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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2부[동사황약사편] - 8편 (8/59)

2026-09-24 21:27:20 조회 31
아니지 않아?" 그는 또 두 손으로 두 발의 새끼발가락을 뚝 끊어 버렸다. 그는 이맛살 한번 찌푸리지 않고 필소해를 향해 다시 물었다. "말해 봐. 이게 다섯 발가락이냐? 만일 그래도 다섯 발가락이라고 한다면 내가 하나 더 끊어 버리지." 필소해는 한동안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멍청히 앉아 있었다. 두 번째 내기는 그대로 비긴 셈이 된 것이다. 세 번째 내기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열두 개의 침으로 조개 속의 진수를 명중시키는 내기였다. 필소해는 가볍게 손을 놀려 열 두개의 조개를 벽을 향해 던졌다. 조개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벽에 들어가 박혔다. 병묘의 얼굴에는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다. 도대체 벽에 박힌 조개 속의 진주를 무슨 수로 명중시킨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내색하지 않고 필소해를 향해 말했다. "자네가 먼저 해보지. 그러고 나면 내가 할 테니까." "그러지." 필소해는 사양하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병묘가 강한 대력을 갖고 있는데다가 경공도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자그마한 암기를 사용하는 무예는 잘 모르리라는 계산하에 세 번째 내기를 제안했던 것이다. 그는 손에 다섯 개의 침을 들고 있었는데 오른손의 엄지 끝과 식지로 그 침끝을 쥐고 엄지의 아랫부분과 장지, 무명지, 새끼손가락으로 침대를 잘 눌러 쥔 다음 손 을 날려 침을 뿌렸다. 왼손으로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침 다섯 개를 동시에 날려 보냈다. 마지막으로 이빨로 물고 있던 침 두 개를 뱉어 냈는데 그 침 두 개도 벽을 향해 날아갔다. 이리하여 조개의 조가비 틈을 비집고 열두 개의 침이 모두 조가비 속에 들어박혔다. 하지만 그 침이 조가비 속에 있는 진주들을 명중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필소해는 부하들을 시켜 벽에 박혀 있던 조개들을 빼오게 했다. 그는 조개 한 개를 집어 그 껍데기를 열어젖히고는 침에 뚫린 진주 한 알을 꺼내 들었다. 나머지들도 하나하나 열어젖혀 보니 열두 개의 침이 몽땅 진주에 박혀 있었다. 필소해는 의기양양해서 아형에게 말했다. "아형 낭자, 이 구슬은 진짜 진주라오. 이만하면 아형과 배필이 될 수 있겠지?" 그리고는 마리를 돌려 병모에게 말했다. "사안묘, 이젠 자네 차렐세." 그는 다시 벽에다가 열두 개의 진주조개를 박아 넣었다. 병묘는 여간 난감하지 않았다. 암만 생각해도 이번 내기는 자신이 없었다. 그가 순순히 승복할까 어쩔까를 망설이며 아형의 얼굴을 쳐다 보는데 느닷없는 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따위 잔재주를 가지고 뭐하는 짓들인가?"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발을 젖히며 한 사내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제5장 용과 범의 울부짖음 사람들은 모두 당황해서 낯선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가 동해 도화도 도주 황 약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형과 계집애뿐이었다. 필소해가 쓴웃음을 지으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이 집에 웬 사내가……?" 아형이 집안에 사내를 감추어 두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병묘도 황약사를 보고 두 눈이 휘둥그래지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틀 동안 오지 않은 새에 어디에서 이런 사람을 데려온 거지? 보아하니 진짜 선비처럼 얌전한 작자로군. 나는 이따위 서캐나 훑을 놈들은 딱 질색이야.' 