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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1부(서독구양봉편) - 5편 (5/64)

2026-09-24 21:22:51 조회 23
무술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상등 수준까지는 아직 멀었으니 고작해야 보통 강호(江湖) 인물 정도나 될까? 그런 정도를 갖고 어떻게 남에게 무술을 안다고 말하겠는가? 그렇다고 아예 무술을 모른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저러나 구양봉은 백타산 사람이었다. 백타산엔 무술에 능한 기인들이 부지기수이며 무술을 닦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걸 세상이 다 아는데 자기만 무술을 모른다면 믿기나 하겠는가 말이다. "무술이라……. 좀 알긴 하지만 당신만은 못할 거요." 구양봉은 이렇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야 물론 두말하면 잔소리지. 자네 무술이 나보다 세다면 이 거지 애비가 속이 상해 못 살지." 거지는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었다. 스무 살이 좀 넘은 것이 거지 애비라니……. 이자가 개방 중에 세력이 대단히 큰 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구양봉의 뇌리를 스쳤다. 그래서 거지를 다시 한 번 훑어보았으나 겉으로 보아 별로 특별한 구석이 없었다. 거지는 구양봉을 바라보며 득의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그것을 본 구양봉은 이 거지의 무술을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노형은 존함을 어떻게 쓰시오?" "존함? 존함이라……. 내 이름을 꼭 알고 싶다면 알려 주지. 거지는 값이 없어서 이름도 값이 없으니 감출 것도 없지. 내 이름은 기억하기도 좋네. 성은 홍(洪)가고 항렬로는 일곱째이니 모두들 홍칠공(洪七公)이라 부르네. 어떤가, 홍칠공, 이 이름이?" 거지는 자랑스럽게 웃었다. 그러나 구양봉은 고개를 흔들었다. "틀렸어, 그 이름은 틀렸다니까." "틀렸다니." "젊디젊은 나이에 홍칠공이 뭐요? 그렇다면 나도 내일부터 구양공이라고 해야 옳겠군." 구양공이란 말이 나오자 둘은 서로 마주보며 박장대소했다. 당시 가장 유명했던 구양수를 모두들 구양공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니 구양봉을 구양공으로 부른다면 구양수와 동명이 되는 것이다. 한바탕 웃고 난 홍칠은 통쾌하게 팔을 휘둘렀다. "에라, 홍칠공이면 어떻고 홍칠이면 어떠냐? 그런 걸 따질 필요가 있나? 그런 건 상관 말고 내 물음에 대답이나 해. 황궁 어선방의 음식을 맛보고 싶지 않나? 거기엔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아주 많거든." 황궁 어선방이란 말이 나오자 홍칠은 신명이 나서 떠들었다. "어선방이 어떤 덴지 알기나 하나? 굉장한 곳이라구.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곳이야. 황제가 하루에 밥을 몇 끼 먹는지 아나? 반찬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해? 황제가 식사하는데 어떤 예의범절이 있는지 알기나 하냐구? 자넨 모르지? 알 수가 있나. 황제의 어선방엔 유명한 주자(廚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이 사람이 가면 저 사람이 오고……. 모두들 천하에서 자기가 제일 유명한 인물인 것처럼 위풍을 부리지. 어떤 사람은 반찬을 잘 만들고 어떤 사람은 국을 잘 끓이고 어떤 사람은 양념만 만드는데, 누구든지 자기만의 독특한 솜씨들을 가지고 있거든. 거기에도 별의별 학문이 다 있으니까. 자네 여태까지 주방에도 장부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지? 황제의 어선방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는 사람 곁에서 장부책을 들여다보며 황제가 먹은 음식이 무엇무엇이라는 걸 매일 적어 두는 사람도 있어. 