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화산논검2부[동사황약사편] - 34편 (34/59)

2026-09-24 21:27:20 조회 31
사불이 깜짝 놀라 아형에게로 달려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아형에게 이렇듯 공중을 날아 배 위에 올라올 만한 재주가 있었나 싶어 눈이 휘둥그래졌다. 손은 여전히 밧줄에 묶여 있었는데 아형에게 아무리 신력이 있다 해도 이 같은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불은 요모조모를 살펴보다가 나름대로 단정지었다. '큰 물고기의 짓임에 틀림없어.' 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아형을 향해 짜증스레 소리쳤다. "보기 싫다니깐 또 왔구나. 용왕도 널 싫다 하고 나도 네가 귀찮으니 어쩔까? 태호에 던져 고기밥이나 되게 하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을 것 같다." 사불은 검을 번쩍 치켜 들어 고물에 매어 있던 밧줄 한 끝을 툭 끊어 버리고는 다시 아형을 물에 집어 던졌다. 아형이 물에 떨어지는 순간 물 속에서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끊어진 밧줄 끝을 잽싸게 거머쥐었다. "왜 또 물에 뛰어드는 건가? 내가 겨우 물에서 건져 배에 집어 던졌더니만." 그는 도로 아형을 배 위로 던져 올리고 자기도 갑판 위에 올라섰다. 사불과 악귀는 다시금 소스라쳐 놀랐다. 한 거렁뱅이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몰골로 씩 웃고 서 있었는데 맨발에다 어깨엔 조롱박 하나를 달랑 메고 있는 게 유독 눈길을 끌었다. "넌 누구냐?" 사불이 꽥 소리쳤다. 거렁뱅이가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왜 이렇게 사납게 구나? 모양을 보니 무슨 해적질이나 하는 것 같은데, 오라, 그러고 보니 사불이 틀림 없겠군. 듣자니 태호에서 최고로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이 사불과 악귀라던데 오늘 마침 잘 만났다." 그는 이제 아형을 향해 말했다. "아니, 이렇게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어쩌다 저런 악한 여자를 만나 고생인가? 저 여자가 누군지 알아? 사불이야 사불!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나 싫어해서 시집도 못 가는 여잔데 어쩌자고 저런 여자를 다 가까이 하다가 이런 봉변을 당하는 거야 그래?" 사불은 그 말에 속이 발칵 뒤집혔다. 얼마 전 병묘가 모진 말을 퍼붓고 호숫물에 뛰어들면서부터 사불은 줄곧 속이 부글부글 끊어 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한 터에 아형을 만나게 되자 더욱 속이 끓었다. 항주부 삼공자들이 모두 아형에게 마음을 두고 있음을 잘 알고 있는 사불은, 병묘가 자기를 싫어하는 까닭이 아형에게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형을 죽임으로써 병묘의 미련을 끊어 버리려 했던 것인데 한낱 거렁뱅이까지 자기를 '세상 사람이 모두 싫어해서 시집도 못 가는 여자'라고 못을 박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미칠 지경이 되었다. '빌어먹을 놈. 네가 누구든 간에 오늘 내 손에 죽는 줄 알아라. 네 놈의 아가리에 난도질을 해놓을 테다!' 사불은 악을 쓰며 거렁뱅이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검은 곧장 거렁뱅이의 가슴을 뚫고 등뒤로 튀어나왔다. "악!" 아형이 얼굴을 싸쥐며 비명을 질렀다. 사불은 자기 검이 너무도 쉽게 상대방의 가슴을 뚫어 버리자 오히려 흠칫 놀랐다. 그녀는 가슴을 움켜쥐며 모로 쓰러지는 거렁뱅이를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 "흥, 날 탓하진 말라구. 이건 네가 자청한 거야." 이때였다. 갑자기 거렁뱅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 내 탓이니 네 탓이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쨌거나 검술이 영 형편없구만. 