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쾌도강산 제1권. - 13편 (13/43)

2026-10-08 18:49:05 조회 2
그는 문정인이 삼첨양인도를 결합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문정인은 주위를 한번 둘러본 후 싸늘한 미소를 떠올렸다. "이런 곳에선 오히려 결합하지 않는 게 편하지. 너야말로 칼을 빼지 않을 셈이냐?" 강산은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네겐 일 초 뿐이야. 결합하는 게 좋아." "큰 소리를 치는구... ." 냉랭하게 웃어제키려던 문정인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전신을 찍어누르는 듯한 압력에 숨조차 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정인은 뛰는 가슴을 억제하며 지그시 강산을 노려보았다. 강산의 서 있는 자세는 처음과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하나 문정인은 그의 전신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칼날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칼은 강산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지만, 강산 자체가 칼과 다름이 없었다. 그 칼에서 뿜어나오는 예기(銳氣)가 너무도 날카로워서 문정인의 모공에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이 정도였단 말인가?' 문정인은 비로소 상대의 능력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위에 있음을 깨달았다. '칼을 잡기도 전에 이렇듯 강력한 도기(刀氣)를 뿜어내다니... 그렇다면 칼을 잡기 이전에...!' 문정인은 손을 모았다. 끼리릭! 봉과 도가 서로의 이음새를 찾았다. 철컥! 마침내 삼첨양인도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삼첨양인도가 제 모습을 되찾았다싶은 순간, 팟! 문정인이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강산은 천천히 자신의 허리춤에 매어진 금강도의 칼자루를 잡았다. 강산이 칼자루를 움켜쥐는 순간 문정인은 이미 강산의 머리 위에 도달해 있었다. 쉬잇! 삼첨양인도가 불을 뿜었고 때를 같이하여 강산의 금강도가 허리께를 벗어났다. 크고 작은 두 개의 원이 각각 상하로 어우러졌다. 그리고 요란한 소리 한번 없이 떨어져나갔다. 일합(一合)의 결과 문정인은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하지만 열세 또한 아니었다. 적어도 문정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강산이 있던 자리에 내려선 문정인은 강산을 응시하며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클클, 일초라 하지 않았느냐. 아니면 내가 잘못 들은... 응?" 문정인은 말을 하던 중 문득 괴이한 광경을 보았다. 강산이 느릿하게 우측으로 쓰러지는 것이었다. 아니, 쓰러지는 건 단지 강산만이 아니었다. 나무, 풀, 하늘... 세상 전체가 쓰러지고 있었다. 퍽! 지면에 코를 박은 문정인은 그때까지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 뭐야...?" 바둥바둥 일어나려는 문정인의 시야에 하나의 물체가 들어왔다. 허벅지까지 잘려나간 사람의 발, 정확히 말하자면 왼발이었다. 발은 지금도 꺼덕거리고 있었다. "크아아악!" 강산은 물끄러미 바닥을 뒹구는 문정인을 응시했다.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첩자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난 한 달간 동고동락했던 인물이었다. 그 동안 그들은 분명히 동료였었다. 동료가 아니었다면 잘려지는건 다리가 아니라 몸통이었을 것이다. 강산은 한동안 바닥에 쓰러진 채 절규하는 문정인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머리를 쳐들었다. 무언가가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인기척이었다. 일행이라 하기엔 그 수가 많았고, 사사족이라 하기엔 분위기가 달랐다. 툭! 좌측에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강산이 그쪽을 향해 돌아선 순간, 번쩍! 칼빛이 번뜩이며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덮쳐들었다. 강산은 뒤로 물러났다. 하나 뒤편엔 벌써 기다리는 자들이 있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강산을 포위하여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쉬잇, 쉿! '이렇게 가까이에 숨어 있었다니... 좋지 않군.' 서늘한 칼바람을 등에 접한 강산은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때를 같이하여 비스듬히 신형을 틀어 옥대위요(玉帶圍腰)의 일초로 상대의 하반신을 쓸었다. 써걱! "크악!" "악!" 처음 정면으로 접근한 두 사람이 푹석 주저 앉았다. 강산은 그들을 방패삼아 우측으로 돌았다. 배후를 덮쳤던 세 사람의 칼이 일순 동료에 막혀 멈칫하였다. 짧은 순간이었으나 강산은 비로소 암습자들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낯익은 도복이 눈에 띠었다. '점창!' 