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논검2부[동사황약사편] - 53편 (53/59)
"죽으려면 네 놈부터 죽어라!" 그녀는 아까 한 것처럼 채찍을 휘둘렀다. 그 채찍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고 구천인의 머리에 명중했다. 하지만 구천인의 머리는 윤기가 반들반들한 것이 핏자국 하나 없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 모두 깜짝 놀랐다. 구천인이 한걸음 내디디며 매초풍의 채찍을 가볍게 거머쥐었다. 그와 매초풍은 채찍을 잡고 서로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채찍 끝이 뚝 끊어지면서 길이가 한 장이나 짧아지고 말았다. 매초풍은 깜짝 놀랐다. 이것은 그의 사부 황약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당황하여 소리질렀다. "어서 비켜라!" 그녀는 구천인이 더 이상 벽돌이나 술잔을 가지고 장난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모두들 천천히 뒤로 물러났으나 구천인은 벌써 장을 내밀었다. 곽정은 황용이 그 장에 맞을까 봐 얼른 왼손을 휘둘러 몸을 돌리더니 오른손을 들어 강룡십팔장의 '견룡재전' 법수로 맞받아쳤다. 그러자 무섭게 날아간 곽정의 장과 구천인의 장이 맞부딪쳤다. 곽정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날려 가 벽에 부딪쳐 정신을 잃었다. 곽정이 손을 쓰는 것을 보고 황용이 소리를 질러 말리려 했으나 미처 그럴 틈이 없었다. 두 사람의 장이 맞부딪쳐 눈 깜짝할 사이에 곽정이 기절하는 것을 보고 그녀는 곽정에게 뛰어가 부둥켜안았다. "오빠, 오빠!" 곽정을 애타게 부르짖는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 오듯 떨어져 내렸다. 육승풍과 관영, 그리고 매초풍은 갑작스런 사태에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구천인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공력을 보여 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공력이었다. 구천인이 우쭐해진 기색으로 말했다. "도화도 문하의 오합지졸들아, 오늘 내 손에 죽어 봐라!" 이 순간 요란한 웃음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문으로 들어왔다. 그 사람은 안으로 들어서며 외쳤다. "집을 떠난 지 몇십 년인가." 그 사람은 바로 전진교의 장교진인(掌敎眞人) 마옥이었다. 마옥은 천천히 걸어와 공격 자세도 취하지 않고 조용히 구천인 앞에 섰다. 뒤이어 또 한 사람의 소리가 들어왔다. "긴 낮을 더부룩한 머리로 뛰어왔구나." 그런데 목소리만 들리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천장에 구멍이 뚫리면서 한 사람이 뛰어내렸다. 그 사람은 구천인 옆에 앉았는데 우악스런 얼굴에 시커먼 눈썹, 그리고 부리부리한 눈을 갖고 있었으며 몸매 또한 우람했다. 이 사람은 전진철자 중의 둘째 사형 장진자 담처단이었다. 또다시 누군가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해당정(海棠亭) 아래 중양의 제자들이 모이는구나!" 이윽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짝이 부서지더니 원숭이 같은 얼굴을 가진 왜소한 사나이가 들어섰는데, 이 사람이 바로 장생자 유처현이었다. 또다시 누군가가 높이 외치며 들어섰다. "연엽주(蓮葉舟) 위에 선 태을선(太乙仙)이구나!" 그는 전진칠자 중에서 무예가 제일 높은 구처기였다. 그는 문을 부수거나 천장에서 뛰어내리지도 않고, 유처현을 따라 천천히 들어와 구천인의 오른쪽 자리에 섰다. 이 자리는 가장 요긴한 자리이므로 구천인이 손을 쓰게 되면 반드시 오른손부터 쓰게 되어 있었다. 또다시 누군가가 외쳤다. "알맹이가 없는지라 껍질을 벗어 내쳤구나!"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그런 후 한 사람이 창턱에 걸터앉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창턱에 앉은 것이 아니라 한쪽 무릎을 꿇고 온몸을 구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바로 전진칠자 중의 철각선 왕처일이었다. 누군가가 또 소리쳤다. "죽기 전엔 깨달을 사람이구나!" 그 사람은 두 손으로 창틀을 뜯어내더니 그 창턱에 뛰어올라 앉았다. 광녕자 학대통이었다. 부엌 쪽에서 한 여인이 나오는데 손에는 먼지털이를 들고 해골들을 수놓은 괴상한 옷을 입고 있었다. 이 여인이 바로 전진칠자 중의 청정산인 손불이였다. 그녀도 들어오면서 한 구절을 읊조렸다. "문을 나서니 구속 없이 웃을 수 있구나." 마옥이 마지막 구절을 읊조렸다. "사람들이 서호(西湖)에 모였는데 하늘엔 달이 걸렸도다." 이 전진칠자들은 그들의 사부님인 중양진인으로부터 아주 무서운 진법을 전수받았는데 그 진법을 천강북두진(天 北斗陣)이라고 불렀다. 이 진을 칠 땐 사람마다 시구를 한 구절씩 읊고 마지막 시구를 마옥이 읊도록 되어 있었다. 