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을 쓰거나 감상할 때 유용한 무협사전 - 8편 (8/8)
그때부터 혜능은 한 행자승이 이끄는대로 방앗간에 가서 여덟 달동안 방아를 찧었다. 하루는 홍인이 문하생들을 다 불러 말했다. "너희들은 각기 반야의 지혜를 써서 계송 한 수씩을 지어 나에게 가져오거라. 내가 너희들의 계송을 보고 만약 큰 뜻을 깨친 자가 있으면 그에게 가사와 법을 부촉하여 육대조사가 되게 하리라." 사람들은 물러나와 의논했다. "신수화상은 우리들 중의 대사형이므로 굳이 우리들이 계송을 지어 큰 스님에게 바칠 필요가 없다. 신수가 법을 얻은 후에 육조가 되면 되지 않겠는가?" 신수는 혜능보다 먼저 오조 홍인의 문하로 들어와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한 사람으로 혜능에게는 대선배라 할 수 있다. 신수는 이것을 알고 심한 부담감을 느껴 번민을 하다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삼경에 남쪽의 복도에 몰래 계송을 적었다. "신시보리수, 몸은 보리의 나무요, 심여명경대, 마음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와 같나니 시시근불식,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막사유진애.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 오조 홍인이 아침에 그것을 보고 신수가 쓴 것임을 즉각 알아보고 신수에게 말했다. "네가 지은 이 계송은 소견)은 당도했으나 다만 문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문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범부들이 이 계송에 의지하여 수행을 하면 비록 타락하지는 않겠으나 진리는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너는 며칠 동안 더 생각하여 다시 한 계송을 지어 나에게 보여라." 신수는 돌아가 며칠을 지냈으나 계송을 짓지 못했다. 한 동자가 방앗간 옆을 지나면서 이 계송을 외고 있었는데 그때 우연히 혜능이 그것을 들었다. 혜능은 한 번만 듣고도 단번에 이 계송이 큰 뜻을 알지 못한 것임을 알았다. 혜능은 본래 글을 쓰지 못하는지라 그 동자에게 부탁하여 자신이 읊는 계송을 복도에 쓰게 했다. "보리본무수,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역무대.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불성상청정,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하처유진애.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가 있으리오." 그리고 또 하나의 계송을 읊었다. "심시보리수,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신위명경대.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와 같나니 명경본청정,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 하처염진애.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 오조 홍인대사는 이 계송을 보고 즉각 그가 큰 뜻을 알았다는 것을 알았으나 여러 사람들이 그를 시기할까 두려워 밤에 몰래 그를 불렀다. 그는 혜능을 조사당으로 불러 '금강경'을 강론해 주었다. 혜능은 한 번 듣고 모두 깨우쳐 그날밤으로 법을 전수받았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홍인은 그에게 의발을 전수하며 말했다. "너는 이제 육대조사가 되었으니 가사로서 신표를 삼을 것로되,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여 마땅히 스스로 깨우치도록 해라. 옛부터 법을 전함에 있어 목숨은 실날에 매달린 것과 같다. 만약 이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너를 해칠 것이니 너는 즉시 길을 떠나도록 해라." 혜능은 가사와 법을 받고 밤중에 남쪽으로 떠났다. 두 달가량 되어서 대유령에 이르렀는데 그때 가사와 법을 빼앗으려고 그의 뒤를 추적하던 진혜명이란 승려에게 붙잡혔다. 하나 진혜명은 오히려 혜능의 설법에 감화되어 그의 명에 따라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북쪽으로 갔다. 이후 혜능은 남쪽지방을 순례하며 불법을 전파했고, 소주 동남쪽 삼십오리 떨어진 조계산에 머물러 수행법의 혁신을 주장했다. 또 신수는 형남 당양현 옥천사에 머물러 혜능과는 다른 정통을 고수하기를 주장하는 자기의 사상을 전파했다. 혜능이 남쪽, 신수가 북쪽에 있기 때문에 이들을 각기 남종과 북종이라고 불렀다. 