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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2부[동사황약사편] - 23편 (23/59)

2026-09-24 21:27:20 조회 30
얼마나 많은 돈이 있어야 그 소금을 다 사들일 수 있겠습니까? 또 해염으로 말하면 명주나 비단처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도 못 됩니다. 관가에서 매매하는 물건은 사사로이 저장해 두지 못한다는 걸 나으리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서 나으리라는 자는 다시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매성비(梅星飛), 또 네 놈이로구나?" 서 나으리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서려 있었다. "보아하니 건강부의 열 집 사람들 중 네 놈이 말재주가 제일 나은 모양이지? 그런가?" 젊은 사나이는 두려워하지 않고 천천히 대답했다. "제가 한 말은 사실입니다. 서 나으리께서 건강의 우리 열 집을 기어이 못살게 구시려 한다면야 제 입을 틀어막으면 그만이지요." 서 나으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가? 그럼 네 놈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라. 유(劉)씨, 곡(曲)씨, 송(宋)씨들한테 물어 보아. 이 서 나으리가 자네들에게 소금을 사게 하는 것이 자네들을 해치는 것인가고 말이야!" 그는 부채로 묶여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다가 그 부채로 한 노인의 어깨를 눌렀다. 그러자 노인은 비틀거리며 넘어지려 했다. 그는 또 부채로 한 어린애의 머리를 눌렀다. 그러자 어린애는 부채에 눌려 울음을 터뜨렸다. "울지 마라. 울면 죽여 버릴 테야!" 서 나으리가 소리쳤다. 어린애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 뚝 울음을 그쳤다. 서 나으리가 매성비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네 놈이 아무 재주도 없는 주제에 꽤나 오기를 부리는구나. 네 놈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한 번 보고 싶을 정도다." 그는 다가가서 손으로 매성비의 얼굴을 만져 보려 했다. 매성비는 뒤로 물러서며 그를 피했다. 서 나으리는 재빨리 부채로 매성비의 혈도를 가리켜 그가 꼼짝달싹 못하게 했다. 서 나으리는 매성비의 얼굴을 만져 보며 중얼거렸다. "음, 괜찮게 생긴 놈이구나." 그는 다른 사람들 쪽으로 머리를 돌리며 물었다. "듣자니 매성비의 여편네가 잘났다고들 그러던데 정말 그렇게 고운가?" 그 말에 의자에 앉아 있던 염방( )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어댔다. 그 중의 누군가가 매성비의 아내에 대해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진현풍을 끌고 온 아홉째였다. "큰형님, 이 매가라는 놈한테는 훌륭한 여편네가 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딸도 있답니다. 그 년은 아주 예쁘게 생겼는데 얼굴만 깨끗하게 생긴 게 아니라 엉덩이도 아주 깜찍하게 생겼지요. 건강부에서 제일 가는 미인이랍니다." 그 말에 염방의 여덟 우두머리들은 모두 허리가 부러질 지경으로 웃어댔다. 서 나으리란 자는 매성비의 아내를 향해 더듬더듬 손을 뻗쳤다. 그 여인은 딸을 부둥켜안은 채로 뒷걸음질쳐 숨으려 했다. 서 나으리가 제법 부드러운 목소리로 딸을 향해 물었다. "네 이름이 뭐냐?" 매성비의 딸은 그가 두려워서 감히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어머니 품속에 머리를 틀어박았다. 잠시 후 그녀는 간신히 대답했다. "전 매약화(梅若花)예요." "좋은 이름이군! 좋은 이름이야!" 서 나으리는 슬슬 다가서며 매성비의 아내를 매만지려 했다. 참다못한 매성비가 욕설을 퍼부었다. "서 나으리, 당신네 염방 사람들은 정말 형편 없구려, 할말이 있으면 나하고 할 것이지 무엇 땜에 우리 집사람은 괴롭히는 거요?" "그런가? 내가 네 놈더러 소금을 사라고 말했는데도 네 놈이 말을 듣지 않으니 낸들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 너희들 열 집은 돈이 얼마든지 있잖아? 소금값도 싼데 네 놈들이 좀 많이 사서 소금값을 올려 주면 좀 좋아? 그럼 소급을 팔아먹고 사는 우리도 좀 살만해지지 않겠냔 말야!" 워낙 한(漢)조 때부터 염철(遮鐵)에 대해서는 관세를 실시하여 사인(私人)은 해염을 매매하지 못하게 했었다. 그런데도 서 나으리라는 자는 염방의 두령 노릇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소금을 관가에 팔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건강부의 열 집들에 사염(私濫)을 사라고 못살게 구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처럼 법을 어기면서 하는 짓을 이 열 집에서 어찌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서 나으리는 매성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기어이 손을 내밀어 매성비의 아내를 움켜잡았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여인의 젖가슴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남들이 모두 건강부의 미인들 중에 네 년이 으뜸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보지 못하니까 만져 보기라도 해야겠다." 