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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명]풍운무림 제1권 (전3권) - 34편 (34/45)

2026-09-24 08:59:34 조회 13
그렇지만 무화의 생김새는 의외로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나패웅(羅覇雄), 무슨 일이죠?" 무화는 때아니게 들이닥친 흑의거한을 바라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흑의거한 나패웅은 보란 듯이 어깨를 펴며 말했다. "헤헤, 드디어 무화와 결혼할 수 있게 됐어. 봐!" 쿵-! 그는 등에 메고 있던 자루를 바닥에 내렸다. 무화는 흠칫하며 자루를 내려다보았다. "이건 뭐죠?" "내가 무능력하다고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지? 자, 이것을 주겠으니 나와 결혼해 줘." 나패웅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의혹을 느낀 무화는 자루를 조심스럽게 열어 보았다. 엄청난 보광(寶光)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눈을 찔렀다. "이, 이것은……!" "헤헤, 이것만 있으면 집도 사고 땅도 사서 우리도 잘 살 수 있어." 나패웅은 신이 나서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무화는 곧 정신을 추스리며 날카로운 안광으로 나패웅을 쏘아보았다. "이것들은 어디서 났죠?" "훔쳐… 아니, 주웠어." 나패웅은 재빨리 둘러댔다. 하지만 뻔한 거짓말에 속을 무화가 아니었다. 그녀는 팔짱을 끼며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다그쳤다. "거짓말하지 말아요. 어서 바른대로 말하세요." 나패웅은 그녀의 기세에 움찔하며 멋적은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실은… 훔쳐 온 거야." "어디서요?" 무화는 뾰족한 음성으로 힐책하듯 물었다. "몰라. 황금장원이라나? 돈이 굉장히 많다는데……." "황금장원?" 무화는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황금장원! 그곳이 어떤 곳인가? 중원상인들의 대부이며, 황제의 부마인 황금서생의 거처가 아닌가? 천하의 용담호혈로서, 재화를 노린 녹림도들이 침입했으나 모두 몰살하고 만 위세 높은 장원이었다. 한데, 우둔한 나패웅이 그 황금장원에 잠입하여 한 자루의 보화를 훔쳐 왔던 것이다. 무화는 비록 거대한 체구를 지녔으나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패웅의 무공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황금장원에서 발각되지 않았을 리 없다. 황금장원이 그렇게 어수룩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녀는 짙은 의혹의 빛을 띠며 나패웅에게 따져 물었다. "어떻게 가져온 것인지 숨김없이 얘기해 봐요." 나패웅은 무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자, 어쩔 줄 몰라하며 쩔쩔맸다. "잘못했어. 무화가 싫다면 도로 갖다 놓고 오겠어." 그 모습에 무화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내는 멍청하지만 진정 나를 좋아하고 있구나. 결국, 이런 도둑질도 나 때문에…….' 그녀는 표정을 바꾸며 그윽한 눈으로 나패웅을 주시했다. 아까와는 달리 그녀는 부드러운 어투로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어서 말해 보세요." "정말 나를 내쫓지 않는단 말이지?" 나패웅은 어린아이처럼 금방 입이 벌어졌다. 무화가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나패웅은 곧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는 보화를 훔쳐 오게 된 경위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듣고 난 무화는 아미를 모으며 반문했다. "그럼 누군가 그 장소를 알려 주었단 말인가요?" 나패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지." "그럼 둘이서 했나요?" "아니, 나 혼자 들어갔어." "친구란 누군가요?" "그곳에서 처음… 처음……?" 말을 하던 나패웅은 갑자기 눈을 휘둥그래 떴다. 그는 무화에게 반문(反問)했다. "그 친구가 누구지?" "……!" 무화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런 보물을 마음대로 내주고, 비밀문을 알고 있는 사나이라면……?' 문득 그녀의 안색이 일변했다. "황금서생!" 그녀의 부르짖음에 나패웅은 깜짝 놀라며 의문스럽다는 듯 물었다. "황금서생이 누구지?" 무화는 그만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당신은 죽었다가 살아난 줄 아세요." "……?" 의혹의 눈을 굴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패웅을 보면서 그녀는 가슴 속에 피어 오르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황금서생이 패웅에게 이 많은 보물을 주었을까?' 