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논검1부(서독구양봉편) - 35편 (35/64)
그의 주먹이 바람 소리를 내며 곧장 중의 가슴팍으로 날아들었다. 주막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탁자를 단번에 박살낸 주먹이니 그 주먹에 맞을 경우 죽지 않으면 병신이 될 게 뻔했다. 뜻밖의 사태에 구양적이 얼른 그를 구하려 했으나 그 사이에 탁자가 세 개나 있었다. 구양적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중이 얻어맞는 모양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중은 사내의 날 쌘 주먹을 맞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젊은 사내 역시 한쪽 팔을 중한테로 뻗친 채 굳은 듯이 서 있는데, 자세히 보니 사내의 한쪽 주먹이 중의 앞가슴을 파고 들어가 있었다. 중이 웃으면서 말했다. "시주님와 심보가 좋지 않아 소승이 죄를 짓게 되었구려. 소승이 시주님께 제대로 대하지 못함을 양해하기 바라오." 젊은 사내는 말이 없었지만 함께 온 동료들이 펄쩍 뛰면서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중 놈아, 그 사람을 놔주어라!" 동료 두 사람은 동시에 중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중은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가슴에다 그 젊은 사내의 팔을 붙인 채로 그를 질질 끌면서 중년 사나이의 주먹과 만월도를 교묘하게 피했다. 칼이 쉴 새 없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를 냈으나 중의 옷자락 하나 베어 내지 못했다. 이를 지켜 보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제 눈을 의심하다가 드디어는 찬탄해 마지않았다. 세 사람은 어느덧 중의 무 공에 압도되어 쩔쩔매고 있었다.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세 사람을 향해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 셋이 그까짓 재주를 가지고 감히 왕중양을 찾겠다구? 그 사람은 전진교의 교주로 신통력이 대단해!" 그러자 다른 사람이 토를 달았다. "듣자니 왕중양은 기인이고 그분의 무공은 대단하여 보통 사람은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군. 그게 정말인지는 모르지만." 또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왕중양은 그만두고라도 그분의 두 제자만 하더라도 대단하대요. 내가 한번 본 적이 있는데, 그분들이 주먹만 휘두르면 그 바람이, 아아……." 이 사람은 왕중양의 제자가 무슨 대단한 재주가 있다는 것인지 말을 맺지 못하고 그저 '아아……'하는 찬탄의 소리만 연발했다. 중과 싸우던 세 금인들은 큰 낭패를 보았다. 중이 갑자기 몸을 쑥 펴자 그때까지 기를 쓰고 주먹을 뽑아 내려 날뛰던 젊은 사내가 제풀에 뒤로 나자빠졌다. 세 사람은 더 이상 덤빌 생각을 못하고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는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이를 지켜 보던 구양적은 남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보아하니 이 중원의 무림 인물들은 대체로 만만치가 않아. 이 중만 하더라도 그래. 겉으로 봐선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을 사람이 정작 손을 쓰는 걸 보니 기공이 대단하잖아. 정말 뜻밖이야.' 구양적의 시선을 의식한 중은 천천히 읍을 한 뒤 문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구양적은 중이 그곳을 떠나려 하자 모용쟁에게 눈짓을 하고는 둔갑술을 써서 중의 맞은편에 비스듬히 섰다. 중은 그의 이러한 거동에 무척 놀란 듯 '어이쿠' 하는 소리를 내더니 정중하게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그러나 그는 구양적을 살핀 뒤 다시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부처 앞에서 예를 올리듯이 사람들 앞에서 머리를 숙이오." 그건 자기는 구양적과 다툴 생각이 없으니 길을 비켜 달라는 뜻이었다. 구양적이 말했다. "이 구양적은 먼 사막에서 왔사온데 대사님의 무공이 대단하신 것을 보고 아주 탄복했습니다. 대사님의 가르침이 있기를 바랍니다." 중은 다시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소승은 남한테 손을 댈 생각이 없었소. 하지만 그 세 시주님들이 소승을 핍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어 그리 되었소이다." 구양적이 웃으며 물었다. "대사님의 선향(仙鄕)은 어디신지요?" 중이 예를 갖추며 대답했다. "소승은 대리(大理)에서 살고 있소이다." 구양적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의 스승의 원수가 대리 사람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생의 말에 의하면 그 중은 일속이라 부르며 무공이 대단하다고 했다. 