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논검1부(서독구양봉편) - 51편 (51/64)
저고리와 치마가 벗겨져 나가고 속곳마저 벗겨내자 그녀는 완전히 알몸이 되었다. 구양적도 일어서서 자기의 옷을 활활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다시 덮쳐 들었다. 모용쟁은 부끄러움과 흥분으로 몸이 달아올랐다. 그녀의 정신은 황홀해졌고 마음은 허공에 둥둥 떠오르는 듯했다. 구양적의 손 은 모용쟁의 젖가슴을 주무르다가 성급하게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모용쟁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뜨거운 욕정과 두려움이 한데 뒤엉킨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에게 몸을 맡겼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구양적은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한 채 당황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는 허둥대는 손길로 모용쟁을 애무하며 그녀의 사타구니 사이로 자신의 하반신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마음만 앞설 뿐 도무지 몸이 따라 주질 않았다. 기세 좋던 사내다운 격정은 어디론가 사 라지고 온몸의 맥이 풀렸다. 어느덧 구양적의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했다. 그는 점점 절망적인 기분이 되어갔고 끝내는 온몸이 축 늘어지고 말았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모용쟁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모용쟁은 두 눈을 꼭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마치 시뻘겋게 달아오른 숯불에 냉수를 끼얹은 듯 참담한 기분이었다. 첫날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모용쟁은 밤새도록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구양적은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은 이러한 사정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벙어리 냉가슴 앓듯 가슴만 앓았다. 송대에는 이학이 크게 성해 남녀간의 정사는 남들의 눈을 피해 몰래 했지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구양적은 어떻게 하면 모용쟁과 원활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궁리해 보았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의 무능함만 확인하게 될 뿐이었다. 그는 자기한테도 아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백면라살이 모용쟁을 아내로 맞으라고 권했을 때 한사코 거절하지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와 모용쟁의 사이가 원만한 부부 사이가 되기를 한없이 갈망했다. 그는 더욱 열심히 모용쟁을 안아 주고 애무해 준다면 모용쟁이 마음을 붙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구양적은 제 생각만 했지 모용쟁의 심정은 헤아리지 못했다. 구양적이 넌지시 손을 뻗치면 모용쟁은 질겁을 해서 소리치곤 했다. "건드리지 말아요! 만지지 말라니까요!" 그런 일이 몇 번 있고 나니 구양적은 더 이상 모용쟁과 한 이부자리에 누울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모용쟁은 마음이 처량하고 고통스러울수록 자기가 사막에서 상습적으로 구양봉을 놀려 주고 골탕을 먹인 것은 그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유운장의 패거리들이 구양적과 무예를 겨루어 이기고는 구양봉을 인질로 데려가겠다고 할 때에 모용쟁은 자기도 모르게 구양봉을 자기 남편이라고 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것은 평소에 자기가 품고 있던 생각을 무의식중에 드러낸 것으로 결코 우연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녀는 백타산장에서 구양봉이 죽음을 각오하고 자기를 구출하고자 뱀 상자에 뛰어들었을 때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강남땅 사랑스러운 정암을 저버리고 강호에서 떠돌아다니게 된 것도 사실은 마음에 꼭 드는 사내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구양봉은 지금은 이미 무림 영웅들 중에서도 일류 고수가 되었다. 그런 구 양봉과 함께 살게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뜻도 같고 취미도 비슷하고 사람이 그토록 풍류스러우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구양적은 모용쟁이 마음을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일찍부터 임자한테 말하려고 했었소. 난 어려서 부모를 여의었는데 하루는 얼음 동굴에 빠졌소. 바로 사부님께서 날 구해 주셨지. 이때부터 나와 사부님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소. 