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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3[북개홍칠공편] - 2편 (2/66)

2026-09-29 08:03:11 조회 29
"제발 그런 소리 말고 한번 나가 보게.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돌려보내야지, 그렇지 않고 그냥 이러고만 있으면 우리 홍안루는 끝장이야." 주루 주인의 우는 소리에 소씨 거렁뱅이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거 참, 사람 성가시게 구는군. 좋소. 정 그렇다면 내 한번 나가보지." 그는 냉큼 몸을 일으켜 성큼성큼 주방을 빠져 나갔다. 소씨 거렁뱅이가 누각에 올라오는 걸 보고도 범 장로 일행은 일어서지 않았다. 그저 기색이 약간 변해 있을 뿐이었다. "소 장로, 그동안 별고 없었소?" 범 장로가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별고야 없지. 별고 없지 않구. 그런데 오늘 어쩐 일이오? 어디서 도적질을 해서 횡재 한번 톡톡히 한 모양이오? 이 뜨르르한 홍안루엘 다 찾아온 걸 보니." 나 장로가 노기등등 호통쳤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 네가 율을 위반하여 우리 개방의 일대(一袋) 제자로 떨어졌으면 응당 애써 입공속죄라도 해야 하거늘, 그러지 않고 그냥 제멋대로만 놀고 있으니 언제나 네가 사람 구실을 하겠느냐? 개방 10대 장로들을 보고도 무릎도 꿇지 않고 절도 하지 않고 문안 인사도 하지 않으니, 이 놈, 그래 무슨 반란이라도 일으켜 보겠다는 심산이냐?" "허 참, 내 이미 개방에서 나온 몸인데 율은 무슨 율이오? 난 이제 율 따위는 모르외다." 소씨 거렁뱅이의 대답에 범 장로가 집법장로를 불렀다. 집법장로가 얼른 몸을 일으켰다. 마흔 안팎 나이의 얼굴에 엄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집법장로, 저 소씨 거렁뱅이가 우리 개방의 율을 위반했거늘 어떤 벌을 주어야 마땅할까?" 범 장로가 물었다. "소씨 거렁뱅이는 본 방의 율을 어기고도 웃어른들께 버릇없이 굴며 항거하였으니 이는 본 방의 세 번째 계율을 위반하였고, 개방의 제자로서 개방의 일을 복종하지 않고 사사로이 홍안루에 와서 주방일을 하니 이는 본 방 계율 제7조를 위반함이요, 돈을 받아 먹으며 남의 일을 해 주고 있으니 이 또한 우리 개방의 율에 벗어난다 하겠습니다. 그러하매 마땅히 저 소씨를 총부에 끌고 가서 엄벌에 처해야 할 줄로 아룁니다." 집법장로의 대답을 듣고 범 장로는 엄한 기색으로 호통쳤다. "소씨는 네 죄를 알겠느냐?" "뭐, 죄? 내가 무슨 죄가 있어? 거렁뱅이질 하기 싫어 요리사가 된 것도 죄요? 주방장 노릇도 거 해 볼 만한 노릇이더구만. 은자 받지, 술 공짜로 마시지, 그런데다가 손아래 스무 명 남짓을 머슴처럼 부릴 수 있지, 그만하면 위풍이 대단하지 않소?" 그 말에 범 장로가 피식 웃었다. "이것 봐, 다른 사람을 호령하는 게 그리 좋으면 우리 개방에 돌아가도 얼마든지 네 마음대로 호령하게 해 주겠다. 우선 개방 총부에 돌아가 처분부터 받고 보자구." "이거 참, 이젠 거렁뱅이질을 안 하겠다는데도 왜 자꾸 이러쇼들?" 소씨 거렁뱅이는 답답하다는 듯 투덜댔다. 한동안 말이 없이 동태를 지켜 보던 나 장로가 갑자기 소리쳤다. "솔직히 말하지 그래? 네가 일대 제자로 떨어진 게 벨이 꼴려 그러는 거 아냐?" "그런 억지 소리는 하지도 마시오. 그까짓 일대 제자면 어떻고 이대 제자면 어떻소? 난 정말 개방에 있기 싫어져서 그러는 거요. 내 자유로 홍안루에서 요리나 만들고 밥 벌어 먹으니 세상 편한데 뭣 땜에 또 거렁뱅이질을 하겠소?" 소씨 거렁뱅이는 코웃음을 쳤다. 나 장로가 다시 꾸짖었다. "넌 본디 개방의 구대(袋) 장로로서 개방 11명 장로 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노는 행실이 너무 지나쳐서 일대 제자로 떨어졌으니 아마 그것에 불만을 품고 개방을 나간 것이 분명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대로 놔둘 수는 없어. 