가슴을 못 찌르고 하필이면 이 거렁뱅이 겨드랑을 찌르다니, 그런 재주 갖고 이 거렁뱅이와 자웅을 다투겠다고? 분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만 그래." 거렁뱅이는 앙천대소를 하였다. 사불은 악이 받쳐 사나운 맹수처럼 울부짖으며 거렁뱅이에게 다시 덮쳐 들었다. 거렁뱅이가 막 손을 쓰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등뒤에서 차가운 바람이 이는 듯했다. 누군가 발길질을 한다는 것을 느낀 거렁뱅이는 얼른 몸을 날려 선창을 뚫고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거렁뱅이의 뒤를 덮치던 악귀는 거렁뱅이가 잽싸게 몸을 피하는 바람에 몸을 제지할 수가 없어 그대로 사불과 맞부딪치고 말았다. "아얏!" 사불이 비명을 질렀다. 둘이 잠시 어정정하게 서 있는데 거렁뱅이가 술잔 하나를 들고 선실에서 뛰어나왔다. "근사하군! 술잔이 참 근사해. 이 술잔으로 술을 마시면 맛이 어떨까?" 거렁뱅이는 당장 어깨에서 조롱박을 내려 들고는 입으로 마개를 뽑았다. 그는 조롱박을 기울여 방금 들고 나온 술잔에 술을 따른 뒤 조롱박을 허공에 던져 올리고 입에 물었던 마개를 훅 내뱉었다. 순간 사불과 악귀는 입이 쩍 벌어졌다. 허공에 날아오른 조롱박과 마개가 너무도 절묘하게 아귀가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거렁뱅이는 떨어져 내리는 조롱박을 맵시 있게 척 받아 쥐고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잔을 비웠다. "카―, 술맛 좋군." 그는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이번에는 그 옥잔을 선실 안으로 집어 던졌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거렁뱅이 조롱박만은 못해. 옥잔이고 나발이고 이 조롱박에 직접 입을 대고 마시는 게 최고거든." 사불과 악귀는 얼른 선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옥잔은 신기하게도 원래의 자리에 감쪽같이 놓여 있었는데, 옥잔을 싸고 있던 금실 그물까지 전혀 손댄 흔적이 없으니 이거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불과 악귀는 이 거렁뱅이의 무공이 보통이 아님을 깨닫고 은근히 긴장했다. 사불은 애써 존경스런 태도를 취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저, 선배님께선 어디 사는 누구이시며 태호의 저를 찾아 무슨 볼일이 있으신지요?" 사불의 달라진 태도에 홍칠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한참을 웃다가 갑자기 뚝 그치며 말했다. "난 개방 방주 홍칠이다. 너희들 둘이 소인의 앞잡이가 되어 태호에서 갖은 악행을 자행하고 있다는 얘기는 수없이 들어 왔다. 오늘 내가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너희들에게 저승 구경을 좀 시켜 줄까 해서이다." 그 말에 사불과 악귀는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홍칠에게로 덮쳐 들었다. 홍칠은 얼른 허리를 굽히고 왼손을 끌어들이는 듯하면서 오른손으로 장을 내밀었다. 순간 무거운 굉음이 일며 사불과 악귀는 종잇장처럼 뱃머리로 날려 갔다. 사태가 불리함을 느낀 두 사람은 잽싸게 몸을 일으켜 물로 뛰어 들어 달아나려 했다. "도망가려 해요, 저봐요!" 아형이 소리쳤다. "꼼짝 마라!" 홍칠이 몸을 솟구쳐 그들에게로 날아갔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푸른 타구봉이 쥐어져 있었다. 홍칠은 타구봉 끝으로 악귀를 들어 올려 갑판 한가운데 에 내동댕이친 뒤 대혈 세 군데를 찔러 놓았다. 악귀가 옴짝달싹도 못하게 되자 사불은 죽기 살기로 홍칠에게 달려 들었다. 홍칠은 타구 봉으로 사불의 양어깨를 잽싸게 내리쳤다. 