그 이상의 여유는 없었다. 이미 동료를 돌아 나온 세 자루의 칼이 그의 면전에 이르러 있었다. 뿐이랴, 언제 나타났는지 좌우 측에서 각기 두 명씩 칼바람을 일으키며 짓쳐들고 있었다. 그들 개개인의 기도가 범상치 않아서 결코 소홀히 대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선뜻 좌측으로 신형을 날린 강산은 만홀조천(萬笏朝天)의 식으로 상대의 칼을 아래에서 위로 맞받아 쳤다. 두 사람의 표정이 움찔하더니 차앗! 더욱 기세를 높여 칼을 떨쳐내렸다. 이 대 일이니 아마 이 일격으로 우세를 점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니, 우세를 점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칼은 묶어두겠다는 수작임이 분명했다. 강산은 조금도 피하지 않고 계속 금강도를 위로 쳐올렸다. 까깡! 칼과 칼이 부딛치는 순간, 위에서 아래로 그를 공격했던 점창의 두 사람의 칼이 그대로 동강이 났다. 그리고 금강도는 쳐올려진 위세 그대로 그들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두 사람의 표정이 당혹으로 일그러졌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컥!" "끄윽!" 두 사람은 가슴이 쩌억 갈라진 채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들이 가슴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짐과 동시에 강산은 그대로 숲으로 신형을 날렸다. "저놈이 도망친다." "막아라." 그 순간! 피핏! 강산의 귓전에 약한 파공성이 들려왔다. 거의 동시 좌측에서 뭔가 서늘한 기운이 짓쳐들었다. 강산은 암기(暗器)임을 직감하고 황급히 몸을 틀었다. 팟팟! 네 가닥의 서늘한 기운이 그의 옆구리와 어깨 부근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간발의 차이로 암기를 피한 것이다. 하나 암기는 비록 피했지만, 그 덕분에 그의 몸은 적들의 포위망에 그대로 에워 싸이고 말았다. "놈, 감히 어디서 수작을." "크크크...!" 사내들이 흉광을 번뜩이며 주위로 몰려들었다. 강산은 말없이 그들을 노려보았다. 이 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서운 인물을 건드렸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가 비록 살계(殺戒)를 어기기 싫다 해도 죽고 싶어 안달이 난 이런 놈들에게 언제까지고 아량을 베풀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죽고 싶단 말이지. 그럼 기꺼이 죽여 주겠다!' 강산은 두 눈을 무섭게 번뜩이며 금강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 * * 점창의 인물들이 강산을 공격하는 사이 장내를 벗어난 문정인은 열심히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글쎄, 하나 남은 오른발과 단봉을 번갈아 짚는 동작에 달려간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문정인의 속도는 보통 사람의 달리는 속도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 "이놈, 기다려라." 그는 줄줄 피를 흘리며 숨이 턱에 올라 헉헉 가쁜 숨을 토해내는 와중에도 연신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당장 쓸어버릴 테다. 더 이상 알아낼 것도 없어. 그분을 만나면 당장 쓸어버리자고 할 테다." 그렇게 문정인이 일행이 왔던 길을 되짚어 달리던 어느 순간! 무언가가 그의 허벅지에 걸렸다. "억!" 문정인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고 떼굴떼굴 바닥을 굴러 한 무더기 덩굴이 가득한 곳에 처박혔다. 따끔따끔한 통증에 급히 왼쪽 허벅지를 보니 훨씬 많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문정인은 다시 지혈(止血)을 한 후 고개를 들어 자신을 이렇게 만든 나뭇가지를 찾았다. 그 나뭇가지라도 박살을 내버려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한데 괴이하게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걸려 넘어진 주위에 나뭇가지는커녕 늘어진 덩굴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씨팔, 재수하고는... ." 문정인은 포기하고 단봉을 찾았다. 단봉은 저만치 홀로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그는 엉금엉금 단봉을 향해 두 손과 한 발로 기었다. 한데 그때였다. 문정인이 손을 뻗어 막 단봉을 쥐려할 때 그에 앞서 단봉을 쥐는 손이 있었다. "......?" 강산인가 싶어 섬뜩했던 문정인은 이내 손의 임자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손의 임자는 다름아닌 구청연이었다. 문정인은 단봉을 향해 손을 뻗으며 물었다. "구형, 여긴 어떻게?" 한데 구청연은 단봉을 돌려주는 대신 빙그레 미소 지었다. "문형, 몸이 좋지 않아 보이는구려." 그제야 문정인은 무언가 상황이 괴이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청연의 출현도, 야릇한 그의 웃음도 왠지 석연치 않아 보였던 것이다. 단봉과 구청연을 번갈아 응시하던 문정인은 다급히 뇌까렸다. "강산이 그랬소. 