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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3[북개홍칠공편] - 33편 (33/66)

2026-09-29 07:55:13 조회 32
그러자 노완동이 눈알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뭐가 맞지 않는다는 말이냐?" "아무리 귀한 물건으로도 살 수 없는 게 바로 여인의 마음이고 사랑이지요. 만일 그 여인이 당신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면 어떤 선물을 보내든지 마음에 들어할 겁니다." 노완동이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나즈막이 말했다. "그래? 임자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그 여인은 그 개떡같은 황제보다 날 더 좋아한다고 그랬거든." 주인은 노완동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임안부에서 황제의 여인인 황비를 꾀어내려는 흑심을 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담이 꽤나 큰 작자인데 후에 탈이나 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중에 들통이 나서 쥐도새도 모르게 죽어 묻히면 그뿐이기 ㄸ문이었다. "어서 물건을 고르시려면 그렇게 하시지요?" 주인은 사내의 반응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권했다. 그러나 노완동 주백통은 근본상 물건을 볼 줄 모르는 위인이라 몹시 힘에 부쳐했다. 한참동안 물건을 뒤적거리며 무작정 이것저것 쓸어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그리곤 곧 한아름이나 되는 물건을 주인 앞으로 내놓았다. 주인이 속으로 감탄을 했다. 겉으로 보기엔 조금 모자란 듯 보였으나 그래도 주머니는 넉넉한 인물이라 생각되었다. 어쨌든 자기는 물건을 많이 팔아 돈만 챙기면 되었기에 주인은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 바로 이 주인이 철장방과 연관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노완동은 이곳 수화은포가 철장방의 거처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주인은 노완동이 은전을 수중에서 꺼내자 흑심을 품었다. 가뜩이나 은전이 모자라 쩔쩔매고 있던 차에 잘 된 일이라 여겼다. 오늘 사내를 죽이고 나머지 은전도 모두 가로챌 요량으로 주인은 틈을 엿보기로 했다. 주인이 자기가 내민 은전을 너무 오래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한 노완동이 물었다. "임자가 삼백냥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 주려는데 왜 그런 표정을 짓지?" 그러자 주인이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헤헤헤, 손님께서 황비에게 선물로 드릴 장신구를 사신다는데 이대로 그냥 보낼 수는 없지요." "그게 무슨 말인가?" 주인이 간사한 웃음을 연신 말머리에 매달며 노완동을 부추겼다. "헤헤, 제 말씀은 지금 고르신 것보다 더 훌륭한 물건이 이 상점 안에는 얼마든지 있다는 뜻입죠. 어떠세요, 더 구경하시지 않으렵니까?" 노완동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더 좋은 물건이 있다고? 그럼 여기에 진열해 놓은 물건 말고도 더 있다는 말인가?" "그럼요. 아무에게나 좋은 물건을 내보이는 법은 아니니까요. 모름지기 물건엔 그 물건에 어울리는 임자가 따로 있는 법이지요." "그말이 맞긴 한데...... 나 역시 좋은 물건이 있다면 함부로 남에게 보여주는 성격은 아니니까. 바로 이거지. 내 특별히 주인장에게만......" 하며 노완동이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주인에게로 내밀었다. 그것은 수정으로 된 구슬이었다. 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것이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였다. 그러나 하찮은 물건임을 금방 알아차린 주인이 히히 웃으며 말했다. "보기엔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그건 어린아이들이나 갖고 놀 놀잇감에 불과하지요. 그게 그토록 대단하다는 말씀인가요?" 노완동이 정색을 하며 되물었다. "그럼 임자가 말한 좋은 물건을 어서 내어보게나." 제대로 걸려들었다고 판단한 주인이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그런데 어쩌죠. 지금 이곳에서는 없고 저와 함께 뒷집으로 가셔야하는데......" 하며 주인이 노완동의 눈치를 살폈다. "좋아. 기가 막힌 물건이 있다는데 그 정도의 수고를 마다하겠나?" 노완동은 쾌히 승낙을 했다. 그도 그럴것이 노완동의 머리속에는 온통 황비의 얼굴이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선물을 받고 좋아할 것을 생각하자 노완동은 금방이라도 천하를 얻은듯 가슴이 부풀어올랐던 것이다. 