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논검3[북개홍칠공편] - 3편 (3/66)
도대체 소씨 거렁뱅이는 묘수인주 묘대야가 무슨 재주를 보였다고 저토록 찬사를 하는 걸까? "어디 내가 좀 보자. 도대체 이 배추 포기가 뭐 어쨌다고 그러는거지?" 나 장로가 다가와 그 배추 뿌리를 쥐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배추 포기를 들 때면 들기 좋게 배추 뿌리를 잡는 법이다. 나 장로는 배추 뿌리를 쥐고 위로 척 치켜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배추 뿌리에 배추 줄거리만 딸려 올라오고 푸른 배추잎은 도마 위에 전부 그대로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사람들은 그제야 묘수인주의 재주가 아주 비범함을 알고 일제히 환성을 올렸다. 각기 자기 재주를 다 뽐낸 대내오주들은 모두 소씨 거렁뱅이를 쳐다보았다. 소씨 거렁뱅이는 그들을 보고 손사래를 쳤다. "안 되겠소, 안 되겠어. 당신들 대내오주에 비하면 이 거렁뱅이의 재주는 아무것도 아니니 내 두손들겠소." 소씨 거렁뱅이는 도리질을 하며 대내오주의 눈길을 피했다. "그럼 좋아! 우리한테 항복한다 이거지? 그럼 자네 입으로 난 바보다, 하고 말해 봐. 대내오주에게 졌으니 난 바보다. 이렇게 한마디만 하면 이것으로 오늘 일은 끝내기로 하지." 묘수인주 묘대야가 우쭐거렸다. "뭐? 내가 바보라고? 내가 왜 바보야? 이 소씨 거렁뱅이가 바보는 아니지. 바보야 거기 대내오주들이 바보지. 제 손을 펄펄 끓는 기름솥에 넣어 튀기는 게 바보짓이 아니고 뭔가? 그래 펄펄 끓는 기름에다 아까운 제 손을 튀길 때 아프지 않던가? 돌이나 나무로 만든 손이 아니고서야 아프지 않을 수야 없겠지. 배추를 줄거리만 하얗게 남겨 놓은 것도 그래. 그렇게 줄거리만 먹으면 뭐 뼈가 굵어진다던가, 힘줄이 굵어진다던가? 그리고 그보다 더 한심한 건 물고기를 산째 로 기름에 튀기는 짓이지. 그런 잔인한 짓을 하면서도 기뻐하고 있으니 참 딱해 못 보겠더구만. 공자님 말씀도 모르는가? 공자님 가라사대 '군자원포주야(君子遠疱廚也)'라 하셨지."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대내오주들을 한심하다는 듯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군자가 왜 푸줏간을 멀리 하는가? 군자도 고기를 아니 먹지는 않지만, 짐승도 생명인데 그것들을 산째로 묶어 놓고 죽이는 것만은 차마 눈으로 볼 수가 없어 멀리 피하는 거지. 그런데 펄펄 뛰는 물고기를 산째로 기름에 튀기면서도 일말의 연민지심도 없이 오히려 우쭐대니 그보다 잔인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또 하나는, 고기를 얼려 그것을 국수가락처럼 훑어 가지고 기름에 튀겨 고기가락을 만들던데, 생생한 고기를 얼릴 건 뭐고 얼린 걸 훑어서 고기가락 을 만들 건 또 뭔가? 이런 걸 보고 바지 벗고 방귀 뀌듯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거야. 그리고 또 바보 하나가 더 있지. 그 좋은 닭에다 애써 주먹질 발길질을 해서 뭣 때문에 볼 모양, 입맛도 없게 만들지? 참 눈뜨고는 봐 줄 수가 없더구만. 그런 바보 같은 짓거리들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느냐구?" 대내오주들은 처음엔 소씨 거렁뱅이의 말이 무슨 고담준론인가 귀를 기울였으나 점차 한심하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소씨 거렁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대내오주들이 말이 없자 소씨 거렁뱅이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이봐, 소씨. 이젠 말 다했나?" 묘수인주 묘대야가 물었다. "뭐 그만해 두지." 소씨 거렁뱅이의 대답에 묘수인주 묘대야가 언성을 높였다. "그럼 좋다! 말을 다했다 이거지? 