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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3[북개홍칠공편] - 26편 (26/66)

2026-09-29 07:55:13 조회 34
그런데 아까 세 사람을 이곳까지 내려보냈던 옥석이 움직이질 않았다. "홍칠공, 큰일났어요! 움직이지를 않아요." 미립이 소리를 치며 다시 옥석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마찬가지였다. 옥석으로 된 발판은 꿈쩍을 하지 않았다. 위를 올려다보니 장방형으로 된 구멍이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벽을 타고 올라가 살펴봐야겠소." 홍칠은 곧 천천히 숨을 죽이고는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동작이 하도 가벼워 미립은 속으로 감탄을 하였다. 실로 홍칠은 훌륭한 벽호공(壁虎功)을 쓰고 있었다. 그는 한번에 반자 정도씩 위로 올랐다. 금방 구멍이 나있는 곳까지 오른 홍칠을 올려다보는 두 사람은 초조하기만 했다. 그런데 순간 난처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꽝!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홍칠의 머리 위로 철판으로 보이는 것이 구멍을 막으려고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빨리요!" 아래에 있던 미립괴 미기는 비명을 지르며 홍칠에게 어서 오르라고 재촉을 했다. 그러나 철판은 이미 구멍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홍칠이 있는 힘을 다해 그것을 밀어보았지만 끄덕도 하지 않았다. 결국 세 사람은 갇혀버리고 만 꼴이었다. 다시 아래로 내려온 홍칠은 빠져나갈 방법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황하고 있다는 모습을 두 사람에게 보여서는 안되었다. 그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미립이 홍칠에게 안기며 소리쳤다. "위에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아마 우릴 해칠지도 몰라요!" 미기도 그 바람에 덩달아 눈물을 터뜨렸다. 홍칠이 미립을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 말아요. 이젠 집에 오지 않았소? 여긴 석실이고 당신의 아버지가 거처하던 곳이 아니오. 먹을 것도 충분하고 잠자리도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오. 운낭을 편히 모셔주고 잠시 기다리다 보면 누군가 우릴 구하러 올 것이오." 두 사람은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홍칠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세 사람은 운낭의 시체를 수습하려고 했다. 그런데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앗! 이럴 수가......" 운낭의 시체가 말끔이 치워져 있는 것이었다. 핏물이 떨어진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은 등골이 오싹해 그 자리에서 굳어지고 말았다. "홍칠공, 혹시 이곳에 귀신이 살고 있지는 않을까요?" 하며 미립이 바들바들 떨며 물자 홍칠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여긴 개방의 총부가 아니오. 그런데 무슨 귀신이 있겠소? 귀신이 설사 있다 해도 거지들을 해치진 않을 것이오. 우린 거지가 아니겠소." 비록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홍칠 역시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은 조심스럽게 서로의 손을 잡고는 다시 여기저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말린 살코기와 쌀부대는 아직 그대로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가지 못하고 한동안 이곳에 갇혀있게 된다 해도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홍칠은 두 사람을 이끌고 다시 미운산이 무예를 연마하던 곳으로 가보았다. 