상점 뒤로 가보니 제법 큰 집이 한채 나왔다. 지붕도 꽤나 높았으며 전체적으로 웅장한 맛도 풍겨주는 그런 집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한 노완동이 물었다. "주인장, 어째 이렇게 큰집에 문이 하나밖에는 없소? 그리고 창문 역시도 하나밖에는 보이지가 않는데." 주인이 노완동에게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하며 잠시 자리를 비웠던 주인이 자그마한 함을 들고 왔다. "이 안에 좋은 물건이 가득하니 마음대로 골라보시지요." 노완동은 주인의 손에 들려있는 작은 함을 유심히 살폈다. 그 함은 아주 정교한 솜씨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노완동은 속으로 이곳 수화은포에는 정말 솜씨좋은 물건들이 많구나 하고 생각했다. 노완동이 손을 내밀어 함을 열려고 하자 주인이 만류했다. "잠깐만!" "왜 그러나?" 주인이 다시 눈을 가늘게 치켜뜨며 이유를 설명했다. "이 함속에 든 물건은 단순히 은전 삼백냥으로 따질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요. 만일 그보다 더 후한 값을 치룰 수 없다면 아예 열어보지도 마시라는 뜻이지요." 노완동은 불현 화가 치밀었다. 주인의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은근히 자존심이 상한 노완동이 목에 힘줄을 툭툭 새기며 말했다. "내게 은전이 얼마든지 있으니 걱정말고 어서 함을 열어보게! 일단 구경을 해야 사든지 할게 아닌가?" 그러나 주인의 태도 역시 단호했다. "죄송합니다만 은전을 먼저 보여주시지요. 그리고 참고삼아 말씀드리는 건데 이 함속에 들어있는 물건의 값은 천냥이올시다." 노완동이 한숨을 세게 뿜으며 주인을 노려보았다. "있으니까 걱정말래두!" "말은 누가 못합니까요?" 주인의 당당한 태도를 보자 노완동은 더욱 애가 탔다. 분명 좋은 물건이 있기에 저토록 자신있어하는 게 아닌가. 어서 물건을 사서 황비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슴에서 화방수를 만들었다. "좋습니다요. 손님 말이 옳아요. 아무리 귀한 양귀비의 앞가슴도 일단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봐야 그 진가를 가름하는 법. 자, 그럼 함을 열겠습니다." 노완동이 침을 소리나게 삼키며 잔뜩 긴장을 했다. 주인이 함을 열자 그 안에서 옥비녀가 신비한 광채를 뽐내며 자태를 드러냈다. 둥그스름한 한쪽에는 역시 옥으로 된 봉황새가 달려있고 섬세한 조각솜씨가 엿보이는 물건이었다. "오호!" 봉황생의 깃털 무늬까지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저절로 감탄의 말이 터져나왔다. 눈은 금강석으로 돼있고 몸엔 몇알의 눈부신 진주알과 이름 모를 보석까지 박혀있었다. 부리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역시 진주가 여러 알 물려있는 형상이었다. 노완동이 입을 다물 생각도 못한 채 계속 감탄사를 연발했다. "좋아, 정말 좋아! 참으로 훌륭한 물건이로구나. 이 정도라면 천냥에다 내 목숨까지 얹어서라도 사겠네." 노완동은 곧 손을 천천히 내밀어 그 옥비녀를 잡았다. 바로 이때였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눈앞으로 뿌우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앗!" 그 연기가 노완동의 눈을 덮자 순간 눈앞이 흐릿해지면서 정신까지 몽롱해지는 것이었다. "나쁜 놈! 감히 날 속이다니?!" 하고 노완동이 소리를 내지르며 함을 집어 주인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러자 주인이 다람쥐처럼 날쌘 동작에 몸을 얹어 옆으로 구르며 노완동의 공격을 피했다. 다시 몸을 일으킨 주인이 이번엔 노완동에게로 달겨들었다. 노완동은 화가 북받쳐 주먹으로 주인의 가슴팍을 내질렀다. 그런데 주인 역시도 장으로 공격을 가해오는 것이었다. "오라 이제야 네 놈의 정체를 알겠구나! 바로 네 놈은 철장방의 놈이렷다!" 이 즈음 천하의 무림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것이 바로 철장방이었다. 상관위(上官威)가 방주노릇을 할 때만 해도 선한 일을 행해 사람들의 입에도 좋게 오르고내렸었다. 그런데 지금의 철장방은 눈앞의 주인처럼 교활하고 악랄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주인이 철장방의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된 노완동은 가슴이 섬뜩해졌다. 철장방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을 우습게 해치는 족속이란 점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놈을 보아도 그것은 증명되는 일이었다. 차츰 눈앞이 뿌우옇게 변해가는 노완동이 당황하며 외쳤다. "망할 놈의 철장방 졸개야! 나의 장을 받아랏!" 노완동이 고함을 지르며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곧게 펴 그자의 어깨를 가격하였다. 그자는 노완동의 장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모양이었다. 