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논검2부[동사황약사편] - 41편 (41/59)
"사부님, 진현풍과 매초풍이 《구음진경》을 훔쳐 갔다고 제 발의 힘줄을 끊어 병신을 만드신 건 너무합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렸다. "네 이 놈! 꼼짝 마라!" 뒤이어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더니 세 사람이 그를 에워쌌다. 낮에 주점에 왔던 무관들이었다. "이 절름발이야! 끝까지 항복하지 않을 작정이냐?" 양손에 지팡이를 쥔 곡영풍은 그들에게 둘러싸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 놈이 황궁에 들어와 감히 황제의 보물을 홈쳐냈으니 그 죄가 하늘까지 뻗치는구나! 순순히 우리를 따라와 벌을 받아라!" 그들의 호통은 들은 척도 않고 곡영풍은 풀어헤쳤던 보따리를 다시 싸서 허리에 찼다. 무관 하나가 곡영풍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그 보따리부터 이리 던져라. 네 놈의 목숨은 어찌 되든 상관없으나 황궁의 보물이 손상되면 우리가 봉변을 당한단 말이다." "이봐, 지난번에 내가 사정을 좀 봐 줘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지금쯤 황제의 목이 붙어 있지 않을걸." 곡영풍은 빙긋빙긋 웃으며 무관들을 약올렸다. "네 놈이 곱게 죽기 싫은 모양이구나!" 한 무관의 고함에 나머지 두 사람이 칼을 빼들고 곡영풍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곡영풍이 한 박자 빨랐다. 곡영풍이 오른손에 쥔 지팡이를 들어 한 사람의 가슴을 찌르자, 그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다른 무관들이 기합 소리를 내지르며 곡영풍을 난도질할 기세로 달려들었다. 곡영풍은 쌍지팡이를 휘둘러 두 무관의 칼을 막아냈다. 이런 와중에 한 무관의 칼끝이 곡영풍의 보따리를 찢었는지 보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그것을 본 무관이 기뻐 소리를 지르는 찰나 곡영풍이 지팡이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동료가 그의 지팡이에 맞아 머리가 깨지는 것을 본 마지막 무관 한 명은 얼이 빠져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곡영풍은 철팔괘를 품에서 꺼내 힘껏 뿌렸다. 철팔괘가 뒤통수에 박혔는지 놈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칼을 떨구더니 두 손을 허우적거리다가 앞으로 푹 고꾸라지고 말았다. 매초풍과 진현풍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때 곡영풍이 돌아서며 말했다. "곽 형, 양 형, 이리 나오게!" 매초풍이 자신들을 부르는 것으로 착각하고 뛰어나가려 하자 진현풍이 다급히 붙잡았다. 기다리고 있자니 과연 수풀 속에서 작살을 든 두 사람이 나타났다. 곡영풍은 그들 둘에게 귓속말로 소곤거린 다음, 잠시 후에 숲을 빠져 나갔다. 그들이 사라지자 진현풍은 매초풍을 이끌고 큰길로 향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걷기만 했다. 자기들 때문에 곡영풍이 불구가 되었다면 다른 사형들도 사부님에게 그만한 벌을 받았을 게 뻔했다. 그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건강에 이르렀다. "사매, 기억나? 사부님이 우리를 구해 주고 염방 사람들을 더러 죽이긴 했지만 아예 없애지는 못했지. 사부님을 따라 도화도로 가기 전에 나는 이 염방을 모조리 없애 버리겠다고 맹세했었어. 어때, 오늘 우리 부모님의 원수를 갚아 버릴까?" 매초풍 역시 부모님의 원수를 갚고 싶었지만 사부가 두려웠다. "우리가 염방 사람들을 죽였다는 소문이 사부님 귀에 들어가면 어떡해요?" "사부님은 지금 도화도에 계실 텐데 어떻게 소문을 듣겠어?" 두 사람은 부모의 원수를 갚기로 합의하고 건강부 염방총타로 향했다. 건강부 염방총타는 전보다 더욱 융성해져 있었다. 