병묘는 글귀나 따지는 선비들을 싫어하는데 다가 황약사 역시 치음 공자나 미화 공자와 마찬가지로 아형에게 청혼하러 온 것으로 여겨져 여간 불쾌하지 않았다. 필소해가 입을 열었다. "이상하단 말이야? 흉중에 백만 신병(神兵)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제갈량은 성루 위에 앉아서 성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태연히 거문고를 탔었다고 했지 않은가. 우리네 아형 낭자도 보통은 아냐. 배포 유하게 방안에 장정을 숨겨 두고 있었으니 말이야. 그러고 보니 공자의 생김새는 치음과 미화보다는 한결 낫군." 필소해는 암만해도 재미있다는 듯 앙천대소를 했다. 이때였다. 황약사가 손가락을 가볍게 놀리자 암기(暗器) 한 알이 바람을 타고 필소해의 얼굴로 날아갔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암기는 필소해의 입술을 명중하였고 필소해는 더는 떠들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황약사는 탁자에서 주운 자그마한 진주조개 부스러기 두 개를 날려 보냈던 것인데, 한 개는 필소해의 윗입술을 뚫고 잇몸에 들어박혀 피가 철철 흘러내렸고 다른 한 개는 아 랫입술을 뚫고 들어가 혓바닥에 박혔다. 황약사가 욕설을 퍼부었다. "필소해, 듣자니 태호의 풍파가 10년이 되도록 가라앉을 줄 모르고 백성들이 네 놈 때문에 고생이 막심하다고 하는구나. 오늘 네놈이 날 만난 걸 보니 운이 다한 모양이다!" 필소해는 황약사를 잘못 보았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는 황약사가 아무 내력도 없는 줄 알고 함부로 떠들었던 것인데, 그런 황약사가 손가락을 가볍게 놀려 자그마한 조개껍질 부스러기로 자기 입을 피투성이로 만들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그러나 그는 아직도 방금 황약사가 쓴 법수가 무림에 널리 소문난 '탄지신공(彈指神功) '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필소해는 황약사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입술에 박힌 조개껍질 조각을 뽑아 내면서 고함을 쳤다. "네 놈이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 황약사가 웃으며 말했다. "네 놈이 그까짓 잔재주를 가지고 자랑하려 드는 걸 보니 정말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놈이지 뭐냐!" 그는 이번엔 탁자에서 열둘 개의 침을 집어 들고는 말을 이었다. "조개 속에 진주가 생기는 건 아주 쉽지 않은 일인데 그걸 부스러뜨려 못쓰게 만들다니 무슨 쓸데없는 짓이냐?" 황약사는 침 열두 개를 손에 들고 벽을 등지고 창문께로 걸어갔다. 필소해는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 수 없어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황약사가 오른손을 뒤로 흔들자 물에서 고기가 뛰노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열두 개의 침이 한꺼번에 벽에 붙어 있는 조개 쪽으로 날아갔다. 그 열두 개의 침들은 어찌나 빠른 속도로 날아갔는지 누구 하나 똑똑히 보아 낸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휘둥그래진 눈으로 황약사를 쳐다보았다. 황약사는 다시 탁자 앞으로 와 서며 말했다. "필소해, 이제 졌다는 걸 인정하겠느냐?" 필소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젊은 선비가 공력이 정말 대단하구나. 암기를 던지는 저런 재주는 내가 10년을 배워도 배워 낼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저자가 던진 침들이 정말로 몽땅 조개 속의 진주에 명중했을까? 이건 알 수 없는 일이다. ' 그는 황약사에게 물었다. "침들이 과연 진주를 명중했는지 알 수 없지 않나?" "꺼내어 보여 주면 될 거 아냐?" 황약사가 대답하기가 무섭게 긴 팔소매를 휙 휘저었다. 그러자 팔소매는 마치 눈이라도 달린 듯이 벽을 휩쓸면서 조개를 하나하나 따내서는 탁자 위에 쏟아 놓았다. 황약사는 곧 소매를 거두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런 훌륭한 진주조개를 깨어 부스러뜨리고 진주를 빼내기는 정말 아까워." 