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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3[북개홍칠공편] - 42편 (42/66)

2026-09-29 07:52:03 조회 27
홍칠이 두 장로에게 말했다. "개방대회가 열린다는데 사실인가?" 이번엔 소미타 추우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 여인은 우리 개방의 장로들에게 일흔두 개 분타의 타주더러 10월 초에 건강에 모이라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개방대회를 열고 많은 일을 의논한답니다. 방주께선 저더러 당신을 청하여 개방대회에 참가시키라고 했습니다." "누가 개방의 방주란 말인가?" 홍칠이 거세게 몰아부치자 두 장로의 얼굴색이 변했다. 난처한 기색으로 일관하던 소미타 추우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저 여인의 수중에 개방의 신물인 녹옥죽봉이 있었으므로 우리 두 사람은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범장천과 노명성 그리 소검 오평과 나장로까지 모두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홍칠은 싸늘한 눈빛으로 이들을 주시했다. 소미타 추우가 홍칠에게 예를 올리며 말했다. "이틀후에 제가 다시 사개 정원과 당신을 찾아올테니 그때 같이 떠나도록 합시다." 한편 두 장로들이 돌아가자 운의는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탁자에 앉아 화를 가라앉히고 있는 중이었다.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자신의 성격 탓에 호락호락 마음을 주지 않는 홍칠이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그녀는 수심에 잠긴 채 움직이지를 않았다. 홍칠만 자기 편으로 온다면 개방에는 미운산이 지정해놓은 방주의 계승자가 명백하게 존재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일흔두 명의 분타 타주들을 설복시키는 것은 매우 쉬워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홍칠은 요지부동으로 버티고 있으니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순간 운의는 갑자기 등 뒤쪽으로 불고 있는 살기를 느꼈다. 누군가 방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그녀가 돌아보지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 "그대는 그 검을 내려놓을 수는 없는가요? 내게 올 때는 검은 벗어두고 와야한다는 걸 잊었나요?" 하며 그녀가 몸을 돌려 그림자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검을 잡아챘다. 동시에 검은 창밖으로 날아가버렸다. 검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어쩔 줄을 몰라 겸연쩍은 얼굴을 하고 있는 금의파 장로 소검 오평을 주시했다. 소검 오평이 말없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떨어진 검을 주워들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녀 앞에 검을 든 자세로 선 소검 오평이 얼굴을 들었다. "난 그대가 검을 갖고 나를 만나러 오는 걸 환영하지 않아요. 어서 이 탁자 위에 올려놓으세요." 그러자 소겸 오평의 눈동자가 불에 타들어가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갑자기 검을 잡은 손으로 운의를 껴안더니 침상 위로 휙 집어던졌다. 침상으로 널부러진 그녀에게 다가간 소검 오평은 검을 머리맡에 놓고는 옆으로 가 앉았다. 얼른 자세를 추스리며 앉은 그녀가 그를 바라보았다. 소검 오평이 침상으로 벌렁 드러누우며 두 눈을 감았다.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사내들이란 정말 둔해. 부드럽게 굴 줄도 모르고 여인을 침상에 내던지다니? 그러고도 여인과 함께 자겠단 말이예요?" 소검 오평이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말했다. "내숭떨지 말아. 그대가 한 짓을 남이 모르고 있는 줄 알아? 그대는 자기 앞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바보로 아는 모양이지?" 그녀를 쏘아보는 소검 오평의 눈길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대는 개방의 모든 장로들과 치근덕거리고 있어. 그래 모든 사내들의 환심을 사고 싶단 말이지?" 그녀가 소검 오평의 말에 미소지었다. "보아하니 당신은 정말로 저를 좋아하나 보군요. 안 그래요?" 그녀는 내심 소검 오평의 거친 행동에 마음이 끌리고 있는 중이었다. 평소 말수가 적어 무뚝뚝한 사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처럼 자신을 대하자 기분이 흡족해졌다. 