대문 앞의 돌사자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사람들을 쏘아보고 있었고, 문 앞에 세운 깃대 위에는 '염( )' 자를 쓴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진현풍과 매초풍은 그것을 보자 옛날의 끔찍한 기억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 염방 사람 손에 부모님들이 무참하게 살해되었던 것을 생각하자 가슴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그들이 문 앞에 이르자 몽둥이를 든 거구의 사나이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당신들은 누군데 염방을 기웃거리는 거야?" 진현풍은 얼음같이 싸늘한 표정으로 그들을 쏘아보았다. "너희들은 흑풍쌍살(黑風雙煞)도 모르느냐?" 진현풍의 말을 듣고 그중 가장 체구가 큰 젊은이가 물었다. "그렇다면 두 분의 호가 흑풍쌍살이란 말인데, 이름은 무엇이오? 이름을 알아야 소생이 방주님께 여쭈어 올릴 것 아니오." "동시(銅尸) 진현풍과 철시(鐵尸) 매초풍이 귀방의 혈채(血債)를 청산하러 왔다고 여쭈게." "뭐? 염방을 해쳐 보겠다구?" 그가 코웃음을 치자 나머지 사나이들이 진현풍과 매초풍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진현풍과 매초풍은 그동안 《구음진경》에 있는 기공 괴식(奇功怪式)을 연마했는데, 그중에도 '구음백골조(九陰白骨爪)'와 최심장( 心掌)'을 가장 열심히 연마했다. 《구음진경》에는 이 두 가지 무공을 익히면 손이 번개처럼 빠르고 쇠갈고리같이 억세져서 상대방의 머리를 송곳처럼 푹푹 찌를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매초풍이 구음백골조를 수련하고 진현풍은 최심장을 수련하여 둘은 얼마간의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다만 상권에 있는 내공 심법을 터득하지 못한 탓에 일정한 성과를 얻고 나서는 더 깊이 알 수가 없었다. 《구음진경》을 쓴 황상은 도가의 내공 심법에 정통한 사람으로서 그것을 토대로 해서 책을 써 나갔으나, 두 사람이 배운 도화도의 무공은 그것과는 전혀 달랐으므로 상권을 얻지 못하면 더 이상의 진전은 있을 수가 없었다. 열 명이 넘는 염방의 문지기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자 두 사람은 구음백골조와 최심장을 썼다. 한 녀석이 몽둥이를 휘둘러 매초풍의 정수리를 내리치려 하자, 그녀는 번개같이 그것을 피하고 다섯 손가락을 확 펼쳐 녀석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순식간에 그녀의 손가락이 녀석의 두개골을 송곳처럼 뚫고 들어갔고, 녀석은 무시무시한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두 눈으로 시뻘건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진현풍은 다섯 손가락을 곧추세워 들고 상대방의 인후를 갈겼다. 그 손을 슬쩍 앞으로 당기니 그대로 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나머지 놈들이 놀라 소리치며 뒷걸음질쳤다. 그들은 얼핏 보기에 나약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들이 싸움이 시작되자 마귀같이 변하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렸다. 매초풍은 몸을 날려 한 놈의 몽둥이를 빼앗아 들고는 가슴팍을 힘껏 내질렀다. 몽둥이에 가슴을 맞은 놈은 비명도 못 지르고 쿵 나가떨어졌다. 그의 가슴에 꽂힌 몽둥이가 향처럼 꼿꼿하게 서 있었다. "너희들이 우리 집안을 망쳐 놓았으니, 나는 염방을 통째로 없애 버리겠다! 이 원수를 갚지 못하면 나는 진백만의 아들이 아니다!" 진현풍은 고함을 지르면서 염방의 무리에게 달려들어 손가락으로 목을 부러뜨리고 뒤통수를 후려갈기면서 닥치는 대로 죽였다. 염방의 문을 지키던 자들이 순식간에 다 죽어 넘어지고 한 사람만이 남았다. 놈은 얼이 빠진 멍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이 놈! 어서 방주한테 고하지 않고 뭣 하고 있느냐?" 매초풍이 호통치자 그자는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화들짝 놀라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그자는 노루처럼 껑충껑충 뛰면서 뭐라고 외쳐 댔지만, 너무 놀라서인지 도통 앞뒤가 맞지 않는 괴상한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들렸다. 