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논검3[북개홍칠공편] - 65편 (65/66)
소미타 추우는 사개 정원이 뱀을 사용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자기보다 무예가 뛰어나므로 그는 사개 정원한테 양보하고 뒤로 물러났다. 사개 정원이 소리쳤다. "미련한 자한테 뒷복이 있다고들 하더라만 나 장로 너는 미련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뒷복은 많구먼그래. 오늘까지 무사히 살아 있는 것만 해도 실로 행운이지!" "사개, 그래 무예가 나만 못하거늘 아예 졌다고 인정하고 싸움을 그만두는 게 어떤가?" 사개 정원은 껄껄 웃어젖혔다. "나 장로, 오늘 싸움은 누가 이기고 질지 알 수 없는 일, 당신은 조심하는 게 좋아." 사개 정원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장을 내밀어 나장태를 찔러 갔다. 나장태는 사개가 달려들자 검을 뒤에 찬 채 적고권(赤尻拳)으로 사개에게 맞섰다. 사개는 사형십칠보(蛇形十七步)를 펼쳤다. 나장태의 적고권은 일명 후권( 卷)이라고도 하는데 그들의 싸움은 마치도 원숭이와 뱀이 싸우는 듯이 영활하고 재치가 있었다. 두 사람은 밥 한 사발 다 먹을 시간 동안이나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순간 사개 정원이 나장태의 권법을 당해 내지 못하고 뒤로 주춤 물러서서 법수를 바꿔 두 마리 독사를 내보냈다. 대청(大靑)과 소청(小靑)이라고 하는 이 두 마리의 독사는 사개가 각별히 훈련시킨 것들이었다. 독사 두 마리가 일제히 나장태한테 달려들자 그는 두 손으로 뱀을 냉큼 집어서는 힘껏 패대기쳤다. 그리고는 팍 하고 장을 날려 사개 정원의 어깨를 내리쳤다. 사개 정원은 일순 몸을 비틀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나장태는 급히 두 손을 모아 쥐었다. "여기까지 했으면 이젠 됐네. 그만 하세." 그리고는 더는 사개한테 손을 쓰지 않고 제자리로 물러나 버렸다. 그는 이미 이겼으므로 더는 사개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인이 외쳤다. "홍칠공, 어서 투항하세요. 당신 수하의 몇 사람들은 모두 쓸모없는 자들뿐인데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당신이 날 이긴다고 해도 구양 선생과 구 방주가 나서기만 하면 당신들 이백여 명은 몰살당하고 말 거예요" 말은 비록 당당했으나 그녀의 얼굴에는 예전의 그 오만하고 경멸어린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되레 평온하고 다소 쓸쓸한 기색이 감도는 것이었다. 홍칠은 큰소리로 외쳤다. "만의 하나 그대 손에 패해 죽는다 해도 내 그대를 탓하지는 않으리라!" 여인은 탄식만 할 뿐 더는 권고하지 않았다. 이때 구천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홍칠이, 내 보기엔 너는 나와 싸워야 할 것 같다. 만일 네가 이긴다면 그땐 다시 구양 선생과 맞붙어 보고! 네가 나와 구양 선생을 이긴다면 의당 개방 방주가 될 수 있다!" 홍칠은 냉소를 치며 싸울 태세를 갖췄다. 그때 소미타 추우가 소리쳤다. "방주님, 그건 원래의 약속과 어긋납니다. 방주님께서는 전력으로 저 여인과 싸워야 합니다!" 홍칠은 그 말을 듣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구양봉은 이처럼 언쟁이나 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수다스럽게 입씨름이나 해 가지고서는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에 무슨 시비나 캐고 도리를 따질 게 있단 말인가. 구양봉은 성마르게 외쳐 댔다. "난 홍칠이 너와 싸우기만 바란다. 딴 놈들한텐 볼일도 없다. 그러니 잔말 말고 나서거라! 내가 네 놈을 죽여 버리면 개방에 더는 시끄러운 일이 없겠지!" 홍칠은 구양봉이 나서자 분노가 치밀었다. "구양봉 이 놈! 