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논검2부[동사황약사편] - 29편 (29/59)
구천인이 가소롭다는 듯 소리내어 웃었다. "네 놈이 나와 겨뤄 보겠다구? 오래 살다보니 별 재미있는 일이 다 생기는구나." "구 방주, 당신의 철장공력이 아무리 뛰어나기로서니 이렇게 날 깔봐도 되는 거요?" "네 놈이 병장기를 내드는 걸 보니 무예를 약간 알긴 아는 모양인데, 난 네 놈과 싸우는 것으로 내 이름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 그러니 네가 나한테 재주를 좀 보여 줘 봐라." 구천인의 말에 공손지의 뒤에 섰던 몇몇 사나이들이 욱하고 달려들어 구천인과 싸우려 했다. 공손지가 얼른 그들을 만류했다. "구 방주가 날 존중한다니 내가 몇 가지 법수를 보이겠소. 방주께서 가르쳐 주시오." 공손지는 말을 마치더니 양손에 각각 병장기를 나눠 들고는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는 연거푸 스물한 가지 동작을 해 보였는데 두 개의 칼날이 엇갈리며 나는 듯이 움직였다. 이를 지켜 보던 구천인은 잠시 멍청해졌다. 공손지가 이렇듯 훌륭한 무예를 갖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공손지가 구천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구 방주님, 당신 보기에 어떻습니까? 나의 이 '음양도란인법(陰陽倒亂刃法)'에 무슨 허점이라도 있다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구양봉은 그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일심이용(-心二用), 쌍심격물(雙心格物)의 방법으로서 음(陰)을 양(陽)으로 변화시키고 양을 음으로 변화시켜 음양을 교차적으로 사용하는 법수였다. 사람들이란 무릇 무예동작을 쓸 때 모두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법수를 취하게 된다. 빠르게 되면 그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다. 칼과 검을 쓸 때면 반드사 상대방에게 착각을 일으켜야 하는데, 금칼이 날아올 땐 그것이 무거우니 속도가 느릴 것이고 흑검이 날아올 땐 그것이 가벼우니 속도가 빠를 것이라는 착각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구양봉은 이 공손지가 내력이 부족한데다가 병장기를 쓰는 법수가 숙련되지 못하였다는 것을 읽어 냈다. 그러나 구천인은 구양봉의 생각과는 달리 공손지에 대해 찬탄을 금치 못했다. "훌륭하군, 훌륭해. 자네가 칼과 검을 동시에 다를 줄 아니 실력이 대단한 편이야!" 공손지가 입을 열었다. "제가 구 낭자한테 청혼하는 건 마음 깊숙이서 우러나오는 진심이오니 방주께서 소망을 이루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공손히 예를 올렸다. 구천인이 대꾸했다. "자네의 검과 칼 쓰는 법수는 좀 자리가 잡힌 듯하나 자네의 내력은 아직 약해." "그렇지요. 그렇고말고요." 공손지는 얼굴에 웃음을 바르며 얼른 대꾸했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보고 내력이 약하다구? 그럼 이 세상에 네 놈처럼 한 손으로 물이 가득 담긴 구리독을 들고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어야 한단 말이냐? 나한테 그만한 천생의 신력이 있었다면 '음양도란인법' 정도는 벌써 익히고도 남았을 거다.' 구천인이 또 입을 열었다. "이걸 좀 보게나." 그는 품속에서 네모 반듯한 옥석 하나를 꺼내 들었다. 구천인은 그것을 탁자 위에 올려 놓고 말을 이었다. "사람이 내력이 없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거네. 마치 비단옷을 입고 밤에 나선다거나 대낮에 도적질을 하는 것처럼 아무 효과도 못 보고 일만 망쳐 먹게 되는 거야. 내공을 잘 닦는 것이 무예 연마의 기본이라는 걸 자넨 알아야 해." 구천인이 탁자 위에 놓은 옥석을 오른손으로 힘껏 내리치자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세 조각이 났다. "보게. 바로 이래야 한단 말일세."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탄성을 질렀다. 