그러지 않아도 다른 장로들과는 달리 냉정하게 구는 소검 오평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차였다. 운의가 소검 오평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 "당신만 절 좋아한다면 전 그 이상 행복이 없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소검 오평의 옷매무새를 바로 잡아주었다. "그댄 그 홍칠을 좋아하지 않나? 그 홍칠에게 더 미련을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소검 오평이 손을 뿌리치며 냉소를 입에 물자 그녀가 깔깔 대고 웃었다. "호호호! 당신은 바보예요. 제가 진심으로 홍칠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줄 아세요? 홍칠이 소씨 거렁뱅이의 제자라는 걸 제가 모르고 있는 줄 아세요? 또한 그 사람은 미운산에게 무예를 전수받은 사람이예요. 미운산이 그에게 '강용팔장'까지 전수해주었는데 제가 어찌 그 사람을 믿을 수 있겠나요? 전 다만 개방대회를 열어 개방사람들이 모두 나를 따르게 만들려는 생각이예요. 홍칠을 그 회의에 참석시켜 미운산이 선정한 방주의 계승자도 나를 따른다는 것을 개방사람 들에게 보여줄 생각이지요." 소검 오평의 입이 순간 굳게 잠겼다. 그가 천천히 일어서더니 말했다. "그대가 홍칠을 좋아한다면 난 그자를 죽이고 말테야. 그놈이 시체가 되어 썩어가는데도 그대가 좋아하는지를 꼭 두고 볼 것이야!" 말을 마친 소검 오평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운의는 그를 쫓아가려 하다가 얼굴에 웃음을 그리며 혼잣말을 남겼다. "일단 그가 홍칠을 만나도록 내버려두자." 한편 혼자 앉아있다 누군가 오고 있음을 느낀 홍칠이 눈을 떴다. 그 발걸음 소리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일정한 간격을 갖고 있었다. 곧 홍칠 앞에 당도한 걸음이 여덟 팔자로 벌리고 섰다. 홍칠은 그 사람의 행동에서 문득 살기를 느꼈다. 숨이 막힐 듯한 긴장이 자리했다. 홍칠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소검 오평이 아닌가?" 그러나 소검 오평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홍칠 역시도 개방의 8대 제자로 있은 적이 있었다. 그때 제자들 중 소검 오평은 평소에 가장 과묵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기도 했다. 한나절이 지나도록 말 한마디 내뱉는 법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이처럼 불쑥 찾아온 데에는 그만한 곡절이 있을 거라 홍칠은 예감했다. 더군다나 자신이 지금 처한 입장을 헤아리고 보면 더욱 자명한 사실처럼 보였다. 홍칠이 재차 물었다. "자넨 왜 그러고 있나?" 홍칠은 이미 알고 있었다. 소검 오평마저도 그녀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을. 그러나 더이상 그런 문제를 들먹여 자신의 입을 더럽히고 싶지가 않았다. 소검 오평이 검을 쳐들며 갑자기 외쳐댄 것은 바로 이때였다. "네놈을 죽여버리고 말테다!" 그러나 홍칠은 일부러 태연한 척 자신을 꾸몄다. "날 죽이려는 사람은 실로 많지만 그대가 날 죽이려고 할 줄이야, 정말 뜻밖인걸!" 외팔이 소검 오평은 검을 뽑더니 높이 쳐들었다. 그 모습이 매우 날렵했다. 한손으로 검을 뽑으려니 어쩔 수 없이 검집을 허공으로 날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 동작이 하도 빠르고 정확해 홍칠이 속으로 감탄을 할 정도였다. 검집이 바닥에 떨어졌다. 소검 오평이 검끝으로 홍칠의 어깨를 건드리며 말했다. "홍칠아, 넌 오늘 내 손에 죽어야 해!" 홍칠은 순간 깨달은 바가 있어 씁쓸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결국 그녀가 보내 온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소검 오평이어야 하는가? 홍칠은 평소 강직하기로 소문난 그가 운의의 심복이 되었다는 사실에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홍칠의 몸에 번진 십일취의 약효과가 아직도 남아있는 탓에 여전히 움직임을 자유롭게 할 수가 없었다. 꼼짝없이 소검 오평의 검에 맞아 죽게 될 판국이었다. 홍칠이 의연한 자세로 눈을 감았다. "소검은 손을 멈추게!" 하며 나타난 것은 소미타 추우와 사개 정원이었다. 두 장로들은 황급히 걸어와 소검 오평 곁으로 섰다. 사개 정원이 말했다. "소검 오평, 자네가 그 검으로 찌른다면 후환을 감당해내기 어려울 걸세." 소미타 추우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홍칠공은 개방 방주가 지정한 계승자야. 저 사람은 타구봉법과 강용팔장을 터득한 사람인데 자네가 죽인다면 개방대회 때 난처한 지경에 빠지게 되고 만다고." 소검 오평은 씩씩거리며 두 장로들을 노려보다 검을 내렸다. 그리곤 몇걸음 가다가 날쌘 동작으로 검끝으로 검집을 들어올렸다. 검은 곧 검집으로 몸을 숨겼다. 소검 오평이 나가자 소미타 추우가 말했다. "홍칠공, 그 여인의 말을 들으시오. 