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논검3[북개홍칠공편] - 24편 (24/66)
"소씨 거렁뱅이, 당신이 옥면검객 호심을 해친 죄는 따지지 않을 수 없었소!" "개방에 네 놈 같은 바보들 뿐이니 어찌 태평성쇄할 수 있겠느냐?" 소씨 거렁뱅이는 나장로와 몇몇 장로들이 차디찬 시선을 보이자 계속 말을 이어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 히히 웃으며 끼어들었다. "임자들은 왜 이처럼 모두 밥통을 닮았는가? 임자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왜 내게 묻지 못해?" "당신은 누구요?" 라고 범장천이 묻자 또 히히 하고 웃었다. "난 노완동 주백통이야. 알만하냐?" 범장천이 모른다고 고개를 젓자 노완동이 한탄하는 듯한 어조로 말을 덧붙였다. "나 같은 사람은 아무런 명성도 없구나. 물론 날 모를 수도 있겠지. 그럼 내가 말해주지. 난 전진교 사람이다." 그러자 청한자자 노명성이 물어왔다. "당신이 정말 전진교 사람이요? 그럼 구처기의 제자거나 왕처일의 제자이겠구먼?" "네 놈이야말로 구처기의 제자이고 왕처일의 제자이로다. 네 놈이 구처기의 제자면 나한테는 도손(徒孫)이 되겠구먼." 청한자자 노명성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사람이 전진교 사람이라고 자칭하고 있지만 내 보기엔 그런 것 같지 않다. 자기가 구처기의 제자가 아니라면 구처기가 저 놈의 제자벌이 된다는 말이렷다. 하지만 저 놈은 구처기와 나이가 엇비슷하거나 기껏해야 몇살밖에 더 먹어 보이지 않는다. 저 놈이 왕중양과 동년배인 것 같지는 않아. 그리고 왕중양한테 그 무슨 사형, 사제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 없는데...... 만약에 왕중양에게 사형이나 사제가 있다면 명성이 드높을 법 한데 저 놈은 그렇지도 않다." 청한자자 노명성 뿐만 아니었다. 모두들 노완동을 대협 왕중양의 사제일 수는 없다고 믿었다. "당신은 전진교 사람이라고 하는데 전진교의 어떤 사람인가를 밝히시오?" 범장천이 그렇게 재촉하자 노완동이 허옇게 이빨을 내보이며 냉소를 씹었다. "난 전진교 교주 왕중양의 사제다, 어때? 그래도 믿어지지 않는단 말이지?" "당신이 천진교 교주 왕중양의 사제라면 강호에서는 아주 존경을 받는 인물일텐데 도체 무엇을 보았는지 여기서 말해보시오?" 소미타 추우가 그렇게 거들자 노완동은 속으로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호 이것참, 나더러 무엇을 보았는가 털어놓으라구? 큰 낭패로구나. 난 다만 이 죽어넘어진 놈들이 저 영감을 죽이려 했고, 저 사람들의 싸움이 승부를 가름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치닫는 것만 보았을 뿐인데...... 그러니 저 영감이 그 전에 무엇을 어찌하였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나 이 노완동이 보건대 저 영감 소씨 거렁뱅이는 필시 좋은 사람이구 오히려 저 구양봉이가 그 반대일 것 같아. 그렇다면 내가 저 사람을 구해주면 어떨까?' 노완동이 잠시 그렇게 자신을 추스리고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난 이 구양봉과 소씨 거렁뱅이가 싸우다가 후에 저 놈들이 덤비는 바람에 보지를 못했소이다." 개방의 장로들은 만일 노완동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철장방 놈들이 호장로를 죽였고 이 백타산군 구양봉이도 호장로를 죽인 흉수일 거라 짐작했다. 그들은 모두 구양봉에게 살기어린 눈빛을 쏘아대며 싸울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노완동이 더 말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또 한가지가 생각이 나서 그만 입을 열고 말았다. "사실 나도 임자들 중에 누가 누굴 죽이려 하는지 모르겠소. 전번에 그 작은 객점에서 나도 임자들 개방사람이 둘이나 죽는 걸 보았지.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르겠거든. 