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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2부[동사황약사편] - 2편 (2/59)

2026-09-24 21:31:32 조회 26
그는 허리춤에서 재빨리 옥소를 뽑아 들고는 옥소로 소인의 갈퀴 같은 손에 있는 소부(少府), 신문 (神門) 두 대혈을 가리켰다. 황약사가 옥소를 뽑아 들고 달려들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소인은 주춤 물러서는 눈치더니 손을 빙글빙글 돌려 장법을 바꾸고는 다시 달려들었다. 소인의 갈퀴 같은 손이 황약사의 얼굴을 쥐어뜯으려 했다. 황약사는 다급히 몸을 피하면서 옥소로 소인의 팔에 있는 천천(天泉), 곡택(曲澤) 두 혈을 가리켰다. 소인은 슬쩍 몸을 피하면서 부드득 이를 갈았다. '천하에 난다 긴다 하는 녹림의 호걸들도 나의 갈퀴 같은 손이 두 번만 뻗치면 독수리에게 채인 병아리 신세가 되기 마련인데 이 백면서생 같은 놈은 도무지 거머쥘 수가 없구나. 이 놈의 무공이 이토록 정묘하니 나 혼자 힘으로는 당할 재간이 없겠다. ' "여봐라!" 소인은 당장 사불과 악귀를 불렀다. 황약사가 튕긴 손가락에 장님이 되는 줄로만 알았던 사불은 다행히도 시력은 잃지 않았다. 황약사와 소인이 밀고 당기며 무섭게 싸우는 광경을 지켜 보던 사불은 황약사를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망할 놈의 자식, 내가 잽싸게 피하지만 않았어도 아마 저 놈의 손가락에 맞아 앞 못 보는 병신이 될 뻔했지 뭐야?' 사불은 소인의 부름에 대뜸 소리질렀다. "사불―!" "악귀―!" 소년도 화답했다. 사불과 악귀는 다시 황약사에게 달려들었다. 금세 일대 혼전이 벌어졌다. 소인은 황약사의 얼굴을 노리고 연신 갈퀴 같은 손을 뻗쳤고 사불은 날쌘 보법으로 달려들어 황약사의 뒤통수와 어깨를 후려치곤 했으며 소년은 얄궂게도 황약사의 사타구니를 겨누고 주먹을 날렸다. 황약사는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밀었다. '고약한 놈들, 끝까지 이 어른의 부아를 돋을 셈이냐?' 하지만 세 놈 다 무공이 뛰어난 자들로 섣부르게 덤볐다간 큰코 다치기 십상이었다. 더구나 소인의 갈퀴 같은 손에 일단 잡히기만 하면 웬만한 사내는 뼈가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그 손은 사람의 손이라기보다 마귀의 손에 가까웠다. 황약사는 옥소를 허리춤에 지르고 경공으로 세 사람 사이를 슬슬 안개처럼 떠다니면서 두 손으로 치고 박고 갈겼다. 마치 아름다운 여인이 안개를 타고 경쾌하게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이었다. "허, 참 멋진데!" 사불은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황약사의 옆구리에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소년도 뒤질세라 황약사의 다리에 장과 주먹을 안겼다. 차돌같이 여문 소년의 주먹은 황약사의 혈을 향해 내질렀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이 놈들!" 황약사는 무섭게 고함을 지르면서 두 손을 연신 번개같이 움직였다. 10여 합 어우러졌을까? 돌연 황약사의 왼손이 산불의 어깨에 닿는가 싶더니 사불이 휘청거리며 두어 걸음 물러섰다. 황약사는 그 틈을 타서 성큼 뛰어나가며 다시 한 번 사불의 어깨를 후려쳤다. 힘을 반도 쓰지 않았는데 사불의 몸이 붕 떠서 호수에 내리꽂혔다. 사불이 물에 빠지자 악귀라는 소년은 소인과 황약사는 제쳐놓고 천방지축호숫가로 달려가더니 풍덩 물 속에 뛰어들었다. 소인은 황약사의 기세에 더욱더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옥녀가 근심스러워진 황약사는 소인과의 싸움을 빨리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두 손을 소인의 양쪽 옆구리에 넣으면서 번쩍 들어 메다꽂으려고 했다. 그 눈치를 채고 소인은 황약사의 어깨를 움켜잡고 힘껏 비틀었다. 그러나 황약사는 기둥처럼 버티고 서서 끄떡도 하지 않았다. 만약 보통 사람이 그처럼 억센 손아귀에 잡혔다면 꼼짝달싹 못하고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다. 소인은 징글맞게 웃으면서 급급히 내력을 운행시켜 전신의 음독 (陰毒)을 두 손에 몰아붙였다. 