네 놈이 오늘 봉황력과 합마공으로 날 이겨 보려 한다면 그건 망상이다!" "홍칠아, 소씨 거렁뱅이도 죽었거늘 네 놈도 이 자리를 살아서 빠져 나갈 생각은 마라! 이 놈, 사장 맛이나 봐라!" 구양봉은 사장을 치켜 들고 우쭐거렸다. 그때였다. 호탕한 웃음 소리가 좌중을 뒤흔들었다. "구양봉, 내가 누구인지 보기나 해라!" 구양봉은 머리를 홱 돌렸다. 자기 편 한쪽 옆에 웬 사람이 하나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있었다. 꾀죄죄하고 의복이 남루한 것이 마치 감옥에서 도주해 나온 죄수 같았다. 바로 노완동 주백통이었다. "보아하니 네 놈은 실로 무뢰한이로구나. 홍칠은 너를 집적거리지도 않는데 네 놈은 기어이 싸움을 거니 이런 무뢰한 놈이 어디 있느냐? 차라리 나와 몇 합 겨뤄 보자." 그러더니 노완동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날쌔게 달려들어 구양봉의 면상을 주먹으로 팍팍팍 연거푸 세 번 내질렀다. 구양봉은 노완동의 주먹을 살짝 피하면서 소리쳤다. "노완동, 네 놈이 나와 무슨 원수가 졌다고 나서느냐, 나서기를! 난 너 따위엔 관심도 없고 죽일 생각도 없다." "네 놈이 나와 원수진 일이 없다고? 네 놈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 나는 대협 왕중양의 사제이다. 네 놈들 동사서독, 남제가 모두 나의 사형의 《구음진경》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더냐?" "노완동, 괜히 내 부아를 돋우지 말아라. 내가 《구음진경》을 빼앗건 말건 그게 네 놈과 무슨 상관이냐?" "구양봉, 네 놈은 사장을 가지고 나와 겨루려 하나, 만일 주먹싸움을 한다면 네 놈이 나보다 결코 앞서진 못할걸!" 구양봉은 아주 오만한 사람이라 노완동의 이 말을 듣자 화가 머리 끝까지 솟구쳐 펄펄 뛰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노완동, 오늘 내 네 놈에게 나의 장력 맛을 보여 줄 테다." 그러더니 독사장을 땅바닥에다 푹 꽂아 놓고 주먹을 부르쥐었다. 노완동은 구양봉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만 워낙 뱀을 두려워하는 성미라 사장만 좀 겁낼 따름이었다. 그리하여 구양봉의 화를 돋워 그가 독사장을 던져 버리도록 한 것이다. 구양봉이 사장을 내버리자 노완동은 신바람이 났다. "노독물, 그댄 통이 커서 강호에서 으뜸가는 인물로 손꼽을 수도 있지. 그러니 화산 무예 시합 땐 자네도 얼마든지 끼워 줌세!" 그는 마치 화산의 무예 시합에 참가하는 자격을 자기가 부여하는 것마냥 이죽거렸다. 구양봉은 노완동이 꾀를 부리느라고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라 노완동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이번 일은 두고 봐야겠구나. 하필 노완동이란 녀석이 불쑥 튀어 나오느냔 말이다. 오늘 네 놈을 죽이지 않고서야 어찌 이 서독의 재간을 보여 줄 수 있단 말인가.' 구양봉은 지체 않고 연거푸 장을 내밀었다. 그 장법은 독특하고도 힘이 있어 노완동은 금세 얼굴이 따끔거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서독의 재간이란 합마공을 배운데다가 독사장을 휘두르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더니 발길질과 주먹질도 이처럼 뛰어날 줄이야……. 보아하니 오늘 일은 재수 없게 되었구나.' 노완동은 정신을 가다듬고 주먹을 팍팍팍 세 번 날렸다. 그러나 구양봉은 그때마다 미꾸라지처럼 피해 버렸다. 구양봉과 이십여 합도 싸우지 않아 노완동은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그는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기가 막힌 꾀를 하나 생각해 냈다. "노독물, 저기 우리 사형이 왔다!" 노독물도 천하에서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전진교 교주 왕중양이었다. 