모두 합하면 여덟 구절이 되는데 그것이 자기들의 마음을 이루는 동시에 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덟 구절이 다 끝나면 진중에 들어 있는 사람은 다시 살아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전진칠자를 보고 놀란 황용이 다급하게 물었다. "마옥, 당신들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나요?" 정신을 차린 전진칠자들을 보자 생기가 넘쳤다. "마 도장, 무사하십니까? 지난 번에 대사막에서 만나 뵙고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습니다. 구 도장, 역시 무고하겠지요? 왕 도장, 당신은 그때 입은 상처가 다 나았나요?" 곽정은 본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으나 전진 칠자들 중에서 세 사람이나 알고 있으므로 인사를 하느라 말수가 많아졌다. 그는 세 사람에게 일일이 문안 인사를 했다. 매초풍이 쌀쌀한 기색으로 물었다. "당신들이 전진칠자들이신가요?" 그녀는 내심 그들을 의심하고 있었다. 대사막의 벼랑 끝에서 마옥이 강남의 여섯 괴물들을 전진칠자로 분장시켜 그녀를 물러가게 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매초풍은 두 눈이 멀었지만 귀가 아주 밝아 마옥의 목소리만 귀에 익고 나머지 여섯 사람의 목소리가 모두 생소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전진칠자가 가짜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한 것이다. 육승풍은 이 전진칠자들을 보고 생각했다. '전진교의 이 놈들이 이처럼 허장성세를 하는군. 싸움을 한다는 놈들이 시구나 읊고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이처럼 귀신 놀음을 하는 건 구천인이 질겁하여 도망가게 하자는 것일 게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그는 물었다. "당신들은 싸움을 할 때마다 이처럼 시구를 읊는 거요?" 육관영이 그 전진칠자들을 살펴보다가 끼여들었다. "아버님, 전진칠자의 북두칠성 대진은 천하에서 유명한데, 이 일곱 사람들이 앉고 선 것을 보니 북두칠성 대진이 아니에요." 그들이 이것저것 물어 보았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제34장 전진철자 전진칠자들은 말없이 있었지만 구천인은 이들이 아주 무시무시한 진을 치고 있어 자기에게 상황이 아주 불리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속으로 은근히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일찍이 전진칠자들이 그들의 사부님인 왕중양한테 두 가지 절기를 이어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중 한 가지가 이 천강북두진, 즉 북두칠성대진인데 이것은 노독물인 서독 구양봉을 대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함께 죽는[同歸于盡]'검법인데 만일 홀몸으로 적과 싸우다가 무예가 상대방에게 뒤질 때 이 결사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다. 구천인이 살펴보니 이들은 바로 천강북두진을 치고 있었다. 그 칠자 중에서 구처기가 자기와 가장 가까이에 있고 마옥도 비교적 가까운 천권성 자리에 서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그와 좀 멀리 떨어진 자리에 서 있었다. 구천인이 비장한 표정으로 외쳤다. "이 놈들아, 나를 업신여기는 게냐?" 황용은 이들이 정말 아버지를 죽였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으므로 조급하게 물었다. "마 도장, 혹시 우리 아버지를 보셨어요?" 마옥은 고개를 저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황용은 간신히 마음을 놓았다. 그녀는 구천인을 노려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구천인 네 놈은 정말 못됐구나. 뭐 우리 아버지께서……." 그러나 구천인은 황용의 욕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말만 내뱉었다. "야, 이 놈들아, 너희들이 천강북두진으로 날 대적하려는 모양인데 오늘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그러자 마옥이 읍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구 방주, 당신네 철장방은 오랫동안 나쁜 짓만 하고 있소. 듣자하니 홍칠 선배님이 당신에게 그 나쁜 버릇을 고치라고 훈시했다던 데 당신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군. 오늘 우리 전진철자들이 한 수 가르쳐 주겠소." 그러자 구천인이 대답했다. "좋다!" 사람들이 바라보니 전진칠자들은 저마다 편안한 자세로 서 있거나 앉은 채 북두칠성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구천인은 철장 한 개를 손에 들고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이렇게 되니 그는 담처단, 유처현과 좀 가까워졌다. 