그의 손길을 견디다 못한 여인은 품속에서 가위를 꺼내 들었다. 그녀는 자기 목을 겨누고 소리를 질렀다. "여보, 미안해요. 난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어요." 여인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가위로 자기 목을 푹 찔렀다. 순식간에 그녀의 목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딸 매약화가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를 불러댔다. 매성비는 울음을 삼키며 아내의 주 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여보, 이게 무슨 짓이오……. 여보……!" 서 나으리는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음을 느끼고 부하들을 향해 물었다. "무슨 일이냐? 여자가 죽었느냐?" 염방 사람들 중 누군가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서 나으리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딸아이는 몇 살이나 되었나?" 염방 사람들 중에서 또 누군가가 대답했다. "아마 열두어 살 되는가 봅니다." 그러자 서 나으리가 분부했다. "저 계집앨 데려다 우리 염방의 여인으로 만들어라. 계집애가 아직 어리니까 데려다가 우선 아무 일이나 시키거라. 웬만큼 성숙해지면 우리 형제들을 시중들게 해야겠다." 그가 손을 젓자 염방 사람 둘이 나와 매약화를 포승에서 풀어 내어 한옆으로 끌고 갔다. 매성비가 몸을 일으키며 비장하게 소리쳤다. "약화야, 똑똑히 봐 두거라. 이 놈들은 모두 악한 놈들이다. 천하에 네 부모를 제외하곤 믿을 자가 없다는 걸 명심해라. 사내들이 너에게 가까이 굴고 달콤한 말을 하면 그건 다 널 속이려는 거야. 그러니 절대로 그걸 믿어선 안 된다!" 서 나으리란 자가 쌀쌀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야 자식을 가르치려 하다니 때가 늦었지, 말해 봐라. 소금을 살 텐가, 안 살 텐가?" 매성비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소금을 사겠느냐구? 안 사겠다. 그래 안 사면 어쩔 셈이냐?" 서 나으리란 자는 대답 대신에 당장 쇠부채를 휘둘렀다. 머리를 얻어맞은 매성비는 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는 천천히 자기 아내의 몸 위로 쓰러졌다. 손을 뻗어 아내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그는 곧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서 나으리란 자는 갑자기 부채를 확 폈다. 부채가 펼쳐지자 큼직하게 써진 '염( )'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나머지 아홉 집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그래 소금을 사겠느냐, 안 사겠느냐? 너희들도 이 매성비처럼 되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라." 아홉 집 사람들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하고 흘끔흘끔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드디어 서 나으리가 손에 들린 쇠부채를 내저으며 소리쳤다. "불을 지펴라!" 황약사는 그제야 전 앞에 세워 놓은 세 개의 가마솥에 눈길을 주었다. 그 안에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고 그 밑에는 장작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염방 사람들은 두령의 명령이 떨어지자 횃불로 장작에 불을 붙였다. 삽시에 세찬 불길이 타올랐다. 오래지 않아 가마솥 안의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서 나으리가 입을 열었다. "우리 염방 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소금물을 밟고 다니면서 뜨거운 햇빛 아래서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지. 오늘 내가 너희들에게 그 맛을 보여 주겠다!" 그는 부채로 아홉 집 사람들을 쿡쿡 찌르면서 다시 다짐을 받았다. "자, 저 솥에 들어가고 싶지 않거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소금을 사겠다고만 대답하면 그 고생을 면할 수 있어." 염방 사람들은 사람들을 묶었던 포승줄을 풀고 그들을 가마솥 옆까지 끌고 갔다. 이제 명령만 떨어지면 전부 가마솥 속에 집어 넣을 참이었다. 서 나으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느 놈부터 소금맛을 보여 줄까?" 그의 말에 염방 사람들은 아주 익숙한 동작으로 사람들의 옷을 벗긴 다음 긴 채찍으로 등을 후려갈기며 뜨거운 소금물을 등판에 끼얹었다. 