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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3[북개홍칠공편] - 41편 (41/66)

2026-09-29 07:55:13 조회 28
그러자 봉고가 더욱 집요하게 매달렸다. "그게 무슨 말이죠? 인간이 일단 정을 가슴에서 씻어내면 사내나 여인이나 같아진다는 것을 모르시나 보죠. 당신이 대나무 침상에서 주무시면 춥기도 하니 어서......" 노완동은 문득 그녀의 눈빛에서 묘한 감정을 엿보았다. 혹시 자신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당신이 만일 감기라도 들면 제가 약을 구해다 드려야 해요. 그게 오히려 힘이 든다고요. 그러니 어서 저와 함께 침상으로." 노완동은 그녀의 침상으로 가 누웠다. 이불 안이 포근했다. 노완동은 될 수 있으면 봉고 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요. 어서 쉬세요." 하며 봉고가 다가오더니 침상에 걸터 앉았다. 그녀는 다리를 끌어안은 자세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위태롭게 노완동 옆에 앉게 되었다. 노완동은 눈을 떠 그녀를 보지 않으려고 내심 애를 썼지만 어려웠다. 할 수 없이 눈을 떠 봉고를 찾았다. 그런데 봉고의 두 다리와 작은 발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아주 예쁘고 작은 발이었다. 언제나 신을 신지 않고 그대로 다녔으면 하는 엉뚱한 바램마저 노완동은 했다. 자신의 발을 바라보고 있는 노완동을 눈치 챈 봉고가 등을 보이며 누웠다. 잠시후 봉고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제가 죽인 사내도 제 발을 보기를 좋아했어요. 밤이면 그 이는 저의 두 발을 끌어안고 잠자기를 원하기도 했어요. 당신은 어떤가요?" 노완동의 가슴은 벌써 설레이고 있는 중이었다. 영고와 함께 대리에서 보낸 시간이 눈앞으로 짧게 스치며 감미로운 느낌과 씁쓸함을 번갈아 남겨놓았다. 노완동은 자신의 몸이 몹시 경직된 채 떨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러더니 곧 심한 동통이 온몸에서 일기 시작했다. 정화의 독이 퍼지는 것은 아닌지 노완동은 불길한 예감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노완동이 주체할 수 없이 몸을 떨자 봉고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이러시면 절정곡에서 살 수가 없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리고 제가 가만두지 않겠다고......" 이 말에 노완동은 입술마저 바르르 떨며 대꾸했다. "당신은 그럼 결국 나를 죽이려는 생각이지? 그래서 정화를 억지로 먹이고......" 갑자기 봉고의 웃음소리에 싸늘한 기운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동통이 더 넓게 번져갔다. "호호, 당신이야말로 사랑하는 여인을 해친 사내가 아니던가요?" 노완동은 봉고가 사내를 죽이고 나서 모든 사내들을 미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그렇다면 봉고는 이곳 계곡으로 들어오면서 과연 검으로 누구를 찔렀는지 궁금했다. 당현종을 찌르지 않고 양귀비를 찔렀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여간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온몸의 동통이 더욱 심해졌다. 아무래도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을 거란 불길한 생각 때문에 오금조차 제대로 펴지 못했다. 얼른 위기를 모면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왜 사랑하는 여인을 죽이겠나?" 바삐 도망쳐오느라 사실 그럴 겨를도 없었다. 봉고의 웃음소리가 다시 등 뒤에서 들려왔다. "당신은 절 죽이면 되는 거예요. 전 이미 한 사내를 죽인 몸이잖아요. 당신 말대로 전 억지로 정화를 먹였어요. 그러니 제가 밉거든 어서 죽이세요." 대답을 못하고 가만히 있자 봉고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곤 이불을 홱 젖히고는 자기의 아래 내의를 벗었다. 그녀는 희고 미끈한 다리를 드러내며 노완동에게 속삭였다. "절 죽이지 못한다면 제 다리를 어루만져주세요." 봉고를 바라보던 노완동이 눈을 얼른 감으며 소리쳤다. "아니 안돼!" 봉고가 천천히 자세를 고쳐 앉더니 곧 노완동 곁으로 바싹 다가왔다. "그럼 제가 당신 곁에 눕겠어요. 만일 절 원하신다면 안아주세요." 더욱 경직돼가는 자신의 몸을 움찔하며 노완동이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어느새 봉고가 부드러운 팔로 안아오며 옆으로 눕는 것이었다. "제가 사내를 어떤 방법으로죽였는지 아세요? 그 사람이 잠을 자는 틈에 손가락으로 혈도를 찔렀지요. 모두 여섯 군데를 찔렀는데 그 사람은 꼼짝을 하지 못하더군요. 저는 곧 한칼한칼 정성을 다하듯 칼질을 했어요. 그 사람은 아파서 고통스러워 했어요. 그럴수록 피는 더욱 힘차게 뿜어졌고...... 나중에는 제게 욕을 퍼붓더군요. 그러나 그럴수록 전 칼질을 멈추지 않았어요. 아니 더 잔인하게 그 사람을 썰었지요. 