그는 마옥과 구처기가 전진철자 중에서 무예가 제일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일단 싸움이 붙으면 담처단과 유처현 쪽을 공격하리라 마음먹었다. 담처단, 유처현은 구천인이 자기들 쪽으로 접근하는 것을 보고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구천인이 움직이자 칠자들도 거의 동시에 움직여 여전히 천강북두진을 유지했다. 일곱 사람들은 검들을 뽑아 들었다. 구처기가 제일 먼저 검 끝으로 구천인을 겨누었다. 구천인은 몸을 돌려 철장으로 그것을 막았다. 구천인이 칼을 피하면서 말했다. "싸움이 붙으면 집이 무너져 다른 사람들이 다칠 테니 밖으로 나갑시다." 마옥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아, 방주께서 먼저 나가시지." 황용은 구천인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급했다. 교활한 구천인이 밖으로 나가는 척하다가 전진철자들이 진을 펼치지 못한 틈을 타서 도망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구천인은 철장수상표로 불릴 만큼 경공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황용이 다급하게 외쳤다. "전진칠자님, 그자를 내보내면 당신들이 큰 손해를 보게 돼요!" 마옥이 그 이유를 묻자 구천인도 문가에 멈춰 서서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황용이 설명했다. "저자가 도망치면 당신들은 붙잡지 못할 거예요. 설령 달아나지 않더라도 비겁한 수법으로 장을 날리면 큰일이라구요." 손불이는 황용의 말이, 구천인이 손을 쓰기만 하면 자기들을 다 죽여 버릴 수 있다는 말로 재수없게 들렸다. 그래서 그녀는 쌀쌀맞게 대꾸했다. "재수없는 소리나 지껄이는 그 입 좀 닥쳐라!" 그녀는 먼지털이로 황용을 후려쳤다. 황용은 홍칠공한테 배운 '소요유(逍遙遊)' 법수로 그것을 살짝 피했다. 그것을 본 손불이는 황 괴물의 딸도 제법 재주가 있다는 것에 내심 깜짝 놀랐다. 구천인이 문 앞에서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내가 도망갈 거라구? 천만에! 오늘 전진철자와 결판을 내지 않으면 내 가슴의 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구천인이 뜨락에 나와 섰다. 주점 앞에 있는 이 뜨락은 아주 넓었다. 마을 사람들이 가을에 탈곡을 하고 낟알을 말리느라 이 뜨락을 넓게 닦아 놓은 것이었다. 이곳이라면 싸움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구천인이 조롱하듯이 말했다. "또 시구나 외워 보시지 그래!" 그러자 마옥이 장검을 흔들어 대면서 대꾸했다. "구천인, 오늘 우리가 네 놈의 무공을 폐한 다음 속죄하게 만들겠다!" "뭐라구?" 화가 난 구천인은 갑자기 오른손의 철장으로 마옥을 후려쳤다. 구천인의 장력은 대단했다. 곁에 있던 구처기가 급히 몸을 움직여 금사(金蛇)가 굴을 빠져 나가는 법수로 마옥과 함께 그 철장을 막아냈다. 쟁강 하는 소리와 함께 철장과 두 검이 부딪쳤다. 마옥과 구처기는 세 발자국이나 밀려나서야 구천인의 무공이 대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전진칠자들은 이미 검진(劍陣)을 쳐놓았지만 구처기와 마옥이 천권, 천구(天樞)의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으므로 천권의 위치에는 왕처일이 서 있었다. 그런데 왕처일의 무예는 구처기보다 약했던 것이다. 왕처일이 검을 들어 구천인을 찌르자 구천인이 급히 장을 내밀어 그 검을 막았다. 마옥과 구처기는 그 틈에 천구, 천선(天璇)의 위치에 섰다. 구천인은 오늘의 싸움이 실로 어려운 싸움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좌우로 철장을 휘둘러댔다. 그러자 윙윙거리는 철장 소리만이 요란하게 들려 왔다. 그가 철장을 휘두르는 법수는 위력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굉장히 정확해서 맞기만 하면 살아나기가 힘들었다. 이들의 무예를 지켜 보던 도화도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서 구천인을 쳐다보았다. 전진칠자들 역시 무예가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었으나 구천인의 철장에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진을 조절하며 서로 호응할 따름이었다. 구천인은 앞과 뒤, 좌우에도 적이 있으므로 연거푸 2, 30장을 휘둘러야 했다. 그러나 매번 내미는 장마다 절묘하기 그지 없었고 그 법수가 무진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기를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싸우자니 그는 점점 견디기가 어려워졌고, 그럴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구천인은 이 천강북두진이 전진교에서 으뜸가는 검진 공부이며 왕중양이 이 검진 법수를 고안해 내느라 엄청난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이 검진은 작은 규모에서는 박투에 쓰일 수 있고 확대하면 전진(戰陣)에도 쓰일 수 있는 것이었다. 