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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2부[동사황약사편] - 55편 (55/59)

2026-09-24 21:27:20 조회 29
내가 널 도화도의 제자로 받아들이마." 사문에 돌아오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간직하고 살아온 매초풍은 결국 죽기 전에 사부님의 양해를 받게 되었다. 너무나 기쁜 매초풍은 초인적인 힘으로 몸을 일으켜 사부님한테 예를 올리느라고 머리를 세 번 조아렸는데 세 번째부터 몸이 점점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머리를 들고 움푹 꺼져 들어간 눈으로 황약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사부님의 얼굴을…… 볼 수 없군요……." 그것이 매초풍의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다. 이때 구처기는 구양봉을 추격하느라 10여 장이나 쫓아가고 있었다. 마옥은 그가 혼자 구양봉을 쫓아가다가 구양봉의 간사한 마수에 걸릴까 봐 황급히 불러 세웠다. 다시 돌아온 구처기는 원한이 가득 담긴 눈으로 황약사를 노려보았다. "우리가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담 사형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소?" 황약사는 불쾌한 기분으로 구처기를 쏘아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불이가 담처단의 몸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자 모두들 황약사와 다시 싸우자고 떠들기 시작했다. 담처단이 천천히 눈을 뜨더니 꺼져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형들, 나 먼저 가오……." 전진칠자들은 급히 담처단을 둘러싸고 꿇어앉았다. 여섯 사람은 담처단이 운명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 담처단이 마지막으로 시구를 읊었다. 손에 영주(靈珠) 틀어쥐고 항상 부지런히 붓 놀리면 마음 열리고 하늘도 도우리니 어찌 뜻을 이루지 못하겠는가. 그는 눈을 감고 세상을 하직했다. 전진의 여섯 사람들은 머리 숙여 그의 명복을 빌었다. 마옥이 담처단의 시체를 안아 올리자 구처기 둥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서서히 대문을 나섰다. 그들은 담처단이 죽어 천강북두진이 깨어졌으니 황약사가 손을 쓰기만 하면 자신들이 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황약사 역시 떠나는 그들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이때 황용이 아버지한테 다가갔다. "아버지!" 황약사는 딸을 보더니 화를 버럭 냈다. "용아, 사방팔방 돌아다니니 이 애비가 널 찾을 수가 없구나!" 이때 육승풍이 황약사 앞에 다가가 예를 올렸다. "사부님, 이 주점은 곡 사제가 운영하던 것입니다. 실내의 설비가 우리 도화도식인 것으로 보아 틀림없습니다." 황약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들어가 보자." 낯선 사람들이 주점 안으로 들어서자 바보 아이가 달려 나왔다. 그 아이는 들어오는 사람들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여기 들어와서 뭐하려고 그래요? 나가요!" 황약사가 그 아이에게 물었다. "넌 누구냐?" 육승풍이 대신 대답했다. "곡 사제를 닮은 것으로 보아 그의 딸인 것 같습니다." 황약사가 아이를 찬찬히 살펴보며 물었다. "네 성이 곡씨냐?" "몰라요." 황용이 아이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어디 계시니?" "아버지……, 아버지……." 아이는 무슨 말인가 하려 했으나 아버지라는 말만 하고 황약사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것이었다. 