결국 그 사람은 고통을 이기지 못한 채 눈을 부릅뜨 고는 죽고 말았어요."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봉고는 무감각한 어조로 말했다. 천연덕스러운 그녀의 태도에 노완동은 질겁을 했다. "전 사내를 미워해요. 이 세상의 사내를 모두 죽여버리는 게 제 소원이지요." 노완동은 손가락조차 움직이지 못하고 굳어져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봉고의 숨소리를 헤아려보니 이상했다. 그녀는 노완동을 안은 채 잠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방안에는 등잔불이 몸을 세우고는 소리없이 타고 있었다. 잠이 든 봉고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노완동은 자신이 대리로부터 이곳까지 오게 된 일을 더듬기 시작했다. 꿈결을 걷고 있는 듯 야릇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여인 봉고. 노완동은 이처럼 달콤하게 잠을 잘 수 있는 여인에게서 놀라움을 금할 길 없었다. 그는 누운 채로 꼼짝도 않고 날을 밝혔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뜬 봉고는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노완동을 발견했다. 순간 봉고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호호호!" 노완동은 밤새 한잠도 못자고 봉고를 경계하느냐 눈알이 뻘겋게 충혈돼 있는 것이었다. "당신같은 사내가 왜 이 절정곡에는 왔는지 모르겠네요. 당신이 아무리 재간이 뛰어나다고 해도 열흘이나 보름 후에는 죽고 말 거예요. 그러니 아무도 몰래 이곳을 떠나세요." 아무런 대꾸조차 할 수 없는 노완동은 그저 봉고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봉고가 손을 내밀어 노완동의 볼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정을 그리워 하는 기색으로 노완동에게 눈길을 보냈다. '어쩌면 정화의 독도 이 여인만은 정복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국 의지가 흔들렸던 나만이 당한다는 말인가!' 이런 생각 때문인지 잠시 잊었던 동통이 시작되었다. 어느새 몸에서 식은 땀이 배어나오고 손바닥이 흠뻑 젖었다. "당신은 밤새 주무시지 않고 저만 지켜보았겠죠?" 노완동은 또 대답하지 않았다. 밤새 겪은 고초를 생각하니 치가 떨려왔다. 그녀가 다시 웃음을 토했다. "호호, 이 절정곡은 아주 조용한 곳이예요. 세속의 모든 소리들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지요. 앞으론 편히 주무세요. 아무도 당신을 방해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러면서 봉고가 손끝으로 노완동의 볼을 가볍게 쳤다. '여인이란 우환만을 몰고 오는......' 노완동은 속으로 입버릇같은 그말만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침상에서 내려선 봉고가 엷은 적삼자락을 휘날리며 한쪽으로 걸어갔다. 길게 풀어헤친 머리를 보던 노완동은 갑자기 가슴에서 이는 동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픔 ㄸ문에 신음까지 새어나왔다. "음...... 물러가. 어서 물러가란 말이야! 난 잠을 좀 자야겠소!" 그러나 다시 침상으로 온 봉고가 단호한 얼굴로 꾸짖었다. "당신은 더 주무실 수 없어요. 지금은 아침이예요. 밤에 자고 나서도 또 자다간 병이 나요. 일어나서 저와 함께 정화꽃을 먹어요." 변덕을 부린 그녀는 곧 맨발인 상태로 쟁반을 들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또 왜 저러는걸까 노완동은 속으로 팽팽하게 자리하는 긴장을 맛보았다. 정화는 아침이슬을 촉촉하게 온몸에 바른 채 안으로 들어왔다. 쟁반을 내려놓으며 봉고가 입을 열었다. "전 이곳에 온 날부터 이 정화를 먹기 시작했어요. 사내들이란 모두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예요." 결국 봉고는 정화의 독에 중독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독도 인체에 한번 인을 박고나면 내성이 생겨 다시 독을 부르게 되는 법이었다. 그래서 계속 독을 먹지 않으면 오히려 견디지 못하고 탈이 나게 되는 것이었다. 노완동은 이슬을 촉촉하게 머금은 정화꽃을 모두 먹어치우는 봉고를 보며 속으로 다시 한 번 두려움에 떨었다. "이슬이 묻은 아침 정화는 낮이나 저녁과는 다른 맛과 향기를 줘요. 한번 드셔보시지 않겠어요?" "싫어! 어서 물러가란 말이요!" 노완동은 몹시 피곤해서 어서 잠을 자고 싶을 따름이었다. 지금처럼 피곤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노완동이 느끼는 고통은 심했다. 귀속에서는 날벌레라도 들어가 있는지 계속 윙-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가슴은 칼로 베어내는 아픔이 자리하여 정말 견딜 수가 없었다. "어서 자기 일이나 보시오. 난 잘테니." 재차 말하자 봉고가 고개를 들었다. "난 잠이 다 깨었는데 당신은 왜 자려고 해요?" "지금 나하고 장난을 하자는 거요? 