그걸 알기나 해?" 구양봉은 홍칠의 말을 듣고 어선방을 구경하고 싶은 욕심이 솟구쳤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황제가 있는 내궁(內宮)이 어디 함부로 드나드는 곳인가? 까딱 잘못하면 모가지가 날아날 텐데……. 구양봉은 잠시 주저했다. "이봐, 겁낼 거 없어. 전번에 난 거기서 열흘이나 묵고 무사히 빠져 나왔어. 거긴 시끌벅적하고 복잡해서 숨어 있기 딱 좋거든." 홍칠은 구양봉을 손가락질하며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자넨 재주가 별로 없는 위인 같은데 내 자네한테 인심쓰는 셈치고 어선방 구경 한번 시켜 주지. 들어가고 나오는 건 걱정 말라니까. 어때? 가겠나?" 구양봉은 잠깐 생각해 보다가 마음을 사려 먹었다. "그럼 한번 따라가 보지요." 그는 홍칠에게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아니, 왜 이러나? 절은 왜 해?" 홍칠이 놀라는 기색으로 물었다. "나도 무술을 좀 알긴 하지만 서투르기 짝이 없습니다. 이번 일은 칠공께서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저 칠공만 믿습니다." 구양봉이 칠공이라 부르며 공손히 절까지 하자 홍칠은 희색이 만연했다. '제법 공손한 태도로 봐선 성품이 괜찮아 보이는걸. 구양봉이 나를 칠공이라고 공대하며 절까지 하는 걸 우리 개방 사람들이 봤으면 신날텐데, 애석하게도 우리 떨거지들이 여기 없군.' "그럼 날 따라오게. 황궁 어선방으로 가서 이 홍칠공이 푸짐하게 한턱 내지." 그들이 한담을 하는 사이에 밤하늘엔 벌써 달이 뜨고 한길에는 인적이 끊어졌다. 집집의 창문마다 등불 빛이 흘러 나왔다. "어서 날 따라와!" 홍칠보다 경공(經功)이 떨어지는 구양봉은 홍칠을 따라가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그것이 갑갑한 흥칠은 구양봉의 뒷덜미를 달랑 들어 몸을 솟구치더니 지붕 위로 가볍게 날아올랐다. 가볍기가 마치 수리개가 날아오르는 듯했다. 그들 둘은 고요한 밤거리를 나는 듯이 갔다. 구양봉은 홍칠의 경공이 형 구양적보다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구양봉은 문재무략(文才武略)만 있으면 되지 무술은 없어도 괜찮다고 여겼는데 임안에 와 보니 그것이 아주 틀린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홍칠이만 해도 황제의 어선방을 제집 드나들듯 하지 않는가? 이런 재주에 이만한 담력이 있으면 천하에 무슨 일을 못하겠어. 이번에 서역으로 돌아가면 형님에게 사정하여 꼭 무술을 배워야겠어. 그래서 문무를 겸비한 대협(大俠)이 되어야지.' 흥칠이 열심히 날아 어느덧 그들은 황궁의 외원(外院)에 이르렀다. 멀리 눈앞에 황궁의 내원이 있었다. 송대에 임안은 자그마한 도성에 지나지 않아서 개봉과 낙양의 기백도 없었고 남경의 위엄도 없었다. 멀리서 황궁을 바라보면 큰 부잣집 정도로 보였다. 홍칠을 따라온 구양봉은 잔뜩 긴장되었다. '이런 황당한 짓이 어디 있나? 생면부지인 사람을 따라 황궁 안에 들어오다니. 자칫하면 목이 달아난다는 걸 알면서 말이야. 홍칠은 무술이 있으니 급하면 혼자 달아날 텐데, 그러면 나 혼자 남아 당하게 될 것 아닌가?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구양봉은 황궁의 귀신이 되고 말 것 같았다. 지붕 위에서 걸음을 멈춘 홍칠은 숨소리를 죽여 가며 말했다. "저 집이 황궁의 외사방(外事房)이야. 무서우면 지금이라도 돌아가. 내가 땅 위에 내려놔 줄 테니까 객사에 가서 잠이나 자라구." 그 말을 들은 구양봉은 속으로 찔끔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부아도 치밀었다. '흥칠인지 홍팔인지 하는 이 거지가 무술 좀 한다고 꽤나 잘난 체하는군. 나도 배우지 않아서 그렇지 배우기만 하면 너보다 못할 줄 알아? 사람을 깔봐도 분수가 있지.' 구양봉은 그런 내색은 하지 않고 홍칠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칠공께서 날 데리고 들어가기가 싫은 모양인군요. 