이 중이 바로 사문(師門)의 원수인 그 일속이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구양적은 저도 모르게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꼈다. '만일 네 놈이 사문의 원수라면 네 놈과 싸울 수밖에 없다. 만일 내가 이 놈을 죽이게 된다면 나의 사부님은 더 이상 복수심에 사로잡혀 고통스러워 하지 않으셔도 되고, 밤낮 불안에 떨며 침식을 거부하는 일도 없으실 게 아닌가.' 구양적이 생각을 감추며 다시 물었다. "대사님께선 법호을 어떻게 부르십니까?" 중이 대답했다. "소승의 법호는 일속이라 합니다." 모용쟁은 중의 이름이 일속이란 말을 듣고 긴장되었다. 구양적의 사부가 바로 이 일속을 가장 미워하고 있었던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모용쟁은 얼른 구양적의 기색을 살폈다. 그는 자기의 추측이 맞아떨어지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구양적은 복잡한 심정을 감추며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대사님께선 대리 사람이십니까?" "그렇소이다. 소승은 대리 사람입니다." 일속의 대답에 모용쟁이 웃으며 참견했다. "제가 듣건대 대리는 아주 아름다운 고장으로서 도처에 다화(茶花)가 피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가요?" 주막 안에 있던 사람들은 기막히게 아리따운 처녀가 중한테 대리에 대해 묻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 처녀는 무슨 생각에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중은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머리를 숙인 채 대답했다. "여시주님, 제가 사는 대리에는 실로 산마다 다화가 만발하여 천자만홍을 이루고 있습니다. 화간지하(花間枝下)에도 학문이 있을 정도이지요." 모용쟁이 말을 받았다. "훌륭하군요. 전 대사님과 함께 대리에 가서 천하에 이름난 다화를 구경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일속은 놀라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소승은 줄곧 한운야학(閑雲野鶴)을 벗하고 자유자재로 사는 데 습관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처녀와는 동행할 수 없는 줄로 압니다. 출가한 사람이 아가씨와 동행하려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있을 줄로 압니다." 모용쟁은 고소한 기색으로 덧붙였다. "당신은 출가한 사람이신가요? 제가 보기엔 출가한 사람 같지 않은데요. 제가 보기에 당신은 귀공자 같아요. 당신의 성씨는 단씨가 아닌가요?" 구양적은 모용쟁도 사부의 말씀을 들었으므로 이 중이 정말로 원수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는 것임을 짐작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용쟁이 그 중과 이야기를 나누도록 내버려두었다. 일속이라는 중이 탄식조로 말했다. "소인은 중이옵고, 중은 출가 후에는 세속과 인연을 끊게 되지요. 그러므로 더는 세속과 한데 섞이지 않으며 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별로 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모용쟁은 속으로 생각했다. '네 놈이 잘도 빠져 나가는구나. 내가 네 성을 물은 것은 네 놈이 구양적 사문의 원수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요리조리 말머리를 돌리는 걸 보니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모양이지?' 그녀는 소리 내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사님, 제발 웃기지 마세요. 제가 보기에 대사님께선 가문의 이름과 성씨를 깊이 숨기려 하고 있어요. 제가 듣기에 대리의 단씨는 황족으로 그곳에서 줄곧 대단한 세도를 부려 왔다고 하더군요. 대사님께서는 대리 사람인데다가 이처럼 기품이 있으신 걸로 보아 승인이라기보다는 아주 부귀한 중인(中人) 같아 뵈는군요. 대리에 서 가장 부귀한 사람들이 대리 단씨라고들 하던데, 제가 보기 에 대사님은 필시 단씨 집안 분이신 것 같아요." 일속이 대답했다. "죄과로다. 죄과로다. 중은 옛것을 잊어서는 안 되니 자연히 우리 가문의 성씨를 알고 있소이다." 구양적이 입을 열었다. "단 공자(段公子), 내가 보건대 당신은 뛰어난 인재인데다가 무공도 대단하고 기예도 놀랍습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무엇 때문에 즐거운 생을 포기하고 불문의 제자가 되셨습니까?" "소인이 지난날을 돌이킨다면 그것은 큰 불행입니다. 불가에서도 인생을 말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내세에 대해서이지요. 소인은 세속에서 살 때 억울한 빚을 적지 않게 지었기에 일심으로 그 빚을 씻으려고 출가하였으며 법명을 일속이라 지었던 것입니다. 