그리고 홍안루 주인한테 물어 봐. 홍안루 주인도 감히 너를 계속 데리고 있겠다고는 못할테니." "주인, 그래 날 내쫓을 셈인가?" 소씨 거렁뱅이가 주루 주인에게 물었다. 주루 주인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낸들 어쩌겠나? 나야 자네가 계속 있어 주길 바라지만 저분들이 저렇게 성화니……. 내가 아무리 사정해도 저분들은 꼭 자네를 내보내야 한다는 거야." 그의 말에 소씨 거렁뱅이는 머리를 숙이고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좋소. 당신이야 무슨 죄가 있겠소? 나 때문에 홍안루를 문닫게 할 수는 없지. 내 팔자에 요릿집 주방장은 무슨 주방장?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유리걸식하는 거렁뱅이가 제격이지." 소씨 거렁뱅이는 냉큼 몸을 돌려 누각을 걸어 내려가려 했다. "잠깐!" 범 장로가 소리쳤다. "또 뭐가 문제요? 여기서 술 한잔 먹자는 거요? 거 구미가 당기는데? 사실 여기 온 지 그렇게 오래 되지만 여태까지 여기 누각에 올라와 술 한잔 마셔 본 적이 없거든." 소씨 거렁뱅이는 태연히 자리를 잡고 앉으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혼자서 열 사람이나 대적하고 있는 그였지만 얼굴에 일호의 위구도 읽을 수 없었다. 이때였다. 아래층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누각 위에 자리가 있소?" 그렇지 않아도 이럴 때 손님들이 왕창 밀려들어 이 개방 떨거지들을 몰아냈으면 하던 참이라 주루 주인은 반색을 하며 소리쳤다. "어서 올라오시오. 자리야 많지요. 어서 올라오십시오." 느릿느릿 누각 위에 올라온 사람은 모두 다섯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모양새가 각각 달랐는데 첫머리에 올라온 사람은 둥글넓적한 얼굴에 배를 내밀고 어기적어기적 걷는 품이 십분 오만한데, 생긴대로 탁자의 상석에 자리잡고 앉았다. 두 번째 따라온 사람은 아주 대조적으로 퉁방울 같은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말라깽이였다. 세 번째는 보기 흉할 정도로 뒤뚱대는 오리걸음에 허리가 굽고 손가락이 유난히 앙상했다. 네 번째는 얼굴이 수수떡같이 벌겋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뒤를 돌아보는 게 인상적이었으며, 다섯째는 무슨 불쾌한 일이라도 있었는지 아니면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얼굴이 찌뿌둥한 게 만사 성가신 표정이었다. 이들 다섯은 느릿느릿 탁자에 자리잡고 앉았다. 상석에 앉은 사람이 품에서 물건 두 개를 천천히 내놓았다. 채소나 고기를 써는 식칼 한 자루와 주먹밥 두 개는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자루가 긴 국자였다. 두 번째 사람은 가마 닦는 큰 솔을 내놓았는데 일반적인 솔에 비해 엄청나게 크고 무거워 보였다. 세 번째 사람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그저 맨주먹만 두 개 식탁 위에 올려 놓았고, 네 번째 사람은 팔짱을 지른 채 눈을 내리감고 앉아 있었으며, 다섯 번째 사람은 저울 하나를 내놓았는데 그것도 저울이라기보다는 병장기에 가까웠다. 다섯 사람이 내놓은 병장기들을 본 개방 사람들은 모두 적이 놀랐다. 병장기만을 보고서도 이 다섯 사람이 임안성 안에서 명성이 높은 황궁 안의 대내오주(大內五廚)들인 묘수인주(妙手人廚) 묘대야(妙大爺), 천도만과(千刀萬 ) 과이야(過二爺), 유소화작(油 火炸) 허삼야(許三爺), 백수십권(百手十拳) 우사야(虞四爺), 일지칭(一支秤) 평오야(平五爺) 등임을 알 수 있었다. "주인장, 우리가 여기 온 건 주인장과 볼일이 있어 온 것은 아니고 소씨 거렁뱅이를 한 번 만날까 해서 왔은즉 소씨를 만나게 해주게." 주루 주인은 또다시 간이 콩알만해졌다. 