피곤하니까 자려는 거지 이유가 따로 있단 말이요. 정 혼자 놀기 심심하면 저기 걸려있는 내 옷 주머니에 있는 것을 가져가 놀란 말이요." 노완동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주머니에 든 유리알들을 꺼내 봉고에게 주었다. 또 은전까지 내어주며 말했다. "이 모두를 당신에게 줄테니 제발 잠 좀 자게 해달라고." 유리알은 노완동이 가장 아끼는 물건 중 하나였다. 그러나 사정이 이렇게 되고보니 그것조차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녹작지근하게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을 뿐이었다. "안돼요!" 그런데 봉고가 거절을 하고 나섰다. "뭐라고? 정말 내게 한번 혼이 나야 알아듣겠어?" 노완동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손을 들어 봉고의 뺨을 갈겼다. 그런데 봉고가 빠른 동작으로 노완동의 손을 막아냈다. "화를 낼 이유는 없잖아요?" "어서 물러가란 뜻이야. 날 좀 자게 해줘!" 다시 소리를 내지르자 봉고가 조금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다. "알았어요. 어서 주무세요." "내게 볼일이 남았다면 나중에 잠에서 깬 다음 보자구. 알았지?" 하며 노완동이 자리에 누워 등을 돌렸다. 홍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분노에 가슴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홍칠은 자기 앞에 있는 여인을 향해 소리쳤다. "당신의 정체는 도대체 뭐야? 왜 나를 이런 곳에 가두었냐고?" 여인이 가볍게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제 이름을 밝혀드리지요. 전 운의(雲儀)라고 해요. 개방의 새로운 방주이기도 하죠." 이때서야 홍칠은 가짜 미립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운의? 그대가 거지가 되겠다면 내 환영하지. 그러나 개방의 방주가 되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그러자 운의는 곤봉같은 것을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홍칠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그것은 바로 녹옥죽봉이었다. 개방의 신물인 타구봉이었던 것이다. 홍칠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개방의 타구봉인 녹옥죽봉은 방중의 보물인데 어찌하여 이 여인의 수중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여인의 말대로 개방을 자기 손에 넣었다는 게 사실일지도 몰랐다. 운의가 홍칠에게 말했다. "미운산이 폐인이 되어 더는 방주 노릇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또 소씨 거렁뱅이도 앞으론 나를 찾아와 소란을 피우지 않을 거예요. 홍칠공, 난 꼭 복수를 원해요. 지금 이 녹옥죽봉을 당신에게 넘겨주니 당신은 개방의 새 방주가 되세요." 그러면서 운의가 홍칠에게로 슬쩍 몸을 기대왔다. "홍칠공, 전 전에도 말했듯이 당신을 좋아해요. 당신만 진심으로 절 대해준다면 영원히 순종......" 순간 그녀의 말을 자르며 홍칠이 소리쳤다. "그댄 미립과 미기를 어디로 보냈소?" 운의가 얼굴 가득 그림자를 드리우며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아직 미립과 미기만을 생각하는군요. 당신은 왜 그들 남매만을 염려하시죠? 제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을 건가요?" 하며 운의가 다시 홍칠에게로 엎드리며 간절하게 애원을 했다. 그러나 홍칠은 이 가짜 미립이었던 운의의 악랄함을 알고 있었기에 두 번 다시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난 그대의 속셈을 알아. 그댄 절대로 그들 남매를 곱게 보내주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들을 모낸 곳을 말해주지 않으면 난 어떤 대답도 하지 않겠어." "홍칠공, 벌써 잊으셨나요? 당신은 나를 따르겠다고 했잖아요? 아무튼 당신은 내 말을 듣게 될테니 알아서 하세요?" 미립의 일을 떠올리며 홍칠은 안타까운 심정을 달랠 수가 없었다. 미립! 홍칠은 속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리고 순간 이어서 떠오른 또 하나의 얼굴이 있었다. "당신은 그 분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겠지?" "누구 말이죠?" "미운산!" 운의가 웃었다. "호호호! 그 사람은 내가 자기를 가장 좋아하는 줄 알고 있지만 틀렸어요. 전 오로지 당신밖에는 생각하지 않아요. 한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려드릴까요?" "새로운 사실이라니?" "그 사람은 가엾게도 다리 하나를 잃어버렸어요.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정도가 아니라 이번엔 아예 잘려나간 거죠." "그럴 수가! 당신이 그런 짓을 한 게지? 보지 않아도 안다. 그대는 미립과 미기를 이용해 미운산을 해쳤을 게 분명해." 