그녀는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그녀는 결심을 굳혔다. '내일 그분을 찾아가서 사죄해야겠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나패웅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죄다. 목숨을 잃더라도 가서 사죄해야지.' 어느 새 밤은 깊을 대로 깊어 가고 있었다. * * * * 다음 날 아침, 황금장원에 두 거인이 찾아왔다. 원탁(圓卓)을 둘러싸고 여천후를 비롯하여 사파륭, 철려화, 나나 등이 좌정하고 있었다. 그 앞엔 두 거인, 즉 나패웅과 무화가 꿇어앉아 있었다. 무화는 보석이 든 자루를 여천후에게 바치며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이분을 용서해 주십시오. 모두 소첩의 죄이옵니다." 그 말에 나패웅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나섰다. "아니오. 내가 훔친 것이니,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소." 여천후와 철려화를 제외한 중인들은 간밤의 일을 철려화에게서 모두 들은 듯,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여천후를 주시하고 있었다. 여천후는 나패웅과 무화를 내려다보며 낭랑하게 웃었다. "하하! 아니? 평생치 녹봉(祿俸)을 미리 준 것인데,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다는 건가?" "……?" "녹봉?" 나패웅과 무화는 그 말에 어리둥절함을 금치 못했다. 그렇지만 무화는 머리회전이 빨랐다. 그녀는 재빨리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대인께서 이분을 거두어 주신다니, 영광입니다." 이어 그녀는 나패웅의 다리를 꼬집으며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어서 충성을 다하겠다고 말씀드려요." 나패웅은 무화와 여천후를 번갈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 도토리만한……." 그는 못마땅한 듯 무어라 대꾸하려 했지만 무화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쏘아보며 싸늘하게 못박았다.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당신을 보지 않겠어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패웅은 황급히 여천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대인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여천후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앞으로 이곳에서 살도록 해라." 그 때, 대전 뒤에서 백설공주 주미려가 걸어 들어오며 큰 소리로 말했다. "도둑놈이 제 발로 자수를 해 왔다구요?" 그녀는 여천후에게 말을 던지다가 문득 흠칫했다. "와아!" 그녀는 탄성을 발하며 나패웅의 주위를 맴돌았다. "정말… 굉장히 크구나!" 그녀는 나패웅의 모습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감탄성을 발했다. "……!" 나패웅은 다만 커다란 눈을 불만스럽게 데구르르 굴리고 있을 뿐 입을 다물고 있었다. "곰(熊) 같애!" 그 말에 나패웅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앓는 듯한 신음성을 발했다. "끄응!" '하필이면 제일 싫어하는 곰이라니…….' 사실이 그런 것을 어찌하겠는가? 거대한 북해산 흑곰을 연상시키는 나패웅의 모습에 좌중의 모든 인물은 빙그레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제20장 철혈패황(鐵血覇皇)의 후예(後裔) 여천후와 나패웅은 나란히 관도를 걷고 있었다. 우습게도 여천후의 키는 나패웅의 절반에 불과했다. 걸음을 옮기며 문득 여천후가 물었다. "그래, 왜 도둑질을 했지? 무공도 절륜한 것 같았는데?" 그 말에 나패웅은 멋적게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무화에게 능력이 없다고 꾸중을 듣고는 돈을 벌기 위해서 그만……." "그렇다고 도둑질을 하면 되는가?" 여천후의 질책에 나패웅은 민망한 안색으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자네, 가족은 없는가?" 나패웅은 그 물음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님이 한 분 계셨는데, 삼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삼 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삼 년 전에 무화를 만났지요. 그녀는 남자가 큰일을 해야 한다면서 협행(俠行)하기를 당부했습니다. 표국으로 들어가 녹림도들과 함께 악당을 쳐부수고, 돈을 벌어 오면 저와 결혼하겠다고 했습니다." 여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려 깊은 여인이로군.' 