이 진주조개는 물 속에서 여러 해 자란 것으로서 껍질이 단단히 맞물려 있어 보통 사람은 칼을 가지고도 잘 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태호 부근에서 사는 사람들이라 진주조개를 많이 보아 왔고 그것을 깨어 부수는 것도 다반사로 보았기 때문에 별로 아까워하지 않았다. 아형은 황약사가 하는 말을 듣고 속으로 내심 놀랐다. 저런 영웅 호걸이 진주 따위를 아까워 하다니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때였다. 황약사는 조개 한 개를 집어 들고는 햇빛에 비추어 보는 듯싶더니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겼다. '뻥!'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진주조개는 마치 지각을 갖고 있기라도 한 듯 천천히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조가비 사이로 불그스레한 조가비 살이 보였고 물이 슬슬 흘러 나오고 있었다. 껍질은 점점 크게 벌어져 급기야는 속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황약사가 던진 침은 정확히 조개 속의 진주에 박혀 있었다. 필소해와 병묘는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조개는 여전히 싱싱하게 살아 있었는데, 놀랍게도 황약사가 던진 침들은 조갯살은 하나도 다치지 않고 진주만을 명중시켰던 것이다. 황약사는 같은 방법으로 열두 개의 조개 속에서 진주를 하나하나 꺼낸 뒤에 계집애를 향해 말했다. "명주실을 가져오거라." 황약사는 가져온 명주실로 그 열두 개의 진주를 째었다. 곧 전문가만이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진주 목걸이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는 진주를 다 꿴 뒤 그것을 계집애에게 건네주었다. "명주실이 네 것이니 이 진주 목걸이도 네 것이다." 계집애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공자님처럼 재주 있는 사람은 여태까지 본 적이 없어요. 공자님의 손재간은 어쩌면 우리 주인 아가씨와 흡사하지요? 두 분은 아마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과 선녀들인가 봐요." 계집애의 말에 아형은 대번에 얼굴이 붉어졌고 황약사도 쑥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두 사람은 감히 서로 마주보지도 못하고 태연한 척 딴청을 부렸다. 황약사와 아형에게 체면이 깎일 대로 깎인 필소해가 부은 소리로 말했다. "좋아, 난 가겠다. 한데 공자는 누구지? 이렇게 당했는데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돌아갈 수야 없지 않겠나?" "난 동해 도화도 사람으로 황약사라 부르오." 황약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필소해는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렸다. "황약사, 황약사라……." 그는 마치 이 이름을 영원히 새겨 두려고나 하는 듯이 거듭 되뇌이다가 아형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곳을 떠났다. 병묘도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그는 황약사를 유심히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자는 말주변이 좀 있을 뿐이지 재주가 그리 대단한 건 아냐. 어쨌든 아형의 태도를 보면 이 친구한테 마음을 두고 있는 게 분명해.' 그는 생각할수록 은근히 약이 올랐다. '아형은 도대체 이 놈의 어디가 마음에 드는 것일까?' 그러나 그와는 달리 황약사는 병묘에게 대단한 호감을 느꼈다. 그는 중원에 와서 무림의 인물들을 여럿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병묘처럼 성미가 시원시원한 사나이는 흔치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병묘에게 공손히 읍하면서 말했다. "노형은 태호의 영웅이오. 노형의 모든 점이 실로 호걸다워 나는 아주 탄복하는 바요." 