황약사가 벽쪽에 다가가서 궤를 살펴보더니 그릇을 돌렸다. 그러자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서 벽장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밀실로 들어가 보니 그 안에 몇 구의 시체가 있었는데 궤 곁에 쓰러진 사람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고, 반대편에 쓰러진 사람이 바로 곡영풍이었다. 황약사가 얼른 냄새를 맡아 보니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난 듯했다. 황약사는 하루 사이에 제자가 둘씩이나 죽은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황약사는 몸을 일으켜 서남쪽에 있는 구석으로 갔다. 담장 밑에는 굴이 하나 파여 있었다. 그는 그곳을 더듬다가 두루말이로 된 편지를 찾아냈다. 그는 주점으로 나와 그것을 펼쳐 보았다. 거기에는 비뚤비뚤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도화도 은사 황존 앞 제자는 황궁에서 얻은 자화기명(宇晝器皿)을 은사한테 바치려 합니다. 저의 죽음을 확인하시면 제가 궁중의 시위들 손에 죽은 줄 아십시오. 딸애 하나를 세상에 남기니 사부님께 맡깁니다. 그것은 황약사 앞으로 쓴 혈서였다. 자신의 최후가 불안한 곡영풍이 피로 쓴 유서를 남겨 놓은 것이었다. 곡영풍의 유서를 보고 황용은 아연실색했다. 보아하니 아버지의 제자들은 강호에서 너무나 불행하게 살았고, 이로 인해 아버지의 심정이 무척이나 괴로웠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황용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귀한 보물을 숨겨 놓은 모양인데 가 볼까요?" 제35장 구양봉의 계략 다시 밀실로 들어온 황용과 황약사가 상자를 열어 보니 3층으로 된 상자에 금은 보석과 고서화, 그리고 골동품이 가득했다. 오도자(吳道子)가 그린 <송자천왕도(送子天王圖)>와 한간(韓干)이 그린 <목마도(牧馬圖)>가 있었고, 남당(南唐)의 후주(后主)가 그린 <임천도수인물(林泉渡水人物)>도 있었다. 그리고 길고 짧은 족자가 20여 폭이나 되었는데 모두 명가들의 필적이었고 천하의 진품들이었다. 견식이 넓은 황약사도 이렇듯 많은 명화와 명인들의 서예를 보기는 처음 이었다. "이 사람아, 자네 도대체……." 황약사는 한숨을 지으며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황용은 아버지의 가슴이 얼마나 아픈지 잘 알고 있었다. 곡영풍이 자기 사부님을 위하여 모은 보물들은 황약사가 평생 모은 것보다 열 배나 더 많았다. 이처럼 사부를 위하여 보물을 모으다 목숨까지 잃었으니 아버지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아버지, 이 많은 보물을 얻었는데 저 좀 안 주실래요? 보물을 보더니 딸도 잊으셨나 봐. 왜 보물만 바라보고 계세요?" 황용이 어리광을 부리며 하는 말에 곽정이 놀란 기색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저런 철부지가 어디 있어? 비통에 잠긴 아버지를 위로하긴커녕 어리광을 부리다니. 저러다 아버지한테 꾸중 들으려고…….' 그런데 뜻밖에 황약사는 황용을 돌아보더니 얼굴에 보일락말락한 미소를 지으며 상자에서 진주 목걸이를 하나 꺼내 딸의 목에 걸어 주었다. 황약사도 딸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황용은 아버지의 슬픔을 달래 주느라 짐짓 어리광을 부린 것이다. 황용은 아름다운 진주 목걸이를 걸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황용은 아름다운 진주 목걸이를 걸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곽정 오빠, 앞으로 염낭이 비면 이 진주 목걸이를 저당잡히면 되겠어요." 그리고는 아버지를 보면서 방긋 웃었다. 황약사는 황용을 보며 물밀듯 밀려드는 후회와 가책을 느꼈다. 