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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4[남제단지홍편] - 42편 (42/70)

2026-09-30 18:24:37 조회 16
어떻게 하면 저 여인을 구해 줄 수 있단 말인가?' 단지흥은 우두커니 선 채 오래도록 말을 못 이었다. 그는 곰곰 생각을 굴리다가 언뜻 묘안을 하나 떠올렸다. 그리하여 정색을 하고는 지체 없이 선우순에게 말을 던졌다. "이보시오, 당신은 아까 이 여인이 말한 대로 사형을 해치고 장문인 자리를 갈취한 게 아니오? 그래서 입막음을 하려고 이 여인을 이렇듯 결사적으로 죽이려 하는 게 아니오?" 그야말로 정곡을 찌른 질문이라 선우순은 대번에 낯색이 벌게지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아냐, 아니야! 그건 순 거짓말이야, 거짓말!" 선우순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화산파 제자들 사이에서 또다시 술렁거림이 일었다. 단지흥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번에는 등아 쪽을 바라보았다. "등아, 저 영감이 저토록 아니라고 하는데도 당신은 왜 이곳에 와서 부러 사단을 만드는 게요? 당신들 말을 백분 받아들인다 해도 당신들 향녀들과 원수진 일이 있는 사람은 저기 있는 저 곽명송 뿐이오. 당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내 모르는 바 아니오. 그러나 당신들이 무림의 계율을 어겨 가면서까지 남의 문파 내부 일에 참섭하려 들다가는 당신들이 일평생 원으로 삼는 사내들에게 복수하는 그 일을 끝끝내 하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된다는 걸 정녕 모른단 말이오? 등아는 아무 대꾸도 없이 천천히 눈꺼풀을 치켜 올리고는 그윽이 단지흥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단지흥이 자기를 구해 주려고 일부러 저런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향녀들의 일을 애석해하며 끝내 그 일을 포기하도록 극구 자기를 설득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은 역으로 그 일을 근거로 들이대며 자기를 설득하고 있다. 자기를 구해 주려고 그의 주장마저 순순히 꺾어 버리는 그의 위인됨에 탄복해 등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등아는 선우순의 검을 가볍게 밀어내 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뚫어지게 단지흥을 바라보았다. "맞아요! 당신 말이 맞아요! 이까짓 화산파 때문에 우리 일을 망칠 수야 없지요. 찰나 이 사람들은 우리의 비밀을 알고 말았어요. 그것도 당신 때문에! 지금 우리는 화산파 내부 일에 간섭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비밀이 더 이상 퍼지지 않게 하려고 이들과 싸우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 스스로 그것 때문에 화산파를 멸했다고 강호에 떠벌리고 다닐 수도 없는 터, 그렇게 되면 남의 문파 일에 참섭했다고 오명을 뒤집어써야 할 것인즉, 화산파 사람들이 우리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더는 화산파 일을 입 밖에 꺼내지 않겠어요." 등아가 거기까지 말하자 선우순은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화산파 제자들은 여전히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만 한 사람, 곽명송만은 자기 때문에 자기 문파에 오늘과 같은 사단이 빚어졌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푹 떨군 채 자책하고 있었다. 등아는 경멸 어린 눈길로 선우순을 쏘아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앞으로 우리의 비밀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우리 귀에 들어오는 날에는, 우리 향녀들은 결코 사정을 안 둘 것이에요. 