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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3[북개홍칠공편] - 11편 (11/66)

2026-09-29 08:03:11 조회 32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소. 여러분들이 하나같이 나를 업수히 여기는데, 그걸 아는 이상 오기가 나서라도 방주 자리를 차지하고야 말겠소." 그리고는 한동안 껄껄 웃어대더니 장로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약을 올렸다. "오의파고 금의파고 피장파장 매일반, 쓸 만한 건 하나도 없고 모두가 오합지졸들 뿐인데 거기에 무슨 방주감이 있는가?" 그러자 소검 오평이 벌떡 일어나며 칼을 빼려고 했다. 소미타 추우가 얼른 오평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금의파 여섯 장로를 감당하기도 벅찬데 괜히 소씨 거렁뱅이까지 건드려 적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때 금의파 장로 청한자자 노명성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소 장로…… ." 그가 막 입을 여는데 소씨가 그의 말허리를 끊으며 큰소리로 웃어댔다. "뭐 나한테 그렇게 예의를 차릴 건 없지. 앉게. 앉아서 말해도 괜찮으니까." 완전히 노명성을 무시하는 태도였다. 노명성은 방주 다음으로 개방 장로들 가운데 가장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소씨 거렁뱅이의 무례함을 탓하지 않고 웃는 낯으로 말했다. "소 장로의 실력은 나도 한두 가지는 알고 있소. 다른 것은 몰라도 두 가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노 장로께서 말씀하시는 그 두 가지란 무엇입니까?" 소미타가 물었다. "하나는 술이요, 다른 하나는 안주 장만을 잘하는 것이지요." 노 장로가 점잖게 내뱉는 말에 뭇 거렁뱅이들은 와―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소씨 거렁뱅이는 웃지 않고 정색하며 말했다. "좋다, 노명성! 내 오늘 본때를 좀 보여 주지." 미운산이 손을 한 번 휙 저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사람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미운산의 말을 기다렸다. "이렇게 말씨름을 할 것 없네. 쓸데없이 시간만 질질 끌 게 아니라 이렇게 하세. 먼저 금의파 장로 넷과 오의파 네 장로가 겨루어 보고, 소 장로는 금의파 나머지 두 장로와 겨루기로 하세. 이렇게 각각 한 차례씩 겨루어 마지막까지 남는 두 사람이 그 승부를 가리는 걸세. 어떤가?" 개방 사람들은 일제히 찬성의 뜻을 표했다. 개방 집법장로인 사개 정원과 소미타 추우가 장로들 속에서 나와 방주 양옆에 섰다. "자, 시작들 합시다!" 사개 정원이 소리쳤다. 금의파에서는 출수표 노경이 나오고 오의파에서는 과천청 제갈옥생이 나왔다. 그들은 모두 암기의 명수였다. 때문에 사람들은 두 사람이 당연히 암기 쓰는 재주를 겨루리라고 짐작했다. "제갈 장로님, 우리 둘은 서로 혈도만 찌르는 것으로 승부를 냅시다. 개방 형제들이 보고 있는 데서 상대방에게 중상을 입히면 앞으로 형제들 보기 민망하지 않겠소?" 출수표 노경이 말했다. 워낙 과묵한 성격인 과천청 제갈옥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마주서서 두 손을 늘어뜨린 채 상대방의 어깨와 팔만 노려보았다. 개방 사람들은 두 사람의 명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최근 출수표 노경은 표도( 刀) 열 개를 던져 열 사람을 동시에 찔러 눕히고 노주 4괴(四怪)의 포위를 간단히 물리친 바가 있다. 그런가 하면 과천청 제갈옥생은 손 한 번 번쩍하면 암기가 새까맣게 하늘을 가렸다가 쏟아져 내리는데 이렇듯 암기 던지는 재주가 뛰어나다해서 우과청천(雨過靑天) 과청천으로 불리기도 했다. 둘의 암기 실력이 이러하니 누가 이기고 누가 질지 치러 보지 않고서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두 사람은 한동안을 그렇게 꼼짝 않고 마주서 있었다. 