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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3[북개홍칠공편] - 4편 (4/66)

2026-09-29 08:03:11 조회 36
왜 못 나오나? 여기 넓은 데 나와 싸우는 게 영웅이다. 몇백 번을 싸워도 우린 겁나지 않아!" 개방 장로들은 밖에서 입을 모아 소리쳐 댔다. 그러나 대내오주는 대답이 없었다. 대내오주는 일제히 누각에 올라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서 느긋하게 주인을 부르고 있었다. "주인장! 어서 술과 안주를 푸짐히 챙겨 와! 아쉽게도 소씨 거렁뱅이의 강산이개를 못 먹게 되었구나. 거 참 아쉬운데?" 묘대야의 말에 대내오주들은 모두 한바탕 웃어젖혔다. 한참을 웃어대던 대내오주들은 이 재수 사나운 홍안루 누각에 괴상한 손님이 또 하나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님은 대내오주들은 거들떠보지도 알고 혼자서 술만 마시고 있었는데 여자처럼 유난히 매끄럽고 깨끗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길래 이렇듯 혼잡스런 홍안루에 앉아서 덤덤히 술만 마시고 있는지, 귀머거리나 소경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럴 수가 있는지 암만 봐도 이상했다. 묘수인주 묘대야는 그 섬섬옥수 같은 손이 술잔을 들어 소리도 없이 잔을 비워 내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묘대야는 자기네 패거리 넷을 한번 돌아다보고는 그 객이 있는 탁자로 건너갔다. 객은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직 술잔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째 혼자서 술을 마시오? 자작 술이 재미가 없을 텐데 우리 함께 한잔 하시겠소?" 묘대야가 말을 걸었다. "왜요? 왜 함께 마시자는 거요?" 객은 쌀쌀히 되물었다. 묘대야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자기 딴에는 호의로 청한 것인데 이렇듯 무례한 태도를 보일 수가 있는가 싶었다. 하지만 묘대야는 금방 웃음을 지으며 또 말을 걸었다. "아하, 공자는 이 홍안루에 술 마시러 온 것이 아니라 구경을 온 것 같구만." 객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겠다는 듯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묵묵히 술잔을 기울였다. 묘대야는 이 젊은이가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보면 볼수록 이 젊은 공자의 외모가 놀라웠다. 마치 여자와도 같은 갸름한 얼굴에 섬세한 이목구비가 절대가인 뺨치게 아름다웠다. 묘대야는 자기도 모르게 크게 웃으며 감탄했다. "공자님은 정말 인물이네. 아쉽게도 사내이니 그렇지 여인으로 태어났으면 궁녀로 선발되어 나랏님 시중을 들었을 거야." 묘대야는 악의 없이 그저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그는 오랜 세월 궁중에서 살아온 탓으로 언제나 매사를 궁중의 생활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젊은이는 묘대야의 말에 발끈 성을 내며 손에 쥐었던 젓가락 한 쌍을 딱 분질러 버렸다. 그가 차디차게 웃으며 비꼬았다. "그래 당신이 궁중에 있는 황제요?" 묘대야는 은근히 화가 났지만 어쩐지 이 젊은이가 귀엽게도 생각되어 은근한 눈길로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 친구를 집에 데려가면 아주 재미있겠는데?'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내 말을 기분 나쁘게 생각지 마시오. 우리 비록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이지만 어쩐지 일면이 여구한 생각이 자꾸만 들어 공자와 벗으로 사귀었으면 해서 한 말이오." 