그 소리에 놀란 염방 사람들이 문을 열고 나와 보니, 문지기가 눈을 부릅뜬 채 고함을 지르며 정신없이 뛰어오고 그 뒤를 따라 젊은 남녀가 들어서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누군가 큰소리로 물었다. 문지기는 꺽꺽거리며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때 뒤에 서 있던 젊은이가 몽둥이를 던지자, 그것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문지기의 뒤통수에 박혔다. 염방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그자를 바라보았다. 황약사의 손에 서 나으리가 죽은 후 그만큼 총명하고 무공이 출중한 방주를 세우지 못한 염방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근래 들어 장사는 잘되고 있었지만 강호에서 위풍을 떨치던 염방의 기세는 형편없이 위축되어 있었다. 염방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젊은 남녀를 에워쌌다. 다들 질긴 가죽으로 얼굴과 허리, 무릎을 감싸고 있었는데, 당장이라도 독염을 뿌릴 기세였다. 진현풍이 매초풍에게 속삭였다. "사매, 저 독염을 조심해." 매초풍은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손을 뻗어 한 놈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팍, 하는 소리가 나며 놈의 머리가 박살났다. "놈들이 손쓸 틈을 주지 말아요!" 매초풍이 소리쳤다. 그 말뜻을 알아차린 진현풍은 순식간에 몸을 날려 염방의 무리들을 찌르고 차면서 전광석화같이 빠른 동작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두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피가 튀고 뼈가 으스러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넓은 마당에 시체가 즐비했다. 매초풍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끔찍한 몰골로 죽어 나자빠진 염방의 무리들을 내려다보았다. "우린 이제 원수를 다 갚았어요. 지하에 계신 부모님들도 속이 시원하실 거예요." 진현풍은 피로 범벅이 된 자신과 매초풍의 옷을 번갈아 보았다. 매초풍이 피곤한 듯이 다시 말했다. "복수를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난 걱정이에요. 사부님이 중원에 오시면 분명히 이곳부터 들르실 텐데, 우리가 이자들을 몰살시킨 걸 알아차리실 거예요. 그렇게 되면 우리가 잡히는 건 시간 문제라구요." 매초풍의 근심 어린 말에 진현풍이 대꾸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일, 걱정만 하면 뭣하오? 시체들의 형체를 모호하게 만들어서 우리 소행인지 모르게 하는 수밖에 없지." 두 사람은 즉시 대문을 잠그고는 시체들을 하나하나 난도질하여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게 해 놓았다. 그리고 나서야 염방을 떠나 도화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날그날 한가하게 지내던 노완동 주백통은 종남산의 전진교를 찾아가 마옥과 구처기나 만나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 같은 놈은 전진교도가 못 될 거야. 조과니 참선이니 따위는 죽어도 못하니까. 하지만 종남산은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어. 사형의 묘도 거기 있고 경치는 또 얼마나 좋냐 말야! 내가 보기엔 종남산이 바로 극락이야. 좋긴 한데, 거길 가면 절을 받느라고 고생스럽단 말이야. 마옥과 구처기의 절을 받아야지, 그 절을 받고 나면 다른 제자들의 절을 받아야지. 그게 끝나면 그 제자들의 제자들이 줄줄이 들어와 절을 하겠지? 아이고, 절 받다가 허리가 부러지고 말걸. 꼿 꼿이 앉아 있기도 얼마나 힘든데. 하여간 이번에 가면 절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야지.' 