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논검1부(서독구양봉편) - 8편 (8/64)
"하하하! 그렇게 다 알면서 뭘 자꾸 캐묻는 거요?" 홍칠은 크게 웃으며 대꾸했다. 묘수인주는 혼자 생각했다. '이 놈은 먹을 것이 탐나서 이곳까지 왔구나. 어선방에서 음식을 좀 훔쳐먹었을 뿐이라면 대단한 일이 아니지. 하지만 이 놈이 다른 심보를 품고 왔다면 그건 간단한 일이 아니지.' 어쨌든 자기들 다섯 명을 안중에 투지도 않고 쥐새끼처럼 어선방까지 기어들었다는 생각을 하자 그는 이가 갈릴 정도로 분했다. 게다가 그 정도의 무공을 가진 자라면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이 뻔했다. 둘째가 묘수인주의 속마음을 알아채고 홍칠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곳을 제집 드나들듯 들락날락한 모양인데, 우리 다섯 사람을 죽은 자로 생각한 모양이구려." 홍칠은 걸려든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얼굴을 붉혀 가며 그들과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들의 노여움을 사면 더 이상 좋은 말로 구슬리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홍칠은 얼굴이 굳어진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큰 나으리, 둘째 나으리, 당신들 하고픈 대로 말해 보시오. 내가 다 받아들일 테니까." 홍칠은 다섯 사람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생사를 건 싸움을 벌여야겠다고 각오했다. '에이, 구양봉을 안 데려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어. 나 혼자라면 다섯 놈뿐만 아니라 황궁 놈들이 모두 달려든대도 두려울 게 없어! 내가 손을 쓰기만 하면 네깟 놈들이 바람을 타고 줄행랑을 놓는다 해도 도망가지 못할걸!' 그러나 그는 처음에 약속한 대로 구양봉을 돌봐 주어야 했다. 이때 다섯 사람의 주의가 구양봉에게 돌려졌다. 다른 것은 제쳐놓고 황제의 요리를 훔쳐먹으러 황궁에 들어온 것만 봐도 보통이 넘는 담력의 소유자였다. 홍칠은 말할 것도 없고 줄곧 침묵만 지키고 있는 이 사람도 천하 제일의 실력자임에 틀림없었다. 둘째 나으리가 말문을 열었다. "홍칠, 잔말 할 필요 없소. 당신이 우리 형제의 관문을 넘으면 보내 드리지. 어떻소?" 홍칠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네깟 놈들 손에서 벗어나는 게 무슨 대수냐? 네 놈들과 맞붙기만 하면 될 일인걸! 못 당해 내면 내빼면 되고. 하지만 이 멍청이는 혼자 몸을 뺄 수 없을 게 분명하니 내가 무슨 방도로 구해 준단 말인가?' 홍칠은 잠시 주저하며 궁리를 해 보았다. 그는 자기가 손을 쓰면 구양봉에게 해가 돌아가리란 걸 알고 있었다. 둘째 나으리가 또 질문을 던졌다. "이 사람은 누구요?" 홍칠은 구양봉이 서역에서 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내막을 알려 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이 구양봉과 붙으면 그의 실력이 드러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구양봉과 맞붙지 못하게 하려면 자신이 모든 걸 알아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분은 내 친구인데, 내가 이분을 청해 궁중의 음식을 맛보게 한 것이오. 당신들이 죄를 따져 사람을 죽이려거든 날 죽이시오. 이 사람과는 상관이 없소." 그러나 구양봉은 홍칠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하고 얼른 말했다. "난 구양봉이라고 하고 서역 백타산 출신이오." 묘수인주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당신은 서역에서 맛좋은 음식을 입에 대 보지도 못한 모양이군?" 그는 매우 득의양양하게 말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둘 모두 별볼일 없는 놈들이야. 