나는 힘껏 때린 것도 아닌데 숨이 꼴깍 떨어지더라구." 노완동이 지껄이자 장로들은 전율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그들은 속으로 과천청 제갈옥생과 운중현 서불성 두 장로 역시 이 전진교의 노완동에게 죽임을 당했구나 하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두 사람의 사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노완동이 스스로 자백을 해오자 장로들은 크게 노할 수밖에 없었다. 청한자자 노명성이 이를 부득 갈며 곧 달겨들 태세를 취했다. "오호라, 바로 네 놈이었구나?" 자기를 바라보는 모두의 눈에서 적의와 살기가 충만해 있음을 느낀 노완동이 팔을 내저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으라구. 그 두 사람이 바로 여아를 죽이려 했단 말야. 그래 내가 어찌 사람을 죽이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당신이 그들 두 사람이 여아를 죽이려 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었소?" 범장천이 다그치듯 묻자 노완동이 큰한숨을 섞어 말했다. "휴우, 그 두 사람이 바로 여아를 죽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들을 제지시켰던 거야." 그러자 소미타 추우가 물어왔다. "그렇다면 과천청 제갈장로의 몸에 박힌 암기(暗器)가 당신이 손 쓴 것이란 말이지?" 노완동은 그제서야 자기가 바보짓을 한 것에 후회를 했다. 이 일을 말하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다. 사실 그때 누가 여아를 죽였는지는 노완동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한 노완동이 이렇게 말했다고 해도 저 사람들이 믿을 리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이런 말을 새롭게 꺼낸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차라리 말하지 말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다급해진 노완동이 뒤늦게 수습을 하려고 덤볐다. "아니야, 아니!" 그러나 노완동은 거짓말을 하는 재주가 썩 신통하지가 못해 그 당황하는 기색으로 곧 들통이 나버렸다. 개방장로들은 더는 그에게 아무것도 물으려 하질 않았다. 오히려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볼 뿐이었다. "당신은 전진교이므로 우리 개방과는 깊은 인연이 있는 거요. 그러니 당신은 우리와 싸울 생각을 말고 전진교 교주 왕중양을 함께 찾아 갑시다. 가서 그 분과 시비를 따져보는 게 어떻소?" 범장천이 이런 제의를 하자 노완동이 빈정댔다. "거기에 뭐 시비를 따질 거라도 있나? 우리 사형께선 당신들 같은 거지들을 만나려고 하질 않을 걸." 그 말은 사실이었다. 왕중양은 평소에 외인들과는 접촉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자기들을 멸시하는 말을 들은 개방의 장로들은 대노할 수밖에 없었다. 범장천이 한발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좋아. 네 놈이 전진교 사람이라고 해서 우리 개방을 깔보고 장로를 세 사람이나 죽였으니 우리 개방에서 체면을 차릴 필요는 없다." 범장천이 세번 요상한 웃음을 흘리자 개방의 장로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노완동에게로 덤벼들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마저 장로들과 합세하려고 했다. 노완동이 당황하여 외쳤다. "너희들은 모두 미친 놈들이 아니더냐? 누가 너희들의 사람을 죽였는지도 모르면서 내게 함부로 시비를 걸다니. 내가 너희네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해!" 그러나 노완동이 아무리 변명을 해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온갖 법수를 동원해 노완동을 치려는 생각 뿐이었다. 