또한 저기 저 곽명송만은 우리와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았은즉, 내 필히 훗날을 기약하겠어요. 그땐, 오늘처럼 이렇게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테니 명심해 두세요!" 단지흥은 애잔한 눈길로 등아를 바라보았다. 등아 역시 말을 마치고 그윽이 그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눈길을 마주한 채 잠시 서 있었다. 이윽고 단지흥이 선우순에게 눈길을 돌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어떻소? 길을 터주시겠소?" 선우순은 희색이 만면하여 대뜸 말을 받았다. "저 여인의 말이 모두 거짓말인 이상, 내 더는 이 향녀들을 막을 까닭이 없소!" 그러자 등아는 바웃음을 날리며 향녀들에게 외쳤다. "자, 가자!" 그리고는 단지흥을 쳐다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향녀들도 일제히 검을 품에 넣고는 그녀 뒤를 따랐다. 그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단지흥은 적이 안도하면서도 뭐라 이름할 수 없는 비애를 느꼈다. 나무꾼과 어부는 화산 근처를 이 잡듯이 뒤지며 단지흥을 찾아 쏘다니다가 운수 사납게도 대환희 보살, 구양봉 무리와 마주쳤다.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들을 찾아 헤매 다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들은 내처 단지흥을 뒤쫓기는 뭣해 화산 객점에서 며칠 피로를 풀고는 이제 막 길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대환희 보살은 그들을 보자마자 활짝 웃으면서 반색을 했다. 나무꾼과 어부는 내심 경계심을 가지며 병장기를 움켜쥐었다. "아유, 잘 만났어요, 잘 만났어! 내 꼭 전할 말이 있었는데. 당신네 단황 나으리는 이젠 끝장났는데 알고 계시우? 당신들 두 시위들은 그래 그분 시체를 아직 보지 못했수?" 어부와 나무꾼은 단박에 대경실색하며 재우쳐 물었다. "뭐라구요? 다시 한 번 말해 보시오!" 그들이 사뭇 초조해 하자 대환희 보살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그들은 단지흥의 신변을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글쎄 당신네 단황 나으리는 화산 위에서 왕중양과 일전을 치렀다고 하더군요. 그분은 일양지공을 쓰고 왕중양은 선천공을 썼는데 그만…… 에그 참……." 대환희 보살은 말을 뚝 끊고는 정말 안됐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부와 나무꾼은 대번에 샘솟듯 눈물을 쏟아 냈다. 그리고는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엔 자못 결연한 빛이 감돌았다. 황제를 잘 보필하지 못했으니 이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으랴! 그들은 몸은 둘이나 생각은 한가지로 너나할 것없이 단지흥의 시체를 찾기만 하면 일단 대리로 옮기고 나서는 그 당장 죽기로 단단히 작심을 했다. "그분은…… 지금 어디 있소?" 어부가 눈물을 훔치며 간신히 물었다. 그러나 대환희 보살은 대답을 늦잡으며 딴청을 피웠다. "이분은 서독 구양봉 장주님이세요. 이번 화산 무예 시합에서 참가자들은 각자 순서를 정했대요. 듣자니 중양 진인이 첫자리이고 그 다음으로는 서독, 남제, 동사, 북개 이런 순이었다는데……. 단황 나으리한테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이번 화산 모임이 얼마나 원만했겠나요?" 구양봉은 괜스레 하늘을 올려다봤다가 땅을 내려다봤다가 눈을 슴벅거리며 능청을 떨고 있었다. 나무꾼은 온 얼굴이 눈물 범벅이 되어 흐느끼며 울먹거렸다. "수, 수고스럽지만 보살께서 알고 계시다면 우리 화, 황제 폐하가 어디 계시는지 좀 알려 주시오." 