너무도 긴장하여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는 눈치였다. 누구라도 한치의 빈틈만 보였다간 그대로 패할 것이었다. 그런데 출수표 노경의 팔소매가 아쉽게도 너무 길었다. 소매가 길면 자연 손 쓰는 데 방해가 된다. 제갈옥생에게도 약점이 보였다. 그는 머리 뒤에 시정배들이 쓰는 족두리모자를 썼는데 그 꼭대기에 술이 있고 뒤통수엔 댕기 같은 것이 달려 있어 이것도 암기를 쓰는 데 장애가 될 게 틀림없었다. 문득 출수표 노경이 눈을 깜빡했다. 이때를 틈타 과청천이 잽싸게 손을 움직였다. 순간 한 무리 황충이 날아가는 것 같은 소리가 쉬익쉭 일며 향적(向笛), 비침(飛針) 그리고 철질(鐵疾) 같은 여러 종의 암기 몇십 개가 노경을 향해 날아갔다. 출수표는 앞뒤로 암기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출수표 노경도 약간 늦었을 뿐, 과청천이 암기를 던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이미 은표(銀 ) 열두 개를 내던진 상태였다. 그것들은 과청천의 대혈을 겨냥하고 날아갔다.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때였다. 출수표 노경이 갑자기 비틀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넘어지려 했다. 비침이 어깨의 혈도를 찔러 어깨가 마비되는 통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과청천 제갈옥생도 팔에 은표를 맞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혈도를 찔리지는 않아 이 첫번 시합에선 오의파 장로 과청천 제갈옥생이 이긴 셈이었다. 금의파 장로 부귀산인 범장천은 맞은편에서 소검 오평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사뭇 긴장했다. 개방에는 이름난 검객이 둘이 있었는데 하나를 소검 오평이고 다른 하나는 옥면검객 호심이었다. 소검 오평의 검술은 피를 보면 더욱 날렵해지는데 그 자신도 남과 싸울 때 부상을 입지 않은 적이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부상을 입을수록 검술이 비상해지니 이상한 일이었다. 한편 옥면검객 호심은 그가 개방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어디서 태어나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알 수가 없으며, 때문에 그의 검술이 어느 문하의 검술인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넓고 두텁고 녹이 슨 칼 한 자루를 그저 무작위로 휘둘러 대는 듯했는데,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보고 검술에 대한 학문은 없이 오직 사람 죽이기만 즐길 뿐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오의파에서 소검 오평이 나왔으니 금의파에서는 자연 옥면검객 호심이 나와 대적해야 할 것이다. "호 장로, 호 장로가 오 장로와 겨루어 봄이 어떻겠소?" 범장천의 말에 사람들의 눈길은 일제히 호심에게로 쏠렸다. 호심은 달빛에 검을 뽑아 비춰 보면서 심드렁히 말했다. "범 장로님, 이 검은 남과 겨루어 보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남을 죽이는 데 쓰는 검인 줄 모르시오?" 그리고는 검을 보지도 않고 공중에다 힘껏 집어 던졌다. 검은 꼿꼿이 하늘을 찌르며 까마득히 올라가더니 내려올 때는 칼끝이 땅을 향하고 있었다. 호심은 가볍게 칼집을 내밀어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떨어지는 칼을 받아 냈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나 실은 수월치 않은 재주였다. 사람들은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소검 오평이 옥면검객 호심에게 다가갔다. "지금 그런 녹슨 칼로 잔재간이나 부릴 땐가? 자, 나하고 당장 자웅을 겨뤄 보자구." 소검 오평의 말에 옥면검객은 냉소를 흘렸다. "내 이 칼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지 남과 겨루는 데 쓰는 칼이 아니라니깐." 