그러나 그 공자는 여전히 묘대야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품에서 작은 부채 하나를 꺼내어 부채질만 하다가 문득 물었다. "왜 나하고 벗을 하자는 거요?" "공자를 보니 범상한 인물이 아닌 인중용봉(人中龍鳳)이어서 벗 삼으면 좋을 것 같아 그러지요." 묘대야가 그럴듯하게 대꾸하였다. 대내오주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 묘대야는 남달리 남자들과 그 짓 하기를 즐기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걸핏하면 궁내에 있는 어린 태감들을 불러들여 그런 짓을 하곤 했는데 언제나 큰 만족은 못 느끼던 터였다. 그런데 오늘 그는 궁 밖에서 이렇듯 젊고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이를 보게 된 것이다. 이에 혹한 묘대야는 자기가 누구인지도 잊고 젊은이를 궁중의 어린 태감 다루듯 하려 했다. 그러나 생각 밖으로 공자는 만만치 않았다. 그는 얼굴이 빨개서 묘대야를 노려보다가 툭 쏘아붙였다. "우리가 언제 봤다고 이렇게 지분거리는 거요? 계속 이러면 나도 참고 있지마는 않을 거요!" "공자가 뭐라고 해도 난 괜찮소. 하지만 그렇게 화를 내는 건 몸에 해로우니 조심하시오." 묘대야가 능글맞은 웃음을 입가에 매달았다. 묘대야는 이 젊은이에겐 말 그대로 홀딱 반하여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젊은이가 더 말이 없자 묘대야는 내심 기뻤다. 그는 젊은이가 당장이라도 칼을 때들고 달려들지 않는 것이 그도 자기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묘대야는 젊은이에게 은근히 말했다. "난 공자를 보자 첫눈에 마음이 들었소. 나하고 함께 가지 않겠소? 나와 저 사람들은 아주 넓은 집에서 사오. 가 보면 알겠지만 천하에 그렇게 좋은 집은 없을 거요." "그럼 황궁에서 산단 말이겠군요?" 젊은이가 놀리듯 말했다. "맞았네, 맞았어. 우린 정말 황궁에서 산다오. 공자는 과연 눈썰미가 있군." 한편 다른 넷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빙그레 웃기만 했다. 모두들 묘수인주 묘대야의 속내를 짐작하고는 개탄하고 있었다. 무공만을 보면 천하 부러울 게 없는 묘수인주이건만 잘생긴 남자만 보면 혹해서 꼼짝을 못하는 것이 한심하기도 하고 딱하기도 했다. "이보오, 공자. 그 술잔을 비우면 내가 또 한잔 따를 테니 우리 두 잔씩 곱들이 술을 마시는 게 어떻겠소?" 묘수인주가 다시 추근대자 젊은이는 갑자기 크게 웃더니 물었다. "대체 당신은 누군데 나하고 맞잔을 하자는 거요?" 젊은이가 얼굴에 웃음을 띄우자 묘대야의 얼굴에도 희색이 만면해졌다. "나 말이오? 나는 묘대라고 하는데 황궁의 일을 보는 사람이오." "그래 황궁에서 벼슬한단 말이시오?" 젊은이가 또 물었다. 다른 넷은 묘대야가 도대체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해 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나는 묘대야라고도 하는데, 본명은 묘무인(妙無仁)이오. 황궁 안에서 벼슬은 하오만 이 벼슬은 다른 벼슬과 다르오. 궁내에서 탐관들을 없애는 일을 하기에 여느 때는 황궁 밖을 나와 보지 못하다가 오늘 모처럼 나와 공자님을 만나게 되니 아주 기쁘오." 묘대야의 말에 젊은이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여느 때 황궁 밖을 나오지 못했다니 그게 무슨 벼슬이오? 그렇다면 궁중에서 일하는 거…… 거 뭔가……." 이 젊은이가 자기를 태감으로 오인하고 있다는 생각에 묘수인주는 어이없어 크게 웃었다. "이런, 그런 오해는 하지도 마시오. 내가 궁내에서 일하는 건 사실이지만 내궁(內宮)이 아니라 외사방에서 일하는 사람이오. 내궁에서 일하는 것들이 태감이고." 다른 넷은 그 말에 키득키득 웃었다. 어째서인지 사람들은 묘수인주를 태감으로 보는 일이 많았다. 묘수인주 묘대야의 목소리가 양기 부족한 남자들처럼 앵앵거려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럼 노형의 관직은 몇 품이시오?" 