그러자 대환희 보살은 얼핏 장탄식을 했다. "아마도 아직 화산 부근에 있다지요? 직접 한번 가 보세요! 그곳에 가기만 하면 찾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닐 게고……." 그러자 나무꾼과 어부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허리를 굽실 꺾고는 급히 떠나갔다. 두 사람이 까마득히 멀어지자 대환희 보살은 참았던 웃음을 한꺼번에 터뜨리며 배꼽을 잡았다. "구양 장주님, 어때요? 나의 이 꾀가?" "그런 것도 무슨 꾀라고 할 수 있나? 그저 잠시 성가신 놈들을 떼어놨다뿐이지. 아니, 그렇지도 않을걸? 저 놈들은 분명 다시 올 게야. 당신이 한 말이 믿어지지 않아 득달같이 달려와 꼬치꼬치 캐물을 거라구." "을 테면 오라지요. 그러자면 시간이 더욱 지체될 거 아니에요? 이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임금과 신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는 거예요." 구양봉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어찌 됐든 단가는 운수 사납게 됐어. 어느 놈이건 이 서독과 맞서면 운수가 사나워지게 마련이야!" 한 식경도 더 지났는데 아니나다를까 저쪽에서 나무꾼이 헐레헐레 뛰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구양봉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쏜살같이 달려더니 이번에는 구양봉을 붙잡고 물고늘어졌다. "구양 장주님, 당신도 화산 꼭대기에 올라 우리 황제 폐하와 함께 왕중양과 무예 시합을 하셨다고 했지요? 그러니 당신은 정확히 알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쉽사리 돌아가실 분이 아니십니다. 당신은 우리 황제 폐하의 행방을 모르십니까?" "당신들의 황제는 죽었어. 죽었다는데 왜 자꾸 시끄럽게 구는 거야!" 구양봉은 대뜸 윽박질렀다. 그러자 어부가 큰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구양봉, 똑똑히 대란 말이오. 그러잖으면 우린 가만히 있지 않겠소." "가만히 있지 않으면? 그럼, 네 녀석들 둘이 함께 덤벼들기라도 하겠다는 게냐?" 구양봉은 대뜸 사장을 집어 들었다. 어부와 나무꾼은 기실 아까 대환희 보살이 구양봉한테 자꾸 눈짓을 보내는 것이 못내 께름했었다. 뿐더러 구양봉의 기색도 영 미심쩍었었다. 하나 하도 경황이 없어서 깊이 생각해 볼 것 없이 일단 뛰쳐갔으나 가면서 생각해 보니 아무리 해도 이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필 구양봉은 죽지 않고 왜 단지흥만 잘못되었단 말인가? 구양봉이 꿍꿍이를 꾸며 황제 폐하를 해친 것은 아닐까……. 두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라 다시 돌아가 구양봉에게 따져 묻기로 작심하고 이렇게 되돌아온 것이었다. "네 놈들 황제는 귀신 만나러 갔으니까 너희들 두 놈도 따라서 귀신이나 보러 가거라. 가서 너네 황제한테 직접 물어 봐!" 구양봉은 말을 마치자마자 있는 힘껏 사장을 휘둘렀다. 그의 사장은 매섭기 그지 없었다. 두 사람은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었다. 그들 두 사람도 일양지 초수를 알고 있긴 했지만 허투루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양지 초수는 꼭 내력으로 해야 하는 것인즉, 만일 그 초수를 써서도 구양봉을 제압하지 못하게 되면 두 사람은 목숨을 건지기조차 어렵게 된다. 어부는 잽싸게 사장을 피하면서 낚싯줄을 휘둘렀다. 낚싯줄이 공중에서 윙윙 소리를 내며 구양봉 쪽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구양봉은 눈 하나 깜짝 않고 가뿐히 낚싯줄을 쳐냈다. 나무꾼은 나무꾼대로 도끼를 내리찍어댔다. 그러나 한 순간 도끼날이 구양봉의 사장에 부딪혀 쨍 소리를 내며 힘없이 밑으로 수그러 들었다. 그 바람에 나무꾼은 하마터면 도끼를 놓칠 뻔했다. 그는 깜짝 놀라 더는 도끼로 구양봉의 사장을 막을 엄두도 못 내고 연거푸 뒤로 물러났다. 