황약사는 어깨로부터 섬뜩한 냉기가 온몸에 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놈이 내력으로 나를 굴복시킬 작정이구나!' 황약사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 슬그머니 주먹을 쥐었다. "이 놈, 손을 떼지 못할까? 이런다고 네 놈이 나를 이겨낼 성싶으냐?" 황약사가 고함을 지르자 소인은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황약사의 내력이 이 정도로 뛰어난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인은 바락바락 악을 썼다. "기어이 죽여 버리고 말 테다!" 소인은 황약사를 거꾸러뜨리기 위해 손아귀에 전신의 내력을 모았다. 소인의 깡마른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했다. 황약사는 모아 쥐었던 손가락을 소인의 머리에 대고 차례로 튕겼다.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획, 획, 맵짠 바람이 일었다. 소인은 갑자기 머리가 빠개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황약사를 뿌리치고 황망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황약사가 주위를 둘러보니 호수는 고요히 누워 있고 방금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사불과 악귀도 보이지 않았다. 황약사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성큼성큼 옥녀에게로 다가갔다. 옥녀는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인사불성이 되어 누워 있었다. 황약사는 다급히 옥녀를 흔들어 깨웠다. "옥녀, 옥녀!" 한참 만에야 옥녀는 눈을 뜨더니 황약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설 공자, 설 공자님이시군요!" 그녀는 황약사의 품에 와락 안겨 들며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황약사는 무어라고 위로해 주어야 할지 몰라 그저 옥녀를 부축해 앉힐 뿐이었다. 날이 훤하게 밝아 오기 시작했다. 무심결에 옥녀의 얼굴을 본 황약사는 속으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달덩이처럼 둥실하던 얼굴은 어느새 살이 쏙 빠져서 덜 익은 바가지처럼 잔뜩 쪼그라들었는가 하면 눈썹도 빠지고 흑진주와 같이 아름답던 눈동자도 깊은 안개 속에 잠긴 듯 흐리멍텅해 보이는 게 아닌가. 황약사는 말문이 막힌 채 형용할 수 없는 비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옥녀는 자기의 얼굴이 추하게 변한 줄도 모르고 히죽히죽 웃으며 황약사에게 애교를 떨었다. "설 공자님, 설 공자님. 공자님이 3천 냥을 내겠다길래 저는 그때 그만하면 충분할 줄 알았어요. 한데 진주를 말로 퍼주려는 작자가 나타날 줄이야 어찌 알았겠어요? 그 놈이 아니라 공자님께만 시집을 갔더라면 이 지경으로 고생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공자님, 나의 공자님……," 옥녀는 사랑하는 이나 만난 듯이 황약사를 꼭 끌어안고 응석을 부리면서 끝없이 속살거렸다. 소인에게 잡혀 시달림을 받던 끝에 꿈에도 그리던 사랑하는 이를 만났다고 생각하니 될 듯이 기뻤던 것이다. 옥녀는 더욱 힘을 주어 황약사를 끌어안으면서 볼을 비볐다. 황약사는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찬연한 아침 햇살 속에서 한 어여쁜 아가씨가 점차 늙은 할망구로 변해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여간 쓰린 게 아니었다. 옥녀는 여전히 한 팔을 황약사의 목에 감고 칭얼거렸다. "참 이상야릇한 사람도 다 있죠? 글쎄 저를 못살게 굴면서도 금은을 한 보따리나 주지 않겠어요? 진짜로 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황약사가 묵묵히 앉아 있자 옥녀는 짐짓 곱게 눈을 흘기면서 투정했다. "왜 멍청히 보기만 해요? 어서 보따리를 풀어 보자구요!" 그녀는 부산을 떨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단. "어머나!" 