일단 그녀에게 몸에 배인 독을 해독시켜달라고 하는 게 순서인 것 같소. 그런 다음 개방대회에 가서 새 방주님을 위해 힘을 내는 것이오. 미방주는 이미 폐하였고 소방주 역시도 그분을 따라가버렸소. 개방의 장로들은 모두 그녀의 명령에 따르고 있는데 당신 홍칠공 혼자의 힘으로 맞서봤자 소용없는 일이지 않소?" 결국 홍칠의 마음을 흔들어놓고자 다시 온 것이었다. 홍칠은 눈을 감은 채 그들의 말을 귀넘어들으려 했다. 말이 통하지 않자 그들은 곧 밖으로 나가버렸다. 홍칠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아팠다. 모두가 간괴한 여인에게 복종을 하고 있는 판이라 시간이 감에 따라 눈앞은 어둡게만 변해갔다. 더군다나 홍칠이 암담해하는 이유 중에는 버티고 있는 것은 자기 혼자라는 점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눈을 뜬 홍칠이 한가지 발견한 것이 있었다. 바닥에 작은 주머니가 떨어져 있었는데 전에는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힘을 모아 겨우 주머니를 집어들고는 안을 확인했다. 더욱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안에는 해독제로 보이는 환약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소미타 추우와 사개 정원은 운의가 있는 방으로 건너갔다. 그곳에는 소검 오평이 그녀의 침상에 거만한 자세로 걸터앉아 있었다. 그녀와 마주한 소미타 추우가 입을 열었다. "소검의 행실은 가히 망녕된 짓이요. 개방의 대사를 중히 여기지 않고 홍칠을 죽이려 들었소. 만약 홍칠이 죽었다면 개방대회에서 일흔두 분타의 타주들에게 뭐라고 설명을 할 것이었소?" 소미타 추우가 강력히 따져묻자 사개 정원도 덧붙이며 나섰다. "우리가 개방 방주의 자리를 빼앗고 소씨 거렁뱅이와 미운산을 쫓아낸 것만 해도 어려운 도박이었는데 홍칠까지 상처를 입힌다면 사람들이 과연 복종하려 들겠소?" 운의가 소검 오평을 돌아보며 냉랭한 기색으로 말했다. "제가 홍칠공을 건드리지 말라고 그렇게도 말렸는데 왜 듣지 않는 거죠?" 그러자 소검 오평이 천천히 자세를 풀어 침상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래, 나는 당신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단 말인가?" 소검 오평의 단호한 기색에 그녀가 비웃었다. "당연하죠. 당신은 왜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거죠?" 소검 오평이 그녀에게로 바싹 다가와 눈을 부라렸다. 그녀 역시도 질 수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맞섰다. 그러다가 그녀가 갑자기 후드득 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당신은 푹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내일 우리 다시 이야기하기로 해요." 그녀가 곧 가볍게 머리를 움직여 나머지 장로들에게 그만 나가달라고 신호했다. 그리곤 자신도 슬그머니 다른 방으로 가버렸다. 그들이 나가자 소검 오평이 침상에 힘없이 앉으며 탄식했다. "난 옥면검객보다 못해. 검법도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람됨됨이도 뒤떨어진단 말이야." 소검 오평은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자조섞인 말을 내뱉았다. 그는 베개를 베고 누워 곧 잠에 빠지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옥면검객 호심은 이미 죽었는데 그대가 그를 그리워한다면 왜 따라 죽지를 않나?" 소검 오평은 훌쩍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자신의 두 어깨는 이미 거대한 물체에 눌린 상태였다. 손으로 검을 더듬어보았으나 없었다. 냉소에 절여진 목소리만 들려왔다. "소검, 조급해 말게. 내가 그대 대신 검을 들테니." 순간 소검 오평의 눈앞으로 시커먼 그림자가 보이더니 곧 모습이 나타났다. 그런데 다시 물체가 사라져버렸다. 공중으로 솟은 듯했으나 소검 오평은 쉽게 찾아내지를 못했다. 바로 이때였다. "악!" 다시 눈앞으로 무언가 스치는 듯할 때 소검 오평은 비명을 질러댔다. 검은 물체가 욱중한 무게로 자신의 무릎 위로 내려앉았던 것이다. 마치 천근이나 되는 쇠덩어리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소검 오평은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개방 금의파 장로 부귀산인 범장천이었다. 그런데 또 한사람이 더 있었다. 소검 오평을 뒤에서 잡아당기는 사람이 있었는데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다보려 했지만 어려웠다. 그는 소검 오평의 대혈을 눌러놓고 읏으면서 검을 집었다. 그리곤 검집을 잡고는 앞으로 손을 뻗어 검을 범장천에게로 날려보냈다. 검을 잡은 범장천이 이리저리 살피더니 비웃듯 말했다. "소검 오평, 이 검은 정말 옥면검객의 검보다 못하군." 