고 있다며 자초지종을 쭉 이야기했다. 단지흥은 너무나 놀라 입이 딱 벌어졌다. 등줄기를 타고 온몸으로 전율이 확 펴져 갔다. "저런, 저런, 그렇게 참혹한 일이……. 그 요사스러운 보살이 이제는 죄 없는 애들까지 잡아다가 뭣이 어쩌고 어째……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일이다! 내 오늘 그 불여우 같은 보살 년을 잡아죽여 후환을 없애야겠다!" 선비와 농부가 대뜸 앞장서서 길을 잡았다. 그 뒤로 세 사람이 일제히 따르며 석량동을 향해 앞서거니뒤서거니 걸음을 다그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이내 미고하에 다다랐다. 강변에 나룻배 한 척이 떠있고 웬 사내가 뱃전에 걸터앉아 한가롭게 발을 씻고 있었다. 단지흥 일행은 강기슭으로 내려갔다. 농부가 나룻배 쪽에 대고 청을 넣었다. "여보시오 사공, 이쪽으로 배를 좀 대 주시오." 사공은 그들을 건너다보며 심드렁하니 물었다. "뉘시오?" 선비가 얼른 맞받았다. "석량동으로 가는 사람들이오." "석량동 연회에 참석하시려는가 보군요." 다섯 사람은 얼른 눈짓을 주고받았다. 단지흥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다시금 선비가 나서며 또 외쳤다. "맞습니다. 오던 길에 좀 지체되어 늦었소이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들었는지 선창에서 뚱뚱보 여인 하나가 삐쭉 얼굴을 내밀었다. 틀림없는 대환희 보살의 수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이들을 본 적이 없는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연회는 이미 한참 전에 시작되었소! 당신들은 보살님한테 단단히 역정을 듣겠구먼, 자, 어서 오르시오!" 여인은 대수롭지 않게 일행을 흘끔흘끔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 어서 배를 갖다 대지 않고 뭐하고 있는 거예요?" 그 말에 사내는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며 노를 저어 배를 기슭에 갖다 댔다. 다섯 사람은 얼른 배에 올랐다. 금세 배에 올랐는가 싶었는데 물살이 빨라 배는 어느새 대안에 닿았다. 다섯 사람은 훌쩍 언덕으로 뛰어올라 발걸음을 다그쳐 석량동 어귀로 걸어갔다. 석량동 어귀에는 사람 하나 얼씬대지 않았다. 아마도 모두 동굴 안에 들어가 있는 모양이었다. 다섯 사나이는 약속이나 한 듯 다짜고짜 동굴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제 사람들은 모두 놀라 두 눈이 휘둥그래진 채 손 하나 까딱 못하고 앉아 있었다. 대환희 보살은 징글맞게 웃음을 흘리며 사람들을 쭉 휘둘러보았다. "내막인즉슨 이렇소. 좀 전에 대접한 두 가지 음식에 독약을 넣은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 사내애들의 고기엔 독기를 풀어 없애는 약을 넣었단 말이오. 그러니 이 고기만 먹으면 즉시 해독이 될 수 있지만 기어코 먹지 않는 날에는 저 영감태기처럼 꼼짝못하고 황천객객이 될 터이니 그리 알아 두시오." 사람들은 그제야 대환희 보살의 간계와 모략에 걸려들었음을 깨닫고 속을 바짝바짝 태웠다. 실로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었다. 차마 불쌍한 아이들의 고기는 먹을 수 없고 그렇다고 먹지 않자니 해독할 방책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앞에 놓인 사내아이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살겠다고 부득부득 불쌍한 어린애들의 고기를 먹는다면 한평생 악명을 짊어지고 살게 될 게 아닌가. 대환희 보살은 연해 미친 듯이 웃어대면서 지껄였다. "아무튼 당신들은 내가 쳐 놓은 올가미에 스스로 걸려들었단 말이오. 엎드린 바에 절한다고 어서들 사내애들 고기나 먹고 나와 함께 단지흥이나 처치하러 가자구요.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죽는 길밖에 없어요!" 좌중은 비로소 대환희 보살이 선심이나 베풀 듯 자신들을 청해들인 까닭을 짐작하고는 후회막급으로 혀를 차는 것이었다. 개중 한 사내가 유난히 눈동자를 굴리며 전후좌우를 흘끔거렸다. 가슴이 심하게 두방망이질쳐댔다. '내가 자청해서 사람 고기를 먹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저 보살의 핍박에 못 이겨 먹은 것이니 후일 누가 따지고 들어도 변명거리는 있다. 이렇게 두 눈 뻔히 뜨고 독살당할 수는 없어. 에라 모르겠다, 목숨부터 살리고 보자. 사람 고기든 뭐든 가릴 것 없다!' 그 사내는 마침내 작심을 하고 대환희 보살을 건너다보며 부르짖었다. "좋아, 내가 먹겠소. 이 고기를 먹어도 독기가 풀리지 않을 시에는 내 당신하고 사생결단을 할 테야!" 대환희 보살은 넙죽 웃으며 말을 받았다 "해독이 되고말고! 