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논검1부(서독구양봉편) - 22편 (22/64)
상관위 방주가 거지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이름은 상관위(上官威)다. 내 이름이 네 이름보다 못하구나." 그리고 방주는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에게 분부했다. "가삼(賈三) 동생, 자네 맞은편 가게에 가서 옷을 좀 사 오게. 최고급으로 말이네." 가삼은 영문을 몰라 물었다. "방주님, 누구의 옷입니까? 방주님의 옷이 더러워져서 갈아입으시려구요?" "바보 같은 소리! 내가 무슨 옷을 갈아입어? 이 아이, 아니 이 구 공자님의 옷을 보란 말이다. 네가 찢어서 볼썽사납게 되었잖아. 어서 가서 새 옷을 사다가 갈아입혀 줘라." 가삼은 내막을 알 수 없었으나 방주의 명령이므로 더 묻지 못하고 나는 듯이 달려갔다. "그래, 형과 누이동생은 어디 있니?" 상관위가 아이에게 물었다. 그 말에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우는 소리로 대답했다. "모두…… 남의 집에서 삯일을……." "남의 집이라니? 누구네 집에서?" 상관위의 기색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장대선(張大善)네 집에서 일해요. 형은 심부름을 하고 누이동생은 종으로 있어요." "그 장대선이란 사람이 너희들을 잘 대해 주더냐?" 상관위의 물음에 구천인이라는 아이는 대답도 못하고 엉엉 울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모양이었다. "내가 네 형과 누이동생을 데려오면 어떨까?" "안 돼요. 장대선이란 사람이 가만 놔두지 않을 거예요. 우릴 때려죽일 거예요." 아이는 놀라서 부르짖다시피 했다. "그 사람이 네 형에게 은자를 얼마나 주지?" 상관위가 물었다. "은자는 안 주고 그냥 밥만 줘요." 어린아이의 대답에 상관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네 형을 불러다가 내 일을 돕게 하고 네 누이동생도 불러다가 내 일을 돕게 해서 매달 백은 30냥씩을 주면 어떨까?" 상관위의 말에 구천인의 눈이 둥그래졌다. 그는 의아한 듯이 말했다. "지금 날 놀리는 거죠?" "내가 왜 널 놀리겠니?" 상관위는 그러면서 몸을 돌려 옆에 있는 키 큰 사나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키 큰 사나이가 은자 한 정(錠)을 꺼냈다. 상관위는 그 은자를 손에 들고 아이에게 말했다. "이건 50냥짜리 은괴란다. 가져가서 형과 누이동생에 보여 줘라. 그래도 그들이 안오겠다고 하겠느냐?" 이렇게 큰 은자를 난생 처음 본 구천인은 너무나 놀랍고 기뻐서 더듬더듬 대답했다. "제……제가 마……말하면 꼭 올 거예요." 그러자 상관위는 옆사람에게 분부했다. "자네가 장대선 씨에게 말해서 이 아이의 형과 누이동생을 우리 방(幇)으로 데려오게." 지시를 받은 자는 즉시 일어서서 장대선을 찾아갔다. 구양적 일행은 아무리 생각해도 오리무중이었다. 이 사림이 가는 곳마다 척척 시사(施舍)를 일삼는 보살(菩薩)이란 말인가? 아니라면 왜 저러는 걸까? 소씨 거렁뱅이 역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 저 사람이 왜 저러는 걸까? ― 제2권에 계속 ― 제13장 철장방의 패배 이윽고 계단에서 저벅저벅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리더니 아홉 사람이 올라왔다. 웃고 떠드는 것으로 보아 기분이 아주 좋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이층에 두 무리의 손님이 있는 것을 보았다. 구양적네 세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꺼리지 않는 눈치였으나, 자기들과 맞은편에 앉아 있는 동남쪽 창문가의 식탁을 건너다보고는 금세 표정이 흐려졌다.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방주님, 자리를 바꾸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복판에 선 사람이 대답했다. "괜찮아, 우리들이 여기 앉으면 돼." 