청한자자 노명성은 상상할 수도 없는 법수를 부리며 노완동에게로 다가왔다. 사개 정원은 뱀 두 마리를 자유자재로 부렸으며, 소검 오평은 외팔로 검을 움켜쥐었다. 부귀산인 범장천, 소미타 추우는 조금 멀찌감치에 물러서서 노완동의 빈틈을 노렸다. 노완동은 꼼짝없이 그들에게 갇히고 말았다. 더군다나 평소에 가장 두려워했던 뱀을 든 사개 정원을 경 계하느냐 노완동은 땀을 뻘뻘 흘렸다. 노완동은 도망갈 궁리만을 모색할 뿐이었다. 누가 옥면검객 호심을 죽였는가 하는 것을 따질 만한 경황은 아예 없었다. 이때 한쪽에 서서 구경하고 있던 구양봉은 매우 흡족한 얼굴을 지었다. 그는 너무도 기분이 좋아 그저 헤헤 웃기만 했다. 그는 자기의 말 한마디에 전진교와 개방이 원수가 되어 죽기로 싸우는 것을 보자 더없이 즐거웠다. 노완동은 여전히 그 뱀 때문에 전전긍긍이었다. 이를 본 개방 장로들은 노완동의 심기를 알아차렸다. 사개 정원이 팔을 들어 말했다. "모두 비키시오. 내가 저 놈을 상대하리라!" 사개 정원이 자루를 벌리더니 큰 뱀 수십마리를 꺼냈다. 괴상망측하게 생긴 그 뱀들은 대가리에 혹같은 것이 달려있어 보기만 해도 소름이 확 돋았다. 사개 정원이 이 독사들을 노완동에게 풀었다. 슉슉- 삽시간에 수십마리의 독사들이 노완동을 에워쌌다. 노완동은 손가락조차 움직이지 못했다. "노완동, 네 놈이 우리 개방의 세 장로를 죽였으니 어서 순순히 말을 듣고 우리와 함께 개방에 가서 방주님의 처분을 받도록 하여라!" 범장천의 호기스런 말에 노완동이 웃었다. "어느 방주를 말하는 거냐? 소씨 거렁뱅이가 너희들의 방주가 아니더냐?" 범장천은 그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냉소만 짓고 있는데 일점지 나장태가 대신 나섰다. "소씨 거렁뱅이는 우리 개방의 규율을 어긴 것이다. 개방에서는 개방사람들을 모아놓고 소씨 거렁뱅이를 방주에서 추방시킬 것이다!" 노완동은 정말 사면초과에 몰린 상태였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미운산에게 개방 방주의 자리를 물려받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지금 진상을 밝힌다는 것도 어렵게 되었구나. 하는 탄식만 가슴에 새겼다. 휘익- 휙- 사개 정원의 휘파람 소리에 따라 독사들이 대가리를 쳐든 채 더욱 노완동에게로 조여왔다. 노완동은 콩알 만한 땀을 뚝뚝 흘리며 몸을 웅크렸다. "네 놈이 호장로를 죽였지?" 사개 정원의 물음에 노완동은 일단 목숨을 구하고 봐야겠다는 심정이었다. "난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난 다만 너희들의 다른 두 사람만을 죽였을 뿐이야. 한 사람은 내가 암기로 죽였고 다른 사람은 무슨 영문인지 저절로 쓰러졌다구." "노완동. 네가 사실을 밝힌 것은 대장부의 행동답다. 그러니 우리와 함께 개방에 가서 처분을 받아라!" "좋아, 그대들이 가자면 가는 거지." 달리 방도가 없다는 결론 때문이었다. 그러자 곧 소미타 추우가 노완동에게로 다가왔다. 노완동의 몸에 있는 대혈을 눌러놓고는 그를 독사들로부터 빼내왔다. 모두들 소씨 거렁뱅이를 주시했다. 그는 앉은 채로 기공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범장천이 말했다. "소방주, 당신도 우리와 함께 개방의 총부로 가야겠소." "난 너희들의 방주가 아냐. 미운산이 나에게 방주노릇을 시켜서 겨우 며칠 했을 뿐이라구. 난 방주노릇이 싫어. 난 이제 필요없으니 녹옥죽봉도 가져가라구." "물론 녹옥죽봉은 우리가 가져가야겠소. 당신은 방주로서 행실이 옳지 않고 또 본 방의 장로를 해치었소. 본 방의 집접장로가 사실을 밝힌 다음 당신의 일에 대해 처리가 있을 거요. 그러니 우리와 함께 동행을 해야되겠소이다." 그러나 소씨 거렁뱅이는 이 사건을 밝히는 것도 어렵고 그들이 자기를 믿어주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입을 다문 채 그들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고자 했다. 범장로가 다가와서 녹옥죽봉을 거둬가려고 하는데 나장로가 나섰다. "잠깐!" 