우리 다섯 형제의 재주가 자네 소씨 거렁뱅이보다 못하다면 어디 자네 재주를 보여 봐. 왜 못 보이는 거야?" 소씨 거렁뱅이는 한동안 대답이 없이 눈만 껌벅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내 솜씨를 구경해야겠다구? 그럼 그러지 뭐. 난 내가 익숙한 그 요리나 하나 해 보이지. 거기 다섯이 내 요리 솜씨를 배워 낼 수 있을까 모르겠는데, 나처럼만 할 수 있다면 내가 정말 항복을 하겠소." 소씨 거렁뱅이는 느릿느릿 조리대 앞으로 다가서더니 갑자기 소리쳐 누군가를 불렀다. "홍칠이! 이봐, 홍칠이! 이게 어디 갔나? 어서 이리 나와! 어서 나와 이 나으리들께 내가 가르쳐 준 요리 솜씨를 한번 보여 주라구." 그러자 어디선가 낮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솜씨는 무슨 솜씹니까? 난 왜 사부님한테 무슨 솜씨가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을까요? 아니, 저 사람들한테 보여 주긴 뭘 보여 주겠다는 겁니까?" 소씨 거렁뱅이는 새로 나타날 이 사람과 아주 가까운 듯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들이 글쎄 이 소씨 거렁뱅이의 강산이개를 만드는 솜씨가 부러운 모양이야. 자기들도 좀 배워 봤으면 한단 말이네. 자기들도 배울 수 있으면 우리 솜씨도 별거 아니라 생각할 테고, 배워 내지 못하면 우리가 저 사람들보다 여러 면에서 대단한 셈이 되거든. 저 사람들이 과연 배워 낼 수 있을 것 같은가? 어때?" "사부님은 언제나 황당한 일만 하시는군요. 저 사람들이 우리 솜씨를 정말 배워 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럼 사부님은 다시는 자기 솜씨를 자랑하지 못하게 될 거 아닙니까?" 주방에 딸린 방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사람은 한창 나이의 젊은 청년이었다. "이 사람은 내 제자인 홍칠(洪七)이오. 이제 이 사람이 당신들한테 강산이개를 만드는 솜씨를 보여 줄 거요." 제2장 강산이개 홍칠이 느릿느릿 조리대 앞으로 오자 소씨 거렁뱅이가 너털대며 말했다. "홍칠이, 저 다섯 분은 대내오주들일세. 자네 솜씨를 보자구 왔으니 강산이개를 한 번 만들어 보이게나." 기실 홍칠과 소씨 거렁뱅이는 대내오주들과 처음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전에 황궁 외사방의 어선재(御膳齋)에서 서로 만난 적이 있고, 홍칠과 구양봉이 황궁 안에 들어가 어선방 명요리들을 훔쳐 먹다가 대내오주들과 한바탕 겨루어 본 적도 있었다. 때문에 그들 둘은 이 대내오주들이 황궁에서 나와 소씨 거렁뱅이를 찾아온 데는 반드시 어떤 곡절과 연유가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홍칠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조리대에 다가서서 먼저 조미료들이 담긴 그릇 몇 개를 앞에다 가지런히 갖다 놓고 또 고기들을 앞으로 당겨 놓았다. 고기는 돼지고기, 소고기, 사슴고기, 꿩고기, 토끼고기, 뱀고기, 양고기 그리고 개고기 여덟 가지였다. 홍칠은 식칼을 들더니 고기들을 각각 네모 반듯한 입방체로 썰어 도마 위에 모아 놓았다. 그리고는 끝이 뾰족한 칼로 한동안 마구 쑤셔 댔는데 사람들은 홍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홍칠은 뾰족한 칼로 고깃덩어리에 꽃 모양을 새겨 넣은 것인데 그 꽃 모양은 고기 안에 있고 겉은 여전히 입방체 모양으로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홍칠은 그 칼을 도마 위에 꽂아 세워 놓고 다른 뾰족한 칼을 잡아 쥐고 나머지 고기들을 같은 방식으로 쑤셔 댔다. 이렇게 여덟 조각의 고기에 전부 칼집을 내어 도마 위에 차례대로 줄지어 놓으니 도마 위에는 뾰족한 칼이 여덟 자루나 나란히 꽂히게 되었다. 