먼저 말을 꺼냈던 사람이 공손히 대답한 뒤 구양적네가 앉은 곳에서 의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걸 소맷자락으로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닦은 후 자기네 방주에게 앉도록 권하고, 주인을 불러 술과 안주를 청했다. 주인이 물러가자 아홉 사람은 조용히 앉아서 술과 안주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구양적은 이 아홉 사람들 중 적어도 일곱 사람은 무예가 뛰어나다고 짐작했다. 그들 중 가장 억센 기상을 지닌 사내가 상관위 방주로 마흔 고개를 넘은 것 같았다. 무쇠로 부어 만든 것 같은 시커먼 손만 보아도 출중한 장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대뜸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위층에 올라올 때만 해도 웃고 떠들어댔지만, 식탁에 모여 앉은 거지 무리를 발견한 뒤로는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가운데 앉은 방주가 한마디했다. "빨리 먹고 떠나자." 그는 다시 입을 꾹 다물고 안주가 오기만 기다렸다. 안주가 오자 다들 게걸스레 먹어댔다. 그들 방주만 먹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가 먹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술집 주인이 술단지를 하나 가져다 그의 앞에 놓았다. 이 상관위 방주란 사내는 술단지 뚜껑을 열고 코로 냄새를 맡았다. 이때 문어귀에서 꼬마 사내아이 하나가 달려 들어왔다. 한눈에 거지 아이임을 알 수 있었다. 아이는 넝마 같은 옷을 입고 시커먼 두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상관위 방주 앞을 지나쳤다. 그곳을 지나 거지 무리가 모여 앉은 식탁으로 달려가 먹을 것을 구걸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무 서두르다가 그만 술단지를 잡은 방주의 팔을 툭 쳤다. 술단지가 바닥에 떨어지는 걸 보고 거지애는 겁이 나 서 비명을 질렀다. 술단지가 바닥에 부딪쳐 박살이 나려는 순간, 방주가 히죽 웃으면서 발끝으로 술단지를 차 올렸다. 그러자 술단지가 솟구쳐 올라 다시 머리 위쪽으로 날아 내려오는 게 아닌가? 그는 대뜸 두 손을 뻗어 술단지를 받았다. 상관 방주 옆에 있던 사내가 거지 아이를 냉큼 붙잡았다. "네 애비 상이라도 당했느냐?" 거지 아이는 겁에 질려 말은 못하고 질질 울기만 하더니 땅바닥에 꿇어 엎드려 살려 달라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사내는 방주가 말은 안 하지만 자기가 거지 아이를 한바탕 때려 줄 것을 바란다고 여겼는지, 일어서서 큰소리로 꾸짖었다. "네 놈을 때려죽이지 않으면 나중에도 말썽을 부릴 거야!" 그 사내는 주먹을 들어 거지 아이를 때리려 했다. 그 순간 상관위 방주 옆에 앉아 있던 체구가 큰 젊은이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제지를 했다. 그는 거지아이를 보면서 몇 년 전 제 모습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날도 상관위 방주가 주루에 들어왔을 때 다른 쪽에 개방의 어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구천인은 그 당시 구걸로 연명해 가고 있었다. 상관위에게 구걸을 한다는 것이 그만 술단지를 와락 쏟아부어 혼찌검이 날 판이었다. 그때 갑자기 상관위 옆에 앉아 있던 사내가 벌떡 일어나면서 구천인의 옷자락을 와락 낚아챘다. 거지 아이의 너덜너덜한 옷자락이 뭉청 뜯겨져 나갔다. 거지 아이는 엉엉 울면서 대들었다. "내 옷을 내놔요, 옷을 내놔요!" 그 사내가 소리를 꽥 질렀다. "듣기 싫어! 네가 우리 방주님의 술을 쏟았지만 널더러 술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다. 그까짓 넝마조각이야 찢어지면 어떠냐? 어디 한번 된매를 맞아 볼래?" 옆의 사내가 매를 들려는데 상관위 방주가 말리더니, 몸을 낮추면서 친절하게 물었다. "네 이름이 뭐냐?" 