젊은이가 물었다. 다른 넷은 또 묘대야가 뭐라고 대답하나 보자고 웃음을 머금으며 쳐다보았다. "공자, 솔직히 말해서 내 벼슬은 크지도 작지도 않고 그저 일품(一品)밖에 못 되오. 일품 벼슬이 조정에서는 얼마나 큰 벼슬인지 알겠지?" 묘대야의 대책 없는 거짓말에 네 사람은 하나같이 놀랐다. 그러나 한편으론 묘대야의 말재주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묘대야가 일품이라고 말한 것은 사실 전혀 근거 없는 것도 아니었다. 품(品)자는 품감(品鑒)·품미(品味)·품평(品評) 등에서처럼 맛을 감별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그런데 황제의 수라를 제일 먼저 맛을 보는 사람이 다름아닌 묘대야이니 그런 의미에서 일품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묘대야가 말하는 일품은 벼슬 등급을 말함이 아니라 황궁 내에서 황제의 어선(御膳)을 제일 먼저 맛본다는 것이었다. 젊은이는 물론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그는 묘대야에게 가볍게 읍을 하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노형은 고관대작이시구려. 이거 실례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투가 썩 공손한 것은 아니었다. 묘수인주 묘대야는 우쭐해져서 말했다. "내 비록 일품 벼슬을 하고 있지만 공자의 인물이 하도 비범하고 용봉의 자태라, 공자와 결의를 맺고자 하는데 공자의 의향은 어떠시오?" "형님 의사가 그렇다면 동생이야 마다할 까닭이 없지요. 하지만 저분들의 뜻이 어떨지 모르겠군요." 묘대야가 가슴을 툭 치며 말했다. "아우, 그건 걱정 말라구. 저 사람들은 높은 관리도 아니야. 비록 나와 같이 다니기는 하지만 실은 모두 내 하속들이지. 나와 함께 궁 밖을 나다니자니 남의 이목을 생각해서 그냥 급이 비슷한 것처럼 행동할 뿐이야." 묘대야는 이 젊은이가 어느 고관의 자제로 집 안에만 갇혀 지내느라 강호엔 다녀 본 적이 없어 견식이 얕은 자라고 판단했다. 그러니 자기 같은 고관대작이 결의를 맺자니 자연 기쁘게 생각하는 거라고 여겼다. 이런 생각에 우쭐해진 묘대야는 다른 넷에게 눈까지 껌벅거려 보였다. 일지칭 평오야는 묘대야의 수작을 지켜 보면서 옆사람에게 수군거렸다. "잘못하면 저 형님이 저 녀석한테 당하겠어. 저 녀석이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지만 바보는 아니오. 지금 저 형님을 해칠 궁리를 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아무래도 조심하는 게 상책인 것 같소." "어느 놈이 감히 우리 대내오주를 건드려? 담이 도대체 얼마나 크기에?" 천도만과 과이야가 발끈하자, 백수십권 우사야가 손사래를 쳤다. "다섯째 아우, 맏형 일을 너무 상관 말게. 반드레하게 생긴 남자만 보면 저러는 게 어디 어제 오늘 일인가? 자네가 걸려 들지 않은 걸 다행으로나 알고 있게." 그 말에 평오야는 입을 다물었다. 넷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던 것이다. 묘대야가 남을 해치건 말건 무슨 상관이겠는가. 대내오주들 사이에서만 그런 일이 없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묘대야는 또 앞의 젊은이를 향해 지껄여 댔다. "아우는 이름이 뭔가? 이 형도 좀 알아야잖겠나?" "미립(米粒)이라고 합니다." 젊은이는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미력? 좋아, 그 이름 참 좋네. 쌀 미(米)에 힘 력(力)이겠지?" "아니, 미립이라니까요? 쌀 미(米)에 낱알 립(粒), 미립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이름이?" 젊은이가 싱글싱글 웃었다. 묘대야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좋아, 그 이름도 멋져! 