한 놈은 거지에 불과하고 다른 한 놈은 황야에서 온 야만인이잖아.' 셋째 나으리가 음흉한 웃음을 띠고 말했다. "홍칠, 난 당신이 강호에서 유명한 사나이라는 걸 잘 알고 있소. 하지만 황궁에 들어오면 아무리 날고 뛰는 재주가 있어도 소용없지. 당신이 이곳에서 영웅 행세를 하려는 생각이라면 부질없는 짓이야." 그들과의 입씨름에 싫증이 난 홍칠은 가벼운 기합 소리를 내며 다섯 사람을 향해 덮쳤다. 대번에 다섯 사람 앞에 이른 그는 큰 나으리를 치는 척하다가 둘째 나으리를 향하여 주먹을 날렸고 곧이어 셋째 나으리에게 손을 뻗치는 동시에 넷째 나으리를 향해 발길을 날렸다. 마지막으로 손을 뻗어 다섯째를 한 방 먹였는데 이번에는 손을 좀 심하게 쓴 편이었다. 한마디로 그들 다섯 사람을 한주 먹에 때려부술 기세였으니 네까짓 놈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었다. 평소에 거들먹거리고 우쭐대는 데 익숙한 다섯 사람은 화가 나서 얼굴이 창호지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그들은 홍칠을 대번에 죽여 버릴 기세로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묘수인주는 칼과 국자를 능숙하게 다루었는데 그것은 그가 수년간 요리를 만들면서 익힌 재주였다. 그는 왼손에 칼을 들고 오른손에는 국자를 잡고 있다가, 칼을 휘둘러 홍칠의 살점을 도려내고 국자로는 그것을 건져 담으려 했다. 그가 칼을 빨리 휘두를 때면 국자가 느리게 움직였고 국자를 빨리 휘두를 때면 칼이 느리게 움직였다. 칼을 빨리 쓸 땐 힘이 무진장했고 국자를 빨리 휘두를 땐 그 힘의 쓰임이 정화했다. 과연 황궁 제일의 요리사다운 솜씨였다. 둘째 나으리는 입가에 냉소를 머금고 무기를 휘둘렀는데, 그가 쓰는 것은 이상하게 크고 긴 솔이었다. 이 솔에는 서른 여섯 갈래의 가는 철사가 꽂혀 있었다. 이 철사는 남쪽 변강에서 나는 적철로 만든 것으로서 굳고 질기기가 말할 수 없었다. 이 솔로 사람의 몸을 후벼 놓으면 죽진 않는다 해도 크게 상했다. 둘째 나으리가 휘두르는 솔이 쉭쉭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연신 홍칠의 몸에 와 닿으려 했다. 셋째 나으리는 아무런 무기도 사용하지 않고 주먹으로 홍칠을 때려눕히려 했다. 그의 괴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가마솥에 대고 한 방 먹이면 가마솥이 오그라질 정도였다. 그는 이를 악물고 아무말 없이 주먹만 휘둘렀다. 주먹이 공기를 스치는 소리가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넷째 나으리도 그에 못지않은 괴짜였다. 손을 뻗고 다리를 차는 하나하나의 동작이 매우 굼떴는데, 동작을 하면서 그는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어디 한번 맞아 볼래?" 이 소리는 홍칠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이 소리에 맞춰 자기의 동작을 조화시키는 수단이었다. 그는 자기 동작이 마음에 들었는지, 주먹을 뻗을 때마다 꼭 자기 주먹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 모양이 자신의 실력에 대해 매우 자신만만한 듯 보였다. 다섯째 나으리도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먼 옷에 서서 갈고리로 마른 낙엽을 건지는 모양을 지어 보였는데, 그 낙엽이란 다름아니라 홍칠이었다. 이 다섯 사람은 저마다 무예가 비범했고, 평소에 함께 싸운 적이 많아 손발이 척척 맞았으며, 동작이 세련되어 있었다. 다섯 사람이 동시에 손을 쓰는 데다 병기까지 사용하니 홍칠은 마치 철벽에 둘러싸인 듯했다. 홍칠은 자기가 선수를 치면 크게 이득을 볼 것으로 계산했었는데 실은 정반대가 되고 말았다. 다섯 사람과의 첫번째 싸움에서 그는 우세를 점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나 위험에 봉착했다. 쇠솔이 쉭쉭 뱀 소리를 내며 어찌나 악착스럽게 달라붙는지 하마터면 쇠솔에 머리를 긁힐 뻔했다. 다섯 사람은 그때까지도 구양봉을 내버려두고 있었다. 