홍칠은 가는 젓가락으로 고기 조각들을 조심스레 집어서는 두 가지 조미료 그릇에다 각각 두 번씩 담갔다가 꺼내서는 다시 도마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그 두 가지 조미료는 사람을 시켜 치우게 하고 다른 두 가지 조미료 그릇을 가져오게 하더니 이번에도 같은 식으로 고기를 조미료에 담갔다가 꺼내었다. 이런 식으로 홍칠은 연이어 여덟 차례나 조미료를 바꾸게 하였으니 기실 여기에 쓴 조미료 종류는 열여섯 가지가 된다. 홍칠은 조미료에 담갔던 고기들을 모두 도마 위에 차례대로 잘 놓았다. 대내오주들은 홍칠의 하는 양을 지켜 보면서 아직까지는 자기들 재주보다 그닥 나을 게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홍칠은 이제 바닥이 평평한 쟁개비를 가져왔다. 그는 고깃덩이 여덟 개를 서로 붙지 않게 약간씩 사이를 띄워 쟁개비 바닥에 붙여 놓았다. 그 쟁개비를 숯불이 이글거리는 난로 위에 놓으니 이어 구수한 고기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는데 이상하게도 여덟 가지 고기를 함께 굽는데도 다른 고기 냄새는 없고 맨 먼저 양고기 냄새만 풍겨 왔다. 그 다음은 소고기 냄새, 그리고는 개고기 냄새…… 이렇게 분별할 수 있게 순서적으로 풍겨 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홍칠은 이번에는 왼손으로 쟁개비를 자기 눈길과 수평이 되는 높이까지 들어올리고는 오른손 손바닥으로 쟁개비 밑바닥을 가볍게 툭 쳤다. 그러자 쟁개비 안의 고깃점들은 한 번씩 튀어올랐다가 뒤집혀서 떨어지곤 했는데, 놀랍게도 변함없는 위치에 한치의 어긋남 없이 그대로 떨어졌다. 만약 이 솥 안의 고깃덩이 여덟 개의 원면이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것이 보이지 않았다면 이 고깃덩이들이 그 사이 한 번 뒤집어졌음을 절대 알 수 없을 것이 다. 홍칠이 이렇게 고깃덩이를 세 번 추스르자 고기는 완전히 구워졌다. 오직 두 면의 오목 들어간 곳, 즉 칼로 꽃잎 모양의 자국을 낸 곳만이 바닥에 닿지 않아 빛깔이 달랐는데, 사람들은 그제야 꽃모양으로 칼집을 내놓은 원인이 속까지 잘 익히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홍칠은 쟁개비 안에 있는 고기에다 기름을 부었다. 뿌지직뿌지직 소리가 들리며 고기들이 더욱 구수하게 구워졌다. 홍칠은 쟁개비를 난로에서 내려놓고는 손바닥에다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는 그 손바닥을 쟁개비 위에 가까이 대고 장력을 써서 고깃덩이를 빨아당겨 그것을 접시 위에 떨궈 놓았다. 얼마 안 되어 접시 위엔 고깃덩이 여덟 개가 모두 이런 식으로 담겨졌다. 사람들은 비로소 홍칠의 솜씨에 탄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홍칠은 접시를 도마 위에 올려 놓고 옆에서 채소 한줌을 집어 왔다. 거기에는 사람들 눈에 익은 채소도 있었고 보기 드문 낯선 채소도 있었다. 그는 그 한줌 채소 중에서 향엽(香葉) 세 잎을 뚝 떼어 들고는 고깃덩이 하나하나에 그 향엽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향엽은 고깃덩이 복판에 낸 꽃잎 모양의 칼자국에 얇은 칼날같이 들어박히는 것이 아닌가? 홍칠은 이런 식으로 들고 있던 채소잎을 열몇 번이나 흩뿌렸다. 이를 지켜 보던 사람들은 일제히"와―" 하고 환성을 올렸다. 사슴고기 위에는 연꽃 모양으로 채소잎이 꽂히고 꿩고기 위에는 장미꽃 모양으로 채소잎이 꽂혔다. 다른 고기들 위에도 부추, 두릅, 상추 등 향료로 쓰이는 채소잎들이 꽂혔는데 고깃덩이는 꽃판 같고 채소의 줄거리와 잎은 꽃가지 같았다. 드디어 요리가 끝났다. 그러나 사람들은 넋이 나간 듯 누구 하나 말이 없었다. 대내오주들도 가슴속이 써늘해져서 잠자코 홍칠만 바라보았다. 