사불은 가까스로 몸의 중심을 잡으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홍칠은 다시 전자결(纏宇訣)을 외우며 타구봉 끝으로 그녀의 옆구리를 찔러 빙 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사불은 하늘과 땅이 뒤섞이는 듯한 현기증을 느끼며 그대로 갑판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사불과 악귀는 종잇장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끝까지 항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를 악물고 홍칠을 올려다보았다. 홍칠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 둘이 그동안 태호에서 자행한 악행을 생각하면 당장 쳐죽여도 시원치 않지만 내 손이 더러워질까 봐 그만두겠다. 내 오늘 목숨만은 살려 줄 테니 앞으로는 사람답게 살도록 하여라." 홍칠은 말을 마치더니 사불과 악귀의 단중(壇中)과 기혈(氣穴)을 눌러 앞으로는 무공을 쓸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이때였다. 갑자기 호수 먼 곳으로부터 쪽배 10여 척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사불 악귀는 게 섰거라!" 잠깐 사이에 그들은 태호 보선을 에워쌌다. 쪽배 위의 사람들 중엔 태호 귀운장의 몇몇 형제들도 있었는데 선두에 선 사람은 큰형 육승룡이었다. 그들은 다투어 태호 보선에 뛰어올랐다. 그들은 사불과 악귀와 사생결단을 내려고 뛰어올랐다가 눈앞에 벌어진 뜻밖의 정경에 하나같이 놀랐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홍칠이 껄껄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육승룡, 개방의 홍칠을 몰라 보겠나? 사불과 악귀는 내가 이미 무공을 쓸 수 없게 만들어 놓았으니 더는 신경쓸 것 없네. 여비나 좀 주어 가고 싶은 데로 가게 하고, 이 배의 보물은 자네들이 가져다가 태호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나." 사람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듯 홍칠과 아형, 사불 악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홍칠은 또 한바탕 하늘을 우러러 큰소리로 웃더니 누가 붙들 새도 없이 물 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제22장 도화도의 사랑 진현풍과 매초풍을 데리고 동해에 온 황약사는 배를 하나 얻어 주산(舟山)으로 향했다. 한참 가다가 황약사는 사공에게 말했다. "키를 돌려 도화도로 향해 주시오." 사공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만 도화도는 갈 수 없는뎁쇼." "갈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황약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손님께서는 아마 모르고 계시는 모양인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도화도엔 마귀가 있답니다요. 눈이 네 개나 달렸는데 생사람을 잡아먹는대요. 힘이 얼마나 센지 사람을 잡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사지를 쭉쭉 찢어 먹는다지 뭡니까? 이 연해 일대 사람들은 모두 그게 알고 있지요. 그런데 도화도를 가다니요? 억만금을 준대도 거기는 못 갑니다요." 함께 타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맞장구를 쳤다. 잠자코 귀를 기울이고 있던 진현풍과 매초풍이 황약사를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웃긴 왜 웃나?" 황약사의 말에 둘은 찔끔 웃음을 거두었다. 황약사는 빙그레 웃으며 또 물었다. "그래 사공께서 보시기에 나는 어떻게 보이시오? 도화도의 그 마귀와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소?" 사공은 황약사를 보고 크게 웃었다. "손님이야 미남이신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 악마는 지독한 악마랍니다. 생사람을 벙어리로 만들어 갖고 도화도에 데려다가 온갖 고생을 다 시킨답니다. 접때 제 동생이 말도 못하는 벙어리 하나를 배에 태웠는데 글쎄 자꾸만 도화도로 가자고 하더랍니다. 누가 감히 거길 가겠다고 나서겠수? 