가끔 옆 눈으로 흘끔 건너다볼 뿐이었다. 만약 구양봉이 달려들면 그때는 두 패로 갈라져 구양봉과 싸울 작정이었다. 아직까지 구양봉이 대들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그들도 별로 신경 쓰지 않은 것이다. 이때 구양봉이 급하게 소리질렀다. "여러분, 그만들 하시오! 내가 할말이 있소이다!" 그는 그때까지도 자신과 홍칠이 이 다섯 사람을 잘 구스르기만 하면 자기들을 놓아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구양봉은 홍칠보다 머리가 훨씬 명석했으므로 사태를 손금 보듯 알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이들 다섯 사람이 큰소리를 내지 않아서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고 있지만, 시간을 끌면 사람들이 모여들 게 뻔했다. 일단 사람들이 몰려들면 홍칠은 몸을 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구 양봉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누구도 들은 척하지 않았다. 다섯 사 람은 홍칠을 기어이 때려눕혀 고분고분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지금 그들은 전력을 다해 홍칠을 대적할 일념뿐, 다른 것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만약 구양봉의 무예가 높았다면 대처하기가 퍽 쉬웠을 것이다. 그가 손을 써서 다섯 사람의 힘을 분산시킨 다음 일부를 자기 쪽으로 끌어 오면 될 것 아닌가? 구양봉은 몇 차례나 달려들었지만 다섯 사람의 강력한 반격을 받아 쫓겨 나왔다. 그는 휘 둥그래진 눈으로 여섯 사람이 한데 어울려 치고 받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홍칠은 이미 자기와 구양봉이 몸을 빼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는 온몸에 경상을 입어 붉은 피가 도포자락을 적시고 있었고 발길질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으나 다섯 사람 누구도 그와 죽기살기로 싸우려 들지 않고 거리를 두어 애만 먹일 뿐이었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홍칠에게 빈틈을 보여 얻어맞게 되면 나머지 네 사람이 달려들어 그를 구해 내곤 했다. 홍칠이 아무리 애를 써도 그들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랬으므로 구양봉도 목숨을 걸고 다섯째 나으리한테 달려들었다. 주먹이 다섯째의 갈고리에 걸러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섯째와 넷째에게 죽기살기로 달려들었다. 그의 뚝심은 대단했으나 무예가 여물지 못한 탓으로 주먹이 사람 몸에 떨어지면 살가죽이 아픈 정도에 머물 뿐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구양봉 자신이 다섯째 나으리의 갈고리에 걸려 옷 이 죄다 찢어지고 피와 살이 범벅이 되어 버렸다. 크게 상한 데는 없지만 보기에 끔찍스러웠다. 구양봉은 야수처럼 울부짖으며 앞뒤 가리지 않고 다섯째를 향해 덤벼들었다. 다섯째는 구양봉의 야수같은 모양을 보고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섰는데, 그 바람에 그만 구양봉에게 길을 내주게 되었다. 구양봉은 홍칠이 옆으로 달려가 두 사람이 서로 도우면서 다섯 사람과 싸웠다. 홍칠은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생각했다. '이번에 내가 정말 망신했구나! 큰 강과 바다도 어렵지 않게 건너던 배가 황궁에 와서 시궁창에 뒤집힌 꼴이 되었으니, 이 소문이 새어 나가는 날에는 사람들이 뭐라고 할 것인가? 이 홍칠이 식탐을 부리다 결국 음식 가마 옆에서 개죽음했다고 욕할 텐데, 이 창피를 어이할꼬?' 어쨌거나 다섯 요리사의 솜씨도 워낙 대단한 것이었으므로 용빼는 재주가 없었다. 큰 나으리와 둘째 나으리는 내공에 정통하여 국자를 뒤흔들면 말 그대로 바람 샐 틈 없이 잽쌌고 동작 또한 현묘했다. 