도대체 소씨 거렁뱅이가 어떤 인물이기에 이렇듯 별 사람들이 다 와서 그를 만나자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소씨 거렁뱅이를 힐끗힐끗 눈길질해 보며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소씨 거렁뱅이가 묘수인주 묘대야를 보고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내가 바로 소씨 거렁뱅이인데, 내가 그렇게 유명한 모양이지? 나를 보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걸 보니 말야." 묘수인주가 빈정거리듯 말했다. "글쎄, 나는 그 명성을 익히 들어 왔지만 내 이 칼과 국자가 알아줄지 의문이지." 그러자 나머지 넷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곧 웃음을 거두고 꼿꼿한 눈길로 소씨 거렁뱅이를 쏘아보았다. "홍안루에 천하 별미인 '강산이개'라는 요리가 있다는 말을 오래 전부터 들어 왔는데, 오늘 우리 형제 다섯이 맛 좀 볼까 해서 왔네." 일지칭 평오야가 차갑게 말했다. 주루 주인은 또 속이 탔다. 방금 소씨 거렁뱅이를 구슬려 겨우 내보내기로 했더니 이번엔 어디서 이런 도깨비 같은 사람들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강산이개를 만들어 내라고 성화인 것인가. 강산이개는 소씨 거렁뱅이가 아니고선 누구도 만들어 낼 수 없는 명요리가 아닌가. 소씨 거렁뱅이의 성미를 아는 주루 주인은 얼른 앞으로 나섰다.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우린 방금 소씨를 내 보내기로 한 터이라 강산이개는 해 드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말고 다른 요리들은 얼마든지 해 드릴 수가 있으니 다른 걸로 시키시지요." "아니, 이 주인장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이래? 우리 형제 다섯이 일손을 놓고 일부러 찾아왔는데 뭐가 어째? 우리 비위를 상하게 하면 재미가 없을걸? 주인장, 내 이름이 뭔지 알어? 내가 천도만과 과이야야. 알아? 그래 내 솜씨를 좀 봐야 정신이 들겠나?" 천도만과 과이야가 거들먹거렸다. 주루 주인은 잔뜩 겁을 집어먹고 이번엔 소씨 거렁뱅이를 향해 사정했다. "번거로운 부탁이지만 마지막으로 이분들에게 강산이개를 해 드리고 갈 수 없겠나?" "미안하지만 그러고 싶은 생각 없수다." 소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주루 주인은 소씨 거렁뱅이가 한마디로 거절하자 아주 난처하게 되어 묘수인주 묘대야에게 또 사정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나으리, 저 친구는 한번 하지 않는다면 죽어도 하지 않는 성미이니 이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러자 대내오주들은 소씨 거렁뱅이를 보며 또다시 앙천대소를 했다. "이봐 소씨 거렁뱅이, 우리 대내오주에게 요리 솜씨를 보이는 게 두려워서 그러는 거 아냐?" 유소화작 허삼야가 비웃었다. 소씨 거렁뱅이는 코웃음만 칠 뿐 대꾸하지 않았다. 이번엔 백수십권 우사야가 말했다. "그냥 돌아들 갑시다. 소씨 거렁뱅이의 강산이개라는 요리가 소문만 요란할 뿐 별게 아닐 거라지 않았소.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고 막상 먹어 보면 실망만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저 소씨가 요리를 안 하겠다고 뒤 꽁무니를 빼겠어요?" "천만에! 이 소씨 거렁뱅이는 남의 말을 듣지 않을 뿐이야. 황제 폐하가 와도 내가 하기 싫으면 안 하는 성미니까." 소씨 거렁뱅미가 거만하게 말했다. 묘수인주네 다섯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이 대내오주는 비록 요리사에 불과하지만 황궁 내의 일부 고관대작들보다 더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이란 말이 있듯이 기실 황제도 먹지 않고는 못 사는 법이요, 맛 좋은 음식을 즐기기는 백성이나 매한가지였다. 