그는 바보 아이를 바라보다가 문득 자기가 내세운 계율이 생각났다. "얘야, 아버지가 너한테 무공을 가르쳐 주더냐?" 황약사의 질문에 아이는 웃는 얼굴로 도리질을 하고는 벽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문을 닫고 저 혼자서 무술 동작 몇 가지를 해보는 것이었다. 벽파장법(碧波掌法)을 흉내내는 것 같았는데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아버지, 저 애는 제 아버지가 연습하는 걸 훔쳐보고 좀 배운 것 같아요." 황용의 말이었다. "음, 그런 것 같구나. 곡영풍이 내 문하를 벗어난 뒤 우리 도화도 무공을 남한테 전수하지 못했을 거다. 그런 짓은 안 할 사람이야." 황약사는 곡영풍을 생각하고 눈시울을 적시며 말을 이었다. "내 제자들 중에 곡영풍의 무공이 제일 뛰어났었지. 두 다리만 그렇게 되지 않았어도 대내시위 따위는 1백 명도 거뜬히 상대했을 텐데……." "아버지, 저 아이에게 무공을 가르치실 거예요?" "그래, 곡영풍이 못 배운 무공들과 '작시탄금(作詩彈琴)', '감문오행(龕門五行)'을 모두 가르쳐야겠다." 그 말에 황용은 혀를 쏙 내밀었다. '그러려면 아버지가 큰 고생을 하셔야겠네.' "얘야, 난 구양봉과 영지화상, 그리고 구천인을 찾으러 가야겠다. 너도 따라가 구경하겠니?" 황약사가 딸에게 물었다. 황용은 곽정을 돌아보더니 대답했다. "아버지, 전 곽정 오빠와 여기서 놀러 다닐래요." "딸자식 길러야 아무 소용 없다더니 그 말이 꼭 맞는구나. 그럼 마음대로 하려무나." 황약사는 탄식을 한번 하고는 몸을 솟구치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황용과 곽정은 웃으며 길을 떠났다. 반나절 정도 걸으니 주점 하나가 보였다. "곽정 오빠, 저 멀리 보이는 성이 임안성이에요. 여기서 요기를 하고 들어가도 늦지는 않을 거예요." 둘이 주점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려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마침 잘 왔구나." 황용과 곽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목소리의 주인이 그 끔찍한 구천인이었던 것이다. 황용은 가슴이 철렁했으나 내색을 하지 않고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구 방주님, 이렇게 함부로 다니셔도 되나요? 우리 아버지와 구양봉 선배님이 모두 방주님을 찾고 있던데." 구천인은 그 말에 냉랭하게 대답했다. "네 아버지가 날 찾아? 네가 네 아버지를 빗대서 날 위협하는 거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아버지가 방주님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방주님의 일을 우리한테 들려주시는 걸 굉장히 좋아하세요. 우리 아버진 놀기를 좋아한답니다. 아버지께서 방주님을 만나시면 즐겁게 노실 거예요." 황용이 웃으며 하는 말을 들은 구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 참 듣기 좋은 소리다. 하지만 우선 너하고 좀 놀아야겠다." 구천인이 곽정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를 붙잡으려 했다. 곽정은 구천인에게 잘못 걸렸다간 운수 사납게 되므로 그 손을 슬쩍 피하며 황용을 끌고 달아나려 했다. 그런데 구천인이 문을 막아 서며 코웃음을 쳤다. "황용아, 네가 아버지를 둥에 업고 나를 업신여기는구나. 어디 오늘 내 손맛 좀 보아라. 내가 놓아줄 줄 아느냐?" "그럼 어쩔 셈이에요? 날 죽일 건가요?" "죽일 필요도 없지. 너를 잡아 혈도를 눌러 놓고, 황약사를 협박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겠다. 어때, 내 방법이 괜찮지?" 그 말에 황용은 배를 잡고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구천인은 물론 곽정도 그녀가 왜 이렇게 웃어대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웃기는 왜 웃어? 허파에 바람이 들었느냐?" 