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쾌도강산 제1권. - 34편 (34/43)

2026-10-08 18:49:05 조회 0
그는 그때까지도 눈을 찢어져라 부릅뜬 채 어어! 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꼴을 보니 자기가 혈도(穴道)를 짚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제 대답할 맘이 생겼느냐?" "어어어...?" 강산은 금강을 면(面)으로 돌려 최관의 어깨를 갈겼다. 빡!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최관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쓰러졌다. 그의 어깨가 움푹 함몰되어 있었다. "크윽-!" "지상으로 나가는 통로를 알고 있겠지?" "어, 어떻게 이럴 수가...? 다신, 당신 누구요?" 강산은 다시 금강으로 그의 남은 어깨를 갈겼다. 최관의 넋두리 따위 듣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크으-!" "생각났느냐?" 최관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이를 악다물었다. 하긴 양쪽 어깨가 박살났으니 그 고통이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강산은 원한에 찬 최관의 시선을 받으며 다시 금강을 들어올렸다. 이번에 노리는 부위는 좌측 슬개골(膝蓋骨)이었다. 최관이 고개를 손을 저었다. "아, 안내, 크으으! 안내... 하겠소." 2 강산은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었다. 양쪽 어깨라는 처방이 괜찮았는지 최관은 순순히 대답했다. "소삭연혼대와 수비대와의 정세는?" "팽팽한 대치국면이오." "소삭연혼대는 몇 개 조나 왔느냐?" "다섯이나 여섯 정도, 확실히는 모르겠소. 당신은 무천궁의 인물이 아니오?" "한 번 더 입을 놀리면 다리가 없어진다. 십이지신이라는 자들은 봤느냐?" "난 연락을 책임지고 있소." "이항이나 송자영을 봤느냐?" "이항? 송자영? 그게 누구요?" "됐다. 이제 안내해라." "혈도를 풀어줘야 할 게 아니오?" "이미 풀렸다." 최관은 일어섰다. 두 팔이 보기 싫게 덜렁거렸다. '뭔가 조치를 취해줘야 하지 않느냐?' 하는 눈빛을 보내는 최관에게 강산은 '그냥 가.' 라는 눈빛을 보냈다. 최관은 한 통로를 향해 걸어갔다. 한데 그 통로는 그가 왔던 곳이 아니었다. 강산은 물었다. "왜, 왔던 곳과 틀리지?" "내려가고 싶다면 저쪽으로 안내하겠소." 강산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뒤를 따랐다. 일다경이나 흘렀을까? 강산은 다시 물었다. "내려가는 것 같은데?" "왜 미로가 미로인줄 아시오? 상식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오." 그럴 듯한 이야기였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없지는 않았지만 강산은 좀 더 지켜보기로 하였다. "지상이 보이면 놓아주겠다. 하지만 수작을 부린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푸흐흐, 그것 참 고맙구먼." 다시 일다경 정도가 흐르자 강산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지나친 갈림길만 해도 삼십 개가 넘었다. 거기에 안내인의 태도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 나간 고양이 마냥 점점 불손해지는 것이다. 재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한데 그런 강산의 마음을 읽었을까? "이곳만 지나치면 다 온 것이나 다름없소." 전방에 굳게 닫힌 철문이 나타났다. * * * 철문을 여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우측에 팔목 두께의 쇠뭉치가 툭 튀어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개폐장치 임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철문을 열고 들어간 후에 벌어졌다. 쿵! 하고 철문이 닫히자마자 빙글 돌아선 최관이 발길질로 냅다 벽의 한 부분을 후려갈긴 것이다. 땡그랑! 강산은 바닥에 떨어진 쇳토막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가 갈긴 물체가 안쪽에서 철문을 여는 장치 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 강산은 서슴없이 금강을 뽑았다. 한데 그 순간, 최관의 반응이 의외였다. 필경 다리야 날 살려라 꽁지가 빠져라 도망칠 줄 알았는데, 괴이하게도 제자리에 넙죽 엎드리는 것이다. 꼴을 보니 애초부터 도망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 같았다. 강산은 의아하여 멈칫했고, 그 틈을 타 최관은 우렁찬 음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먼저 여러 노선배님들의 수도(修道)를 방해하게되어 죄송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후배는 봉향을 맡고 있는 최관이라 하옵니다. 후배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다름 아닌 소방주의 명 때문입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강산은 최관에게서 시선을 돌려 장내를 훑어보았다. 장내는 꽤 넓은, 한 면의 길이가 이십 장에서 삼십 장쯤 되어 보이는 장방형(長方形)의 광장이었다. 