그래 동생이 못 가겠다고 하니까 그 벙어리가 지랄발광을 하더랍니다. 배를 부수고 사람을 막 치고, 그 바람에 사공이 넷이나 죽었지요. 동생은 겨우 목숨은 부지했으나 이틀 이나 바다에서 떠다니다가 구출이 되었지요. 동생이 말하기를 도화도의 그 악마가 이름 모를 약을 먹여서 벙어리가 그런 광기를 부렸다고 합디다." 황약사는 그저 허허 웃었다. 그러자 사공은 신명이 나서 입에 게거품을 물며 도화도 악마에 대해 욕을 퍼부어 댔다. "천하에 그런 악마가 어디 있단 말이오? 멀쩡한 사람을 병신을 만들다니, 하늘이 가만있지 않을 거외다." "그러다가 정말 그 악마가 눈앞에 나타나면 어쩌려고 그러오?" 황약사가 빈정거렸다. "어쩌긴 어째요? 내가 무서워할 줄 아시우? 기껏해야 그 놈 손에 죽기밖에 더 하겠소?" 사공은 자기 가슴을 툭 치며 호기를 부렸다. "이 놈! 내가 바로 그 악마다!" 황약사가 갑자기 버럭 소리쳤다. 사공은 움찔하여 황약사를 바라보았다. 그는 황약사의 기색이 추상 같을 뿐만 아니라 눈에 살기가 번뜩이는 것을 보고 더럭 겁이 났다. "소…… 손님두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십니까?" "내가 무슨 할 일이 없어 네 놈과 농담을 하겠느냐?" 황약사는 코웃음을 치며 사공에게 다가섰다. "게 서라, 게 섰거라! 한 발짝만 더 다가서면 물에 처넣을 테다!" 사공은 급히 노를 거머쥐고 소리쳤다. 황약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다가갔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사공은 이를 사려물고 황약사의 허리를 노로 후려갈겼다. 어찌나 힘이 센지 바람이 씽 일었다. 황약사는 두 손가락을 뻗쳐 노를 잡았다. 순간 노는 마치 작두에 잘린 듯 싹뚝 잘려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사공은 반만 남은 노를 쥐고 마치 도깨비라도 만난 듯 얼빠진 얼굴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말릴 엄두도 못 내고 공포에 질려 두 사람을 지켜 볼 뿐이었다. 황약사는 다가가 동강난 노를 빼앗아 마저 박살을 내서는 바닷물에 집어 던졌다. 사공은 겁에 질린 눈을 휘둥그래 뜨고는 부들부들 떨며 황약사를 바라보았다. 황약사는 사공의 두 손을 등뒤로 모아 쥐고는 배 난간으로 끌고 가서 그의 머리를 바닷물에 처박았다. "말해 봐. 그 악마란 놈이 생사람을 어떻게 찢어 죽였다던가? 나도 한번 그대로 해봐야겠다." "아이고, 살려 주십쇼, 제발 목숨만……." 사공은 급히 소리치다가 머리가 바닷물에 박히는 바람에 몸만 버둥했다. 황약사는 사공의 머리를 몇 번 물 속에 잠갔다 꺼냈다 한 뒤 다시 말했다. "내가 바로 네 놈이 말하던 그 악마다. 그러니 냉큼 우리를 도화도로 모셔라. 조금만 지체했다간 네 놈의 사지를 찢어 바다에 처넣을 테다." 사공은 부들부들 떨면서 찍소리도 못하고 뱃머리를 돌려 도화도로 향했다. 도화도에 도착하자 황약사는 사공의 뒷덜미를 잡아 거의 끌다시피 하여 배에서 내렸다. 그는 배에 남은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알아서 돌아가도록 해라. 이 사공 놈은 내가 끌고 가서 버릇 좀 고쳐 줘야겠다." 그러자 사람들 셋은 덜컥 무릎을 꿇더니 머리를 조아리며 제발 사공을 놓아 달라고 애걸했다. 황약사는 은전 몇 닢을 배 위로 휙 집어 던졌다. 은전들은 쏜살같이 날아가 배의 바닥에 깊이 박혔다. "그것을 가지고 냉큼 돌아들 가!" 황약사는 더는 말하지 않고 사공의 뒷덜미를 쥔 채 몸을 돌렸다. 세 사람은 쫓아올 엄두도 내지 못하고 멀어지는 황약사 일행을 멍청히 바라볼 뿐이었다. 황약사는 몇 발자국 가다가 사공에게 물었다. "넌 여기서 죽어도 한이야 없겠지?" 강직한 성격의 사공은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악마 같은 놈? 무고한 인명을 마음대로 해치는 네 놈을 하늘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 황약사는 히죽 웃음을 떠올렸다. "또 아가리 질을 해봐. 네 놈의 혓바닥을 도려내고 귓구멍을 파서 이 섬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할테니!" "과연 틀림없군. 동생 말이 틀림없어! 난 그래도 동생 말이 다분히 꾸며 낸 말인 줄 알았더니 바로 네 놈의 그 악마로구나." 사공은 계속해서 황약사를 욕하며 심기를 건드렸다. 