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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2부[동사황약사편] - 9편 (9/59)

2026-09-24 21:27:20 조회 23
황약사는 한 척의 배 위에 서서 갈팡질팡하는 태호방 놈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병묘와 삼두교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태호방 놈들은 안 되겠는지 일제히 배를 버리고 뭍에 올라 호심장의 어민들 쪽으로 몰려갔다. 하지만 호심장의 어민들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들은 삿대와 노를 틀어쥐고 결사적으로 싸우면서 자기들의 아들딸과 가족들을 보호해 나섰다. 아형과 계집애도 격분한 나머지 어민들을 도와 싸움에 참여했다. 하지만 태호방 놈들은 악착스레 달려들어 닥치는 대로 어민들을 때려눕혔다. 놈들이 마을 사람 몇몇을 죽이게 되자 여인들의 비명 소리와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마을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소아야!" 갑자기 아형이 놀라 소리쳤다. 한 놈이 달려들어 계집애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나무기둥에 짓찧어 대고 있었다. 계집애의 머리에서는 붉은 선혈이 줄줄 흘러내렸다. 태호방 놈이 칼을 들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계집년들을 다 죽여 버려라!" 놈은 칼을 휘둘러 아형의 머리를 내리찍으려 했다. 그러나 '악!'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칼을 든 놈의 상판이 일그러지더니 그의 입이며 코며 눈에서 선지피를 콸콸 쏟았다. 배 위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장면을 지켜 보던 황약사가 태호방 놈이 아형을 죽이려 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들고 있던 삿대 하나를 잽싸게 집어 던졌던 것이다. 황약사는 배를 타고 그 부근을 몇 바퀴나 돌았으나 병묘와 삼두교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는 아형이 잘못될까 봐 몸을 솟구쳐 언덕으로 날아 내렸다. 호숫가의 풍경은 도저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지경이 되어 있었다. 호심장 사람들은 놈들에게 거의 맞아죽어 겨우 두셋 되는 사나이가 남아서 태호방 놈들과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황약사는 질펀한 핏자국과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시체들 을 둘러보았다. 끝쪽에서 덜덜 떨고 있던 여인들과 어린애들이 집안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태호방 놈들이 징그러운 웃음을 날리며 도망치는 여인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놈들은 여인들을 잡아다가 노리개로 삼을 작정이었다. 이때였다. 태호방 두 놈이 좌우 양쪽에서 아형을 붙잡고 호수 쪽으로 끌고 나왔다. 황약사는 놈들을 노려보며 호령했다. "당장 그 팔을 놓지 못할까!" 두 놈은 자기들의 앞을 막고 있는 사람이 황약사임을 알아보고 움찔했다. 그러나 곧 자기들이 아형을 놓아줄 경우 목숨을 보전치못하리라는 생각에 발악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길을 비켜라! 그러지 않으면 이 여인을 죽여 버릴 테다!" 황약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황약사가 손을 번쩍 치켜 들었다. 순간 놈들은 잽싸게 아형을 황약사 쪽으로 밀어붙였다. 아형의 몸으로 황약사의 손을 막아내려는 심산이었다. 아형은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온몸의 대력을 모아 뒤로 버텼다. 여차하면 황약사의 손에 분골쇄신이 될 판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아형이 힘을 쓰자 두 놈은 여지없이 한옆으로 나뒹굴고 말았다. 황약사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잽싸게 달려들어 두 놈들의 머리에 각각 장을 날렸다. 놈들은 미처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두개골이 부서져 죽어 버렸다. 황약사는 갑자기 손을 들어 아형의 아혈(啞穴)을 가리키고는 다른 한 손으로 아형의 손을 잡고서 하늘을 우러러 길게 고함을 질렀다. 천지를 들었다 놓을 듯한 고함 소리에 태호방 놈들은 질겁을 하여 싸우던 것을 멈추고 멍청히 서 있었다. 황약사는 땅에서 자잘한 자갈 한 움큼을 집어 들고 소리쳤다. "이 놈들! 당장 이곳에서 물러가지 않는다면 네 놈들은 몽땅 이 호심도의 물귀신이 되는 줄로 알아라!" 이때였다. 한 무리의 태호방 놈들이 한 여인을 붙잡고 한창 못된 짓을 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황약사의 경고 따윈 들리지도 않는 듯 여자의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젖가슴을 주무르며 희희낙락 정신이 없었다. 