이 일속이란 이름은 소인이 이미 모든 세속사와 인연을 끊었다는 의미지요. 하지만 마음속에 아직 석연치 못한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마음속에 일념이 있는지라 육근(六根)을 깨끗이 없애지 못했습니다. 육근을 깨끗이 없애지 못한 까닭에 정과(正果)를 이를 수 없는가 봅니다. 소인의 일생은 아마 불행할 것입니다……." "공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무슨 속 깊은 사연이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공자께서는 혹 지난날 살인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말하자면 공자께서 일찍이 남을 해쳐 죽음의 빚을 지지 않았는가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제대로 짚으셨습니다." 일속이 침울하게 대답하자 모용쟁이 웃으며 말했다. "일속 대사님께서 이 종남산에 오신 것도 그 《구음진경》을 빼앗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소승은 다만 호기심 때문이지 경서를 쟁탈할 생각은 없습니다. 듣건대 전진교의 교주 왕중양이 천하에 드문 기경을 얻었다고 하기에 어떤 것인가 알아보려는 것뿐입니다." 일속의 대답에 구양적이 웃으며 말했다. "소인도 대사님과 마찬가지로 전진교 교주가 갖고 있는 《구음진경》이 어떤 책인가 보려고 합니다. 대사님께서 소인과 같은 생각을 품었으니 동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일속은 망설였다. 모용쟁은 그냥 생글생글 웃으며 표정이 밝은 데 반하여 구양적이란 사람은 어두운 얼굴에 기색이 침울했다. 그런데 이 두 사람 모두 중원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전진교의 교주를 만나러 중양궁에 가는데 두 사람과 함께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심사숙고한 끝에 중의 처지로서 아무러면 어떻겠나 싶어 그들과 동행하기로 결심했다. 세 사람은 주막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 곧장 중양궁으로 향했다. 종남산은 웅위로운 큰 산이어서 몇십 리나 되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걸어야 했는데 면면히 이어진 산맥은 실로 장관이었다. 세 사람은 함께 부지런히 걸었다. 머리를 돌려 보니 울창한 삼림 경관이 사막과는 판판 달라 보였다. 그들이 아름다운 풍경에 기분이 상쾌해져 있는데 때마침 누군가의 노랫소리가 들려 왔다. 노랫소리 는 바람에 실려 맞은편 산허리에 가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천하가 혼란한들 무슨 상관이며 두 황제가 잡혀 간들 무슨 대수라 그 사람 음란한 짓에 열심이거니 대귈에선 술로 밤을 지새네 술 취해선 풍악을 잡히고 술이 깨면 화초를 구경하며 기쁠 때도 향락을 찾고 다망한 중에도 한가로움 탐하네 임금이 이 때문에 정사를 게을리하고 그림이나 그리고 풍물이나 구경하면서 술로 명주 적삼이나 더럽히니 이것이 바로 취해 있는 임안(臨安)이라네. 이 노래는 대송조 황제를 빗대어 욕한 것이었다. 백성들은 나라를 지켜 내지 못하고 강산이 반조각이 난 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는 데 황제는 나라는 돌볼 생각을 않고 향락에만 빠져 있는 것이다. 황제가 여인을 희롱하고 밤마다 연회에서 곤드레 만드레 취해 있는 동안 백성들은 뜻을 끊고 강산을 잃고 질곡에 허덕여야 했다. 그야말로 금 사람들의 말발굽 아래서 하루도 편한 날을 보낼 수가 없었다. 구양적은 비록 가사의 뜻은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 구성진 목소리와 구슬픈 가락에 큰 감동을 느꼈다. 그는 모용쟁과 일속 스님의 표정이 숙연해지는 것을 보고 물었다. "모용 낭자, 저 사람이 뭐라고 노래하고 있는 거요?" 모용쟁이 찬찬히 설명했다. "이건 아마도 중양궁 사람이 부르는 노래 같아요. 대송조의 황제가 날마다 음락(淫樂)에 빠져 있고 백성들은 막심한 고난 속에 헤매고 있구나, 이런 나날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되랴 하는 내용이에요. 이 시사(詩詞)에는 애국우민(愛國憂民)의 뜻이 담겨 있어요." 그녀의 말에 숙연해진 구양적은 속으로 생각했다. '보아하니 주사(朱砂)를 가까이 하면 붉은색에 물들고, 먹을 가까이 하면 검은색에 물든다는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는 것 같군. 왕중양이 애국자라고 하더니 이 종남산이 정기로 차 있는 걸 좀 봐. 내가 그와 싸워 《구음진경》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난 그 사람을 존중하고 싶다. 만일 그 사람의 무공이 나만 못 하다면 난 그를 죽이지 않겠어.' 이때 일속 스님이 감탄조로 입을 열었다. "나무아미타불……. 열 보 이내에 방초(芳草)가 있다고 했은즉 소승은 그 말을 믿소이다. 이 왕중양은 필시 군자이고 《구음진경》을 소장하고 있음도 틀림없는 사실이외다." 모용쟁은 노래의 가사를 음미하다가 갑자기 구양봉 생각이 났다. 그가 사막에서 달을 보며 멍청히 서서 시를 읊조리던 일이 떠오르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북국으로 떠난 그가 지금은 살아 있기나 할까? 