강적이 공격해 올 때는 선두에서 쳐오는 자의 공세를 좌절시키고 양옆의 동료들이 측면에서 반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무공을 겸비하도록 할 수 있는 이 진세는 실로 막아내기가 어려웠다. 10여 합 싸우고 나니 구천인은 점점 기운이 빠져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내가 산에서 20년이나 장법을 연마할 땐 일단 산을 나서기만 하면 천하 무적일 줄 알았다. 한데 이 전진교의 천강북두진에 걸려 목숨을 잃는단 말인가. 이대로 계속 싸우다간 내가 지고 말 것이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느라 손 동작을 약간 늦춘 틈을 타서 담처단이 장력으로 그를 밀었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담처단의 장에 맞은 철장이 윙 소리를 내면서 진 밖으로 날아갔다. 왕처일이 그것을 보고 소리쳤다. "구천인, 어서 항복해라!" 구천인이 노기충천하여 외쳤다. "너희들 전진교에게 항복하라구? 그런 꿈같은 소리는 하지 마라!" 구천인이 발로 마옥과 구처기를 걷어차자 두 사람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대단한 솜씨다!" 구처기와 담처단이 장을 내밀어 구천인의 공격을 막았다. 구천인은 몸을 돌려 다시 장으로 마옥을 공격했다. 하지만 천강북두진은 또 변화를 일으켜 이번에는 구처기가 천권성 위치에 있게 되었다. 그것은 전진칠자들이 평소에 연마해 온 진식(陣式)이었다. 그 순간 구천인이 하늘을 쳐다보며 요란하게 웃더니 갑자기 훌쩍 뛰어오르며 장으로 치고 발로 걷어찼는데 바람 소리만으로도 위력이 대단했다. 그것을 본 육승풍 일행은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아까 주점 안에서 그들이 조롱할 때 구천인이 즉시 손을 썼다면 육승풍 부자와 황용, 곽정, 그리고 매초풍까지 모두 함께 덤벼들었어도 그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었다. 구천인은 좌충우돌하면서 천강북두진 안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지만 일곱 사람들의 물샐틈없는 포위를 뚫을 수가 없었다. 구천인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 이름이 이 보잘것없는 전진칠자들에게 짓밟힌다면 너무도 억울한 일 아닌가? 남제, 북개, 동사, 서독의 손에 죽는다면 모를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구천인은 기분이 상해 얼굴마저 어두워졌다. 장을 놀리는 법수와 동작도 점점 느려졌다. 구천인이 위험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누가 큰소리를 질렀다. "구천인, 빨리 이리 오게! 이리 오란 말이야!" 누군가 이쪽으로 질풍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달려오면서도 주먹으로 자기 몸을 계속 치고 있었다. 노완동을 알아본 황용이 깔깔 웃으며 물었다. "할아버지, 우리 아버지를 이기고 도화도에서 뛰쳐나오셨어요?" 노완동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마옥, 구처기, 자네들은 게서 뭘 하나?" 자세히 보니 사숙인 노완동이었으므로 일곱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숙여 예를 올렸다. 그러나 노완동은 귀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 됐네 됐어! 자네들 일곱 사람이 모두 나한테 예를 올리면 내가 일곱 번 응해야 하는데 얼마나 시끄럽겠나!" 노완동이 살펴보니 일곱 사람은 천강북두진을 이루고 있었다. "자네들이 여기서 구천인을 괴롭히고 있는 건가? 그건 안 되네. 내가 저 놈을 놔주겠어. 저 놈이 철장수상표라고 하던데 내가 먼저 한바탕 붙어야 해. 저 놈의 철장이 얼마나 센지 보겠단 말이야. 저 놈의 철장이 센지, 아니면 나의 72수공명권(七十二手空明拳)이 센지 겨뤄 봐야 하네. 저자가 그 철장수상표라니, 이 영감이 분통 터질 일이지." 황용은 노완동을 보자 반가워서 다시 물었다. "할아버지, 무슨 일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나도 철장무적수상표란 별호를 하나 붙여야겠다. 네 놈이 철장수상표라니 가소로워 웃음도 안 나오는구나. 구천인, 나와 경공을 겨뤄 보자!" 그러자 구천인이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노완동, 이건 당신이 참견할 일이 아니오. 흥, 네까짓 전진교 잡놈들이 이따위 작전으로 날 죽이려는 거냐?" 그러자 노완동이 마옥을 보고 말했다. "마옥이, 우선 구천인을 내보내게. 나와 경공을 겨룬 다음에 자네들이 죽여도 늦지 않아." 마옥 등 일곱 사람은 속으로 불평이 대단했다. 이 주책바가지 영감이 다 죽게 된 구천인을 살려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노완동은 마옥이 선뜻 대답하지 않자 마구 화를 내기 시작했다. "마옥, 구처기! 