음흉한 셋째와 넷째는 연신 냉소를 머금으며 홍칠을 도륙하려 들었고, 다섯째는 언제나 틈을 노리다가 진공해 왔는데 그가 멀찌감치 서서 뿌린 갈고리에 걸려 드는 것은 낙엽이 아니라 사람 의 살과 피였다. 이들이 어디 밥 짓고 요리하는 요리사란 말인가? 사람을 잡아 지옥에 보내는 악귀 들이지. 홍칠과 구양봉은 자기들에게 불리한 상황을 간파하고 나니 그만 맥이 탁 풀렸다. 홍칠이 풀쩍 뛰어 탁자 가장자리로 올라서서 외쳤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난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싶소!" 다섯 사람은 홍칠이 잔꾀를 부리려 한다는 걸 알아챘지만 별로 개의치 않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홍칠은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그래도 강호에서 이름값을 한다는 인물들인데, 너절한 거지와 타지에서 온 미욱한 사람을 때려죽여 봐야 좋을 게 뭐요? 그러니 나를 내보내 주시오. 난 나대로 계속 거렁뱅이짓을 하고, 당신들도 여전히 요리사 노릇을 하면서 살 수 있도록 좋게 끝내는 게 어떻소?" 묘수인주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받았다. "홍칠, 자네가 거지 무리의 장로라니까 하는 말인데, 황궁의 어선방이 그다지 대단한 곳은 못 되지만 당신이 제멋대로 행패를 부릴 곳은 아니오." 둘째 나으리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홍칠, 우리 형제들의 술안주로 한쪽 귀를 남겨 놓고 가구려." 그러자 한켠에 섰던 다섯째가 홍칠과 구양봉을 동정하는 척하며 참견했다. "귀를 베다니요? 거렁뱅이가 오관마저 온전치 못하면 얼마나 꼴불견이겠소? 차라리 손가락을 한 개 끊어 놓는 것이 낫지요." 그러자 홍칠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구양 형을 보내 준다면 당신들과 결판을 내겠소." 구양봉은 속으로 몹시 놀라며 한탄을 했다. '재주도 시답잖은 내가 무슨 정신에 홍칠을 따라 황궁에 뛰어들었을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도망갈 수도 없고 남아 있을 수도 없고……. 어찌한단 말인가?' 하지만 서역의 사막에서 잔뼈가 굵은 구양봉 역시 세상의 어려움을 겪을 만큼 겪었고 세속의 비바람도 맞을 만큼 맞은 사람이었으므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구양봉은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쥐고 홍칠에게 읍하며 말했다. "홍칠공, 나와 당신은 서로 생판 모르는 사이였으나 오늘 이 일을 겪고 나서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곳에서 죽는다면 나 구양봉은 꼭 이 다섯 사람을 죽여 버릴 것을 맹세합니다!" 홍칠은 구양봉이 이렇게까지 의리 있는 사람이리라곤 짐작하지 못했으므로 얼마간 감동되었으나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그만둬요! 당신은 여기서 나가기나 하시오. 미욱스럽긴 하지만 마음씨 하나만은 바르게 가졌군. 하지만 그까짓 재주를 갖고는 죽을 때까지 배워도 이 다섯 사람을 이기지 못할 거요!" 묘수인주가 입을 열었다. "홍칠, 결단을 내리시오. 귀를 내놓겠소, 아니면 손가락을 내놓겠소? 그리고 당신은……." 그는 구양봉을 가리키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도 홍칠과 똑같이 해야 하오!" 다섯 사람은 구양봉과 홍칠을 에워싸고 끝없이 지껄여 대고 있었다. 바로 이때 삐걱하는 소리가 들려 와서 모두들 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누가 열지도 않았는데 어선방 문이 저절로 열리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 마치 귀신이 와서 미는 듯했다. 