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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2부[동사황약사편] - 24편 (24/59)

2026-09-24 21:27:20 조회 27
황약사는 독염에 의해 부식되어 누더기가 된 차림을 한번 훑어보고는 품속에서 구화옥노환(丸花玉露丸)을 한 알 꺼내어 입에 넣었다. 그는 다시 마당을 둘러보았다. 아홉 집의 식솔들이 죽어 널려 있는 풍경은 실로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 황약사는 타는 듯한 분노의 눈길로 염방 놈들을 노려보았다. 황약사는 하늘을 우러러 입김을 불 듯 숨을 내쉬었다. 그 바람에 독염가루가 염방 놈들을 향해 날려갔다. 염방 놈들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횃불이며 칼들을 팽개쳐 버리고 절 밖으로 달아났다. 황약사는 얼른 뒤를 따르며 연거푸 장을 내밀어 10여 명을 쓰러 눕혔다. 그러나 남은 놈들은 전부 어디로 달아났는지 금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황약사는 건강에 오면서 더는 아형을 찾지 않을 뿐더러 남의 일에도 절대 끼여들지 않으리라고 작심했었다. 그런데 못된 염방 놈들을 만나고 보니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마저 염독을 타게 되어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는 언짢은 기분으로 태백주점에 돌아가 위층에 앉아 호호탕탕한 장강을 굽어보면서 고금의 영웅들을 떠올렸다. 어리석은 대송 임금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름다운 강산을 두 쪽으로 갈라놓은 사실에 새삼 분노가 느껴졌다. 강 저쪽은 오랑캐의 점령을 당해 이젠 남의 땅이 된 것이다. 그는 울분을 달래기 위해 술만 진탕으로 퍼마셨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오자 그는 술값을 치르고 술집을 나섰다. 그는 수레 한 대를 불러 동태사(同泰寺)로 향했다. 이 절은 건강성 현무호반(玄武湖畔)의 계명산(鷄鳴山)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오래 된 절인 것 같았다. 절의 대문은 열려 있었고 안으로 들어서니 오래 된 우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우물은 진후주(陳後主)와 그의 귀비인 장여화(張麗華), 공귀비(孔貴妃)가 수(隋)나라 군대를 피하여 숨어 있던 곳이라 하는데, 그들은 모두 절세의 미인들로 이 우물 속에 뛰어들 때 손으로 우물의 난간을 잡는 통에 우물 난간의 석맥(石脈)에 연지 흔적을 남겼다 하여 이 우물을 연지정( 脂井)이라고도 불렀다. 절 안은 사람이라곤 눈에 띄지 않는 쓸쓸한 분위기였다. 황약사가 법당 안으로 들어 가려는데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황약사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법당 안에는 7, 8명 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상좌에 도가(道家)의 전진(全眞)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둘 다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얼굴로, 한 사람은 좀 뚱뚱한 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좀 여윈 편이었다. 하석에 앉은 다섯 사람은 전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말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이 다섯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계속해서 말했다. "염방 사람들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제 생각엔 푸른 면구를 썼다는 그 자는 필시 사학에 속하는 인물일 것입니다. 우리가 찾아내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다른 한 사람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넷째하고 생각이 달라. 얼굴에 푸른 면구를 쓰고 있던 사람을 어디 가서 무슨 수로 찾겠단 말인가? 그가 누군지를 알고?" 넷째란 사람이 계속 고집을 부렸다. "왜 못 찾는단 말입니까? 우선 자주색 옷을 입은 사람만 찾아내도 가능성이 있어요." 다른 사람이 또 입을 열었다. "자주색 옷을 입었다고 해서 꼭 그 사람일 수야 없지 않나? 넷째란 사람이 언성을 높였다. "형님은 정말 둔하오. 자주색 옷을 입은데다가 손에 옥소까지 들고 있다면 바로 그 놈이지 누구겠소?" 상좌에 앉은 전진도인(全眞道人)이 말했다. "염방 사람들의 말대로 그 사람이 옥소를 쓰고 그 법수가 실로 대단하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도화도 도주 황약사일 걸세." 다섯 사람은 그 말을 듣자 모두 낯색이 변했다. "도화도 도주 황 약사라면 무슨 연고에서인지 태호방을 깡그리 쓰러 눕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했다는 그 사람 아닙니까?" 