방금 전까지도 황궁을 자기 집 드나들듯 한다고 자랑이더니 결국은 농담이었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칠공도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황궁이 어떤 뎁니까? 자칫하면 큰 변을 당한다구요. 칠공은 자기 혼자 들어간 적은 있어도 나처럼 무술을 모르는 사람까지 데리고 들어간 적은 없는 모양인데, 자칫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 게 된다구요." 구양봉의 말은 짐짓 홍칠을 약 올려 주는 말이었다. 과연 그 말에 약이 오른 홍칠은 얼른 구양봉의 옷깃을 거머쥐었다. "뭐? 내가 무서워 그런다구?" "칠공이 호걸이라는 건 나도 알아요. 무술이 대단하다는 것도 알구요. 하지만 여긴 황궁이라구요. 나 같은 것을 데리고 들어갔다가 무사히 나올 수 있을지 어떻게 장담한단 말입니까? 내가 황궁에서 원귀가 되는 건 서럽지 않지만 이 일로 칠공의 명성이 떨어지는 게 가슴 아프단 말입니다……." 그 말에 홍칠은 구양봉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히죽 웃었다. "거 말 한번 비단이군. 하지만 충동질은 그만두게. 그래, 자넨 이 칠공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나? 이 칠공이 자네의 격장법(激將法)에 이용되었다고 하자. 자네를 데리고 들어갔다가 내일 무사히 나올 테니까, 이 칠공의 재주가 어떤가를 찬찬히 보아 두란 말이야." 홍칠은 구양봉의 뒷덜미를 잡더니 수리개처럼 몸을 솟구쳐 황궁 안으로 사뿐 내려앉았다. 황궁 안에는 넓은 공터가 있고 그 공터에 불빛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홍칠은 잽싸게 어두운 곳으로 숨어 들어가 구양봉을 내려놓고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멀리 황궁의 등롱 몇 개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이자, 홍칠은 땅바닥에서 조약돌을 움켜 쥐고 손바닥으로 쓱쓱 비벼 돌가루를 만들어 휙휙 뿌렸다. 순식간에 등롱 불빛이 몽땅 꺼져 버렸다. "누구냐?"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구양봉이 뛰쳐나가려 하자 홍칠이 그를 잡으며 꾹 눌렀다. 눈앞의 모퉁이에서 우람한 체구의 사나이들이 허리에 찼던 칼을 빼들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들은 홍칠과 구양봉 앞에 이르러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마음을 놓고 도로 돌아갔다. 불씨를 얻으러 들어간 것이다. 이 틈에 홍칠은 구양봉을 끌고 나무숲 사이를 누비면서 어선방으로 향했다. 어선방은 황궁의 외딴 구석에 있었다. 근처에 다른 건물은 하나도 없고 어선방만 덩그라니 있었다. 목적지에 이른 홍칠은 기분이 대단히 좋아서 구양봉에게 슬쩍 눈짓을 해 보였다. 이게 어선방이야. 봐, 얼마나 들어오기 쉬운가! 이런 뜻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간이 콩알만해졌던 구양봉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선방까지 왔으니 큰일은 없겠지. 여기엔 대도시위도 없을 테고 당직 근무자 따위는 더구나 없을 거야. 지금은 어선방 사람들도 모두 잠에 곯아떨어졌을 테니까 우리 둘이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거야.' 그러나 홍칠은 여전히 경각심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는 구양봉을 옆구리에 끼고 몸을 솟구쳐 지붕 위로 날아 올라갔다. 그는 지붕 위에 엎드려 기왓장을 몇 개 벗겨 낸 다음 그 밑의 흙을 살살 긁어 종이에다 따로 싸놓고 나서 비수를 꺼냈다. 비수로 지붕 판자에 네모꼴을 쭉쭉 그은 다음 그가 비수 끝을 네모꼴 가운데 턱 꽂아 잡아당기니 네모난 판자 조각이 꿰어져 올라왔다. 홍칠은 이 모든 것을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웠다. 