혜능의 사상은 그후 중국 불교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그에 대한 자세한 것은 여기서 밝히지 않겠다. 너무 종교적인 색채가 짙기 때문이다. (만일 혜능의 사상이나 그에 대한 것을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은 '장경각'에서 나온 <선림보전>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다만, 혜능의 많은 일화 중에서 유명한 것 한 가지만 소개 하겠다. 어느 날 여승 무진장이 육조 혜능에게 물었다. "열반경을 여러 해 봤으나 아직 이해를 못하겠으니 가르침을 주십시오." 혜능은 말했다. "나는 글을 모르오. 그대가 경문을 소리내어 읽으면 내가 혹시 그중의 진리를 알 수도 있겠지요." "글도 모르면서 어찌 그중의 진리를 안단 말이오?" "진리란 문자와 무관한 것. 마치 하늘의 달과 같지요. 반면 문자란 흡사 그대와 내 손가락이나 다름없소. 손가락은 달의 소재를 가리킬 수 있어도 달 자체는 아니오. 달을 보고자 함에 반드시 손가락을 거칠 필요는 없지 않소?" 이 일화가 나타내는 것은 <언어나 문자는 단지 진리로 향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 문자가 곧 진리 자체는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종의 유명한 '불립문자'의 의미였다. 너무 불교적인 세계로 빠져든 것 같지만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만 더 하겠다. 달마대사는 선의 교의적 기초로 네 가지를 말했다. 바로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다. 불립문자란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즉 이론적 구상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교외별전이란 경전에 의거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직지인심은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킨다는 뜻이며, 견성성불은 말 그대로 '견성(성품을 본다)'함으로서 성불의 도에 이른다는 뜻이다. 혜능은 죽기 전 달마조사때 부터 자신의 대에 이르기까지 여섯 명의 조사들의 사상을 담은 계송을 전했다. 제일조 달마대사의 계송은, "일화개오엽, 한 꽃에 다섯 잎이 열리어 결과자연성. 그 결과가 자연히 이루리로다." 제이조 혜가의 계송은, "본래연유지, 본래 땅이 있는 까닭에 종지종화생. 땅으로부터 씨앗 꽃 피나니 당본원무지, 만약 본래로 땅이 없다면 화종하처생. 꽃이 어느 곳으로부터 피어나리오." 제삼조 승찬의 계송은, "화종수인지, 꽃씨가 비록 땅을 인연하여 지상종화생. 땅 위에 씨앗 꽃을 피우나 화종무생성, 꽃씨는 나는 성품이 없나니 어지역무생. 땅에도 또한 남이 없도다." 제사조 도신의 계송은, "화종유생성, 꽃씨에 나는 성품 있어 인지종화생. 땅을 인연하여 씨앗 꽃이 피나 선연불화합, 앞의 인연이 화합하지 않으면 일체진무생. 모든 것이 다 나지 않는도다." 제오조 홍인의 계송은, "유정래하종, 유정이 와서 씨 뿌리니 무정화즉생. 무정이 꽃을 피우고 무정우무종, 정이 없고 씨앗도 없나니 심지역무생 마음 땅에 또한 남이 없도다." 제육조 혜능의 계송은, "심지함정종, 마음의 땅이 뜻의 씨앗을 머금으니 법우즉화생. 법의 비가 꽃을 피운다. 자오화정종, 스스로 꽃 뜻의 씨앗을 깨달으니 보리과자성. 보리의 열매가 스스로 이루는도다." 한자를 한 자 한 자 음미하면서 여섯 개의 계송을 서로 비교한다면 그들의 사상의 미묘한 흐름과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혜능의 사상은 훗날 임제, 의현에 의해 임제종으로 꽃피게 된다. 소림사가 선종불교의 본산으로 이름이 높은 것은 바로 달마-혜가-혜능의 선맥에서 비롯된 임제종의 가람인 까닭이다. 호법(護法) 호법이란 장문인의 경호 책임을 맡은 직책으로 대체로 문하 제자 중 가장 무공이 뛰어난 자들로 이루어진다. 호신강기 내공의 힘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무형의 막을 자신의 몸 주위에 형성하는 수법. 비슷한 말로 반탄강기가 있다. 호연지기(浩然之氣) 도덕에 근거한 굳세고 넓고 큰 기운. 맹자의 행동주의 도덕의 근본사상. 천지만물의 구성요소가 기(氣)인데, 사람의 생명력과 정신력도 바로 이 기이다. 이 기를 도리에 순응시켜 키우면 우주의 기와 함께 천지 간에 충만한 힘이 된다고 본다. 큰 물의 흐름과 같이 호연히 유동하여 지대지강한 것이 되는 것이니, 사람은 마땅히 이 호연지기를 지키고 길러 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호연지기를 무협소설에서는 유가의 가장 기본적인 내공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홍루(紅樓) 기생집. 홍무(洪武) 명 태조 주원장 제위 년간(1368 ~ 1398)의 연호. 