아형이 황약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동해에 계신다는데 그 도화도란 곳은 아주 훌륭한 고장이겠지요?" "동해 도화도는 한번 가볼 만한 곳이지요." 황약사는 그녀의 질문에 기분이 좋아져서 도화도가 얼마나 아름다운 고장인가를 한바탕 자랑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병묘가 쌀쌀한 기색으로 말했다. "도화도가 그렇게 좋은 고장이라면 무엇 때문에 태호에 왔소? 그의 물음에 황약사는 무어라 대답할지 말문이 막혔다. 워낙 병묘는 치음 공자, 미화 공자와 더불어 태호의 삼공자로 알려져 있었는데 두 사람과는 달리 아형의 호감을 사고 있었다. 병묘와 아형은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냈다. 아형이 병묘에 대해 각별한 친절을 보이는 일은 없었지만 그는 언제나 아형을 동기간처럼 대하며 진심으로 아껴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형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지라 그녀와 특별한 관계를 도모하려 하지는 않았 다. 아형이 병묘를 향해 말했다. "황 공자께서 이곳에 오신 것은 저의 재주를 구경하기 위해서랍니다. 제가 보기에 황 공자님은 재주도 출중하고 성품도 시원시원하시니 두 분께서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병모는 아형의 말에 은근히 시샘이 났다. 아형은 여간해서 누구에게든 선뜻 마음을 내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한 그녀가 황약사를 대하는 태도는 참으로 각별했고 입을 열 때마다 칭찬이 끊이질 않으니 병묘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형이 나더러 저 사람과 가까이 지내라고 하면 가까이 지내는 수밖에 없지.' 병묘는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황약사를 향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는 황약사의 손을 맞잡자 내력을 발산하여 황약사를 골탕 먹이려 했다. 솥뚜껑같이 두툼한 병묘의 손에 비해 황약사의 손은 너무나 빈약했다. 그는 속으로 비웃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 같은 손이라니! 이런 손으로 뭘 하겠다구…….' 그러나 그가 있는 한껏 힘을 넣었지만 어쩐 일인지 황약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겉보기에 그처럼 보드랍고 연약한 황약사의 손은 아무리 틀어쥐려고 해도 틀어쥘 수가 없었다. 병묘는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더욱더 힘을 주었다. 하지만 황약사는 웃는 얼굴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힘도 들이지 않고 손을 빼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때였다. 밖으로부터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호심장(湖心莊)에서 무슨 큰일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황약사 일행은 동시에 밖으로 뛰어나가 보았다. 밖으로 나와 보니 호숫가를 따라 늘씬한 모양의 쪽배들이 빽빽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누군가가 배 위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호심장의 놈들은 모두 듣거라. 너희들은 나 태호방 방주에게 죄를 지었다. 그 죄는 용서할 수 없다. 그러니 한 시간 이내로 모두 이곳을 떠나도록 하라. 이 호심장은 우리 태호방의 것이니까!" 갈팡질팡하는 어부들을 보고 아형이 서글프게 입을 열었다. "저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나 때문이에요. 나란 사람은 어딜 가든지 우환거리예요. 언제나 남들한테 불행을 가져다 주지요……." 아형은 너무나 상심한 나머지 눈물까지 흘렸다. 황약사는 부아가 치밀었다. '나쁜 놈 같으니! 이 황약사가 이런 일을 보고도 가만있을 수는 없지. 감히 뉘 앞이라고 함부로 행패를 부리겠다는 거야?' 병묘는 벌써 참지 못하고 펄펄 뛰며 소리를 질렀다. "망할 놈의 자식! 네 놈의 태호방이 다 뭐냐? 어디 마음대로 한번 해봐라. 내가 가만 보고만 있을 성싶으냐?" 