그가 감히 이런 짓을... ." 하나 문정인의 말은 곧 구청연의 한마디에 막혀버렸다.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도저히 구청연의 음성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싸늘한 어조였다. "문정인, 그만 떠벌이는 게 어떠냐?" "구, 구형. 그게... 그게 무슨 말이오?" 구청연이 비릿한 조소를 토해냈다. "큿! 문정인, 내가 모르는 줄 아느냐?" "무얼...?" 재밌다는 표정을 짓던 구청연이 문득 고개를 끄덕이며 문정인에게 다가들었다. 문정인은 물러서려 했으나 아쉽게도 그의 뒤는 빽빽한 덩굴이었다. 구청연의 얼굴이 바짝 붙었다. 채 한 자도 떨어지지 않은, 숨결까지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올 시월, 한 사람이 너를 찾아왔으며 그와 모종의 밀담(密談)을 나눈 후 비로소 네가 청죽장을 찾아왔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의 이름이 사마자웅이라는 것과 그가 지금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은?" 문정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 그걸, 어떻게? 그렇다면... 이미 처음부터?" "그렇지, 이제야 말이 통하는구나. 네놈의 정체 따위는 이미 출발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문정인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구청연의 한마디 한마디가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왜...?" 간신히 그 한 자를 뱉어낸 문정인은 은밀히 양손에 모든 공력을 끌어올렸다. 어떤 연유인지 알 수 없어 답답했지만 현 상황에서 그건 아무 문제가 되지 못했다. 문제는 구청연, 어떻게든 이 사내의 손아귀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청연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쯧쯧! 또 빗나가는구나. 앞으로는 의문을 토해냄에 앞서 먼저 생각해보는 게 어떠하냐. 그래야 이것도 발전이 되지 않겠느냐?" 구청연은 말하는 도중 문정인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기회다!' 체념적인 상태에서 오직 한 가닥 실오라기 같은 틈을 엿보던 문정인이 그와 같은 호기를 놓칠 리 만무했다. 기회라고 생각한 순간 이미 그의 손은 뻗어나갔고, 뻗어나갔다 싶은 순간 벌써 구청연의 양쪽 곡빈혈(曲 穴)을 후려치고 있었다. 거리는 지척,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깨끗한 동작은 실로 완벽한 암습(暗襲)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설사 신(神)이라 할지라도 그 일격을 피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문정인의 입꼬리가 삐죽 솟아올랐다. '놈, 끝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 다만 그의 동작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단지 그가 저지른 잘못이라면 그 같은 행동을 이미 구청연이 예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 그리고 구청연의 능력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는 점이다. 퍽! 머리가 박살나기에 앞서 먼저 목젖이 뚫렸다.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자신의 단봉에 뚫렸다. "끄윽!" 이런 개같은 경우가? 억울했다. 문정인은 정말 억울했다. 상대의 머리가 눈앞에 있는데, 손 끝에 느껴지는 살갗의 감촉이 이리도 생생한데... . * * * 사내들은 겹겹이 강산을 에워쌌다. 하나 에워싸기만 할 뿐 선뜻 앞으로 나서는 자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숨 몇 번 쉬지도 않은 동안에 벌써 아홉 명이나 바닥에 쓰러져 버렸던 것이다. 그 동안 강산은 단지 다섯 번 도를 휘둘렀을 뿐이었다. 칼질 한 번에 거의 두 명의 고수들이 쓰러진 셈이었다. 그들이 모두 점창에서도 고르고 고른 인물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강산은 더 이상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옆구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의 옆구리에는 휑하니 구멍이 뚫려 있었다. 조금 전, 그가 막 다섯 번째의 칼질을 했을 때 돌연 어디선가 차가운 기운이 날아들었다. 그 기운은 너무도 빠르고 강력하여 미처 피하지 못한 강산은 금강도로 그 기운을 받아내었다. 하나 완전히 막아내진 못해 금강도를 맞고 방향이 바뀐 기운이 그의 옆구리 부근을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자신의 구멍뚫린 옷자락을 내려다 보는 강산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그 눈속에는 희미한 놀람의 빛이 담겨져 있었다. 조금만 그의 반응이 늦었더라면 구멍이 난 것은 옆구리가 아닌 심장이었을 것이다. 한데 괴이하게도 암기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긁히거나 찢긴 자국이 전혀 없는 마치 귀공(鬼工)이 깍아낸 듯 매끄러운 구멍자국 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암기로 인한 상처가 아니었다. '지풍(指風)!' 