그러므로 대내오주들은 황궁의 외사방(外事房)에서 누구보다 대접을 받았으며 감히 그들을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소씨 거렁뱅이로부터 이렇듯 무시를 당하고 보니 피 가 거꾸로 솟아 더는 참고 있을 수가 없어졌다. "이봐, 재간이 있으면 어디 솜씨 좀 보여 주지 왜? 오늘 우리 대내오주하고 어디 한번 겨루어 볼까?" 천도만과 과이야가 비양거렸다. "도대체 뭘 겨루어 보자는지 알 수 없구만. 손을 쓰자는 건가, 발을 쓰자는 건가?" 소씨 거렁뱅이는 가소롭다는 듯 대꾸했다. 묘수인주 묘대야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우리 솜씨를 겨루어 보자구." 홍안루 주방은 아주 넓었다. 양편에 늘어선 부뚜막엔 아궁이가 스무 개가 넘었고 채소를 다듬는 사람, 고기를 써는 사람, 요리를 볶는 사람 등 쉰 명이 넘는 사람들을 전부 수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누각에 있던 사람들은 주루 주인을 따라 주방에 들어섰다. 소씨 거렁뱅이를 선두로 대내오주, 개방 장로 열 명이 죽 들어서자 주방의 일꾼들은 사뭇 긴장한 태도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저리들 비켜서!" 소씨 거렁뱅이가 호통을 쳤다. "소씨, 자네가 이아(易牙)가 환생한 사람만 아니라면 난 꼭 이길 수 있네. 우리 형제들의 솜씨를 보고 나면 자네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음을 알게 되겠지." 묘수인주 묘대야가 말하자 천도만과 과이야가 히죽 웃으며 나섰다. "그럼 내가 먼저 본때를 보이지." 과이야는 느린 걸음으로 도마 곁으로 걸어갔다. 도마 위에는 돼지고기 한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과이야는 칼을 번쩍 치켜 들더니 고기 한 점을 길게 베어 냈다. 그리고는 두 손바닥을 펴서 기를 모아 내밀었다. 얼마 안 가 그 돼지고기는 꽁꽁 얼어붙었다. 천하 최고의 한빙(寒氷) 장력(掌力)이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환성을 올렸다. 갈채 소리에 신명이 난 천도만과 과이야는 언 돼지고기를 왼손으로 집어 들더니 오른손으로 품에서 뭔가 자그마한 물건을 꺼내어 손가락에 끼우고는 왼손에 쥔 고기를 싹싹 내리훑었다.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사람들이 미처 깨닫기도 전에 과이야의 손으로부터 가느다란 실오라기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솥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이윽고 천도만과는 부뚜막에 사발 하나를 가져다 놓고 젓가락으로 솥 안을 휘휘 저어 건더기를 건져 냈는데, 그것은 마 치 국수가락 같은 고기 요리였다. 먹기 좋게 익은 고기가락은 색깔도 좋고 맛도 구수할 것 같았다. 사람들은 또 갈채를 보냈다. 장수면(長守面), 조단면(挑 面), 열탕면(熱湯面) 같은 것들은 많이 봐 왔지만 고기를 국수처럼 훑어 만든 육면(肉面)은 보다 처음이었다. "이봐, 소씨! 어떤가?" 천도만과 과이야가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소씨 거렁뱅이도 내심 탄복했다. 장풍으로 고기를 꽝꽝 얼리는 것도, 고기를 국수가락같이 가늘게 훑어서 육면을 만드는 것도 절세의 기공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일지칭 평오야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저울대를 들고 한 번 척 휘두르니 물고기 한 마리가 낚시에 걸리듯 저울고리에 덜컥 걸려 나왔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서호 잉어였는데 물에서 갓 잡아 올린 듯 무척 싱싱해 보였다. 평오야는 이번에는 저울대를 돌려 저울대 앞머리를 잉어 아가미에 쑥 쑤셔 넣더니 탁탁탁 아래로 몇 번 흔들었다. 그러자 저울에 달린 두 갈래 가느다란 사슬에 물고기 배가 갈라지며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식으로 내장을 빼낸 그는 또 그 사슬로 쓱쓱 고기 비늘을 벗겼다. 