이 사막 옥수님을 보란 말예요." 사막 옥수는 원래는 자기도 중독되었는데 사내애 살점을 뜯어먹어 이미 해독된 것이구나 하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마침내 그 사람은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기 한 점을 덥석 잡아 뜯어 얼른 입 안에 처넣고는 소리를 쳤다. "내가 사람 고기를 먹는다, 사람이 사람 고기를 먹어!" 그러더니 실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기를 씹을수록 맛이 나서 그러는지, 아니면 정신이 빠져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한 사람이 먹고 나자 사람들은 쭈뼛쭈뼛거리며 제가끔 한움큼씩 사내애의 살점을 뜯으면서 소리쳤다. "젠장, 내가 먹겠다는데 누가 뭐라는가?" 하지만 일단 맛을 보자마자 모두들 혀를 날름거리며 아귀아귀 잘도 먹어댔다. 미상불 악마들의 대잔치였다. 단지흥 일행은 급급히 굴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다섯 사람은 굴 안의 광경을 본 순간 그만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굴 안에서는 실로 하늘이 울고 땅이 울 참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 고기를, 그것도 애어린 젖먹이의 고기를 미친 듯이 뜯어먹고 있지 않은가. 실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제 것을 다 먹고 나니 눈알을 부라리며 남의 것까지 빼앗아 먹으니 다섯 사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오싹오싹 소름이 돋았다. 단지흥은 노기가 하늘을 찔러 내공을 실어 벽력같이 소리를 내질렀다. 바다가 뒤 집어지고 산악이 무너지는 듯한 고함소리가 굴 안을 뒤흔들었다. 제가 먼저 살겠다고 설치고 날뛰던 사람들은 고막이 찢어지듯 한 통증이 엄습하여 일제히 화석처럼 굳어졌다. "너희들은 대관절 사람이냐 귀신이냐?" 사람들은 일제히 단지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단지흥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금세 얼굴이 벌게져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내 하나가 대뜸 소리쳤다. "네 놈은 대체 누구냐? 누군데 감히 끼여들어 우리 일을 간섭하는가?" 단지흥은 정색을 하며 엄하게 대갈일성을 내질렀다. "우리 모두 부모님의 피를 물려받고 천지의 영묘한 기운을 타고난 인간이오! 그런즉 사람이 어찌 사람을 먹을 수가 있겠소? 실로 환장을 하지 않고서야……." "속 모르는 소리 작작 하시오! 그래야 목숨을 건진다는데 무슨 수로 안 먹겠소? 더 이상 참견하지 마요!" 누군가 볼멘소리로 톡 내질렀다. 단지흥은 불꽃이 뚝뚝 떨어질 듯한 눈길로 대환희 보살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대환희 보살, 내 일찍이 네 년이 이렇게 지독한 줄은 미처 몰랐다! 내 오늘 일만은 결코 좌시할 수 없노라! 단단히 죗값을 치르게 해 주리라." 대환희 보살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빈정거렸다. "단황 나으리, 왜 나만 갖고 그러시오? 이거야 정말 억울해서 어찌 살겠소? 나으리도 일국의 임금이니까 법이야 알겠지요. 그래, 나 혼자 먹은 것도 아니요, 여기 앉아 있는 서른다섯 사람이 다 먹었는데 왜 나만 들볶느냔 말이에요? 그리고 다들 먹겠다고 설치는 걸 낸들 무슨 수로 막아요. 사람을 잡아가려면 나 하나만 잡아갈 게 아니라 여기 앉아 있는 무림 호걸남아들을 다 잡아가시라구요. 나 원, 별꼴 다 보겠네……." 선비가 듣다 못해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죄를 지었으면 달갑게 벌을 받아야 하거늘…… 무엄하도다! 당신들을 몽땅 다 잡아가도 무슨 할말이 있는가!" 그러나 대환희 보살은 여전히 득의만면하여 쏘아붙였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하랬다고 대리 사람들이 속에 묻어두고 감히 꺼내지 못하는 말을 내가 대신 해 주지요. 당신들은 황족입네 하고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무림 호걸들을 잡아 넣었지요? 무림 호걸들을 다 잡아 넣고 이 대리 땅에서 독판을 치려는 게 바로 당신들 꿍꿍이라는 걸 알고도 남음이 있단 말예요!" "뭣이?" 선비는 발끈하며 대번에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대환희 보살은 선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단지흥을 똑바로 쏘아보며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