공손지도 그가 일장에 옥석을 바스러뜨리는 것을 보자 두려운 마음이 되었다. '저 놈이 저 장법으로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벌써 죽였을 거야. 그런데 날 내버려두는 것을 보면 자기의 여동생과 같이 살게 할 생각이 있는 거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구천척에게 읍하면서 말했다. "구 낭자, 그대가 실수로 정화의 독을 입었으나 불행히도 내겐 해독제가 다 떨어지고 없소. 그러니 구 낭자는 나를 따라 절정곡에 갈 수밖에 없겠구려. 시간을 끌다가는 멀지 않아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거요." 구천인이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동생에게 말했다. "천척아, 넌 다시 저 사람을 따라가거라. 며칠 후에 내가 절정곡에 널 보러 가겠다. 이 친구가 우리 구씨 가문의 사람을 함부로 하진 못할 거다." 말을 마친 그는 한바탕 요란하게 웃어대더니 왼손에 구리독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부서진 옥석들을 끌어 모아 쥐고는 층계를 내려갔다. 구양봉은 속으로 생각을 굴렸다. '내가 화산에 가 무예시합을 하게 된다면 가장 강한 적수는 아마도 이 철 장수상표 구천인일 것이다. 이 놈을 뒤따라가서 틈을 봐 싸워야겠다. ' 구양봉은 얼른 몸을 일으켜 구천인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구천인의 걸음걸이가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가지를 벗어나 강변에 당도하였다. 구천인은 나룻배를 불러 타고 대안으로 저어갔다. 구양봉은 구천인을 놓치지 않으려고 서둘러 다른 배 한 척을 찾아냈으나 그가 배를 타고 대안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구천인은 그림자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그가 화가 나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길가에 옥석 한 개가 떨어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고 난 구양봉은 아주 기뻤다. 그것은 바로 구천인이 술집에서 박살낸 그 옥석의 부스러기였던 것이다. 구양봉은 옥석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방금 땅 위에 놓여 있을 때는 온전하던 것이 손으로 잡는 순간 그대로 부서졌다. 멍하니 옥석을 바라보던 구양봉은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옥석은 겉보기엔 밀정해도 이미 부서져 있는 것이었다. 구천인은 근본적으로 뛰어난 공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기꾼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때였다. 구천인의 모습이 다시 눈에 띄었다. 그는 강물 위를 나는 듯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강폭이 수십 미터는 될 것 같았다. 구천인이 사기꾼이라면 어떻게 저렇게 뛰어난 경공을 갖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구양봉은 즉시 몸을 일으켜 강변으로 달려갔다. 강물을 자세히 살펴보고 난 그는 또다시 너털웃음을 웃었다. 먼 곳에서는 똑똑히 볼 수 없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두 미터씩 사이를 두고 나무등걸 한 개씩이 박혀 있는 게 눈에 피었던 것이다. 수면에 약간 잠겨 있을까말까 한 이 암교(暗橋)는 먼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제19장 동방화촉 구천인을 놓치고 다시 시가지로 돌아온 구양봉은 구천척이 공손지를 끌고 술집에서 내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둘의 모습은 실로 우스웠다. 구천척은 수줍은 듯이 얼굴이 빨개져서는 온갖 교태를 다 부리며 걸어가는 듯했고 그녀에게 끌려가는 공손지는 부끄러움과 두려움, 기쁨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둘은 천천 큰길을 걸어 시가지를 벗어났다. 