그리고 저울대를 돌려 물고기를 기름이 부글부글 끓는 솥 안에 넣어 튀겼다. 고기가 제대로 튀겨지자 평오야는 또 저울대를 들어 휙 휘둘렀다. 그러자 튀겨진 물고기는 곧바로 큰 접시 위에 날아가 떨어졌는데 놀랍게도 고기는 아직도 죽지 않고 아가미를 벌름거리는가 하면 눈도 말똥말똥 뜨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뭔지 아는가? 산 물고기 튀김이라는 거야." 평오야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괜찮구먼. 그 솜씨면 우쭐댈 만도 하겠어." 소씨 거렁뱅이가 대꾸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평오야의 솜씨에 머리를 끄덕였다. "소씨, 우리 형제들이 솜씨를 보였으니 이젠 자네 쪽에서 뭔가 보여 줘야 하지 않겠나?" 천도만과 과이야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급할 것 뭐 있소? 당신네들 대내오주가 모두 고수들인데 나머지 세 분의 절기를 마저 보고 난 뒤에 내 솜씨를 보이도록 하겠소." 소씨의 대답에 백수십권 우사야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럼 이번엔 내가 솜씨를 보여 주지." 그는 곧장 부뚜막 앞으로 가 서더니 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않고 솥에서 닭 한 마리를 꺼냈다. 털을 뽑은 생닭이었다. 우사야는 닭을 도마 위에 올려 놓고는 소매를 걷더니 주먹으로 냅다 내리쳤다. 그는 또 발길을 날려 한 번 툭 걷어차더니 번갈아 같은 동작을 몇 번 되풀이했다. 사람들은 그의 동작을 유심히 눈여겨보았으나 닭은 여전히 제 모양 그대로였다. 우사야가 이번엔 장풍으로 그 닭을 자기 쪽으로 척 끄는 듯하자 닭은 도마 위에서 가볍게 몸을 뒤채였다. 우사야는 뒤집힌 닭에 대고 또 주먹질과 발길질을 번갈아 안겼다. 개방 장로 열은 일견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백수십권 우사야가 죽은 닭에 대고 열심히 주먹질과 발길질은 해대고 있지만 이렇다 할 변화가 통 보이지 않자 그가 헛수작을 하면서 사람들 눈속임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씨 거렁뱅이의 표정은 사뭇 심각했다.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그는 이미 그 닭에서 괴이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우사야는 이번에는 그 닭에다가 조미료들을 뿌리고 나서 닭다리를 번쩍 집어 들었다. "모두들 닭고기를 한두 번 잡숴 본 게 아닐 테지만 이런 닭고기는 아마 처음일 거외다." 우사야는 이렇게 말하며 닭을 끓는 기름솥에 던져 넣었다. 닭이 어느 정도 튀겨진 듯싶자 그는 큰 접시에다 닭을 건져 놓더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분 생각이 있으시면 맛 좀 보시지요. 이 요리는 유모계(油毛鷄)라고 하오." '유모계?' 개방 열 장로들은 겨우 기름에 튀겨 낸 닭고기 정도가 무슨 대단한 요리라고 저러나 싶어 모두들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였다. 갑자기 팍 하는 소리가 나더니 닭고기가 툭툭 갈라 터지기 시작했다. 닭껍질에 있는 기름이 모두 말라 버려 그렇게 된 모양인데 그보다도 놀라운 것은 닭털이 한줌한줌 부스스 일어서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게 무슨 조화속인가 싶어 하나같이 제 눈을 의심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닭털이 아니라 닭고기 살들이 실낱같이 가느다랗게 터져 올라온 것이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백수십권 우사야가 닭에게 주먹질 발길질을 하였을 때 닭의 살코기들은 이미 갈갈이 찢어진 채 껍질 안에 멀쩡한 듯 싸여 있었던 것이다. "멋지네. 기가 막혀!" 소씨 거렁뱅이가 탄복했다. 그는 곧 닭고기살 몇 가닥을 뜯어 내어 입에 넣고 맛을 보았다. "맛도 괜찮구먼. 