그 사이 사내들의 포위망을 헤치고 한 사람이 나타났다. 큼직한 사자코에 부리부리한 눈망울과 쭉 찢어진 메기입을 가진 전체적으로 매우 호방한 인상을 풍기는 육순노인이었다. 강산으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자였다. 하지만 그의 정체를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신이 일지삼공 고격이오?" 고격은 지공(指功)에 있어 특출한 재능으로 점창의 열양지(熱陽指)를 소림의 탄지신통(彈指神通)의 위에 올려놓은 인물이었다. 그야말로 지공에 있어서만은 가히 당금 무림의 제일인자(第一人者)라고 할 수 있는 절세의 고수인 것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의 열양지는 연속 발사가 가능하며, 오 장 거리에서 세 치 두께의 철판을 꿰뚫는다고 했다. 고격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눈앞의 어린 놈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게 뜻밖인 것이다.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놈, 식견은 제법이로구나." 강산은 담담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명불허전(名不虛傳), 과연 일지삼공이라는 별호에 어긋나지 않는 훌륭한 솜씨였소."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인물들의 수를 빠르게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셋... 모두 스물네 명, 어느 쪽을 뚫던지 대여섯 명은 상대해야 하는 결론이 나온다. 순식간에 처리하지 못하는 한 그들을 상대하는 사이 다시 몇 명이 달라 붙을 것이고, 다시 그 몇을 상대하는 사이 또 다시 몇 명이... . 그리하면 결국 스물네 명 모두를 상대하는 꼴이 된다. 불가능한 일은 물론 아니었다. 아니, 그들 스물 네명 만이라면 강산은 언제라도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하나 지금 그들이 서 있는 자세와 방위로 보아 그들은 특이한 합격진(合擊陣)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조금 전에 자신이 아홉 명을 쓰러뜨렸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게다가 그들외에도 일지삼공 고격이 있었다. 고격의 옆에 그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자 또한 기도가 출중했다. 아마도 그 역시 점창오로의 일 인인 듯 싶다. 사실 그가 일전에 한쪽 팔을 베어버렸던 구영소는 점창오로중에서도 가장 무공이 떨어지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당시 그는 강산을 깔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도법에 제대로 대항해 보지 못하고 패퇴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고격을 비롯한 점창오로중 두 사람이 합공한다면 강산으로서도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고격이 강산을 쏘아보며 물었다. "어린 놈, 무명지배(無名之輩)는 아닐 듯 싶은데?" 강산은 짤막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강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고격은 눈쌀을 살짝 찌푸렸다. 아무리 기억을 되새겨도 그런 이름을 들었던 것을 기억해 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말하는 모습이나 행동으로 보아 강호초출(江湖初出)은 아닌 것 같은데... 더구나 저놈의 도법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무서운 것이다. 대체 저 놈의 사문내력이 무엇일까?' 잠시 생각을 굴리던 고격은 싸늘한 눈으로 강산을 노려보았다. "네놈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감히 본문의 제자들을 함부로 살해하다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죽을 각오는 되어 있느냐?" 강산은 아무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 미소를 보자 고격은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이 놈. 왜 웃는거냐?" 강산은 담담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당신들은 지금 너무 느긋하게 군다고 생각치 않소?" 고격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하나 그때 현천검 조한영이 강산의 말뜻을 알아 들었는지 안색이 약간 변했다. "사형, 빨리 처리하는 게 좋겠소. 저놈의 일행이 조금 전의 비명을 들었을 수도 있소." "응? 그렇지. 그러고 보니 이놈이 수작을 부리고 있군." 고격은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든 듯 눈을 부릅떴다. 강산 하나로도 벅찬 마당에 하나같이 절세고수들인 그의 일행이 몰려온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건 뻔한 이치였다. 