절정곡 사람들이 뒤를 따르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구양봉은 생각했다. '내가 화산의 무예 시합에 참가하는데 저 공손지의 음양도란인법이 크게 도움이 될텐데. 왼손으로 지팡이를 쓰고 오른손으로는 장법을 쓰면 그 위력이 대단해지련만 공손지가 수련한 내공이 도대체 어떤 심법인지 알 수가 없구나. 그것만 배워 내면 두려울 게 없겠는데…….' 구양봉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들 두 사람을 따라갔다. 공손지와 구천척은 시가지를 벗어나 어느 수림 안에 들어서더니 멈춰 섰다. 뒤따르던 하인들도 먼발치에 서서 감히 더 다가가지를 못하였다. 공손지는 구천척의 희고 매끄러운 어깨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녀의 몸의 봉긋한 부분을 만질 때의 쾌감이란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다. 그는 구천척의 옷 속으로 손을 넣어 탄탄한 젖봉오리를 조심스럽게 주무르며 빙그레 웃었다. "천척 낭자, 낭자의 오라버니가 낭자를 내게 맡기다니 정말 뜻밖이오. 정말 기쁘기 한량없소." 구천척이 입을 삐쭉하며 웃었다. "오라버니가 언제 나를 당신에게 맡겼어요? 단지 내 몸의 독을 해독시키라고만 했을 뿐이니 허튼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구천척은 황혼빛에 물든 공손지의 얼굴을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전에는 그토록 형편없던 몰골이 이렇듯 딴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암만 생각해도 신기했다. 게다가 다섯 살 연하인 열다섯 살밖에 안 된 소년이 어쩌면 이렇게 성숙한 아녀자를 익숙하게 다뤄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나직이 소곤거렸다I "절정곡에 정화는 있는데 곡주께선 정이 있는지 없는지?" 공손지는 정감 어린 그녀의 말뜻을 알아듣고 귀밑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남녀지간의 정이 있고 없음을 어찌 말로 증명할 수 있겠소? 낭자가 나와 성혼을 하여 함께 지내노라면 저절로 알게 될 것 아니겠소?" 그 말에 구천척은 다시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다소곳이 숙였다. "정화에 중독되었으니 난 연정을 품으려 하면……."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구천척은 갑자기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지며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신음을 삼키는 그녀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정화독이 또 발작한 것이었다. "낭자, 낭자, 왜 이러오?" 공손지는 구천척을 안으며 급히 물었다. "공손지, 내 마음이 왜 이럴까요……? 내가 정말로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당신을 보자 마음이 끌린 것만은 사실이에요. 당신이 추남이건 절름발이 건 늙은이건 어린애이건 이제 아무 상관 없어요. 난, 난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구천척은 신음하며 말했다. "낭자, 그 말이 정말이오? 정말로 이 공손지를 좋아한단 말이오?" 공손지는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렸다. "정말이에요. 난 내가 고통스럽더라도 당신과……." 구천척은 떨리는 손으로 공손지를 부둥켜안았다. "낭자, 안 돼! 이러지 마오. 내겐 지금 해독약이 없소. 낭자의 마음에 정욕이 일어나면 낭잔 무서운 고통을 겪게 되오." 구천척은 이미 머리칼이 흩어지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정염에 나른해진 몸을 공손지의 품에 맡긴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렇듯 감미로움과 고통이, 사랑과 미움이 한데 범벅이 되어 끓어오르는 마음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사랑과 원망이 뒤얽힌 착잡한 심정으로 원망하듯 공손지를 향해 말했다. "말해 봐요, 왜 나를 정화로 중독시켰어요? 