게다가 높이 또한 족히 십 장은 넘어 보였다. 괴이한 것은 사면 가득 큼지막한 구멍이 송송 뚫려 있다는 점이었다. 모두 합하면 삼십 개가 넘을 것 같았다. 강산이 주변을 둘러보는 와중에도 최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현재 흑지는 적도(賊徒)가 난입하여 절대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소방주께서 후배를 보낸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어떤 자들이 감히 본 방을 어지럽힌다는 말이냐?" 처음으로 최관이 아닌 다른 자의 음성이 들렸다. 늙수그레한 음성이었지만, 그 가운데 깃들여 있는 힘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묵직했다. 화답을 받은 최관은 기쁜 빛을 보이며 더욱 머리를 조아렸다. "무천궁의 소삭연혼대입니다." 강산은 눈빛을 빛내며 그 음성이 흘러나온 동굴을 바라보았다. 대충 일이 돌아가는 모양새로서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곳은 선배고인들의 수도 장소인 모양이었다. 소림사로 치자면 장로원(長老院)이나 면벽동(面壁洞), 그쯤 될 것이다. 소삭연혼대를 자기들의 힘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다고 판단한 위지광이 최관을 시켜 그들의 도움을 요청했고, 최관은 강산이라는 복병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제 임무를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강산은 눈길을 최관에게로 돌렸다. 양어깨가 어긋난 그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동료였다면 기특하고 대견해서 안아 일으켜 주고라도 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동료가 아니었다. 대가는 받아야하는 법, 강산은 금강을 들었다. 그때, 그 늙수그레한 음성이 다시 나왔다. "네 옆에 있는 자는 누구냐?" "그는 적... 크악!" 다리 한 짝을 잘린 최관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고, 강산은 미쳐 끝내지 못한 그의 말을 이었다. "나는 강산이라고 한다. 삼절방과는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며 단지 일행을 찾고 있을 뿐이다." 순간, 강산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러 사람의 음성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노하여 으르렁거리는 자가 있었으며, 호기심에 쫑긋대는 자가 있었고, 재밌다는 듯 웃음짓는 자도 있었다. "이런 육시(戮屍)랄 놈이 있나."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다?" "으허허...!" 이어 맞은편 동굴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보였다. 나타난 자는 산발한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괴인으로, 사지가 멀쩡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현인정이라 해도 좋을 법한 모습이었다. 그는 오 장 높이에서 가볍게 뛰어내려 강산에게 다가왔다. 산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빛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감히 내 앞에서 수작을 부리다니." 방금 전 노하여 으르렁거리던 그 음성이었다. '생각 이상이다.' 괴인이 모습을 보인 순간부터 강산은 전신에 강한 압박을 받았다. 작은 통속에 억지로 쑤셔 박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압력은 한 걸음 한 걸음 괴인이 다가섬에 따라 가일층 증대되었다. '이런 괴물이 둘이나 더 있다니... .' 서늘한 냉기가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으며, 금강을 잡은 손아귀가 축축해졌다. 어쩌면 잘못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쳤다. 오랜만이었다! 어렸을 적, 너무 어려 기억조차 희미한 그 시절에 홀로 밤길을 거닐며 가졌음직한 긴장과 두려움... 실로 오랜만이었다. 강산은 한편 두렵기도 하고 한편 반갑기도 하여 피식! 웃음지었다. 그 순간, 괴인이 우뚝 멈춰 섰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채 삼 장도 남지 않았을 때였다. '시작인가.' 강산은 금강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괴인은 그 이상 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멈춘 자세 그대로 서있을 뿐이었다. 공격을 위해 멈춰 섰던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 의아해하던 강산은 이내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전 자신의 미소를 곡해한 듯 싶었다. 곧이어 들려온 괴인의 이야기에서 강산은 자신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웃어? 허허... 노부가 그렇게 우습게 보인다는 말이지?" 강산은 대꾸하지 않았다. 남의 미소를 곡해하건 말건 알 바 아닌 것이다. 그렇게 덤덤한 강산의 태도가 더욱 괴인의 화를 돋궜다. "오냐, 내 너를 씹어먹지 않으면 사람새끼가 아니다." 