거지 아이는 방주가 몸을 낮추고 자기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자 울음을 그치고 겁먹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거지 아이는 입속말로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구천인( 千 )이라고 해요." 상관위 방주가 유쾌하게 웃어젖히며 말했다. "훌륭한 이름이로구나! 천인이라, 그럼 네 키가 아주 크겠구나, 허허허!" 거지 아이가 정색하며 대꾸했다. "내 키는 별로 안 커요. 난 두 번째로 크지요. 내 형은 구천장( 千丈)인데 나보다 더 커요. 내 여동생은 구천척( 千尺)인데 나보다 키가 작구요." 한쪽에서는 소씨 거렁뱅이를 비롯한 개방파 사람들이 상관위의 태도를 주시해 보고 있었다. 만에 하나 상관위가 험악하게 군다면 소씨 거렁뱅이는 손에 쥐고 있는 젓가락을 날려 그 사내의 팔뚝에 정확히 꽂았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상관위 방주가 상냥한 기색으로 거지 아이에게 말을 건네자 소씨 거렁뱅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상관위 방주가 거지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이름은 상관위다. 내 이름이 네 이름보다 못하구나." 그리고 방주는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에게 분부했다. "가삼(賈三) 동생, 자네 맞은편 가게에 가서 옷을 좀 사 오게. 최고급으로 말이네." 가삼은 영문을 몰라 물었다. "방주님, 누구의 옷입니까? 방주님의 옷이 더러워져서 갈아입으시려고요?" "바보 같은 소리! 내가 무슨 옷을 갈아입어? 이 아이, 아니 이 구 공자님의 옷을 보란 말이다. 네가 찢어서 볼썽사납게 되었잖아. 어서 가서 새 옷을 사다가 갈아입혀 줘라." 가삼은 내막은 알 수 없었으나 방준의 명령이므로 더 묻지 못하고 나는 듯이 달려나갔다. "그래, 형과 누이동생은 어디 있니?" 상관위가 아이에게 물었다. 그 말에 아이는 눈물을 홀리며 우는 소리로 대답했다. "모두…… 남의 집에서 삯일을……." "남의 집이라니? 누구네 집에서?" 상관위의 기색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장대선(張大善)네 집에서 일해요. 형은 심부름을 하고 누이동생은 종으로 있어요." "그 장대선이란 사람이 너희들에게 잘 대해 주더냐?" 상관위의 물음에 구천인이라는 아이는 대답도 못하고 엉엉 울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모양이었다. "내가 네 형과 누이동생을 데려오면 어떨까?" "안 돼요. 장대선이란 사람이 가만 놔두지 않을 거예요. 우릴 때려죽일 거예요." 아이는 놀라서 부르짖다시피 했다. "그 사람이 네 형에게 은자를 얼마나 주지?" 상관위가 물었다. "은자는 안 주고 그냥 밥만 줘요." 어린아이의 대답에 상관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네 형을 불러다가 내 일을 돕게 하고 네 누이동생도 불러다가 내 일을 돕게 해서 매달 은 30냥씩을 주면 어떨까?" 상관위의 말에 구천인의 눈이 둥그래졌다. 그는 의아한 듯이 말했다. "지금 날 놀리는 거죠?" "내가 왜 널 놀리겠니?" 상관위는 그러면서 몸을 돌려 옆에 있는 키 큰 사나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키 큰 사나이가 은자 한 정(錠)을 꺼냈다. 상관위는 그 은자를 손에 들고 아이에게 말했다. "이건 50냥짜리 은괴란다. 가져가서 형과 누이동생에 보여 줘라. 그래도 그들이 안 오겠다고 하겠느냐?" 이렇게 큰 은자를 난생 처음 본 구천인은 너무나 놀랍고 기뻐서 더듬더듬 말했다. "제……제가 마……말하면 꼭 올 거예요." 그러자 상관위는 옆사람에게 분부했다. "자네가 장대선 씨에게 말해서 이 아이의 형과 누이동생을 우리방(幇)으로 데려오게." 지시를 받은 자는 즉시 일어서서 장대선을 만나러 갔다. 소씨 거렁뱅이의 얼굴에 의혹의 그림자가 얼핏 스쳐 지나갔다. '흥, 도대체 저 사람이 왜 저러는 걸까? 