나패웅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표국에 취직하여……." 그의 이야기는 대략 이러했다. 삼 년 전 모친과 단둘이 인적 드문 산 속에서 나무꾼 생활을 하던 나패웅은 모친이 죽자, 산을 내려왔다. 힘은 좋지만 머리가 아둔한 그는 언제나 말썽만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무화를 만났다. 두 사람 모두 거대한 체구로 보통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던 처지였다. 그 둘은 서로 의기가 투합됐으며, 마침내 사랑하게 되었다. 무화는 나패웅에게 남아(男兒)의 도리(道理)를 설파하여 표국에 취직하도록 했다. 나패웅은 순순히 그녀의 말에 따랐다. 표행 도중 도적들이 출현했으나, 나패웅의 실력에 모두 도망가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 도적들은 바로 흉년(凶年)이 들어 본의 아니게 나쁜 짓을 저지른 선량한 백성들이었다. 그들을 붙들어 사정 얘기를 듣고 난 나패웅은 오히려 백성들에게 패물을 몽땅 나누어 주었다. 자연히 그는 표국에서 파면되고 말았다. 두 번째로 그가 선택한 직업은 요리장(料理長)이었다. 그가 살던 곳은 사천(四川)이었다. 당연히 지역 특성상 매운 요리가 특징이었다. 모친에게서 배운 덕택으로 그의 요리솜씨는 특출했다. 그 솜씨로 그는 연경(燕京)의 천향객점(天香客店)에 취직이 되었다. 그의 요리솜씨는 곧 소문이 났으며, 삽시에 미식가들이 운집했다. 그러나 연경요리의 특징은 사천요리와는 달리 달콤한 데에 있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어느 날 미식가 중 한 사람이 지나가는 어투로 가볍게 질책했다. "맛은 좋은데, 너무 맵군." 그 말을 들은 나패웅은 그대로 주방에서 뛰쳐나와 손님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래서?" "너무 맵다고 했네." 말이 떨어진 순간, 음식 그릇은 그대로 손님의 면상에 퍼부어졌다. "음식 맛도 모르는 놈! 네놈은 먹을 자격도 없다!" 손님은 어이가 없어 눈을 부릅뜨며 나패웅을 꾸짖었다. "음식점에서 손님은 왕(王)이다!" 나패웅은 당당히 대꾸했다. "객점에서 주방장은 황제(皇帝)다!" 그는 그대로 손님을 패대기치고 말았다. 결국 나패웅은 객점에서도 쫓겨나고 말았다. 세 번째로 그가 시작한 것은 약(藥)을 파는 일이었다. 군중들의 운집해 있는 저잣거리에서 그는 묘기를 펼쳐 보이다가 그만 가전(家傳)의 무공인 거천패황풍(巨天覇皇風)을 신나게 펼쳐 보였다. 그런데 십 초(招)를 다 펼치고 주위를 둘러본 결과 백 장 이내는 완전히 박살나 있었으며, 군중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되자 나패웅은 약을 팔기는커녕, 부상당해 신음하는 군중들에게 약을 모두 나누어 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약을 파는 일도 포기하고 말았다. 무화는 능력 없는 나패웅을 질책했다. 나패웅은 그녀에게 꼭 인정받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표국 생활 당시 도둑들에게 패물을 나누어 주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하여 가난한 곳이 아닌 재화가 그득하다는 황금장원을 선택한 것이다. 나패웅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여천후는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하핫! 정말 파란만장한 인생이었군." 나패웅은 멋적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장주께서는 소인의 은인이십니다. 목숨을 바쳐 장주를 모시겠습니다." "……!" 여천후는 빙그레 웃으며 문득 입을 열었다. "자네의 무공을 좀 보여 주겠나?" "예!" 나패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 등에서 쌍철부를 끌러 양 손에 나누어 쥐었다. 관도 옆으로 사방은 무성한 수림이었다. 나패웅은 수림을 향해 양 손을 벼락같이 휘둘렀다. "거령파천풍(巨靈破天風)!" 콰르릉-! 실로 엄청난 광경이었다. 벼락 치는 굉렬한 음향과 함께 삽시간에 백 장 이내가 완전히 초토화되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어마어마한 신력(神力)이 아닐 수 없었다. 여천후는 그 광경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엄청난 힘(力)이다!' 문득 그는 의문을 느끼며 물었다. "그 무공은 누가 자네에게 전수했는가?" "어머니입니다." 나패웅은 쓸쓸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자네 모친은 굉장한 고수자셨군?" 그 말에 나패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어머니는 무공을 전혀 모르시는 분입니다." "그럼?"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한 권의 비급을 얻으셨습니다." "그 비급의 이름이 무엇인가?" 나패웅은 품 속에서 하나의 철경(鐵經)을 꺼내 여천후에게 내밀었다. 철혈철경(鐵血鐵經)! 