괴인은 으드득! 세차게 이를 갈아붙인 후, 강산을 향해 짓쳐들었다. 괴인의 동작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움직인다 싶은 순간 벌써 강산의 면전에 육박해 있었다. 순식간에 강산의 석 자 거리까지 치고 들어온 괴인은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후웅! 매서운 파공성을 동반하며 괴인의 일권(一拳)이 강산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강산은 가슴 앞에 곧추 세운 금강을 빙글 돌렸다. 팔을 통째로 잘라버리겠다는 동작이었다. 한데 그 순간, 갑자기 괴인의 주먹이 사라졌다. 강산의 가슴 앞 한 자까지 이르러 있던 주먹이 금강에 부딪치는 순간 환상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사라졌던 주먹은 강산의 우측에서 나타났다. 노리는 부위는 강산의 머리였다. 기실 처음 괴인의 일권은 상대의 눈을 현혹시키기 위한 허초(虛招)였던 것이다. '싱겁군!' 괴인은 그때까지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강산을 보며 낯을 찌푸렸다. 단 일초에 속아넘어가는 상대의 우둔함에 배신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없으면 없는 놈답게 행동했어야지, 있는 놈처럼 온갖 무게는 다 잡아놓고 이제 와서 아무 것도 없다고 두 손 탁탁 털면 난 어쩌란 말이냐? 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하나 그 같은 생각은 단지 순간에 불과한 것이었다. "으힉!" 괴인은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다급히 주먹을 거두고 물러섰다. 허리를 쓸어 오는 강산의 칼을 본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놈이 발작적으로 휘두른 칼이 정확히 급소를 쓸어오는 것이다. 그대로라면 강산의 두개골을 부술 수 있는 반면 자신 역시 허리 아래를 포기해야했다. 그럴 수는 없는 일, 괴인은 찰나지간 삼보(三步)를 물러섰다. 왔을 때 그랬던 것처럼 물러서는 그의 동작 역시 눈부시게 빠른 것이었다. 그러나 금강을 피한 괴인은 그 직후, 과연 언제 그런 적이 있었느냐 라는 듯 또 다시 강산을 핍박해 들어갔다. 속도가 더욱 빨라진 것 같았다. "이놈, 운(運)은 짱짱하구나." 그는 방금 전 강산의 동작을 운으로 치부했다. 그 같은 괴인의 생각은 당연한 것이었다. 당황하여 되는대로 칼을 젓던 강산의 행동을 운 이외의 것으로 보아주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는 것이다. 괴인은 신형을 낮춰 강산의 하체를 파고들었다. 쉬잇, 쉿! 찰나지간 이권(二拳), 삼수(三手), 오각(五脚)이 강산의 몸에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해일이 밀려들듯, 태풍이 몰아치듯 난폭하고 날카롭게 밀려들었다. 요행히 강산은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때로는 피하고, 때로는 후퇴하며, 때로는 운(?) 좋은 반격으로 하나 남김없이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괴인의 공격이 이십여 초에 이르렀을 때, 괴인은 이 눈앞의 산적처럼 생겨먹은 놈이 그저 운만 좋은 놈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놈, 쥐꼬리만한 실력은 가지고 있구나." 괴인은 한마디를 씹어뱉으며 공세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때, 그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인불(人佛)도 이제는 늙었구나, 늙었어. 식전 해장거리도 안되는 애송이를 가지고... ." 최관의 이야기를 받아주던 음성이자, 자신의 이야기에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다?' 라며 호기심을 보여주었던 음성이었다. 그러자 인불이라 불리는, 강산과 일전을 벌이고 있는 괴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끄럽다. 지불(地佛)! 너라고 별 수 있을 줄 아느냐? 비록 이놈의 몰골이 거지새끼 마냥 꾀죄죄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래도 그 속에는 한 수 재간이 담겨져 있어. 어디 평범한 놈이 내 일초나마 제대로 받아넘기겠냐?" "클클클, 무슨 말이 하고싶으냐? 설마 놈이 개방( 幇)의 장로(長老)라도 된다 말하고 싶은 것이냐? 또한 설사 그놈이 개방의 장로라고 하자.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 클클, 때가 됐구나. 때가 됐어." "시끄럽다. 아가리 닥치지 않으면 먼저 네놈의 잘난 수염부터 뽑아버릴 테다." "아이쿠! 알았다. 알았어. 난 물러설 테니 잘 해봐라." 인불의 공격은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세어졌다. 한순간, 권장지각(拳掌指脚)이 강산의 사대요혈(四大要穴)을 파고들었으며, 한순간 수십의 수영(手影)이 강산을 중심으로 팔방(八方)에서 휘몰아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강산은 여전히 건재했다. 주춤주춤 연신 뒷걸음질을 치는... 매 순간 피를 토할 듯 위태롭기 그지없는 자세로 잘도 버텨나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인불은 '혹시, 이놈이 전력(戰力)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하지만 그 같은 생각은 비척거리는 강산을 보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인불은 더욱 급하게 강산을 몰아쳤다. 