그러나 소검 오평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심하게 떨군 채 자포자기 상태에서나 보일 법한 형상을 만들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소검 오평은 웅크린 채 그대로 있었다. 범장천이 들고 있던 검을 그 앞으로 내던졌다. 고개를 든 소검 오평의 눈엔 잔뜩 흐린 기운이 어려있었다. 그는 부릅 뜬 눈으로 범장천을 바라보다가 검을 집어들었다. 그리곤 검으로 자기 배를 힘껏 찔렀다. 곧 선혈이 뿜어져 침상을 뻘겋게 물들였다. 무언가로 목이 콱 막힌 듯한 소리로 그가 말했다. "범......장천, 노명성! 다, 당신들 두 사람은 원래......" 말을 잇지 못하자 범장천이 외쳤다. "소검, 무슨 말인지 계속하게!" 그러나 소검 오평은 말이 없었다. 그는 곧 앞으로 풀썩 꺼지고 말았다. 이렇게 죽고만 것이었다. 그는 여전히 두 눈을 흡뜬 채로였다. 범장천과 노명성 두 사람은 소검 오평이 죽은 것을 확인했다. 범장천이 말했다. "이놈이 없어졌으니 이젠 편히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겠군. 난 평소 이놈이 가장 두려운 존재였지. 언제나 웃는 법도 없이 치켜뜬 눈으로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게 영 마음에 들지를 않았거든." 그러자 노명성이 정색을 하며 짧게 내뱉었다. "아직 일러!" "응?" "아직 몇놈이 더 있단 말이야. 그 소미타 추우와 사개 정원이란 작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들 두 작자는 집법장로여서 지위가 매우 중요해. 만일 그 자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아예 여기서......" 노명성은 범장천이 말하고자 하는 속뜻을 알아차리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그래도 더 기다려보는 게 상수야. 자네는 왜 항상 사람을 죽이려고만 드는 거야?" 이들 두 사람은 곧 주위를 살피며 몸을 돌려 밖으로 빠져나갔다. 소미타 추우와 사개 정원이 나타난 것은 조금 뒤였다. 이들은 문을 두드리며 소검을 깨우려고 했다. "소검, 소검! 아직 자나?" 소검 오평이 대답을 하지 않자 이들 두사람은 순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짧게 쓰치는 무언가에 놀란 듯한 표정들이었다. "소검은 원래 처신이 남과는 달라. 이렇게 못 알아듣지는 않는데......" 사개 정원이 눈짓을 보내자 소미타 추우도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두 사람은 곧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검 오평은 침상에 엎드린 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문쪽으로 향한 그의 얼굴은 아주 매서운 두 눈을 달고 있었다. 그에게로 다가서던 사개 정원이 말했다. "소검, 자는 모양이 너무 우습군. 우린 무슨 일이라도......!" 순간 사개 정원의 안색이 변했다. "큰일 났다!" 하고 소리치자 범장천이 후다닥 침상 위로 튀어올라 소검 오평의 팔을 잡았다. 소검 오평은 검을 들고 있었는데 검은 바로 그의 명치에 정확히 박혀 있는 것이었다. 강한 힘으로 검이 박혔는지 등 뒤로 그 끝이 나와있을 정도였다. 이때서야 이 두사람은 소검이 대답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말도 하지를 못했다. 제21장 개방 대회 나무 몇 그루만 성기게 서 있을 뿐, 사뭇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마을이었다. 몇몇 집 굴뚝에서 가냘프게 연기가 피어 오르고, 농부 몇이 밭을 갈고 있었다. 미립은 퍽이나 적적한 마을이라고 생각했다. 미립은 문득 홍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를 떠올리자 그녀는 야속한 마음 달랠 길이 없었다. 자기가 그토록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는 보란 듯이 팔직완(八直碗)만을 게걸스럽게 먹어대지 않았던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이제부터 사내라는 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겠어.' 미립은 이를 악물었다. "누나! 빨리, 빨리 좀 와! 지금 아버지와 소씨 아저씨가 다투고 계셔." 한순간, 미기가 부르는 소리에 그녀는 문득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홍칠에 대한 생각을 접고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미기 말대로 소씨 거렁뱅이와 미운산 두 사람 다 낯빛이 시퍼래져서는 입을 꾹 다문 채 씩씩거리며 앉아 있었다. 필시 단단히 다투고 난 기색이 역력했다. "아버지, 아버진 소씨 아저씨와……." "아저씨는 무슨 아저씨, 그냥 소씨 거렁뱅이라고 햇!" 미립이 입을 달싹거리자 대뜸 미운산이 고함을 질렀다. "그렇소, 난 소씨 거렁뱅이요. 이제 와서 그게 어쨌단 말이오. 난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위인이니 뭐라고 부르든 그건 당신 마음이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 두시오! 