한 놈이 여자의 속곳을 벗기고 막 일을 치르려는 순간이었다. 이를 목격한 황약사가 크게 노하여 들고 있던 자갈 한 알을 휙 날려 보냈다. 자갈이 놈의 뒤통수에 날아가 박히자 놈은 찍 소리도 못하고 그 자리에 푹 꺼꾸러졌다. 황약사는 연거푸 자갈을 날려 태호방 놈들을 닥치는 대로 꺼꾸러뜨렸다. 황약사의 재주에 대경실색한 태호방 놈들은 앞을 다투어 배에 뛰어오르거나 물로 뛰어들어 일제히 줄행랑을 놓았다. 황약사가 아형을 부축하여 집 처마 밑의 돌 위에 앉혔다. 아형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다 저 때문이에요. 저 때문에 불쌍한 사람들이……." 황약사는 그녀를 어떻게 위로해야 좋을지 몰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때였다. 잠잠해진 호숫가에 느닷없는 사람의 그림자 둘이 나타났다. 그들은 삼두교와 병묘로, 둘 다 몹시 기진맥진해 있었는데, 병모가 삼두교를 잡아 끌고 오는 중이었다. 황약사와 아형이 그쪽으로 다가가는데, 이를 발견한 호심장의 어민들도 일제히 몰려들었다. 어민들은 분을 이기지 못해 욕설을 퍼부으면서 칼로 삼두교를 찍어 죽이려 들었다. 병묘가 큰소리로 말렸다. "모두들 가만 있으시오!" 그의 명령에 사람들은 멈칫 물러섰다. 그 삼두교란 놈은 한참 후에야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고는 병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봐, 도박꾼. 이번 도박에선 확실히 내가 졌어." 그는 말을 마치고는 아직도 기는 살아서 죽이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듯 병묘를 쏘아보았다. 병묘가 그의 시선을 맞받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만일 호심장 사람이라면 남들이 널 마음대로 죽이려 들 경우 순순히 당하고만 있겠느냐?" 삼두교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럴 순 없지." "네 놈이 그렇다면 호심장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에 죽음을 달가워할 사랑은 없는 법이니까. 이 길로 돌아가서 호룡왕 필소해한테 전해라. 만일 또다시 호심장에 와서 소란을 피운다면 내가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삼두교는 자신이 꼭 죽으리라고만 생각하고 있다가 뜻밖에도 자기를 놓아주겠다는 병묘의 말에 실감이 나지 않는 듯 쳐다보았다. 놈은 머리를 숙이고 한참 침묵하고 있다가 몹시 감동한 어조로 말했다. "공자께서 하신 말씀을 돌아가서 꼭 맏형 님한테 전하겠습니다. 이제 다시 태호방이 이곳에 와서 소란을 피운다면 이 손가락처럼 될 겁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칼을 집어 들어 자기 손가락 한 개를 가차없이 잘라 냈다. 삼두교마저 떠나가자 호숫가는 다시 잠잠해졌다. 이때까지도 아형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나무 밑으로 걸어갔다. 나무 밑에는 계집애가 잠을 자는 듯이 누워 있었는데 얼굴은 온통 피로 얼룩져 있었다. 아형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은 않고 천천히 머리를 들어 호심장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황약사가 입을 열었다. "내 보기에 태호방 놈들은 보통 흉악한 놈들이 아니오. 그러니 낭자는 잠시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 가 있는 게 좋겠소." 아형이 황약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어둠이 깃들었다. 멀리 어부들이 지핀 화톳불이 어둠 속에서 깜빡거렸다. 세 사람은 선실에 들어가 앉았다. 아형은 선실의 창가에 앉아 멀어지는 호심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약사, 병묘, 아형은 모두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황약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구음진경》을 쟁탈하기 위해 5년 후 중원 무림의 여러 고수들과 결투를 벌이기로 약속한 몸이다. 그런데 벌써 두 달이란 시간이 헛되이 흘러갔구나. 남들이 애써 무예를 연마하고 있을 시간에 나는 중원의 태호를 유람하면서 이렇듯 세월만 보내고 있다니……. 이렇게 보내다가는 앞으로 화산에 가서 천하의 으뜸가는 고수들을 어떻게 당해 낸단 말인가? 황약사는 문득 쓸쓸한 마음이 되어 품속에서 옥소를 꺼내 들었다. 그가 옥소를 불기 시작하자 아형도 놀랐거니와 견식이 넓은 병묘조차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황약사의 옥소 소리는 마치 용과 호랑이가 울부짖는 듯 묘한 격정을 담고 있었다. 아형은 물살이 일렁이는 태호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공자는 정말 천하에 드문 재주를 갖고 있구나. 옥소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줄만 알았지 이런 굉음을 낼 수 있으리라곤 생각 못했어. 이분은 정말 놀라운 사람이야. 아형과 병묘는 황약사가 부는 이 곡이 그가 지은 〈벽해조생곡(碧海潮生曲)〉임을 알 리가 없었다. 옥소 소리가 간헐적으로 멈출 때마다 멀리서 퉁소 가락이 들려왔다. 