진현풍과 매초풍은 황약사의 기색을 살피며 사공은 이제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공이 죽는 것이 불쌍했지만 그 말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이때였다. 갑자기 황약사가 큰소리로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는 웃다 말고 사공을 번쩍 들어올리더니 바다를 향해 내던졌다. 바닷물에 첨벙 떨어진 사공은 간신히 헤엄쳐서 자기가 몰고 왔던 배 위에 기어올랐다. 사공이 죽지 않고 돌아가게 되자 사람들은 감지덕지하여 황약사를 향해 몇 번이고 절을 하더니 부랴부랴 노를 저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화도에는 소문대로 벙어리 노복들이 많았다. 그들은 모두 기이한 무공들을 한 가지씩 가지고 있었으나 하나같이 침울한 기색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무림 세계의 망나니들이었는데 황약사한테 붙들려 그 꼴이 된 것이다. 매초풍과 진현풍은 도화도에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새 여러 달이 지나갔다. 둘은 무공을 익히는 솜씨가 매우 빨랐다. 내력은 아직 많이 약하지만 무술 동작은 어디에 내과도 손색이 없을 만큼 무학 대가의 틀을 확실히 갖추었다. 두 사람은 오로지 부모님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만으로 무예를 배우는 데 전념했다. 때가 바로 복숭아꽃이 만발할 때라, 어느 날 수련을 마친 매초풍은 복숭아꽃을 꺾어 들고 사부의 처소로 향했다. 곱게 핀 꽃을 가져다가 사부의 서재와 침실을 장식해 드리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여간 즐겁지 않았다. 황약사의 서재는 엄청나게 컸다. 서재에는 책상자와 책 광주리가 아주 많았는데 책상자에 새겨져 있던 글은 황약사가 손가락으로 모두 후벼 파내 버렸다. 황약사는 책상자에 새긴 '금수문장(錦袴文章)'이니 '학부사해(學富四海)'니 '진사급제(進士及第)'니 하는 글들이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심심하면 손가락으로 그것을 후벼 파내 버리곤 했던 것인데 그로 인하여 책 상자에는 구멍이 숭숭하였다. 창가에는 대나무 탁자가 하나 있었고 그 위는 문방사보(文房四寶) 지필묵이 놓여 있었다. 꽃들을 꽃병에 꽃아 놓고, 매초풍이 즐거운 마음으로 그 꽃을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뒤에서 악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벙어리 노복 하나가 손짓발짓을 해 가며 뭐라고 말하는데 눈치로 보아 어서 이곳을 나가라는 것 같았다. 매초풍은 마땅치 않다는 듯 벙어리 노복을 쏘아보았다.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네 일이나 해, 남의 일에 참견 말고." 매초풍이 말했다. 그러나 벙어리 노복은 물러서지 않고 여전히 손짓발짓을 해 가며 황약사께서 이곳에 다른 사람을 절대 출입시키지 말라는 엄명이 있었음을 전달했다. 매초풍은 그 뜻을 알았지만 모르는 척하고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잖아." 그녀는 벙어리 노복을 골려 먹는 것에 은근히 재미를 느끼며 남은 복숭아꽃을 들고 황약사의 침실로 들어갔다. 침실에 들어서는 순간 매초풍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부의 침실은 상상 밖으로 매우 간소했다. 나무침대 하나에 침대 휘장이 하나, 괴상한 검이 한 자루, 그리고 벽에는 옥소가 걸려 있고 바닥엔 책상이 하나 있었는데 그 위에 책이 몇 권 놓여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검소한 사부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나쁘게만 말하다니…… 아, 사부님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야. 선비같이 문장도 좋고 금기서화(琴樵書畵), 기문술수(奇門術數) 어느 하나 정통하지 않은 것이 얼지 않은가?' 