어부의 낚싯줄이 때마침 날아들지 않았더라면 나무꾼은 오늘이 제삿날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어부, 나무꾼, 황제가 이미 죽었는데 시위가 다 무슨 쓸모가 있겠요? 당신들은 차라리 구양 장주님을 따라 저분의 수하가 되세요. 그러면 팔자를 고칠 수 있어요." 보살이 깝죽깝죽 끼여들었다. 그러자 어부와 나무꾼은 대로하여 대갈일성을 내질렀다. "네 년 말대로 황제 폐하께서 정말로 돌아가셨다면 나도 폐하를 배동하여 황천으로 갈 테다. 하나 황천에 가더라도 네 년은 꼭 끌고 갈 테니 잠자코 기다리고 있어!" 구양봉은 사장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점점 더 힘이 붙었다. 그러나 나무꾼과 어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기진맥진하여 낚싯줄과 도끼를 들고 있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이번엔 황제 폐하를 찾지도 못하고 저 놈의 사장에 목숨을 잃고 마는구나. 실로 애석한 노릇이다.' 그들 두 사람은 여전히 함성을 지르고 있었으나 이젠 죽음이 눈앞에 닥쳐 있음을 직감하고 결연히 의지를 다졌다. "그 낚싯줄을 집어 던졌!" 구양봉은 벽력같이 소리를 내지르고는 사장으로 어부의 손을 후려갈겼다가는 이내 그의 낚싯줄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또다시 그의 손을 내리찍고 연거푸 그의 등짝을 갈겼다. 어부는 땅에 털썩 꼬꾸라졌다. 나무꾼은 그 모습을 보고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어부, 함께 가세. 나도 자네와 함께 저 노독물의 손에 깨끗이 죽어 버리겠네. 그러면 적어도 오명은 남기지 않지!" 나무꾼은 도끼를 내던지고는 손을 축 늘어뜨렸다. 구양봉은 대환희 보살에게 두 사람을 묶으라고 소리를 쳤다. 이 두 사람을 끌고 곧장 대리로 짓쳐 들어가 단지흥과 대면할 작정이었다. 두 사람은 결박당한 채 자기들 처지는 아랑곳 없이 행여 황제가 죽었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며 침통하게 그들에게 끌려갔다. 그런데 길을 가면서 구양봉과 대환희 보살은 어떤 계책으로 단지흥을 꼬여 낼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그 얘기를 듣고는 방심하여 이들의 계략에 휘말려든 것이 자못 한심스러우면서도 마치 죽은 황제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기뻐했다. '황제 폐하만 무사하시다면 우린 죽어도 여한이 없다.' 대환희 보살의 수하 여인들은 이만저만 치밀한 게 아니었다. 그녀들은 늘 척후를 미리 내보내 정황을 탐지했다. 사흘쯤 지났을 때 앞서 간 척후병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단지흥 일행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 왔다. 그 일행에는 선비, 농부 그리고 전진교의 주백통이 끼여 있다고 했다. "좋아, 그자들을 찾아내 한번 멋지게 붙어 보자!" 구양봉은 자못 흡족해서 외쳐댔다. 구양봉 일행은 단지흥 일행을 바싹 뒤쫓아갔다. 저녁때가 되면 구양봉 일행은 노숙을 했다. 구양봉은 매일 밤 그 조그마한 치주를 안고 잠을 잤다. 하룻밤도 거르지 않고 그는 치주를 데리고 갖은 음탕한 짓을 했으며 숨막히도록 그녀를 괴롭혔다. 하나 일행이 단지흥을 추격한다는 소리를 듣고 치주는 일심으로 그를 만날 생각을 하면서 그 고통을 참아 냈다. '살아서 폐하를 볼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으련만. 제발 폐하를 한 번만이라도 만나 보고 죽었으면…….' 척후로부터 단지흥 일행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진다는 소식이 전해 올 때마다 치주의 심장은 마치 밖으로 튀어 나갈 것마냥 세차게 뛰었다. 이레 되던 날 구양봉 일행은 드디어 단지흥 일행을 따라잡았다. 그들은 더러는 말을 타고 더러는 걸으면서 느릿느릿 나아가고 있었다. 주백통은 뭐라고 뭐라고 끊임없이 지껄여대고 단지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품이 적이 한가해 보였다. 