만일 살아 있더라도 책벌레라서 별로 좋은 일이 없을 거야. 그가 이곳에 있다면 아마 저 시에다 몇 구절 더 보태기도 하고 풀이하거나 평가하기도 할 텐데. 그런 이야기를 듣노라면 이처럼 적적하진 않을 텐데.'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어느 틈에 구양봉을 그리워하고 있는 자신이 몹시 부끄럽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녀는 콩콩 뛰는 가슴을 진정하려 애쓰며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옆에 있는 두 사람도 각자의 생각에 잠겨 그녀의 심사를 눈치채지 못했다. 제20장 《구음진경》을 찾아서 산꼭대기에 이르니 아주 오래 된 가파른 길이 나타났다. 힘들게 오랫동안 걸어서야 중양궁에 당도했다. 중양궁 앞에는 수많은 요새들이 늘어서 있고 그 뒤에 큰 암석 두 개가 서 있었다. 바로 중양궁의 출입구였다. 몇몇 사람들이 이곳에서 파수를 보고 있고 그 가운데 한 젊은 도사가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산 위로 오르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그들이 외지 사람임을 알아내고 한걸음 나서며 공손하게 말했다. "이 후배는 중양 사부님 문하에 있는 큰 제자 마옥(馬鈺)이올시다. 여러분들께선 먼 길을 오신 듯한데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구양적은 일속 스님이 먼저 말하게 하려고 입을 열지 않았다. 일속은 구양적이 가만히 있자 한걸음 나서며 예를 올리고 말했다. "소승은 대리에 있는 천룡사(天龍寺)의 중 일속이라 합니다. 듣자니 중양 선생께서 천하의 무학 밀서인 《구음진경》을 얻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이 마옥이란 사람은 비록 나이는 젊으나 정인 군자였으므로 일속 스님에게 공손하게 대답했다. "사부님께서는 실제로 한 부의 무학밀서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얻게 될 때 실로 공교로운 일이 있었는데 말씀드리자면 자연히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사부님께서는 최근에 이 경서에 대해 늘 한탄해 마지않고 계신데 무슨 연고인지 모르겠습니다. 고승께서는 운남 대리 사람인데, 사부님 말씀에 의하면 천하의 무학 가운데 한 갈래는 대리에 있으며 그들의 무학이 아주 깊어 우리 중원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고승께서 먼 곳에서 오셨는데 우리 제자들을 가까이 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양적은 한켠에 서서 마옥이 하는 말을 듣고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 사람 말하는 품이 도리가 있고 시원시원하긴 한데 그의 무공도 말하는 것만큼 훌륭한 것일까? 만일 중양궁이 잘생긴 이 사람처럼 말만 번지르르하다면 그 《구음진경》은 꼭 내 손에 들어오고 말 거다.' 일속은 구양적이 한쪽에서 웃고 있는 것을 보곤 그를 무시한 듯한 느낌이 들어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이분은 서역 대사막에서 온 고수 구양적이라는 분인데 역시 《구음진경》을 보고자 먼 길을 왔소이다. 한데 전진교에서 우리한테 이 경서를 보여 줄 것인지 알 수 없구려." 마옥이 대답했다. "사부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으나 사부님의 인품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굳이 그것을 숨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마옥은 읍을 하며 세 사람에게 산으로 올라가자고 공손하게 청했다. 산은 오를수록 험준해졌다. 발 아래의 봉우리들은 운무에 휩싸여 보이지 않았다.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운무는 내달리는 괴물처럼 사뭇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세 사람은 그러한 정경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로지 마옥을 따라 걸음을 재촉하여 커다란 궁전 앞에 도착했다. 바로 말로만 듣던 중양궁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이 궁전은 꽤나 웅위로워서 수십 칸이나 되는 길다란 집에 용마루가 높이 솟은 것이 실로 장관이었다. 하지만 기와를 얹은 지붕은 그다지 호화스러운 편이 아니었다. 창문은 크기는 했지만 문창호도 평범한 것이었다. 다만 궁전 앞에 있는 명종정단(明鍾淨壇)만이 이곳이 도사들이 수신 양성을 하는 장소임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마옥은 문앞에 이르자 세 사람에게 그곳에서 기다려 줄 것을 부탁하고는 안에 들어가서 소식을 알렸다. 세 사람은 조용히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다소 지루함을 느낄 무렵 갑자기 커다란 웃음 소리가 들려 왔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느 틈엔지 남자 한 사람이 나와 섰는데 아주 괴상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나이는 스무 살 남짓 되었을까? 