정화를 먹고 내가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어쩔 뻔했어?" "미안하오. 내가 왜 그랬는지 정말 후회막급이구려." 공손지는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생각난 듯 품속에서 자그마한 꽃쌈지를 꺼내 들며 말했다. "낭자는 정화 꽃잎을 다섯 잎 먹었지? 나는 열 잎을 먹겠소. 난 낭자와 고통을 같이 나눌 테요." 그는 꽃쌈지에서 마른 꽃잎 몇 잎을 꺼내 들고는 한숨 섞인 소리로 중얼거렸다. "천하에 이 정화처럼 기이한 꽃은 없지. 말라서도 이처럼 색이 고을 수가 있나? 낭자, 난 천척 낭자를 사랑하오!" 그는 꽃잎을 한 장 한 장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구천척은 놀란 시선으로 공손지를 바라보았다. 공손지는 정말로 정화 꽃잎을 열 잎이나 먹었다. "천척 낭자, 낭자는 다섯 잎을 먹었는데 란 열 잎이나 먹었으니 정염이 동하면 이젠 내가 더 고통을 겪게 될 거요." 공손지의 말에 구천척의 두 눈엔 감격의 눈물이 가득 괴어 올랐다. "그게 무슨 어리석은 짓이에요. 나 하나 고생하면 됐지 왜 당신까지 사서 고생이에요?" "낭자, 나하고 삽시다. 그러면 고통이 덜할지도 몰라. 생이별이 가장 고통스럽다지 않소?" 공손지의 말에 구천척은 눈물을 닦아 내며 투정하듯 말했다. "원수야 원수. 헤어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같이 살기는 그렇고……." "그게 무슨 소리요? 낭자도 날 좋아한다지 않았소? 우리 여기서 당장 혼인을 합시다. 두 사람이 한 몸이 되면 그만큼 고통을 견뎌 내기가 수월할 거요." 공손지의 눈은 열기로 번쩍였다. "그런 소리 말아요. 날 구할 수 있어야지, 그러지 못하면 우리가 성혼해도 이 고통을 계속 당해야 한다는 말 아녜요? 그러지 말고 우리 어서 절정곡에 돌아가 방법을 찾아보도록 해요. 그 길밖엔 없어요." "낭자, 내게 비방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오. 나는 절정단(絶情丹)이라는 기이한 해독약을 만들 수가 있소. 그거면 정화독을 해독시킬 수가 있을 거요. 그런데 난 지금을 참지 못하겠소. 우리 둘이 이렇게 정으로 불타오르는데……." "그래도 참아야지. 며칠 참았다가……." 하지만 구천척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끓어오르는 정염을 참아내기가 몹시 어려운 눈치였다. "낭자, 내 말대로 합시다. 나와 부부지 간이 돼서 살을 섞노라면 자연히 정화독은 뽑혀 나갈 거요." 구천척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한동안 말이 없다가 탄식하듯 입을 열었다. "별수 없군요. 당신 하자는 대로 해야지……"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공손지는 하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좀 멀리 물러가 있거라!" 하인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멀찍이 모습을 감췄다. 공손지는 곧 쿵쿵 뛰는 가슴으로 한 나무 아래에 있는 큰 너럭바위 위에 구천척을 안아 눕혔다. 너럭바위를 신혼 밤의 원앙침대로 삼고 공손지는 구천척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봉긋 솟은 구천척의 젖가슴이 가쁘게 오르내렸다. 그녀는 뜨거운 눈길로 공손지를 올려다보았다. "많이 아프오?" 공손지가 물었다. "꼭…… 꼭…… 우리 둘이…… 이래야만 돼요……?" 아픔에 이맛살을 찌푸리는 구천척의 모습은 가엾고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낭자, 두려워할 것 없소. 아무것도 아니오……." 구천척을 달래는 공손지의 목소리도 은근히 떨려 나왔다. 사실 열다섯 살밖에 안 된 어린 소년에 불과한 그는 여인과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난생 처음인지라 구천척보다 더 긴장한 상태였다. 구천척이 열에 들떠 있는 틈을 타서 그는 고개를 돌려 슬며시 약한 알을 입에 집어 넣었다. 바로 절정곡 안에서만 쓰는 비방해독약절정단이었다. 