미립이라, 한 알의 쌀, 쌀 한 알이라도 소중하거든." "우스운 이름이죠 뭐.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절 그렇게 부르곤 했는데 나중엔 그게 그대로 이름이 되어 버렸답니다. 내겐 또 다른 이름이 있는데, 뭔지 아십니까?" 묘대야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 그건 몰라도 괜찮아. 아우의 이름 하나만 알면 됐지 둘까지 알 필요는 없거든. 미립이라는 이름만 알면 돼. 이제부터 내가 미립 아우라고 부르겠으니 자넨 날 묘대 형님으로 부르게. 어떤가?" 그러자 젊은이는 일어서서 묘대야에게 읍하였다. "묘대 형님!" 묘대야도 기뻐하며 일어서서 마주 불렀다. "미립 아우!" 둘은 서로 읍하고 다시 마주앉았다. "미립 아우는 여긴 어쩐 일로 오게 됐나?" "솔직히 말씀 올리면, 여기 홍안루에 고수 한 분이 강산이개인지 뭔지 하는 명요리를 한다기에 그 맛을 좀 볼까 해서 찾아왔지요. 그런데 누각에 오르니 주방에서 난장판이 벌어졌더군요. 심부름꾼에게 물어서야 일이 난 줄 알았지요. 그러나 주루에 온 이상, 강산이개를 못 먹으면 본성난개라도 먹고 가자 싶어 이렇게 앉아 있던 참입니다." 젊은이는 말을 마치며 크게 웃었다. 그러자 젊은이의 양볼에 예쁜 보조개가 곱게 패었다. 묘대야는 눈을 더욱 커다랗게 떴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남자가 또 있을까? 그는 미립의 웃는 얼굴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오금이 저리고 황홀해졌다. 이런 미남을 밀우(密友)로 삼아 같이 살 수 있으면 평생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하여튼 난 아우의 그 성격이 참 마음에 드네." 묘대야가 웃으며 말했다. 둘은 다른 넷은 상관치 않고 그저 웃고 떠들었다. "다섯째야, 형님에게 가서 그만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물어 봐라. 하인인 것처럼 가장하고." 둘째 과이야가 언짢은 기색으로 다섯째에게 일렀다. 다섯째인 일지칭 평오야는 묘대야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아주 공손한 태도로 굽신 절을 하고는 물었다. "나으리, 그만 입궐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지칭 평오야의 마음을 읽은 묘대야는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고관답게 헛기침을 섞어 대답했다. "난 이 미립 아우와 재미나는 얘기를 좀더 해야겠으니, 너희들은 먼저 돌아가 기다리거라." 일지칭 평오야는 더는 말하지 않고 묘대야에게 또 한 번 굽신하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나으리께선 우리들더러 먼저 객점에 돌아가 기다리랍니다. 나으리께선 좀 있다가 오시겠답니다." 그 말에 나머지 셋은 두말없이 일지칭 평오야와 함께 자리를 떴다. 묘대야는 보면 볼수록 미립이 마음에 들었다. '이 애가 아무리 봐도 명문 거족의 자제는 아닌 것 같아. 명문 거족의 자제라면 이름을 미립이라 지을 수는 없지. 어쨌든 이렇게 만난 것도 행운인데 한번 단단히 재미를 봐야겠어.' 묘대야는 음심(淫心)이 크게 동하였다. "미립 아무, 우리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함께 서사(書肆)에나 가 보지 않으려나?" "그럽시다. 형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지요." 미립은 선선히 동의해 나섰다. 둘은 어느 한 서사(書肆 ; 옛말하는 곳)에 이르렀다. 당시 남송 때는 이렇게 옛말을 하는 곳들이 도처에 많았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그 당시의 일들은 이야기하지 못하고 오로지 송나라 개국 당시의 영웅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그 옛말은 또 당시 사람들의 민심을 말해 주기도 하여 적지 않은 공감을 일으키곤 했다. 