다섯 사람 중 하나가 물었다. "그래. 아주 무서운 사람이지." 전진도인이 대답했다. 이 이야기는 강호 사람들이라면 이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터였다. 상좌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은 종남산 전진교의 마옥과 구처기였다. 그들 두 사람은 건강에 유람을 왔다가 이 다섯 사람의 청을 받아 푸른 면구를 쓰고 자주색 두루마기를 입었다는 사람에게 손을 쓰려고 이 동태사에 달려온 것이었다. 이 건강의 오의 (五義)는 바로 쌍둥이 오형제였다. 황약사는 종남산 중양궁에서 마옥과 구처기를 만나 본 이후로 오랫동안 그들을 보지 못하였는데 이번에 보니 그들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마옥은 좀 살이 올랐고 구처기는 몹시 여위었는데 그런대로 알아볼 만은 했다. 갑자기 넷째라는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 열 집의 건강부 부호들은 사람마다 본분을 지키고 남의 미움을 살 짓은 한 일이 없다는데 동해 도화도의 황약사가 와 그 사람들을 그처럼 잔인하게 죽였는지 모르겠군요." 마옥이 물었다. "그 사람이 그 열 집의 부호들을 어떻게 죽였다고 그러던가?" "그 놈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열 집 사람들을 모두 니마묘로 끌고 가서 재물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답니다.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자 놈은 매성비 가족을 전부 때려죽이고 이를 말리려던 염방 사람들은 물론 염방의 철선(鐵扁) 서 나으리까지 때려죽였다는군요. 게다가 놈은 염방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독염까지 빼앗아 열 집 사람들에게 마구 뿌려 비명에 죽게 하였답니다." 이렇게 말하는 넷째는 격분하여 이를 갈며 몸까지 부르르 떨었다. 마옥이 물었다. "당신들 다섯 형제는 염방 사람들이 하는 말만 듣고 그 열 집 사람들을 모두 황약사가 죽였다고 생각하는 건가?" 다섯 형제는 모두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미가 급한 구처기가 큰소리로 말했다. "전번에도 바로 그 황약사가 종남산에 와서 우리 사부님에게 《구음진경》을 내놓으라고 괴롭히지 않았었소? 내 보기엔 이 황약사란 사람은 음험하고도 간사한 인간임이 틀림이 없어. 그자가 단지 흥 나으리, 홍칠공 등과 함께 종남산에 왔을 때 다른 사람들은 점잖게 구는데 그자가 화산에서 무술시합을 하자는 주장을 내놓지 않았었소? 그것만 보아도 그자가 얼마나 탐욕적이고 사악한 인간인가를 알 수 있다구." 이때였다. 구처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낯선 사나이의 음성이 법당 안에 울렸다. "그래, 자네가 말하는 황약사는 워낙 지독한 괴물이거든!" 황약사는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마옥과 구처기는 그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건강 오의는 황약사의 얼굴을 모르는지라 마옥과 구처기의 안색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몹시 의아해졌다. 갑자기 그 오의 중의 맏이가 소리를 질렀다. "저걸 보게. 저 사람이 자주색 옷을 입지 않았나?" 둘째가 말을 받았다. "자주색 옷을 입긴 했지만 꼭 옥소까지 갖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순 없지 않수?" 황약사는 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옥과 구처기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웃는 모습이 어찌나 무서워 보이는지 마옥과 구처기는 자기도 모르게 전율을 느꼈다. 황약사는 계속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그래, 자네들 말대로 나는 음험하고도 간사한 인간이야. 그렇다 한들 자네들이 날 어쩌겠다는 건가?" 마옥과 구처기는 방금 큰소리를 치고 난 터라 은근히 걱정이었다. 만일 황약사와 싸우게 된다면 자기들 두 사람은 당초에 그의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황약사에게 덤벼들어야 할지 어쩔지 입장이 여간 난처하지 않았다. 하지만 건강부의 오의는 달랐다. 그들은 황약사가 건강부의 열 집 부호들을 죽인 인물임이 확인되자 자기들까지 죽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황약사와 한판 싸워 볼 결심을 하고 있는 터였다. 둘째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당신이 바로 니마묘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황약사란 사람이오?" 황약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내가 바로 황약사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의들은 펄쩍 뛰더니 일제히 황약사에게로 달려들었다. 