그러면서 그는 또 왕중양을 원망했다. '내가 제자가 되겠다고 그렇게 애걸해도 사제로 삼더니, 그것 봐요, 일이 얼마나 귀찮게 되었나. 제자들만 해도 감당을 못하겠는데, 제자의 제자들까지 우글우글하니…….' 이윽고 종남산에 당도한 노완동은 우선 왕중양의 묘를 찾아갔다. 묘 앞에서 그는 한참 동안 울었다. 처음에는 울음 소리를 내면 구처기와 마옥이 그 소리를 듣고 찾아올 게 뻔했으므로 울음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정작 왕중양의 묘 앞에 무릎을 꿇으니 설움이 복받쳐서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천하에 보기 드문 왕중양의 인품이며 그가 당부하던 말들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었다. 또한 그가 서독 구양봉에게 우롱당한 일을 생각하면 분이 치밀어 견 딜 수가 없었다. "형님, 주백통이 왔습니다. 형님은 저만 덩그러니 남겨 놓고……, 제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제가 황약사에게 얼마나 조롱당했는지 아세요? 그자는 형님까지 비웃었어요……." 말할수록 더욱 비통해진 그는 엉엉 통곡을 했다. 노완동은 실없는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사형 왕중양을 각별히 좋아하고 존경하였다. 자기가 그토록 따르다 사형이 구양봉에게 우롱당했다는 생각을 하자 너무나 서럽고 분했던 것이다. "사형, 영혼이 있으시면 어서 나와서 제게 무공을 가르쳐 주세요. 밤잠을 안 자고 배우겠습니다. 열심히 배워서 형님의 원수를 갚겠습니다." 그가 한참 통곡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왕중양의 묘에 나타난 일곱 사람은 노완동 뒤에 와 서더니 하나하나 꿇어 엎드려 왕중양의 묘에 절하며 곡을 했다. '우리 사형의 인품이야 더 말할 게 없지. 세상을 하직한 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날마다 사람들이 찾아와 절을 하니, 사나이 일생이 이만하면 헛되지 않은 게야.' 노완동은 이런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잘 보니 그들은 바로 전진교의 일곱 제자들이었다. '음, 잘한다, 망할 놈들. 억지 눈물을 간신히 짜내는구나. 내가 화를 낼까 봐 수작을 피우는 게야.' 노완동은 못마땅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됐네, 됐어. 그런 억지 울음은 그만 하라구. 마옥이, 자네 오늘 저녁 밥은 먹었나?" 사숙이 괴이한 소리를 하자 마옥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사숙님, 그새 별고 없으십니까? 저녁밥이야 물론 먹었지요." 노완동은 또 손불이에게 불쑥 물었다. "손불이, 자네는 오늘 머리를 빗었나?" 손불이는 마옥의 처였다. 마옥이 도문에 들어 왕중양의 제자가 되자, 손불이도 왕중양을 찾아와 자기도 제자로 받아 달라고 야단을 피웠었다. 그녀는 일단 종남산에 들어와 마옥을 구슬려 함께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작 도문에 들어 무공을 연마하고 좌선에 참여하다 보니 그만 세속에의 미련이 가신 듯 없어져서, 도리어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도를 닦게 되었다. 손불이는 이런 여인이었다. 손불이는 사숙의 갑작스런 물음에 얼굴을 붉히며 허리를 굽혔다. "사숙님, 물론 머리를 빗었지요." 노완동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희들은 밥도 먹지 말고 머리도 빗어선 안 돼! 걷지도 못하고 말도 안 나올 정도로 기운이 다 빠져야 될 놈들이다!" 일곱 사람은 실없는 소리를 잘 지껄이는 사숙에게 함부로 말대꾸 했다가는 큰 놀림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사숙의 말에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하나하나 나서서 인사를 올렸다. 처음엔 수제자이며 전진교 장문인 마옥, 다음은 장진자(長眞子) 담처단(譚處端), 장생자(長生子) 유처현(劉處玄), 장춘자(長春子) 구처기(丘處機), 옥양자(玉暘子) 왕처일(王處一), 광녕자(廣寧子) 학대통( 大通), 청정산인(淸淨散人) 손불이(孫不二), 이런 차례로 노완동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러나 노완동은 우거지상이 되어 있었다. "이봐라! 