여천후는 흠칫하며 부르짖었다. "철혈철경!" 철혈철경은 바로 고금십대무황 중 고금제일력사인 철혈패황 나웅천의 성명절기가 담긴 광세비급이었다. 여천후는 철혈철경의 첫장을 넘겼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철혈신공(鐵血神功)은 거령신맥을 타고난 후인만이 대성할 수 있다!> 그 밑으로 가공할 위력의 패도절기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철혈패황신공(鐵血覇皇神功)! 십 성을 익히면 도검이 불침하는 금강지체가 된다. 이것에는 흡(吸)과 탄(彈) 두 종이 있으며, 거령신맥을 타고난 자는 능히 대성할 수 있다. 철혈파천풍(鐵血破天風)! 철혈쌍천부로 펼치는 부식(斧式)이었다. 철혈패천후(鐵血獅子吼). 백 장 이내에 있는 모든 생물의 고막을 파열시키는 가공할 후공(吼功)이었다. 철혈비천섬(鐵血飛天閃). 번개가 무색할 정도로 빠르고 절륜한 경공술. 아무리 거구라 할지라도 철혈비천섬을 펼치면 깃털보다 가벼운 몸이 된다. 마지막으로 철혈철경의 끝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노부 철혈패황 나웅천은 한 장의 서찰을 받고 육반산(六般山)으로 간다. 고금십대무황의 십년지회(十年之會)에 참석하기 위함이다. 아들아! 부디 철혈패황신공을 더욱 발전시키기 바라노라. 철혈패황 나웅천 서(書)> 오 갑자 전에 사라졌던 파천황의 신인(神人) 고금십대무황! 실종된 그들의 윤곽이 서서히 껍질을 벗기 시작한 것이다. 여천후는 눈을 빛내며 내심 생각에 잠겼다. '고금십대무황이 육반산에서 십년지회를 가졌다고?' 그 때 문득 나패웅이 품 속에서 한 통의 서찰을 꺼내 여천후에게 내밀었다. "그건 뭔가?" "어머니께서 남긴 것입니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 여천후는 나패웅이 내미는 서찰을 받아 들었다. 서찰에는 섬려한 필체로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었다. <지면(紙面)으로 인사드려 죄송합니다. 몇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 이 글을 남깁니다. 웅아의 핏줄은 위대한 것입니다. 바로 철혈패황 나웅천의 직손입니다. 철혈패황의 손자이신 철혈사자황(鐵血獅子皇) 나천성(羅天星) 조부께서는 사자철림을 건립하셨습니다. 그런데 삼십 년 전 나천성 조부의 삼대손인 철사자(鐵獅子) 나천무(羅天武), 바로 웅아의 아버지 대(代)에서 변란이 일어났습니다. 나천무의 이복동생인 사자천공 나기웅이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 때 나천무는 우리 모자(母子)를 탈출시키고 전사(戰死)하셨습니다. 우리 모자는 그 후 웅아의 워낙 큰 체구 때문에 인적 드문 산골에서 숨어 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아마도 훌륭한 주인이라 생각하며, 웅아를 맡깁니다. 가문에 먹칠을 하지 않도록 웅아를 잘 이끌어 주시고, 원수인 사자천공 나기웅을 처단하여 주실 것을 아울러 부탁드립니다. 한부(恨婦) 읍서(泣書)> 글을 읽고 난 여천후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자철림. 흑룡강에 위치하고 있으며, 초강거한 십만을 보유한 강세(强勢)가 아닌가? 그 이면에 이런 비사가 있을 줄이야? 여천후는 낮은 침음성을 발하며 나패웅을 바라보았다. "패웅, 이것을 읽어 보았는가?" 나패웅은 고개를 내저었다. "어머니께서 꼭 좋은 주인에게만 보여 주라고 하셨습니다." 여천후는 내심 생각을 굴리다가 이내 흠칫했다. '잘하면 사자철림을… 으응?' 어디선가 요란한 굉음과 함께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가 보자!" 여천후와 나패웅의 몸은 어느 새 그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 * * * 숲 속의 공터엔 수백 대 일의 치열한 접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한 명의 혈의녀(血衣女) 주위로 수백 명의 장한들이 물샐틈없이 흉흉한 기세로 포위하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그들은 대단한 고수들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콰쾅-! "으악!" "윽!" 혈의녀의 가벼운 손속에서 실로 엄청난 경기가 일어 포위한 장한들을 속속 쓰러뜨리고 있지 않은가? "이놈들! 감히 본녀를 암습하다니… 죽어랏!" "크아악!" "으윽!" 혈의녀의 일 장에 수십여 장한들이 피를 뿌리며 즉사하고 말았다. 실로 가공할 무위가 아닐 수 없었다. 혈의녀의 나이는 불과 십칠 세 정도였다. 천하에 짝을 찾기 힘들 정도로 절륜한 미녀였으나, 그녀의 손속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전권 십 장 밖에는 한 명의 청포노인이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경악의 눈으로 장내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도 아니다. 취옥사전(翠玉四殿)의 연수합격을 받고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버티다니……."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공격하는 장한들은 모두 네 부류의 인간들이었다. 