그는 이렇게 말하며 소검 오평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발끈한 소검 오평은 당장 칼을 쫙 뽑아 옥면검객 호심 앞에 휘두르며 열몇 가지 검법을 과시해 보였다. 그것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것으로 누구라도 당해 낼 수 없을 만큼 빈틈없어 보였다. 그러나 옥면검객은 참선하는 중처럼 눈을 감고 무심한 태도를 취했다. 기실 이것은 소검 오평에 대한 가장 큰 모욕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오만한 호심의 태도에 오평은 화가 날대로 났다. 그는 호심의 왼쪽 팔에 칼끝을 갖다 대고 소리쳤다. "네가 말 한마디만 하면 이 칼을 떼겠다." 그는 칼끝으로 호심의 의복을 어깨로부터 죽 내리그었다. 그러나 호심은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오평은 호심을 쏘아보면서 그를 한칼에 찔러 죽이고 싶은 심정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상대가 전혀 손을 쓰려 하지 않는데 어떻게 찔러 죽일 수 있겠는가? 이때였다. 일점지 나장태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니, 금의파엔 사람이 없나? 이렇다 할 검법도 없는 옥면검객을 내보내서 지금 뭐하자는 건가?" 그러나 금의파 장로들은 누구 하나 말이 없었다. 물론 그들도 심기가 편할 수는 없었다. 호심이 아무리 평소에 말이 없고 우직한 성격의 사나이라 하지만 이렇듯 방주 자리를 놓고 다투는 판국에도 저렇듯 꿈쩍도 안 할 수 있단 말인가. 칼끝은 옥면검객 호심의 팔뚝에 더욱 깊이 파고들어 급기야 피가 샘솟듯 하였다. 호심은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짓더니 비로소 입을 열었다. "오평이, 자네가 날 이렇게 협박하니 하는 수 없군. 나중에 나를 원망하지나 말게." 오평이 호심의 팔에서 칼을 뽑으며 내뱉었다. "원망하고 안 하고는 차후 문제지." "겁 많은 자가 오히려 용감한 척하고 용감한 자가 오히려 겁 많아 보인다는 도리를 자넨 모르는 모양이군. 자네가 오늘 지면 오히려 검도대가(劍刀大家)란 말을 들을 수도 있을지 모르지." 그러면서 옥면검객은 칼을 번쩍 뽑아 들었다. 둘은 드디어 한데 어울려 싸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싸움은 과청천 제갈옥생과 출수표 노경의 싸움과는 사뭇 달랐다. 암기로 싸우는 것은 물론 교묘한 재주를 보는 구경거리이기는 하지만 이렇듯 피투성이가 되도록 씨름하는 칼싸움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지는 않았다. 오평은 옥면검객 호심의 주변을 돌면서 칼을 바람개비처럼 휘둘러 대고, 옥면검객 호심은 한 손엔 칼을 한 손엔 칼집을 들고 오른발 왼발을 바꾸어 디디면서 소검 오평의 칼을 피하기만 했다. 옥면검객은 이미 어깨와 허벅지에 칼을 맞았다. 사람들은 당연히 옥면검객을 걱정하며 손에 땀을 쥐었다. 그런데 소씨 거렁뱅이는 달랐다. 그는 오히려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오평 저 친구는 검법이 너무 약해." 이때였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섬광이 한번 번뜩하더니 어지럽게 휘두르던 오평의 검이 뚝 멎으면서 그 대신 호심의 검이 오평의 가슴을 내질렀다. "으악!" 오평은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소검 오평은 옥면검객의 칼에 왼팔이 절반이나 뭉텅 끊겨 달아났다. 절반밖에 남지 않은 팔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고 눈물을 흘리며 쓰러져 있는 오평의 고통스러운 기색은 눈뜨고는 볼 수가 없었다. 오의파 장로인 소미타 추우와 과청천 제갈옥생이 급히 뛰어가 구급치료를 하느라 야단이었다. 방주 미운산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혈도를 누르는 것으로 승부를 가리기로 하였는데 저렇듯 독하게 손을 대다니……." 옥면검객 호심이 미운산에게 읍을 하며 조용히 대꾸했다. "개방의 장로로서 오늘 용서 못할 죄를 저지른 줄 저도 압니다. 