당신은 절대 개방 대회에 못 갑니다!" 소씨 거렁뱅이도 만만치 않았다. 목소리에 노기가 서려 있었다. "그 요망한 계집년 때문에 난 다리 병신이 되고 말았어. 씹어 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을 년이야. 한데 이번 건강(健康)에서 열리는 개방 대회에 그 계집년이 녹옥죽봉을 들고 개방 방주 자리를 차지하려고 들면 그땐 어쩌겠는가? 자칫 잘못하면 그 계집 때문에 개방 상하가 다 눌려서 찍소리도 못하고 그 계집을 방주 자리에 앉힐 지도 모르는데!" 미운산은 도저히 화를 삭일 수 없었다. 소씨 거렁뱅이는 장탄식을 하였다. "다 내 탓이오. 내가 그만 그것을 빼앗기는 바람에 대사를 망쳤소이다." 소씨 거렁뱅이가 고분고분하게 나오자 미운산도 다소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그건 자네만 나무랄 일도 아니네." 기실 녹옥죽봉이 누구 손에 있었든, 설혹 미운산 수중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 정황에서는 구양봉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소씨 거렁뱅이는 자기를 변명할 수도 없었고, 변명하려 들지도 않았다. '미운산은 지금 나를 위안하느라고 저러는 거다. 그는 내가 이 일이 어떻게 돼가는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그저 단순히 녹옥죽봉을 잃어버려서 이러는 거라고 여기고 있는 거다. 기실 구양봉의 사장(蛇杖)은 그 위력이 무방하여 미 방주가 상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를 대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소씨 거렁뱅이는 한층 누그러져서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다. 미립은 그들이 개방 대회 때문에 다투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잠자코 있다가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지자 입을 열었다. "글쎄, 소씨 아저씨는 가시려면 가서도 아버지는 개방 대회에 못 가십니다." "네가 뭘 안다고 나서는 게냐. 내가 가야 한다. 가서 두 눈 똑똑히 뜨고 그 년이 어떻게 개방 방주가 되는지 좀 봐야겠다. 아무리 일이 이 지경이 되었다고 해도 우리 개방 삼십만, 72개 분타(分舵)가 모두 그 년한테 굽실거리지야 않겠지." 그러자 소씨 거렁뱅이는 미운산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 그렇다면 가십시다. 내 비록 소씨 거렁뱅이라 해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은 아니외다. 만의 하나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우리 둘이 목숨을 내걸고 싸워 봅시다. 설사 그러다가 죽는다 해도 목숨을 아까이 여기지 않겠소." 미운산과 소씨 거렁뱅이가 개방 대회에 가겠다고 마음을 정하자 미립은 문득 가슴이 설ㄹ다. 건강에 가면 혹 홍칠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미립은 곧 이를 악물었다. '흥, 홍칠이고 뭐고 사내라면 누구든 거들떠보지 않겠다고 하고선……. 어쨌든 만난다고 해도 이젠 말 한마디 건네지 않겠어. 두고 보라지!' "단 조건이 있소. 우리는 가도 미립과 미기는 꼭 여기 남겨 둬야 하오." 소씨 거렁뱅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왜 제가 여기 남아야 한다는 거예요?" 미립은 두 눈이 휘둥그래지며 벌컥 화를 냈다. 미기도 질세라 소리쳤다. "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저도 따라가겠어요." 미운산은 처연한 눈길로 미립과 미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한순간 자기도 모르게 회한의 눈물이 솟구쳐 두 뺨을 적셨다. 애초에 이 두 남매를 그 여인한테 빼앗기지만 않았더라도 오늘날 개방이 이 지경으로 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그……그래라……. 그러자꾸나. 과연 우리 미씨 후예답다. 가자, 모두 가자!" 미운산은 눈물을 머금고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들은 미운산을 목의차(木椅車)에 앉히고 급히 행장을 꾸려 작은 배를 타고 곧바로 건강으로 향했다. 건강성과 강을 하나 사이에 두고 용골묘(龍骨墓)라는 큰 사찰이 있었다. 이 사찰에 '용골묘'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그만한 내력이 있다. 옛날에 건강성을 끼고 도는 이 강에 용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이 용이 산더미만큼 커다란 물고기로 변해 강물에서 솟구쳐 올라 이 기슭 모래톱에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