사람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무서운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서 나으리가 다시 말했다. "이 정도로 웬 엄살들이냐? 우리 염방 사람들은 매일 등허리가 익을 지경이고 온몸에 소금기가 가실 날이 없다. 심지어 갓난애까지도 소금에 절어 있어. 그런데 네 놈들은 겨우 요 정도로 죽겠다고 야단들이냐? 어디 말해 봐, 소금을 사겠나 안 사겠나?" 이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왜 이렇게 남을 괴롭히는 건가? 당신이 소금을 팔면 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그 사람들을 괴롭힐 게 뭐 있나?" 니마묘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담장 옆에 한 공자가 서 있었는데 얼굴에는 면구를 끼고 있었다. 자주색 두루마기를 입은 그는 어느 틈에 사람들 앞에 다가와 섰다. "넌 웬놈이냐?" 서 나으리가 물었다. "난 천하의 거부이다. 한 해 사이에 소금을 몇 섬이나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 소금을 전부 사겠다." 황약사가 이렇게 대답하자 서 나으리란 자는 어리둥절해졌다. "당신은 대체 누구요? 여긴 어떻게 들어왔소?" "소금만 팔면 되지 그런 건 알아 뭐하려나? 그래, 한 해에 소금을 몇 섬이나 거두는가?" 황약사의 말에 서 나으리가 냉소하며 말했다. "일년 동안 걷어들인 소금을 전부 사시겠다구? 내가 황제라도 만난 건가?" 그는 뚫어져라 황약사를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네 놈이 날 놀리려는 모양인데 된맛을 좀 보여 줘야겠구나!"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의자에 앉아 있던 여덟 사람이 일제히 몸을 일으켜 황약사에게로 덮쳐 들었다. 제15장 황약사를 처단하라 큰형인 서 나으리의 호령하에 여덟 명은 일제히 황약사에게 달려들었다. 그중 세 사랑은 손에 병장기를 들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작은 검을 들었고 다른 두 사람은 유성추(流星鐘)와 동불수(銅佛手)를 각각 들고 있었다. 이 세 사람이 일제히 공격하니 그 기세는 자못 흥흥하였다. 황약사의 뒤에 있는 다섯 놈은 맨손으로 덤벼들었는데 그들 중 한 놈은 황약사를 향해 독염 (毒 )을 뿌렸다. 황약사는 그들을 노려보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대적했다. 매약화라는 계집애의 놀란 울부짖음 소리와 더불어 진현풍이란 소년의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왜 도망가지 않나요?" 황약사는 멈춰 서서 놈들이 휘두르는 검과 유성추를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튕겨 버렸다. 쨍그렁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검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또다시 딱 하는 소리가 나더니 유성추도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뜻밖의 상황에 놈들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동불수를 양손에 갈라 쥐고 휘두르던 놈도 동불수 한 개는 중간이 부러져 나가고 다른 한 개는 공중에 날아올랐다가 자기 머리에 떨어지는 바람에 피가 흐르는 머리를 움켜쥐고 멍하니 황 약사를 바라보다가 소리쳤다. "귀신……." 그는 미처 말을 맺지 못하고 땅바닥에 쓰러지더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독염을 뿌리던 자도 앞의 세 놈이 당하는 꼴을 보고 주춤하였다. 황약사의 손이 번뜩하더니 가는 침이 그자에게로 날아갔다. 막 달아나려던 그는 황약사의 부골독침에 맞아 꼼짝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고통을 참지 못해 처참한 소리를 내며 대굴대굴 뒹굴었다. 이를 지켜 보던 염방 놈들은 하나같이 겁에 질려 제각각 달아날 궁리만 했다. 니마묘 안은 일시에 혼란이 일어났다. 한쪽에 서 있던 서 나으리가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멈춰 서지 못할까!" 놈들은 달아나려 다 말고 못박인 듯 멈춰 섰다. 그들은 무슨 귀신을 대하기라도 하듯 겁에 질려 황약사를 지켜 보았다. 면구로 얼굴을 가린 황약사는 한마디의 말도 없이 그들을 쏘아보았다. 서 나으리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이름을 대란 말이오. 우리 염방이 과거에 당신과 무슨 원수진 일이라도 있소?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여기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거요!" 그의 말투는 평소와는 달리 사나운 기세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황약사가 대답했다. "물론 나하곤 원수진 일이 없지. 하지만 네 놈이 하는 짓이 천리(天理)가 용납 못할 일인지라 관계하게 된 거다." 갑자기 서 나으리가 고함을 질렀다. "불을 치켜 들엇!" 그러자 염방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들린 횃불을 치켜 들었다. 