어린애 같은 차림에다 머리는 더욱 희한하게 백세변자(百歲 子)를 길다랗게 땋아 늘인 모습이었다. 송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머리를 외가닥으로 땋아 위에 틀어 얹어서 어른이 되었다는 표시를 했다. 어른이 되면 남녀는 성례(成禮)하여 가정을 이루고 가실대도(家室大道)를 행하게 된다. 이 사람은 완연한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꾸민 모양은 어린애와도 같았던 것이다. 구양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이곳에서 무얼 하고 있소?" 구양적의 물음에 그는 묘한 소리로 웃었다. '히히, 이 사람 봐, 히히." 그는 히히거리기만 할 뿐 구양적이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스꽝스러운 그의 모습에 가까스로 웃음을 참고 있던 모용쟁이 구양적과 똑같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예요? 이곳에서 뭘 해요?" 젊은이는 말없이 눈까풀을 까뒤집어 보였다. 그러자 눈에 흰자위만 남고 검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 괴상한 추태에 구양적과 일속도 참지 못하고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한참이나 웃었다. 그들이 웃음을 그치자 젊은이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실컷들 웃었소? 그래 그렇게도 우습단 말이지요?" 구양적과 일속 스님은 더는 웃지 않았다. 일속 스님이 그에게 예를 갖추며 입을 열었다. "소승이 실례를 했소이다." 그러자 젊은이가 대답했다. "됐소. 실례면 실례지, 누군들 실례가 없겠소? 나도 늘 사람들한테 실례를 저지르고 있소. 이번 일도 그렇소. 한데 당신들은 무엇하러 왔소?" "소승은 중양 진인을 뵈러 왔소이다." 일속의 말에 젊은이는 펄쩍 놀랐다. "아니, 안됐구려, 안됐어. 그대들도 그분을 찾아왔단 말씀이오?" 세 사람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다 됐구려, 다 됐어. 당신들은 그분을 찾아 뭘 하려는 거요? 나도 벌써부터 와서 그 사람을 찾고 있었소. 내가 그 사람을 3년이나 찾았다는 걸 당신들은 알고 있소? 사람들은 정성이면 돌 위에도 꽃이 핀다고 말들을 합니다만, 내 보기에 왕중양이란 사람은 돌도 아니고 나무토막일 따름이오." 구양적은 그의 입에서 왕중양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거푸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자 은근히 기뻤다. '왕중양이란 사람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닌 모양이다. 우리가 종남산까지 오면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입만 벌리면 칭찬이 자자했었고 모두가 좋은 말만 하려고 했지. 완전무결한 사람이 없고 순금이란 없는 법인데 그 사람이라고 그렇게 좋을 수가 있겠는가? 만일 그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칭송하는 그런 사람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그에게서 《구음진경》을 빼앗아 낼 수 있단 말인가? 하 지만 드디어 이런 사람도 만나게 되었구나. 저 사람은 왕중양에 대해 탄복하기는커녕 나무라기까지 하지 않는가.' 구양적이 입을 열었다. "맞아요. 왕중양이란 사람은 결코 대단한 사람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젊은이는 이 말을 듣자 펄쩍 뛰더니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넌 웬 놈이기에 감히 그분한테 불경스런 말을 하는 거냐? 그래 네 놈이 그분보다 더 낫단 말이냐? 만일 네 놈이 그분보다 더 낫다면 내가 네 놈을 사부님으로 모실 테다. 어떤가? 허나 만일 네가 그분보다 못하다면 내가 네 놈을 땅바닥에 넘어뜨려 놓고 용서를 빌게 할 테다."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구양적은 난감해졌다. 이 사람은 기실 왕중양을 대단히 숭배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이곳에 와서 그를 사부로 모시려고 떼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왕중양은 그가 3년 동안이나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제자로 받아 주지 않았던 것이다. 모용쟁이 입을 열었다. "현형(賢兄)께서는 함자가 어떻게 되시나요?" 그가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했다. 그는 모용쟁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낭자께선 훌륭한 분이오. 얼핏 보아도 그런 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