어쩌면 앞으론 세 사람이 이곳에서 무작정 무예를 연마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야릇한 생각이 들어 홍칠은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 침상이 있는 석실로 온 홍칠이 말했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주무시오. 난 문밖에서 지키고 있을테니." 하며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미립이 불러세웠다. "홍칠공!"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이 가실 것같지가 않아서였다. 미립이 부르자 홍칠이 걸음을 세우고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당신이 나갈 필요는 없어요. 이곳에서 함께 자요." 홍칠은 그들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가만히 보니 그들 남매는 모두 겁에 질려 떨고 있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 남매는 한 사람은 처녀고 한 사람은 어린애에 불과했다. 자신처럼 황산야령(荒山野領)을 돌아다니면서 낡은 절간이나 빈 오두막 같은 데서 자본 일도 없을 것이었다. "알겠소." 홍칠이 침상과 맞닿아 있는 긴 의자를 옮겨다 한쪽 벽 옆에 놓았다. "그럼 난 여기서 자겠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소리쳐 날 부르시오." 홍칠은 곧 코를 곯며 잠에 빠져버렸다. 미립과 미기는 서로를 쳐다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두 사람은 지금 자신들이 앉아있는 침상이 바로 아버지가 쓰던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기분이 야릇해졌던 것이다. 미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누나, 아버지께서 혹시......" 미립은 미기가 하려는 말의 뜻을 헤아리고는 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아냐! 아버지께선 아무일도 당하시지 않았을테니 걱정마." 그러나 미기의 눈에 근심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미립은 동생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다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진 스스로 나가신 거야. 다른 개방 사람들도 보이지 않잖아. 아버지께서 무슨 좋지 않은 소문을 듣고는 몸을 피하신 것 같아." 미기는 조금 안심을 하는 듯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 채 한숨과 불안 속에서 뒤척이던 두 사람은 어느 순간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다. 구양봉과 황궁의 다섯 요리사는 싸움을 끝내지 못했다. 여전히 묘대야는 왼쪽에는 식칼을 들고 오른쪽에는 국자를 치켜든 채 구양봉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얏! 이번에는 끝장을 내주마!" 그는 칼로 일단 내리치고는 국자로 재차 공격을 하는 법식을 취했다. 그때마다 구양봉은 날쌘 동작으로 위기를 피해갔다. 둘째는 큰 솔로 주위를 아예 쓸어버릴 듯 휘둘렀는데 구양봉을 넘어뜨리려고 주로 발 쪽을 공격했다. 셋째인 심야와 넷째 우사야도 주먹과 장으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구양봉을 각각 공격하였다. 구양봉은 이 다섯사람의 무예가 보통이 아니었기에 더욱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마치 바람개비를 돌리듯 독사장을 재빨리 휘두르며 수시로 틈을 노려 다섯사람에게 반격을 가했다. 그러나 여섯사람이 부리는 법수와 법식은 막중해서 쉽게 승부를 가릴 수가 없었다. 저만큼 물러나 그들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소씨 거렁뱅이는 초조하기만 했다. 그는 속으로 부끄러움을 감추질 못했다. 황궁의 다섯 요리사가 아니었더라면 벌써 구양봉의 손에 목이 달아났을텐데.