그 퉁소 소리는 높아졌다가는 낮아지고 낮아졌다가는 높아지면서 장단을 맞춰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윽고 멀리서 파도를 헤치고 배 한 척이 다가왔다. 그것은 매우 큰 배였는데, 뱃머리에 사람들이 죽 늘어서 있고 그 사이에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야윈 얼굴을 한 그 노인은 엄숙한 기색으로 황약사네가 탄 작은 배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누가 옥소를 불었는고?" 황약사가 배에서 천천히 일어서며 대답했다. "제가 불었소이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자네가 오늘 호심도에서 사단을 일으킨 장본인인가?" "할 일이 없다 보니 쓸데없는 일에 관여한 듯싶습니다." 황약사의 대답에 노인이 꾸짖는 투로 말했다. "자네가 쓸데없는 일에 상관한다는 게 결국 나의 태호를 건드렸구만 그래?" 황약사는 말없이 웃으면서 손에 들고 있는 옥소로 손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병묘는 뱃머리에 앉은 채 노인을 올려다보다가 옆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 안면 있는 얼굴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입에 난 상처를 천으로 싸매고 있었는데 바로 황약사에게 혼이 나서 달아난 태호방 방주 필소해였던 것이다. 병묘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필 미꾸라지, 아니, 필 오리, 꼴 참 보기 좋구나!" 필소해는 자기들의 수가 많고 또 늙은이가 뒷심이 되어 준다고 생각하여 성을 발칵 내었다. "닥쳐라!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느냐!" 그는 큰소리를 치며 칼을 뽑아 들었다. 순간 병묘는 위험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황약사에게 당부했다. "황 공자, 아형을 잘 돌봐 주시오. 나는 저 놈과 결판을 내야겠소!" 그는 곧 필소해를 향해 소리쳤다. "필소해, 이 미꾸라지야! 그 배에서 기다려라. 네 놈과 삼백 합만 싸워 보겠다!" 그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큰 배로 뛰어 올라갔다. 두 사람은 누가 만류할 사이도 없이 곧장 맞붙었다. 병묘와 필소해가 싸우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 보던 노인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면서 더는 관심을 두지 않고 뱃머리 쪽으로 걸어 나와 황약사에게 물었다. "공자는 성함을 어떻게 부르오?" "저는 동해 도화도의 도주 황약사라 합니다." "공자의 옥소 부는 솜씨는 그야말로 천지를 진동시킬 만하오. 하지만 공자가 이곳 태호에 온 건 큰 실수라 하겠소." "왜 그렇지요?" 황약사가 놀란 어조로 물었다. "태호의 둘레는 천리나 되고 호수 안에 마흔여덟 개의 섬이 있으며 기슭에는 일흔두 개의 산봉우리가 있는데 이건 다 우리 태호방의 땅이오. 임자가 우리 태호방과 맞서려 한다면 극히 위험천만한 일이지." 황약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소인은 강남에 와 본 적은 없어도 옛사람이 태호를 읊은 시구를 들은 적이 있소이다." 황약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큰소리로 시 한 수를 읊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두 사람이 죽기살기로 싸우고 한쪽에서는 황약사가 소리 높이 시를 읊는 광경은 그야말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노인은 황약사가 시를 읊는 것을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노인은 그가 시를 다 읊자 다시 물었다. "이 배에는 또 누가 타고 있소?" "이 배에는 아형 낭자가 타고 있소이다." 황약사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노인이 껄껄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 소리는 어쩐지 기분이 나빴다. 노인은 실컷 웃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 아형을 좀 나오라고 하게. 어떻게 생겼는가 한 번 보려네. 이 태호방 방주가 반할 만한 인물인지를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황약사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아형이 안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뱃머리에 섰다. 그녀는 차분한 태도로 노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바로 아형입니다." 이 노인은 태호방의 총타주(總舵主)로서 밖에 나오는 일이 별로 없는 터라 아형 같은 미인은 생전 처음이었다. 노인은 아형의 아름다움에 자기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노인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아형 낭자, 듣자니까 그대가 우리 태호방에 여러 번이나 양책(良策)을 내놓아 우리 태호방을 위험에서 건져 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 태호방과 내왕을 하려 하지 않소?" 