그렇게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 사부님은 나의 부모이자 나의 아내요, 난 사부님의 제자이자 사부님의 남편이오. 이 속에 얽힌 사정을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소……." 모용쟁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아찔했다. 구양적과 백면라살의 눈치로 봐서 이들의 사이가 심상치 않음을 모르진 않았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과 짐작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구양적에게 직접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구양적은 모용쟁의 기색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도 알고 있소, 임자가 아우를 좋아한다는걸. 임자가 정말로 그를 좋아한다면 그와 함께 살아도 되오……." 이 말에 모용쟁은 버럭 화를 냈다. "닥쳐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나를 도대체 뭘로 보는 거예요? 방금 당신 입으로 당신의 사부님을 사랑한다고 했지요? 그러면서 어떻게 나하고 결혼할 수 있었어요? 날 구하려고 그랬다구? 말도 안 돼. 모두들 미쳤어요. 이런 미친 짓거리가 세상 천지에 또 어딨어요?" 구양적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는 모용쟁을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가 아무리 화를 내고 성깔을 부려도 타고난 아름다움은 여전히 사내의 마음을 현혹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구양적은 노기 띤 모용쟁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쓰려 왔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부끄럽게 생각하오. 하지만 난 임자를 진심으로 좋아하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임자와 결혼까지 했겠소. 날 이해해주길 바라오……." 모용쟁은 눈물을 흘릴 뿐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구양적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눌러앉아 있기가 멋쩍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는 언제 와 있었는지 백면라살이 침대에 자리를 펴고 있었는데 아주 정성스러운 모습이었다. 깔끔하게 펴 놓은 이부자리를 흡족하게 내려다보면서 그녀는 중얼거렸다. "됐어. 이쯤이면 방이 아무리 추워도 견뎌 낼 만할 거야." 백면라살의 거동을 뒤에서 지켜 보고 있던 구양적의 눈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천하에 여인들이 많고 많아도 날 사랑하고 보살펴 주는 이는 사부님밖에 없구나. 사람이란 양심이 있어야지. 내게는 이런 사부님이 계시는데 왜 자꾸 딴 생각을 하려는 걸까?' 백면라살은 자기의 머리를 이불에 대면서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적아, 내가 사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난 벌써 10여 년 동안이나 이불 속에서 자는 게 어떤 맛인지를 모르고 살아왔지 뭐냐." 그녀는 이불 위에 살며시 누웠다.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삼단 같은 백발이 어깨로부터 흘러내려 침대 가에 폭포처럼 드리워졌다. 그녀는 황홀한 듯 이불을 자기 품에 꼭 끌어안고는 얼굴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잠자코 지켜 구양적의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사부님께선 얼음 동굴 속에서 10여 년이나 남자와 함께 이부자리에 드는 맛을 모르고 살아오셨어. 그 쓰라리고 아픈 마음을 내가 위로해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구양적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백면라살은 그제야 구양적이 온 것을 알고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다정스럽게 말했다. "적이가 왔느냐?" "사부님……." "적아, 내가 명전을 만난 것은 일시의 정이었지만 너를 만나서는 한평생 정을 쏟았다. 적아, 네가 나한테 다시 한 번 여자 노릇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겠니? 난 오랫동안 사내와 이부자리를 같이하는 맛을 모르고 살아왔다." 구양적은 성큼성큼 다가가서 가볍게 백면라살 수라아의 머리를 안았다. "수라아, 내가 그대를 사부님이라고 부르고 그대는 나를 적이라고 부르는 건 너무나 어색하오……." 백면라살이 머리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래?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 구양적은 말머리를 돌렸다. "참, 아우한텐 말을 했습니까?" "그래, 다 말했다." 구양적은 어쩐지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러니 뭐랍디까?" 백면라살은 초조해 하는 구양적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적아, 넌 왜 스스로 마음고생을 사서 하느냐? 