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아직 구양봉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기를 기다려 다시 그와 맞설 마음이었다. 이때 황궁의 다섯 요리사는 물샐 틈 없이 구양봉을 에워싸고 마지막 일격을 퍼부으려고 했다. 그러나 구양봉의 반격 역시 만만치가 않아 그들은 끝없는 소모전만 계속하고 있는 꼴이었다. 묘수인주 묘대야는 안달이 나 허둥대고 있었다. 묘대야가 신호를 보내자 잠시 네명의 요리사가 물러섰다. 묘대야가 구양봉을 노려보았다. "오라, 이번엔 네 놈이 나서겠다는 거냐!" 구양봉이 빈정대듯 소리치자 묘대야가 한발 앞으로 나섰다. "네 놈이 녹옥죽봉을 순순히 내놓으면 없었던 일로 하겠다." 그러자 구양봉이 박장대소를 하며 말했다. "그래 황제에게 용상(龍床)에서 물러나 거지가 되라는 말이더냐? 황제노릇을 그런대로 봐줄 수 있지만 거지노릇은 정말 싫다. 하하하하!" 구양봉의 태도를 보아 만만하게 녹옥죽봉을 내놓을 것 같지를 않았다. 다섯 요리사는 이제 정말 다른 방법은 없다고 깨달았다. 이들은 익히 구양봉의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무예가 뛰어나고 당해낼 자가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자기들 다섯이 힘을 합쳐 대적한다면 결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입장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개방 방주의 신물인 녹옥죽봉을 다시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구양봉의 무예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맹렬하게 돌풍을 일으키고 있어 선뜻 앞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 처지였다. 고민하던 끝에 묘대야가 한가지 해결책을 꺼냈다. "구양봉, 너와 싸우려는 사람이 있는데 가보지 않겠냐?" 그러자 구양봉이 오만하게 머리를 쳐들고는 대꾸했다. "안 안가! 날 만나려면 그 자더러 직접 오라고 하시지." "그댄 백타산군인데 재간이 뛰어나다고 해서 천하를 주름잡고 있지. 그래서 강호에선 임자를 서독이라 부르고 천하의 제일 악한이라고들 말하고 있어. 우리가 보건대도 그런 것 같아." 구양봉은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개구리를 알아맞추게 되어 유운장에 간 뒤로 노독물 신독행을 스승으로 모시고 봉황력과 개구리공이라는 두가지 절기(絶技)를 익혀 천하에 더없는 고수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또 신독행에게서 천하의 악한이 될지언정 선한 일은 조금도 하지 않겠다는 인생신조를 배우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는 묘대야의 말을 그 반대의 의미로 해석했던 것이다. "날더러 어쩌라는 말이냐? 내가 네 놈들을 두려워할 줄 아느냐!" "그럼 먼저 한가지 묻겠는데 사실대로 말해달라. 네 놈이 그 녹옥죽봉을 갖고 왔느냐?" 묘대야의 말에 모두들 긴장을 했다. 정신을 바싹 차리고는 구양봉을 주시했다. 소씨 거렁뱅이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녹옥죽봉 때문이었다. 만일 구양봉이 그것을 갖고 오지 않았다면 괜한 시간낭비를 할 뿐이었다. 구양봉이 웃음을 터뜨리며 당당한 기색으로 말했다. "난 반드시 녹옥죽봉을 몸에 지니고 다닌단 말이다. 너희들이 보고 싶다면 그렇게 해주지." 그러나 모두들 그가 녹옥죽봉을 감춰둘 만한 곳이 없다고 여겼기에 내심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구양봉이 허튼수작을 하려는 게 아닌가 해서 긴장을 했다. 구양봉이 손에 들고 있던 독사장을 높이 쳐들었다. "자, 모두들 두 눈 크게 뜨고 자알 보기 바란다!" 곧 독사장 중간에 있는 단추같은 것을 눌렀다. 그러자 독사장이 두쪽으로 갈라지면서 그 속에서 번들거리는 녹옥죽봉이 자태를 드러냈다. 구양봉이 다시 크게 웃어젖혔다. "하하하, 난 이 녹옥죽봉을 갖고 서역으로 돌아가련다. 나의 조카 구양극이 크거들랑 이 녹옥죽봉을 갖고 중원에 와 우선 방주 노릇을 하게 하련다. 어때, 내 계산이 신통하지 않느냐?" 구양봉이 다시 땅을 가를듯한 웃음을 토했다. 그 웃음은 비범한 기운을 담고 있어 다른 사람들의 살갗을 파고들 정도였다. 그들은 구양봉의 사력(邪力)을 막아야 한다고 느꼈다. 