자기가 뭐 보살(菩薩)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철장방의 방주 상관위가 어린아이에게 그토록 부드럽고 정답게 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괴이하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철장방' 하면 강호에서 악명 높기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강호의 백도(百道)나 흑도(黑道)를 막론하고 타매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상관위는 이 악명 높은 철장방의 방주로 흉악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인물이 아니던가. 그런 상관위가 오늘 왜 이렇게 곰살스럽게 구는 것일까. 상관위가 아이를 자리에 앉히자 부하들 중 하나가 소리쳤다. "주인 어디 있어? 당장 이리 와 봐!"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술집 주인이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철장방의 위엄을 알고 있는지 주인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굽신거렸다. "무슨 일인지 그저 분부만 하십쇼, 방주 나으리." "이 술단지에 독을 넣었지?" 그의 말에 술집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의 안색이 일제히 변했다. 술집 주인은 대경실색하여 급히 손을 내저었다. "독이라니요? 아이고, 방주 나으리.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십니까? 이 술은 금방 꺼낸 상등술인뎁쇼. 그럴 리가 없습니다, 방주 나으리. 나으리께선 농담으로 하시는 말씀이라도 전 간이 떨어집니다요." 그러자 상관위는 듣기 싫다는 듯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질렀다. "이 아이와 부딪치는 바람에 술이 쏟아졌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 술에 독이 있는 줄도 모르고 고스란히 당할 뻔했다. 내가 이 술을 마시고 죽어 나자빠졌어야 네 속이 후련했을 텐데 말야!" 상관위는 손을 뻗쳐 술집 주인에게 일장을 갈기려 했다. 철장방 방주의 손바닥에 한 번만 맞아도 목숨이 끊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술집 주인은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 "고정합쇼. 방주 나으리, 고정합쇼. 소인이 가서 영문을 알아보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어쨌다는 거냐?" 상관위는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술에 독이 있다는 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말이냐? 내가 할 일이 없어 네 따위와 농담이나 하자는 건 줄 알아? 이 상관위가 네 놈에겐 그렇게 실없는 놈으로 보이느냐?" 상관위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미는지 눈을 부라리더니 단지를 번쩍 들어 일격을 가했다. 그러자 바닥은 순식간에 술천지가 되었고 술에서는 '칙칙' 하고 거품 끓는 소리가 났다. 독이 든 게 분명했다. 술집 주인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할말을 잃은 듯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이래도 잡아뗄 테냐?" 주인은 찍소리도 못한 채 술이 괸 바닥만 멍청히 바라볼 뿐이었다. "감히 우리 방주를 독주로 해치려 들다니! 이 놈이 대관절 담이 얼마나 크기에 이런 짓을 한 거야?" 상관위 옆에 있던 카 큰 사나이가 비아냥거리며 일어서더니 다짜고짜 술집 주인의 멱살을 거머쥐었다.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술집 주인은 변명하려고 정신을 가다듬었으나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두서없이 더듬거리기만 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의심만 가중시켰다. 키 큰 사나이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비수를 빼어 들고 소리쳤다. "네 이 놈! 