이제부터 저는 개방의 일에 절대 상관을 안 하겠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들고 있던 칼을 허공에 던져 올렸다. 이번에는 칼자루가 먼저 내려왔다. 그는 칼을 잡더니 대뜸 칼집을 세 번 내리쳤다. 칼집은 세 동강이 나서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동안 개방에 있으면서 은혜를 입은 분들과는 이제부터 그 은정을 끊는 것이요, 나와 원수진 사람은 개방과 관계없는 일이라면 나를 찾아와도 좋다는 말입니다." 옥면검객 호심은 이 말을 하고는 그 녹슨 칼을 들고 그곳을 떠났다. 옥면검객 호심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탄해 마지않았다. 옥면검객 호심이 소검 오평과 겨루다가 그를 다치게 했으니 금의파와 오의파 간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호심은 이것을 단순히 자기 개인과 오평 간의 은원에 귀결시키면서 개방을 적대시하는 말을 하였다. 이렇듯 죄를 뒤집어쓰는 것이 금의파를 위해서는 좋을지 몰라도 그 자신이 앞으로 강호에서 활동하는 데는 상당히 불리할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옥면검객 호심의 사내다운 처사에 감격하여 그의 모습이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이때 소미타 추우가 갑자기 소리쳤다. "금의파가 하는 짓이란 게 그렇지! 겁쟁이들이 아니면 허명만 가진 것들이! 자, 누구든 나와 겨루어 볼 자는 나오시오!" 그러자 청한자자 노명성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원래 돈이 굉장히 많은 부호였으나 가산을 모두 흩어 버리고 개방에 들어와 몇 년 안 되는 사이에 9대 장로가 되었다. 개방 안에서도 성망이 아주 높은 장로였다. "소미타, 자넨 개방의 집법장로가 아닌가? 그럼 말도 점잖아야지. 방중 제자들이 웃네, 웃어." 소미타가 앙천대소를 하였다. "청한자자라구? 이름은 좋다. 개방 아래위를 오르내리며 이간이나 일삼고 시비사단만 일으키면서도 청한자자라구? 금의파에 온통 자네 같은 작자들만 모여 있으니 우리 개방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지." 그러자 금의파와 오의파에서는 동시에 서로를 탓하며 비난하는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노명성, 어디 자신이 있으면 한번 덤벼 봐! 왜 덤비지 못해?" 소미타의 말에 노명성이 웃는 얼굴로 대꾸했다. "추 장로, 자넨 웬만하면 나하고 붙지 않는 게 좋을걸? 개방에서 나보다 센 사람은 오로지 범 장로와 나 장로뿐이야. 자네 같은 사람은 나한테 상대도 안 된다구." 소미타는 겉으로 볼 땐 성질이 너그러워 보이나 사실은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개방의 집법장로가 되었겠는가? "노명성, 네가 강녕(江寧)에서 무수한 사람을 죽인 일을 누가 모르는 줄 아느냐? 그러고도 개방에 들어와선 부처님 같은 얼굴을 하고 점잖은 체해? 남들이 인품 좋은 사람이라고 너를 칭찬할 때 부끄럽지도 않더냐?" 소미타가 마구 지껄였다. 순간 노명성의 기색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강녕에서의 일이 들춰지는 것을 가장 꺼려 했다. 그런데 소미타가 오늘 개방 사람들이 다 모인 앞에서 그 일을 들먹이니 속이 뒤집혔다. "좋다. 네가 기어이 나와 겨루어 보겠다면 나도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지." 노명성은 한걸음 다가서며 소미타를 겨냥하여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노명성의 장력은 일종의 면장공부(綿掌功夫)라고도 하는 아주 무서운 것이었다. 손바닥을 내밀 때는 별것 아닌 듯 조용하지만 일단 장력에 닿기만 하면 분신쇄골이 되곤 하였던 것이다. 노명성이 손을 쓰자 소미타도 노명성의 장법이 보통이 아님을 아는지라 황급히 대적해 나섰으나 몇 합도 못 가서 금세 허둥대기 시작했다. 소미타의 무공이란 손가락으로 상대방의 혈도를 찌르거나 손톱으로 살가죽을 찢어 상대방을 상하게 하는 재주뿐으로 노명성 같은 고수들 앞에서는 그 재주를 그나마 발휘하지 못했다. 