매초풍은 황약사가 고금에 없는 천하 제일의 기인이라고 탄복을 금치 못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사부의 침대머리에 걸려 있는 그림 한 폭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옷의 주름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정밀하게 그린 인물화였는데 아주 잘 그려진 그림이었다. 그림의 여인은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생긋이 웃고 있는 눈이며 입매가 성미 부드러운 여인의 다정다감한 마음을 보여 주는 듯하여 사랑스러웠다. '이 그림의 미인은 도대체 누굴까? 이렇게 침대머리에 걸어 놓은 걸 봐서는 사부님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 틀림없는데 사부님의 어머님이실까? 아니면 사부님의 사랑하는 사람일까?' 매초풍은 이런 생각을 하며 자기도 모르게 그림 쪽으로 점점 다가갔다. 가까이가 올려다보니 그림의 미인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미목(眉目)이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림은 보는 각도에 따라 매번 달라 보였는데 발뒤꿈치를 들고 보니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와는 아주 달랐다. '그러니 사부님 키로는 언제나 이렇게 생생하게 보이겠구나. 침대에서 보면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또 달라 보이겠지? 그렇다면 이 그림의 여인은 사부님의 어머님은 절대 아니야. 아무리 어머님을 사랑한다 해도 이렇듯 매일 침대 위에 걸어 놓고 보는 사람은 없을 거야. 분명 사부님이 자나깨나 잊지 못하는 연인임에 틀림없어. 그렇다면 이 여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렇듯 사부님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는 행복한 여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모르긴 해도 사부 님은 매일 이 그림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속의 정담을 나누곤 하겠지…….' 생각이 이쯤 미치자 매초풍은 어쩐 일인지 자기 얼굴이 확 달아 오름을 느꼈다. 매초풍은 그림을 좀더 똑똑히 보려고 이번에는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보면 볼수록 그림의 미인은 총명하고 아름다웠다. 매초풍은 손바닥으로 그림을 쓸어 보면서 중얼거렸다. "도대체 누구지? 무슨 재주로 우리 사부님을 이렇게 반하게 했을까? 눈동자가 맑고 고운데 무슨 수로 우리 사부님을 홀렸을까?" 이때였다. 갑자기 엄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넌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 "어머나!" 매초풍은 기겁을 하여 몸을 일으키려다가 도로 주저앉았다. "초풍이!" 등뒤에서 들리는 음성엔 노기가 가득했다. 매초풍은 앉은뱅이처럼 궁둥이를 움직여 미끌어지듯 침대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침대에 등을 기댄 채 벌벌 떨며 황약사의 큰 키를 올려다보았다. "사, 사부님…… 저는 꽃, 꽃을 꽂아 드리려고 "뭐? 어쨌다고?" 황약사가 매섭게 되물었다. 황약사의 노기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던 매초풍은 갑자기 낯을 붉히며 키득 웃었다. "사부님, 저는 방금 저 그림을 봤어요." 그 말에 황약사는 무심코 벽에 걸린 그림을 힐끗 돌아보았다. 순간 황약사의 눈길에 부드러운 정이 내비치다 사라지는 것을 매초풍은 놓치지 않았다. 이에 담이 커진 매초풍이 물었다. "사부님, 저 그림의 미인은 누군가요? 저렇게 아름다운 분은 처음이에요." 황약사는 흠칫하며 매초풍을 돌아보았다. 황약사는 잠시 말이 없었다. 황약사가 다소 누그러지는 기미를 보이자 매초풍은 마음놓고 말했다. "사부님, 저 그림 좀 보세요. 사람도 아름답지만 사부님께서 그리기도 잘하셨어요. 막 살아 있는 것 같잖아요." 이 그림의 여인은 다름아닌 황약사가 자나깨나 잊지 못하는 아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