범장로가 우뚝 자리에 선 채 머리를 돌려 나장로를 응시했다. "나장로께서 무슨 할 말씀이라도 있으시오?" "녹옥죽봉은 개방에 있는 진방(鎭幇)의 보배요. 당신이 그걸 가져가려면 개방사람들의 승인이 있어야 하오. 당신은 슬그머니 그것을 가져갈 셈이요?" "이 녹옥죽봉은 원래 금의파장로의 수중에 있던 것이었소. 전의 방주 미운산도 금의파사람이었소. 그런데 후에 이 소씨 거렁뱅이에게 잘못 전해졌던 것이오. 그러니 이젠 금의파 수중으로 다시 귀속되어야 하오." "금의파? 금의파가 다 무슨 소용이요? 개방이 창립될 때 그 금의파란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소. 멋들어진 옷을 입고 호주머니에 은자가 불룩한 것이 무슨 거지란 말이오? 기생년들처럼 거리에서 웃음을 팔면서 밥을 비는 게 아니라 향략을 누리고 있으니 어찌 거지라고 할 수 있겠소?" 하며 나장로가 주먹을 뻗었다. 그러자 범장천이 재빨리 손으로 주먹을 가로 막으며 말했다. "나장로. 화를 내지 마시오. 그까짓 재간으로 감히 날 건드리려고?" "그래, 너 일개의 범장천이 날 어쩔 셈이냐?" 두 사람은 녹옥죽봉을 옆에 놓고 곧 싸움을 시작했는데 승부가 쉽게 나지를 않을 것 같았다. 여러 장로들이 쌀쌀한 기색으로 그들의 싸움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방주의 자리를 놓고 금의파와 오의파 간의 갈등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에 모두들 심각한 눈빛을 감출 수 없었다. "얍!" 나장로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그럴 때마다 범장천은 매번 그 공격을 막아냈다. 나장로는 범장천이 자신의 공격을 매번 피하는 것에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두 사람은 어느새 삼사십합이나 싸웠는데도 승부를 판가름하질 못했다. 소씨 거렁뱅이는 비웃음을 가득 입가로 그린 채 구경만 했다. 미운산의 말이 과연 틀리지 않았구나. 금의파이니 오의파이니 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심성이 바른 놈이 없지 않는가. 단지 개방에서 자리나 다투고 녹옥죽봉이나 차지하려고 싸울 따름이지. 하며 속으로 비웃기만 했다. 그런 소씨 거렁뱅이의 속내를 읽어내지 못한 두 사람은 사정없이 치고 박고 싸움에 열중할 따름이었다. 가뜩이나 기분이 흡족하던 차에 구양봉은 더욱 신나는 구경거리를 보게 되었다. "너희들 개방놈들도 실로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자기들끼리 죽자살자 싸움을 벌이다니, 너희들 두 놈 중에는 이 녹옥죽봉을 차지할 인물이 없는 것 같으니 차라리 내가 가져가는 게 좋겠구나. 너희들이 승부를 가르게 되면 그때 돌려주마." 그렇게 중얼거린 구양봉이 번개같이 몸을 놀려 녹옥죽봉을 한손에 넣고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것을 본 장로들은 그만 사색이 돼버렸다. "구양봉, 게 섰거라!" 하고 소리 친 것은 소미타 추우였다. 그는 구양봉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므로 구양봉이 도망을 치자 곧 쫓아갔다. 그러나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우헤헤헤헤!" 멀리서 구양봉의 요상한 웃음소리만 들려오더니 곧 그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개방의 장로들은 소씨 거렁뱅이와 노완동에게 화풀이를 할 기세였다. 이 두 놈들 때문에 구양봉이 어부지리로 녹옥죽봉을 가로챘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구양봉의 재간으로 볼 때 그것을 다시 찾아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범장천이 눈을 감은 체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눈을 떴다. "됐소. 이 두 놈을 개방총부로 끌고 간 후에 다시 보기로 하지." 