옥녀는 너무나 놀라 멍청히 입을 벌린 채 보따리 속의 금은을 바라보았다. 족히 천 냥은 될 것 같았다. 옥녀는 두 눈이 휘둥그래져서 중얼거렸다. "이렇게 많이……. 이렇게나 많이……." 황약사는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머리가 새하얀 늙은이로 변했다고 말해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시각각 파파 늙은이로 변해 가고 있는 옥녀를 쳐다보고 있기도 괴로워서 그는 고개를 숙이고 외면하였다. 황약사가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데 별안간 말발굽 소리가 들려 오더니 웬 공자가 나타났다. 공자는 말 위에서 뛰어내리더니 다짜고짜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옥녀, 여기에 있었구려. 그래도 저 백마가 잘 뛴 덕분에 요행 옥녀를 쫓아왔구만." 옥녀는 공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쌀쌀한 어조로 대꾸했다. "누구시죠? 난 누구신지 모르겠는데요." 젊은 공자는 가까이 다가오더니 옥녀의 추한 얼굴을 보고 소스라쳐 놀랐다. 그는 입을 딱 벌린 채 할말을 잊은 듯했다. 옥녀는 여전히 황약사의 목에 팔을 두르면서 공자를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대관절 누구시죠? 어서 가던 길이나 가세요. 괜히 저와 설 공자님의 밀회를 방해하지 말고요." 정작 눈앞에 서 있는 사내가 바로 그토록 사모하던 설 공자라는 사실을 그녀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설 공자는 너무나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힌 채로 물끄러미 옥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새까맣던 머리는 어느덧 서리가 앉은 것처럼 하얗고 얼굴은 호두알처럼 열기설기 주름이 잡혀 있었다. 두 팔로 황약사의 목을 끌어안고 살갑게 속살거리며 아양을 떨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설 공자는 일순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그녀는 옥녀임에 틀림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설 공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다가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옥녀는 황약사를 끌어안고 히죽거렸다. "설 공자님, 호호……. 저 놈이 뛰는 걸 좀 봐요. 아마도 우리 둘이 좋아하는 걸 보니까 괜히 제 쪽에서 무안을 탔나 보죠? 호호호……." 황약사는 어처구니가 없어 잠자코 앉아 있었다. "저 놈이 무안해서 도망치는 꼴이 너무 우습잖아요?" 그녀는 키득거리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설 공자님, 왜 이렇게 점잖아졌죠? 전처럼 절 좀 안아 주세요. 새삼스럽게 수줍음을 타시나아?" 옥녀는 말을 마치고 깔깔 웃어댔다. 황약사는 실없이 재잘거리는 옥녀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새파랗게 젊던 아가씨가 하룻밤 사이에 늙은 할망구로 변하다니 실로 인생의 무상함을 절감케 하였다. 황약사는 하는 수 없이 치근거리는 옥녀를 안고 속으로 악마 같은 소인을 저주했다. '일단 내 손에 잡히는 날에는 갈기갈기 찢어 죽일 테다!' 황약사는 옥녀를 보고 말했다. "옥녀 아가씨, 나와 함께 갑시다!" 그 말에 옥녀는 짐짓 새침해서 앵돌아졌다. 그녀는 황약사를 흘겨보며 투정하듯 말했다. "아니, 옥녀 아가씨라니요? 결우헌에서 만날 때는 무어라고 불렀죠? 그때처럼 불러 줘요." 황약사는 여간 난감하지 않았다. 설 공자가 그녀를 어떻게 불렀는지 그가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황약사는 옥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불러 보았다. "소옥이……." 그의 부름에 옥녀는 더욱 눈살을 찌푸렸다. "뭐? 소옥? 너무 천박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그동안 날 뭐라고 불렀는지 그새 다 잊어버렸단 말인가요?" "아무래도 너무 흥분한 탓인가 보오. 