이미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으므로 사람들 모두 놀랍고 무서워서 문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둘째 나으리가 용기를 내어 소리쳤다. "누구냐? 나와라!"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머리를 돌려 보니 탁자 위에 한 사람이 우뚝 서 있었다. 그 사람은 머리에 기름때가 번질번질한 모자를 쓰고 머리카락은 몹시 길었으며, 수염을 세 가닥 길렀는데 입고 있는 두루마기는 너무나 때가 끼어서 흰색인지 검은색인지 도무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바지는 두 가닥 푸대자루 같았으며 발목은 아예 신 속에 묻혀 있었다. 그 사람은 가부 좌를 틀고 앉더니 손에 곰방대를 들었다. "사부님!" 홍칠이 그에게 넙죽 절을 했다. 다섯 요리사는 곧 그를 알아보았다. 바로 그 유명한 홍안루의 요리사 소씨 거렁뱅이였던 것이다. 소씨 거렁뱅이는 껄껄 웃어대면서 손뼉까지 쳤다. "역시 황궁이 다르긴 다르군! 황제한테 요리를 해주면 사람마저 인정머리 없이 변하는 모양이지? 이봐, 그 동안 잘 지냈나?" 소씨 거렁뱅이는 다섯 나으리들을 한 사람씩 짚어 가면서 꾸짖었다. "첫째 네 놈은 아직도 날마다 사람의 생고기를 달달 볶는 수작을 하고 있겠지? 둘째 네 놈은 날마다 칼놀이를 하면서 뼉다구를 찍는 버릇을 기르고 있겠고? 셋째 너 이 놈, 삼 년 전에 네 놈이 흑풍의 어깻죽지로 불고기를 만들었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 그리고 다섯째, 너는 남의 물건을 잘 탐내지? 사람 고기를 삼키고 뼈도 안 뱉어 낼 녀석 같으니라구! 너희들 자신 있으면 나와 결판을 내 보자!" 다섯 사람은 소씨 거렁뱅이를 보자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구양봉은 별로 특이하게 생기지도 않은 늙은 거렁뱅이를 다섯 사람이 무서워하는 꼴을 보고 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소씨는 홍칠을 보고 외쳤다. "홍칠아, 너는 뱃속이 허전하면 홍안루에 와서 한 끼 먹을 일이지 왜 이곳까지 들어왔느냐? 너도 알겠지만 이 다섯 사람은 개에 불과하다. 그것도 어디 평민 집의 개들이더냐? 황제의 문지기 개지! 개란 워낙 흉악스러운 법이거늘, 황제의 개야 더 말할 여지가 있느냐? 어쩌자고 개들을 건드린 게야?" 소씨 거렁뱅이는 입을 열자 다섯 사람을 마구 욕해 댔다. 다섯 사람은 부아가 치밀었으나 감히 입을 열지는 못했다. 소씨는 다섯 사람이 침묵을 지키자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다섯 마리의 개가 동시에 달려들어도 나는 너희들을 당장에 없애 버릴 수 있어. 몽둥이로 말이야!" 다섯 나으리는 눈길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읽었다. 오늘 일은 이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이 소씨 거렁뱅이와 결판을 내지 않는다면 이후 어떻게 강호에 발을 붙일 수 있겠는가? 다섯 사람은 곧 마음을 합치고 말했다. "좋다, 소씨! 우리 오늘 결판을 내 보자!" 소씨는 키들키들 웃었다. "네까짓 놈들이 감히 나와 한판 붙겠다구?" 자정이 넘은 어두운 밤에 황궁의 어선방에서 생사를 건 혈투가 벌어질 찰나였다. 묘수인주는 침착한 표정으로 아궁이로 걸어가더니 이글이글 타고 있는 난로 안에서 빨갛게 타는 숯덩이를 꺼내 두 손에 하나씩 올리고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숯덩이가 손바닥의 살을 태우는가 싶더니 삽시간에 온 방에 고기 타는 냄새가 풍겼다. 묘수인주가 두 손을 지켜 보는 중에도 연기는 끊임없이 피 어 올랐고 숯덩이도 점차 꺼멓게 변해 갔다. 여러 사람이 다시 묘씨의 손을 보니 그의 손바닥은 온통 울퉁불퉁한 물집이 잡혀 보기에도 끔찍했다. 묘수인주가 두 손을 가볍게 틀어쥐자 숯은 금방 가루가 되어 손가락 틈새로 푸시시 흘러내렸다. 구양봉과 홍칠의 표정에는 마치 못 볼 것을 본 듯한 기색이 떠올랐다. 남과 실력을 견주려면 진짜 실력을 겨뤄야지, 이거야 자신을 학대하고 못 견디게 구는 격이니, 이럴 필요야 있는가? 묘수인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씨, 당신도 해 보시오!" 