너한텐 모용쟁같은 고운 아내가 어울리지, 나같이 늙고 추한 여자를 뭐에 쓰겠니? 네가 나와 함께 살다보면 금방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사부님, 전 이미 모용쟁한테 말했습니다……." 구양적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라 하자 백면라살이 가볍게 그의 입을 막았다. "적아, 모용쟁 이야긴 그만두어라. 제발, 빈다……." 겨울의 밤은 길고 추웠다. 창 밖의 으스스한 달빛은 수심 많은 사람들을 더욱 울적하게 했다. 한참을 울고 난 모용쟁은 허탈한 기분이 되어 멍청히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마음속의 말들을 누구한테든지 털어놓지 않고는 못 견딜 것만 같았다. 강남 땅 정암에 다시 가서 들려 오는 독경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보풀이 인 누런 경서들을 앞에 놓고 불경 공부나 했으면 싶었다. 하지만 정 작 정암에서의 고독하고 삭막한 나날들을 되새겨 보니 그것도 못할 짓 같았다. 불문(佛門)은 조용하고 깨끗한 세계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사는 재미는 도무지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정암에서 뛰쳐나왔는데 어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으랴? 그녀는 천천히 방에서 걸어 나왔다. 밤하늘을 쳐다보니 상현 달이 걸려 있는데 구름들 사이로 숨바꼭질을 하는 듯했다. 반달이 뜬 이 밤의 정취는 구양봉과 함께 지냈던 사막에서의 그날 밤과 너무도 흡사했다. 그녀는 멍하니 달을 올려다보면서 그날 밤 자기와 구양봉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다가 무심코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모용쟁은 문득 웃음을 멈추며 생각했다. '구양적은 지금 백면라살과 함께 있는 게 분명해. 그렇다면 나라고 구양봉을 찾아가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어?' 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더 망설이지 않고 곧장 구양봉의 방으로 달려갔다. 모용쟁이 방에 들어섰을 때 구양봉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무예 수준이 구양봉쯤 되면 기(氣)가 온몸에 흐르고 신(神)이 몸 밖에 돌아다닐 수 있으므로 비록 자더라도 경각(警覺)은 늦추어지지 않는다. 그는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지자 벌떡 일어나 앉았다. "누구냐!" 모용쟁은 가볍게 웃더니 침대 맞은편에 앉아 구양봉을 바라보았다. "잠드신 걸 깨웠나 봐요?" 모용쟁의 음성에 구양봉은 흠칫 놀랐다. 자기를 응시하고 있는 모용쟁의 예쁜 두 눈이 달빛에 빛나 보였다. 그는 이 눈길에 무슨 뜻이 담겨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더듬거렸다. "잠든 지 얼마 안 됩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구양봉은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해져 옴을 느꼈다. 그는 형의 스승이 찾아와서 하는 말을 듣고 이 세 사람 사이가 아주 미묘함을 알게 되었다. 형은 스승을 좋아하지만 모용쟁도 싫어하지는 않는다. 형의 스승은 형을 좋아하므로 모용쟁과 형이 헤어지길 바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모용쟁의 마음은 어떠한지 구양봉은 알 수가 없었다. 구양봉은 모용쟁의 생각이 몹시 궁금했으나 명 색이 시동생과 형수 사이인지라 차마 물어 볼 수가 없었다. 모용쟁은 구양봉보다 더 총명하고 눈치가 빨랐다. 그녀가 정암에서 대담하게 탈출해 나온 것만 보아도 범상한 아녀자들과는 달랐다. '내가 왜 스스로 내 손발을 묶어야 하지? 구양적과 백면라살 수라아는 나를 속였어. 내 주관이 있는 이상 난 그 두 사람의 농간에 의해 아까운 청춘을 허송하지는 않을 테야.' 모용쟁은 생각을 가다듬고 말문을 열었다. "나를 구하려고 백타산장에 달려왔고 뱀 상자에까지 뛰어들었으니 무엇이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모용쟁은 진실을 담아 마음 깊숙이 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뜻을 비쳤다. 구양봉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식 웃었다. 모용쟁은 침대에 다가가 열띤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변경에서 그자들이 아우님을 붙잡아 가려 하자 난 아우님을 내 남편이라고 했지요. 그 일이 기억나세요?" 구양봉은 머리를 끄덕였다. 모용쟁이 변경 땅에서 용감히 나서서 자기를 구출하려 한 행동에 대해 구양봉은 마음속으로 늘 고맙게 여겨 오던 터였다. 시집도 안 간 처녀가 대담히 나서서 구양봉을 제 남편이라고 했으니 어지간한 용기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형수님이 저를 구해 주려 애쓰시던 그 은혜를 전 영원히 잊지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 말에 모용쟁은 눈물을 흘렸다. 이 순간 모용쟁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럽고 아름다워 보였다. "방……방금 절 뭐라고 불렀어요? 형수님이라 했나요? 누가 형수예요?" 