왕중양이 왔다는 말을 듣고 그는 다급히 머리를 돌려 살펴보았다. 자기 뒤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이쪽저쪽에 하나같이 개방 사람들만 몰려 서 있을 뿐 왕중양은커녕 전진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구양봉은 속았다고 생각하자 분이 치받쳐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노완동은 구양봉이 머리를 돌리자마자 쏜살같이 달려나가 구양봉의 사장을 집어 들었다. 노완동은 자기가 구양봉의 이 보배를 빼앗기만 하면 그가 절대로 자기를 이겨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사장을 집어 든 순간 두 마리 독사가 징그럽게 혀를 날름거리며 덥석 그에게 덤벼들었다. "조심하시오!" 그것을 본 사개 정원이 큰소리로 외치며 자기의 뱀 대청과 소청을 놓아 보냈다. 대청과 소청은 평소 사람을 물 때면 절대로 망설이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 두 마리 독사는 사장으로 잽싸게 기어 올라갔으나 사장 자루 구멍에 이르러서는 대뜸 기어들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땅바닥으로 털썩 떨어져 축 널브러진 채 꼼짝도 안 했다. 사장 구멍 안에 있는 두 마리 작은 뱀한테 대가리를 물리고 만 것이었다. 두 마리 작은 뱀은 곧추 머리를 치켜들고 노완동 한테 달려들었다. 노완동은 깜짝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사장을 흔들어 뱀을 떨어뜨리고는 그대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다. "아이구머니나!" 노완동은 하도 놀라서 도망치면서도 자기가 사장을 그대로 손에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장에서는 이상한 향기가 풍겨 나왔다. 두 마리 작은 뱀은 그 향기를 쫓아 땅바닥을 쏜살같이 기어갔다. 노완동은 꽤나 멀리 달려왔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놓고 돌아보았다. 그했더니 웬걸, 그 작은 뱀들은 자기 뒤를 바싹 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혼백이 다 달아날 지경이었다. "큰일났다. 큰일났어!" 그는 죽겠다고 소리를 내지르며 계속 내뺐다. 두 마리 작은 뱀도 끈질기게 따라갔다. 그 모습을 보고 구양봉도 노완동을 쫓아 냅다 달려갔다. "노완동 이 놈, 사장을 돌려주지 못할까!" 노완동은 구양봉이 쫓아오는 것을 보자 기겁을 하며 외쳤다. "뱀이 네 쪽에 있지 어디 내 손에 있느냐? 내가 어떻게 돌려준단 말이냐?" 노완동은 독사가 자기 뒤를 쫓고 있으나 필경 사장을 자기가 들고 있는 이상 독사들이 계속 쫓아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는 그저 무서운 생각에 있는 힘을 다해 내빼기만 하였다. 구양봉은 워낙 쫓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노완동이 자기가 아끼는 사장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자 분통이 터져 견딜수가 없었다. 구양봉은 독사 앞까지 뛰어가서 허리를 굽히고 휘파람을 홱 불었다. 그러자 두 마리 작은 뱀은 구양봉 팔 위로 기어오르는 것이었 다. 그는 일단 독사 두 마리를 걷어들이고 나서 계속 노완동의 뒤를 쫓았다. 그가 잠시 허리를 굽히는 사이에 노완동은 꽤나 멀리로 달아났다. 노완동은 뱀한테 물리지 않으려고 앞만 바라보며 열심으로 내빼기만 하였다. 구양봉도 그 뒤를 번개같이 뒤쫓아갔다. 잠깐 사이에 두 사람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구천인은 속으로 한탄해 마지않았다. '구양봉이 없으니 우리 쪽은 고수가 한 사람 준 셈이군……." 