소미타는 병장기라도 쓸까 생각해 보았으나 그럴 수도 없어 그저 피하기만 했다. 노명성은 한치의 틈도 주지 않고 공격을 가하면서 장을 후려쳤다. 아예 소미타를 요절낼 심산이었다. "청한자자 노명성! 날 죽일 테면 죽여라. 이렇듯 독한 술법을 쓰는 네 심보를 누가 모를 줄 아느냐?" 소미타가 위험함을 안 오의파 장로들은 모두 가슴을 죄었다. "이러다간 또 한 사람이 죽겠다!" 갑자기 탄식 소리가 들리더니 한 사람이 뛰쳐나와 그 싸움에 끼여들었다. 그는 소미타와 더불어 노명성을 대적하였다. 사람들이 웅성내기 시작했다. 싸움에 끼여든 사람은 놀랍게도 금의파 장로사개 정원이었던 것이다. 그는 비록 금의파 장로이지만 평소 소미타 추우와 가장 친했다. 둘은 다 같이 개방의 집법장로로서 매사에 행동을 같이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현재 소미타 추우가 노명성의 손에 크게 상할 것 같으니 정원은 자신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고 무조건 뛰쳐 나와 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노명성은 어이없어 하다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사개!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젠 이겼다 하고 추 장로를 돌려 보내시오. 이겼으면 됐지, 사람을 죽여야만 직성이 풀리겠소?" 사개가 말했다. 그러나 지금의 노명성은 평소의 청한자자가 아니었다. "사개, 넌 간참 말아!" 노명성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 소미타를 공격하여 사경으로 몰아 넣으려 했다. 그의 과거를 까발긴 소미타를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그는 소미타에게 본때를 보여 줌으로 해서 누구라도 자기의 과거를 들먹이는 자는 용서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보다못한 사개가 느닷없이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의 휘파람 소리에 어디선가 뱀 세 마리가 튀어나왔다. 뱀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노명성에게 날아가더니 그의 어깨와 목을 칭칭 휘감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자 은근히 고소해졌다. 평소 엄연한 장자(長者)의 체풍으로 점잔을 빼던 노명성이 이 꼴이 되었으니 우습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죽일 놈아, 어서 뱀을 못 치우겠느냐? 이런 못된 짓이 어디 있어?" 노명성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사개는 소미타를 끌고 몇 장 밖으로 물러났다. 그가 노명성을 향해 놀리듯 말했다. "가짜 부처님, 항복하시지요. 항복 안 한다구요? 그럼 나하고 또 백여 합 싸워 볼까요?" 소미타는 차마 웃지 못하고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는 패배를 자인하고 있었다. 사개 정원은 아까와는 달리 느리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 소리에 뱀들은 비로소 노명성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사개에게로 구불구불 기어오더니 그의 머리며 목덜미에 유순하게 매달렸다. 금의파와 오의파는 세 번을 연거푸 겨룬 셈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부귀산인 범장천과 일점지 나장태의 차례가 되었다. 싸움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을 주목했다. 범장천의 술수가 교묘하고 세밀하다면 싸움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두 사람은 몇십 합을 싸웠으나 좀처럼 승부가 나질 않았다. 범장천과 나장태는 서로가 한치의 양보 없이 사생결단을 내려는 듯 날뛰었고 그 술수는 점점 독해져 갔다. 그러나 반나절을 싸워도 좀처럼 승부가 나질 않았다. 미운산은 소씨 거렁뱅이를 돌아보았다. 