지붕에 빠끔한 구멍이 뚫리고 그 밑으로 집안의 모든 것이 똑똑히 보였다. 그곳은 어선방의 바깥채였다. 스무 칸이 넘는 큰 집이었는데 바람벽 한켠에는 커다란 목판이 걸려 있었다. 목판에는 글들을 정연하게 써 놓았는데, 눈여겨보니 그것은 채보(禁譜), 즉 요리 목록표였다. 멋진 필체로 아주 똑똑히 적혀 있는 그 요리 이름들이 얼핏 보기에도 몇백 가지가 넘어 보였다. 그런데 구양봉은 이 모든 것을 잘 볼 수가 없었다. 그는 홍칠처럼 어둠을 꿰뚫어 보는 재간이 아직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저 큰 목판에 빽빽하게 글이 씌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뭐라고 씌었는지는 읽을 수가 없었다. 그곳에는 또 굉장히 큰 탁자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탁자 위에는 갖가지 요리들을 담은 접시와 과자를 담은 쟁반들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식함(食含)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별의별 식함들이 다 있었다. 네모난 것, 둥근 것, 울긋불긋한 것, 흰색에 아무 무늬도 없 는 것……. 그야말로 오색이 영롱했다. 이런 식함들은 부호의 집에서 태어난 구양봉도 여지껏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구양봉은 놀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황제는 끼니 때마다 이 식함들에 담아 먹는 모양이지? 그러니 식함들이 이렇게 많지.' 그런데 탁자 옆에 괴상하게 생긴 사람이 앉아 눈을 내리깔고 중이 염불하듯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정말 이렇던가? 아닌데, 아니야. 이런 맛이 아닌데……. 틀렸어. 틀리다니깐. 에잇, 이번에도 제대로 못 만들었구나." 이맛살을 찌푸리고 앉아 있는 모양이 아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온 밤을 이렇게 노심초사하며 생각을 짜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갑자기 일어나더니 접시에 담긴 반찬들을 손으로 집어 냄새를 맡아 보고는 아주 상심한 얼굴로 도리질을 했다. 그리고는 그 요리들을 전부 내버렸다. '세상에, 저런 진수성찬을 버리다니!' 구양봉은 아깝기 그지 없었다. 홍칠 역시 그 요리사를 주시하고 있었다. 구양봉은 밤이 깊었으니 얼른 내려가 자리를 찾아 숨자고 했다. 이러고 있다가 날이 밝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도 홍칠은 대답 없이 그 사람만 내려다보았다. 구양봉도 하는 수 없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선방의 그 요리사는 일어나더니 손을 앞으로 길게 뻗었다. 그러자 멀찍이 있던 그릇들이 날개가 돋친 것처럼 줄줄이 요리사의 손으로 날아왔다. 그는 그 요리들을 만져 보기도 하고 맛보기도 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을 뒤로 번뜩하여 뒤에 있는 항아리에다 요리 접시를 던져 넣곤 했다. 마치 뒤통수에 눈이 붙어 있는 것처럼 모두 백발백중이었고 그 손은 갈수록 빨라졌다. 잠시 후엔 그가 집어 던진 요리들이 항아리에 가득 찼다. 그리고 나서 요리사는 사색에 잠긴 얼굴로 책을 뒤적이더니 한 대목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종자지방(種子之方)이란 본디 규정된 틀이 없다. 사람에 따라 약을 쓰고 사람에 따라 알맞게 써야 한다. 그렇지, 딱 맞는 말이다. 사람에 따라 알맞게 써야 한다는 이 말이 딱 맞는 말이야. 그런데 황제께 무엇이 딱 맞지……? 고로 냉한 자에게는 온기를 주는 약이 알맞고, 열이 많은 자에겐 서늘하게 하는 약을 주는 것이 알맞고, 얹혀서 내려가지 않는 자에게는 설하는 약을 줌이 알맞고, 허한 자에게는 보신하는 약을 주는 것이 알맞다. 부족한 것을 보태 주고 넘치는 것은 덜어 주면 음과 양이 조화되어 생기가 살아난다……. 맞았어, 맞았어! 넘치는 것은 덜고 모자라는 건 보태 주어야지……." 