그들 중 어느 한 사람도 홍칠의 요리 솜씨를 흉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겉보기는 아주 쉬운 듯하나 절묘한 재주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뾰족한 칼로 고기 안에다가 꽃 모양을 새기는 것도 내공검법(內功劍法)이 필요하겠지만 장풍으로 고기를 움직이는 것도 심오하고 강한 장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듣건대 이 개방 장로 중의 한 사람이었던 소씨 거렁뱅이가 전임 방주로부터 강룡십팔장을 직접 전수받아 그런 비범한 장법을 가지고 있다 하니 홍칠의 이 장법은 바로 소씨 거렁뱅이한테서 배운 것임이 틀림없었다. 더구나 채소잎을 던져 고기 속에 끼워 넣는 재주는 암기(暗器)를 쓰는 무공에 극히 정교한 내력까지 갖춰야 하는 것으로 무엇보다 어려운 재주였다. 개방 장로 역시 겁이 났다. 전에 소씨 거렁뱅이는 개방의 구대(九袋) 장로였고 홍칠은 개방의 팔대(八袋) 제자였다. 그런데 후에 두 사람은 개방의 계율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여 방주 미운산(米雲山)의 눈 밖에 나게 되었다. 미운산은 개방의 율을 엄격히 하기 위해 집법장로를 불러다가 그들 둘에게 큰 책벌을 내리게 하였다. 소씨 거렁뱅이는 홍칠의 사부이기에 벌을 더 중하게 하여 일대(一袋) 제자로 떨어뜨려 입공속죄케 하였다. 홍칠은 이에 불복이었다. 그는 방주 미운산 앞에서 자기 옷 에 있는 주머니 여덟 개를 거침없이 뜯어 내동댕이 쳐 버리고 소씨 거렁뱅이를 따라 이 홍안루로 왔던 것이다. 묘수인주 묘대야는 속으로 생각했다. '보아하니 이 둘은 앞으로 강호에서 큰 명성을 떨칠 인간들이다. 이 소씨 거렁뱅이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또한 제 나름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즐기니 앞으로 무슨 큰일은 해내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저 홍칠이라는 사람은 보기에도 만만치 않은 것이 한가락해도 단단히 하겠어.' 묘대야가 느닷없이 물었다. "이봐, 소씨. 이 요리는 왜 이름이 강산이개지?" 소씨 거렁뱅이는 흐뭇한 낯빛으로 대답했다. "이 요리 이름은 강산이개지만 기실은 본성난개(本性難改)라고 함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오. 이 요리에 쓰는 고기가 모두 여덟 가지인데 여느 때는 글쎄 맛이 각각 다르겠지만 한 솥에 넣으면 맛이 혼합되어 가려 내기 힘들어지는 게 보통이 아니겠수? 하지만 이 요리는 그렇지 않거든. 여덟 가지 고기가 각기 제 고기맛을 조금도 잃지 않고 그냥 가지고 있어 분별하기가 아주 수월하단 말이오. 그러니 본성난개가 아니고 뭐요. 하지만 어쨌든 간에 그것들이 모여 새로운 요 리가 되었으니 강산이개가 제격이지. 어떻소? 이름이 묘하지 않소?" "이봐, 소씨. 자네네 그 재주는 정말 대단하네. 저 홍칠이도 강호에서 보기 드문 일류 고수임이 틀림없고. 그런데 난 암만 생각해도 개방에서 일등 고수였던 자네가 어쩌다가 일락천장 일대 제자로 떨어졌는지 알 수가 없구먼. 저 홍칠이도 그렇지. 개방 팔대 제자가 지금은 주머니 하나 보이지 않으니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묘수인주의 말에 소씨 거렁뱅이는 한동안 그를 쏘아보다가 언짢은 기색으로 말했다. "그런 건 왜 묻소?" "내가 듣기엔 자네가 뭔가 잘못을 저질러 쫓겨난 거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 개방에서 자넬 쫓아내려고 하자 자낸 울며불며 제발 내쫓지는 말라고 손이야 발이야 빌었다며? 그래서 일대 제자로라도 겨우 남게 되었다더군?" 묘수인주 묘대야는 실실 웃으며 약을 올렸다. 소씨 거렁뱅이는 격노하여 소리쳤다. "개떡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내가 빌긴 누구한테 빌어? 내가 그 따위 것들한테 굽신굽신 머리를 조아리며 애걸할 놈같이 보이나? 누가 그런 말뼉다귀 같은 소릴 하던가? 내가 개방에 남아 있는 건 순전히 내 뜻이야. 내 이름이 소씨 거렁뱅이가 아닌가? 거렁뱅이이면 개방에 적을 둬야지 어디다 적을 두겠나? 