여유만만하게 노완동의 공격을 피하려던 주인이 어깨를 움켜쥐고는 뒤로 날아갔다. "꽈당!" 그자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노완동은 기세를 늦추지 않고 질풍같이 달려가 일격에 그자의 숨통을 끊어놓으려고 했다. 온갖 사악한 방법을 동원해 사람들을 해치는 무리를 어서 없애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자는 노완동이 질풍을 몰고 달려오는 것을 보자 황급히 몸을 옆으로 굴렸다. 노완동의 공격이 순간 빗나가버렸다. 그러나 그자는 노완동의 법수가 자기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주춤하고 있는 처지였다. 노완동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 빌어먹을 철장방놈아, 네 놈에게 재간이 있다면 어서 덤비거라. 치사한 짓꺼리로 철장방 망신이나 시키지 말고." 노완동이 욕설을 퍼붓자 그자가 비웃었다. "노완동아, 네가 죽고 싶어 찾아왔으니 부디 날 원망말거라!" "넌 도체 철장방에서 뭘 하는 개뼈다귀더냐? 네 놈이 누구이길래 날 해치려 드느냐? 어서 구천인이란 놈을 불러오너라. 내가 그와 상대해주겠다. 네 놈은 철장방의 졸개에 불과하니 내 명성을 더럽힐까 싸우고 싶지 않다." 그자가 거침없이 웃음을 퍼주으며 말했다. "노완동아. 네 놈이 죽을 ㄸ가 되었는데도 아직 깨닫지를 못하는구나. 넌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로구나. 네 놈이 무슨 재간이 있다고 우리 방주영감과 대적하겠다고 하느냐. 나만 하더라도 네 놈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테니 어서 무릎을 꿇어라. 행여 고집을 부리다가 염라대왕과 장기두는 일을 자청하지 말고!" 득의양양하여 노완동을 비웃는 그자의 눈빛엔 아직 물러설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노완동은 후회가 들었다. 조심하지 않아 두 눈을 멀게 될지도 모를 위기 몰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같은 일을 중양형이 알게 되면 얼마나 꾸짖을 것인가. 노완동은 곧 자신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몰리면서도 왕중양에 대한 미안함에 고개 숙였다. "구천인을 어서 불러오지 못하겠느냐? 내 당장 요절을 내어 순진한 농부들이 평생 짓는 터밭에 거름으로 뿌려주겠다!" 그러나 사실 구천인과는 자웅을 겨눌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은 구천인은 자꾸 찾아 무엇한단 말인가. 그를 만나기 전에 눈앞에 있는 자에게 어떤 굴욕을 당할지도 모르는 판국이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되면 수중에 있는 은전과 구슬마저 ㅃ앗기게 되는데 노완동은 더욱 곤혹스런 표정을 감출 길 없었다. 또한 아까 연기에 쏘인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려 더욱 고통스러웠다. 앞이 가물가물해지면서 겨우 윤곽만을 가름할 뿐이었다. 한편 운이 좋아 이자를 물리칠 수 있다 해도 문제는 남아있었다. 오히려 이자를 죽이지 말고 산 채로 잡아 해독제를 얻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해독제로 눈을 치료한 다음 더 큰 일을 위해 때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노완동이 꾀를 생각해 내어 그자에게 말했다. "너에게 부탁이 있다." "부탁? 왜 목을 칠 때 아프지 않게 살살 베어달라는 부탁이더냐?" "나는 눈을 다쳐 너와 정당한 승부를 할 수가 없는 몸이다. 일단 내게 해독제를 달라. 그러면 댓가로 내게 있는 은전을 모두 주마." 그자의 눈빛이 약간 달라졌다. "네 놈에게 아직 남아있는 은전이 있단 말이냐?" 순간 야릇한 느낌이 들어 노완동은 품속을 더듬어보았다. "아니!" 자신의 품속에는 은전이 하나도 남아있지를 않았던 것이다. "네 놈이 내 은전을 훔쳐갔구나? 솜씨가 대단한데!" "헤헤헤, 이제야 알차리다니 너의 눈치는 형편없구나. 그래서 모두들 나를 쾌수(快手) 진(陳)이라 부르는 거다. 알고나 있느냐?" "네 놈이 은전을 훔쳐갔지만 마지막으로 양심을 묻겠다. 해독제를 주면 용서를 하마." 그러나 통하지 않을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노완동은 그런 자신이 한심스럽게 여겨졌다. "배짱만큼은 대협 왕중양의 뺨을 치고도 남는구나!" 노완동은 더욱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깨닫고는 조급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흐릿하게나마 보이던 그자의 윤곽이 더 가물가물하게 느껴졌다. 노완동이 정신을 집중하여 그자의 말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기를 모았다. 틈을 엿봐 여차하면 공격을 가할 계산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눈치채고 있는 그자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헤헤, 불쌍한 노완동아, 네 놈이 나를 잡겠다고? 