정화꽃을 열 잎이나 금방 먹었기에 정욕이 크게 동하기 시작했고 또 그 탓으로 속이 칼로 에이는 듯 아파 와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절정단 한 알을 몰래 삼킨 그는 혀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오뉴월에 얼음을 삼킨 듯 시원해짐을 느꼈다. "낭자……." 공손지는 속삭이며 혀끝을 구천척의 앵두같이 빨간 입술 사이로 들이밀었다. 구천척은 자신의 혀끝에 공손지의 혀가 닿자 혀끝이 시원해지면서 고통이 다소 덜해짐을 느꼈다. 그녀는 놀라면서 방금 공손지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손지와 혼인하여 몸을 섞노라면 정말로 정화독을 뽑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구천척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공손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긴장을 풀었다. 달빛 어린 수림 속. 공손지는 구천척의 옷을 하나하나 벗기기 시작했다. 공손지가 그녀의 옷을 몽땅 벗겨 버리자 그녀의 숨은 더욱 가빠졌다. 탄력있는 젖무덤이 더욱 봉긋하니 부풀어올랐다. 공손지는 아무래도 소년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는 구천척을 으스러지게 껴안고 입술을 미친 듯이 빨아 댔다. 공손지의 입에는 마치 정화독을 뽑는 마력이라도 있는 듯 구천척은 키스를 하면서 몸의 아픔이 한결 덜해짐을 느꼈다. 그녀는 공손지의 입에 절정단 한 알이 물려 있는 줄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공손지는 흡족하여 이제는 좀더 과감히 구천척의 아랫도리 쪽으로 손을 옮겨 갔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이때였다. 갑자기 구천척의 두 손가락이 공손지의 목울대를 집게처럼 확 움켜잡았다. 뜻밖의 일이라 공손지는 미처 손을 쓰지 못하고 숨이 막혀 꺽꺽거렸다. 구천척이 쌀쌀하게 웃었다. "우리 구씨네 사람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보이던가?" 공손지는 몹시 당황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는 바야흐로 구천척의 몸에 돌입하여 남녀간의 극치를 맛보게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렇듯 갑자기 구천척이 자기 숨통을 조일 줄이야. "공손지, 네 나이가 도대체 얼마지?" 공손지는 구천척이 자기 나이를 묻는 게 제일 싫었다. 하지만 일이 이 지경이 되고 보니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 열다섯이라구 아까 말했……." 그는 꺽꺽거리며 말을 맺지 못했다. "머리에 쇠똥도 안 벗겨진 나이에 벌써 여색을 이렇게 밝혀? 나이가 조금만 더 들면 대단한 색마가 되겠어?" 구천척은 손가락에 힘을 바싹 주었다. 공손지는 밸 나오는 소리를 내며 몸을 바둥거렸다. "공손지, 어디 말해 봐. 정말 나하고 성혼할 생각을 했었나?" "진…… 진짜, 진짜라니깐." 공손지는 다급히 대답했다. "그럼 좋아. 그게 진심이라면 어서 절정단을 이리 내." "무, 무슨 소리요? 절정단이라니? 그런 진귀한 해독약을 아무 때나 함부로 들고 다니는 줄 아오?" "그럼 좋다. 절정단을 내놓지 않겠다면 어디 좀 견뎌 봐라." 구천척은 눈을 부릅떴다. "안 내놓겠다는 게 아니라니깐. 지금 내 몸에 지닌 것이 없다는 것뿐이지. 날 따라 절정곡에 돌아가면 해독약이 왜 없겠소?" 공손지는 가까스로 웃는 낯을 지어 보였다. 구천적이 코웃음을 쳤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해! 분명 금방 해독약을 입에 물고 있었다는 걸 내가 모르는 줄 알아?" 구천척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공손지의 태도로 보아 그는 그녀를 속여 그녀의 몸을 빼앗자는 것밖에는 다른 뜻이 없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구천척은 두 손가락에 다시 한 번 바짝 힘을 주었다. 숨이 막힌 공손지는 캑캑거리며 고개를 흔들다가 속이 뒤집히는지 왈칵 토하고는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구천척은 벌거벗겨진 몸으로 천천히 일어나서 공손지를 쏘아보았다. "공손지, 어디 또 한 번 나를 속여 보시지?" 