나와 사형은 구양봉에게 속았다!" 그 말에 전진교의 일곱 제자들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우리 사부님이 구양봉에게 속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노완동은 황약사와 돌멩이로 내기를 하던 일과 황약사의 부인에게 그 경서를 보였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시 부아가 치밀어 투덜거렸다. "사형께선 임종 직전에 노독물 구양봉의 합마공을 파했다고 생각하셨지만 그게 아니라네. 노독물 구양봉이 쥐도 새도 모르게 진짜 《구음진경》을 손에 넣고 그 대신 가짜를 넣어 놨다는 걸 모르고 계셨단 말일세. 난 울화통이 터져 죽을 지경이야." 모두들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데 구처기가 입을 열었다. "사숙님께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강남에 갔다가 염방 사람을 하나 만났지요. 그 사람 말이, 두 사람이 염방총타에 와서 염방 사람들을 몰살시켰답니다. 그 두 사람은 호를 동시, 철시라고 하며, 자칭 흑풍쌍살이라고 하는데, 구음백골조와 최심장을 써서 사람을 죽였답니다. 그들 손에 죽은 사람들은 모두 머리에 구멍이 다섯 개씩 뚫리거나 목의 인후가 끊어져 있었다는 겁니다. 본 사람들이 말하길, 앞가슴에 장풍만 한 번 후려 쳐도 오장육부가 터져 죽는다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제가 몰래 흑풍쌍살을 찾아내어 둘이 하는 말을 엿들었지요. 헌데 그들이 바로 도화도에서 온 진현풍과 매초풍이란 자들이었습니다." 구처기의 말을 듣고 노완동은 크게 놀랐다. "아니, 그 놈들이 어떻게 구음백골조와 최심장을 알지? 사형 말씀으로는, 《구음진경》을 없애려는 까닭이 바로 그 무공 술수가 잔혹해서 무림 세계를 어지럽힐까 봐 그런다고 하셨어. 그래서 천하에 둘도 없는 그 기서를 태워 없애려 하셨지. 그들이 정말 도화도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런 무공을 익혔을까? 이상한 일이야……." 노완동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숙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구처기가 노완동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할말이 있으면 우물쭈물하지 말고 빨랑빨랑 하게. 이 노완동은 성질이 급하니까." "제가 보기엔 아무래도 사숙님이 황약사에게 속은 것 같습니다." "뭐? 내가 황약사한테 속았다구?" 노완동은 펄쩍 뛰었다. 구처기는 《구음진경》을 몽땅 외워 버린 아형이 노완동을 속여 그 책을 태워 버리게 했고, 그래서 책이 도화도로 흘러간 것이라는 자기의 추측을 얘기했다. 그제야 노완동은 생각났다는 듯이 무릎을 탁 쳤다. "어쩐지 황약사가 그 책을 가지러 서역에 가겠다면서 나한테 같이 가자는 말을 안 하길래 은근히 괘씸하다는 생각을 했었지. 그런데 그 녀석이 엉큼하게 날 속일 줄이야! 아무래도 내가 황약사를 찾아가야겠어." 그는 한동안 잠잠하게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옥, 구처기, 너희들은 대체 어디에 갔었느냐? 너희들이 없으니 내가 그렇게 어이없이 당하지 않았느냐. 남들이 네 사숙을 이렇게 우롱하는데도 너희들은 희희낙락 잘 살았느냐?" 왕중양의 일곱 제자들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쓴웃음을 지었다. 자기가 두 눈을 훤히 뜨고 속아 놓고서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한단 말인가? 다들 입을 다물자 노완동은 더욱 노발대발했다.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일이야! 우리 사형 같은 영웅이 어떻게 너희 같은 바보들을 제자로 두었는지 말이다! 나 혼자라도 그 흑풍쌍살인지 뭔지 하는 것들을 찾아서 《구음진경》을 찾아와야겠어!" "사숙님, 그럴 것 없이 우리 몇이 흑풍쌍살을 찾아가서 책을 찾아오지요." 마옥의 말이었다. "흥, 나 같은 놈은 안 된다 이거냐? 어디 두고 봐라. 