그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몸을 날려 배들이 서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가까이 가보니 배들은 몇백 척이 되는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다가 배들마다에는 건장한 사내들이 둘씩이나 버티고 서 있었다. 가장 선두에 있는 배 위에는 빼빼 마른 사나이가 서 있었는데 이 사나이가 바로 태호방의 삼두교(三頭蛟)라는 자였다. 이자는 성미가 불 같은 인간으로 호수에서 물고기라도 잡게 되면 익힐 새도 없이 날것으로 먹어 치울 정도였다. 이자는 용두(龍頭)의 맏이가 굴욕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는 다짜고짜로 태호방의 모든 인마를 총동원하여 호심장으로 배를 몰아왔던 것이다. "태호가 이처럼 큰 곳이고 우리 태호방은 이곳 몇백 리 안팎에서 감히 건드리는 자가 없었는데 조그만 계집년이 감히 우리와 맞서려고 해? 그 년의 기염을 꺾어 놓지 않고서야 우리 태호방 사람들이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느냐?" 태호방은 워낙 호심장을 쑥밭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지만 마땅히 그럴 만한 구실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황약사에게 모욕을 당하자 그걸 핑계삼아 모든 호심장 사람들을 쫓아내 버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들은 들이박치기가 무섭게 호숫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어린아이들부터 닥치는 대로 찔러 물 속에 처박았다.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 나왔을 때는 이미 아이들의 모습은 찾 아 볼 수조차 없었다. 병묘는 아이들을 끊은 부모들의 곡성을 듣고는 분을 억누르지 못해 소리쳤다. "이 악종들아! 어린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내 오늘 네 놈들을 모조리 쳐죽이고야 말겠다!" 그는 다짜고짜 가까이에 있는 배 위로 뛰어올랐다. 배에 있던 놈 하나가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병묘는 즉각 놈의 면상을 후려 갈기고는 번쩍 들어 물 속에 처박아버렸다. 선미에서 삿대를 쥐고 있던 놈이 당황하여 삿대를 휘둘러 그를 쓰러뜨리려고 했다. 그러나 허리께로 날아드는 삿대를 낚아챈 병묘는 삿대 끝으로 놈을 공중에 들어올렸다가는 역시 물 속으로 던져 버렸다. 이를 지켜 보던 태호방 놈들은 하나같이 겁에 질렸다. 병묘는 다시 가볍게 몸을 솟구쳐 몇 척의 배를 건너뛰어 상두교가 타고 있는 배 위에 내려섰다. 그는 번개같이 삼두교의 부하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삼두교의 부하는 그의 한주먹에 비명을 지르면서 물 속으로 굴러 떨어져 버렸다. 몇 놈이 놀라서 한꺼번에 덤벼들었지만 누구 하나 병묘의 주먹을 당해내질 못했다. 얼마 안 가서 배에는 병묘와 삼두교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병묘가 놈에게 물었다. "네 놈이 이 호심장 어린애들을 죽였느냐?" 삼두교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 태호방을 건드리거나 모욕하는 놈들은 한 놈도 살려 두지 않을 작정이다!" 놈은 이렇게 말하면서 두 개의 송곳 끝으로 병묘를 찌르려 했다. 물 싸움에서 사용하는 병 장기들은 대체로 송곳이거나 짧은 비수와 단검 같은 것이었는데 그것은 몸을 놀리기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이 가까이에 서 있고 배가 흔들거리기 때문에 이런 짧은 병장기가 사용하기에 적합했다. 놈은 곧장 송곳을 내질렀다. 한 번은 빗나갔으나 거푸 세 번이나 내지르는 바람에 송곳 끝은 병묘의 가슴에 있는 사혈(死穴) 가까이까지 들어왔다. 병묘는 화가 치밀었으나 손이 상할까 봐 송곳을 잡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삼두교의 잔악성을 익히 알고 있는 그는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태호방엔 호한이 한 놈도 없구나. 모두 거북이처럼 대가리를 내밀지 못한단 말이야. 