뭐라고 불렀더라……?" 황약사는 능청을 떨면서 두 눈을 껌벅거리며 옥녀의 애칭을 생각하는 시늉을 했다. "옥아, 옥아라고 했잖아요. 어쩌면 저의 애칭을 다 잊어먹는단 말인가요? 정말 섭섭해요……." 옥녀는 잔뜩 볼이 부어서 푸념을 늘어놓더니 혹혹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실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옥녀와 설 공자가 서로 눈이 맞아서 밤낮 안고 뒹굴며 희희낙락 주고받던 말들을 귀신이 아닌 이상 황약사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아무튼 황약사는 몰골이 형편없이 된 여인을 보고 '옥아'라고 부르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황약사가 묵묵히 서 있자 옥녀는 발끈 화를 냈다. "아니, 이젠 날 보기가 역겹다는 건가요? 왜 말이 없어요?" 황약사는 측은한 눈길로 옥녀를 바라보았다. 방금 기절초풍할 듯 놀라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난 사내가 바로 설 공자였노라고 말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는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하는 수 없이 불러 보았다. "옥아." 그제야 옥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시금 황약사의 가슴에 파고 들었다. "저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어서 고마워요……." 황약사는 하는 수 없이 옥녀를 끌어안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남들이 이 꼴을 보면 뭐라고 할까?' 하지만 황약사는 남들이 웃든지 말든지 옥녀를 껴안고 읍내로 들어가기로 작심했다. 길 가던 행인들은 모두 이상야릇한 눈길로 황약사와 옥녀를 훔쳐 보았다. 한쪽은 준수하게 생긴 쾌남아이고 다른 한쪽은 늙은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격에 맞지 않게 울긋불긋 수를 놓은 비단옷을 입었는데 젊은이의 모친인 것 같다. 한데 音은이가 젊은이의 목에 매달려서 무슨 말인가를 끝없이 지껄이며 헤실헤실 웃는 모습은 암만 봐도 정상적으로 보이질 않는 눈치였다. 옥녀를 데리고 거리에 나선 황약사는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는 한참을 궁리한 끝에 그녀를 도화도에 데리고 가서 만년을 거기서 지내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옥녀는 길을 걷는 동안 내내 한시도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대체로 설 공자와 더불어 술잔을 나누고 정을 통하던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얘기하는 동안 그녀의 쭈글쭈글한 얼굴에는 제법 발그스름하게 홍조가 어렸고 두 눈은 가늘게 물결치고 있었다. 그녀가 흥에 겨워 지껄이거나 말거나 황약사는 그녀를 부축한 채 묵묵히 걸음을 재촉했다. 해가 중천에 뜰 무렵 두 사람은 한 주막에 다다랐다. 황약사는 옥녀의 창피한 꼴을 보이지 않으려고 주막집 주인에게 급히 방을 요구했다. 주막 주인은 황약사의 몸에 달라붙어 키들키들 웃고 있는 옥녀를 보더니 참 세상에 해괴망측한 모자간도 다 있다고 속으로 웃으면서 물었다. "이분은 아마 손님의……." 주막집 주인은 돌연 등허리에 강한 타격을 받으면서 숨이 턱 막혀 말끝을 맺지 못했다. 주막집 주인이 쓸데없이 농담을 하지 못하게 황약사가 슬그머니 손을 쓴 것이다. 주인은 그만 혼쭐이 나서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술상을 차려 들여오자 황약사는 옥녀와 함께 방안에서 술을 마셨다. 옥녀는 황약사를 쳐다보며 그칠 줄 모르고 히죽거렸다. 황약사가 잠자코 술잔만 내려다보고 있자 옥녀가 바싹 다가앉으며 속살거렸다. "설 공자님, 오늘부터 이 옥이는 공자님의 사람이에요. 자, 어서 합환주나 한잔 드시지요." 둘이 술잔을 들려는 찰나였다. 문득 밥상 위로 하얀 머리카락 한 올이 날려 떨어졌다. 옥녀는 밥상 위에 떨어진 하얀 머리카락을 찬찬히 보더니 흠칫 놀랐다. "아니, 이게 뭔가요?" 