모용쟁은 기가 막히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한참을 웃고 난 그녀는 거칠게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누가 형수란 말이에요? 당신 형이 어떤 사람인 줄 아세요? 사내가 사내 구실을 못해도 사내라고 할 수 있어요? 말해 봐요! 형이 사내라야 내가 형수 자격이 있는 게 아녜요? 내가 어쩌다 당신 형 같은 사람과 결혼해서 당신한테 형수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군요." 구양봉은 얼결에 모용쟁의 뺨을 후려갈겼다. 모용쟁은 그대로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여려서 부모를 잃고 형님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 온 그에게 형은 부모나 다름없었다. 그래선지 누구라도 형을 흉보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릴 때부터 주먹을 쥐고 달려들어 휘둘러 대던 그였다. 아무리 사랑하는 여자라 해도 형을 무시하는 태도만큼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방바닥에 쓰러진 모용쟁은 구양봉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그녀의 입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모용쟁은 차가운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이젠 날 치기까지 하는군요?" 모용쟁은 몸을 일으키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말해 봐요! 처음부터 날 미워했지요? 겉으로는 날 이해하는 척, 선비 같은 얼굴을 하고 처음부터 날 미워했어! 게다가 내가 형과 결혼했으니 이젠 쳐다보기도 싫은 거야! 망나니 같으니라구. 차라리 날 죽여요! 차라리 날 죽이라구!" 그녀는 분에 못 이겨 와락 달려들어 구양봉의 상투를 거머쥐었다. 순간 두 사람의 머리가 맞닿아 상대방의 숨결이 서로의 얼굴에 혹 끼쳤다. 모용쟁은 두 눈을 부릅뜨고 구양봉을 쏘아보았으나 목소리는 흥분으로 묘하게 떨려 나왔다. "차라리 날 죽여……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모용쟁은 상투를 거머쥔 손을 여전히 풀지 않고 구양봉의 행동을 기다리는 듯 눈을 감았다. "잘 들어둬! 난 저승에 가서도 너를 저주할 테야!" 구양봉은 이날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울고, 웃고, 떠들고, 저주하고, 애교를 부리는 식의 온갖 자태가 모두 한 여자의 몸에서 동시에 표출될 수 있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온몸의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듯 뜨거운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모용쟁, 내 머리를 놓아……." 그러나 모용쟁은 계속 약을 올렸다. "재주가 있으면 날 죽여! 늙다리 독물의 제자라면서? 천하에서 소문난 악종인 네가 왜 날 못 죽여? 뭣 땜에 난쟁이 임일천한테서 날 구해 냈어? 가만 놔 두었으면 난 벌써 죽었을 게 아냐? 그럼 이런 일로 고통을 당하지도 않았을 거 아니냐구!" 말을 마친 그녀는 어깨를 들먹이며 울기 시작했다. 설움에 겨운 그녀는 더는 말을 못하고 눈물이 흥건한 눈으로 구양봉을 쏘아보았 다. 구양봉은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모용쟁, 빨리 나가 줘! 나를 더는 괴롭히지 마. 네가 계속 이러고 있으면 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제발…….' 그는 마치 얼빠진 사람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두 손도 부들부들 떨려 왔다. 그러나 모용쟁은 그의 상투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구양봉은 참다못해 버럭 고함을 쳤다. 그 고함소리에는 가슴속의 초조와 불안이 섞여 있었다. 구양봉은 더는 견딜 수 없는 듯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모용쟁을 번쩍 안아 올렸다. "빨리 떠나, 빨리 이곳을 떠나……." 그녀는 구양봉의 팔에 안긴 채 그의 열띤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구양봉은 모용쟁을 품에 안고 마치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좁은 방안에서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며 우왕좌왕했다. 그는 허둥지둥 방문을 열고 주위를 둘러본 뒤 부랴부랴 빗장을 질렀다. 그를 지켜 모용쟁의 가슴이 후두둑 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팽팽하게 얽혔다. 가쁜 숨을 몰아 쉬던 구양봉은 모용쟁을 다시 가뿐히 안아 돌침대 위에 눕혔다. 모용쟁은 잠자코 그가 하는 대로 몸을 내맡겼다. 구양봉이 손가락을 펴서 모용쟁의 혈도를 찌르려 했다. 모용쟁은 비로소 그를 제지했다. "난쟁이도 이 짓거리를 하고 그 녀석도 이 짓거리를 하더니 당신까지 이러는군요." 모용쟁은 차분히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의 말에 구양봉은 주춤 손을 멈추었다. "이봐요, 날 좋아하세요? 어서 말씀하세요." 구양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하신다면 마음대로 하세요. 