하지만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구천인은 조금도 굽히려 하지 않았다. 되레 한편으로는 이때야말로 이 개방을 송두리째 삼켜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큰소리로 외쳤다. "홍칠아, 나오너라! 나와 한판 겨뤄 보자!" 그러나 홍칠이 미처 대꾸하기도 전에 숲 속에서 껄껄 웃으며 나서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사람은 뜻밖에도 홍칠의 사부 소씨 거렁뱅이였다. 홍칠 쪽에서는 모두들 놀라는 한편 기뻐서 환성을 올렸다. 소씨 거렁뱅이는 천천히 걸어 나와 웃으며 소리쳤다. "구천인, 네 놈과 구양봉 녀석은 날 죽이려 했겠지만 그건 어림없는 일이다. 내 오늘 네 놈의 죄를 따지러 왔다. 네 놈을 죽여 화산의 무예 시합일랑 꿈도 못 꾸게 만들어 놓을 테다!" 소씨 거렁뱅이는 죽다가 겨우 살아난 터라 가슴속엔 구천인과 구양봉에 대한 증오심이 들끓어 올랐다. 그리하여 아직 자기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했지만 구천인을 보자 그만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백 합쯤은 버텨 낼 자신이 있었다. "구천인, 내가 너와 이백 합만 싸워 보겠다. 내가 이백 합 안짝에 날 이긴다면 난 화산의 무예 시합에 안 가겠으니 내 대신 네 놈이 가거라! 대신 이백 합 안짝에 네 놈이 나한테 패한다면 네 놈은 화산의 무예 시합에 대해서는 더는 떠들지 말거라. 그러면 천하의 영웅들이 네 놈을 비웃을 게다. 으하하하……. 만일 이백 합 안짝에 승부를 가르지 못하게 되거든 우리는 싸움을 멈추고 이담에 화산에 가서 자웅을 겨루기로 하자! 어떠냐?" 구천인은 소씨 거렁뱅이의 말을 듣고 암암리에 생각했다. '오늘 일은 처음부터 재수 없게 꼬이는구나. 먼저는 노완동이란 녀석이 구양봉을 끌고 달아나더니 이젠 또 천만 뜻밖으로 소씨 거렁뱅이까지 끼여들다니…… 우리 쪽은 이미 고수 하나를 잃었다. 나와 소씨 거렁뱅이가 싸운다면 실력이 걸맞은 일이나 이 여인과 나장태가 홍칠을 이길 가망은 매우 작다.' 하지만 일이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물러설 수도 없다고 생각되어 구천인은 짐짓 웃으면서 대꾸했다. "좋다, 소씨 거렁뱅이야! 어디 덤벼 봐라." 소씨 거렁뱅이는 타구봉을 치켜 들고 외쳤다. "난 전임 방주한테서 타구봉법을 전수 받았으나 한 번도 써먹은 적이 없다. 오늘 너 구천인을 놓고 한번 시험해 볼 터이다." 구천인은 소씨 거렁뱅이가 자기를 비꼬아 욕하자 화가 치밀어 두말없이 무서운 소리를 내지르며 장을 날렸다. 두 사람이 어울려 싸우기 시작하니 처음에는 오히려 소씨 거렁뱅이 쪽에서 우세를 점했다. 그의 타구봉법은 실로 절묘하여 구천인은 부득불 방어에만 바빴다. 그는 연거푸 장을 날렸으나 그것은 다만 소씨 거렁뱅이의 타구봉법을 막아내는 데 불과하였다. 벌써 육십여 합을 겨뤘으나 형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쯤 되자 구천인은 몹시 조급했다. '내가 소씨 거렁뱅이와 싸워 이기지 못한다면 오늘의 싸움은 연거푸 참패를 면치 못하게 될 거다. 저 여인이 홍칠을 이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소씨 거렁뱅이를 이겨야만 한다!' 구천인은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틈을 노려 점차 방어에서 공격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되자 이제는 그가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 구천인의 장법이 아주 훌륭한 것을 보고 소씨 거렁뱅이는 내심 매우 놀랐다. 그는 얼른 법수를 바꾸어 구천인의 장법을 흩트려 놓았다. 구천인은 소씨 거렁뱅이가 구양봉의 뱀 독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형편을 모르는 터라 한바탕 악전고투를 치러야 되겠다고 지레 짐작하여 몸을 사리며 전력을 다해 맹공격을 들이대지 못했다. 