마옥과 구처기는 다섯 형제가 일제히 달려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섯 사람이 함께 달려든다고 해도 황약사의 적수가 못 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섯 형제를 말리기엔 이미 때가 늦었다. 다섯 사람은 이미 황 약사한테 달라붙어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넷째와 다섯째가 소리쳤다. "당장 저 놈을 죽여 버리자!" 그들 두 사람은 동시에 양쪽에서 황약사의 팔 하나씩을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그들 두 형제가 함께 힘을 쓰면 황소라도 찢어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황약사가 양쪽 팔굽을 굽혀 두 사람의 손에 있는 소음심경의 신문혈(神門穴)을 누를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대력이 혈로 들어가자 넷째와 다섯째는 둘 다 땅에 주저앉더니 꼿꼿이 굳어 버렸다. 황약사도 그 자리에 앉았는데 세 사람이 정좌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세 사랑의 중이 참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붙잡고 있는 손이 떨어지지 않은 채로 있을 뿐이었다. 맏이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저 놈을 죽여 버리겠다. 내가 저 놈을 죽여 버리겠단 말이다!" 그는 당장 황약사의 백회대혈에 장을 먹였다. 그러나 황약사는 끄떡도 하지 않고 빙그레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저 놈이 왜 죽지 않지? 저 놈의 백회대혈에 장을 먹였으면 당연히 뻐드러져야 할 텐데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장을 제대로 먹이지 못한 건가?" 둘째와 셋째도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들은 넷째와 다섯째가 황약사의 팔을 붙잡은 채로 세 사람이 모두 땅 위에 그대론 앉아만 있는 것을 보고 고함을 질렀다. "찢어 놓아라. 그 놈을 찢어 놓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넷째와 다섯째의 안색이 파리해지며 머리에서는 열기가 몽실몽실 피어 오르는 게 아닌가. 두 사람은 급기야 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는데 아무래도 상태가 심상치 않았 다. 이를 본 둘째와 셋째는 급급히 넷째와 다섯째의 뒤에 달려가 동생들의 등허리에 손을 가져다 대고 그들과 합심하여 황약사와 내력 싸움을 하려 했다. 맏이도 황급히 달려가 동생들에게로 다가앉았다. 이를 지켜 보던 구처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안 되겠소. 이대로 구경만 하다간 저 오형제의 목숨이 붙어나질 않겠어." 그는 냉큼 칼을 뽑아 들었다. "그건 안 되네!" 마옥이 다급히 소리쳤다. 구처기가 말했다. "이 황약사는 사악한 인간이어서 정도(正道) 지사가 저 놈을 죽이는 건 대의와 명분에 맞는 일이오. 저 놈은 종남산에 와서 우리의 《구음진경》을 빼앗아 가려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부님을 괴롭혔소. 그리하여 임조영 선배님께서 돌아가실 때 사부님이 그분을 마지막으로 만나 보지도 못하게 만든 장본인이 아닌가 말이오. 그러니 사부님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저 놈을 죽여 마땅하오!" 듣고 있던 황약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명문의 정파(正派)로 자칭하는 놈들이 겨우 이 정도냐? 전진교의 왕중양 밑에는 모두 이런 개자식들뿐이란 말이냐?" 황약사는 조소하는 표정으로 마옥과 구처기를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구처기는 성미가 굳세고 불 같은 사람으로 마옥과 함께 왕중양의 첫 제자가 된 사람이다. 왕중양은 최근에 또 새로 제자 두 사람을 받았는데 한 사람은 철각선 (鐵脚仙)이라고 칭하는 왕처일 (王處一)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학대통이었다. 하지만 왕중양의 문하에서는 이 구처기가 무예도 가장 훌륭하고 성미도 가장 급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었다. 그는 황약사가 자기를 모욕하자 대노하여 마옥이 미처 말릴 새도 없이 황약사의 목을 향해 장검을 내질렀다. 마옥은 자기도 모르게 "앗!"하고 소리를 내었다. 황약사는 현재 다섯 형제와 내력을 겨루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으므로 마옥은 황약사가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구처기의 검술은 전진교의 진짜 법수를 배운 것이라 그가 찌른 검날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고 황약사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마옥은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칼끝이 막 목에 박히는가 싶더니 황약사가 번개같은 동작으로 머리를 낮추면서 입을 벌려 그 칼끝을 이빨로 물어 버리는 게 아닌가. 