셋째가 말했다. "임자를 만나보려는 사람이 정말 기다리고 있소. 임자가 가기만 하면 복이 굴러들어올텐데." "하하하, 날 함정에 빠뜨려는 수작인 줄 다 안다." 그러자 묘대야가 눙치는 목소리로 꾸미며 거들고 나섰다. "임자가 가면 자연히 알게 될텐데 뭘 그래. 그런데 임자가 감히 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구먼." 그 말에 구양봉이 호기스런 표정을 만들며 꾸짖었다. "내가 왜 못간다는 말이냐? 오냐, 너희들을 따라 가겠으니 어서 앞장을 서라!" 소씨 거렁뱅이는 아무래도 무슨 내막이 있는 것 같아 가슴을 조였다. 구양봉을 끌고 가서 다시 술책을 꾸미려는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한번 잃어버린 녹옥죽봉을 다시 손에 넣는다는 게 힘들다는 것을 새삼 ㄲ달았다. 하지만 소씨 거렁뱅이는 내색을 하지 않은 채 한숨만 내쉬었다. 묘대야가 다가오더니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소씨 거렁뱅이, 임자의 녹옥죽봉이 강호의 영웅들 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속을 썩일 게 뭐요? 임자가 다시 우리를 추격하다간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으니 명심하시오." 그러면서 그들은 아직 소씨 거렁뱅이에 대한 적개심을 놓치 않고 있었다. 소씨 거렁뱅이가 손을 움직이기라도 하면 곧바로 달겨들 태세를 갖추었다. 소씨 거렁뱅이는 원래 이 다섯 요리사를 두려워 하지를 않았다. 그러나 섣불리 그들을 공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유는 바로 구양봉의 얄팍하고 줏대없는 태도 때문이었다. 구양봉이 선선히 그들을 따라나서겠다고 태도를 바꾸었기에 더욱 불리한 입장이 돼버렸던 것이다. 소씨 거렁뱅이는 일단 구양봉을 먼저 떠나보내고 조용히 뒤를 따라가 볼 계산이었다. 소씨 거렁뱅이가 말했다. "그대들 가고 싶은대로 가면 될텐데 무슨 군말이 그렇게도 많은가?" 그러자 다섯 요리사가 입을 모아 한소리로 합창을 했다. "좋아, 우린 당신과는 구면이니까. 그럼 우린 가겠어." 그렇게 구양봉을 데리고 다섯 요리사는 표표히 떠나갔다. 소씨 거렁뱅이는 그들이 멀리 사라지자 혼잣말을 흘렸다. '저 놈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뒤를 밟아보자. 저 놈들이 간 곳을 곧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뒤 개방의 장로들을 데리고 가서 그 녹옥죽봉을 되찾으면 되겠다.' 구양봉과 다섯 황궁 요리사들은 임안을 벗어나 북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는 도중에 그들은 구양봉에게 갖은 아첨을 부렸으며 좋은 술과 기름진 음식으로 각별히 대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껏 달아오른 구양봉은 매우 흡족하여 더욱 거만하게 행동했다. 이들은 제남부(濟南府)에 도착했는데 객지로만 떠돌다 보니 모두 지친 상태였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이들은 소주(蘇州)라는 곳에도 들렸었는데 그곳에서 너무 기력을 소비한 탓도 있었다. 소주에 이르렀을 때 묘대야가 구양봉에게 묘한 눈빛을 만들며 제의해왔었다. "구양선생, 이곳 소주에서 한번 놀아볼 생각은 없는지요?" 오는 길에 그들에게 환대를 받아 악의를 모두 씻어버린 구양봉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소주에 뭐 볼 만한 게 있소?" 일단 자기들의 제의를 구양봉이 받아들이자 다섯 요리사들은 곧바로 소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소주에서 이름난 곳은 모두 들려 구양봉을 즐겁게 해주는 일에 열중했다. 그들 여섯 사람은 빈들거리며 진종일 유희를 즐긴 다음 다시 길을 떠났던 것이다. 제남부에 들어서자 묘대야가 새로운 사실을 알려왔다. "구양선생, 당신은 여기에서 오늘 당신을 찾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요. 오늘 바로 당신은 그 장본인을 만날 수단 말이요." "오호, 벌써 이곳에 왔다고? 그런데 차라리 그대들 몇몇이 날 따라 백타산장으로 가는 게 나을 걸 그랬소. 거기에 가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게 황제가 있는 황궁에서 지내는 것보다 나을 거네." 