하나 그때 강산은 고격의 뒤를 바라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 이미 늦었소." 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산의 시선을 쫏았다. 물론 고격과 조한영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우스울 정도로 빤한 행동이었지만 중인들로선 속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강산에 대한 두려움과 남은 일행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들의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강산의 언행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졌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중인들은 황급히 돌아섰다. 속은 것도 순간이오, 그것을 깨달은 것도 순간이다. 다만 강산에게 있어 순간이면 충분했다. 고격과 조한영이 본래의 자세를 회복했을 때, 강산은 이미 그들의 코앞으로 육박해 오고 있었다. "감히!" "차앗!"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격의 손에서 연달아 세 가닥의 지풍이 쏘아졌고, 조한영은 양팔을 쭉 밀어냈다. 그 순간, 번쩍! 강산의 금강도가 불을 뿜었다. 피핏! 사각! 펑! 세 개의 전혀 다른 음향이 거의 동시에 울려 퍼졌다. "흑!" "크윽...!" 고격은 오른손 손가락 세 개가 싹둑 잘린 채 이 장 밖으로 떼굴떼굴 굴렀다. 그의 수염은 턱 밑으로 바싹 잘렸고, 가슴에는 한 일자(一字)의 핏줄기가 뿜어나오고 있었다. 조한영은 그보다 더욱 비참했다. 그는 왼팔이 금강도의 막강한 도광(刀光)에 격중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고, 옆구리가 쩌억 갈라진 채 내장이 삐져나오고 있었다. 즉사하지 않은게 신통할 정도로 막중한 상세(傷勢)였다. 고격은 자신의 자랑인 손가락이 잘려나갔다는 충격과 통증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으나 필사적으로 눈을 치켜뜨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 그 놈은...' 다음 순간, 그의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져 버렸다. 본 것이다. 가슴이 걸레조각처럼 너덜너덜해진 채로 허공을 훌훌 날아 자신의 수하들 속으로 뛰어드는 강산의 모습을... 강산의 가슴팍에는 고격의 자랑인 열양지에 격중된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었다. 하나 세 개의 열양지는 강산의 가슴팍 부분 옷자락에 세 개의 시커먼 구멍만을 남긴 채 사라진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강산의 가슴에는 세 개의 핏구멍이 뚫려 있었을 테니까... 고격의 열양지는 비록 강산의 가슴에 도달하기는 했으나, 미처 열양지 본연의 강맹한 지공(指功)이 강산의 몸을 꿰뚫기 전에 손가락이 잘려져 그 흔적만을 남긴 채 위력을 잃어 버렸던 것이다. 조한영의 장력 또한 그의 팔이 잘려지는 바람에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한게 분명했다. 팟! 팟! 강산의 칼이 춤을 추며 곧 이어 처절한 비명이 밤하늘을 찢어 놓았다. "크악!" "케에엑!" 스물 네 명으로 구성된 점창의 이십사연환쇄진(二十四連環鎖陣)은 미처 진이 발동되기도 전에 강산이 진의 한 가운데로 뛰어듬과 동시에 산산히 깨어져 버렸다. 절진(絶陣)이 깨어진 스물네 명의 고수들은 강산에게는 나무토막과 다름이 없었다. 그의 칼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한 두명씩 피를 뿌리며 나가 떨어졌다. "우-웩!" 핏발선 눈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고격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주먹만한 핏덩이를 뱉어냈다. 그제서야 정신이 조금 들었는지 고격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퇴... 퇴각이다! 퇴각해라!" 한 두명의 점창 고수들이 황급히 고격과 조한영에게 다가와 그들의 몸을 들쳐 업었다. 그와 함께 강산의 칼에 아직 쓰러지지 않은 나머지 인물들이 까마귀떼같이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크악!" 다시 몇 차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것을 끝으로 장내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피로 물든 금강도를 쳐든 채로 우뚝 서 있는 강산을 제외하고는.... 실로 믿어지지 않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점창오로중의 두 사람을 포함한 사십 명에 가까운 고수들이 합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찰나지간에 일패도지(一敗塗地)하고 말았던 것이다. 고격과 조한영이 한 사람을 합공하다가 패해서 부하들의 등뒤에 업혀 도망쳤다고 한다면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휘잉.... 한 차례 밤바람이 장내를 세차게 휩쓸고 지나갔다. 그래도 강산은 금강도를 든 채로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