그리고는 또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야밤까지 자지 않고 책을 보며 중얼거리는 양이 마치 글공부에 미친 사람 같아서 구양봉은 홍칠의 귀에다 대고 수군거렸다. "글공부에 미친 사람이군요.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품을 보니 앞으로 과거 시험에 급제를 할 수도 있겠어요." 그러나 홍칠은 코웃음을 쳤다. "자네가 뭘 안다구 그래? 글공부는 무슨 글공부. 저자는 요리하는 주자야. 지금 들여다보는 것이 이학(理學)이나 현학, 대학이나 중용인 줄 아나? 옛날 사람들이 쓴 요리책이야. 그런 책들을 보고 황제에게 맛있는 음식을 바쳐 환심을 얻으면 큰 벼슬을 하게 되는데 다른 책은 읽어 뭐하겠어?" 구양봉은 그제야 그 요리사에 대해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 홍칠은 묵묵히 그 요리사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요리사는 요리사대로 새로운 비방을 고안해 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향불을 세 대는 태울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 요리사는 궁리에 지쳐 버렸는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고는 책을 놓고 나가 버렸다. 희색이 만면해진 홍칠과 구양봉은 지붕에서 내려와 살금살금 어선방 문 앞에 당도했다. 구수한 음식 냄새와 향기로운 과일 냄새가 풍겨 왔다. 구양봉은 이토록 맛있는 음식 냄새를 처음 맡아 보았다.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고 군침을 꿀꺽꿀꺽 삼키니 홍칠이 킥킥 웃었다. "이 홍칠이도 이 냄새를 맡고는 가만 있지 못하지. 한 번은 이 냄새를 맡으려고 열며칠이나 어선방을 떠나지 않았거든. 군침이 돌게 하는 이 구수한 냄새……." 그러다가 홍칠은 말을 뚝 그쳤다. 뒤에서 갑자기 인기척을 느낀 것이다. 이쪽으로 걸어오면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꼬맹아, 황제께선 지금 뭘 하고 계시니?" 그러자 나이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소인은 그런 것은 입 밖에 못 냅니다." "야, 내가 그걸 몰라서 묻는 줄 아냐? 네가 그 난쟁이한테 한 말도 다 알고 있어. 흥, 말하기 싫으면 그만둬라. 그렇다고 네가 다른 사람한테 한 말을 내가 모르는지 알아, 응?" 분명 이것은 꼬맹이라는 아이에 대한 위협이었다. 꼬맹이는 그 말을 듣자 금방 겁을 먹고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제가 말하기 싫은 게 아니라…… 그러다가 잘못하면……." 꼬맹이가 우는 소리를 하자 상대방은 더욱 자만에 가득 찬 어조로 말했다. "꼬맹아, 넌 정말 겁쟁이구나. 황제께서 지금 네가 무얼 하는지 어떻게 아시겠냐? 그저 당신을 조심스레 시중하는 줄 아실 거 아냐? 네가 지금 하는 말은 너하고 나 빼면 천하에 누구도 모를 게 아니냐? 그리고 황제의 일이란 게 그저 그런 일밖에 더 있느냐? 네가 말하지 않는다구 내가 모르는지 아니? 황궁에 있자니 너무 심심해서 좀 알아보자는 거야. 그래야 웃을 일이 생기지. 안 그러냐? 꼬맹이라는 아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겨우 떠듬떠듬 말했다. "황제께선 오늘 그 조개춤을 추는 처녀와 같이 계셨어요. 황제께서도 조개춤을 추겠다고 하셔서 그 처녀가 폐하와 같이 조개춤을 추었어요. 후궁의 황후께서 이 일을 아시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 처녀에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처넣을 텐데." "꼬맹아, 그건 모르고 하는 말이야. 황중의 여인들이란 황제의 환심만 사면 높은 자리에 올라가 부귀를 누리게 되는 거야. 황제에게 총애를 얻으면 걱정할 게 없지." 그러나 꼬맹이란 녀석도 아는 것이 많아 그 말에 지지 않았다. "그건 모르는 말씀이에요. 