서 나으리가 징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 놈이 까딱 움직이기만 하면 난 불을 질러 몽땅 태워 죽이고 말겠다!" "벌써 몇 사람이나 죽이고서도 아직 성이 안 차는 모양이지?" 황약사가 차갑게 대꾸했다. 서 나으리가 소리를 질렀다. "진현풍이를 끌어내왓!" 누군가가 진현풍을 대령시켰다. 서 나으리가 다시 협박조로 말했다. "네 놈이 조금만 허튼 수작을 하면 난 한칼에 이 진현풍이를 죽여 버릴 테니 그리 알아!" 이 진현풍이란 소년은 건강부에서 첫손 꼽히는 부자 진백만(陳百萬)의 아들인데 아버지는 벌써 염방 놈들한테 죽고 혼자 남은 상태였다. 그는 황약사에게 애걸하며 말했다. "어르신께선 이 놈들을 어서 죽이세요. 제가 어찌 되든 상관 말고 이 놈들을 깡그리 죽여 버리세요!" 그러자 서 나으리가 징글맞게 웃으며 대꾸했다. "과연 뼈대있는 집안 자식답구나. 이 서 나으리도 탄복한다." 그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독염을 진현풍의 등허리에 뿌리고는 힘껏 문질러 놓았다. 진현풍이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서 나으리는 다시 황약사를 쳐다보았다. "너도 이 꼴이 되고 싶지 않거든 남의 일에 상관 말고 순순히 돌아가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말야." 황약사는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큰소리로 대꾸했다. "그 독염이 그처럼 무서운 것이라면 한번 시험해 보려무나?" 진현풍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영웅께선 어서 이 죄 많은 염방 놈들을 처단하여 우리 부모님원수를 갚아 주세요. 매성비 아저씨의 원수를 갚아 주세요!" 소년의 말에 황약사는 염방 놈들에 대한 적개심이 새삼 들끓어오름을 느꼈다. '이 노약자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염방 놈들한테 잡혀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이 놈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황약사가 입을 열었다. "이보게, 서가. 네가 이 사람들을 놓아주면 나도 더는 손을 쓰지 않겠다. 어쩔 텐가?" 서 나으리가 어이없다는 듯 소리내어 웃었다.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나? 우리 염방 사람들이 너 하나쯤을 못 당해 낼 것 같으냐?" 그는 자기 사람들의 수가 많으니 황 약사쯤은 넉넉히 대적해 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황약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서 나으리에게로 다가갔다. "멈춰 서! 멈춰 서란 말이야!" 서 나으리가 급히 소리쳤다. 그러자 진현풍이 외쳤다. "어서 이 나쁜 놈들을 모조리 죽여 주세요. 그래서 이 놈들이 더는 사람들을 해치지 못하게 해주세요!" 서 나으리가 쇠부채를 진현풍의 목에 갖다 대었다. 순간 진현풍의 목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 나왔다. 서 나으리가 사납게 말했다. "다시 주둥이를 놀렸다간 네 놈부터 죽여 버릴 테다." 황약사는 그 틈을 타 잡혀 온 사람들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포승에 묶인 사람들을 하나하나 풀어 주면서 말했다. "걱정들 마시오. 곧 집으로 돌아가게 될 거요." 서 나으리가 고함을 질렀다. "네 놈은 나의 이 횃불에 타죽지 않으면 이 독염에 죽고 말 거다. 쓸데없는 짓 말고 당장 무릎을 꿇어라." 황약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저 놈을 죽여 버리고 당신들을 데리고 나가겠소." 그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경공을 써서 염방 놈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는 공중에 뜬 채로 손을 내밀어 기묘한 동작을 취했는데 마치 선인이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염방 놈들은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족족 혈도가 찔려 그 자리에 못박인 듯 굳어 버렸다. 그중 두 놈은 손에 쥔 횃불이 팔에 붙기 시작하는데도 비명을 지를 뿐 움직이지 못했다. 이를 본 서 나으리는 더럭 겁이 났다. 그는 악에 받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횃불을 던져 저 놈을 태워 죽여라!" 그러자 삽시에 염방 놈들이 던진 횃불들이 황약사에게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5, 60개의 횃불이 일제히 날아들자 황약사는 옷소매를 펼쳐 들고 힘껏 휘저어 횃불을 도로 놈들 쪽으로 날려 보냈다. 몇몇 놈들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횃불에 맞아 돼지 멱따는 소리들을 내었다. 황약사가 잽싸게 몸을 날려 진현풍을 붙잡아 온 염방의 아홉째를 틀어쥐었다. 순간 서 나으리의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 왔다. "네 놈이 나의 아홉째 동생을 다치기만 하면 이 놈을 독염으로 죽여 버리겠다!" 