백수십권 우사야 재주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개방 장로 열도 평소의 오만함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속으로 저마다 혀를 내둘렀다. 이번에는 유소화작 허삼야가 나서며 소씨 거렁뱅이에게 읍하였다. "소씨께서 정말 우리 형제들과 겨루어 볼 생각이라면 내 재주도 한번 구경해 보시오." 유소화작 허삼야는 펄펄 끓는 기름솥 앞에 다가서더니 대뜸 두 손을 기름솥 안에 쑥 넣었다. 자글자글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가 나는데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소씨 거렁뱅이만 바라보고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손을 천천히 꺼내 들었다. 끓는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손과 손목은 전혀 이상이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펄펄 끓는 기름솥에 넣고 그토록 오랫동안 튀겨 냈는데도 무사하다니 이야말로 천외기문이 아닌가! 허삼야는 득의양양한 태도로 이번에는 한 손을 주먹 쥐어 들고 솥 안에 있는 펄펄 끓는 기름을 주먹 쥔 손에다 끼얹었다. 주먹 쥔 손의 솜털이 타며 연기까지 피어 오르더니 뻘겋고 번들번들하게 부어 오르는 듯했다. 한동안 그렇게 끓는 기름을 끼얹은 뒤 허삼야는 두 주먹을 다시 불끈 쥐더니 큰 구리솥을 둥둥둥 북 두드리듯 두들겼다. 주먹에 아무 이상도 없음을 과시하려는 수작이었다. 개방 장로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듯 얼빠진 표정으로 잠자코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때 허삼야가 손바닥을 슬쩍 펴 보이는 것을 본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허삼야의 손바닥은 붉은 색을 띠던 것이 하얗게 변하고 그것이 또 자색으로 변했는데 그제야 사람들은 그가 천하 최고의 무서운 내공심법(內功心法)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심법만 있으면 물도 불도 겁나지 않고 불에 데이거나 튀겨져도 끄떡없는 것이다. 묘수인주 묘대야가 소씨 거렁뱅이를 향해 빈정대듯 말했다. "이봐 소씨, 이젠 자네 솜씨도 좀 보여 주지 그래? 도대체 무슨 재주가 있기에 자네가 이 경성에서 제일 뛰어난 요리사로 이름이 났는지 우리도 좀 보세." 소씨 거렁뱅이는 웃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묘수인주 묘대야가 조리대 앞으로 다가가서 도마 위에 있는 채소들 중에 배추 한 포기를 집어 들었다. "난 이걸 요리해 보지." 묘수인주는 배추를 손바닥 위에 올려 놓더니 다른 손바닥으로 배추를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한참 후 그는 배추 포기를 내려놓았다. "기실 이건 자랑할 만도 못한 잔재주에 불과하지만 어디 보라구." 개방의 장로들은 모두 이 묘수인주 묘대야가 황궁의 대내오주 중에서 우두머리이며 그 재주도 으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잘난 배추 포기 하나를 움켜쥐고 눌렀다 놓았을 뿐 배추 포기에 이렇다 할 변화가 없자 모두들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참다못한 나 장로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 배추로 뭘 보여 주겠다는 것인지 우린 잘 모르겠소. 설명해 주기 바라오." 그러나 소씨 거렁뱅이만은 놀란 눈길로 묘수인주 묘대야를 바라 보았다. 이 재주가 그의 다른 네 형제들보다 훨씬 더 고강함을 알고 있는 사람은 기실 소씨 거렁뱅이 혼자뿐이었다. "대단하구만, 대단해! 이 소씨 거렁뱅이가 당신들 대내오주의 재간에 깊이 감복했소." 그래도 개방 장로 열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