홍칠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의 양 주먹은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홍칠공, 아직 십일취의 약효과가 가시지 않았다는 걸 명심하세요. 당신은 내게 화를 낼 수 없어요. 난 언제든지 당신을 죽일 준비도 하고 있는 여자니까요." "그 타구봉을 손에 넣은 걸 보면 내 사부님도 해쳤다는 뜻이로군!" "정말 당신은 총명한 분이예요." 홍칠은 형언할 수 없는 격분을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문 채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두 손으로 그녀의 옷깃을 틀어쥐었다. 그러나 운의는 안면에 웃음을 그린 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홍칠공, 당신이 이러면 영원히 미립과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아두세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 손을 써 그녀를 일격에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홍칠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의 옷깃을 잡고 있는 홍칠의 손이 힘을 잃고 떨렸다. 그녀의 말대로 아직 약기운이 가시지 않은 탓에 벌써 두 다리도 맥없이 휘청거렸다. 홍칠은 운의를 죽이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며 눈을 감았다. 순간 운의가 발로 홍칠을 차 넘어뜨렸다. "당신은 날 죽이고 싶겠지!" 하며 다시 운의가 장을 날려 홍칠의 어깨를 가격했다. 홍칠은 쓰러진 채로 힘없이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홍칠에게로 비호처럼 달려든 그녀가 이번엔 홍칠의 옷깃을 부여잡으며 외쳤다. "날 죽이고 싶단 말이지?" 그녀가 홍칠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당신이 날 때려죽이고 싶도록 미워한단 말이지?" 다시 짐승같은 외마디 소리를 내지른 그녀가 주먹으로 홍칠의 안면을 가격했다. 홍칠의 입과 귀로 피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또 홍칠에게로 달려와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런데 홍칠이 안간힘을 다해 기묘한 동작으로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과연 홍칠공이군요! 내가 십일취를 쓰지 않았다면 난 역시 당신을 이기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홍칠은 남아있는 힘을 한꺼번에 쓰는 바람에 더욱 휘청거렸다. 순간 그녀가 다시 홍칠의 대혈을 찔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속삭였다. "내가 때린 게 몹시 아프나요?" 정말 알 수 없는 여인이었다. 홍칠은 그녀가 지금 눈에 가득 담고 있는 게 눈물이란 사실에 혼란스러웠다. 운의가 자기의 옷소매로 홍칠의 입과 귀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내가 왜 당신을 때렸던가요? 내가 왜 당신을 이토록 못살게 구는 건가요? 전 당신을 좋아해요. 당신이 거부해도 전 어쩔 수가 없어요. 기다리겠어요. 당신의 마음이 돌아설 때까지...... 한번만이라도 웃어주세요. 그 웃음으로 전 위안을 삼고 기다리겠어요." 변화무쌍한 운의의 태도 앞에서 홍칠은 할말을 잃어버렸다. 그녀는 무자비하게 힘을 잃고 있는 홍칠에게 공격을 가하고, 지금은 또 구슬프게 울고 있지를 않는가. 또 홍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고 자기 품으로 안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옳은 것인지. 홍칠은 자기를 안은 채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애무하려는 운의에 대해 끝없는 두려움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제게 묻고 싶은 게 있으면 어서 말하세요. 다 말씀드리지요." 태도마저 전혀 반대로 돌아서고 있는 그녀였다. "그럼 묻지. 그대는 다섯 요리사들과 친하지? 그 사람들은 모두 당신의 말이라면 잘 듣지 않는가?" 운의가 머리를 끄덕이자 홍칠이 다시 물었다. "그댄 또한 미방주를 죽이려 하지? 또한 개방의 십대 장로들도 빠짐없이 죽이려 하지?" 이번에도 운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칠은 잠시 주춤했다. 숨김없이 묻는대로 대답을 하는 그녀의 태도에 의구심이 일었던 것이다. 홍칠은 그녀가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지금과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댄 개방의 서장로와 제갈장로를 죽였지?" 그러나 운의가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죽인 게 아니라 그 다섯 요리사들이 죽였지요. 그날 그들이 두 사람을 죽였는데 곧바로 전진교의 그 무슨 노완동인가 하는 사람과 맞부딪쳤다고 했어요. 