구천인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런 서투른 재주로 날 붙잡아요? 설령 나를 붙잡으면 또 뭘해요? 우리 아버지 별호가 괜히 동사인 줄 아세요? 당신 제자들의 목숨도 상관을 안 하는 분이 딸이라고 다르겠어요? 그런 분이시면 내가 이렇게 뛰쳐나와 강호를 떠돌아다니는데도 왜 오불관언이실까요? 나를 붙잡아 아버지를 협박하겠다고요? 그런 꿈은 아예 꾸지도 마세요." 그러나 구천인은 머리를 숙이고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어쨌든 우선 널 잡아 놓고 보겠다." 그러자 황용은 곽정에게 소곤거렸다. "오빠 먼저 달아나. 가서 우리 아버지를 불러오든가 사부님을 불러와요. 그래서 나를 구해요." 그러나 곽정은 고개를 저었다. "싫어, 난 안 가. 동생과 같이 싸울 거야." 곽정 먼저 보내는 걸 포기한 그녀는 한숨을 가볍게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둘이 힘을 합해 구천인을 물리쳐야지, 뭐." 너그러운 곽정이 구천인을 죽이기 싫어할까 봐 황용은 이렇게 다짐을 했다.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갑자기 강적을 만났을 때 죽기살기로 싸우지 않으면 결국 두 사람 모두 구천인의 손에 죽기 십상이었다. 지금 황용은 홍칠공한테서 타구봉법을 전수받았고, 곽정은 강룡십팔장 중의 열다섯 가지 장법을 장악하고 있으므로, 사실 구천인에게 턱없이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생각이 있었다. 구천인이 제의를 했다. "나가자. 밖에서 자웅을 겨뤄 보자." 황용과 곽정이 그를 따라 나갔다. 숲 속에 이르자 구천인이 먼저 말했다. "황용아, 네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조롱했으니 오늘 너를 죽이지 않고는 내 속에 있는 한을 풀 수가 없다." "구 방주님, 내가 보기엔 방주님의 무공은 태반이 다 가짜인데 그걸 갖고 나를 죽일 것 같아요?" "뭐? 가짜라구?" 황용은 더욱 크게 웃어젖혔다. "벽돌을 부수고 손가락으로 술잔을 끊는 그런 헛수작이 모두 남의 눈이나 속이는 가짜라는 걸 누가 모를 줄 알아요? 그런 가소로운 짓으로 누구를 위협하는 거예요?" 구천인은 그만 얼굴이 벌개져서 혼자 중얼거렸다. "허튼소리, 그건 내가 아니다……. 그래도 당당한 철장방 방주인 내가 그런 속임수를 쓸까……." 구천인은 다 귀찮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소리쳤다. "이 황약사의 딸년아, 넌 입을 놀릴 줄만 아는구나. 잔말 말고 내 장이나 받아라!" 그러면서 한 장(掌)을 내밀자 그 힘에 황용은 그만 비틀거리며 한켠으로 밀려났다. 옆에서 구천인의 거동을 주시하고 있던 곽정은 그가 손을 쓰자 얼른 황용의 앞을 막아 나서면서 한 장 맞받아 내밀었다. '항룡유희' 장법이었다. 곽정이 손을 쓰자 구천인은 그를 향하여 한 장 후려쳤다. 펑! 하는 소리가 일며 곽정은 두어 장(丈)이나 멀리 밀려 나갔다. "오빠, 조심해!" 황용이 고함치며 나무 막대기를 들고 달려들어 구천인의 혈도를 누르려 했다. 구천인이 곽정한테 손을 쓸 때 황용은 잽싸게 나무 막대기를 찾아 들었던 것이다. 황용은 '봉도쌍견(棒桃雙犬)'의 술법을 쓰며 구천인의 허리를 내지르려 하였다. 황용의 봉법(棒法)이 이렇듯 정묘한 줄을 몰랐던 구천인은 "이것 봐라!" 하며 급히 옆으로 피했다. 이 기회에 곽정도 함께 그에게 달려들었다. 구천인의 장법은 소박하지만 힘이 아주 강하여 한 장 한 장마다 쌩쌩 바람이 일었다. 구천인은 한편으로는 황용의 타구봉법을 막고 다른 한편으로는 곽정의 강력한 장력을 막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그때 문득 웃음 소리가 들렸다. "그런 재주로는 화산논검에 갈 엄두도 못 내지. 그때 화산에 가지 않기를 잘했구만. 그만하면 자네도 스스로를 알고 있겠지만 말이야……." 그리고는 또 껄껄껄 웃어댔다. 귀에 익은 웃음이었다. 황용은 그만 가슴이 섬뜩했다. 노독물의 웃음 소리였던 것이다. 과연 위를 바라보니, 노독물 구양봉이 나무 위에 앉아 셋이 싸우는 것을 보고 웃고 있었다. 