사실 구양봉의 생각은 그러했다. 황궁의 내원도 그저 그럴 것이고 자기의 백타산장보다 못할 게 분명하다는 믿음이었다. 구양봉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을 보이자 다섯 요리사들은 말이 없었다. 그러면서 구양봉을 한 기생집으로 데리고갔다. 뜨락을 지나 가장 뒤쪽에 이르러 한 아담한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방안에는 향기가 물씬 풍겨나고 있었으며 매우 멋진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당조 때의 오도자(吳道子)의 그림이며 옛날 위부인(衛夫人)의 초서(草書) 이며 또 고색창연한 초미금(焦尾琴)이 걸려 있기도 했다. 침상을 보니 공주낭낭(公主娘娘)의 거처와 다를 바없이 깨끗하고 화려했다. 그 앞에서 놀라며 구양봉이 목소리를 높였다. "임자들이 날 이곳에 데려다 놓고 뭘 하자는 건가? 혹 기생놀이를 하자는 건 아니겠지?" 그러자 묘대야가 반대로 나즈막이 속삭이듯 말했다. "아니요. 우리 다섯 사람이 구양선생을 데리고 온 것은 이곳에서 누가 선생을 보자고 했기 때문이오." "어떤 사람이 날 만나자고 하는 건지 어서 시원하게 말해보구려. 이렇게 자꾸만 변죽만 울리니 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소." 바로 이때 누구인가 꾀꼬리를 닮은 목소리를 잔뜩 뽐내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호호호, 그러신가요? 보아하니 구양선생의 소문이 실은 그런 게 아니었군요?" 구양봉이 얼른 얼굴을 돌려 보니 한 여인이 다소곳한 자세로 서 있었다. 키는 그다지 큰 편도 작은 편도 아니었으나 아주 뛰어난 미색이었다. 몸매 역시도 적당해서 구양봉은 한눈에도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멋진 여인인데!' 구양봉의 백타산장에는 천지인(天地人) 세 집이 있는데 거기에도 용모가 뛰어난 여인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여인에 비하면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았다. 앞으로 간들간들 걸어오고 있는 여인에게 눈길을 빼앗기고 있는 구양봉은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여인이 애교 띤 자태로 말했다. "구양선생께서 불원천리하고 절 보러 예까지 오셨으니 정말 그 성의에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군요." 구양봉이 빨려들어갈 듯 그녀의 반짝이는 두 눈을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대가 날 만나자고 하는 줄을 미리 알았다면 벌써 구름을 잡아타고서라도 왔을 거요." 여인의 손길이 구양봉의 얼굴로 천천히 올라왔다. 그녀는 구양봉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구양선생, 당신의 모습을 보니 여인들을 많이 다루어본 것 같은데 당신을 진심으로 섬겼던 여인이 있었던가요?" 구양봉은 그 말에 매우 침울해졌다. 잠시 지나온 과거를 더듬어보았다. 자기의 형수인 모용쟁과 정을 주고 받던 일이 생각났다. 두 사람은 정이 깊어 후회없는 나날도 보내었지만 차츰 모용쟁이 항상 우울에 빠져 자기를 괴롭히다가 종국에는 헌 절간에서 죽어버렸던 것이다. 그후로 구양봉의 심중에는 마음에 맞는 여인이 자리하지를 못했었다. 비록 백타산에 세 층으로 나누어진 집에 여인들이 가득했고 그녀들과 놀곤 했었지만 모두가 허사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잠시 모용쟁을 떠올리던 구양봉은 애써 기억을 떨어내며 다시 여인의 얼굴을 주시했다. 구양봉의 심기를 읽어냈는지 여인이 다시 그윽한 미소를 지었다. "대장부로 이 세상을 살면서 풍우를 질타하고 강호를 손에 넣지 못한다면 천년을 산들 무슨 재미가 있겠나요?" 구양봉은 그녀가 자기의 속에 들어있는 말을 대신 하고 있음에 기분이 흐뭇해졌다. "우하하하하!" 크게 구양봉이 웃자 여인이 황궁의 요리사들을 향해 손가락을 폈다. 그리곤 허공에서 핑 바람소리를 내며 튕기자 다섯 사람은 즉시 밖으로 나갔다. 여인은 구양봉을 앉히고 향기로운 차 한잔을 대접했다. "구양선생, 사람들이 말하기를 강호에서 부초처럼 떠다니는 것보다 의지할 곳이 있어야 더 대장부답게 될 수 있다고 하였어요. 