공손지로부터 아무 반응이 없자 구천척은 품에서 환약 한 알을 꺼내 공손지의 입에 흘려 넣었다. 철장방에서 무공을 수련할 때 쓰는 철장화염단(鐵掌火焰丹)이었다. 10년 이상 무공을 수련한 철장방 사람들이 철장공을 닦을 때 이 약을 손바닥에 놓고 비비면 몸에 내력이 커지는데, 한 알이면 1, 2년의 공력을 보태 줄 수 있다. 그러나 철장방 밖의 사람들이 먹으면 오히려 독약이 된다 구천척은 통쾌한 기분으로 소리내어 웃었다. "오늘은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만 이 약을 먹은 이상 온전치는 못할 거다.' 구천척은 공손지의 혈도를 찔러 놓고는 부랴부랴 옷을 입고 휘파람을 획 불었다. 곧 절정곡의 하인 하나가 나타났다. "자네 주인이 급작스레 병이 났네. 도대체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네 주인 말에 의하면 날 위해 정화를 먹어 이 모양이 되었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면 내가 가만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방금 자네 주인님은 자기를 어서 절정곡으로 보내 달라고 했네. 그러니 어서 말을 구해다가 밤낮으로 달려가야만 할 것 같아." 곡주님이 갑작스레 급병이 나 인사불성이 되었다니 하인은 놀라서 몸둘 바를 몰라 했다. 그는 자기네 무리들을 두 패로 나누어서 한 패는 읍으로 달려가 말을 사오게 하고 한 패는 수림의 나무를 찍어 들것을 만들어 공손지를 메고 수림을 떴다. 지금까지 줄곧 나무 뒤에 숨어 두 남녀의 하는 양을 훔쳐보던 구양봉은 두 남녀가 서로 꾀를 써 가면서 서로 싸우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고 남녀지간의 사랑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만약 저 구천척과 공손지가 앞으로 정말 부부가 된다면 장차 무림에 효웅(梟雄)이 한 쌍 생길 것이다. 서로를 속이고 속이는 그들의 소행은 흡사 그의 사문(師門)인 유운장 사람들을 방불케 했다. 구양봉은 공손지와 구천척이 멀어지자 입가에 냉소를 머금으며 그곳을 떴다. 절정곡 곡주 공손지의 잔칫날이 되었다. 그는 끝내 철장방 수상표 구천인의 누이동생 구천척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절정곡 안은 기쁨이 넘쳐흐르고 사람들은 혼인식을 준비하고 신방을 꾸미느라 분주했다. 편벽한 골짜기인 절정곡은 외계의 사람들이 들어오기가 어려워서 바깥과의 왕래가 아주 드물었다. 절정곡 안의 사람들은 몇백 년 동안 바깥으로 나다닌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절정곡은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였다. 잔치가 끝나자 공손지와 구천척은 신방에 들어왔다. "이제는 내 몸에 있는 정화독을 뽑아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아내 노릇을 하겠어?" 구천척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당연히 뽑아 줘야지. 그런데 당신도 나한테 해독약을 줘야잖아. 나도 철장방독을 뽑아야지." 둘은 히히덕거렸다. 그러면서 각기, 서로가 꾀가 많고 계책을 잘 쓰므로 앞으로 강호를 넘나들며 서로에게 큰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구천척은 공손지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거기도 이젠 나이는 어려도 내 낭군이 되었는데 내가 왜 홀대를 할까? 내게 절정단만 주면 앞으로 잘할게." 구천척이 교태를 부리며 달콤하게 말하자 공손지가 대답했다. "임자, 오늘 밤 동방화촉이 지나 내일 주면 되잖아? 절정단 말이야." "정말?" 구천척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눈웃음을 쳤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낭군님, 이제 당신은 내 낭군이지요? 그러니 이제부터 나를 때릴려면 때리고 욕할려면 욕하고 마음대로 해요. 우리 삼남매 중에 큰 오라버니는 날 귀여워하고 아껴 주었지만 작은 오라버니는 나를 때리고 욕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