구양봉은 일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와 하고 함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천지가 진동하고 수림이 몸부림을 쳤다. 단지흥은 그 소리에 흠칫 놀라 홱 고개를 돌렸다. "누가 따라오고 있군. 자, 멈춰 서서 기다려 보세." 단지흥은 천연덕스럽게 한마디했다. 일행은 멈춰 섰다. 구양봉은 그들 코앞까지 내처 달려왔다. "단황 나으리, 우린 작별한 지 며칠밖에 안 되는데 당신 생각이 몹시 나더란 말야. 그래서 일부러 물어 물어 이렇게 뒤따라왔네." 그러자 주백통이 두 눈이 휘둥그래져서 물었다. "당신들도 대리로 가는 길이우?" "그렇다! 난 대리 단황 나으리의 무예를 흠모한 지 오래이다. 이번에 대리에 가서 단씨 가문의 일양지공을 한번 배워 볼 작정이지! 단황 나으리께서 사심 없이 가르쳐 주길 바라오." 이윽고 대환희 보살과 뚱뚱보 여인들도 당도했다. 그 속에 치주도 끼여 있었다. 그녀는 단지흥을 발견하자 급히 뚱뚱보 여인 뒤로 몸을 숨기며 숨을 죽였다. 어부와 나무꾼은 단지흥이 정말로 무사한 것을 보자 희색이 만면해지지며 대뜸 소리쳤다. "폐하, 이자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믿지 마십시오." 그러자 구양봉이 음충맞게 웃으며 얼른 끼여들었다. "내가 너희들을 끌고 왔기 때문에 너희들은 단황 나으리를 만나볼 수 있게 된 게야." 단지흥은 나무꾼과 어부가 결박당한 것을 보고는 낯색을 굳히며 엄하게 외쳤다. "구양 장주, 우리 둘 사이엔 아무런 원수진 일도 없으니 나의 그 두 형제를 당장 놓아주시오!" "그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 단황께서 나한테 일양지공을 배워 주기만 한다면 어디 이 두 사람을 놓아준다뿐이겠소!" 구양봉은 능청을 떨었다. "허튼소리 마우. 난 단황 나으리께 이미 물어 보았수. 단씨네 일양지공은 종래로 남한테는 전수해 주지 않는 거우. 당신은 단황 나으리의 아들도 아닌데 어찌 일양지공을 배울 수 있겠수?" 주백통이 불쑥 끼여들었다. "단황 나으리, 난 대리로 가서 당신을 찾으려고 천릿길도 마다 않고 이렇게 달려온 것이오! 아직 대리 땅에 당도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생각만은 분명하오. 당신의 일양지공이 무섭긴 하나 나의 합마공도 썩 괜찮은 것이오. 당신이 나한테 일양지공을 가르쳐 주고 내가 당신한테 합마공을 가르쳐 주면 피차 손해볼 게 없지 않소?" "안 되오. 대리 단씨의 일양지는 단씨 가문의 가학인데 내 어찌 당신한테 가르쳐 줄 수 있겠소? 단씨 가문의 자손들은 다른 성씨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걸 전수해 주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가 있소." "그따위 속임수로 사람을 속이려 들지 마시오. 당신은 단씨가 아닌 사람들한테는 전수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당신의 네 시위는 모두 일양지공을 알고 있지 않소? 더욱이 당신의 일양지공이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무슨 금기 같은 걸 정해둔 게요? 내가 합마공을 쓰지 않고 사장으로 공격하기만 해도 식은죽 먹기로 격파할 수 있을 텐데." "네 시위는 대리국의 신하로서 기실 우리 집안사람이나 진배없소. 이 네 집안은 세세대대로 우리 단씨 집안과 형제지간이었소. 당신은 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단씨 집안과 형제의 도리를 다할 수 있소?" 그러자 구양봉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하필 단씨 집안과 왜 형제가 돼? 난 다만 이 사장을 저 사람들 머리에 살짝 올려 놓으려 할 따름이오. 대답하기 싫으면 관두시오! 난 나대로 내 방도대로 하면 되니까!" "노독물, 당신은 허튼수작 당장 집어치워! 남이 당신한테 일양지공을 배워 주지 않겠다면 알아서 물러나야 할 게 아니야?" 주백통이 붉으락푸르락해서는 외쳐댔다. "구양 장주, 손을 떼란 말이오. 