만일 구천인이 전력을 다했더라면 소씨 거렁뱅이는 결코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백칠십 합쯤까지 싸우게 되자 소씨 거렁뱅이는 기쁘기 그지 없었다. '나의 이 공력으로 저 놈과 능히 이길 수 있게 되면 저 놈은 오늘 이 싸움판에서 조금도 이득을 보지 못하게 된다.' 구천인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초조해서 갖은 법수를 다 동원하여 소씨 거렁뱅이를 이겨 보려고 발악을 하였다. 소씨 거렁뱅이는 웃으면서 구천인을 한껏 비꼬았다. "구천인, 우쭐거리지 마라! 네 놈이 전력을 다하면 이제부터 강룡십팔장으로 네 놈과 놀고자 한다!" 그 말에 구천인은 흠칫 놀라 더욱 조급해졌다. 그는 강룡십팔장이 지양지강(至陽至剛)의 장법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만일 소씨 거렁뱅이가 강룡십팔장 법수를 쓰기만 하면 자기의 처지는 아주 불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숱한 사람 앞에서 망신만 당하고 철장방의 위신은 땅바닥에 곤두박이고 만다. 구천인은 더욱 빠르게 장을 휘둘렀다. 소씨 거렁뱅이가 소리질렀다. "구천인, 억지 부리지 마라. 난 너에게 알맞은 장법을 쓰고 있는 데 하필 날 핍박할 건 뭐냐?" 소씨 거렁뱅이는 점점 지탱해 내기가 힘들게 되자 다시 소리를 질렀다. "구천인, 난 네 놈한테 우리 개방 사람의 타구봉법을 제대로 보여 줄 테다. 이번엔 끄는 법수를 보여 주겠으니 한번 구경해 보거라!" 구천인이 장을 날리며 달려들자 소씨 거렁뱅이는 타구봉 끝을 가벼이 끌면서 몸을 비켰다. 동냥하러 다니다 보면 거지들은 개와 맞닥뜨리기 십상이다. 이때도 온순한 개들은 그대로 지나치지만 성미 사나운 놈들은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다. 이런 때는 '끄는(拖)' 법수를 써서 개를 다른 쪽으로 유인해 간다. 지금 소씨 거렁뱅이가 펼쳐 내는 법수는 이와 똑같은 이치의 법수이다. 구천인은 소씨 거렁뱅이가 이쪽으로 끌다가는 또 저쪽으로 끌어가자 도저히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화가 치밀었지만 어쩌는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한켠에 서 있던 소미타 추우가 외쳤다. "이백 합! 이백 합이오!" 구천인은 이백 합을 싸우도록 소씨 거렁뱅이를 이기지 못하게 되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갑자기 전력을 다해 두 팔로 쇠가마를 떠미는 법수를 펼쳤다. 이때 소씨 거렁뱅이는 이백 합이란 소리를 듣고 손을 거둔 채 방심하다가 구천인의 장력에 떼밀려 급히 물러섰지만 이미 때는 늦어 한 장 남짓 날아 땅에 쿵 하고 떨어져 버렸다. 구천인은 그제야 갑자기 머리 속이 환해지는 감을 느겼다. 그는 소씨 거렁뱅이가 뱀 독을 입어 내공이 예전 같지 못하다는 걸 알아 차렸던 것이다. 진작에 장력으로 갈겼더라면 소씨 거렁뱅이는 벌써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구천인은 불현듯 악 소리를 지르며 한달음에 달려나가 한 장으로 소씨 거렁뱅이를 갈겼다. 소씨 거렁뱅이의 입가에선 금세 선지피가 흘러 나왔다. 그러나 그는 냉소를 치며 구천인을 쏘아보았다. 그는 내심 만일 구천인의 이 장에 제대로 얻어맞았다면 기필코 죽음을 면치 못했으리라고 생각했다. 사태가 상서롭지 못한 것을 보고 홍칠은 급히 달려나갔다. "구천인, 손을 멈춰라! 너는 나의 사부님과 이미 이백 합이나 싸워 승부를 가르지 못했다. 계속 싸우겠거든, 자, 덤벼라!" 그러나 구천인은 아무 대꾸도 안 했다. 실로 후회막급이었다. 소씨 거렁뱅이를 죽여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니 그는 통탄하기 그지 없었다. 홍칠은 여인을 바라보며 외쳤다. "개방의 은원은 그대와 나 사이에서 생긴 것이니 필경 우리 둘이 싸워야 하오. 그대의 요구대로 우리 둘이 결사전을 벌입시다!" 