구처기는 금세 안색이 변했다. 아무리 명성이 대단한 황약사라지만 칼끝을 물리다니 이런 수치가 어디 있겠는가. 다급해진 구처기는 자기도 모르게 칼을 빼내려다가 곧 생각을 바꾸어 힘껏 들이 밀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힘을 써도 검은 마치 바위나 철벽에 박히기라도 한 듯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구처기는 전진도인으로서 그다지 승부를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일이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안간힘을 써서 검자루를 쥔 손을 힘껏 비틀었다. 그러자 칼날이 뚝 부러져 나갔다. 그는 끝이 부러진 검으로 다시 한 번 황약사를 찌르려 했다. 하지만 검은 황약사의 아랫배 쪽을 스쳐 옷자락만 찢어 놓았을 뿐 그대로 빗나가고 말았다. 이를 지켜 보던 마옥이 말리느라고 소리를 질렀다. "사제!" 하지만 화가 상투 밑까지 치민 구처기의 귀에 마옥의 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그는 다시 부러진 겁으로 황약사를 향해 내질렀다. 이때였다. 갑자기 황약사가 입에 물었던 칼끝을 뱉어 버렸다. 그것은 곧장 구처기에게로 날아갔다. 황약사는 동시에 몸을 일으키며 달라붙어 있던 건강부의 오형제들을 확 떠밀었다. 구처기는 간신히 칼날을 피하며 탄복하는 눈길로 황약사를 바라보았다. 한쪽에 나뒹굴어진 오형제들 역시 더는 덤빌 생각을 못하고 멍청히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황약사는 차가운 눈길로 그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제16장 황약사와 두 제자 법당 안은 조용해졌다. 마옥과 구처기는 멍청히 황약사를 바라볼 뿐 둘 다 말이 없었다. 그들은 황약사의 공력이 이처럼 대단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자기들의 사부인 왕중양과 겨루어도 승부를 가리기 어려울 것 같았다. 황약사가 입을 열었다. "구처기, 보아하니 네 놈은 성미가 거친 게 도무지 전진교 사람다운 면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구나. 왕중양이 너한테 가르친 그 전진교의 수양을 네 놈은 몽땅 그르쳤단 말이다!" 마옥이 얼른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황 도주님, 저도 전진교의 마옥이온데 니마묘 사건에 대해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달리 생각지는 마십시오. 보아하니 뭔가 우리가 모르는 내막이 있는 것 같사온데 우리는 그 일에 더는 관여치 않고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구처기를 끌고 그곳을 떠나려 했다. 황약사가 냉소하며 말했다. "전진교의 왕중양 같은 사람 밑에서 어찌하여 네 놈들 같은 제자가 나왔는지 알 수가 없구나. 전진교도 이젠 맛이 간 모양이지?" 황약사는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구처기가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언사가 너무 지나치구나! 네 놈이 뭔데 우리 전진교를 그렇게 함부로 모욕하는 거냐?" 그는 당장 마옥을 뿌리치고 앞으로 달려나가 황약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구처기의 주먹이 얼굴로 날아오자 황약사는 얼른 손을 내밀어 그의 주먹을 움켜잡았다. 황약사가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내가 조금만 힘을 더 주면 네 놈은 다시는 손을 쓸 수 없게 될거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면 당장 용서를 빌어라, " "황약사, 이 사악한 괴물아! 천하의 그 어떤 사악한 괴물도 너 동사(東邪)보다는 나을 거다!" 구처기는 악이 받쳐 앞뒤 생각 없이 욕을 퍼부었다. 황약사는 화가 치밀어 구처기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방금 뭐라고 했지?" 구처기는 움찔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저 놈을 모질게 욕했으니 저 놈은 반드시 나를 죽이고 말거다. 좋다. 죽일 테면 죽이라지. 어쨌든 사부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는 없다. ' 이렇게 생각한 구처기는 내친 김에 다시 한 번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황약사는 갑자기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구처기를 냅다 떠밀었다. 종잇장처럼 문앞에 나동그라진 구처기는 얼른 몸을 일으키며 황약사를 쳐다보았다. 황약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휘파람을 불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말했다. "그래, 내가 황 괴물이지 황 괴물이야. 연작이 어찌 붕새의 뜻을 알랴. 