그 사람의 무예 역시 대단하다고 들었어요. 그러나 요리사들이 손을 썼기 ㄸ문에 그 사람에게는 발각되지 않았지요." 홍칠이 대충 있었던 일을 머리속으로 엮어보다가 물었다. "그대가 미방주를 해치려고 하는 건 오로지 방주자리를 탐하기 때문인가?" "개방의 방주자리는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죠. 제가 이렇게 하는 건 오직 천하의 무림을 주름잡기 위해서예요." 천하의 무림을 제패하기 위해서? 홍칠의 운의의 얼굴을 비로소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엔 정말 거대한 야심이 들어차 있는 듯했다. 결국 타구봉을 손에 넣은 이상 방주자리에 대해 언급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자기가 말한대로 무림마저 손에 넣고자...... 홍칠은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하하! 그대의 재간으로 천하의 무림을 통치하겠다고?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홍칠이 아는 강호의 고수들만 해도 열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였다. 자신의 사부인 소씨 거렁뱅이를 비롯해 도화도주 황약사와 대리의 단황나으리 같은 사람들의 무예만 쳐도 천하의 으뜸이었다. 그러나 그 모두가 힘을 모은다 해도 무림을 정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그것을 꿈꾸고 있는 중이었다. "홍칠공, 당신이 내 말만 들으면 당신은 개방의 방주자리에 곧 앉을 수 있어요." "그 자리는 대단하지도 않다며? 난 그보다 녹옥죽봉을 다시 개방 집법장로에게 넘겨주는 일을 택하겠네." 하며 홍칠이 강경한 자세를 보이자 운의가 말했다. "이제 곡 개방대회가 열릴 예정이예요. 당신이 거부한다 해도 어쩔 수 없어요." 홍칠은 어서 타구봉을 되찾아 신음중인 개방을 살려야겠다는 일념 뿐이었다. 다시는 요망한 운의의 술책에 넘어가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운의가 문쪽으로 나가다 뒤돌아보며 말했다. "홍칠공, 당신이 정말로 죽음을 원한다면 바로 이곳에서 그렇게 해드리죠." 홍칠은 자리 앉은 채로 꼼짝을 못하고 있는 처지였다. 그는 정신을 집중하여 기를 모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단전(丹田) 안에서 내력을 모을 수가 없었다. 개방의 운명이 위태롭게 벼랑 끝에 걸려있는 것을 생각하면 얼른 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만 했다. 그러나...... 이때 문소리가 나더니 밖에서부터 두 사람이 들어왔다. 이들은 홍칠 앞으로 다가와 섰다. 홍칠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란 사실도 또 이들이 자기 앞에 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또한 걸음걸이가 무겁고 둔탁하다는 점에 사내라는 사실도 예상했다.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홍칠공, 우린 개방사람들인데 당신을 보러 이렇게 왔습니다." 어디선가 들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한가지 느낄 수 있는 것은 약간 겁을 먹고 있는 목소리라는 점이었다. 홍칠이 눈을 뜨며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확인했다. 이들은 집법장로들인 소미타 추우와 사개 정원이었다. 홍칠은 대충 사태를 짐작하고는 냉랭한 눈초리를 이들에게로 쏟았다. 필시 운의의 간괴한 술책에 넘어간 것이 분명했다. 사개 정원이 입을 열었다. "홍칠공, 당신은 날 만나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요? 할말이 없으신가요?" 그러나 역시 차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홍칠이 대꾸했다. "미방주가 저 여인의 손에 잘못되었다는데 사실인가?" 사개 정원이 약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바로 저 여인이 미방주의 한쪽 다리를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을 시켜서...... 노독물 구양봉이 갖고 있는 독사장의 독사가 미방주의 다리를 물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황약사가 방주의 다리를 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겨우 미방주는 목숨을 살릴 수 있었고......" "아니......" 그녀의 말이 모두 거짓이 아니라는 점에 놀란 것만은 아니었다 홍칠은 미운산의 소식에 온몸이 격류에 휩쓸리듯 요동치는 것을 감지했다. "그럼 미립소저는......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다시 사개 정원이 대답했다. "미소저는 동생 미기와 함께 미방주를 따라갔습니다."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미립의 생사가 확인되었고 불행 중 다행으로 아버지인 미운산과 함께 있다니 안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