그러나 여전히 강산을 잡을 수는 없었다. 결정적인 기회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것이 결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매 일초마다 '이젠 진짜 끝이다.'라는 느낌이 왔지만, 느낌은 느낌으로 그만, 결코 결과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 마침내 인불은 분노했다. '오냐, 정 버틴다면 인혼수(引魂手)로 끝장을 내주마.' 결국 그는 자신의 성명절기(成名絶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새파란 애송이에게 절기를 쓴다는 사실이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사소한 문제에 얽매일 기분이 아니었다. 일순, 인불의 손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일렁거렸다. '달라졌다.' 강산은 언제부터인가 인불의 공격 양식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잡하리 만치 밀어붙이던 강공(强攻) 일변도에서 벗어나 적절하게 강약을 조절해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강산은 잘 알고 있었다. '겨우 전력을 기울일 마음이 생겼는가?' 바라던 바였다. * * * 인불은 고수였다. 강산에게 잊었던 두려움을 일깨워 줄 정도로 뛰어난 고수였다. 하지만 강산 역시 고수였다. 인불의 무위가 그 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면, 강산 역시 단 한 번의 패배도 허락하지 않은 절대고수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위기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세 사람의 존재를 깨닫게 된 강산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그들을 제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외모는 물론 무위까지 현인정과 비슷한 자들을 한꺼번에 셋씩이나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우선 하나! 였다. 일단 한 명을 해치우고 차후 남은 둘을 상대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을 안심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한 명으로도 충분하다 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한데 생각대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칼을 뽑지 못한 것은 인불에게 아직 여유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공격 중에도 지불이라는 자와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지 않던가 말이다. 일단 칼을 뽑으면 확실한 성과를 거두어야했다. 어설프게 뽑았다가 자칫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최악의 결과가 보장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제 상대가 전력을 기울여 일초(一招)를 펼친다면, 필히 그 후속동작에 틈이 보일 것이다. 인불은 양팔에 낯익은 느낌을 받았다. '됐다!' 저릿저릿한 느낌에 이어 마침내 팔이 사라져버린 듯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인혼수의 운용(運用)을 마쳤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놈, 그만 목을 내놔라." 인불은 버럭 일갈하며 양팔을 쭉 뻗었다. 곧바로 상대의 칼이 맞서왔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인혼수는 천하제일의 수공(手功)이었다. 일반 도검(刀劍)은 물론 보검(寶劍)으로도 흠집조차 낼 수 없는 신공(神功)인 것이다. 과거 천하를 떨어 울렸던 명성도- 비록 그것이 악명(惡名)이라 할지라도- 삼십여 년 전 한 사람에게 패배하기 전까지 불패무적(不敗無敵)의 신화를 창조했던 것도, 모두 인혼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잡았다!' 인불은 내심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의 오른팔이 강산의 가슴에 겨우 세 치 거리로 접근했을 때였다. 한데 다음 순간, 인불은 의아하여 두눈을 크게 떴다. '엉...?'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오른팔이 강산의 가슴을 파고들 무렵이었다. 잡았다! 라는 것은 생각뿐, 정작 손 끝에는 아무 것도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곧이어 강산의 모습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팟! 연기처럼 꺼져버렸다. 그리고 때를 같이하여 뒤편에서 다급한 음성이 터져나왔다. "억, 위다!" "위험해!" "아미타불, 소협, 멈추시게." 음성은 각기 다른 세 사람의 것으로,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들려왔다. 