아형이 대답했다. "필 방주께서 저에게 태호방에 가서 용군의 아내가 될 것을 강요했는데, 그것은 제 뜻과는 맞지 않는 일이므로 그분을 따라가지 않았을 뿐입니다." 노인은 갑자기 큰소리로 웃었다. "태호방엔 인재들이 얼마든지 있고 일흔두 봉우리마다 주인이 따로 있지. 필소해도 태호의 방주이기는 하지만 태호방 중의 최고 인물은 아니야, 낭자가 그한테 시집가려 하지 않은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나 낭잔 결국 태호방 사람한테 시집오게 될 것이야." 아형이 무어라 대꾸하려는데 노인은 뱃머리에서 훌쩍 뛰어내려 뱃전에 드리운 닻의 갈고리 끝에 가볍게 올라섰다. 닻의 갈고리 끝은 화살의 살촉처럼 날카로운 데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끝에 서서 웃음을 띄우며 아형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형에게 각별한 친절을 보이며 그녀의 미모에 대해 찬탄을 금치 못했다. "훌륭하군. 이렇게 출중한 미인은 본 적이 없어." 황약사는 유심히 노인을 살펴보았다. 노인의 두 손은 손톱이 유난히 길고 새까맸는데 꼭 독수리발 같은 현상이었다. 황약사는 그가 독장(毒掌) 공을 닦았음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노인에 대해 경계심을 가진 황약사는 아형에게 무슨 변이라도 생길까 봐 아형의 곁에 바짝 다가섰다. 노인인 다시 아형에게 말했다. ' "태호방은 세력이 대단해. 차지하고 있는 지역도 그 둘레가 수천리에 달하고 호수 안의 봉우리만 해도 일흔두 개가 있단 말이야. 태호방의 두령들은 제왕들 못지 않게 부유해. 임자가 태호방에 시집오면 손해날 게 하나도 없어." "노인장은 절 호룡왕 필소해한테 시집가게 하려는 모양이신데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에요." 아형은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형의 단호한 말에 노인이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누가 낭자더러 그 사람한테 시집가랬나? 그한테 시집가지 않아도 돼……." 아형은 노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려나 싶어 그를 쳐다보았다. 노인이 말을 이었다. "하필 왜 필소핸가? 내가 있는데 말야. 낭잔 나한테 시집오면 돼." 아형은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돌연 황약사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호수에는 삽시에 험한 파도가 일었다. "왜 웃는 건가?" 노인이 불쾌한 듯 물었다. "주제 파악을 하시오. 수염이 하얗게 세고 빼빼 마른 노인네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요? 그 대머리에 매발톱 같은 손만 봐도 정이 떨어지겠소. 당신한테 이 여인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오? 아형의 할애비뻘 되는 사람이 손녀뻘 되는 처녀한테 장가들려 하다니 누군들 제정신이라고 하겠소?" 황약사는 여전히 요란하게 웃어댔다. 노인은 황약사가 웃거나 말거나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황약사가 웃음을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팽조(彭祖)는 8백 살까지 살았는데 그가 내 나이 때에는 어린 애나 마찬가지가 아니었겠나? 내가 장가든다고 해서 이빨이 다시 나거나 흰머리가 검은 머리로 되지야 않겠지만 젊은것을 품에 안게 되면 마음이 젊어질 것이니 사는 재미가 오죽하겠나?" 황약사는 괴물 같은 영감태기와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계속 지껄여댔다. "자네가 중원을 돌아다녔다면 나의 명성이야 알고 있겠지? 난 태호방의 구두신취(丸頭神鳶) 학 영감이야. 내 손에 죽게 되었다고 원망일랑 말게!" 늙은이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독수리처럼 날쌔게 날아들며 갈고리 같은 손으로 황약사의 머리를 잡아채려 했다. 황약사는 침착하게 옥소를 꺼내 들더니 노인의 손에 있는 통리(通里), 신문(神門) 두 대혈을 겨누었다. 학 영감은 기겁하여 손을 거둬 들였다. 학 영감은 첫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화가 치밀었다. 그는 다시 법수를 바꾸어 두 장을 동시에 내밀었다. 황약사는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는 몸을 피하면서 옥소로 학 영감의 손을 겨누었다. '팍!' 하는 소리가 났지만 늙은이는 아무데도 상한 데가 없었다. 학 영감은 무서운 소리를 지르면서 또다시 황약사에게 덮쳐 들었다. 큰 배 위에서는 아직도 병묘와 필소해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병묘는 주먹을 번개같이 놀려 필소해를 계속 밀어붙였다. 하지만 필소해는 병묘의 불 같은 성미를 익히 아는지라 칼을 천천히 놀리면서 자그마한 허점도 보이지 않았다. 큰 배에 타고 있는 자들은 태호에 있는 일흔두 개 봉우리의 사람들로서 모두 다 태호방의 수령들이었다. 그중 세 놈이 배에서 뛰어내렸는데 틈을 보아 황 약사를 죽이려는 수작이었다. 