소씨 거렁뱅이가 그들 둘과 싸워 보길 바라는 눈치였다. 이를 눈치챈 소씨는 은근히 부아가 났다. '기가 차는군. 나 혼자서 저 두 사람을 상대하라구?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인가?' 그러나 그는 미운산 앞에서 이미 개방 방주를 당분간 맡아보겠다고 약속한 터라 모르는 척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나서며 두 사람을 향해 고함을 쳤다. "잠깐! 잠깐 내 말을 들으시오!" 한창 죽기살기로 싸우던 두 사람은 엉뚱하게 소씨 거렁뱅이가 뛰어들자 일시에 그에게로 격분이 쏠렸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한패가 되어, 범장천은 36식 탈혼장(奪魂掌)으로 나장태는 적고권(赤尻拳)으로 일제히 소씨 거렁뱅이에게 달려들었다. 소씨 거렁뱅이는 취권(醉拳)을 써서 두 사람을 대적했다. 비틀비틀하면서 주먹으로 나 장로를 후려갈기기도 하고 발길질로 범장천을 내지르기도 하면서 잠시도 숨돌릴 틈 없이 반나절이나 싸웠다. 소씨 거렁뱅이의 손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나장태와 범장천은 소씨 거렁뱅이가 엉뚱한 짓을 잘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와 한 번도 싸워 본 적은 없었는데 막상 겨루어 보니 그 내력이 보통이 넘었다. 나장태는 권법을 바꿔 적고권 대신 금나24식(擒拿二十四式)을 써서 소씨 거렁뱅이를 공격했다. 그중에도 꼬집고 비틀고 뜯는 술법 몇 가지가 극히 교묘했고 특히 꼬집는 술수가 비상했다. 이로써 소씨 거렁뱅이의 기세가 다소 기우는 조짐을 보였다. 이를 눈치챈 범장천이 소리쳤다. "이봐 소씨, 그 잘난 무공을 자랑하고 싶어서 끼여든 모양인데, 어서 덤벼 보라구." 그리고는 나 장로보다 더욱 독한 장법으로 공격을 해댔다. 두 사람은 혈도를 찌르는 정도로 싸움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소씨 거렁뱅이를 아예 죽여 버릴 작정으로 돌아쳤다. 그러나 소씨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둘 사이를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대며 아슬아슬하게 피해 다니다가 돌연 나장태의 어깻죽지를 냅다 후려쳤다. "어이쿠!" 나장태는 단말마적인 비명을 내지르며 저만치 날려가 '쿵' 하고 떨어졌다. 소씨가 한숨 돌리며 범장천을 향해 말했다. "이쯤에서 끝내기로 합시다." 소씨가 자리를 뜨려 하자 범장천이 대노하여 소리쳤다. "소씨 거렁뱅이! 난 너하고 끝장을 볼 테다!" 그는 잽싸게 소씨 거렁뱅이의 앞을 막아 섰다. 소씨 거렁뱅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범장천을 노려보았다. 범장천은 그 기세에 눌린 듯 주먹을 휘두르려다 말고 소리쳤다.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테냐! 감히 덤비지는 못하는 걸 보니 내가 무서운 모양이지?" 이를 지켜 보고 있던 미운산이 한심한 듯 끌끌 혀를 찼다. 평소에 범장천이 그토록 속 좁은 사람인 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저렇듯 자제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성품의 소유자에게 어찌 개방 방주 자리를 맡길 수 있겠는가? "범 장로, 얘기 좀 하세." 미운산이 범 장로를 불렀다. 범 장로는 하는 수 없이 싸움을 그만두고 못 이기는 척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솔직히 막상 싸움을 계속한다면 소씨 거렁뱅이를 이길 자신도 없던 터였다. 미운산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두 손을 모아 쥐고 사람들을 향해 읍을 하고는 말했다. "약속대로 모두 한차례씩 무공을 겨뤄 봤소. 결과는 역시 내가 짐작했던 대로요. 자,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소? 소씨를 새 방주로 내세웠으며 하는데 아직도 반대하는 분이 계시오?" 소검 오평이 상하고 소미타 추우와 일점지 나장태가 패한 오의파에서는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