소씨 거렁뱅이는 여전히 히죽거리며 소리쳤다. "아이구, 야단났네! 거렁뱅이가 이 세상을 살아가자면 제일 불쌍한 것이 바로 이 두 손이 아니겠나! 귀한 물건이라곤 쥐어 보지도 못한 이 손으로 오늘은 불타는 숯덩이까지 쥐라고 하니, 이야말로 날 태워 죽일 셈이 아닌가." 입으로는 이렇게 지껄이면서도 그의 몸은 어느새 난로 옆에 가 있었다. 그도 묘수인주처럼 불타는 숯덩이를 집어 들고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그러나 두 눈엔 여전히 장난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놀라는 한편 의아스러웠다. 소씨의 손아귀에서도 숯이 타고 있는데 우선 살이 타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고, 연기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깍지낀 두 손의 손가락 살이 숯과 닿지 않았던 것이다. 셋째 나으리가 그걸 알아채고 큰소리로 질책했다. "소씨 어른, 당신처럼 명성이 높은 인물이 속임수를 쓰면 되겠소?" 소씨 거렁뱅이는 휘둥그래진 눈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어쨌기에 그 야단이냐? 이 숯이 이상해서 내가 아무리 쥐어도 손에 닿지 않는단 말이야. 자, 보라구!" 화가 치민 다섯째 나으리가 소씨의 두 손을 꽉 움켜쥐어 살을 숯불에 지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소씨의 손을 힘껏 쥐어도 숯은 여전히 소씨의 손바닥을 태울 수 없었다. 묘수인주가 큰소리로 외쳤다. "다섯째, 그만 물러나게!" 다섯째는 기가 꺾여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묘수인주가 말을 이었다. "이보시오, 소씨. 우리 다섯 사람은 이제까지 당신을 강호의 선배로 존경해 왔으니 더 이상 난처하게 굴고 싶진 않소. 비록 황궁에 기탁한 몸들이지만 우리 역시 강호에서 세력이 있는 패거리란 말이오. 당신들 거지 무리와 내왕할 때 우린 이제까지 조심스럽게 일처리를 해 왔소. 하지만 사람마다 일처리가 공정해야지, 어찌 당신만 이득을 볼 수 있겠소?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은 바로 그 때문 이오!" 소씨 거렁뱅이는 엄숙하게 말했다. "좋소! 그럼 어떻게 처리하면 공정한지 당신이 말해 보시오!" 묘수인주를 비롯한 다섯 사람 모두 자기들의 실력이 소씨보다 한수 아래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분한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한동안 쑥덕공론을 하더니 둘째 나으리가 말했다. "우리 일동은 금년 추시(秋時) 8월에 소 선배, 홍칠 형과 숭산에서 만나기로 결정했소. 그때 가서 이 일을 결판 내려 하니 두 분께선 기일을 어기지 말기 바라오!" 소씨 거렁뱅이는 그 자리에서 그렇게 하마고 대답했다. 소씨가 앞장서자 홍칠은 구양봉을 옆구리에 끼고는 천천히 몸을 날려 황궁의 지붕으로 뛰어올라 단숨에 서까래를 넘었다. 다섯 사람은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 보았으나 달빛 아래 검은 그림자가 스치는가 싶더니 곧 사라지고, 사람의 그림자라곤 찾아볼 길이 없었다. 황궁을 벗어난 세 사람은 큰 거리를 나는 듯이 지나가 버렸다. 그들은 성벽을 미끄러져 내린 다음 다시 경공을 써서 성 밖으로 벗어났다. 거의 반 시간 동안 달린 뒤에야 숲에 당도하여 쉴 수 있었다. 홍칠은 소씨 거렁뱅이 앞에 공손히 서서 그의 꾸중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소씨 거렁뱅이는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채 함구무언이었다. 홍칠은 겁이 나서 조심조심 물었다. "사부님, 무슨 가르침이 있으시든지 제자 꼭 명심하겠습니다." 소씨는 냉랭하게 말을 받았다. "홍칠, 자네도 이젠 거지 무리의 장로가 아닌가? 어찌하여 아직도 음식을 탐하는 습성을 고치지 못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