이런 생각이 없었으면 난 벌써 개방을 떠나 버렸을 거야." "이봐 소씨, 내 보기엔 자넨 자존심이라고는 없는 사람이야. 장로 자리도 빼앗고 자네를 내쫓으려고 하는 개방에 한사코 붙어 있으려는 까닭이 뭔가?" 천도만과 과이야의 말에 대내오주들은 큰소리로 웃어댔다. 소씨 거렁뱅이는 그들을 쏘아보다가 문득 홍칠에게 물었다. "그래 그냥 여기 있으려나?" "있어 뭘 해요?" 홍칠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어서 떠나 버리자. 홍안루 주인도 우리를 내 보내기로 결정했어. 어차피 떠날 거 머뭇댈 필요가 없지." 소씨 거렁뱅이는 대내오주나 개방 10대 장로에겐 가타부타 말없이 홍칠을 끌고 홍안루를 걸어 나갔다. 개방 장로 열은 소씨 거렁뱅이와 홍칠이 나가고 나자 아차 싶었다. 범 장로와 나 장로는 서로를 쳐다보며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어서 쫓아가 소씨 거렁뱅이를 붙잡아 개방 총부로 끌고 가려는 생각에서였다. 이때 묘수인주 묘대야가 얼른 그들 앞을 막았다. "개방 10대 장로들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다니 우리 형제 다섯은 아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황궁 안에서만 맴돌던 우리인지라 그 동안 상종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이 기회에 좀 가까이 사귀어 볼까 합니다." 그 바람에 개방 10대 장로들은 성이 나서 표정들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나 장로가 나서서 꾸짖었다. "묘수인주, 이러지 말고 비켜서시오. 비켜서면 우린 서로 좋게 헤어질 것이지만 이렇게 한사코 우리 앞을 막아 선다면 일이 재미없게 될 줄로 아시오." 묘수인주 묘대야가 히죽 웃었다. "그거 듣기 거북하구만. 개방 10대 장로들께선 어찌 나이가 들수록 사리를 모르오? 강호에 도리 있는 사람의 말을 들으라는 말이 있다는 것도 모르시오?" 범 장로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대체 강호에서 자네들 대내오주가 있다는 걸 몇이나 알고 있는가? 하지만 자네들 대내오주의 무공이 범상치 않다는 걸 우리 개방 10대 장로들이 오늘 봤으니 깊이 탄복하는 바일세. 그러나 오늘 우리는 따로 할 일이 있어 자네들과 더 깊이 사귀어 볼 수가 없으니 미안하지만 용서하게." 범 장로는 말을 마차고 앞서 출구로 향했다. 그러나 대내오주들이 얼른 문앞을 막아 섰다. "이 문을 나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구만. 이 홍안루 주방 내에서 겨루어 봐도 되잖소?" 과이야가 말했다. 그러자 홍안루 주인이 다급히 소리쳤다. "아이고 이러지들 마십쇼. 싸우려면 밖에 나가 넓은 데 가서 죽든지 살든지 마음대로 싸워요. 주방 안에서는 안 돼요!" 개방의 열 명의 장로들은 이 대내오주들이 무엇 때문에 자기네들과 싸우려 드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은 어이가 없어 코웃음만 쳤다. 사실 대내오주들은 홍안루 주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곳이 자기네가 싸우기에는 아주 유리한 곳이라는 걸 대뜸 파악하고 속으로 흐뭇해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거추장스럽게 보일 항아리들과 솥들, 그리고 사발, 병, 주걱 등은 그들 대내오주들한테는 극히 유용한 무기이자 방호물이었다. 항시 황궁 안 어선방에서 일하며 무예를 연마한 그들이라 이런 주방의 물건들을 싸움에 쓰는데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익숙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천하 제일 큰 방( )으로 우쭐대는 개방의 장로들은 대내오주들이 앞을 가로막자 부아가 치밀대로 치밀었다. 10대 장로들 중 금의파인 부귀산인(富貴散人) 범장천(範長天)이 결국 앞으로 한 발 나서며 소리쳤다. "대내오주들이 우리와 한번 해 보자는데 이런 기쁜 일이 있나? 