여인은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미소엔 아첨하는 기색도, 요염스런 기색도 서려 있지 않았다. "홍 방주께서 다행히 저와 싸우게 되어 저는 실로 기뻐요. 홍 방주께선 제 요구대로 하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참말인가요?" "그렇소, 참말이오." "이 나무 숲 속에 낡은 절이 하나 있어요. 몹시 오래 되어 사람이 거처하고 있지 않아요. 당신과 저는 그 절 안으로 들어가 승부를 가릅시다." 그러더니 머리를 돌려 시녀들에게 말했다. "내가 절 안에서 죽게 되거든 여러 자매들이 수고하여 내 시체를 염습해다가 이 나무 숲에 묻어 달라!" 그녀는 다시 홍칠에게로 얼굴을 돌리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녹옥죽봉을 들고 먼저 발걸음을 뗐다. 여인의 말을 듣고 구천인과 나장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미 방주, 내 보기엔 이렇게 하는 게……." 구천인이 말머리를 떼자 여인은 웃으며 그를 돌아다보았다. "구 방주님, 당신이 저희 개방 일을 도와준 걸 감사히 생각하고 있어요. 이후엔 더 많이 보살펴 주세요. 하지만 오늘까지는 제가 방주예요." 구천인은 그녀의 말에 아주 과단성이 있음을 감지했다. 그녀가 이미 결단을 내린 이상 아무리 해도 말릴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여인은 무슨 일을 해도 항상 지독하구나. 홍칠과 감히 낡은 절에서 싸우겠다니. 심중에 무슨 계책을 품고 있음에 틀림없다.' 구천인은 더는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장태가 읍을 하며 말했다. "미 방주, 내 보기엔 그래도 이곳에서 싸우는 게 좋을 것 같소. 개방 형제들이 누구나 다 볼 수 있으니 진심으로 탄복하지 않겠소?" 여인은 담담하게 웃으며 나장태를 쏘아보았다. "나 장로, 당신의 처사는 때론 깨끗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래 당신 수하 형제들도 당신한테 진심으로 탄복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녀는 나장태를 이윽히 쏘아보았다. 나장태는 속이 꿈틀하여 감히 더 말하지 못했다. 말을 더 했다간 공연히 위신만 깎일 게 뻔했다. 여인은 머리를 돌려 단호하게 말했다. "홍 방주님, 들어가십시다!" 홍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이 앞서고 다른 한 사람이 뒤따라 천천히 낡은 절을 향해 걸어갔다. 여인은 묵묵히 걸어 가다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홍칠공, 제가 진짜 미립이라면 당신은 절 좋아하시겠나요?" 홍칠은 아무 대꾸 없이,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그저 걷기만 했다. 여인은 또다시 탄식하는 어조로 말했다. "홍칠공, 당신은 꿈속에서 미립을 본 적이 있나요?" 그러나 이번에도 홍칠은 말이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앞만 똑바로 바라보며 발걸음만 옮겨 놓았다. "전 이전에 꿈을 꾸면 종래로 황궁은 보이지 않고 다만 한 사나이만 보이는 것이었어요. 그 사내는 황제도 아니고…… 후에 당신을 만나고 나서야 알았지만 그 사나이는 바로 당신……." 홍칠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천천히 낡은 절에 당도했다. 여인이 절 문을 열었다. "천하의 사람들은 절을 지을 때 모두 향객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고 향불이 꺼지지 않기를 바랐을 거예요. 그런데 이 절은 이처럼 황폐해졌는데도 아무도 수리하려고 들지 않았군요." 여인은 이렇게 말하며 처연히 웃었다. 홍칠은 그녀의 웃음 소리에서 짐짓 쓸쓸함을 느꼈으나 아무 내색도 않고 그저 뒤따라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