다른 방법을 찾을 길 없는 장로들은 범장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의 전임방주인 미운산은 여전히 그 밀실에 머물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미립이 서 있었다. 개방의 장로들이 한사람씩 천천히 그의 앞으로 들어섰다. 범장천, 나장태 등은 미운산에게 예를 올렸다. 미운산이 가벼운 웃음을 자아내며 물었다. "여러 장로들이 무슨 일로 이처럼 예의를 갖추는고? 난 이미 본 방의 방주가 아니지 않소?" 범장로가 그동안 자기들이 겪었던 일에 대해 소상히 고하였다. 그 말을 듣고 난 미운산이 놀라며 장로들을 돌아보았다. "개방 방주의 녹옥죽봉은 대신물(大信物)인데 악인의 수중에 들어가서야 되겠는가? 큰 화가 미칠지도 모르는 일이야." 모두들 숙연한 자세로 아무 대꾸도 못하였다. 구양봉의 무예가 대단하였으므로 그를 이기고 다시 되찾아올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범장천이 입을 떼었다. "또 한가지 일이 있사온데......" 소씨 거렁뱅이와 노완동의 일을 낱낱이 고하자 미운산이 다시 탄식을 하며 말했다. "우리 개방의 11명 장로들 중에 무예로 말하자면 소씨 거렁뱅이가 첫자리이고 호장로가 그 다음인데 한 사람은 이미 죽고 또 한 사람은 상했으니 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있는가?" 범장천이 소씨 거렁뱅이를 석실로 끌고 들어왔다. 미운산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소방주, 무고하우?" 소씨 거렁뱅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개떡같은 방주란 말입니까? 당신이 그 녹옥죽봉을 내게 주었기에 허구헌날 그걸 지켜야 한단 말입니다. 이거 어디 밥먹고 할 노릇입니까요? 개방의 사정이 망태기가 되어 수습해낼 수가 없게 되니까 그 방주자리를 내게 맡겼으니 누구 하나 내 말을 듣는 놈이 없소이다. 난 이젠 그만 두겠소." "소방주, 임자의 마음이 정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지. 그 대신 임자가 녹옥죽봉을 되찾아온다면 마음대로 하게 할테니 그리 아시오." 미운산의 말에 소씨 거렁뱅이는 꿀먹은 벙어리가 돼버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미운산의 말이 옳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좋소. 내가 그 녹옥죽봉을 찾아다 드리지요." 말을 마친 소씨 거렁뱅이는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나왔다. 범장천. 나장태 등 여러 장로들은 소씨 거렁뱅이가 나가지 못하게 가로 막으려고 했으나 미운산이 손을 들었다. 그냥 보내라는 뜻이었다. 장로들은 그런 미운산의 태도에 못마땅한 낯빛이었다. 그들은 아직 소씨 거렁뱅이가 호심의 죽음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금의파 장로들은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호심은 두 파의 싸움에서 오는 재앙을 막으려고 애써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미운산이 소씨 거렁뱅이를 그냥 놓아주는 게 아닌가. "방주께서는 어이하여 저 자를 놓아주십니까요?" 범장천이 묻자 미운산이 설명했다. "그 녹옥죽봉이 구양봉의 손에 있는데 다른 사람보다는 그래도 소씨가 가져오는 게 합당하이. 그 녹옥죽봉은 그 사람이 가서 뺏어와야 해." 그때서야 여러 장로들이 미운산의 말을 이해했다. "나의 10대 장로에다가 소장로까지 합하면 열한사람인데 지금 소장로가 상했고 또 호심, 제갈씨와 서씨 등 동생들이 죽었네 그려. 내 보기에 우리 개방에 재난이 점점 크게 일어날 조짐이니 여러 장로들은 각별히 조심을 해야겠네." 범장천이 다시 허리를 숙였다. "방주님, 제게 드릴 말씀이 있사온데 드려야할지 어쩔지......" "범장로, 할 말이 있거들랑 시원히 털어놓게나." "개방에 생긴 난은 다 우리 10대 장로들 손에서 이루어진 겁니다. 방주께서 자리를 소장로에게 내어줘서는 개방이 흥성할 수 없습니다. 