홍문연(鴻門宴) B.C. 206년에 한 고조 유방이 초패왕 항우와 홍문에서 만나 벌인 연회. 항우는 범증의 권고를 유방은 장량의 꾀로 번쾌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도망쳤다. 홍아총(紅兒聰) 온 몸과 갈기가 붉은 색을 띤 중국의 명마의 하나. 화경(化境) 무공이 거의 신에 맞먹는 경지에 이른 것을 일컫는 말. 화골산(化骨散) 살을 녹여 뼈만 남기는 극악한 독약. 뼈조차 남기지 않고 누런 혈수로 만든다고 묘사되기도 한다. 살해후 증거인멸을 위해 사용되었다. 화산파(華山派) 위치 : 섬서성 화음현 화산의 서쪽에 있는 연화봉 정상. 명승 : 도교사대동천 - 태극동, 서현동, 노군동, 왕자동. 상궁 - 화산파의 근원지. 연화봉 정상에 위치. 옥녀지 - 상궁 앞에 위치. 하늘의 옥녀가 달 밝은 밤이면 강림하여 머리를 감았다 한다. 고장 - 전설에 의하면 천시인 거령이 자신의 초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황하 가운데를 가로막고 있 던 화산을 손발로 뒤흔들어 두동강이를 내버렸다. 화산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황하가 흐르게 되었고 화산에는 그 흔적이 남게 되었다. 이것을 고장이라 한다. 도림새 - 전설에 의하면 주의 무왕이 천하를 평정할 때 동원하였던 여덟 필의 명마를 유명한 어자 (말몰이꾼)인 조부가 잡아 주목왕에게 바쳤다고 한다. 주목왕은 이 명마들을 화산의 북쪽에 있는 수 백리에 달하는 광대한 수풀에 방목하여 길렀는데 이 수풀은 거의 복숭아나무로 뒤덮혀졌다. 이곳이 바로 고대의 유명한 도림새라고 한다. 절기 : 십사수매화검법(매화노방, 매화토염, 매개이도), 복호권(호위늠름, 흑호탐조, 호소산림), 검법(이십사수매화검법, 육합검), 권법(이형권, 비형권, 화형권, 복호권), 수(태을전진미리장, 죽엽수, 명령장법), 신공(자하신공, 태청강기, 육합구소신공), 진법(칠앵검진, 목상진), 기타(금은십삼탈, 청운신법, 이십사수나혈비기). 화조 중국 술의 하나. 값싼 술. 시금털털하지만 독해서 쉽게 취한다. 화타(華陀) 중국 후한 때의 명의. 안휘 출생. 침구, 마비산을 사용하여서 치료를 하였다. 백 살에도 정정하였고, 조조의 시의가 되었으나, 후에 그의 노염을 사서 살해되었다. 환골탈태(換骨脫胎) 영약이나 엄청난 양의 진기가 몸 속에 들어와서 생사현관을 타통하면 일어나는 현상으로 피부가 벗겨지고 뼈가 바뀌어 무공을 익히기 위한 최상의 신체조건을 갖추게 되는데 이걸 환골탈태라 한다. 탈태환골과 같은 말. 황교(黃敎) 티벳 불교는 본교라는 그들의 독자종교에 당나라 이래로 전래된 중국불교, 원나라 때 이뤄진 몽고식 불교를 통합해 발전하였다. 이때부터 정교일치의 흐름이 강화되어 17세기부터는 법왕이 포달랍궁의 주인이 되어 정치도 함께 담당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중의 결혼을 허용하였지만(홍교, 홍모교 : 붉은 모자를 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이것이 타락과 세속화를 부채질하자, 손 카파(1357 ~ 1419)가 기존 교단의 타락을 비판하고 개혁을 일으켜 결혼을 불허하는 황교(간덴파, 황모교 : 노란 모자를 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를 창시했다. 그후 황교는 세인들의 환영을 얻어 급속도로 확산, 후에 달뢰대라마의 원류가 된다. 지금도 티벳의 국가적 종교를 이루고 있다. 황학루(黃鶴樓) 호북성 무창성의 서쪽 끝에 양자강 연안에 있다. 3층누각이며 전설이 전해 온다. 주막집 신씨 집에 온 이상한 노인이 술값 대신 벽에 황학을 그렸다. 그 황학은 손바닥만 두드리면 춤을 추기에 손님으로 붐볐다. 10년 뒤 노인 이 와서 황학을 타고 흰 구름에 싸여 날아갔다. 신씨는 거기에 누각을 세워 황학루라 했다 한다. 최호의 황학루는 이 전설을 읊은 것으로 고래의 명시로 유명하다. 회광반조(廻光反照) 사람이 죽기 직전에 이르렀을 때 의식불명인 상태더라도 다시 한 번 제 정신이 돌아오고 맑은 정신 상태를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횡소천군(橫掃千軍) 중국에서 많이 쓰이는 검법 초식의 하나. 옆으로 후려치는 초식이다. 흉노(匈奴) 기원전 3 ~ 1세기 사이에 만리장성 지대와 몽고에서 활약한 북적(北狄)의 일파인 유목민족. 그 수장을 선우(單于)라 하여, 묵돌 선우 이후 약 150년 간이 그 전성기로 우수한 청동제 무기를 갖고, 동은 열하로부터 서는 지금의 신강성까지의 광대한 지역에 군림하여, 한나라를 누차 침공하였다. 후한 때에 남북으로 분열하였다. 종족은 몽고계인지 터키계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4세기경에 유럽으로 이동한 일부와 더불어 훈족이라 일컬어졌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한 침공으로 유럽사에 이름이 높다. 흡인신공(吸引神功) 흡자결을 이용해 어떤 사물을 끌어들이는 능력을 극대화한 무공.