네 놈들이 나를 정말 사숙으로 생각하긴 하는거냐? 그까짓 천강북두진을 갖고 뭘 그리 으시대느냐? 구천인, 네 놈도 바보야, 날 좀 보란 말이야!" 노완동이 엿차 소리를 지르더니 진 안으로 들어가 구천인 곁에 서서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자네가 마옥이와 처현일 치고 빠져 나가게. 이렇게 치고 나가란 말이야. 허지만 손불이에게 손을 대면 안 돼. 호남아는 여인과 싸우지 않는 법이라구." 노완동이 진중에 들어가자 형세가 크게 달라졌다. 그가 황약사에게 붙잡혀 도화도에 16년 동안이나 갇혀 있으면서 《구음진경》의 심오한 도리를 깨우친데다가 '공명권(空明拳)'이란 장법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공명권은 생각을 두 갈래로 나누어 좌우로 다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는 무술이므로 이렇게 되면 노완동이 두 사람이 되는 셈이었다. 그는 천구, 천선에 위치한 두 사람을 왼손으로 공격하고 동시에 천기, 천권에 위치한 두 사람을 오른손으로 공격함으로써 단번에 일곱 사람을 혼란에 빠뜨렸다. 게다가 전진칠자들로서는 자기네 문하의 사숙 노완동이 진 안에 있으니 적개심이 날 리 없었다. 하지만 노완동은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한 번도 허투로 하지 않았다. 그는 싸우면서도 여전히 버릇대로 중얼거렸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2, 30번이나 주먹을 휘둘러댔다. 그러지 않아도 싸울 생각이 없었던 담처단은 노완동이 사납게 주먹질을 하자 황급히 검을 거두어 들였다. 노완동이 그 틈을 타서 그의 손을 가격하는 바람에 손에 들 었던 검이 윙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때 노완동이 손불이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머리를 돌려보니 구천인이 손불이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었다. 노완동은 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구천인, 이 망할 놈아! 내가 여인은 때리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 구천인이 장으로 손불이의 검을 치자 그녀의 장검이 두 동강이 나면서 사람까지 공중으로 붕 날아갔던 것이다. 노완동은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 구천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구천인, 나한테 덤벼라!" 전진칠자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사부님은 도대체 왜 저 사람을 사제로 받아들였을까? 보아하니 우리 전진교가 앞으로 저 사람의 도움을 받기는 어렵겠어. 저 사람은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사람이니 대사를 망치기 십상이야. 오늘 저 못된 구천인을 살려 주었으니, 앞으로 얼마나 긴 세월이 지나야 이런 기회가 생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매초풍이 갑자기 웃으면서 말했다. "천강북두진이 무적의 진이라고 하더니, 이렇게 쉽게 깨어질 줄은 몰랐군요." 손불이는 그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 "매초풍, 여기가 어디라고 네 년이 감히 주둥일 놀리느냐!" 그 말에 매초풍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난 번엔 대사막에서 너희 전진칠자들이 날 궁지에 몰아넣었지만 오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이 일은 곽정과 마옥만이 알고 있었다. 대몽골의 사막에서 마옥과 곽정, 그리고 강남의 여섯 괴물이 절벽 위에서 전진칠자로 가장하는 바람에 매초풍이 물러선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마옥만이 전진칠자에 속하는 사람이고 나머지 여섯 사람은 전진교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매초풍은 그들이 구천인, 노완동과 싸우는 소리를 듣고 지금 이들은 진짜 전진칠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마옥 둥이 왜 절벽 위에서 전진칠자로 가장하여 자기를 속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겁이 나서 물러난 일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초풍은 차갑게 내뱉었다. "마옥, 당신들처럼 명성이 높은 전진칠자가 사람을 속인단 말이오? 다른 사람들은 당신들을 두려워할지 몰라도 우리 도화도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소!" 그러자 구처기가 대꾸했다. "매초풍, 도화도에서 쫓겨난 주제에 도화도 문하의 사람이라니, 그 따위 허튼소리 하지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