청중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뻐서 웃기도 하고 안타까워 주먹을 쥐기도 하고 아쉬워서 탄식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국가의 흥망을 걱정하고 있는 열혈의 사람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유형의 서사도 있었으니 여기서는 나라야 망하든 흥하든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남녀간의 곡절과 경난만을 이야기하며 치마가 술에 흠뻑 젖도록 온 밤을 술주정으로 새는 향락의 장소였다. '망국의 원한을 모르는 상녀(商女)는 강 건너 바라보며 꽃들만 노래하네'라는 당나라 때 시구가 말하듯이, 망우지락(忘擾之樂)을 즐기면서 남자들은 환락에, 여인들은 매춘에 밤 가는 줄 모르는 곳이었다. 이런 서사에 들어서면 그 안은 여느 서사들과 다름을 첫눈에 알 수가 있다. 집 안 정면에는 자그마한 서대(書臺 ; 이야기하는 사람이 앉는 단)가 만들어져 있고 그 위에는 탁자가 하나 있는데 탁자 위에는 이야기꾼의 필수품인 경목( 木), 접부채, 필척(筆尺)이 놓여 있다. 그리고 서대 아래에는 쌍방이 앉는 탁자들이 있는데 어떤 것은 원탁이다. 이야기꾼은 한 사람이 아니라 늘 둘이 나와서 흉내를 내어 말하는데 그 동작이 아주 구체적이다. 집 안은 사치하게 꾸며져서 일반인들은 들어오지 못하고 돈 많은 부잣집 공자들이 기관(妓館)의 명기들을 데리고 와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나 창극을 들으면서 재미를 보곤 한다. 묘대야는 미립을 데리고 이런 서사를 찾아갔다. 서사는 부잣집 공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묘대야는 궁내의 요리사로는 이름이 있었지만 궁 밖에 나서서는 그런 위풍이 없어졌다. 묘대야는 내심 부끄러운 생각도 없지 않아 한쪽 구석에 있는 탁자를 찾아 미립과 함께 앉았다. 경성 임안의 공자들이 명기들을 데리고 치근덕거리는 걸 보자 묘대야의 속은 더욱 근질거렸다. '이렇게 여기까지 와서도 미립이 내 뜻을 모르지야 않겠지. 만일 내 마음을 모르고 있다면 내가 공연한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미립은 이런 장소가 처음이었다. 서사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던 미립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내건 여자건 할 것 없이 방탕하고 천박하게 구는 것이 전부 눈에 거슬리고 귀에 거슬렸다. "묘대 형님, 여긴 왜 온 겁니까? 정말 한심하군요. 여기 온 사람들은 모두 밥 먹고 하릴없는 사람들 같습니다. 사내나 계집이나 전부 싱거운 소리들만 하고 있으니, 도대체 여긴 뭐하는 뎁니까?" '오라, 이 녀석이 아직 세상 물정을 통 모르는 햇병아리구나.' 이런 생각이 든 묘대야는 히죽 웃었다. "서울 임안에서 제일 좋은 곳이지. '서호에서 달을 보고 완계(浣溪)에서 벼랑을 보고 서사에서 이야기를 듣고 작은 누각을 사서 별실을 앉힌다…….' 이런 말 못 들어 봤나? 이게 무슨 말인지 아나?" "모릅니다. 형님은 아십니까?" 미립이 천진하게 물었다. "나야 알지. 서호에서 달구경을 한다는 거야 알겠지? 달구경은 서호가 제일인데 달이 둥글면 웃고 달이 이지러지면 눈물을 흘리는 게 감정이 풍부한 문객들의 즐거움이지. 완계에서 벼랑을 본다는 것도 멋진 일인데, 완계라는 곳에 큰 산이 있고 그 산에는 높고 가파른 절벽이 있는데 개인 날 궂은 날 그 모습이 각각 다르단 말이야. 그래 '완계에 올라 보는 산 모습은 궂은 날과 개인 날이 판이하도다'라는 옛 시인의 시구도 있지. 그리고 '서사에서 이야기 듣는다'는 말 이 가리키는 서사는 여느 서사가 아니야. 여느 서사에는 창과 칼로 맞부닥치고 전쟁터 이야기나 일삼는데 재미가 그리 없지. 창과 칼을 써 사람을 죽여 본 사람이 들으면 이건 정말 아이들 장난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단 말일세. 그런데 오늘 우리가 온 이런 서사는 보통 서사와는 아주 달라. 