옥녀는 후닥닥 일어나 벽에 걸어 놓은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아악!"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발견한 그녀는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쓰러진 옥녀의 눈에는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한참 만에야 옥녀는 부스스 깨어났다. 그녀는 그제야 제정신이 드는지 몸을 일으키며 황약사를 멀거니 건너다보았다. "당신은 설 공자가 아니에요. 설 공자는, 설 공자는 어디 있나요?" 황약사가 덤덤히 대꾸했다. "임자를 보더니 훌쩍 가버리더구만……." 옥녀는 말없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문득 입 안에 무엇인가 깔깔하게 씹히는 것을 느끼고 손가락을 집어 넣어 끄집어냈다. 꺼멓게 삭은 이 서너 대가 묻어 나왔다. 옥녀는 벌레 먹은 콩알 같은 이를 보면서 처절한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하루 사이에 파파 할머니가 되어 차돌처럼 반짝이던 흰 이마저 새까맣게 삭아 떨어지는 현실이 도저히 믿어지질 않았다. 그 젊음, 그 아름다움이 도대체 어디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옥녀는 너무도 기가 막혀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그녀는 황약사를 멍청히 쳐다보다가 조용히 절을 올린 뒤 입을 열었다. "본의 아니게 공자님께 폐를 끼쳤군요. 공자님의 은공은 내세에 꼭 갚아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문고리에 빗장을 지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옥녀가 죽은 후에라도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행복하게 사시길 기원하겠어요." 옥녀의 두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녀는 허리에 감았던 비단띠를 풀어 대들보에 매달고 올가미를 지어 조용히 목을 걸었다. 황약사는 옥녀를 말리려고 하지 않고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술잔을 비운 그는 무심코 손아귀에 불끈 힘을 주었다. 빈 술잔이 맥없이 그의 손아귀 안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제2장 살인마를 찾아서 황약사는 옥녀의 시체를 이불로 둘둘 말아 가지고 성밖에다 묻고 비석을 세웠다. 그는 옥소로 비석에다 '옥녀의 묘'라고 쓰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옥녀야, 이렇게 억울하게 죽다니 가엾기 짝이 없구나. 내 기어코 소인이란 놈을 찾아내어 너의 서러운 한을 반드시 풀어 주고야 말겠다. 부디 고이고이 잠들기를 바란다.' 황약사는 옥녀의 무덤 앞에서 어디로 가면 좋을지 몰라 한동안 망연히 서 있었다. 그는 건강부(建康府)를 떠나 태호(太湖)에 가서 자연이나 즐겨 볼까 하다가 결국엔 생각을 달리했다. 소인이란 놈이 여자의 음력을 뽑아 들여 내력을 연마하려는 이상 이 근처에서 옥녀와 같은 사냥물을 노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아름답고 젊은 여자라면 무슨 방법으로든 손에 넣어 내력을 연마하는데 이용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죽여 버리는 악귀 같은 놈인 것이다. 그러한 놈의 횡포를 그냥 묵인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황약사는 다시 건강부로 들어갔다. 황약사는 크고 작은 술집에 드나들면서 한가한 술꾼들이 주고받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렇게 며칠간이나 소인의 종적을 추적해 보았지만 아무런 실마리도 잡아내지 못했다. 황약사의 마음은 점점 다급해졌다. 어느 날 저물녘이었다. 황약사는 역시 자그마한 술집에 들어섰다. 예쁘장한 아가씨가 교태를 부리며 손님들의 술시중을 들고 있었다. "어머나, 멋진 도련님 한 분이 들어오시네?" 그녀는 황약사가 들어서자 방긋 웃는 얼굴로 반겨 주었다. 황약사가 술과 안주를 청하자 그녀는 한 손에는 술잔과 젓가락 따위가 놓인 소반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술단지를 들고 바삐 건너왔다. 