그는 위협적으로 진현풍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다. 황약사가 대노하여 아홉째의 면상을 후려갈겼다. 놈은 찍소리도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황약사는 독이 오를 대로 올라 또 한 놈의 염방 사람을 향해 장을 날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목이 떨어져 나가며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나왔다. 화가 치민 서 나으리는 쇠부채를 들고 곧장 황약사에게 달려들었다. 황약사는 잽싸게 '난화불혈수(蘭花拂穴手)'를 썼다. 서 나으리는 열 여섯 개의 부챗살로 황약사를 겨누었다. 손에 쥔 자루에 단추가 달려 있는데 그것만 누르면 열 여섯 개의 부챗살이 일제히 황약사에게로 날아갈 판이었다. 그는 서둘러 단추를 눌렀다. 순간 황약사는 옷소매를 펄럭여 부챗살을 물리치며 공중으로 훌쩍 날아올랐다. 그러자 부챗살은 대부분 빗나가 버리고 한 개만이 황약사의 왼쪽 어깨 를 스쳤다. 황약사는 오른손으로 허리춤을 더듬어 옥소를 꺼냈다. 황약사의 왼쪽 어깨가 부챗살에 긁혀 피가 흘러 나오는 것을 본 염방 놈들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저 놈이 큰형님의 부챗살에 맞아 상했다!" 누군가가 졸아서 미친 듯이 소리쳤다. 서 나으리의 이 부챗살에는 독염이 발라져 있는데 이 독염은 피를 응고시키는 것으로 황약사가 그 부챗살에 맞아 피를 흘렸으니 죽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두 놈이 소리를 지르면서 겁없이 황약사에게로 달려들었다. 황약사는 놈들이 달려들자 손에 든 옥소를 획 휘저었다. 이 법수는 황약사의 낙영신검의 한 동작인 '수황입죽(修篁立竹)'이란 것이었다. 그는 이 법수로 염방 놈들의 귓부리를 가격했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놈들은 땅바닥에 거꾸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황약사가 연달아 손을 뻗쳐 서 나으리의 손에 들린 쇠부채를 날려 보낸 뒤 냉큼 멱살을 움켜쥐었다.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꼼짝없이 황약사의 손아귀에 붙들린 서 나으리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황약사가 소리쳤다. "염방 놈들은 듣거라. 모두 칼을 놓고 절 밖으로 물러나라. 말을 듣지 않으면 너희들의 큰형은 죽은 목숨이다!" 염방 놈들은 모두 벌벌 떨며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서 나으리는 황약사에게 멱살을 잡히고도 기가 살아 소리를 질러 댔다. "어서 독염을 뿌려라!" 놈은 기를 쓰고 황약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악하였다. 황약사는 얼른 놈의 혈도를 눌러 꼼짝못하게 했다. 염방 놈들은 저마다 허리춤에 자그마한 주머니들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 주머니 속에는 독염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위급할 시에만 이 독염을 사용하였는데 그들에게 있어선 구명염(救命 )이자 절명염(絶命 )이기도 했다. 즉, 상대방과 싸우다가 당해 내지 못하게 되면 그것을 던져 물리치는데 그럴 경우엔 구명염이고, 반대로 상대방에게 붙들려 괴로움을 당하게 되어 먹고 자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엔 절명염이 되는 것이다. 큰형이 큰소리로 독염을 뿌리라고 고함을 지르자 놈들은 모두 허리춤에서 주머니들을 꺼내 내던졌다. 5, 60명이 독염을 던지자 실로 대단했다. 삽시에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몸에 독염이 묻자 너나없이 피부가 타들어 갔고, 사람들은 모두 아우성을 쳐댔다. 독염이 새하얗게 날아오는 바람에 황약사는 한 손으로는 서 나으리의 목덜미를 틀어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날아오는 독염들을 막아 내기에 바빴다. 그러나 먼지처럼 날리는 독염 가루가 어찌 황약사라고 피해 가겠는가. 독염 가루가 몸에 닿자 황약사는 대노하여 옥소로서 나으리의 머리를 내리쳤다. 일격에 서 나으리의 머리가 부서져 뇌장이 흘러 나왔지만 놈은 황약사의 두 다리를 끌어안은 채 한사코 놓아주려 들지 않았다. 독염을 다 뿌리고 나서 놈들은 그 독염이 자기 몸에도 묻을까 봐 뒤로 물러섰다.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가 들리더니 절 마당은 곧 죽은 사람들의 시체로 장사를 이루었다. 그러나 황약사만은 끄떡도 않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어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의 발치에는 서 나으리가 죽어 널브러져 있었는데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몰골은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그래도 놈은 황약사의 다리를 끌어안은 손만은 풀지 않고 있었다. 황약사가 천천히 옥소를 쳐 들어 번갈아 그의 양쪽 팔을 내리쳤다. 그의 두 팔이 다 떨어져 나간 후에야 황약사는 비로소 몸을 움직일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