이런 서사를 눈물의 서사라고 하는데,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사전에 수건을 네댓 개 마련해 들어와야 하고 돌아갈 때면 하도 울어서 눈들이 퉁퉁 부어 가지. '누각을 사고 별실을 앉 힌다'는 것은 남래북왕하는 강남의 상고(商賈)들이 여기 임안에다가 작은 누각을 사서 거기다 예쁜 계집을 첩으로 앉힌다는 말이야. 사람들은 이 네 가지를 임안 사경(四景)이라고도 하는데 아우는 들어 본 적이 없는 모양이지?" "전 처음입니다. 하여튼 형님은 견식이 넓군요." 미립이 살짝 횐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이때였다. 서대로 남녀 두 사람이 좌우로부터 걸어 나왔다. 왼편에선 미끈하게 차린 사나이가 나왔고 오른편에서는 화려하게 단장한 미녀가 나왔다. 서대에 나선 사나이는 남색 옷에 눈같이 횐 사백(絲 )을 수놓아 입었고 여인은 옆이 찢어진 치마에 향건(香巾)을 달고 있었다. 둘은 탁자까지 걸어오더니 서로 경당목부터 쥐려고 했다. "'사내가 경당목을 두드리면 여자는 놀란다'는 말을 모르나? 그래 내가 두드릴 줄 몰라 이녁이 두드리겠다는 건가?" 사내가 이렇게 말하자 여자는 호들갑스럽게 웃더니 대꾸했다. "남정네들만 두드리란 법이 있나요? 여자들도 한번 두드려 봐야죠?" "안 돼. 여자들이란 한 번 두드려 보면 두 번 두드려 보고 싶어하고 두 번 두드려 보면 세 번 두드려 보고 싶어한단 말이오. 그러면 계속 여자만 두드리는 게 되잖아?" "아이고, 여자들만 두드리면 어때요? 나쁠 게 없잖아요?" "좋을 게 뭐요? 천하 남자들은 다 뭘 하게 밤낮 여자들더러 두드리라고만 하겠어?" "잘한다!" "잘한다!" 청중들이 환성을 올렸다. 그러자 사나이는 좋다고 히히 웃으면서 여인의 머리를 툭툭 쳤다. "들었지? 저분들이 괜히 갈채를 보내겠어?" "묘대 형님, 왜들 저렇게 좋아들 하죠? 그 말이 뭐 그렇게 재미있다고 저러지? 묘대 형님은 아십니까?" 미립이 묘대야에게 물었다. 사실 묘대야도 청중들이 왜 환성을 올리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웃으니 자기도 덩달아 웃었을 뿐이었다. "묘대 형님, 왜 말이 없으십니까? 저 사람들이 도대체 왜 저렇게 좋아하죠?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는군요." 미립이 다시 물었다. "남들이 웃으면 그냥 따라 웃으면 돼. 남들이 울면 아마도 이건 슬픈 대목인가 부다 하고 따라 울면 되는 거고, 남들이 '좋다!' 환성을 지르면 아우도 환성을 지르면 되는 거야. 이런 데 왔으면 이런 상식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알겠나?" 묘대야의 말에 미립은 여전히 납득이 안 가는 얼굴로 머리만 끄덕였다. 이야기꾼들은 한창 달콤한 사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나이가 떠나가니 여인은 집에서 남편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는데 꿈속에 그 남편이 나타났다, 그래서 그 남편과 재미를 실컷 보고 나니 안정이 되었다, 대개 이런 이야기인데 서대 위의 남녀들은 동작들을 해 가며 노래도 하고 사설도 하였다. 청중들은 연달아 갈채를 보내며 환성을 올렸다. 그러자 묘대야도 덩달아 환성을 올리며 은자 두 냥을 꺼내어 서대에 던져 올렸다. 서대 위의 남녀는 우스갯 소리와 농짓 거리를 하며 점점 정이 무르익어 가더니 마침내는 음란한 동작까지 해 보이기 시작했다. 미립은 그만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뛰어 눈을 꽉 감고 외면했다. 한편 묘대야는 음심이 동하여 미립을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아우, 저걸 봐. 얼마나 보기 좋은가? 저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우리처럼 이렇게 맹물처럼 아무 맛도 없이 살아서야 무슨 재미가 있겠나?" 묘대야에게 안긴 미립은 가슴이 쿵쿵 뛰어 꼼짝도 못한 채 묘대야에게 말했다. "우린 남녀지간도 아닌데 왜 이러십니까? 이러다가 형수님이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