화산 꼭대기에서 우린 서로 맞붙어 보지 못했었소. 오늘 내가 당신과 싸워 지게 되면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하겠소. 그러니 내 형제들을 놔주오. 그런데 당신이 지면 어떻게 할 테요?" 단지흥이 다그치자 구양봉은 오만불손하게 큰소리를 쳤다. "좋아, 좋아. 내가 지게 되면 다신 당신과 엇서지 않지!" 두 사람은 넉 장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화산 꼭대기에서 남북동서는 중신통과 《구음진경》을 쟁탈했지만 남북동서 간에는 서로 전심전력으로 겨루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서독과 남제는 어부와 나무꾼, 두 사람의 목숨을 걸고 생사박투를 해야 했다. 구양봉은 독사장을 손에 들고 흉맹스럽게 자세를 취했다. 보기드문 초식인 파화요천(把火燎天) 초수를 쓰려는 것이었다. 그는 불타는 눈초리로 남제를 쏘아보았다. 흡사 한 마리 솔개 같았다. 그러나 남제는 그처럼 허장성세는 부리지 않고 그저 평온하게 서 있었다. 그는 조용하게 지켜 보면서 구양봉이 초수를 쓰기만을 기다렸다. 두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고 한동안 서로 응시하기만 했다. 제23장 안타까운 사랑 단지흥과 구양봉은 한참이나 서로 노려보고만 있었다. 단지흥은 구양봉을 마주한 채로 지난 화산 쟁투와 향녀 등아에 대한 상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화산에서 나는 겨우 한 차례 손을 써 봤을 뿐이었다. 형편없는 일이야. 등아는 마지막으로 떠나가면서 내가 미워 돌아보지도 않았었다. 언젠가 그녀의 시녀는 등아가 날 각별히 사랑했다고 했는데……. 그네들 규례대로라면 향녀는 사내와 정을 통하면 가차없이 그 사내를 죽여 버려야 한다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녀가 날 살려 둔 걸 보면 내게 정을 둔 것이 분명해……. 지금은 구양봉과 맞서 나무꾼과 어부 두 사람을 구해 내야 한다. 며칠 안 되는 사이에 이토록 수많 은 일을 겪게 되다니…….' 두 사람은 아직도 붙박힌 듯 서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일단 겨루게 되면 바위가 부서져 나가고 천지가 진동하게 될 터이다. 일순 구양봉이 징그럽게 웃음을 날렸다. "내가 당신을 찾아온 건 별게 아니라니까. 당신의 일양지공이 그리도 뛰어난 무학이라니 그저 한수 배워 보자는 것이지. 그런데 그걸 가르쳐 줄 생각이 없다니 당신 시위들은 곧 숨통이 끊기게 되겠군." "허허, 내 형제들을 구해 내는 것이야 식은죽 먹기지. 만의 하나 형제들이 당신 손에 죽게 된다면 내 즉시 출가하여 중이 되리다. 더는 황제 노릇을 하지 않겠단 말이오!" 단지흥도 웃음을 머금고 여유 있게 받았다. "좋소, 내가 대리 황제를 없애 버리면 무림에 큰 공덕을 쌓는 셈이지!" 구양봉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사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 싸움은 여느 싸움과는 달랐다. 구양봉은 사장을 세차게 휘두르는 반면 단지흥은 맨손으로 그저 손가락이나 까딱이며 대적하는 형상이었다. "단황 나으리, 당신은 황제 노릇은 잘하는지 어떤지 몰라도 확실히 강호 사람으로서는 호수가 아니군. 강호에서 한 가닥 해먹으려면 사람은 좀 악한 구석이 있어야 해. 당신은 줄곧 선한 척만 하는데 내 오늘 당신의 진면목을 확 벗겨 놓지!" 말은 천연덕스레 하고 있었지만 구양봉은 번개같이 사장을 휘두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서히 뒤엉키기 시작했다. 구양봉의 사장은 단지흥의 머리 위로 빗발 치듯 날아들었다. 하나 단지흥은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사장이 날아들 때마다 손가락을 내밀어 물리쳤다. 처음에는 구양봉이 우세를 점하는 듯했으나 초식을 더할수록 그는 단지흥의 지풍을 막아내는 데만 급급했다. 일단 그 지풍에 명중되기만 하면 그 자리는 눈깜짝할 사이에 잔폐가 되고 말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