네 놈 같은 속물이 어찌 나를 알 수 있겠느냐?" 황약사는 몸을 날리며 법당 안에서 한바탕 장법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이 장법은 황약사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낙영신장(落英神掌)'이라는 장법이었다. 황약사가 처음 도화도에서 이 장법을 익힐 때는 장을 내밀기만 하면 복숭아꽃들이 분분히 땅에 떨어졌었다. 그러나 후에 이 장법을 다 익히게 되어서는 복숭아 꽃들이 사람의 몸을 따라 돌다가 장을 일단 거두게 되면 일제히 땅에 떨어졌고, 좀더 무르익어서는 장을 내밀어도 꽃이 떨어지지 않다가 장을 완전히 거두어 들인 연후에야 미풍이 불며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이었다. 한옆에서 줄곧 지켜 보던 마옥과 구처기는 그 장법이 고금에 드문 오요한 것임을 알고 황약사의 재주에 새삼 탄복했다. 황약사는 장법을 다 과시한 뒤 한참이나 말없이 법당 안을 거닐다가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너희들과 더는 싸우고 싶지 않으니 그만 돌아가도록 해라." 그의 말이 떨어지자 마옥은 얼른 구처기를 이끌고 황약사에게 예를 올린 뒤 총망히 절을 떠났다. 그들이 떠나고 나자 황약사는 건강 오의들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자네들은 나를 찾아서 건강부의 열 집 사람들을 위해 복수하려고 했지만 원체 상대가 안 되니 어떡할 셈인가?" 오의 중의 둘째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널 이기지 못했으니 네 놈이 우릴 죽이면 되는 거야, 우리가 이겼더라면 우리도 네 놈을 죽였을 건데 뭘 더 할말이 있단 말이냐?" "그렇다. 네 놈이 이겼다는 걸 우리도 인정하니 우릴 죽인다 해도 할말이 없다." 맏이도 결연히 말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황약사가 문득 물었다. "내가 건강에서 사람을 죽였다고 누가 너희들한테 알려 주더냐?" 다섯 형제의 시선이 말더듬이인 셋째한테 집중되었다 황약사는 눈치를 채고 셋째에게 물었다. "그래 솔직히 말해 보아라." 셋째가 입을 열었다. "마, 말…… 말하……." 맏이가 말했다. "셋째야,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말해 봐라." 셋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염…… 염염……." 황약사는 속이 답답해졌다. 셋째가 얼굴이 시뻘개지며 한참이나 꺽꺽거렸지만 한마디도 신통히 말하지 못하자 맏이가 나무랐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말하라니까!" 그러자 다섯째가 끼여들었다. "셋째 형, 그러지 말고 노래를 불러. 노래를 부르라구." 워낙 셋째는 노래를 잘 부르는데 일단 노래를 부르게 되면 말을 더듬지 않았다. 그러자 셋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저께 점심 때 염방 사람들을 만났다네 그들은 저마다 몹시 놀란 모습이었네 포승 하나에 두 사내애와 계집애를 묶었네 그들의 말이 니마묘에서 염방 사람들 큰 재앙 만났다네 푸른 면구를 쓴 괴한은 무예가 하도 강해 독염을 빼앗아 공중에 뿌렸다네 그 바람에 열 집 부호들 깡그리 목숨 잃고 서 나으리도 황천길을 갔다네 그 사람 자주색 두루마기 입고 옥소를 지녔다네 황약사는 그 노래를 듣고 대번에 짐작이 갔다. 워낙 이 건강 오의들은 한길에서 그런 말을 얻어들은 것이었다. 푸른 면구를 쓴 괴한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대충 얻어듣고 쪽지를 띄워 마옥과 구처기를 청해다가 황약사와 싸워 보려 했던 것이다. 일이 이처럼 왜곡되었을 줄 어찌 알았으랴? 황약사가 입을 열었다. "염방 사람들의 포승에 두 사내애와 계집애가 묶여 있었다고 했는데, 계집애는 바로 건강의 열 집 부호들 중 매씨 성을 가진 사람의 딸이지. 그런데 어떻게 그 애들은 나한테 죽지 않고 염방 놈한테 묶인 채 끌려가고 있었을까?" 맏이가 나섰다. "염방 사람들이 그 애들을 끌고 다니는 건 바로 당신을 찾기 위해서였소. 그것도 모른단 말이오?" 황약사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었다. 그는 이 다섯 형제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한다는 게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황약사는 그들에게 말했다. "시끄럽겠지만 자네들이 날 그 염방 놈들한테 데리고 가서 대질시키면 모든 걸 알 수 있을 게 아닌가? 이렇게 하는 것이 어때?" "그렇지. 좋은 생각이오." 맏이가 얼른 대꾸했다. 그러자 둘째가 눈을 부라리며 반대했다. "당신은 남은 염방 사람들마저 죽여 버릴 생각으로 그러는 게 아니오?" 넷째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요. 그런 생각으로 염방 사람들을 만나려는 것이라면 우린 응할 수 없소." 황약사는 변명하려 들지 않고 묵묵히 웃어 보였다. 이리하여 건강 오의는 황약사를 데리고 염방 사람들을 찾으러 떠났다. 멀지 않아 그들은 커다란 뜰 앞에 당도하였다. 그 뜰은 매우 컸는데 둘러친 담장만 해도 1리는 실히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