그래서 해독제를 얻겠다고? 어림도 없지." 바로 이때였다. 노완동이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러나 이미 알아차린 그자는 한쪽으로 비켜난 채 비웃음을 던져왔다. "넌 눈 먼 고양이인데 어림도 없지." 노완동이 다시 발을 구르며 이리저리 그자를 잡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 숨을 몰아쉬던 노완동은 순간 두 눈을 움켜쥐었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고통이었다. 가능하다면 두 눈을 모두 뽑아버렸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갑자기 두 눈에서 손을 뗀 노완동이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았다. 두 손을 양 무릎 위에 올려놓고는 전진교도처럼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자의 두 눈이 쥐에게 역습을 당한 고양이의 그것처럼 휘둥그레졌다. 이리저리 꽁지에 불똥이 떨어진 쥐처럼 자기를 잡으려고 허둥대던 노완동이 갑자기 가부좌로 앉자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노완동은 안은 채로 눈에 들어간 독기를 짜내기 위해 조식운동(調息運動)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매우 힘든 방법이기도 했다. 아무리 공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내력을 눈에까지 운행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완동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었다고 믿었다. 한편 한가지 숨겨놓은 계략이 있기는 했다. 노완동이 죽은 듯 앉아서 움직임을 멈추자 그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네 놈이 죽을 때가 가까워지니까 별의별 짓거리를 다하는구나." 하는 그자의 입김을 감지한 노완동이 때를 놓치지 않고 훌쩍 몸을 날렸다. 그리곤 곧바로 그자의 두 발을 움켜쥐었다. 그자가 발버둥을 치며 두손으로 바닥을 사정없이 긁어댔다. 노완동은 행여 신발을 벗고 놈이 빠져나갈까봐 손아귀에 힘을 주어 발목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이때 그자가 문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방주님!" 노완동이 얼른 그쪽을 향해 시선을 던지자 놈이 공격을 가해왔다. 또 속고만 것이었다. 그 바람에 놈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노완동의 손엔 신발 한짝만 남게 되었다. "어디로 내뺄 셈이더냐?" 소리는 질러대고 있었지만 노완동은 다시 방금전과 같은 기회는 맞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눈앞은 더욱 안개에 싸인 듯 흐릿하게 변해갔다. 그자의 숨소리가 다시는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도 문밖으로 나가버린 모양이었다. 노완동은 바닥을 더듬으며 문을 찾기 위해 엉금엉금 기어갔다. 겨우 문이 손끝에 닿자 노완동은 자리에서 일어나 막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이때 놈의 목소리가 들여오면서 그만 문을 밖에서 철커덕! 잠그는 소리가 났다. "헤헤헤, 이제야 왜 이 집에 문이 하나밖에 없는 줄 알겠지?" 그리곤 잠잠해졌다. 노완동은 풀썩 그 자리에 꺼지고 말았다. 홍칠이 눈을 떠보니 주위의 풍경들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석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홍칠은 다시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그동안 석실에서 보낸 기간은 잊을 수 없는 꿈속과도 같은 시간들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그처럼 행복한 나날들을 보낸 적이 거의 없었다. 바로 미립과의 그 수많은 시간들을 보냈다는 사실에 홍칠은 더욱 행복했었다. 미립! 갑자기 홍칠이 눈을 떴다. 그때서야 지금 자기가 어떤 위치에 놓여져 있는지 알아차린 것이었다. 미립과 미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홍칠은 상체를 일으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미립과 미기는 보이지 않았다. 웬 여인의 침실같았는데 매우 사치스럽고 화려한 것들로 장식돼 있었다. 자기가 누워있던 침상을 돌아보던 홍칠은 그만 사색이 되고 말았다. 그 침상 위에 한 여인이 누워있었기 ㄸ문이었다. 그렇다면......? 자기가 이 여인과 오래 누워있었다는 사실 앞에서 홍칠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여인이 미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러나 분명 미립은 아니었다. 