이래도 딴소리를 할 테냐? 누가 한 짓인지 당장 이실직고 하지 않으면 단칼에 네 놈 숨통을 끊어 버릴 테다." 이때 전체 청우루의 주인이 위층에서 들려 오는 시끌벅적한 소리에 어떤 하릴없는 놈들이 소란을 떠는가 싶어 돼지처럼 비대한 몸을 이끌고 올라왔다. 그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아이고, 야단났네. 강호의 패거리들을 건드려 놓았으니 이 주루는 이제 요절나게 생겼구나.' 그는 속으로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겉으로는 사람 좋은 웃음을 띄우며 빌기 시작했다. "손님, 제발 고정하시지요. 무슨 일인지 몰라도 못마땅한 게 있으시면 분부만 내리십쇼. 당장 시정하겠습니다요. 그저 분부만 합쇼." 그러자 키 큰 사나이는 이층의 술집 주인은 떼밀어 버리고 이번엔 전체 주루의 주인인 뚱뚱보의 멱살을 거머쥐었다. "그래 네가 이 주루의 주인이렷다? 좋다. 그럼 너하고 시비를 가려 보자." "이러지 맙쇼. 제발 이러지 맙쇼. 어떤 분부라도 기꺼이 시행하겠으니 제발 이 멱살은 좀 놔 줍쇼." "이깟 정도로 웬 엄살이냐. 목숨을 부지하고 싶거든 사실대로 말 해! 대체 어떤 놈의 짓이야?" 이때 별안간 누군가 큰소리로 비웃었다. "저것들 좀 보라지. 도저히 눈뜨고는 못 봐 주겠군. 이거야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일 아닌가? 한낱 계명구도(鷄嗚狗盜) 무리에 지나지 않던 철장방이 하루아침에 득의양양 사람 대접을 받겠다는 거야 뭐야?"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소씨 거렁뱅이였다. 그는 한 손에 술잔을 든 채 게슴츠레한 눈으로 계속 떠들어댔다. 철장방 패거리들은 일제히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씨 거렁뱅이를 비롯하여 한쪽 탁자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개방의 사람들이었다. 철장방 패거리들은 그들이 개방의 보통 제자들이 아니라 수뇌 인물들임을 술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알아보았다. 그 속에는 개방의 새로운 방주인 소씨 거렁뱅이는 물론 근래 강호에서 크게 명성을 떨치고 있는 홍칠도 끼여 있었다. 홍칠이 말석에 앉아 있는 걸로 보아 소씨 거렁뱅이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신분이 모두 홍칠보다 높은 모양이었다. 철장방 패거리들로서는 그들과 부딪치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사실 술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들을 발견하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했었다. 그랬던 것을 방주 상관위가 눌러앉히는 바람에 마지못해 주저앉았는데 결국 이런 식으로 얽혀 들고야 만 것이다. '이거 야단났군.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상문성(喪門星) 소씨 거렁뱅이의 노여움을 샀다가는 큰 화를 당하는데.' 철장방 사람들은 찍소리도 못한 채 불안에 휩싸였다. 그렇다고 철장방 방주인 상관위가 그냥 못 들은 척 물러설 수는 없었다. "선배님, 우리 철장방을 너무 얕잡아 보시는 거 아닙니까?" "철장방이 도대체 뭔데? 내 일도 돌볼 새가 없는데 철장방이고 뭐고 그런 건 알 것 없고, 이거나 좀 보라구. 내가 입은 이 옷 어떤가? 멋지지?" 그의 말에 상관위는 벨이 뒤틀리는 것을 눌러 참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소씨 거렁뱅이를 향해 공손하게 읍하였다. "저희 눈이 멀지 않았다면 선배님은 소씨 나으리심에 틀림없으시지요?" 그의 말에 소씨 거렁뱅이는 손을 활활 내저었다. "선배님은 무슨 말라 비틀어진 선배님이냐? 그리고 무슨 놈의 나으리야? 난 거렁뱅이야! 소씨 거렁뱅이. 알겠지? 잘 기억해 둬라." 상관위는 소씨의 모욕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끝까지 눌러 참으며 은근히 응수했다. "선배님, 저희들 일에 선배님께서 간섭하시는 걸 보니 이 독주와 선배님네 개방이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싶군요?" 