황약사의 제자들이 더 센지, 내가 더 센지 두고 보면 알 것 아니야." 노완동이 펄펄 뛰자 마옥이 그를 만류했다. "사숙님, 고정하시고 제발 그렇게 고집 부리지 마세요. 그래 가지곤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러나 노완동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마옥이 네가 전진교 장문이라고 나더러 지금 명령하는 거냐?" "사숙님,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사숙님은 흑풍쌍살과 싸우면 안됩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과 싸우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황약사가 와서 캐물으면 뭐라고 하실 겁니까?" "물론 윗사람이 아랫사람과 싸우면 안 된다는 것은 잘 알지만, 너희들 힘으로 흑풍쌍살을 당해 낼 것 같으냐?" 그들은 둘러앉아서 대책을 의논했다. 그 결과, 구처기와 왕처일이 먼저 흑풍쌍살과 맞붙고, 나머지 마옥 둥 몇 사람은 숨어서 지켜 보다가 구처기 등이 흑풍쌍살을 못 당하면 일제히 뛰쳐나가기로 결정했다. 하남에 이른 구처기와 왕처일은 흑풍쌍살에 대한 소문만 무성할 뿐 아무리 해도 그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산자락이나 벼랑 아래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는데 모두 목이 잘려 나간 머리 없는 시체들이라는 둥, 산 위에 사는 귀신이 땅에 구멍을 파고 사람의 두개골을 묻어 놓는다는 둥 끔찍한 얘기들이었다. 한 구멍에 아홉 개의 두개골을 묻어 놓는데, 맨 밑에는 다섯 개, 중간에 세 개, 맨 꼭대기엔 하나를 묻는다고 했다. 그런 구멍을 세 개씩 품(品)자형으로 만들어 두개 골 스물일곱 개를 묻고, 다시 이와 같은 무덤을 세 군데 만든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전진교의 제자들은 그 수법이 강호에서 실전된 지 오래 된 구음백골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악독한 무공은 벌써 몇 대 전에 사라져서 지금은 그것은 행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이런 잔인한 무공을 연마하느라 멀쩡한 사람을 한 번에 여든한 명이나 죽인다 하니, 정말 기가 찰 일이었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런 악마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이 바로 동해 도화도에서 온 동시와 철시라고 했다. 구처기와 왕처일은 이 두 사람을 찾아 여러 곳을 돌아다녔으나 그들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이즈음 진현풍과 매초풍은 최심장과 구음백골조를 4단쯤 연마하고 있었다. 둘은 강호에서 고수들을 만나 겨룰 때마다 매번 이기고 있었다. 둘은 황약사가 조만간 자기들을 붙잡으러 오리란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하루빨리 《구음진경》무공들을 완전히 익혀 그를 이길 정도로 실력을 쌓으려고 애썼다. 그날도 진현풍과 매초풍은 세 명을 잡아다가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매초풍은 구음백골조를 수련할 때면 황약사를 만나 자기 손으로 그의 두개골을 움켜쥐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슬픔과 쾌감이 교차되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이는 것이었다. 잡혀 온 사람 중 하나는 노인이었다. 그는 매초풍을 보고 부들부들 떨었다. 노인은 매초풍의 예쁜 얼굴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소저, 제발 날 살려 주시오. 난 나쁜 짓이라곤 안 해 본 사람이오. 이 불쌍한 늙은일 제발……." 그러나 매초풍은 싸늘하게 코웃음쳤다. "이봐 영감, 나도 한때는 나쁜 짓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어. 그런데 지금은 나쁜 짓을 안 하고는 못 견디는 버릇이 생겼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