홍칠은 허리를 숙여 여인 가까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굿이 눈을 감고 잠이 들어 있는 이 여인...... 어디선가 본 듯한 여인의 얼굴이었다. "아니!" 곧 홍칠은 여인의 정체를 알아냈다. 바로 미방주의 신변에 머물고 있던 또다른 미립이었다. 홍칠이 황급히 침상에서 내려오려고 몸을 돌렸지만 마음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온몸의 맥들이 모두 상했는지 나른하여 생각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때 뒤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도망치려고 하나요?" 돌아보지 않아도 가짜 미립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홍칠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나를 어쩔 셈인가?" 그러자 미립이 손길을 뻗어왔다. 홍칠의 어깨를 천천히 쓰다듬자 홍칠이 급하게 뿌리쳤다. 미립이 요사스러운 웃음을 토했다. "호호호! 홍칠공, 당신 역시 사내인데 어찌 이토록 뻣뻣한가요? 옆에 있는 이 여인의 실망이 크다는 걸 당신은 왜 모르시죠?" 홍칠이 자신을 수습하며 대꾸했다. "하하, 그대의 목소리를 들어서는 조금도 실망할 것 같지가 않은데." 미립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육감적인 젖무덤이 훤히 드러났다. 홍칠이 얼른 시선을 돌리며 침상에서 내려왔다. "홍칠공, 당신이 얼마든지 이곳을 나갈 수 있어요. 하지만 저 문을 나서자마자 후회하게 될 거예요. 아마 한평생 후회만을 벗으로 삼고 살아가게 될지도 몰라요." "내가 무엇 때문에 그리 고달픈 후회를 한단 말인가?" "솔직히 말하죠. 당신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진짜 미립은 죽게 돼요." "뭐라고? 이 못된 것!" "호호호, 제 말을 끝까지 들으셔야죠. 그리고 미립의 남동생의 목숨도 온전치는 못할 거예요." "함부로 미립이란 이름을 부르지 마라!" "호호, 미립은 예쁘지도 않은데 왜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는지 이유를 모르겠군요. 당신이 지금부터라도 나를 좋아하게 된다면......" "당치도 않는 소리 집어치워라!" "그렇게 되면 난 당신에게 좋은 선물을 드릴 수도 있는데......" "흥!" "난 당신을 개방의 방주로 삼을 생각이오." "뭐라고!" 홍칠은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앞에 있는 요망한 여인을 요절내고 싶었다. 어서 목을 졸라 죽이고 미립과 미기의 생사를 확인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막 그녀에게로 몸을 돌려 손을 쓰려고 할 때였다. "당신은 내게 '십일취(十日醉)'를 당했다는 걸 명심하세요. 이 십일동안 당신은 싫어도 내 말을 들어야 해요." 그러나 홍칠에게 그같은 말이 들릴 까닭이 없었다. "각오해라!" "호호호! 그러니 더욱 당신이 사랑스럽군요." 가짜 미립은 조금도 동요되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즐기려는 기색이었다. "내가 보기엔 당신은 정말 사내다운 사람이예요. 당신은 나의 남편이 될 생각은 없나요? 그렇게 되면 난 당신에게 영원히 복종을 할 수 있어요." 홍칠이 그녀의 목을 졸랐다. 그러나 온힘을 다 주었는데도 소용이 닿지를 못했다. 손목으로 힘이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온몸은 이미 흐물흐물 마취를 당한 상태였다. 홍칠은 손을 부르르 떨며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호호호! 당신은 지금 절 너무 사랑한 나머지 죽이려고 하는 것이겠죠? 당신이 이럴수록 나는 더욱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손아귀에서 벗어난 그녀는 더욱 요망스런 눈빛을 흘리며 홍칠을 빈정댔다. "누가 미운산 방주님을 그 꼴로 만들었는지 알만하다. 이 요사스런 계집아, 넌 죽어서도 결코 혼백만큼은 너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치를 떨며 분노하는 홍칠은 안타까운 가슴만 어루만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다시 방안을 울렸다. "홍칠공, 당신이 나를 따르면 되는건데 무슨 고집이 이렇게 많나요. 당신이 그렇게만 마음을 먹는다면 천하는 곧 우리들 몫이라구요." 그녀의 손길이 다시 홍칠의 목을 감싸왔다. 홍칠은 애써 뿌리치려 했지만 더욱 손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홍칠공, 전 숱한 사내들을 겪어보았지만 당신처럼 내 영혼을 앗아가는 사내는 처음이예요." 그녀의 뱀 혀같은 손끝이 홍칠의 목덜미를 쓰다듬고 있었다. 홍칠은 굳어가는 몸을 뒤흔들면서 벗어나려고 했다. "미운산이란 인물은 너무 점잖을 빼어 어디 여인의 환심이나 사겠어요. 또 그 소씨 거렁뱅이란 사람은 하루종일 히히덕거리기만 해서 여인들이 접근하지를 않으려고 해요. 그러나 당신은......" 그녀의 손길이 잘려나간 홍칠의 머리를 어루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