구천인이 그를 보고 말했다. "재주가 있으면 거기서 내려와 이것과 겨루어 보시지." 구양봉은 또 한 번 크게 웃더니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좋다. 이 구양봉의 솜씨를 보여 주마!" 구양봉은 황용과 곽정 앞에 서서 차갑게 노려보았다. "너희들이 내 앞에서 잔재주를 부리겠다구? 내가 따끔한 맛을 보여 주겠다." 구양봉의 말에 황용은 곽정을 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듣자하니 자기를 천하에 없는 큰 영웅으로 자처하고 있는 인간이 있다는데 오빠는 그가 누군지 알아?" "몰라, 그런 사람이 다 있나? 누군데?" 곽정은 황용이 일부러 그러는 것도 모른 채 이렇게 대답하자 그녀는 키드득 웃었다. "그것도 몰라? 여기 있잖아. 여기 있는 서독 구양봉이란 분이 바로 그런 분이시래." "구양봉이 왜 천하 제일이야? 우리 사부님이 천하 제일이지." 구양봉은 그 말에 화가 났다. "네 사부가 누군데? 그 거렁뱅이 홍칠공 말인가? 그 거렁뱅이가 천하 제일이라……. 거기에 비하면 그 구양봉은…… 이 구양봉은 말이야……." 그는 거렁뱅이 홍칠공은 자기 적수도 안 된다는 말을 하려다가, 그것이 제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아서 말을 못하고 더듬거렸다. 사실 그와 홍칠공은 여태까지 자웅을 겨루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탕탕 던지겠는가? 그런데 황용은 여전히 곽정을 보며 말했다. "곽정 오빠는 몰라서 그래요. 노독물은 우리같이 어린 후배들한테도 손을 막 댄다구요. 그리고 아무 술법이나 가리지 않고 다 쓰고 다녀서 천하 무림의 낯이란 낯은 다 깎고 다니거든요. 그런데 우리 사부님은 여태까지 그런 일을 못하니까 천하 영웅은 그래도 노독물이라구요." 아무리 앞뒤가 꽉꽉 막힌 곽정이라도 이쯤 되면 황용이 노독물 구양봉의 약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제야 곽정도 히죽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음, 그건 그래. 노독물을 확실히 낯가죽이 신바닥이야." 그 말에 노독물 구양봉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 계집애야. 내가 너를 잡는 건 아랫사람들한테 손을 대는 게 아니라 네 애비와 겨뤄 보기 위해서야. 네 애비는 내가 목숨까지 구해 주었는데도 나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니 이런 망은부의(忘思負義)한 작자가 어디 있냐? 그리고 세상에 네 아버지 같은 등신도 없다. 여편네가 죽었으면 다른 계집을 또 얻으면 그만인데, 배를 타고 바다에 들어가서 죽은 여편네와 같이 어복지장(魚服之葬)을 하겠다니, 이런 등신이 어디 있냐 말이다. 세상에 계집이 없어 걱정이라더냐? 내가 우리 백타산장의 천(天), 지 (地), 인(人) 세 누각에 예쁜 계집들이 득실득실하니 마음대로 골라 가지라고 말했지, 계집이란 의복과 마찬가지니 새 것으로 자꾸 갈아입어야 한다고 말이야. 내 말은 어디까지나 호의에서 나온 거라구. 그런데 네 애비는 내 호의를 악의로 여기니 이게 바보 등신이 아니고 뭐냐? 이런 등신과 싸우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런 맹랑한 일이 또 어디 있겠냐? 그러니 너부터 먼저 잡아 놓고 황약사한테 가서 항복을 받을 테다." 구양봉은 사설을 잔뜩 늘어놓으면서 곽정과 황용 앞으로 한 발 한 발 다가섰다. 그러자 황용이 또 곽정을 재촉했다. "곽정 오빠, 어서 가서 아버지를 데려와요. 내가 노독물에게 붙잡혔으니 어서 구하라고 전해요." 그 말을 듣고 구양봉이 껄껄껄 웃었다. "그 말이 옳다. 어서 가서 황약사를 불러와라. 나도 황약사에게 좀 물어 봐야겠다. 계집이 싫으니 딸도 싫은지 말이다." 그러나 곽정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난 황용과 같이 노독물과 이판사판으로 싸울테야. 저자가 우리를 어쩌겠다구……."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이 기회에 달아나지 않으면 너도 죽는 거야." 