소씨 거렁뱅이는 비록 방주노릇을 하고 있지만 그걸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개방의 대사를 망쳐버릴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자 미운산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듯 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빠른 시일 안에 새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세. 소장로가 녹옥죽봉을 빼앗오는가 하는 것을 봐가며 다시 방법을 의논해보는 게 어떤가?" 여러 장로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으고는 물러났다. 소미타 추우와 사개 정원 두 사람이 노완동 주백통을 끌고 들어왔다. 노완동이 미운산을 보자 히히덕거리며 떠벌였다. "당신이 바로 개방의 방주요? 그렇소?" 미운산은 노완동을 보고 이상한 생각에 휩싸였다. 삼사십세가 된 무림의 고수라는 사람의 행동거지가 아이처럼 덜렁거리고 천진한 것이 한편 우습기도 했다. "네 놈이 제갈장로와 서장로를 죽였느냐?" 그 말에 노완동이 태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운산이 다시 엄하게 꾸짖듯 물었다. "그래, 왜 우리 개방의 장로들을 죽였느냐?" "그 두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있지 뭡니까? 여아라는 처녀애를 죽이고 있었단 말이요. 난 그 처녀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그 못된 두 놈을 죽여버렸소." 미운산이 빙그레 웃었다. 여아가 도망한 일은 실로 입밖에 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네 놈은 전진교 사람이기에 억울하더라도 이 개방총부에서 며칠 갇혀있어야겠다. 너희네 전진교 교주 왕중양이 온 다음에 다시 보기로 하자." 미운산이 단호하게 말하자 노완동은 목청을 높였다. "뭘 두고 볼 게 있단 말이요? 당신이 날 풀어주면 될 게 아니겠소? 난 당신을 해친 일도 없는데 날 가둬서 뭘 어찌하겠단 게요?" "개방의 서장로, 제갈장로가 네 손에 죽었는데 네 놈이 그따위 말을 할 수 있단 말이더냐?" "난 그 사람을 해친 게 아니라니까 그러슈. 당신의 제갈장로가 내게 먼저 암기를 뿌렸단 말이요. 그 암기엔 독이 있었는데 난 다만 그가 내던진 것을 되받아 던졌을 뿐이요. 그게 재수없게도 그 자의 몸에 맞은 것이오. 그리고 당신의 그 서장로는 이미 쓰러져 있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는 내 모르겠소. 이래도 내게 잘못이 있단 말이요?" 그러나 미운산은 지금 노완동이 허튼소리만을 한다고 여길 뿐이었다. "거짓말 말아라! 네 놈이 여아를 죽였지?" "난 그 여잘 죽이지 않았소. 또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모르오. 내가 제갈장로와 싸우다가 머리를 쳐들어 보니까 이미 여아가 죽어 있었소. 난 절대 여아를 죽이지 않았소이다." 역시 미운산은 노완동의 말에 신뢰하지를 않았다. 소미타 추우와 사개 정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분위기를 얼른 읽어낸 노완동이 말했다. "당신들이 믿건 안 믿건간에 난 여아를 죽이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오. 여아의 죽음과는 맹세코 아무 상관도 없소." 미운산이 손을 내어 휘젓자 소미타 추우와 사개 정원이 노완동을 끌고 나갔다. 개방총부를 나선 소씨 거렁뱅이는 어떻게 구양봉을 찾아내야할지 막막했다. '내가 개방의 방주 노릇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백번 옳은 생각이지. 개방의 방주 노릇이 뭐가 좋단 말인가. 마음고생만 할 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어. 그 녹옥죽봉이란 것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이그, 정말 좋은 점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