백팔나한진을 펼치고 있는 백팔 명의 금라가사(金羅袈裟)를 걸친 승려들은 모두 나이가 칠십이 넘은 고승(高僧)들이었다. 그리고 최저 팔 척(尺)에 최고 일 장이 넘는 거한들이 백오십 명 있었다. 그들은 거부(巨斧)와 거도(巨刀)를 무차별로 휘두르며 혈의녀를 공격하고 있었다. 또 다른 부류의 인물들은 강시 같은 혈포인들로서 눈을 현란시키는 유령 같은 신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들의 숫자 역시 백오십 명이었다. 나머지 인물들은 흑포장한들이었다. 그들은 가공할 마공을 구사하는 인물들이었다. 네 부류의 인물들은 대체 누군가? 취옥사전(翠玉四殿)! 천불전(天佛殿), 사자전(獅子殿), 천마전(天魔殿), 백사전(白邪殿). 하나의 세력만으로도 전 중원을 떨게 만드는 막강한 집단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연수합격을 펼치다니? 더군다나 단 한 명의 여인을 공격하면서도 계속 밀리고 있지 않은가? 퍼- 펑-! "크아악!" "으악!" 폭음과 함께 잇달아 터져 오르는 비명이 장내를 온통 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혈의녀는 연신 교수를 휘두르며 오만한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 감히 성검무후 앞에서 무공을 자랑하다니? 천라파천황(天羅破天荒)!" 콰콰쾅-! 그녀가 일 장을 휘두르자, 주위 십 장이 온통 자기(紫氣)로 뒤덮였다. 순간, 십 장 이내의 사 전 고수들은 처절한 비명과 함께 단번에 몰살하고 말았다. "크악!" "으으……." "명불허전이다. 성검무후이라더니……!" 사 전의 고수들은 혈의녀, 즉 성검무후를 에워싸고만 있을 뿐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검무후 나후황예(羅侯皇藝)! 중원의 신화인 취옥성의 대들보였다. 그녀의 선조부(先祖父)는 취옥대검호 나후장천이었다. 그를 비롯하여 취옥구대천공 등 취옥성 원로들의 무공을 습득한 나후황예는 이미 어려서부터 벌모세수되었으며, 타고난 기질로 당대 최강고수의 반열에 올라 있는 여전사(女戰士)였다. 특히 내공 방면에 있어서 그녀는 단연 최고였다. 그런 나후황예가 지금 취옥사전의 인물들에게 합공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후황예는 십여 장 밖에 우뚝 서 있는 사 인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혜오(慧奧)! 극마혈종(極魔血宗)! 천겁사령(千劫邪靈)! 비사왕(飛獅王)! 취옥사전의 부전주들인 네놈들이 나를 공격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혜오대선사, 극마혈종, 천겁사령, 비사왕. 신비전(神秘殿)과 천화전(天花殿)을 제외한 취옥사전의 부전주들이다. 일신에 흑의를 걸친 음침한 인상의 극마혈종이 음흉하게 눈을 번쩍이며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네년이 나온 것이 실수다. 너만 아니라면 취옥성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천겁사령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지금쯤 네 언니는 죽어 있을 것이다. 취옥성은 와해되고 중원은 다시 우리 사패천(四覇天)이 다스린다!" 일 장 거구의 비사왕은 득의의 광소를 터뜨리며 나후황예를 노려보았다. "네년을 이곳에 묶어 두면 곧 응원군이 온다!" 한데, 나후황예는 그들의 협박에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과연 언니는 천재다!' 그녀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어 그녀는 싸늘한 살공을 발하며 오만하게 웃었다. "호호! 네놈들의 전주는 이미 독살(毒殺)되었다." 그 말에 네 명의 부전주들은 흠칫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개수작하지 마라!" 나후황예는 그런 그들을 비웃듯 오연하게 말했다. "호호! 내가 호위도 없이 혼자 나온 이유를 아느냐? 언니는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임을 잊지는 않았겠지?" 그 말에 부전주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불안한 심리는 종종 조급함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각기 소리 높여 명령을 내렸다. "쳐랏! 곧 원군이 온다. 차륜전(車輪戰)을 펼쳐라!" 그러자 오백여 명의 장한들이 일제히 나후황예를 에워쌌다. 천겁사령과 극마혈종, 혜오대선사는 거의 동시에 외쳤다. "사령귀진(邪靈鬼陣)!" "극천마금진(極天魔禁陣)!" "백팔나한진!" 마지막으로 비사왕이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철혈천쇄진(鐵血天碎陣)!" 그들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가공할 와선강풍이 주위 삼십 장을 뒤덮었다. 휘류류류-! 흑무(黑霧), 혈강(血剛), 자광(紫光), 백무(白霧)가 서로 뒤엉켜 조화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