구양봉이 말했으나 곽정은 그 말엔 대꾸가 없이 고함을 지르며 한 장(掌)을 내밀었다. 좀 전에 구천인에게 쓰던 장법과는 달리 이 장법엔 십분(十分)의 힘이 들어 있어 그 역도(力道)가 아주 강했다. 구양봉이 오분(五分)의 역도로 곽정의 장을 받아내자 둘은 그만 놀라서 그 자리에 못박인 듯 서 버리고 말았다. "이 녀석, 무공이 만만치 않구나. 어디 한번 겨뤄 보자." 노독물은 개굴개굴 개구리 소리까지 하며 구분(九分)의 역도를 넣어 한 장을 내밀었다. 그러자 우뢰 같은 소리가 나면서 곽정의 눈앞에 일진 광풍이 일었는데, 곽정은 그만 숨이 턱 막히고 몸을 가눌 수가 없어 땅바닥에 쓰러졌다. "곽정 오빠, 곽정 오빠!" 황용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가 곽정을 안아 일으켰다. 곽정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가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황용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 아팠다. '내 말을 듣고 여기를 떠났으면 이런 봉변을 당하지 않았을텐데. 내가 노독물의 손아귀에 잡힐까 봐 떠나지 않아서 이런 중상을 입은 거야. 곽정 오빠가 죽으면 나도 살고 싶지 않아…….' "황용아, 저 녀석의 목숨이 아깝지 않으냐? 내가 살려 줄까?" 황용은 곽정이 걱정되었지만 구양봉한테 굽히기는 싫었다. "체면도 없이 후배한테 함부로 손을 대면서 뭐 영웅이라구요?" "헤헤, 난 영웅이 아니야. 고금에 없는 큰 인물, 천하 무림의 제일가는 사람일 뿐이지." 구양봉은 밉살맞게 대꾸했다. 그때 곽정이 신음하며 일어났다. 황용은 곽정을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용아, 울지 마. 노독물이 웃는다." 곽정이 말했다. 그러나 황용은 구양봉이 웃든 울든 상관없었다. "오빠가 완쾌되면 난 오빠와 결혼할 테야. 그러니 오빠도 화쟁 옹주를 생각하지 말아요." 곽정은 황용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런 허튼 생각은 하지 말라는데도 그러는구나. 내가 언제 화쟁을 생각했다고 그러니? 나한텐 너뿐이야." "그럼 나랑 결혼하는 거죠?" "그래, 그래. 너와 결혼할 거야……." 곽정은 고통이 심해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구양봉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황용에게 말했다. "황용아, 네가 나와 함께 네 아버지한테 가서 아버지가 내 앞에서 죽도록 하면 이 녀석의 생명을 구해 주마." "그 따위 허튼소리는 하지 말아요!" 황용은 울면서 소리쳤다. "구천인, 이 애를 데려가서 대혈 두 곳만 찔러 놓게. 난 황약사를 찾아가야겠어. 네가 내 말을 듣지 않고 견뎌 내는지 어디 보자." 구양봉이 구천인에게 말했으나 엉뚱한 목소리가 대꾸를 했다. "이봐, 자넨 갈수록 사람이 왜 그 모양인가? 옛날에 구양봉은 아무리 무능해도 자기 후배뻘 되는 어린것들을 해치지는 않았는데 왜 이렇게 점점 이상해지는 거지? 참, 풍속이 왜 이렇게 더러워지는지 모르겠어." 그러더니 한 사람이 나타나는데 다름아닌 개방 방주 홍칠공이었다. 푸른 옥죽으로 된 타눅봉을 들고 있는 홍칠공을 본 구양봉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별 거렁뱅이가 다 와서 귀찮게 구는군." "이봐, 네가 내 제자를 붙들어 놓고 있는데 내가 눈뜨고 가만있을 줄 알아?" 홍칠공은 타구봉으로 구양봉을 가리키며 말을 계속했다. "구양봉, 네가 감히 내 제자를 건드려? 내가 저 애를 개방 방주를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네가 감히 잡아가겠다구? 황약사는 둘째치고 이 거렁뱅이 홍칠이가 가만 놔둘 줄 알아?" 그 사이에 곽정이 깨어났다. 곽정이 보니, 황용은 구천인한테 잡혀 있고 홍칠공과 구양봉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그 기세가 금방이라도 큰 싸움이 붙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