잔말 말고 끝까지 상대를 해 줘야지." 범 장로의 말에 일점지 나장태도 코웃음을 치며 대내오주를 비웃었다. "황제의 앞잡이질 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황제를 옷 입혀 주고 밥상 챙겨 주는 따위의 시중드는 짓은 더욱 수치스럽지. 황제에게 옷 입혀 주는 짓을 하는 태감도 개이지만 황제에게 밥해 주는 부엌데기들도 개란 말이야." 그는 말을 마치고는 한바탕 큰소리로 웃어젖혔다. 그 바람에 대내오주들도 몹시 화가 났다. 묘수인주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여보게들, 우리 한번 이 개방 장로들과 무예를 겨루어 보세. 그러면 새로운 술수 몇 개를 배워 낼지 어찌 아나? 소씨 거렁뱅이네 동료들과 겨루어 본다는 것도 영광이라 해야겠지." 대내오주들도 개방 10대 장로들과 마찬가지로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미들이라 두 패거리가 어울려 싸움이 벌어지자 역시 보통 싸움이 아니었다. 주루 주인은 홍안루 주방이 수라장이 된다고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그 두 패 가운데 어느 누구도 들은 척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 장로가 먼저 뛰쳐나가며 일지칭 평오야의 얼굴을 겨냥하여 한 주먹 갈겼다. 평오야도 급히 주먹을 피하며 나 장로의 요해처를 겨누고 주먹질을 했다. 한편 청한자자(淸閑慈者) 노명성(魯名聲)은 공연히 신명이 났다. 그는 남이 싸우는 것만 봐도 공연히 좋아서 싱글벙글하는 사람이었다. "자, 가만들 있어요. 나 혼자 저 놈을 해치우겠소." 청한자자 노명성은 천도만과 과이야에게 덤벼들어 그의 가슴을 겨냥하여 일장을 갈겼다. "이 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나?" 과이야가 소리치며 노명성의 태양혈을 갈겼다. 그러자 노명성이 또 과이야의 옆구리를 한 장 내질렀다. 홍안루 주방 안은 한동안 대혼잡을 이루었다. 묘대야는 노기가 잔뜩 긴 얼굴로 소리쳤다. "개방 장로들은 눈을 똑바로 뜨고 보거라! 우리 대내오주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보이느냐? 어디 우리 대내오주의 주먹맛을 좀 봐라!" 그는 냅다 금의파 장로인 사개(蛇 ) 정원(程遠)과 옥면검객(玉面劍客) 호심(胡心)을 들이쳤다. 어지러운 혼전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쌍방은 좀처럼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 점점 분명해지는 것은,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대내오주네 편이 더 득세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홍안루 주방 안에 있는 솥과 항아리 등은 대내오주에게는 아주 유용한 기물이 되었다. 그들은 그것을 들어 병장기로 쓰기도 하고 그것을 방어물로 삼거나 상대방을 막는 장애물로 삼으면서 마치 자기네 주방 안에서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여 다니며 편안하게 싸울 수가 있었 다. 그러나 개방 장로들은 이런 주방 안에서 싸우는 것이 여간 불리하지 않았다. 부귀산인 범장천은 한참이나 싸우다가 비로소 자기네가 몰리는 원인을 깨닫게 되었다. "개방 형제들! 우리 시원하게 넓은 데 나가 싸웁시다. 자, 나가자!" 범 장로가 소리쳤다. "좋소. 나가 싸웁시다!" 범 장로의 뜻을 알아차린 개방 장로들이 소리쳤다. 그들은 대내오주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당장 홍안루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봐, 대내오주들! 어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