그녀는 잽싸게 술상을 차리면서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공자님의 안색을 보니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하지만 두어 잔 들다 보면 다 잊혀질 거예요." 그녀는 살갑게 술을 권하며 빙긋이 웃어 보였다. 황약사는 넌지시 그녀를 건너다보았다. 그녀는 마냥 웃는 얼굴로 술꾼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중을 들고 있었는데 야들야들한 몸매며 진주처럼 빛나는 눈매가 뭇사내들의 간장을 녹이고도 남음이 있었다. 황약사는 시선을 돌려 술꾼들을 둘러보았다. 여느 술집과는 달리 늙은이는 한 사람도 없고 전부 패기 만만한 젊은 사람들 뿐이었다. 아마도 이 아가씨에게 반해서 매일마다 찾아오는 젊 은이들인 것 같았다. 갑자기 밖에서 건장한 사나이 서넛이 한꺼번에 몰려들더니 술상하나를 차지하고 빙 둘러앉았다. 그 중의 한 사내가 급히 주인을 불렀다. "술을 가져와, 술을!" "예, 갑니다!" 아가씨가 날렵하게 몸을 움직여 그들에게 달려갔다. 어느새 술상이 차려지고 네 사나이는 술잔을 쭉쭉 들이키면서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술을 바닥낸 그들은 한꺼번에 술을 세 단지나 청했다. 아가씨는 곧 술을 날라 왔다. 한 사내가 진흙으로 봉한 단지 뚜껑을 열고는 술잔에 술을 붓다 말고 흠칫 놀라며 소리쳤다. "이봐!" 그는 기가 막힌 듯 다시 한 번 술단지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얼굴이 벌개져서 재차 소리쳤다. "주인 어디 있어? 냉큼 와 보지 못할까!" 아가씨가 잔걸음으로 다가와 한 손으로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면서 상냥하게 웃어 보였다. 사내가 버럭 성을 냈다. "이게 뭔가? 술단지에 죽은 사람의 해골이 들어 있지 않나, 엉?" 아가씨는 술단지를 들여다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말대로 술단지 안에는 새하얀 뼈가 동동 떠있었던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아가씨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사나이를 쳐다보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 집에서는 술단지들을 움 속에 깊이 쌓아 두고 타인은 얼씬하지 못하게 하는데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아가씨는 난색을 거두며 얼른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다시 본래의 태도로 돌아가 상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를 어쩌지요? 아마도 고깃덩어리를 집어 넣은 줄 모르고 술을 담아 놓은 것 같군요. 원 참, 술 빗는 남정네들이 잠깐 헛눈을 팔았던가 봐요. 제가 얼른 바꿔 올게요." 그녀는 간드러진 웃음으로 능청을 떨며 술단지를 받쳐들고 물러갔다. 그제야 사나이는 어느 정도 노기가 풀리는지 제자리에 앉으며 소리를 쳤다. "여보게들, 오늘은 모두 취하도록 마셔 보자구!" 사나이는 다시 옆에 있는 술단지 뚜껑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연거푸 석 잔씩 마신 다음 이야기를 하자구!" 그는 뜯어낸 뚜껑을 옆으로 획 던지고는 양손으로 단지를 감싸쥐었다. "으악!" 술을 따르려던 그는 다시 질겁해서 소리쳤다. 이번에는 싹뚝 잘린 사람의 손이 단지 안에 등등 떠있었던 것이다. 사내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말문이 막혀 주춤 물러앉았다. 번갈아 단지 속을 확인한 세 사내는 잔뜩 화가 나서 주인을 불러댔다. 종종걸음으로 달려온 아가씨도 술단지를 들여다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단지 뚜껑을 뜯어냈던 사내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이 술집 주인은 분명 나쁜 놈이야!" 그는 남은 술단지 뚜껑을 마저 와락 열어젖혔다. 역시 하얀 뼈들이 둥둥 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