놈들은 황약사와 늙은이의 싸움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갑자기 배의 갑판을 뚫고 검이 불쑥 솟아올랐다. 황약사는 마치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던 듯 훌쩍 몸을 날려 칼끝을 발로 걷어차 끊어 버렸다. 끊어진 칼끝은 곧장 학 영감 쪽으로 날아갔다. 학 영감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칼끝에 어깨를 찔렸다. 그러자 학 영감은 기세 사납게 소리를 지르며 황약사에게 덮쳐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허장성세에 지나지 않아 황약사가 몸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서있자 학 영감도 덮쳐 들다가는 주춤 서 버렸다. 학 영감이 진공을 멈추고 발로 갑판을 힘껏 구르자 배는 두 사람의 힘을 받아 두 조각으로 갈라져 버렸다. 아형이 급히 소리쳤다. "황 공자님!" 황약사가 놀라서 바라보니 아형은 굼실거리는 물살에 밀려가고 있었다. 황약사는 더 생각할 겨를 없이 아형 쪽으로 몸을 날렸다. 아형은 눈 깜짝할 사이에 물결 속에 잠겨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황약사는 다만 아형의 머리장식품만을 거머쥐었을 뿐 끝내 아형을 찾아내지 못했다. 황약사는 몹시 당황했다. 그는 워낙 지혜와 모략이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이런 일을 당하자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쓰라린 마음으로 출렁이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황약사의 가슴속에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아형을 죽게 한 태호방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려도 속이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 태호의 물결 위에 한 척의 큰 배가 태호방의 소굴인 응취봉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배 위에는 황약사 한 사람이 키를 잡고 있었다. 그는 호숫가에 당도하여 기슭에 올라 잠깐 쉬었다. 숨을 돌린 다음 태호방의 소굴에 찾아 들어가서 아형의 복수를 할 참이었다. 이때였다. 어디선가 두런두런하는 말소리가 들려 왔다. 말소리로 보아 세 사람인 듯했다. 한 사람이 말했다. "둘째 동생, 보아하니 일을 서둘러야겠네. 난 좀 있다가 일흔두 봉우리를 찾아가겠어. 태호방 놈들을 붙잡는 족족 죽여 버릴 셈이야. 이 세상에 나쁜 놈들이 적어지면 그만큼 좋은 사람들이 많이 남게 되는 것이 아니겠나?" "맏형님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그 늙은 놈에 비하면 우리들의 무예는 기술이 부족해서 놈의 마수에 걸려들기라도 하는 날에는……." "셋째 동생 말이 옳아. 전번에 우리 삼형제가 백성들을 위해 놈과 싸웠지만 놈이 갈고리 같은 손으로 틀어잡는 법수를 펴는 데는 당해 낼 재간이 없었지. 그자한테 어깨를 뜯긴 상처가 지금도 낫지 않고 있어. 조심하는 게 상책이야." 그들 세 사람은 마을 숲 속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황 약사보다 나이가 어려 보였다. 중간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아주 무섭게 생겼으나 왼쪽에 앉은 사람은 아주 얌전하게 생겼고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가죽옷을 입고 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늙다리한테 어깨를 상한 사람인 것 같았다. 맏형이란 사람이 입을 열었다. "우린 종래로 태호방 놈들한테 머리를 숙인 적이 없지만 둘째 동생이 상했으니 좀 기다리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둘째 동생의 상처가 깊어져서 죽는 길밖에 없어. 그러니 내일이라도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 태호방 놈들과 사생결단을 해야 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독약을 구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해." 이때였다. 태호에서 기슭으로 배 한 척이 급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쪽배는 바람결에 밀려 이쪽으로 나는 듯이 오더니 기슭에 와 멈추었다. 한 사람이 배에서 뛰어내려 세 사람에게로 달려왔다. 달려온 사람은 땅딸보였다. 그는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장주(莊主)님, 큰일났습니다. 큰일났어요!" 맏형이라는 사람이 땅딸보의 당황한 기색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무슨 일이냐?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말해 보아라." "오늘 태호에서 큰 싸움이 있었답니다. 태호방의 일흔두 개 봉우리의 우두머리들이 몽땅 달려들어 한 선비를 상대로 싸웠는데 태호방의 그 늙은 두목과 선비는 싸움에서 승부를 가리지는 못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