내가 지금 적수공권(赤手空拳)인데 네 놈이 나와 삼백 합만 싸워 견뎌 낸다면 내가 너희네 태호방에 복종하마!" 삼두교는 그 말에 부아가 치밀어 들고 있던 송곳을 뱃머리로 내던졌다. 그는 병묘를 향해 정식으로 결투를 청했다. "이 놈아! 모두들 네 놈이 도박 미치광이라고들 하더라마는 내가 오늘 네 놈과 머리를 내놓고 도박을 걸 테다!" 삼두교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의 삿대를 쥐고 있는 자에게 호령했다. "뱃머리를 갖다 대라. 내가 맨주먹으로 저 놈과 승부를 가릴 테다!" 두 배가 맞닿자 삼두교와 병묘는 각기 뱃머리에 서서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병묘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무서운 바람이 일었다. 삼두교는 한걸음 한걸음 물러서면서도 호시탐탐 병묘의 팔에 있는 혈도를 가격하려 했다. 삼두교는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하의 무학에는 그 법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병묘처럼 다만 신력(神力)에만 의지하여 주먹을 휘둘러 대는 것은 처음 보았던 것이다. '이 놈의 주먹은 실로 무섭구나. 저 주먹에 얻어맞는 날에는 뼈를 추리기도 어렵겠어. 송곳창을 쓰지 않고는 당해 낼 수 없을 것 같은데? ' 삼두교는 뒤로 물러나면서 뒷발길로 삿대를 잡고 있던 놈을 차서 물 속에 떨어뜨리고는 소리쳤다. "사안묘, 잠깐만 쉬자. 내가 너와 다시 삼백 합을 싸우마!" 그의 말에 병묘는 삼두교의 배로 나는 듯이 옮겨 와 뱃머리에 서서 호령했다. "삼두교 이 놈아, 핏값은 피로 갚아야 해. 네 놈은 오늘 끝장난 줄 알아라!" 그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주먹을 휘두르며 삼두교에게로 달려 들었다. 병묘가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자 놈은 소리를 지르면서 발을 굴렀다. 그 순간 배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배가 박살나는 바람에 병묘가 내지른 주먹은 삼두교의 면상을 긁어 놓는 정도로 그쳤다. 병묘의 주먹이 얼굴을 스쳤을 뿐인데도 놈은 비명을 지르면서 물 속으로 냅다 뛰어들더니 종적없이 사라졌다. 호숫가에 서서 이를 지켜 보고 있던 아형과 황약사 일행은 삼두교가 병묘의 주먹에 맞아 물 속에 빠지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순간 병묘가 서 있던 배에 물이 차면서 그 역시 호수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태호방 놈들은 병묘가 물에 빠진 것을 보고는 일제히 배를 몰아 그의 주위를 둘러쌌다. 놈들은 병묘가 빠져 나갈 틈이 없게 각자의 뱃머리들을 바싹 맞대었다. 기슭에 서 있던 아형이 갑자기 부들부들 떨면서 입을 열었다. "이를 어쩌지? 오라버니가 위험해요……." 애타하는 아형의 모습을 보고 황약사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시오. 내가 병묘를 구해 낼 테니!" 황약사는 수영에 서툴렀으나 곧장 몸을 날려 한 작은 배에 뛰어 내렸다. 그는 배에 발이 닿기도 전에 손가락을 튕겨 배 위에 있던 놈 하나를 꺼꾸러뜨렸다. 놈은 대번에 두개골이 으깨어져 비명을 지르면서 물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병묘를 둘러싸고 있던 몇몇 태호방 놈들이 대열에서 떨어져 나와 이번에는 황약사를 에워쌌다. 놈들은 손에 들고 있는 삿대를 휘둘러 황약사를 물 속에 떨어뜨리려고 했다. 황약사는 가볍게 몸을 날려 공중에 솟아올랐다. 태호방 놈들은 일제히 來리를 지르면서 삿대들을 치켜 들었다. 황약사가 공중에서 팔소매를 내젓자 삿대들이 바람에 밀려 한데 얽혔다. 태호방 놈들은 황약사가 부린 술법에 눈들이 휘둥그래졌다. 이때였다. 출렁거리는 물소리가 나더니 배들 사이에서 두 사람의 머리가 물 위로 불쑥 솟아올랐다. 그들은 삼두교와 병묘로, 두사람은 한데 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싸우는 동안 황약사는 삿대 한 개를 빼앗아 쥐고 10여 명의 태호방 놈들을 두들겨 물 속으로 떨어뜨렸다. 태호방 놈들은 황약사의 실력이 이토록 대단한 것을 보고 겁이 나서 아우성을 치며 저마다 배를 몰아 도망가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