황제께선 하룻밤 자고 난 여인을 다시 찾는 일이 아주 드물어요. 석 달 동안 계속 황제께 총애받은 여인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그런 궁녀들 중 황후에게 죽지 않은 여인이 또 어디 있구요?" "쉬잇, 가만." 둘은 갑자기 말소리를 뚝 끊었다.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어선방 가까이 다가왔다. 구양봉 바로 앞까지 와서 집안에 인기척이 없는 것을 알자 나이든 녀석이 한마디 했다. "우삼(虞三)이 당직인 모양이다. 그 자식은 술에 미친 놈이야. 여기 없는 걸 보니 또 술 먹으러 갔군." 그리고는 탁자 위를 살펴보았다. "그럼 우리가 찾아볼까, 황제께서 가져오라는 요리가 어디 있는지." 그의 말에 꼬맹이란 녀석이 대꾸했다. "이 많은 식함 중에 어느 게 그 요리인지 어떻게 찾는다고 그래요? 그 국을 못 찾으면 공연히 고생만 하잖아요." "그 말도 맞다. 우삼! 우삼!" 나이 든 녀석이 소리쳐 우삼이란 자를 불렀다. 그 소리가 텅 빈 어선방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누구요? 왜 그래?" 그제야 안에서 한 사람이 뛰어나왔다. 입이 뾰족한 원숭이처럼 생긴 그 사람은 야밤에 찾아온 환관들에게 물었다. "무엇이든 다 준비되어 있어요. 황제께서 어떤 국을 원하세요?" "우삼, 어제 그 국을 가져오게. 서둘러. 황제의 대사를 지체했다간 머리가 남아 있지 않는다는 걸 알겠지." 나이 든 환관이 눈을 부릅뜨고 말하자 우삼이 제 가슴을 턱 치면서 받았다. "황제께서 대사는 무슨 대사요. 기껏해야 그렇고 그런 일이나 하고 계시겠지." "아니, 이 사람 정신이 돌았어? 감히 황제를 흉보다니!" 꼬맹이가 놀라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술이 취한 우삼은 제멋대로 떠들었다. "밖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황제께서 매일 국사로 노심초사하시는 줄 알지만 나는 알아. 나는 안단 말이야. 연일 여색에만 빠져 있는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제기랄, 나도 그 미인들을 봤어. 옆으로 지나가는 걸 슬쩍 봤지. 그 미인들의……." "뭐? 감히 황제의 시첩들을 엿보았다고?" 꼬맹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엿보긴 감히 어떻게 엿봐. 길에서 마주치는 바람에 급히 한쪽에 꿇어앉아 머리를 숙였는데……. 얼굴도 못 보고 젖가슴도 못 봤지만 그렇다고 다리도 못 봤겠니?" 우삼은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오라, 겨우 다리를 본 걸 가지고……." 나이 든 환관과 꼬맹이는 우삼을 비웃었다. 우삼은 한숨을 쉬며 마음대로 떠들었다. "그 미녀들의 다리가 얼마나 고운지 알아? 다리만 봐도 정신이 아찔해지거든. 그 다리는 정말……, 사람 미치게 하더군." 그리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두 환관도 말이 없었다. 그들도 미인들의 다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었다. "황제야 물론이지만 나라도 그런 미인들을 보고는 못 견디겠더라. 그저 와락 껴안고 마음대로 해 보고……." 우삼의 말이었다. 두 환관이 그를 막 놀려 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차디찬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너 이 놈 ! 죽지 못해 환장을 했구나. 어디라고 감히 황제께 무엄한 소리를 하고 있느냐." 그리고는 퍽 하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우삼이 꼼짝도 못하고 쓰러져 애걸했다. "나으리, 나으리, 농담 좀 한 거 갖고 왜 이러세요? 술 마시고 허튼소리 한 걸 갖고 이러지 마세요. 사실 그 날 나는 머리도 못 들었고 미인들의 다리를 볼 엄두는 더더욱 못 냈어요. 곁눈질 했다가 황제께 들키면 죽는다는 걸 낸들 모르겠어요? 금방 내가 지껄인 건 모두 허튼소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