선생께서는 저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구양봉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옥같은 살결이며 아름다운 자태에 넋을 차츰 빼앗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구양봉은 속으로 생각했다. 백타산장에 널려있는 그 허다한 미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여인이라고. 이 여인은 용모가 절색일 뿐더러 지혜롭고 말재간도 뛰어나지를 않은가. "차 대접을 잘 받았소. 그런데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며 날 찾아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묻고 싶군요." 여인이 더욱 교태스럽게 몸을 흔들며 말했다. "과연 구양선생다워요. 곁에 미인과 술잔을 두고도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다니. 당신이 알고 싶다면 알려드리지요." 그러면서 여인이 가까이 오더니 구양봉의 옷깃을 바로잡아주었다. 손길은 말 그대로 섬섬옥수로 향기마저 나는 듯했다. 그런데 여인은 옷깃을 여미며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주무르다가 톡톡 털기도 하며 오래 그러고 있는 것이었다. 구양봉의 옷깃은 오래 흙먼지에 시달려 있어 매우 더러웠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든 님의 옷깃인양 정성스레 매만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섬섬옥수의 손길이 구양봉의 옷깃에서 떨어졌다. 그러면서 여인이 입을 열었다. "전 미립이라고 불러요." "미립?" 여인은 구양봉을 유심히 바라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듣자하니 구양봉선생께서는 개방의 녹옥죽봉을 손에 얻으셨다 들었는데 전 그것에 매우 관심이 깊답니다. 저의 부친 미운산이 개방의 방주이거든요. 아버지는 수하의 장로에게 해를 입어 지금 두 다리를 못쓰게 되었죠. 걸을 수도 없어요. 그리하여 할 수 없이 녹옥죽봉을 개방의 장로인 소씨 거렁뱅이에게 넘겨주고 자리도 내놓았지요. 하지만 선생께서 용감무쌍하기에 소씨 거렁뱅이 손에 있던 녹옥죽봉을 ㅃ앗다는데 저에게 다시 돌려줄 수는 없는지요?" 여인이 다시 부드러운 손길로 구양봉의 볼을 어루만졌다. 구양봉은 이제서야 여인이 자기를 보자고 한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왜 녹옥죽봉을 그대에게 주겠는가?" 하며 약간 냉랭하게 뿌리치자 여인이 고개를 떨구었다. "전 어렸을 때부터 개방에서 자라왔지만 지금껏 남의 업신여김을 받아보지 못했어요. 선생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부디 녹옥죽봉을 제게......" 그러나 여인의 말이 아무리 애절하여도 구양봉은 흔들리지 않았다. 간사하고 악랄하기로 소문난 그가 아니었던가. 구양봉은 더욱 매정한 눈초리로 여인을 응시했다. "당신이 황궁의 그 다섯 요리사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걸 보면 재간이 대단해. 하지만 당신이 이 녹옥죽봉을 가지려면 나와 싸워 이겨야 할걸." 그러자 여인이 갑자기 깔깔 웃으며 한 손가락으로 구양봉의 이마를 짚었다. 그 손가락은 마치 수정같이 맑아 안이 들여다보일 듯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구양봉의 이마를 소리나게 치면서 말했다. "천하의 당신 구양봉을 이길 사람이 어디 있나요? 꾀를 가지고도 당신을 속일 수 없으니 전들 무슨 방도가 있겠는지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여인이 깔깔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끊임없이 손가락 끝으로 구양봉의 이마를 자극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당신이 황궁의 다섯 요리사를 죽이지 않은 건 무엇 때문인가요?" 구양봉이 대답했다. "그댄 내가 그들을 능히 죽일 수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지?" "제가 당신의 머리에 있는 혈도를 수십번이나 건드렸는데 당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