그러나 소씨 거렁뱅이는 그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상관위 앞으로 걸어와 바닥에 쏟아진 술을 보며 말했다. "관련은 무슨 개떡 같은 관련! 우리 개방은 강호를 떠다니면서 독을 쓰고 암살이나 하는 비열한 짓은 절대 안 한다. 우린 매사에 정정당당한 걸 좋아하지." 소씨 거렁뱅이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듣자니 한 달 전에 너희들 철장방 사람들이 태호(太湖)에서 어선 열두 척을 공격하여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았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게 사실이냐?" 상관위는 술에 독약을 넣은 게 바로 이자들이라고 단정했다. "소씨 거렁뱅이 나으리, 우리 철장방과 겨루어 보려고 찾아오신 듯하온데?" 그의 말에 소씨 거렁뱅이는 냉큼 탁자 위에 뛰어올라 쪼그리고 앉더니 아홉 명의 철장방을 내려다보았다. "네 말이 맞았다. 한번 겨루어 볼 생각인데 어떠냐? 이 거렁뱅이가 요즘 심기가 좋지 못하거든. 먹고 입고 자는 것까지 죄 남한테 간섭을 받으려니 심기가 편할 수가 있겠어? 아무래도 한바탕 운동을 해야 심기가 풀어질 성싶구먼. 상관위, 자네도 방주 나도 방주인데 우리 둘이 한판 붙어 볼까? 어때?" "그럼 그러지요." 상관위가 차갑게 대꾸했다. 그러자 상관위의 수하들이 일제히 달려들 기세가 되었다. 상관위는 얼른 제지했다. 개방의 고수들이 한 무리 앉아 있는데 그들 역시 무리로 달려들 경우 철장방이 패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재빨리 속으로 생각했다. '듣자니 소씨 거렁뱅이는 입은 칼날 같아도 마음은 무르다고 하니, 일 대 일로 싸우는 편이 이로울 것이다. 싸우다가 내가 진다 해도 설마 죽이기까지야 하겠어?' 한편 이 광경을 지켜 보고 있던 사람들은, 철장방 방주 상관위가 감히 천하에서 제일 큰 방(幇)인 개방의 방주 소씨 거렁뱅이와 겨루려 하는 것을 보고 그가 필시 초인적인 무공을 지니고 있는가 보다고 생각하였다.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해 있던 소씨 거렁뱅이는 뜻밖에도 상관위가 도전적인 자세로 나오자 이 기회에 단단히 혼찌검을 내주자고 작정했다. 그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탁자에서 뛰어내렸다. "강남 무림에 쌍어(雙魚), 음검(陰劍), 철장(鐵掌), 이 세 패거리가 있다는 건 일찍부터 들어 알고 있다. 내가 철장방 두목을 찾아 한번 속시 원하게 몸 좀 풀어 보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왔으니 잘됐다.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고 원망일랑 말아라." 그는 팔짱을 끼고 서서 마치 판소리나 하듯 목청을 빼며 사설을 엮어 내려갔다. 거렁뱅이 신세 한심타고 사람마다 비웃지만 세상일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 아니고말고. 타령하며 개 쫓으며 남들은 문전걸식하지만 유독 이 소씨 거렁뱅이만은 그뿐만이 아니네. 강산도 쉽게 변한다는 강산이개(江山易改)! 강산이개 요리만은 기가 막히게 잘해서 이름이 났더라, 천하에 이름이 났어. 소씨 거렁뱅이는 일순 사설을 멈추고 술잔을 집어 들더니 "얏!" 하고 소리를 지르며 한손을 모로 세워 칼로 내려찍듯 상관위를 향해 날렸다. 상관위도 만만치 않게 맞받아 소리를 지르며 공격 태세를 취했다. 철장방은 사문방파(邪門幇派)의 한 갈래로, 방주는 역대를 내려오면서 독특한 철장 무공을 익히게 되어 있다. 이 무공은 오로지 방주에게만 전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한다. 이 독특한 철장 무공은 반드시 한 단계 한 단계 순서와 절차를 밟아 가며 익혀야 한다. 4단까지 익히면 돌과 나무를 단번에 빠갤 수가 있다. 5단에 이르러 철장 한 장(掌)을 내리치면 돌과 나무가 겉은 멀쩡한 것 같지만 속은 그렇지 않아, 나무는 그 속이 톱밥처럼 변하고 돌은 절구질이나 당한 듯 가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