내 혈도를 찌르지 않아도 돼요. 이 몸은 당신 거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구양봉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끓어오르는 욕망으로 반쯤 미칠 지경이 돼 있었다. "절 다시 안아서 편히 눕혀 주세요. 그리고 천천히, 가볍게 다루어 주세요, 난 당신이……." 구양봉의 입술이 모용쟁의 입술을 덮쳐 눌렀다. 모용쟁은 경련을 일으키듯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녀는 격렬한 흥분을 느끼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구양봉은 모용쟁의 부탁대로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다루었다. 모용쟁의 몸매는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고 황홀했다. 난쟁이의 대청에서 궤짝 안에 앉아 있는 그녀의 알몸을 보았었지만, 지금 침대 위에 조용히 누워 있는 모용쟁을 바라보는 기분은 그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구양봉은 모용쟁의 입술을 더듬으면서 두 손으로는 앞가슴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그는 한 손으로 모용쟁의 등을 받쳐 웃옷을 벗겨 낸 뒤 서둘러 아랫도리마저 벗겨 냈다. 구양봉은 너무나 황홀하여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저 멍청하니 모용쟁의 알몸을 뚫어지게 응시할 뿐이었다. 갑자기 멍청해진 구양봉을 올려다보던 모용쟁은 그만 발끈 화를 냈다. "바보처럼 왜 보기만 해요? 당신도 빛 좋은 개살구, 남자 구실을 못하는 남자인가요?" "그녀의 말에 구양봉의 피는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그는 거친 숨을 내뿜으며 탐욕스럽게 모용쟁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달빛 아래서 구양적은 백면라살을 정감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의 손은 그녀의 어깨와 등허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피부의 감촉이 손을 통해 온몸에 전해졌다. "두 사람이 오늘 밤에 어떻게……." 백면라살은 말문을 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해. 내가 네 아우에게 그런 말을 했더니 내심으로는 매우 기뻐하는 것 같았어. 겉으로는 시치미를 떼더라만 마음은 그렇지가 않은 눈치야……." 구양적은 이 말을 듣고도 묵묵부답이었다. 백면라살은 구양적의 불쾌한 눈치를 알아차리고 말머리를 돌렸다. "적아, 어서 말해 봐. 넌 날 좋아하느냐?" 백면라살은 자기의 머리칼로 구양적을 애무해 주며 유심히 표정을 살폈다. 구양적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면라살이 또 물었다. "적아, 난 너한테 시집갈란다. 나를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겠니? 만일 네가 나를 아내로 맞아들이면 난 계속 이 세상에서 살겠어. 우리 함께 강남 땅에 가서 깨끗하고 조용한 고장에 자리잡고 살자꾸나. 밥짓고 길쌈하면서 오붓한 살림을 꾸리자꾸나. 만일 네가 거절한다면 난 너를 죽여서 얼음 동굴 속에 넣어 두겠다. 그리고 나도 따라죽겠어. 그럼 우리 둘이 얼음 동굴 안에서 영원히 살수 있지 않겠니?" "좋습니다. 사부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구양적은 웃으며 대답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달은 여전히 밝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구양봉과 모용쟁은 이윽고 뜨거운 격정에서 벗어났다. 모용쟁이 손을 구양봉의 어깨에 걸쳤다. 그녀는 몹시 피곤하고 졸렸다.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남자를 경험했다. 사내의 거칠음과 사내의 부드러운 정을 처음으로 동시에 맛보았다. 그녀의 온몸은 땀에 흠씬 젖었고 삼단 같은 머리는 침대맡에 드리워졌다. 그녀의 두 눈은 전에 없이 반짝였고 얼굴은 온통 흥분과 만족감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구양봉은 더없이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몸을 일으켰다. 모용쟁이 부드럽게 그의 팔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당신을 찾아가라고 했어요. ……우리가 왜 그들을 신경 써야 해요? ……그들도 우리처럼 함께 있을 거예요. 정 가려면 날이 밝아서 가도 돼요. 날 더 안아줘요……." 모용쟁은 두 눈을 살포시 내리감고 구양봉의 애무를 기다렸다. 구양봉은 물끄러미 모용쟁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모용쟁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부랴부랴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나갔다. 모용쟁은 그의 뒷모습에 섭섭한 눈길을 주다가 자기도 옷을 입기 시작했다. 구양봉은 형의 방 앞에 이르렀다. 형과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구양봉은 당황해서 급히 모용쟁을 불렀다. 둘은 부랴부랴 얼음 동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