인불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는 고수였다. 위기의 순간 당황하여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자를 고수라 부를 수는 없는 일, 적어도 그는 최선을 선택해야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인불의 위쪽에서 다가오는 가공할 경력을 느끼며 신형을 지면에 바싹 붙었다. 그리고 지면에 붙음과 동시에 양팔을 등뒤로 돌려 후려쳤다. 가가각! 피가 튀었다. * * * '실패했다.' 강산은 착잡한 심정을 억누르며 뒤로 물러섰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의 면전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대머리에 수염을 가슴까지 늘어뜨린 육순 노인과, 눈처럼 하얀 백발을 단정히 기른 오십 초반의 중년인이었다. 두 사람 모두 노기로 인해 안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강산은 시선을 돌려 그들의 발치를 바라보았다. 인불은 거기 있었다. 그는 반쯤 잘려 덜렁거리는 자신의 왼팔을 넋 나간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은?' 강산은 남은 한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회심의 일격을 무위로 만든 당사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기실 강산의 일격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덫은 완벽했었고, 사냥감 또한 완벽히 끌어들였었다. 그렇게 완벽했던 일격이 실패로 끝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삼(第三)의 인물의 등장 때문이었다. 아니, 그의 무공 때문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리라. 막 강산이 인불의 목을 후려치려 할 때, 머릿속에서 벽력이 쳤다. '아미타불(阿彌陀佛)!' 한순간이나마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강한 음성이었다. 그 때문에 강산의 손길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말미암아 인불은 실낱같은 생환의 빛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기전성(御氣傳聲)! 그 제 삼의 인물이 사용한 것은 어기전성이라는 상승무공이었다. 전음술(傳音術)의 일종으로, 본래는 방해물을 피해 멀리 있는 사람에게 전음을 날리고자 개발된 수법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이처럼 상대를 살상(殺傷)할 수 있는 무공으로까지 발전된 것이었다. 물론 그 무위가 화경(化境)에 접어들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불 시주께서는 괜찮으시오?"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음성만이 메아리쳤다. 인불은 그때까지 망연자실, 덜렁거리는 팔둑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인불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다." 그는 씹어뱉듯 한마디 던진 후 강산을 노려보았다. 잡아먹지 못해 한이라는 표정이었다. 빠드득! 이빨이 갈리고 그 틈새로 원한에 찬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이 여우새끼...!" 강산은 활활 타오르는 인불의 시선을 덤덤한 표정으로 받아넘겼다. 그리고 느릿하게 금강을 가슴 앞에 세웠다. 이제 그에게 남은 방법은 전력을 기울이는 것뿐이었다. '나오지 않을 참인가?' 제 삼의 인물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소한 문제일 따름이었다. 마침내 대머리 노인이 강산을 향해 일 보를 내디뎠다. "놈, 간을 씹어주마." 조금 전에 인불이 수염운운했던 것으로 보아 그가 지불인 듯 싶었다. 옆의 오순 중년인 또한 지불과 보조를 맞춰 다가왔다. 강산도 미끄러지듯 일 보를 전진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소협, 멈추시게. 천불(天佛), 지불(地佛) 시주께서도 멈추시오." 음성은 제 삼의 인물의 것이었다. 거기에는 부드러운 가운데 다급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지불이 소리쳤다. "땡초, 무슨 일이냐?"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그 젊은 시주는 결코 우리들이 해쳐서는 안되는 사람이오." 장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나 침묵은 이내 지불에 의해 깨졌다. "그 무슨 개떡같은 소리냐?" "마음을 진정시키고 조금 전 그가 펼쳤던 동작을 생각해보시오." "......?" "생각이 나시오?" "염병할, 골치 아프게 만들지 말고 쉽게 말해라." 그 순간! 지불이 짜증 섞인 어조로 소리치던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신음처럼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암향부...!" 천불이라는 자의 음성이었다. 제 21 장 감옥에서. 1 지불과 인불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네놈이 어떻게 암향부를 알고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